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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천 엔 포장마차 입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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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5, 2013 03:33에 작성됨.









키사라기 치하야.

푸른기운이 감도는 긴 흑발과 잘못 만지면 바스라질것 같이 가녀린 몸. 마치 얼음과도 같은 분위기를 흘리는 아름다운 소녀의 이름이다.

스스로의 입으로 '노래 이외에는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할만큼 노래에 강한 고집을 가지고 있고 그 고집만큼이나 뛰어난 발군의 가창력 또한 지니고 있는 가희歌姬.

그녀와 난 오늘 처음 만난것이 분명한데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외모와 훌륭한 노래실력을 가졌다는 첫인상 외에는 특별한 뭔가를 느낀것도 아니었을것이다.

하지만 난 그녀의 노래를 전부 듣고나서 나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어째서 그렇게 쫓기듯 노래를 하는거야?"

서로를 침묵으로 응시하는 나와 그녀.

이야기는 몇 일전으로 돌아간다.










야간 손님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한창 때의 시간.

식사보단 술이 자주 팔리는 시간대인만큼 손님들이 앉은 자리마다 수북히 쌓여가는 술병들이 그네들의 취기를 대변한다.

가끔 너무 취해선 진상을 부리는 손님도 몇명 있다만 이상하게 내가 나서기 전에 손님들 선에서 처리가 된다.

뭐라더라? 날 귀찮게 굴면 모처럼 찾은 좋은 가게가 망가진다나?

나야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마우니 그 뒷처리(?)를 방관하면서도 심한짓은 하지 않게 관리만 하고 있다.

이제 슬슬 자리가 꽉꽉 채워지고 당분간 추가 주문 이외에는 특별히 할일이 없어 한숨 돌리려 의자에 앉는데 다시 들어오는 손님에 그대로 다시 일어난다.

서비스의 기본은 밝은 인사로 시작하는것 부터이니 조금 지친 와중에도 그런 기색을 최대한 지우고 손님을 맞는데, 어쩐지 그 손님의 모습이 이상하다.

선 그대로 주춤하며 위아래로 날 훑어보는 손님.

나도 그 이상스런 모습에 기분이 묘해져 같이 훑어보다 둘이 서로 동시에 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그때 그 노래 잘하던 날라리!"

"그 스튜디오 사장님!"

예전의 인연인것을 깨닫고 새로 반갑게 인사한다.

"그보다 날라리가 뭡니까. 날라리가."

"그치만 날라리가 아니면 뭐라고 부르냐. 남들은 평생을 노력해야 겨우 인정받을까 말까하는데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와선 처음 들은 노래를 작곡자 얼빠지게 불러놓고선. 그래놓고 뭐? 노래좀 해볼 생각 없냐니까 하고싶은 마음이 들지않아?"

"글쎄 하고싶지 않은걸 뭣하러 하냐니까요. 그래도 도와달라는 말에 이것저것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가이드 보컬이라고 했나.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원래 가수가 부르기전에 먼저 불러 노래의 분위기 음정 등 많은 요소들을 미리 시험해보는 역활.

처음 만난건 게임센터였다.

전에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어슬렁어슬렁 별 목적없이 길을 걷다가 굉장히 커다란 게임센터가 보이길래 시간도 떼울겸 들어갔었다.

이것저것 게임들을 건드려보다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해 나가려는데 그 큰 게임센터의 한쪽면을 전부 차지한 노래부스 들을 발견했다.

가기전에 노래나 몇 곡 불러볼까 싶어 들어가 아는노래를 열심히 부르는데 다 끝나고 나온 내 앞에 바로 저 스튜디오 사장님이 서있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명함을 건네더니 하는말이 뭐? 가수가 될 생각 없냐고?

알고보니 그 게임센터는 게임보단 그 노래부스들이 유명한 장소란다.

이른바 비공식적인 오디션장이라나?

평범하게 노래하는 사람도 있지만 각지에서 노래에 자신이 있다 싶은 사람들이 모여 실력을 뽐내고, 그만큼 스카우트할 인재가 필요한 관계자들도 가끔 들러 쓸만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본단다.

