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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아저씨를 확인하는 방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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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7, 2012 14:36에 작성됨.

   문이 열리자마자 하루카가 쓰러지듯이 몸을 기대왔다.
   하루카를 온 몸으로 지탱하며 그 기색을 살폈다. 내게 기댄 하루카의 가냘픈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비를 맞았는지 하루카에겐 한기마저 느껴졌다.
   그런 하루카를 집 안으로 옮긴 뒤 혹시 몰라 황급히 현관문을 닫았다.
   자동으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슨 일이야! 하루카!”
   “프, 프로듀서 씨…….”
   하루카는 힘들게 고개를 들어 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하루카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옷은 비 때문인지 흠뻑 젖어있었고, 머리카락도 머리에 묶은 빨간 리본들도 젖어 축 쳐져있다. 헤어지기 전에 쓰고 있던 모자와 안경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아름다움이 감돌던 볼도 새하얗게 질려 창백하다.
   하루카는 떨리는 눈으로 날 보다가, 이내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힘겹게 미소 짓는다.
   “프로듀서 씨, 저……흑.”
   그러나 그 억지웃음도 댐이 터지나가듯이 무너졌다.
   하루카의 녹색 눈동자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눈물이 떨어지더니 이윽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꾹 참았던 모든 것이 폭발하듯.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나도 모르게 하루카를 꾹 안았다. 그러자 하루카는 울음을 숨기려는 듯 내 품에 얼굴을 더욱 묻었다. 내 옷이 금세 젖어갔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하염없이 계속되던 하루카의 울음도 서서히 진정되어갔다. 들썩이던 어깨도 이젠 많이 침착해있다. 하루카의 호흡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하루카를 풀어주었다.
   다행히 하루카는 한결 나아보였다. 창백했던 얼굴에도 이젠 살짝 혈기가 돈다.
   “하루카, 무슨 일 있었어?”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루카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요즘 스토커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가슴이 철렁했다. 스토커라니.
   “스토커?”
   “네, 핸드폰에도 계속 이상한 메일이 오고, 방금 전도 누가 계속 따라와서……흑.”
   다시 울음을 터트리려는 하루카의 모습에 온 몸에 가득한 긴장을 숨기며 더욱 부드럽게 물어봤다.
   “그럼, 누가 미행했다는 소리니?”
   “네……. 프로듀서 씨의 차에서 내렸을 때부터 기분이 이상해서, 혹시 하고 집과는 반대 방향의 전철을 타서 다음 정거장에 내렸는데도 계속 누군가 쫓아왔었어요. 사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너,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다가 마침 프로듀서 씨의 집이 이 근처란 걸 떠올라 여기로 피한 거예요.”
   하루카는 더듬더듬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 스토커도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그,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이 건물에 들어오고 나선 쫓아오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아마 절 놓친 것 같아요.”
   “그건 다행이네.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쉬며 한껏 긴장했던 몸을 풀었다. 그래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스토커에 이어 바로 떠오르는 끔찍한 상상에 무심코 추궁하듯 하루카에게 말한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갔어야지. 이쪽 지리는 잘 모를 텐데 그러다가 큰일 났으면 어쩔 뻔했어.”
   만약 아이돌인 하루카가 스토커에게 붙잡혀 납치라도 당했으면 내일 신문 일면에 나올 대형 사건이 터졌을 것이다. 사무소도, 나도 엄청난 패닉 상태에 빠졌을 것이고.
   “죄송해요, 그래도 아까 전엔 이 생각 밖에 들지 않아서.”
   하루카도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럼, 요즘 상태가 이상했던 건 전부 스토커 때문이었던 거야?”
   “네…….”
   하루카는 대답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걸로 계속 고민하던 문제가 실존했음을 알았다. 그래도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 프로듀싱하는 아이돌이 스토커에게 시달릴 동안, 나는 뭐하고 있었나하는 자괴감.
   그리고 아직도 하루카에게 완전히 신뢰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슴을 메웠다. 나한테라도 말해줬었다면, 하루카 혼자 힘들어 하지 않았을 텐데.
   답답한 기분이 묘하게 끓어오른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내가 아니라도, 다른 아이돌이나 사무소 사람들, 그리고 부모님도 계셨잖아. 딱 한 마디만 해줬으면 누구라도 도와줬을 텐데.”
   무심코 목소리가 높아졌다. 꾸짖는 듯한 내 목소리에 하루카는 몸을 움츠렸다.
   “죄송해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서…….”
   하루카의 말에 가슴 속 한 줄기 선이 뚝 끊어졌다.
   “폐가 아냐! 하루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크게 소리치면서 하루카의 움츠리던 어깨를 꽉 잡아 폈다.
   “프, 프로듀서 씨?”
   하루카의 눈동자가 깜짝 놀라 동그래졌지만, 큰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하루카는 다른 사람에게 더 기댈 필요가 있어. 그동안 내가 하루카를 얼마나 걱정했는데!”
   기대는 게 뭐가 나쁘냐. 프로듀서는 기대라고 있는 거라고. 하루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머리를 가득가득 채웠다. 다음에 뭘 말하고 싶은지 조차 모를 정도로.
   결국 그대로 힘이 빠져버렸다.
   “만약 하루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난…….”
   그 말을 끝으로 하루카의 어깨를 꽉 잡았던 손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 그리곤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하루카에게 지금 짓고 있는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걱정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얼굴을.
   “프로듀서 씨…….”
   날 부르는 하루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차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아직 마음도 진정되지 않았고.
   방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바닥을 천천히 적시는 물이 하루카의 옷에서 떨어진 건지 내 옷에서 떨어진 건지 모르겠다.
   하루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운을 차려야지. 하루카에게 힘이 되어야하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 감정을 떨쳐내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혹시 목이 메지는 않았는지, 조심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제부턴 우리에게 맡겨. 알았지?”
