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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천 엔 포장마차 입니다. -8-

댓글: 19 / 조회: 2501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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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8, 2013 21:03에 작성됨.













삐삐삐─ 삐삐삐─

알람이 울린다.

평소라면 귀찮아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만 오늘은 그러지 않아도 좋다.

"정기 휴일인걸…."

잠결에 중얼거린다.

오늘은 한달에 두번 있는 정기 휴일중 하나.

다만 알림이 울리는건 어젯밤에 꺼놓는것을 깜빡한 탓이다.

내가 실수한거니까 누굴 탓할수도 없지만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일어나면 짜증이 나기 마련.

게다가 이미 이 시간에 일어나는 생활리듬이 몸에 익어버려 한번 잠에서 깨자 이상스럽게 쉽게 다시 잠들지 못한다.

일하는 날에는 눈감고 10초만 가만히 있으면 다시 잠들어버릴것 같은데 왜 일어나지 않아도 될때는 그러지 못하는걸까.

결국 투덜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래도 뭔가 할일이 있는건 아닌데."

아침을 먹기엔 너무 이른시간이고 그렇다고 일어나자마자 TV를 켜고 빈둥거리기엔 모처럼 큰맘먹고 새벽에 활동하기로 마음먹은 보람이 없다.

그러다 조깅이나 다녀올까 하고 머리를 긁는다.

일 때문에 요즘들어 활동량이 줄어들었으니까. 한번쯤 땀을 흘리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그럼 결정."

일단 결정했으면 행동은 빠르게. 서둘러 아침 운동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세면, 탈의, 착의. 일련의 과정을 후다닥 마치고 헐렁한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춥구만."

새벽공기가 차갑다.

슬슬 가을도 무르익고있는 계절이니까 점점 더 추워질테지.

뭐, 딱히 추위에 약하다거나 한 것도 아니고 포장마차는 더울때보단 추울때 더 인기가 있으니까 나로선 문제될건 없다. 지금 운동할 때도 적당히 서늘한게 기분좋고.

그럼 뛰자.

우선 몇번 준비운동겸 스트레칭을 하고 근처 강변 산책로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탓에 금방 도착한 강변은 가끔 보이는 운동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직 한산하다.

하기야 아침에 운동을 한다고해도 이렇게 이른시간에는 별로 사람이 없는게 당연하지.

덕분에 조용한 조깅을 즐기고 있는데 저 앞에 내가 뛰고 있는 방향으로 같이 뛰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잠깐 그 뒤를 따라가다 문득 '따라잡아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속도를 높힌다.

금방 거리는 가까워 지고, 앞서 있던 그 사람의 옆을 휙 하고 스쳐지나간다.

어디보자 이제 30분 정도 뛰었으니까 앞으로 그만큼만 더 뛰고 돌아갈까? 라고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내 옆을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간다.

놀라 확인해보자 그건 다름아닌 방금 내가 따라잡았던 그 사람.

후드를 눌러쓴탓에 정확히 어떤사람인지는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 체형은 그리 크지않다.

……뭐지?

괜히 괘씸한 마음에 다시 속도를 높혀 따라잡자 아니나다를까 바로 날 추월하는 그 정체불명의 후드.

"호오?"

불이 붙는다.

무슨 의도로 이렇게 나오는진 모르겠는데 내가 그렇게 만만한 놈은 아니라서 말이지.

이래뵈도 과거 세미프로 급 마라톤 대회에서 순위권으로 완주한 전력이 있다.

다만 말그대로 과거의 영광인 탓에 아직까지 그 체력이 남아있는것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지구력은 평범한 사람보단 우월하다 자신한다.

사람 잘못 건든거야!

두 다리에 힘을 싣는다.

곧바로 주위 배경이 보다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하고 다시 그 후드의 옆에 위치한다.

거기서 속도를 맞추고 잠깐 후드의 얼굴을 보고있으니 내 시선을 알아챈건지 후드의 고개도 내쪽으로 돌려진다.

후드의 그늘 때문에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아직은 앳된티가 남은 그 얼굴의 눈이 나와 마주치고.

"씨익─"

"……!"

난 눈으로 한번 웃고는 다시 앞서 나간다.

저쪽도 자존심이란게 있으면 아마 죽어라 쫓아오겠지.

하지만 용납할 수없다! 이제부턴 나도 전력질주로 절대 따라오지 못하게 할테다!

속으로 사악하게 웃으며 한층 더 속도를 높힌다.

뭐? 애도 아니고 뭐하는 짓이냐고?

남자는 커도 애야. 특히 자존심이 걸린 문제면 더더욱.

만약 이렇게까지 했는데 또 따라잡혀봐, 내가 얼마나 민망하겠어?

봐봐, 또 옆에 바짝 따라왔을 정도로 저녀석도 잔뜩 열받았……?

생각을 멈추고 한번 더 내가 본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길게 감았다 뜬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같은 화면을 나에게 보내온다.

진짜 쫓아왔다?!