어쩐지 방음이 별로다 싶더라니. 그런데 소리가 죄 섞여서 들릴텐데 잘부르는지 못부르는지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니까 좋은 노래는 어줍잖은 소음에 덮혀도 숨길수 없는데다 그정도도 구별할줄 모르는 귀를 가졌다면 애초에 이쪽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여간 그런 사장님의 제안을 난 깔끔하게 거절했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노래를 잘부른다는건 이번에 처음 평가받은거라 처음만난 사람만 믿고 정하기엔 문제가 있다는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으니까.

내 행동요령은 어디까지나 하고싶은가 아닌가이다.

그러자 당황한 사장님은 지금 헤어지면 평생 못만날 정인을 붙잡는거마냥 정말 간곡하게 매달리며 설득하다 결국 끝까지 거절하는 나에게 그렇다면 한가지 일을 조금만 도와달라는 최후의 부탁을 한다.

그 성화를 못이긴 나는 들어나 보자고하자 스튜디오 사장이기도 하지만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한 사장님이 이번에 작곡을 하나 하게됬는데 가이드 보컬이 필요하단다.

나름 알아주는 사람이었는지 실력있는 보컬을 구하자면 못구할것도 없지만 모처럼 찾은 나같은 인재를 놓치고 싶지도 않고 그 노래가 내 목소리와 잘 어울릴것 같아 꼭 좀 부탁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잘나가는 스튜디오의 사장씩이나 되면서 왜 나한테 목을 매나 이해못할 의문이 들었지만 하여간 그정도 일이라면 들어주는것도 괜찮을것 같아 수락하고 그 이후, 사장님의 스튜디오에 가서 가이드 녹음을 하고 다 끝났을 때 한번 더 매달리는 사장님에게 부탁도 들어줬으니 그만 가겠다고 단호히 헤어졌다는 예전 이야기다.

"그래도 인연이 있던 모양인지 오늘 또 만났다만, 포장마차를 하고 있었나."

"문제라도?"

"내 음악혼이 네 녀석의 목소리가 울고있다고 외치고 있다."

아 그러십니까? 라고 쿨하게 넘기고 자리에 앉힌다.

"요리는 잘 하냐?"

"노래만큼은 하는것 같던데요."

"역시 날라리. 욕먹어도 싸다 너는."

"글쎄 그거 불합리하다니까요."

퉁명스럽게 말하곤 주문받은 요리를 시작하며 먼저 술을 자리에 내놓는다.

한잔 따라 마시고 낮은 신음을 흘린 그에게 궁금한것이 생겨 물어본다.

"그런데 제가 불렀던 그 가이드 곡 그 이후에 아무리 찾아봐도 공개된것 같지가 않던데 어떻게 된겁니까?"

듣기론 원래 부르기로 했던 가수가 TV에 자주 출연할만큼 인지도 있던 가수라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한번도 그 노래가 대충매체에 나온적은 없었다.

내가 놓쳤나 싶어 인터넷을 뒤져봐도 그 노래는 애초에 없었던것 처럼 아무런 자료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아~ 그거? 노래 주인이 부르기 싫단다. 그래서 발표도 안했어."

"예? 왜요?"

"네가 부른 가이드 곡 듣더니 아무리 자기가 불러봐도 그 가이드곡보다 잘 부를수가 없다나 뭐라나. 가수의 자존심이 있어서 부르지 않겠다고 그냥 작곡비만 주더니 노래는 안가져갔어. 나도 그런마당에 그 노랠 다른사람한테 주기는 뭣해서 그냥 사장시켰고."

"……진짜?"

"그래서 내가 널 날라리라고 부르는거야."

이제 이해가 좀 되냐? 며 다시 빈 속에 술을 넘기는 사장님은 짖궃게 웃는다.

"그렇게 됬으니 부탁하나만 더하자. 그 전에 묻겠는데 아직도 노래할 생각 없냐?"

"지금 하고싶은건 이 포장마차니까요. 할 생각 없습니다. 그보다 부탁은 또 뭡니까?"