   “네, 다신 이런 일 안할게요.”
   진지하게 얼굴을 끄덕이는 하루카를 보며 다시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제야 하루카의 상태가 객관적으로 보였다.
   하루카가 계속 물에 빠진 생쥐 상태였단 걸 깨닫자마자 몸이 움직였다. 바로 화장실로 향해 마른 흰색 수건 하나를 꺼내 하루카에게 건넸다.
   “감기 걸릴라. 이걸로 몸 좀 닦고 있을래?”
   하루카는 공손히 수건을 받아 젖은 머리를 닦았다. 옷은 이미 다 젖어버려 수건으로도 다 처리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물기를 흡수하는 정도는 가능해 보였다.
   하루카가 몸을 닦고 있을 동안 부엌으로 가 커피포트에 물을 담았다. 꽤 비싼 커피포트여선지 안의 물이 금방 데워졌다. 대접할 차가 있는지 부엌을 이러 저리 살폈지만 커피는커녕 전에 사두고 남은 녹차 티백 밖에 없었다.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른 뒤 아쉬운 대로 녹차 티백을 꺼내 넣었다. 녹차가 우려나길 기다린 뒤 잔을 들고 하루카에게 돌아왔다.
   아직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있는 하루카에게 녹차를 건넸다.
   “비 때문에 몸이 많이 차가워졌을 거야. 많이 부족하지만 일단 따뜻한 녹차니까.”
   하루카는 닦던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뒤 조심히 찻잔을 받았다. 초등학생이라도 만들 수 있을 티백 녹차지만, 하루카는 찻잔을 양 손으로 꼭 쥔 채 편한 표정으로 마셔주었다.
   “고마워요, 프로듀서 씨.”
   하루카는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흰색 수건 사이에서 아직 촉촉한 갈색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보이고, 녹차의 온기 때문인지 볼에 자근 홍조가 감돈다.
   색다르면서도 매력적인 하루카를 바라보며 그 머리를 툭툭 가볍게 쓰다듬었다.
   한결 누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하루카는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가느다란 흰 손가락은 찻잔을 편안히 감싸고 있다.
   녹차를 마시는 하루카를 보며 그 맞은편에 앉았다.
   “이제 좀 괜찮아?”
   “상당히요. 다 프로듀서 씨 덕분이에요.”
   그리고 하루카는 미소 짓는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웃음은 누가 봐도 하루카의 진짜 웃음이다. 하루카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이게 하루카다. 옆에서 늘 봐오던 하루카가 드디어 나타나 앞에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안도하며 힘차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이제 집까지 바래다줄게.”
   “네?”
   “시간도 많이 늦었고, 내일 스케줄도 있으니 하루카도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지.”
   스토커 문제는 내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지금은 하루카가 마음 편히 쉬게 해주는 게 먼저다. 그러기 위해선 하루카가 한시라도 빨리 집에 바래다 줘야했다. 집에서 가장 편히 쉴 수 있을 테니.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반이 넘었다. 우리 집에서 하루카의 집까지는 꽤 거리가 된다. 그렇기에 하루카의 집 위치를 상기하곤 가장 빨리 도착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 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차로 가면 늦어도 1시 전엔 도착할거야. 그러니 빨리 가자.”
   하지만 하루카는 대답이 없을 뿐더러 어쩐지 당황한 모습이었다. 앗, 저, 하며 당황한 소리와 함께 하루카의 손에 든 찻잔이 왔다갔다 흔들렸지만, 그것보단 어떻게 가야 제일 빨리 도착할까라는 생각에만 온 신경이 가있었다.
   ‘이쪽 도로로 가야하나, 아니 다른 쪽으로 가면 더 빠를 거 같은데.’
   계속 생각에 빠진 상태로 하루카로부터 몸을 돌려 책상 위에 놓아둔 차키를 집으려 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하루카에 의해 제지당했다.
   “프로듀서 씨!”
   찻잔이 엎어지는 소리와 함께 바짓단이 잡아당겨졌다. 놀라 바라보니 하루카가 내 바짓단을 붙잡고 있었다. 찻잔을 놓을 정신도 없었는지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얼마 남지 않은 녹차가 흐른다.
   “하루카?”
   “저, 저……!”
   뭔가를 말하려는 하루카의 입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만 힘이 들어가는 지 바짓단을 붙잡는 세기가 강해졌다.
   하루카는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요. 프로듀서 씨, 저 오늘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하루카의 녹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뭐? 하지만….”
   “나가고 싶지 않아요! 아직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고, 집에 까지 쫓아오면…….”
   하루카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을 다하지 못했다. 하루카의 작은 어깨는 다시 떨고 시작했고, 바짓단을 잡던 손도 힘이 빠졌는지 스르륵 떨어져나갔다.
   안 좋은 상상을 떠올렸는지 하루카는 두려움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어 보였다.
   “하루카, 그래도 집에는 돌아가야지. 부모님도 분명 걱정하고 계실거야.”
   “그래도, 그래도요. 지금은 밖에 나가는 게 너무 무서워요. 프로듀서 씨, 부탁이에요. 오늘만, 오늘 밤만 여기 있게 해주세요.”
   울먹임이 섞인 하루카의 말에 차마 데려다 주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 상태라면 억지로 데려다 주는 게 오히려 하루카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진짜로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프로듀서 씨를 다치게 하면 어떡해요. 프로듀서 씨가 또 다치신다면 전…….”
   입술을 꾹 다문 하루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또’ 다친다는 말에 나를 좀 더 믿어보라며, 괜찮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예전에, 하루카를 구하기 위해 내가 다쳤던 그 일. 하루카를 괴롭혔던 그 일을 아직 하루카는 잊지 못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하루카에게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별 수 없겠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도록 해.”
   “……정말요?”
