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태양의 아이 - 4

댓글: 2 / 조회: 1250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5-05, 2015 22:47에 작성됨.

스튜디오란 장소도 의외로 많은 일을 한다. 결혼식을 위한 음향 장비 준비도 그 중 하나로, 주로 결혼식장이나 음향에 깐깐한 신랑 혹은 신부에게서 의뢰가 들어온다. 이번에 하는 결혼식장의 음향 장비를 준비하고, 맞춰서 세팅해달라는 주문이 말이다. 그래도 전문업체라는 이름을 걸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편인데도, 그 가격에 개의치 않고 해달라는 주문이 종종 들어오는 것을 보면 세상에는 부자가 참 많구나, 하고 솔직하게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쓸 데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의뢰를 맡은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장소는 서양식 교회 풍의 건물로, 결혼식장에 들어가 살펴본 나와 선배는 그 크기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기보다 꽤나 큰 규모다.

 “음, 생각보다 더 필요하겠는데... A군, 스튜디오에 가서 장비 좀 더 챙겨와야겠다.”

  그렇게 말한 선배는 나에게 차 열쇠를 건넨다. 혼자 갔다 오나요?

 “응, 난 앰프 장소랑 반향 같은 거 좀 보고 있을 테니 갔다와.”

  저, 운전 잘 못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차 맡기셔도.

 “응? 길 헷갈릴 거 같아?”

  아뇨, 길은 괜찮지만.

 “그럼 얼른 갔다 와.”

  이 사람은 묘하게 나를 믿는다니깐, 이상하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열쇠를 받아 차로 돌아갔다.

 

  혼자서 장비를 옮긴 탓에 시간이 걸려버렸다. 조금 시간이 걸려 늦게 결혼식장에 돌아온 나는 선배가 한 마디 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의외로 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항상 애용하던 테스트 음악을 틀고 믹서를 조절하고 있던 선배는, 돌아온 나를 발견하고는 나에게 다가와 지시하기 시작했다. 이건 저기, 저건 저기…. 지시에 따라 가져온 장비를 옮기던 나는,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눈치챈다. 어느새 카메라를 가지고 온 사람, 양복을 입은 사람, 귀여운 아이돌, 프로듀서, 장비 대행업자 등등. 응? 아이돌?

  장비를 옮기던 나를 발견한 아이돌이, 순간 놀란 듯하다가, 이내 무시하고는 마이크 테스트를 계속한다. 봤던 아이다. 분명히 이름이, 뭐였더라. 성격이 더러워 보이던 것 밖에 기억이 나지를 않아.

 “오케이, 그럼 테스트 부탁해 이오리쨩!”

  장비를 설치한 선배는, 친근한 목소리로 아이돌에게 지시를 내린다. 이 사람은 대체 어느새 아이돌이랑 친해진 거야?

 “A군은 믹서 조정 좀 부탁해. 손님이 음향에 깐깐한 거 같아서, 세세하게 세팅해야 할 거 같아.”

  나는 선배의 지시에 따라 믹서로 이동한다. 곧 식장 안에 아이돌의 목소리가 잠시 울려 퍼지고는, 반주와 함께 노래가 퍼진다. 그래, 이 아이 꽤나 노래를 잘 하는 편… 이었지. 노래실력에 감탄하며, 나는 믹서를 최대한 집중해서 세팅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에 세팅이 끝난다. 필요한 장비에 커버를 씌우기를 마치니, 저 멀리서 선배가 양복 입은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경비업체에게 이런 저런 부탁을 하는 것이겠지. 할 일도 끝났으니 잠깐 쉬어볼까, 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나저나 주말에 이렇게 큰 교회에서 완전한 풀 세팅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라, 상당히 부자겠구만. 거기다 아이돌까지 불러서 축가라면, 얼마나 거물인거야 대체.

 “…….”

  가만히 앉아있자니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니, 그 아이돌이다. 으음, 껄끄러운데.

 “당신, 나 기억하고 있지?”

  아아, 물론, 그러니깐 어...

 “미나세 이오리야. 뭐,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건 상관 없어.”

  방금 들었던 이름마저 까먹었다니, 난감하구만. 조금 겸연쩍어하면서 조용히 있으니, 아이돌이 할 말을 이어서 한다.

 “그러면 저번에 내가 했던 말은 기억하고 있지?”

  저번에 했던 말? 아아, 물론 기억하고 있지.

 “그러면 됐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야요이에게 이상한 짓 하기만 하면 내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깐.”

  그렇게 말을 뱉은 이오리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아, 저 아이는 선전포고할 때도 그랬지만 자기 할 말만 뱉고 가는 아이구나. 이런 취급은 익숙하다지만, 두 번이나 그러면 나도 말이야…….

 “아, 죄송합니다.”

  이번엔 프로듀서다.