"모처럼 다시 만난것도 그렇고 너 때문에 내가 만든 노래가 세상의 빛을 못본것도 그렇고 들어줄만한 이유는 충분한것 같은데?"

"여기저기 딴지걸고 싶은게 한 두개가 아닙니다만."

"뭐가? 이렇게 극적으로 만난건 하늘이 네가 날 도와야 한다고 점지해준거고, 네가 녹음했던 그 노래가 결국 잘불렀다는게 이유긴 해도 어쨌든 너 때문에 묻힌건 사실이잖아?"

"그게 어디 제 탓입니까, 안 부른 가수 잘못이지. 그리고 발표는 못했다지만 작곡비는 받으셨다면서요."

"그 가수가 부르지 않게된 계기가 네 노래 실력이잖아? 네탓 맞지 그럼. 게다가 돈 가지고 이야기 하는거겠냐. 작곡가가 만든 노래라는건 자식과도 같은 의미야. 그 자식같은 노래가 누구불러주는 사람하나없이 묻혀만 있으니 내 속이 타들어간다 타들어가."

우와 이 사람 한마디도 안지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정말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최소한 자기가 만족하는 수준이 될때까지 그만두는 법이 없다.

이번에도 그 부탁이라는걸 내가 들어주지 않으면 끝까지 괴롭힐 심산이 눈에 훤하다.

한숨 쉬는것으로 체념을 표현한다.

"부탁이 뭔데요?"

"똑같아. 가이드 보컬."

"제가 부른 노래 듣고 부르기 싫어졌다면서요?"

"그건 그 가수만 그런거고. 게다가 이번엔 그 가수처럼 경험많은 프로라기보단 노래 꽤 잘하는 여자아이돌 노래니까 상관없어."

"여자아이돌?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왜 제가 가이드합니까?"

"노래에 이 노래는 여자만, 저 노래는 남자만 이런게 어딨어? 그냥 그 노래를 여자가 부르면 여자가 부른 노래가 되는거고 남자가 부르면 남자가 부른 노래가 되는거지. 중요한건 노래 그 자체의 느낌을 살리는거야. 톤 차이같은건 노래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라면 부르는 쪽에서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고."

그렇게 말하면 할말은 없다.

뭣보다 저쪽은 전문가니까 나보다 생각이 있는거겠지.

"사실 그다지 네 목소리에 어울리진 않지만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되는대로 뱉은 말이다만."

"생각없네. 무지하게."

그러자 호탕하게 웃은 사장님은 괜찮을거라며 막연한 위로를 한다.

"느낌을 살린다는건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니까. 넌 네 느낌대로 노래하면 돼. 아까도 말했지만 그걸 듣고 본인의 스타일로 바꾸는건 부르는 사람의 몫이니까. 신경쓰지 말라구."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이제와 낙담한다고 달라질건 없으니 사장님의 말대로 그때가 될때까진 잊기로 하고 떠들던 사이 완성된 안주를 내놓는다.

오늘의 안주는 볶음들. 그 중에 사장님에게 내놓은건 돼지고기야채볶음이다.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한젓갈 집어 입에 넣은 사장님은 몇번 씹더니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한다.

"너 혹시 가정부는 안하냐."

"안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부담스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시죠."

"날 위해 매일 아침 된장국좀 끓여주라."

"아 쫌!"

부인도 있는사람이 주책이다.

하여간 시간이 지나 사장님의 자리도 끝이 나고 다음에 휴일에 맞추어 언제까지 스튜디오로 오라는 말을 남긴 후 자리를 떳다.

하아, 모처럼의 휴일인데 쉬지도 못하겠네.









이러니저러니해도 시간은 흐르고흘러 약속한 날이 왔다.

도착한 스튜디오는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날 반긴다.

입구에 서서 한번 한탄의 한숨을 쉬고 안으로 들어가 사장님을 만난다.

녹음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장님은 반갑에 맞이하고 직원에게 차를 부탁하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모처럼 휴일에 불렀으니 빠르게 진행하자."

"그렇게 신경 써주실거였으면 애초에 저말고 다른 사람을 썼으면 됬을텐데요."

"그건 안될말이지."