   되물어오는 하루카는 어느새 어깨의 떨림이 멈춰있었다. 똑바로 바라보는 하루카의 눈물 어린 시선이 어째 대답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응. 하루카가 이렇게 싫어하는 데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지. 대신 부모님껜 밖에서 자고 간다고 꼭 연락해야 해.”
   “네, 프로듀서 씨 댁에서 자고 간다고 말씀드릴게요.”
   “잠깐, 역시 그건 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기세 좋게 전화를 걸려 하는 하루카를 급히 제지했다. 하루카의 부모님도 프로듀서가 남자란 걸 알고 있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하루카가 말했다간 바로 신고당할 거다. 분명.
   “음, 그럼 적당히 친구네서 자고 간다고 할게요.”
   하루카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너머서 연결 음이 울리자마자 바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응. 늦게 연락해서 죄송해요. 실은 오늘 스케줄이 갑자기 늦게 끝나는 바람에 막차를 놓쳐 버려서 오늘은 밖에서 자고 갈게요. 응? 아냐아냐. 같은 사무소 친구 집에서 자면 되요. 마침 내일은 주말이니까 학교 안가도 되고. 폐? 걱정하지 마세요. 친구한테 절대 폐 안 끼치니까. 응, 걱정하지 마시고 안녕히 주무세요.”
   하루카 부모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기에 통화 전체 내용은 모르겠지만, 하루카의 목소리만 들으면 잘 끝마친 거 같다. 목소리도 깔끔해서 방금 전까지 울먹이던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역시 사람은 전화할 땐 목소리가 달라지구나.
   “잘 이야기했어?”
   “네, 친구한테 폐 끼치지 말고 잘 놀다 오래요. 후후.”
   그 친구가 나란 게 재밌는지 하루카는 쿡쿡 웃는다. 사실대로라면 내가 하루카 부모님에게 폐를 끼치는 거라, 왠지 하루카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부모님한테 연락도 했으니 이제 남은 건 쉬는 것뿐이다. 아직 하루카는 젖은 옷을 입은 채였다. 아무리 그래도 저 상태론 잘 수 없겠지. 감기 걸릴 수도 있고.
   “하루카, 그럼 목욕할래?”
   “네? 모, 목욕이요?”
   “당연하지. 물에 젖은 상태론 잘 수 없잖아.”
   “아, 그, 그렇네요. 응.”
   왠지 하루카의 얼굴이 붉어져있다. 열이 있나?
   “목욕탕이 그리 크진 않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아, 옷도 벗어야겠구나.”
   “오, 옷을 벗어요?”
   “비에 옷 다 젖었잖아. 빨래 돌리기엔 시간 늦었으니 탈수라도 해서 말려 놓을게.”
   집이 원룸이라고 해도 세탁기도 한 구석에 놓여있다. 항상 빨래를 몰아서 하기에 별로 쓰지 않았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탈수라면 금방 될 거다.
   “입을 옷은 내 꺼 중에 찾아볼게. 아마 적당한 게 있을 거야.”
   수납장의 상태를 상상하며 말했다. 역시 좀 크겠지만 그래도 편하게 입을 만한 트레이닝복은 있을 것이다. 아마.
   “목욕하고 있을래? 옷은 벗어서 욕실 앞에다 두고. 입을 옷은 찾으면 욕실 앞에 놔둘게.”
   나를 보며 어쩐지 멍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앉아있는 하루카에게 다시 말했다. 그제야 상황이 확실히 이해가 되었는지 하루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그럼 실례할게요.”
   “응. 괜찮으니까 편히 씻고 와. 수건도 안에 있어.”
   하루카는 상기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욕실의 손잡이를 잡았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 하루카는 내 쪽을 힐끔 바라봤다.
   “프로듀서 씨, 절대 엿보시면 안돼요.”
   “쿨럭, 절대 안 해!”
   “약속이에요. 엿보시면 사무소 안에 소문 다 내버릴 거예요.”
   은근슬쩍 무서운 말을 남기며 하루카는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엿보기라니. 그런 걸 할 리가 없잖아. 하루카는 내가 프로듀싱하는 아이돌인데. 직접 아이돌을 더럽히는 행위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스륵, 스륵.
   그때 욕실 안에서 주섬주섬 옷 벗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계속 남에도 불구하고, 유독 귀에 똑똑히 들렸다. 잠시 후 욕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하루카가 입고 있던 옷이 내보내졌다. 문이 닫히고 잠시 후 욕실 안에서 쏴아아 하며 샤워기 소리가 들렸다.
   그 상쾌한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뭘 멍하니 있냐. 빨리 옷 찾아야지.’
   잡념을 떨치며 하루카의 옷을 집었다. 축축한 옷의 느낌에 멍한 정신이 깨어난다.
   일단 옷을 세탁기에 넣고, 탈수를 시작했다. 제대로 된 빨래가 아니라 깨끗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안하는 것보단 낫겠지.
   세탁기가 잘 돌아가는 걸 보곤 옷 수납장에 가 하루카가 입을 만한 옷을 찾아본다. 분명 몇 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수납장을 자신 있게 열자,
   “맞다, 빨래 안했지…….”
   크기에 걸맞지 않게 텅 빈 수납장에 좌절했다. 트레이닝복이 있긴 했지만 바지 밖에 없다. 혹시 하고 다른 칸을 열어봐도 상의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멀쩡한 상의는 와이셔츠뿐이었다. 항상 양복을 입고 일하기에 티셔츠는 애초에 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입고 있는 상의를 줄 수도 없다. 이 옷도 물에 젖어 엉망이었으니.
   ‘에휴, 별 수 없나.’
   결국 새하얀 와이셔츠 두 개와 트레이닝복 하의를 꺼냈다. 와이셔츠 하나는 내가 입었고, 나머지는 트레이닝복과 같이 곱게 접었다. 하루카에게 잘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선택이 없다. 이 시간에 어디서 옷을 구해올 수도 없었고.
