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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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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4, 2015 23:36에 작성됨.

자면서 간단히 생각해 보았지만, 그 아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선 맞딱드리게 될 과제가 두 가지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이 두 과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찬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 오랜만에 느끼는 두근거림이다.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은 얼마만일까, 생각하면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우선 첫 번째 과제는 선배에게 부탁하는 일이었다. 그 아이를 직접 만나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가방을 ‘내’가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선배는 내가 직접 오전 중에 가방을 가져다 주러 가겠다는 말을 승낙해 줄 것인가. 선배라면 성격상 자신이 직접 가져다 주겠다는 말을 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조금 불안해 했지만 막상 전화를 했을 때는 너무 간단히 일이 끝났다.

  “뭐? 어제 안 갖다 줬어?”

  처음에는 놀란 듯이 반응한 선배는, 나답지 않게 왜 그러느냐는 핀잔을 한 번 주고는 오전 중에 직접 가방을 갖다 주고 출근하겠다는 내 말을 승낙했다. 계속 일을 빼먹으려는 것이냐고 의심할까 걱정했지만, 생각 외로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선배는 오히려 제대로 가져다 주라고 당부를 했다. 작은 프로덕션이지만, 앞으로 주 고객이 될 수도 있으니깐 확실히 처리하고 와, 라고.

  전화를 마친 나는 바로 두 번째 일에 착수했다. 그 아이를 만나려면, 내가 그 아이에게 ‘직접’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사이에 방해는 없어야 한다. 프로듀서나 프로덕션에 가방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아이에게 내가 전달해도 되겠냐는 부탁. 과연 쉽게 성공할까, 라는 걱정과 함께 나는 어제 걸었던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예, 765프로 프로듀서 P입니다.”

  아침 일찍 전화를 했지만 사무 어조로 전화를 받는 것을 보니, 아침부터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중학생이니 아침부터 일을 하지는 않으리라 믿었는데, 이건 조금 불안하다. 설마 그 아이와 함께 일을 하는 중인 것은 아니겠지? 그러면 나는 그 아이와 단 둘이 만나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 아이 중학생이니, 지금은 학교에 가야 한단 말이야. 당신과 상관없이 말이야.

  나는 약간 초조해하며, 어제 가져다 주지 못한 가방에 대해 우선 사과했다. 상대 프로듀서는 생각 외로 착한 양반인지, 내 사과를 순순히 받아들여준다. 우선 찔러보기 위해, 직접 가방을 가져다주고자 하는데 오전에 방문해도 괜찮은 지를 물어보았다. 상대는 조금 당황하면서, 오후에 부탁해도 되겠냐는 말을 한다. 여기까지는 생각대로다.

  “네? 직접 말이신가요?”

  네, 혹시나 싶어서 가방 안을 확인해봤습니다만, 중학교 교과서도 나오고 해서 말이에요. 그 아이 중학생인 것 같던데, 수업 들어가서 교과서가 없으면 조금 곤란할 거고, 저도 사과도 하고 싶으니 직접 얼른 가져다 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말입니다.

  내 말을 들은 프로듀서는 조금 머뭇거렸다. 당연한 일이다. 어른으로서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는 입장이니. 이 사람은 상냥한 사람이구나, 감탄하고 있자니 상대가 승낙한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학교에 갔을 테니, 학교가 분명…”

  프로듀서가 말한 중학교는 내가 잘 알던 중학교라 조금 놀랐지만, 나는 반드시 잘 갖다 주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걱정하던 일 두 가지가 잘 풀렸다. ‘내’가 ‘직접’ 그 아이를 만날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생겼다. 오늘은 세상이 나에게 조금 상냥한 모양이다.

  들떠서 가방을 챙겨 밖을 나서니, 다시 그 프로듀서에게서 전화가 온다. 혹시나 싶어서라고 말한 그는, 나에게 그 아이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준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휴대폰 번호를 빠르게 내 휴대폰에 저장한다. 오늘은 왠지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세상은 오늘 나에게 상당히 친절한 것 같단 말이지.

 

 

전화를 했을 때, 그 아이의 목소리는 너무나 밝았다. 직접 가방을 가져다 주겠다는 말에 당황하던 그 아이는, 곧 솔직하게 감사하다며 기뻐해 주었다. 아직 나를 친절한 사람이라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며 얼른 전화를 끊은 바람에 긴 대화를 할 순 없었지만, 이 짧은 대화만으로도 그 아이의 밝음이 보이는 듯 했다. 이 아이는 기본적으로 밝고, 친절하고, 상냥한 참 좋은 아이다. 옛날의 나와는 반대될 정도로. 이런 아이의 절규도 처절할까? 이 궁금증이 참을 수가 없다.