하며 웃는 사장님은 다짜고짜 기기를 조작해 이번에 MR를 재생한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가사가 적힌 악보를 들어 반주에 맞춰 중얼거려본다.

애초에 내가 가이드 녹음을 하는 입장이니 누군가 부르는것을 듣는게 아니라 MR만 듣고 판단한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래는 상당히 여성적이고 몽환적이며 부드럽다.

"노래가 남자여자를 구분하지 않다지만 이건 여성이 부르는게 맞는것 같은데요."

"당연하지. 여자아이돌이 부를거라고 말했었잖아."

"그런데 저보고 가이드 보컬을 하라고요?"

"글쎄 넌 네 느낌대로 부르라니까. 애초에 네가 처음 부르는거니까 못하고 잘하고 비교할 기준도 없어."

자기가 부르는거 아니라고 쉽게쉽게 말하는구만.

곤란함에 머리를 벅벅 긁다 결론내린다.

역시 원래 내 목소리대로 부르면 너무 음악과 내 노래가 따로 놀 것같다.

변화가 필요하겠어.

직원이 가져온 차를 한모금 마셔 목을 축이고 녹음을 시작하려 마이크 앞에 선다.

헤드셋을 끼고 한손에 악보를 들고 사장님에게 신호를 보낸다.

방금 들었던 반주가 흘러나오고.

악보에 표시된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시작한다.

내 원래 목소리와 조금 다른, 좀 더 깔끔한 이미지의 톤.

밖에서 눈이 휘둥그레진 사장님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얼핏 보이지만 다시 시선을 악보로 돌려 노래에 집중한다.

약 4분 정도의 노래가 끝난다.

녹음을 마치고 나온 나에게 여전히 얼빠진 표정의 사장님은 말을 잊은채 날 보고만 있다.

"뭐라고 말을 좀 해보시죠."

"아니, 너 그런 목소리 아니지 않았냐?"

"아니었죠. 원래 노래부를땐 그때 들었었던 그때 그 목소리가 맞아요. 다만 이 노래엔 어울리지 않을것 같아 조금 바꿔봤습니다."

"그게 바꿔봤습니다, 라고 말하면 바뀌는거냐 원래?"

"전문가는 사장님이면서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봅니까? 그리고 되니까 바꿨죠."

그러자 더 기가 찬듯 사장님은 허탈하게 웃다 옆에 놓인 다 식어버린 차를 벌컥벌컥 마신다.

사실 바꿨다고 해도 아예 갸냘픈 목소리가 됬다는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원래 목소리가 상당히 묵직한 중저음이었으니까 그보다 조금 높은, 그리고 가벼운 톤으로 변화를 준거지 아주 여자목소리가 됬다던가 하는건 아니니까.

그래도 아주 다른사람이 부른것 같은 차이는 있는 모양이다. 저 사장님도 적잖이 놀라고 있고.

"그보다 노래 이야기나 좀 하죠. 어떻습니까 녹음은?"

"최고야. 이대로 그냥 너한테 줘버리고 싶을만큼."

"그러려고 녹음한게 아니잖습니까. 가이드 곡으로써의 가치를 설명해주세요."

"그것도 최고. 하지만 어떤면에선 최악이랄까."

"어떤면이요?"

"이제 막 데뷔하려는 그 아이가 듣고나서 불러보곤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설마."

정색하는 사장님에게 피식 하며 웃어보인다.

하여간 녹음은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만큼 잘 되었지만 그래도 여러번 해보고 그중에 나은걸 고르는게 낫다고 여겨 몇번 더 녹음을 했다.

"전부 괜찮으니까 딱히 고를것도 없네. 그래도 굳이 고르지만 두번째로 부른게 제일 나아."

"처음보단 바뀐 목소리에 익숙해져서 그런거 아닐까요."

"그럴거다. 그 뒤론 노래를 이어서 부르다보니 목이 지친것 같고."

그런것도 아는건가? 난 다 똑같은 노래로 들리는데.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하고 감탄하는데 갑자기 녹음실의 문이 열리며 소음을 낸다.

직원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건 차를 가져올때 몇번 봤던 그 사람이 아닌 처음보는 앳된 얼굴의 한 소녀였다.