   고른 옷을 욕실 문 앞에 놓고, 하루카를 불렀다.
   “하루카, 밖에 옷 놔둘게.”
   샤워 소리에 묻혔는지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아까 옷을 앞에 놔둔다고 했으니 알아서 잘 챙겨갈 것이다.
   어떻게 옷을 찾아 건네주니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내딛자 물 때문에 축축해졌다. 젖은 옷에서 흐른 물기와 엎지른 녹차가 아직 남아있다. 부엌에 있는 걸레를 가져와 바닥의 물기를 슥슥 닦았다. 바닥을 뒹구르던 찻잔도 싱크대에 넣었고.
   이왕 걸레질 하는 김에 방 안의 나머지도 해버렸다. 혼자라면 모를까 둘이서 있기엔 그리 큰 집은 아니니까. 아무렇게 놓여 있는 물건들도 최대한 깔끔히 정리했다.
   대강 청소를 끝내자 탈수도 끝났다. 물기가 빠진 옷을 빨래건조대에 걸었다. 이걸로 내가 할 일은 끝났지만 하루카는 아직도 샤워 중이었다. 남자였으면 금방 나왔을 텐데, 역시 여자아이라서 오래 걸리는 구나.
   하루카를 기다리는 동안 이제 할 일이 없어 침대에 걸터앉아 베란다 쪽을 바라봤다. 밤이라 비가 얼마나 내리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밖엔 비가 쏟아지고 있다.
   그 비를 멍하니 바라봤다.
   “오늘 밤은 하루카와 단 둘인가……단 둘?”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의 파급력에 볼이 확 달아오른다. 여차저차 설명을 다 떼고 보면 결국 오늘은 하루카랑 밤을 보내게 된 거다. 귀엽고 아름다워 인기 만점인 아이돌 하루카랑.
   거기다 벽 너머에서 하루카가 몸을 씻는 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밤에 몸을 씻는 여성과, 침대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는 남성. 뭉게뭉게 발칙한 상상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다.
   “우왁, 무슨 생각하는 거야! 절대 안돼, 하루카는 아직 미성년자에다가 프로듀싱하는 아이돌이라고!”
   고개를 팍팍 흔들며 번뇌를 떨쳐낸다. 이러면 안 돼. 너는 어엿한 성인이잖아. 어린애는 보호해야지. 하루카는 아이돌이라고. 아이돌. 그래, 이럴 땐 불경이다. 불경.
   “색즉시공 공즉시색…….”
   “프로듀서 씨?”
   “우왁!”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 잡으며 앞을 봤다.
   “쿡, 뭐하고 있으세요?”
   하루카는 내 기묘한 행동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 그게 잠깐 명상을…….”
   애써 변명하며 하루카를 보자, 새하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 새하얀 다리?
   “하, 하루카? 바지는?”
   “아, 그게. 입긴 입었는데 제겐 너무 커서 입어도 계속 흘러내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셔츠만. 셔츠가 길어서 다행이에요. 어울리나요?”
   하루카는 내 앞에서 휙 하고 한 바퀴 돌아본다. 움직일 때 셔츠가 살짝 들려져 새하얀 다리가 더 강조된다. 셔츠가 커서 가려야 할 데는 다 가려졌지만 이건 이거대로 위험하다. 따지고 보면 미니스커트랑 마찬가지지만, 이건 범주가 달라!
   셔츠 한 장이라는 충격에 더듬더듬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엄청 잘 어울려.”
   “헤헤, 다행이네요.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 씨도 같은 셔츠네요. 갈아입으신 거예요?”
   “응, 입고 있던 옷이 젖어서. 빨래는 한 번에 하는 타입이라 마땅한 옷이 없었어. 미안.”
   하루카에게 두 손을 모아 사죄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에게 이런 옷차림을 하게 하다니, 역시 프로듀서로서 면목이 없다.
   “괜찮아요. 이런 옷 한 번 입어보고도 싶었고. 그리고 프로듀서 씨와 같은 옷인 걸요. 아, 설마 이런 취향이신 건 아니죠?”
   “아냐! 이건 정말 사고야, 사고!”
   결코 이런 쪽이 취향인 건 아니다. 물론 하루카의 모습은 예쁘긴 했지만, 그건 하루카니까다.
   “이건 남들에게 비밀로 할게요. 전 프로듀서 씨가 어떤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흑, 하며 하루카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는 척했다. 모든 걸 털어놓아도 괜찮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자포자기 하며 손발을 들자 하루카는 그제야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로듀서 씨, 농담이에요. 농담.”
   꺄르르 웃는 하루카에게선 스토커를 두려워하던 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 놀림거리가 되도 좋으니 하루카만 기분 좋으면 됐지 뭐.
   “맞다. 그러고 보니.”
   “응?”
   “실례 하겠습니다.”
   하루카는 꾸벅 인사하더니 내 방 한가운데로 경쾌하게 발을 옮겼다. 그리곤 집의 구석구석을 신기한 물건을 보듯 구경했다.
   “너무 빤히 바라보지는 마. 부끄러우니까.”
   “저, 남자 분의 집엔 온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
   하루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이것저것 바라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내 집에 여자가 온 건 처음이네. 어머니도 이 집엔 온 적 없으시니까.”
   부모님을 본 적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일이 워낙 바쁘다보니 휴일에도 찾아가 뵐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나중에 전화라도 해야겠다.
   “진짜요? 제가 처음이에요?”
   “응, 처음이야.”
   “에헤헤, 기쁘네요.”
   하루카는 활짝 웃었다. 옷차림도(셔츠 하나지만) 깔끔했기에 하루카의 웃음이 더욱 돋보였다. 보는 사람도 절로 웃음 지을 만큼.
