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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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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2, 2015 22:48에 작성됨.

음향 관련 일을 하면서 스튜디오에 있다 보면, 희귀한 광경을 많이 본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돌이 녹음을 위해 방문하는 것도 그 하나로, 왠 남자들이 무작정 들어와서 숨어 있다거나 하는 일에 비하면 별 거 아니지만 아직 경력이 짧은 나에게는 충분히 희귀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선배에게 이야기하니, 그 정도는 일상다반사라고 빈축을 샀다. 아이돌 문화 같은 것을 잘 모르던 나로서는 그냥 그런가요, 하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지만 초등학생 쌍둥이 아이돌이 와서 녹음을 하는 모습까지 보면 과연, 이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와중에, 또 초등학생 아이돌이 녹음을 하러 왔다. 이번 달만 4번째 초등학생이다, 라고 생각했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참 큰일이네요”
  분명히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게임하기 바빴는데 말이지.
 “아니, 저 아이는 중학생이라고 하던데. 중1이라고.”
  …분명히 내가 중학생일 때도, 게임하기 바빴는데 말이지. 아니, 중학생 때는 분명히 서양 락이나 밴드에 심취해서 차마 말 못할 짓을 많이 하기 바빴지.
  개인적인 감상은 접어두고, 녹음을 시작했다. 저번에 왔던 쌍둥이 초등학생은 저 쪽 프로듀서의 말도, 선배나 나의 말도 잘 안 따랐기 때문에 고생했었으므로 한껏 긴장해서 상대 아이돌의 눈치를 살피며 장비를 준비했지만, 이번엔 다른 듯 하였다. 밝고 힘차게 대답하며 프로듀서의 말을 듣던 아이는 힘껏 하이터치까지 하더니, 녹음실로 들어와 준비를 마쳤다. 이번 아이는 착한 아이인 듯 싶다. 오늘은 제 시간에 퇴근할 수 있겠지.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깍듯하게 90도로 꺾어서 인사를 마친 소녀는, 마이크를 잡고 이내 노래를 시작한다. 랄랄라, 아침이다, 랄랄라 일어나자!
 “이건…”
 “심하구만”
  음정이 제멋대로다. 분명 노래를 많이 불러보지 않아서, 자신의 목소리를 잘 못 듣기에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즉, 흔히 말하는 음치다. 중간에 녹음을 끊은 선배는, 녹음실로 들어가 소녀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기 시작한다. 소녀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테스트를 해보는 듯 앞부분을 다시 반복해서 부른다. 하지만 노래 실력은 바뀌지 않는다. 분명히 프로듀서라는 양반이 녹음을 잘 부탁한다고 거듭 말했지. 이유를 알겠군. 오늘도 제 시간에 퇴근은 무리일 듯싶다.

 