"처음뵙겠습니다. 혹시 오늘 곡을 주시기로한 작곡가 선생님 맞으신가요?"

"오, 어서와요. 자, 우선 여기 앉도록 해요."

그 소녀와 인사를 나눈 사장님은 나를 대할때완 전혀 다른 정중한 태도로 소녀를 앉히더니 문을 열고 다시 직원에게 차를 요청한다.

"오늘 곡을 받기로 한건 맞지만 직접올줄은 몰랐네요. 혼자 오셨나요?"

"네. 프로듀서는 다른 아이돌의 중요한 오디션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는 바람에."

차분히 이야기하는 푸른빛 흑발을 길게 기른 소녀.

사장님이 이야기 했던 노래를 부르기로한 아이돌소녀가 혹시.

"그래. 이 아이야. 키사라기 치하야 양이라고 했던가요?"

"네."

짧게 대답하는 그녀와 나에게 사장님은 서로를 인사시킨다.

"이쪽은 키사라기 양의 노래를 먼저 가이드 녹음한 저희 스튜디오 최고의 보컬. 그리고 이쪽은 말한대로 네가 부른 노래의 주인인 키사라기 양이다."

"처음뵙겠습니다. 키사라기 치하야라고 합니다."

"네, 처음뵙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사장님 스튜디오 사람이 된겁니까?!"

정중히 인사하는 키사라기 양에게 맞인사를 하고 사장님에게 버럭 소리쳐 잘못된 정보의 수정을 요구한다.

그러자 혀를 차며 '이쯤 되면 못이기는척 그냥 넘어올것이지 비싸게 굴기는. 누가 잘난놈아니랄까봐.'라며 투덜거린 사장님은 다시 표정을 싹 바꾸고 자애로운 얼굴로 키사라기 양을 바라본다.

"그럼 먼저 녹음한 노래를 들어보도록 할까요?"

"부디."

키사라기 양이 승낙하자 내가 두 번째로 녹음했던 노래가 녹음실에 흘러나온다.

한 번더 난 악보를 들어 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 흥얼거려본다.

곡명 파랑새蒼い鳥.

직접 부르면서 느낀것이지만 상당히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의, 실로 아름답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노래다.

새삼 이렇게 좋은 노래를 저 사장님이 직접 작사작곡 했다는것에 놀랍네.

그렇게 다시 4분 간의 노래가 끝이 났다.

노래를 들은 키사라기 양은 표정변화가 거의 없던 그 얼굴에 놀라운 기색을 띄며 날 바라본다.

"정말 이 노래를 직접 녹음하셨나요?"

"예. 제가 한게 맞습니다."

확인을 받자 키사라기 양에게 초조한 기색이 역력해진다.

"역시 난 아직 부족해. 더 노력하지 않으면……."

"저기? 키사라기 양?"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걱정하자 화들짝 놀라 사양하는 키사라기 양은 애써 내 시선을 외면하며 직접 녹음을 해보겠다며 나선다.

흠. 뭐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썩 괜찮아보이는 모습은 아닌데.

어딘가 불안해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신경쓸것까진 아닌것 같아 잠자코 지켜보기로한다.

키사라기 양의 녹음이 시작된다.

맑고 청아한 음색.

부드럽게 시작되어 이어지는 노래.

키사라기 양의 노래를 들으며 실로 이 노래는 저 소녀가 주인인것이 맞구나 라고 생각한다.

아직 데뷔도 제대로 하지 않은 신인 아이돌이라고 했는데 어지간한 가수보다 훨씬 낫다고 여길만큼 키사라기 양의 노래는 훌륭하다.

하지만…….

불편함을 느낀다.

노래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라고 하더라도 지금 저 소녀는 분명 곡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먼저 들었던 내 노래에 휘둘리지 않는 본인만의 노래를 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잘부르는걸 떠나서 어딘가 한 구석 언짢음을 느낀다.

뭐지?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노래가 끝난다.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인가 싶어 사장님의 얼굴을 보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없고 만족한듯한 표정이다.

그러다 문득 나만이 홀로 느낀 그 불편함의 이유를 깨닫는다.