   그렇게 방 이곳저곳을 보던 하루카는 갑자기 우두커니 서서 코를 움직였다.
   “킁킁.”
   “……하루카?”
   노골적으로 방의 냄새를 맡던 하루카는 놀라운 발견을 한 것처럼 기뻐했다.
   “상쾌한, 은 아니고 그래도 깔끔한 향이네요. 역시 프로듀서 씨는 아저씨가 아니었군요.”
   “설마 아저씨 냄새를 맡아보려 한 거야?”
   하루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라는 단어에 예전 일을 떠올렸다. 아미, 마미가 내 방에서 아저씨 냄새가 날까 안 날까 꺅꺅 거리던 걸.
   “하루카도 너무하네. 난 아직 팔팔한 청춘이라고…….”
   “힘내세요, 프로듀서 씨. 저한테 프로듀서 씨는 멋지고 듬직한 오빠라고요.”
   “그거 고맙네. 정말로.”
   이미 앞에서 입은 타격이 컸기에 회복되는 에너지는 무척 적었다. 아무래도 지금 하루카는 엄청 기분이 좋아 보였다.
   “와, 이건 뭐에요?”
   어느새 하루카는 책상 앞에 있었다. 하루카는 책상 한 편에 치워져 있던 노트를 가리켰다.
   노트의 제목엔 ‘아마미 하루카’라고 쓰여 있다.
   “아, 그거? 한번 봐봐.”
   내 말에 하루카는 조심스레 노트를 펼쳤다.
   노트는 하루카에 대한 정보로 가득했다. 하루카의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방송이나 노래, 춤 등. 내용 정리는 그렇게 깔끔하진 않지만, 그래도 노력과 정성이 담겨있다고 자부한다.
   “이거 전부 제 내용이에요?”
   하루카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응. 하루카를 프로듀싱 하면서 틈틈이 적은 거야. 혹시 나중에 도움이 될까 해서.”
   “프로듀서 씨는 정말 노력가시네요. 대단해요!”
   하루카는 전보다 더 기분이 좋아졌는지 꺅꺅하며 감탄했다. 괜히 쑥스러워져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한 거지 뭐. 다른 것도 한 번 봐봐.”
   “다른 거요?”
   “응, 아마 여기 있을 텐데.”
   문서를 이리 저리 넘기다가 노트 뭉치를 찾아냈다. 하루카의 이름이 써진 노트를 합치면 총 8권. 즉 리츠코가 프로듀싱하는 류구코마치 멤버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돌의 정보를 정리한 노트이다.
   노트들을 하루카 앞의 책상에 자랑스럽게 나열해 보여줬다. 아마미 하루카, 호시이 미키, 키사라기 치하야 등. 하루카의 노트는 다른 노트들과 함께 있었다.
   “다른 사람들 것도 있었네요.”
   “그동안 계속 정리해온 거야. 프로듀싱하는 아이돌들의 정보가 필요할 거 같아서.”
   “헤에, 그런가요.”
   나름 자신작이라고 보여줬지만 어째 하루카는 흥이 식었는지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갑작스런 분위기 변화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하루카가 곧바로 다른 것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이게 미키가 준 향수에요?”
   하루카가 가리킨 건 미키가 전에 준 향수였다.
   “응. 남자가 쓰기엔 좀 달달한 향이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더라고.”
   하루카는 향수에 코를 가져가 살짝 향을 맡았다. 향수를 뿌리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떤 향인지 안 것 같다.
   “어때?”
   “으, 정말 달달한 향이네요. 너무 달달해서 쓰기 그럴 정도로.”
   하루카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가? 난 계속 써서 익숙해졌나보네.”
   그래도 선물이니 하루카의 말에 맞장구칠 수 없어 멋쩍게 머리만 긁적였다.
   하루카는 향수의 라벨을 확인하는 건지 향수를 이리저리 돌려 보고, 한번 옆으로 흔들어 본 다음에야 그대로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프로듀서 씨에겐 더 상쾌한 향이 어울려요.”
   “음, 난 향수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나중에 괜찮은 거 있으면 추천해줘.”
   한 번 한 번씩 향수를 뿌려보니 이젠 왠지 안 뿌리고 다니면 어색했다. 사람들과 만날 때 첫인상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네, 꼭 맡겨만 주세요. 프로듀서 씨에게 딱 어울리는 향수로 골라드릴게요.”
   하루카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눈동자엔 어떤 의지마저 깃들어 있어 보일 정도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프로듀서 씨, 뭐 보고 계셨어요?”
   향수에서 시선을 돌려 방을 살펴보던 하루카는 정지 화면으로 된 TV를 보고 있었다.
   “아이돌 신곡 체크. 신곡 준비하는 아이돌의 연습을 찍어놓은 거야. 어디가 부족한지, 뭘 보완해야 되는 지 확인해야하려고. 마침 다음 차례가 하루카일 걸.”
   “앗, 제 것도 있어요?”
   “당연하지. 이번에 이미지 체인지까지 하니 제일 신경 쓰고 있어. 봐볼래?”
   하루카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리모콘으로 영상을 빨리 감았다. 그러자 금방 검은 톤의 옷을 입은 하루카가 화면에 나타났다.
   하루카의 신곡 ‘I Want’
   신곡 의상은 오직 검정과 빨강으로 이루어져 있어 의상만으로도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곡 컨셉은 이른바 ‘여왕님’이다. 다만 하루카가 아직 고등학생이기에 여왕이라기 보단, 공주에 비슷하다.
   가사만 봐도 ‘명령하는 거야, 꿇어 앉아, 채찍질’ 등등. 남성의 어떤 본능을 정면으로 노렸다. 하루카의 예전 곡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다. 즉 이 신곡은 하루카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아이돌로서의 이미지를 한층 더 발전시킬 기회였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TV 속의 하루카가 춤추기 시작한다. 동작 하나하나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다. 거기에 하루카가 짓는 표정엔 전에 없던 강렬함마저 담겨있다.