  그 아이의 중학교 근처까지 도착해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간다. 요즘 세상은 참 좋은 것 같다. 온천에서나 팔 법한 병 우유도 편의점에서 팔고 말이지. 나는 병 우유를 5병 산다. 그 아이를 위한 선물이다. 아마 가방을 열었을 때, 우유가 있는 걸 보면 그 아이는 참 좋아하겠지. 그 미소가 기대된다.

  편의점을 나선 나는 슬쩍 뒷골목에 들어가 우유 병을 벽에 두드리기 시작한다. 살짝만 깨트려야 한다. 너무 산산조각을 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흠집이 없어도 안 된다. 툭, 하면 깨질 정도여야 한다. 첫 번째 병을 벽에 살살 두드려보지만, 아무 영향이 없는 것 같다. 정말 세상이 좋아, 병도 엄청 튼튼하고. 조금 더 힘을 줘볼까, 했다가 실수로 병을 깨트려 버린다. 다행히 손만 더러워져서, 나는 챙겨온 수건으로 손을 닦고 두 번째 병에 작업을 들어갔다. 살짝만, 살짝만! 적당히 친 것 같은데,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흠. 나는 내 무릎 높이에서 병을 떨어트려 본다. 병은 멋지게 깨진다. 이 정도면 될까? 나는 나머지 세 병을 적당히 벽에 두드려서 곧 깨질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본다. 역시 눈으로는 알 수 없네. 하지만 더 이상 실험을 하기도 힘들고. 나는 남은 우유 병을 그 아이의 가방에 넣고는, 중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타이밍은 적절하게, 내가 학교 현관에 들어선 순간 쉬는 종이 울린다.

  중학교에 들어온 외부인은 눈에 지나치게 잘 띈다. 토요일인 덕분에 가방을 메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속에, 훨씬 키가 큰 사복차림의 남자가 복도까지 올라오는 모습은 아무래도 이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그 아이도 나를 바로 찾아내었다. 수상해 보이는 남자가 들어오는 걸 발견하고 조금 갸우뚱 하다가,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한 가방을 가지고 오는 걸 확인하고는 확 밝아지는 얼굴. 멋진 미소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제법 귀여운 편인 걸 알 수 있다. 과연 아이돌을 할 만한 외모야. 녹음 당시에는 그렇게 집중해서 살펴보지 않았기에 이제와서 새삼 그 외모가 신경쓰인다. 뭐, 나로서는 그보다 목소리가 엄청 크고 밝은 게 더 인상적이긴 하지만.

  “아아, 미안, 네가 타카츠키양이니?”

  “네, 타카츠키 야요이입니다. 아와와, 저기, 죄송합니다, 오늘은 저 때문에 학교까지 와 주셔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예의바르게 몸을 90도 숙여서 인사를 하는 소녀.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이 아이는 정말 착한 아이야. 완전히 이 쪽의 실수로 가방을 오늘에서나 받는 것인데도, 당황하면서 나에게 사과한다.

  “아니야 아니야 이 쪽이 미안하지, 내가 어제 갖다 줬어야 했는데 말이지”

  사과를 받아주니, 금새 솔직하게 표정이 밝게 바뀐다. 어제 들었던 목소리, 읏우 친절하신 사람 덕분에! 가 귀에 다시 들리는 듯 하다. 표정 만으로 보는 이 쪽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순간적으로 그 표정에 감탄하고 있자니, 아이는 다시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이번에는 밝게 갠 표정으로. 이 아이는 참 밝은 아이다.

  “사과의 의미로 우유도 샀단다. 가방 안에 같이 넣어놓았으니 집에 가서 먹으렴”

  나도 같이 밝은 표정으로 응대하며 대답한다. 내 표정과 내 말에 야요이는 우와아,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라며 세 번째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그리고 표정은 한 번 더 밝아진다. 중학생인데도 우유로 좋아할 정도로 착한 아이일 줄이야. 별 것 아닌 호의에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밝은 아이일 줄이야. 더 이상 말을 하면 긴장감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말 없이 웃으며 그 아이에게 가방을 건네준다. 그리고 그 아이는 가방을 받으려고 공손히 두 손을 뻗었다.