녹음을 마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키사라기 양이 보인다.

고작 서로 부른 노래를 한번 들은게 전부인 초면에 지금 내가 느낀 이 불편함과 이유를 말하는건 역시 실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나도 모르게 말한다.

"어째서 그렇게 쫓기듯 노래를 하는거야?"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사장님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나와 키사라기양 은 입을 다문 채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다 그 딱딱한 표정에 균열이 가는 그녀를 보며 아차 싶어 정신을 차린다.

"아, 아니 무심코 제가 이상한 말을. 신경쓰지 말아 주세요."

하지만 키사라기 양은 그만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무슨 의미인지 말해주실수 있으신가요."

"그냥 혼자 괜히 느낀 잡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흘려들으셔도……."

"아뇨. 그만한 노래를 부르시는 분의 충고에요. 제 노래에 도움이 된다면 비판을 감수할 준비는 이미 되어있습니다."

안색을 살펴보니 화가 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말하는대로 진지하게 자신에게 도움이 될것 같아 나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태도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그 흔들림없는 모습.

나같은 사람이 또 있을거라는건 확신하기 힘들지만 혹시 모르는일이고. 듣는사람이 불편한 노래라는건 좋지 않으니까, 원하는대로 말을 하기로 한다.

"실례가 안된다면 몇가지 말씀드려도 될까요."

'부디."

헛기침을 한번 한다.

진짜 전문가는 저기서 손가락빨고 구경하고 있는데 내가 뭐하고 있는건지.

찌릿 노려보자 사장님은 천연덕스럽게 양손으로 미는 제스쳐를 취하며 어서 하라는 신호를 보낼 뿐이다.

그 태도에 살짝 두통을 느끼다 여전히 날 뚫어져라 보고있는 키사라기 양의 시선을 느껴 서둘러 말을 시작한다.

"아까 했던 말 말씀인데요. 들으면서 저도모르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쩐지 키사라기 양은 노래를 부르면서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게 부르는것 같다고요."

"불안…입니까."

"네. 마치 노래에 모든걸 쏟아붓고 지금 이 순간 노래만을 위해 살고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간절함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더 위태롭게 보였어요. 그러니까……지금 노래가 없으면 난 살 수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숨을 고르고 키사라기 양을 지긋이 내려보며 말을 잇는다.

"나에겐 노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전해졌어요."

"……!"

"그래서 듣는입장에서 불편하다고 느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그것에 필사적인것은 좋아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치에 여유도 두지 않고 전념하는건 노래를 부르는 본래 목적을 망각한 것 아닐까요."

"노래를 부르는 목적……."

"그렇잖습니까? 노래는 듣는사람이 있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것이니까요. 노래를 듣는건 그 노래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노래에는 분명 즐거움 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안타까움, 그리움 같은 아련한 감정이 녹아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감정들을 노래를 통해 공감하는 과정이 바로 노래를 듣는 목적일테니까요. 하지만 과연 자신도 잊은 채 부른, 마치 단말마와도 같은 노래를 공감하고자 하는 청중이 있을까요."

단말마, 그것이 아마 올바른 비유라 생각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내뱉는 짧은 비명.

그 비명소리가 제 아무리 아름다운들 그것을 듣고 좋다고 여길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너무 신랄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그렇다고 느낀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고 분명 키사라기 양의의 노래는 전문가도 만족시킬만큼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나에게 바란것이니까 난 한치의 가감없이 느낀바 그대로를 들려준다.

내 감상을 모두 듣고난 키사라기 양은 조용히 혼자만의 상념에 빠진다.

다시 녹음실에 침묵이 흐르고.

키사라기 양은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목적…하아……."

그러다 키사라기 양은 아직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후련해진듯한 얼굴을 들어올린다.

"감사합니다. 좋은 충고가 되었어요."

"아뇨, 오히려 멋대로 되도않는 소리를 한 것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분명 저에겐 도움이 되는 말이었어요."

하고 키사라기 양을 만나고 처음보는것이 분명한 미소를 싱긋 지은 그녀는 사장님에게 다시 녹음해볼 것을 부탁하고 마이크 앞에 선다.