   하루카도 TV 속의 자신이 뿜어내는 열기에 취한 듯 TV에 푹 빠져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제가 아닌 것 같아서 또 신선하네요.”
   “하긴, 곡의 분위기가 해왔던 곡들과 많이 다르니까 더 그럴 거야. 사실 하루카에게 곡이 어울릴지 걱정이었는데 막상 보니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랐어.”
   “헤에, 그래요?”
   “현장 사람들도 깜짝 놀라더라니까. 하루카에게 이런 일면이 있었냐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컨셉의 곡이라고 설명하니 처음엔 다 반신반의했지만, 막상 무대를 보면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대박날 거라면서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저도 할 때 엄청 즐거웠어요.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딱 좋던데 뭘. 연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말야. 혹시 하루카 원래는 이런 성격 아냐?”
   “후후, 글쎄요. 그럼 한번 봐주실래요?”
   “뭘?”
   대답대신 하루카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 터 앉는다. 그러자 하루카의 표정이 바뀐다.
   생기 가득한 눈동자에 점점 요염함이 깃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상대방을 내려다본다. 하루카는 셔츠 아래 길게 뻗어진 하얀 다리를 느릿하게 움직여 다리를 꼬면서 몸을 슬쩍 뒤로 뺐다. 미니스커트와 비슷한 길이였기에 보는 입장에선 상당히 위험했다.
   순식간에 내가 알던 귀여운 하루카는 사라지고 TV 속에서 춤추던 ‘I Want’의 하루카가 나타나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매력을 뿜어내는 하루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그러자 하루카는 손을 뻗어 내 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여 입도 벙긋 못하겠다.
   “프로듀서 씨, 무릎 꿇어볼래요?”
   상상도 못할 말이 하루카의 입에서 나왔지만 태클은커녕 거역하지도 못할 분위기가 하루카에게 감돌았다.
   그래도 일말의 이성은 남아있었기에 하루카의 말에 따를 순 없었다.
   그러자 하루카는 몸을 앞으로 숙여 내게 더 다가갔다. 하루카는 내 귓가로 입을 가져가 속삭였다.
   “후훗, 제가 좋은 거 해드릴 테니…….”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 지금 하루카의 등 뒤엔 작은 악마의 날개가 달려있을 것이다. 한 줄기 남은 이성이 서서히 무너진다.
   “꿇으세요.”
   명령은 남은 이성을 박살내 바로 하루카 앞에 무릎 꿇는다.
   그걸로 프로듀서로서의 내가 무너졌다.
   프로듀서라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프로듀서의 체면 따위 신경쓰지도 않는다. 지금 중요한 건 오직 하루카 님, 아니 하루각하의 명령에 따르는 것.
   “후후, 잘했어요. 상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줄게요.”
   키득키득 웃으시면서 하루각하는 내 비천한 머리를 고귀한 손길로 쓰다듬어주신다. 황송한 은총에 더욱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고개를 숙이자 하루각하의 성스러운 눈처럼 새하얀 발이 보인다. 아아, 어떻게 해야 저런 아름다움을 몸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가, 감사합니다……가 아니잖아!”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제야 하루각하, 아니 하루카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프로듀서 씨의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그만. 에헤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고등학생 여자아이에게 무릎 꿇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에, 프로듀서 씨, 엄청 기분 좋은 얼굴이셨다고요? 헤실헤실 웃는 모습, 처음 봤어요.”
   “윽…….”
   “역시 프로듀서 씨는 이런 쪽이 취향이셨군요. 입을 옷도 셔츠 하나 주시더니. 다시 봤어요.”
   하루카의 눈초리가 점점 무서워진다. 물론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그래도 현역 여고생에게 저런 눈빛으로 바라봐지는 건 가슴이 무척 아팠다.
   역시 하루카에겐 당해낼 수가 없다. 결국 백기를 들어 흔들었다.
   “항복하겠습니다. 이젠 좀 봐주세요…….”
   “에헴, 받아들이겠노라.”
   하루카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 모습 또한 무척 잘 어울려서, 다음에 꼭 드라마나 뮤지컬 배우 오디션을 따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루카라면 분명 배우로도 대성하리라.
   그렇게 하루카와 잡담을 하거나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주로 장난을 거는 건 하루카 쪽이고 당하는 건 항상 내 쪽이다. 한바탕 웃고 떠들다보니 하루카가 그냥 우리 집에 놀러온 것처럼 느껴졌다.
   웃고 떠드는 하루카를 보니 스토커에 관한 건 모두 떨쳐낸 듯해 당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하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하루카가 작게 하품했다. 귀여운 하품소리에 피식 웃었다.
   “슬슬 자자. 아무리 내일이 주말이라고 해도 일 있으니까 자야지.”
   하루카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루카가 내 침대서 잘래? 난 바닥에서 자면 되니까.”
   “그래도 프로듀서 씨 바닥에서 자면 불편하실 텐데.”
   “괜찮아. 나야 아무데서나 자도 돼. 바닥에 깔 이불도 있고.”
   바닥을 치우고 수납장에서 이불을 꺼내 까니 어떻게 내가 누울 자리가 만들어졌다. 하루카는 어쩔지 주저하다 결국 내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하루카의 체구가 작아선지 침대는 생각보다 많이 남았다. 하긴 나한테도 넉넉한 크기의 침대였으니.
   하루카는 내 눈치를 보는지 계속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저, 프로듀서 씨. 옆에서 같이 주무실래요?”
   우물쭈물 꺼낸 하루카의 말에 깜짝 놀랐다.
   “무, 무슨 소리하는 거야!”
   “그래도 자리도 많이 남고, 프로듀서 씨에게 죄송해서…….”
