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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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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6, 2015 09:05에 작성됨.

집까지 도착하는 게 쉬웠듯이, 집에 들어가는 것도 너무나 쉬웠다. 지갑에 대한 순수한 걱정과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집에 들여도 괜찮은지에 대한 고민을 떠안은 소녀는 집 앞에서 갑자기 머뭇거리지만 나는 그런 소녀를 재촉한다. 얼른 들어가자. 여러모로 복잡한 얼굴을 한 소녀는 나의 재촉에 마지못해 집에 들어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집은 옛날에 지은 티가 풍기는 2층짜리 주택이었다. 현관을 지나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묻어있는 생활의 흔적을 본다. 유난히 눈에 띠는 것은 아이들의 흔적. 어린 아기에게나 필요할 물건들이, 이 아이보다도 더 어린 소녀에게 어울릴 것 같은 인형이, 기운 찬 꼬맹이가 벽을 긁어서 생겼을 듯한 벽지의 상처들. 생활감 넘치는 이 흔적들 속에서 나 혼자만이 유일하게 이물질이다. 그리고 그 이물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집에 침투했다.
  소녀는 우선 지갑을 물로 씻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세탁비누를 들고 지갑을 긁기 시작한다. 가방은 우선 두고 지갑에 비누칠을 하는 이유는, 지갑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겠지. 여기서 착한 사람이라면, 그녀를 위해 가방을 씻어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가방을 드는 대신 나는 소녀의 표정을 옆에서 힐끗 본다. 울상이었던 소녀는 어느새 비교적 침착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건, 뭐랄까, 그래, 재미없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울 듯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밝아 보이는 아이이기에, 그 아이의 울 듯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다른 표정도 좋다. 밝다, 의 반대에 해당하는 표정이면 어떤 표정도 좋다. 우는 표정도 보고 싶다, 화내는 표정도 보고 싶다, 좌절하는 표정도 보고 싶다. 아니, 표정 뿐만 아니다. 목소리도, 몸짓도, 이 아이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라면, 보는 것만으로 아니 느끼는 것만으로 이 아이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거라면 다 좋다. 어쨌든, 표정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폭력이었다. 아, 그래, 제일 단순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키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혐오하는 행동이다. 잘 생각해보자. 기왕 집까지 왔는데,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잠깐, 나는 왜 집까지 따라 들어왔지?

 “누나? 야요이 누나야?”

  탁탁탁 울리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린다. 남자 아이의 목소리다. 소녀는 계속 씻는데 집중해서 목소리가 안 들린 모양이다.

  집까지 따라 들어왔다. 아이의 동생도 있는 모양이다. 이 아이는 밝은 아이다. 필시 자신의 동생도 잘 챙기는 아이겠지. 남자아이의 목소리에서, 누나를 좋아하는 그 느낌이 살짝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소녀는 동생을 아끼겠지? 아끼는 동생을 앞에서… 폭력은 싫지만, 남자아이에게는 그다지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저 아이를 잡아두고, 어떻게 요리할지, 천천히 생각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어? 누구세요…?”

  화장실까지 온 남자아이가 묻는다. 난 남자아이를 살펴본다. 초등학생 저학년일까? 아니면 유치원생? 표정을 보니 개구쟁이같군. 너무나 작다, 금방 붙잡을 수 있겠어.

 “누, 누나?”

 “어 코타로”

  이제서야 소녀는 동생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 동생은, 아무래도 내가 무서운 모양이다. 표정이 이상했던 걸까? 그래도 두근거리며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걸.

 “이, 이 아저씨 누구?”

 “어 누나 도와주…”

 “이 아저씨 뭔가 무서워”

  동생은 소녀가 말하는 걸 중간에 끊을 만큼, 나에게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 맞지. 무서운 아저씨지. 이상한 아저씨야. 너는 누나만큼 착하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이런 동생의 반응까지 보면 소녀도 아마 깨달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을 집에 들여서 괜찮은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런 의심은 소녀에게 다른 행동을 촉구하겠지. 나보고 나가달라고 하든가, 경계하든가, 다른 어른을 부른다든가, 어쨌든 저항한다는 행동을 말이지. 그러면 재미없다. 나는 그렇게 쉽게 나가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러기 전에, 그래 그러기 전에 저 동생을 붙잡으면, 소녀는 저항하지 못하겠지? 그 다음에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러자, 그러자. 동생을 붙잡고, 그걸 빌미로 새로운 표정을 보자. 소녀가 나를 적대하기 전에, 얼른 움직이자. 바로 붙잡을까, 하며 움직이려는 찰나 소녀가 말한다.

 “떽, 코타로 누나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소녀는 빨래를 멈추고 동생을 나무란다. 착한 사람한테 그런 말 하면 못 써, 너무나 당연한 도덕을 가르치는 듯이. 자연스럽게. 딱 부러지게.

  흥이 빠졌다.

  나는 갑자기 흥이 빠진 걸 느꼈다. 뭐, 그런 거지. 이 소녀는 이런 상황까지 이르러도, 이상한 사람이 따라 들어왔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했고, 또 자신의 동생이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낀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의로 따라 들어왔다는 걸 믿겠다는 거지.