다시 반주가 깔리고.

그녀는 노래한다.

같은 가사, 같은 멜로디.

같은 노래가 들려온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키사라기 양은 다시 돌아온다.

"어떠신가요?"

살짝 기대감 서린 그녀의 질문에 난 얼떨떨하게 대답한다.

"글쎄요. 크게 달라진건 없는것 같은데요."

내 시원찮은 대답에 키사라기 양이 실망한다.

사실이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누가 그런말을 해줬다는것만으로 바뀔만큼 쉬운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이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아까보단 훨씬 나아요. 아직 여유가 있다고 말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다시 환해진다.

처음 만났을 땐 무뚝뚝하고 차가운 소녀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보니 그렇지도 않아보인다.

오히려 안좋은일이 있으면 슬퍼하고 칭찬에 기뻐할줄 아는 감정에 충실한 아이인것 같다.

그렇게 몇번을 다시 녹음하던 키사라기 양은 그때마다 나에게 의견을 묻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의 목을 걱정한 나와 사장님이 만류해 녹음을 그만두었다.

"정말이지 그렇게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는데도."

"죄송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노래하고 싶어서요."

하고 싶어서라.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한 그녀의 대사에 슬쩍 쳐다보고 과연 이해한다.

아직 한켠에 얽매임이 남은것 같지만 그래도 순수하게 노래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걸 느낀다.

무슨이유가 저렇게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개인 사정이라는것도 있으니까. 굳이 캐묻진 않기로 한다.

조금 휴식을 가진 뒤 키사라기 양은 돌아갔다.

그녀가 가고 난 녹음실에 다시 둘만남자 사장님은 히죽거리기 시작한다.

"어이구 대단한 프로 나셨습니다?"

"그만하죠 그 이야기는. 저도 뭐에 씌여서 그런 소릴 한건지 모르겠단말입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예의 호탕한 웃음으로 녹음실을 울린다.

"솔직히 감탄스럽다. 이제껏 노래 하나만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살아왔는데도 처음 그 아이의 노래를 들었을 때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잘 모르겠는데다 별거 아닐거라 생각해 무시해 버렸거든. 그런데 너와 그 아이의 대화를 듣고 아니란걸 알게 됬지. 과연 네 말을 듣고 난 이후 그 아이의 노래는 처음의 것보다 훨씬 좋았어."

하며 솔직하게 칭찬하는 사장님.

사람 띄우는거 참 좋아한다니까 라며 부끄러움을 애써 감춰봤지만 사장님은 "난 어디까지나 솔직한거다. 나도 마음에도 없는말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아." 라며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아, 아무튼 이제 부탁받은 일은 끝났고 돌아갈까.

사장님은 모처럼 다시 만났으니 가끔 연락이나 하며 지내자며 연락처를 건넨다.

이걸 받아들면 상당히 귀찮아 질것 같은 기분이지만 사장님의 말에 그냥 받기로한다.

"어차피 네가 하는 포장마차가 어딘지 아니까 찾아가면 그만이야."

자리 옮길까.






그냥 일기.

키사라기 양과 만난 날이다. 원래 보컬리스트를 목표로 아이돌은 그저 통과지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외모만 놓고 보더라도 아이돌에 손색이 없어보인다. 게다가 노래도 엄청잘하니까 데뷔한다면 금방 TV에서 찾아볼 수 있을것 같다. 그치만 역시 불안해보여. 걱정이네. 모처럼 좋은 노래도 받아갔으니 잘 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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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와 만났습니다. 치하야 하면 역시 노래죠. 이럴때 다재다능하다는 설정은 참 편해요. 끼워맞추면 그만이니까요. 참 그리고 점주의 목소리는 평소에 노래 부를땐 해외가수 크리스 도트리(Chris Daughtry), 그리고 파랑새를 불렀을 때는 국내가수 더 원, 혹은 김연우 씨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써보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소설은 텍스트다보니까 정확히 일치하는 목소리를 알려드릴 순 없지만 아무튼 위의 가수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ps. 도트리의 Crashed 어쿠스틱버젼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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