   “정말 괜찮다니까. 내 걱정 말고 푹 자. 그럼 불 끌게.”
   전등 스위치를 누르자 방에서 빛이 사라졌다. 밖엔 아직도 비가 내려 달빛도 들지 않았기에 방은 무척 어두웠다. 갑작스런 변화에 눈이 적응을 하지 못해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하루카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 걸 보곤 나도 자리에 누웠다.
   “잘 자, 하루카.”
   “네, 프로듀서 씨도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아냐. 다음에 또 무슨 일 있으면 그땐 정말 바로 말해줘야 돼. 정말 사소한 일이라도 괜찮으니까.”
   “후후,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프로듀서 씨에게 말해드릴게요.”
   “약속한 거다?”
   하루카와 같은 방에 누운 채 말을 주고받는다는 풍경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하루카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마음 편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쌓아올린 인연은 그만큼 길고 깊다. 하루카도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눈을 감고 생각하자 천천히 졸음이 밀려든다. 따지고 보면 오늘도 힘든 하루였으니. 내일 할 일도 있으니 푹 쉬어야 한다. 스토커 일도 정리해야하고.
   그렇게 졸음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막 잠에 빠져들 때,
   콰르릉!
   “꺅!”
   천둥소리와 비명. 퍼뜩 잠에서 깨어나 보니 하루카도 일어나있었다.
   “프, 프로듀서 씨…천둥이에요, 천둥…….”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로 하루카는 겁에 질렸는지 몸을 떨고 있었다.
   “하루카, 괜찮아?”
   “예에, 저, 처, 천둥에는 약해서……꺅!”
   말하는 도중 또 천둥이 치자 하루카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하루카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천둥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쾅쾅 울려대고 있다. 그때마다 하루카는 깜짝 깜짝 놀라 도저히 잠을 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프, 프로듀서 씨…….”
   하루카는 울먹울먹한 얼굴로 살려달라며 나를 본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자연현상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천둥소리를 안 들리게 할 수도 없다. 집에 귀마개도 없었고.
   “제, 제 옆에 있어주시면 안돼요? 잠들 때까지 만요.”
   부들부들 떨면서 구원을 갈구하는 하루카를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다른 방법도 없어서, 별 수 없이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럼 잠들 때까지만 여기 있을게. 이정도면 괜찮아?”
   그렇다고 냉큼 옆에 눕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범죄다, 범죄. 침대에 양반다리로 앉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하루카는 베게 대신 내 무릎을 베었다.
   “무릎정도는 괜찮죠, 프로듀서 씨?"
   “으, 응. 그걸로 하루카가 편하게 잘 수 있으면 괜찮아.”
   사실 하루카의 얼굴이 가까워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무릎베게가 정말로 효과가 있었는지 천둥이 쳐도 하루카는 몸을 움찔할 뿐 비명을 지르거나 일어나진 않았다. 하루카의 얼굴이 점점 편안해지는 것을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루카가 잠들면 내려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를 계속 바라봤다. 하지만 양반다리로 앉았어도 아래서 느껴지는 침대의 푹신함과 하루카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이 점점 몸이 누그러졌다.
   아까 거의 잠들 뻔한 상태에서 깨어난 탓인지 이번에 찾아온 수마는 정말 참기 힘들었다. 눈꺼풀이 무거워 스르륵 눈이 감겼다.
   ‘잠들면……안 되는데…….’
   하루카의 작은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결국, 그게 그 날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 * * * * * * * *


   감긴 눈 사이로 빛이 들어와 눈살을 찌푸렸다. 침대 위에서 누운 몸을 뒤척이다가 코를 움직이니 음식 냄새가 맡아졌다.
   “으음, 밥….”
   음식 냄새에 구, 하고 우는 배를 알람 삼아 눈을 떴다. 어두웠던 방 대신 아침햇살로 무척이나 빛나는 방이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머리가 움직였다.
   “윽, 그대로 자버렸구나…….”
   부스스한 머리를 흔들며 아직도 멍한 정신을 털어낸다. 하루카가 잠들면 바닥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결국 수면 욕구를 견디지 못하고 뻗어버린 모양이다.
   “아, 깨어나셨어요? 프로듀서 씨?”
   하루카는 경쾌해보였다. 옷도 셔츠가 아니라 어제 입었던 옷이다. 머리카락도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걸 보니 한참 전에 일어나 준비를 다한 것 같다.
   “미안, 어제 그대로 자버렸네.”
   “헤헤, 아니에요. 전 프로듀서 씨 덕분에 얼마나 푹 잤는데요. 프로듀서 씨의 무릎 엄청 편했어요.”
   하루카의 칭찬에 멋쩍게 웃다가, 하루카의 한손에 든 주걱을 발견했다.
   “아, 밥 한 거야?”
   “네. 냉장고 열어서 있는 거 가지고 간단하게 차려봤어요. 아, 혹시 냉장고 멋대로 열어버린 거 실수였나요?”
   “아냐. 오히려 밥 해줬다니 나야 감사하지.”
   크게 기지개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역시 편하게 잔 건 아니라 몸 이곳저곳이 뻑뻑했다. 특히 어깨가 뭉쳤는지 뻐근했다.
   찌뿌듯한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는 날 보며 하루카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간단하게 씻고 나오세요. 밥 차려 놓을 테니까요.”
   “응, 고마워.”
   하루카의 말에 순순히 따르며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안은 하루카가 쓰면서 정리했는지 물건들이 전부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째 욕실에선 샴푸 냄샌지 비누 냄샌지 모를 달달한 냄새가 났다.
   ‘하루카가 써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익숙한 향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분명 다른 목욕 용품의 냄새일거다. 여기 안에 있는 것들 중엔 내가 안 써본 것도 많으니.