그 정체불명의 후드가 따라잡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따라오는데 성공한 것.

뭐지?! 나 분명히 제대로 뛰고있는데?! 겨우 저정도의 체형으로 이 속도를 무난하게 따라온다고?

아무리봐도 아직 미성년자임이 분명한 체구다.

만약 나이는 그렇지 않다고해도 어찌됬던 작은 체구는 작은거니 그 신체능력은 건장한 성인남성보단 떨어지는게 당연하다.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후드는 오히려 어이를 상실한 날 앞질러 가기 시작한다.

다시 정신이 바짝 돌아온다.

어떻게된건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이기고본다!

이렇게 된이상 질 수는 없지!

이를 악물고 더욱더 땅을 박차는 힘을 증가시킨다.

그 후로 엎치락 뒤치락 서로를 앞지르고 또 따라잡는 질주가 이어진다.

숨은 턱끝까지 차오르고 입에선 단내가 나기 시작하는데도 저 후드는 아직 멈출생각이 없어보인다.

설마 지친게 나혼자인건 아니겠지, 사람이라면 저쪽도 지칠대로 지친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와 마찬가지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는건가.

그 의기에 경의를 표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양보는 할 수 없다.

만남은 단순히 우연에 불과했지만 지금 이순간은 서로 평생의 호적수라도 만난것마냥 전력을 다하고 있다.

대충한다면 서로에게 무례라는걸 알고있으니 설령 쓰러지기 전까지 이 다리를 멈출순 없다.

……라는건 개소리. 무슨 열혈소년만화도 아니고.

솔직한 마음은 단순히 지기싫은것 뿐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남자는 애라니까요. 자존심이 걸리면 더더욱.

지면 열받으니까 안멈춘다, 아니 못멈춘다. 쓰러지면 기어서라도 갈테다!

이를 뿌득뿌득 갈며 최대한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다듬어 보려는데 후드가 달리고 있던 옆에서 갑자기 털썩, 하고 무언가가 엎어진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설마 너무 심하게 달리다 다리가 풀려 넘어진건가 싶어 걱정되는 마음에 나도 뛰는걸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데.

쌩─!

"응?"

그런 내 옆을 휙 하고 지나가는 후드.

멍청하게 그 뒷모습을 쳐다보는 날 가로질러 한 십 여미터 앞에선 그 후드가 비로소 여지껏 자신의 정체를 가리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긴다.

"헤헷~! 내가 이겼다구요!"

"뭐야. 방금 넘어진것같은 소리가…?"

"아무래도 그냥 이기는건 힘들것 같아서 잠깐 꾀를 써봤죠."

과연.

일부러 큰소리가 나게끔 자리에 앉아 방심을 유도하고 내가 멈춘 사이 다시 뛰었다 이건가.

속았다! 라는 생각에 앞서 이제 더이상은 나도 못뛰겠다 싶어 그냥 서있던 자리에 쿠당탕 쓰러진다.

생각해보면 결승점도 없었는데 이기고 지고가 어딨겠냐만 그걸 떠나서 정말 이렇게 뛴건 몇년만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뛴 거리로만 따지면 거짓말좀 보태서 10km는 될거다.

거기다 속도도 속도였으니 온몸에 탈력감이 덮쳐온다.

멍하니 누워 이젠 밝다못해 눈부신 하늘을 보고있는데 그 하늘에 한 얼굴이 끼어들어온다.

"저기, 괜찮아요?"

"넌 아직 쌩쌩한가보구나."

"그렇지도 않아요. 힘들다구요."

말은 그렇게 한다만 그 얼굴엔 아직도 생기가 남아있다.

아마 지금의 내 얼굴은 푸석푸석 말라비틀어진 고목같겠지.

"그나저나 대단한데요. 제가 운동으로 이렇게 힘들게 상대한건 오랜만이라구요."

"내가 할말이다. 겉보기나 목소리나 아무리 많이쳐도 고등학생인것 같은데. 요즘 남자애들이 안에서만 놀줄 알아서 운동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죄 거짓이었구만."

"남자아이…?"

"응?"

뉴스에서 보도한 자료에 불만을 토로하는데 이상한 걸 트집으로 그 아이의 얼굴에 화가 서린다.

"남자아이라뇨! 저 이래뵈도 여자아이라구요 여자아이!"

"그치만 너 저(ボク)라며?"

"그, 그건 그냥 제 말버릇일 뿐이구요! 아무튼 전 여자아이에요!"

거참 머리도 짧고 목소리도 중성적인데다 그런식의 말버릇이라면 당연히 상당히 곱상하게 생긴 남자아이구나 싶지 누가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겠어.

찬찬히 다시 그 얼굴을 살펴본다.

어찌어찌 선이 곱고 가는게 여자아이인 모습도 보이는것 같고.

하지만 역시 애매모호하다.

그래도 이 아이도 굉장하구나.

남자아이던 여자아이던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논하자면 단연 최상이라 할 수 있다.