 “조금 예민한 아이라서, 아마 내일 일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 거일 겁니다.”

  아이가 일방적으로 내게 뱉은 적의를, 대신 사과한다. 음, 사과할 필요는 없는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합니다… 그, 그럼.”

  어줍잖은 사과를 마친 프로듀서는, 아이돌을 쫓아 밖으로 나갔다. 하긴 사과를 한다고 해도, 나처럼 괴이한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 저 정도만 사과한 것도 참 대견하다면 대견한 거다. 아니, 더욱 생각해보면 사과 자체를 할 필요는 없는게, 저 아이의 선전포고는 타당하고 옳단 말이지. 선전포고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야요이라는 아이를 더 신경쓰지 않겠지만 선전포고를 한 다음부터는 확실히 야요이를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강해졌으니, 저 아이의 이번 선전포고에는 틀린 말이 없다. 나에 대한 적의는 옳다는, 거지. …이렇게 말해도 야요이라는 아이를 만날 기회가 앞으로 있기나 하려나, 싶은데 말이지.

  이렇게까지 선전포고를 받고, 이렇게까지 적의를 받았다면, 나도 어느 정도 보답해줘야지. 그러니, 만약에 다음에 야요이라는 아이를 만난다면, 만날 수 있다면 말이야, 그 아이를 엉망진창으로 해 줘야지. 그 아이가 필사적으로 비는 소리를 듣고 싶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같은 것도 좋고 그러지 말아주세요, 이런 것도 좋겠지. 그 아이가 흐느끼는 소리를 내는 모습도 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슬프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슬퍼서 울게 하고 싶다. 아니면 분노나 절망 같은 이유로 우는 것도 좋겠지. 요는 그런 거다, 밝은 그 모습이 반대로, 완전히 나락까지 떨어지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거다.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 확실히 놀랐다. 그렇게까지 밝은 아이, 아니 사람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지. 그리고 짐을 가져다 주려고 했을 때 우연히 들었던 그 말에, 더욱 놀랐다. 모르는 사람을 무심코 믿는 그 순진함이라니. 그리고, 그 때, 그래, 곤란해하던 목소리는, 음, 최고였어. 밝고 순진하고 대견해 보이는 아이가, 약간이지만 침울한 듯이 말하는 것이 너무 기분 좋았다. 완전히 나랑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것 같지만, 너도 절망이란 걸 하는구나. 그런 우는 소리를 절망이라 한다면 과장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난 그 아이의 절망을 기대하게 되어버렸다. 10년 정도만인 것 같았다.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이, 이렇게 기대되는 일이 생겼다는 게. 같은 서클의 좋아하던 아이가 나를 칭찬해줬을 때, 그런 기분, 그 정도로 기대감이 가득 찼다. 그래, 저런 밝은 아이도, 절망하는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어디까지 낼 수 있을까? 그 소리는, 그래, 남들과 아니 나와 같을 정도로, 바닥에 내쳐지는 그런 느낌이 날까? 아니면 다른 느낌일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그 아이를 만나고 싶다. 만나서…….

 “휴우, 이제 다 끝났다, 가자.”

  한 동안 생각이 폭주하고 있을 때, 딱 좋게 선배가 생각을 끊는다. 나는 잠깐동안 내 생각과 현실의 괴리감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선배에게 겨우 반응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배는 피곤한 모양인지, 내가 잠시동안 머뭇거리던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선배와 함께 결혼식장을 나선다.

  돌아가는 길에 선배는 이 결혼식이 재벌가 남자의 결혼이라는 것, 내일은 우리 스튜디오의 손님이었던 아이돌들이 와서 축가를 부를 것이라는 점, 보안업체라는 양반들이 말을 못 알아들어서 답답했다는 것, 내일은 바로 이 결혼식장으로 결혼식 시작 3시간 전까지 와달라는 것 등을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대충 듣고 있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어떻게 하면 야요이라는 아이를 만나볼 수 있을까? 그게 나에겐 지금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다. 어차피 집 주소를 아니깐 직접 쳐들어갈까? 하지만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부모한테 제지당하겠지? 그렇다면, 다시 만날 기회를 기다려야 할까? 명쾌한 해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고, 나는 선배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저녁을 적당히 편의점에서 때우면서 계속 생각을 잇는다. 하지만 역시 명쾌한 해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긴, 이런 일을 하는 건 처음이니 뭐. 천천히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건 알고 있지만, 역시 한시라도 빨리 그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생긴다. 저녁 늦게까지 조바심을 다루느라 고생하던 나는, 그러고보면 이런 조바심도 참 오랜만에 느꼈는데 이는 필시 기대되는 일이 정말로 오랜만에 생겼기 때문이겠지만, 일단 생각을 접고 잠자리에 들었다.

 


 

앞으로 2, 3회로 끝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