   간단한 세안을 마치고 나오니 잘 쓰지 않는 밥상이 제대로 된 음식과 함께 차려져있다. 집에서의 음식은 항상 인스턴트나 컵라면 등으로 때웠기에 밥상에 밥공기가 있는 걸 보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새하얀 밥과 맛있어 보이는 반찬. 꿈에서나 보던 광경에 왠지 울컥 눈물이 났다.
   “자자, 어서 앉으세요.”
   생글생글 웃는 하루카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 웃음은 너무 고맙고 눈부셔서 하루카의 등 뒤에 새하얀 날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감상은 이정도로 하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진심어린 감사를 담은 손을 모아 힘차게 인사했다. 하루카는 빨리 먹어보라며 쿡쿡 웃는다. 제일 먼저 밥을 먹어봤다.
   사르륵 녹는 밥의 감촉. 그러면서도 밥 한 올 한 올이 살아 있는 게 또 절묘하다. 아, 살아있길 잘했어.
   “우와. 이 밥 진짜 맛있어!”
   “프로듀서 씨도 참, 오버에요.”
   칭찬이 너무 과하다며 하루카는 말했지만 썩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맛있는 건 사실이기도 했고.
   “아냐. 밥도 질지도 않고 되지도 않아서 딱 좋아.”
   이번엔 반찬도 한 입 먹어봤다. 다시 감탄. 간단한 계란후라이인데도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줬다는 사실 때문인지 무척 맛있게 느껴졌다.
   “반찬도 맛있고. 하루카는 요리 잘하는 구나.”
   “후후, 그럼 다음번에도 해드릴게요. 시간이 된다면 도시락도 괜찮겠네요.”
   하루카가 만든 도시락을 상상하니 산해진미가 가득한 도시락만 떠오른다. 하루카가 만든 음식이라면 뭐라도 맛있을 거 같아 부디 부탁한다며 고개를 넙죽 숙였다.
   그렇게 하루카를 칭찬하며 음식을 먹어갔다. 밥의 감촉을 즐기기 위해 꼼꼼히 씹을 때, 문득 스토커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으론 이상한 문자 안와?”
   어제 하루카가 핸드폰으로 스토커한테 문자가 와서 힘들었다고 말했었기에 물어봤다. 스토커의 입장에선 어제 하루카가 갑자기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니 그 뒤에 연락이 왔을지도 모른다.
   “음, 없었어요.”
   “그럼 스토커가 보낸 문자 혹시 보관하고 있어? 그게 있으면 바로 신고해서 잡을 수 있을 텐데.”
   “그 문자들은 받자마자 바로 지워버려서……. 기분 나빠서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확실히 스토커가 보낸 거라면 핸드폰에 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행까지 하는 놈이 보낸 건데 내용도 분명 쓰레기 같은 거였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하루카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웠다면 통신사 쪽에 연락이라도 해야 하나. 음…….”
   하루카의 핸드폰에서 지웠다 하더라도 통신사엔 내역이 남아 있을 것이다. 통신사도 공인인 하루카의 일이니 부탁하면 좀 번거로울지 몰라도 들어주겠지.
   “저, 프로듀서 씨. 스토커 일은 당분간 우리 둘만 알고 있으면 안 될까요? 괜히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가 기자 쪽에 이 소식이 들어간다면 곤란할 것 같아서.”
   “기자라, 확실히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요즘 연예기자들은 아이돌 일이라면 뭐든 캐내려고 하니까. 끙…….”
   하루카는 아이돌이다. 그것도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런 아이돌이 스토커 당했다는 사실은 자칫하면 하루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하루카에겐 아무 죄가 없지만, 그런 걸 생각하면서까지 기자를 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 하루카의 말대로 일단 이 일은 우리 둘만 알고 있자. 섣불리 움직였다간 더 큰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저도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스토커가 알아서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대신 이상한 문자가 오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내게 바로 말해. 한동안은 계속 하루카 옆에 있을 테니까.”
   “네, 알겠어요.”
   하루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앞으로 할 일을 이야기하자 어느새 식사가 끝이 났다. 빈 그릇을 정리하려는 하루카를 억지로 쉬게 하고 나머지는 내가 정리했다. 이것마저 시킬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았다.
   그리곤 출근할 준비를 했다. 주말인 만큼 출근하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하루카를 집에 바래다주기도 해야 하니 일찍 나가봐야 했다. 스토커 관련 일도 사장님이랑 상담해봐야겠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하루카를 잠깐 집 밖으로 나가게 했다. 하루카를 오래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도 없기에 최대한 빨리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평상시대로의 셔츠와 바지. 다른 건 없다.
   가기 전에 미키가 준 향수를 뿌리기 위해 향수를 들자 느낌이 가벼웠다.
   “어라? 다 썼나?”
   혹시 하고 흔들어봤지만 거의 없는지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향수 스프레이를 눌러봐도 나오질 않는다.
   ‘이상하네. 분명 남았었는데.’
   그동안 계속 써오긴 했지만 이, 삼 주는 더 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프로듀서 씨, 다하셨어요?”
   “아, 지금 나갈게!”
   날 부르는 하루카의 목소리에 향수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선 하루카가 현관문을 빼꼼 열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향수야 뭐 양 계산을 잘못했다고 생각 하며 머릿속에서 잊었다. 어차피 꽤 오래 썼었으니.
   구두를 신고 밖에 나오자 하루카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럼 가볼까?”
   “네, 프로듀서 씨.”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한 걸음 앞을 향해 내딛는다. 손을 잡거나 몸을 붙이진 않았지만 하루카와 나란히 걸을 땐 항상 어깨를 기대고 걷는 기분이다.
   스토커 따위가 뭐냐. 하루카를 위해서라면, 스토커 할애비도 상대해주마.
   마음 깊이 굳게 다짐하며, 하루카와 함께 걸어갔다.




  처음 쓴 하루카 단편은 이걸로 끝. 다음엔 아미마미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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