  실수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혹시 내가 손을 빼는 속도가 조금만 늦으면, 이 아이는 무사히 가방을 받을지도 몰라. 나는 긴장하면서, 하지만 적절하게 조금만 빨리 손을 놓는다. 차마 제대로 가방을 받지 못한 소녀의 손에서 가방이 땅으로 떨어진다. 성공이다, 적절했어. 둔탁한 소리.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뭔가가 깨지는 소리. 액체가 천에 스며드는 기묘한 느낌.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이 소리는 너무나 똑똑히 들렸고, 그 느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장 기대하는 것은.

  “아, 아와앗!”

  소녀의 표정. 흠칫하며 놀라며 당황하는 소녀의 표정. 아이는 놀라서 바로 가방을 열어본다. 가방은 내가 예상한 대로, 우유 병이 깨져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었다. 우유로 질척질척, 깨진 유리 조각으로 자글자글. 깨진 유리에 당황할 법 한데, 소녀는 황급히 손을 집어넣는다. 아, 안 돼. 다치는 걸 원하는 건 아닌데.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소녀는 얼른 개구리 모양 지갑을 꺼낸다. 개구리 모양 지갑 또한 우유와 유리 조각 때문에 엉망진창이다. 소녀의 표정은 당황한 표정에서, 곧 울상으로 바뀐다. 얼른 우유와 유리 조각을 털어내는 소녀지만, 천으로 만들어진 그 지갑은 이미 흠뻑 우유를 빨아들인 뒤다. 아아, 역시 예상대로다. 지인에게 받은 물건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순수한 아이였구나. 소녀가 짓고 있는 울상은, 방금까지 짓고 있던 미소에 비교하니 너무나 사랑스럽다. 소녀는 지갑을 열심히 털어내면서도 울상이 멈추지 않는다.

  “어, 어쩌지…”

  “이런, 괜찮니?”

  내가 당황하는 척하는 연기를 제대로 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최대한 당황하는 티를 내며 소녀에게 물었다. 소녀는 내 말에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런, 완전히 젖었네… 우유라서 이거 가만히 두면 냄새도 장난이 아닐텐데.”

  내 말에 소녀는 좀 더 당황한다. 아아, 이렇게 황홀한 기분은 정말 얼마만에 느껴보는 거지? 하지만 좀 더 노력하면, 좀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내 표정을 최대한 관리하며, 다음 말을 잇는다.

  “얼른 집에 가지고 가서 빠는 게 나을거야. 서두르자.”

  소녀는 아, 네! 라고 대답한다. 울상을 지으면서도 씩씩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참을 수가 없다. 나는 소녀와 함께 서둘러 학교를 나서 택시를 잡는다. 이 모든 과정이, 모르는 사람이 건내준 자신의 물건에 있는 우유병, 얼른 집으로 가자고 재촉하는 이상한 권유, 학교를 성급히 나오자마자 생각할 틈도 없이 적절하게 보이는 택시까지,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부드럽게 진행된다. 어색할 수 밖에 없어야 하는 이 우연들을 소녀는 아직 의심하지 않고 있다. 정말로 착하고 밝은 소녀야, 몇 번이고 감탄할 수 밖에 없어. 택시에 타는 순간, 소녀는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지만 나는 그 표정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소녀에게 집 주소를 묻는다. 원래 내 성격대로라면 이런 대담한 짓은 하지 못할 터였지만, 오늘은 마치 나의 날인 듯 나는 자연스럽게 소녀의 주소를 묻는데 성공한다. 순진한 소녀는 그 의심을 더 확장시키지 못하고 택시 기사에게 집 주소를 부른다. 택시 기사는 순조롭게 나와 소녀를 태우고 출발하고, 계속해서 소녀는 지갑을 만지작 거리며 초조해한다. 내가 소녀에게 수건을 건네주자, 소녀는 울상인 표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고치며 다시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열심히 수건으로 최대한 지갑을 닦는 소녀를 나는 옆에서 지켜본다.

  요즘 세상에, 지갑이 우유에 젖었다는 것만으로 당황하고 얼른 집으로 가져가서 씻자는 말에 쉽게 동의하는, 그런 순수한 아이가 있기나 할까. 이런 아이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 그 밝은 아이가 울상을 지은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엽다. 더 나아가 이 아이의 주소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몇 년 치의 운을 쓴 것인 마냥 큰 행운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와 더 엮일 수 있을까? 계속 울상을 짓고 있는 아이 옆에서, 나는 이렇게 알게 된 주소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열심히 고민했다. 울상 외에 다른 여러 가지 표정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니, 주소를 꼭 나중에 활용할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지금 나는 이 소녀와 같이 소녀의 집에 가고 있는 중인데?

  곧 택시가 멈추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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