 “수고하셨습니다!”
  장장 4시간의 녹음이 겨우 끝났다. 소녀는 처음처럼 예의바르게 90도로 몸을 꺽어서 인사를 하고는, 프로듀서와 같이 스튜디오를 나선다. 4시간동안 녹음해서 겨우 노래 2곡 완성이라, 아마 저 아이는 앞으로 노래 연습을 많이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저 체력이다. 4시간 동안 녹음을 했는데도, 계속해서 힘차게 노래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대학생일 때는 밤새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은 있었지만, 초등 아니 중학생 여자아이의 체력과 대학생 남자의 체력이 비슷하다는 것 자체도 놀랄 일이고.
 “저기 A군.”
  선배가 나를 부르더니, 왠 가방 하나를 건네준다. 선배에게는 지나치게 어울리는 가방이 아닌데, 대체 뭐죠?
 “아까 녹음했던 아이돌 짐 같은데, 갖다주고 와라”
  어디 사는지 모르는데요.
 “뭐, 프로듀서한테 명함 받았지? 전화해서 그 사무실에 갔다만 줘도 되지 않을까? 갖다주고 오늘은 그 길로 퇴근해”
  그 말에 나는 바로 가방을 챙겨서 스튜디오를 나섰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는 후회했다. 프로듀서에게 전화해서, 사람의 사정을 듣고, 직접 가방을 가져다 주겠다고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집이랑 정반대에 위치한 곳일 줄은 전혀 몰랐단 말이다. 적당히 빨리 퇴근이나 하려던 것이 상당히 꼬여버렸다. 쓸데없이 불평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착실하게 상대방의 사무소로 향한다. 생각보다 조용한 동네에 있는 사무소라고 생각하면서, 편의점을 지나 상대방이 말한 간판까지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아, 확실히 2층 창문에 ‘765’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인다. 건물 계단이 어디있는지 헤매다가, 옆에 있는 문을 겨우 찾아 계단을 오른다. 사무실 문을 발견하고 노크를 하려는데,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다행이네, 야요이쨩”
 “읏우-! 다행이에요, 친절하신 사람 덕분에!”
 “그래도 직접 가져오게 한다니, 실례가 아닐까”
  졸지에 친절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쪽은 사욕 때문에 움직였을 뿐인데.
 “뭐, 세상에는 친절한 사람도 있다는 거겠지”
  다시 말하지만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애들의 팬 중 한 명이라든가?”
  아이돌에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말이지.
 “그래도 그 가방에 뭐가 들었기에 그렇게 곤란해 한 거야?”
 “사실은 오늘 장 보러 가기 위해 필요한 돈도 그 안에 있어서요! 거기에 내일 내야 할 숙제도 들어있고…”
  지갑, 인가.
 “평상시에는 항상 목에 걸고 다니지 않았어? 하루카한테 받은 지갑 있었잖아”
 “그게 오늘은 의상을 입어본다고 가방에 넣어놔서…”
  스스로 장도 봐갈 줄 아는 대견한 아이인 듯 싶다.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가방을 열어 지갑을 확인해본다. 개구리 모양의, 귀여운 동전지갑이다.
 “전화가 올 때까지 그렇게나 걱정하고…”
  열어보면, 접혀져 있는 1000엔 지폐가 2장, 잔돈이 몇 푼, 구깃구깃한 마트 쿠폰이 들어있다. 야채와 쌀을 사갈 생각이었나, 라고 생각하며 다시 지갑을 정리해서 가방에 넣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가지고 온다고 해 줘서”
  뭐, 천 몇 엔이 필요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은 아니니깐.
 “읏우! 정말 다행이에요”
 “만약 가져와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읏우… 그러면 곤란해요오…”
  그 활기찬 목소리가, 우는 목소리로 바뀐다. 아아, 정말로 곤란해하고 있구나. 천 몇엔이라고 해도, 단순한 중학생의 교과서라고 해도 저 아이에게는 소중한 것이겠지. 없어지면 정말로 곤란해하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들 정도로 곤란해하는 목소리다. 그래서 그냥 가지고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몹시 곤란해하겠지. 나는 사무소 문도 두드리지 않고, 가방을 챙기고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저녁 늦게 프로듀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방을 챙기고 나왔는데, 길을 헤매다가 일이 생겨서 실수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그, 내일 전할 테니, 정말 죄송합니다. 이 쪽의 거듭되는 선 사과에, 저쪽 프로듀서는 딱히 무슨 말을 하지는 못했다. 이런 허술한 이유를 받아들여주는 걸 보면, 저 쪽의 프로듀서도 그렇게 사람이 강하진 않군. 나는 이렇게 생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가방을 다시 바라보았다. 기운차고 밝은 아이. 다른 사람들을 들으면 그대로 믿고는 금새 기분이 다운될 정도로 순수하기도 한 아이. 저런 아이는 울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목소리가 나오고 어떤 말을 뱉을까? 오랜만에 사람의 이름이 알고 싶어질 정도다. 조금 두근거린 나머지, 잠을 설칠 것 같군.

 


 

썩은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글의 기준은, 아이돌마스터 게임1을 기준으로 삼아주세요. 그 때는 한 살씩 어린 덕분에, 아미 마미는 초6이고 야요이는 중1이랍니다.

비정기 연재가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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