  너무 착해서 재미가 없다. 도대체 어디까지 착한 거냐, 이 아이는.

  순식간에 흥이 빠진 나는 그대로 가방을 거꾸로 들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빨래가 끝나고, 나는 적당히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소녀는 나가는 길까지 따라와 꾸벅 인사한다. 아니, 그런 예의는 필요 없어. 내가 보고 싶은 건 한 없이 밝은 소녀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거였지, 착한 소녀의 호의 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쳇. 나는 적당히 소녀에게 인사하고는, 그대로 스튜디오로 향했다.

 

 

  다음 주 월요일, 다시 그 사무소의 프로듀서가 왔다. 이번에는 다른 소녀를 데리고. 형식적으로 인사하고 녹음 작업에 들어가려는데, 그 프로듀서가 나에게 뭔가 쇼핑백을 건넨다. 뭐죠?

 “그, 저번 토요일날 야요이에게 있었던 일을 들었습니다. 택시비도 대신 내주시고 도와주셨다고 하는데, 그 답례로 이걸…”

  답례? 전혀 답례 받을 만한 일은 아닌데. 이 쪽의 본심이 어땠는지 알면 그런 말이 나오긴 할까? 어쨌든 받는 거라 고맙다고 대충 인사를 한다.

 “그나저나 그…”

  선물을 건넨 프로듀서는 뭔가 주저하며 말을 이으려고 한다. 하지만 말을 잇지는 않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뭐, 음, 아닙니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로듀서는 그대로 말을 마치고는, 데려온 아이돌에게 무슨 말을 하고는 스튜디오를 나선다. 뭐야, 싱겁긴. 아마 소녀에게서 내가 했던 행동 – 우유를 건내주고, 같이 집까지 따라갔다는 그 수상쩍은 행동을 듣고 나를 의심한 거겠지. 그도 그럴게,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잖아? 이상하지. 하지만, 그래, 싱겁게도 집까지 따라간 이 아저씨는 그냥 아이를 돕고 그대로 집을 나섰단 말이지. 의심하기엔 착해, 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저 프로듀서도 사람이 너무 좋구만. 당연히 의심하고 이상한 점을 물어봐야지. 나는 코웃음을 치려다 참고, 녹음 준비를 시작했다. 그 때, 같이 온 아이돌이 나에게 다가왔다.

 “당신, 저번주 토요일에 야요이 집에 들어간, 그 사람이야?”

  나도 모르게 뭔가 유명인사가 된 느낌이다. 귀여운 아이에게까지 관심을 받은 적은, 일생을 통틀어서 없던 경험이라 신기한 느낌도 받는다.

  “……”

  그렇다고 대답하니, 아이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할 말이 있으면 해줬으면 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날카롭게 째려만 보는 거지, 흠.

 “뭔가 이상하지 않아?”

  갑자기 묻는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지? 이번엔 이 쪽이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본다.

 “그런 일로 집까지 따라 들어가고, 당신 혹시 스토커야? 아이돌 오타쿠라든가?”

 “아니, 아이돌에게는 관심이 없는데”

  담백하게 사실을 대답한다. 의외로 진심이 통한 모양인지, 아이는 조금 당황한다.

 “그러면 대체 왜 따라 들어가는 거냐고?”

  그야… 그 때는 그냥 도와주러 그런 것인데?

 “보통 그런 일 때문에 집까지 따라 들어간다는 게 정상이야? 그리고 애초에 그 우유라는 것도, 왜 깨지기 쉬운 걸 가방에 넣어서 건네주는데?”

  정석이다. 보통은 이런 걸 의심하겠지? 아이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당신 말이야… 일단 야요이를 도와준 건 고마워, 나도 감사의 인사를 할게”

  네 표정은 전혀 감사의 표정이 아닌데. 오히려 이 표정은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야요이에게 이상한 생각을 품고 있는 거라든가 이상한 짓을 한다거나 하면, 이 미나세 이오리님이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깐!”

  선전포고를 하는 표정이지. 적의가 담긴 표정. 그리고 약간의 멸시도 같이 담긴 표정. 너무나 익숙한 표정.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표정에 내가 잠시 멍하니 있으니, 할 말을 마쳤다는 듯 아이는 녹음실로 들어가 버린다. 무조건적인 호의에 의욕 같은 것이 떨어졌었는데, 저 아이 덕분에 의욕이 다시 생기는 느낌이 든다. 그래, 보통은 나에게 돌아오는 표정이란 저런 적의와 멸시의 표정이어야지. 아아, 좋구만. 다시 그 야요이라는 소녀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쪽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러섰고, 마음도 접었는데 적대시라. 아아, 그래, 그게 당연한 반응이라지만, 덕분에 이 쪽도 그냥 가만히 있으려던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 의욕이 생긴다고. 뭐, 그렇다고 다시 그 아이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겠지. 조금 의욕이 생기던 마음은, 당연한 현실 앞에 다시 풀이 꺾인다. 나는 생각을 그만두고, 녹음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꺾인 의욕이 다시 생기는 것은 쉽다. 그 기회라는 것이 생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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