요즘들어 자주 보게된 아이돌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정도.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외모보단 저 경이적인 체력이 더 놀랍다고 생각한다.

역시 운동선수 지망이라던가 그런거겠지?

"아뇨? 저, 아이돌인데요. 아직은 연습생이지만."

"……."

"무, 뭐에요 그 이상한 얼굴은!"

그 말을 들은 내가 보기 좀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후드의 소녀가 언짢은 기분을 비치지만 솔직히 누가 내입장이 되도 지금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을거라 생각한다.

"그 말은 제가 아이돌에 어울리지 않다는 뜻인가요. 저, 분명히 여자아이 답지 않고 예쁘다는 말보단 멋있다라는 말을 많이 듣긴 하지만……."

"어?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라구."

그러다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는 소녀의 모습에 서둘러 변명아닌 변명을 한다.

"요즘들어 이상하게 아이돌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서 말이지. 전부 이제 막 시작하는 시점이라 그리 유명하진 않지만……그래, 너도 아이돌 지망생이니까 이름정돈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는데. 페어리 라던가 류구코마치 라던가 말이야."

페어리야 진즉부터 이름을 알려가는 추세고 지난번 봤던 류구코마치도 이제 막 시작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중이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소녀의 표정 또한 방금전 나 못지않게 이상해진다.

"뭐야. 나같은 아저씨가 그런 아이돌들이랑 친하다는게 믿기 힘든거냐?"

"아뇨! 저도 그런게 아니라 설마하니 여기서 그 이름을 듣게 될줄을 몰라서요."

"응?"

"사실 저도 프로젝트 페어리, 그리고 류구코마치가 소속된 사무소의 아이돌이거든요."

"겍."

"아아, 이제 그 표정 알겠어요. 놀랐다는 뜻의 '말도 안돼!' 로군요."

아까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괴상한 소리를 내는 날 보며 소녀는 이해했다는듯 웃어보인다.

우연도 참 이런 우연이 있을까.

설마 엄청 오랜만에 새벽에 나온 운동에서 만나 아무런 대화도 없이 무작정 레이스를 펼치던 상대가 요즘들어 아는 사람이 많아진 아이돌 사무소의 연습생이라니.

"우연인지 인연인지."

"우왓, 갑자기 왠지 멋있어보이는 말을 하는데요."

"그냥 말장난이야."

하긴 딱히 그렇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건 아니지.

그저 다음에 한번 포장마차에 그 사무소의 누군가와 같이 왔을 때 다시만났다는 인사를 나누는 정도?

그리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한번 더 심호흡을 크게 하며 하늘을 보자 눈이 부실정도로 해가 높이 떠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나.

힘이 빠져있던 몸에도 어느정도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했고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땀도 많이 흘렸으니 좀 씻고.

"그나저나 젊어서 그런건가 너 엄청 체력 좋구나. 난 이제야 겨우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헤헤. 솔직히 아직 더 뛰라면 뛸 수 있을것 같아요. 봐요, 이렇──아앗?!"

"어, 어이! 괜찮아?"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며 뽐내듯 제자리에서 높게 뛴 후드의 소녀가 착지하자마자 마치 실이 끊긴 인형마냥 자리에 무너져버린다.

"아야야…."

"가만있어봐."

"에, 엣? 저기 잠깐!"

"이상한 의도는 전혀없으니까 걱정마. 그보다 심하게 다쳤으면 큰일이니까 우선 가만히 있어보라구."

"으으~ 네…."

나참, 아무리 젊다고한들 그렇게 뛰었는데 멀쩡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인거지.

겉으로 티는 안났다만 역시 무리였던 모양이다.

거기다 갑자기 그렇게 큰 동작을 취했으니 갑자기 다리가 풀린것도 당연하다.

세심하게 다리를 주무르며 상태를 파악해 나간다.

"근육이 놀란모양이야. 조금 다친것 같기도 하고. 통증은?"

"그렇게 아프진 않아요."

"그래도 크게 다친것 같진 않네. 이정도면 조금 쉬면 아물거야. 그래도 너 스스로의 몸은 소중히 생각해야지,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아하하 죄송합니다."

가볍게 꾸중하자 후드의 소녀는 솔직하게 사과해온다.

"하기야 다친건 네 몸이지 내 몸이 아니니까. 결국 네 손해지 뭐."

"으음? 갑자기 고마운 마음이 사라지려고 하는데요."

"사실 딱히 감사 받을만한 일을 한건 아니지만서도."

"그런것 치곤 꽤나 공들여서 마사지 해주시네요."

"사심이 섞여있어서 말이다."

"엑! 변태다!"

"소리질러도 소용없어!"

하는 짧은 만담을 하다 서로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그나저나 그렇게 사무소에 소문이 자자한 점주 씨를 이렇게 보게될줄은 저도 꿈에도 몰랐는걸요.

"전에 타카츠키도 사무소에서 내 이야기가 잔뜩이라고 하던데 그거 대체 어디까지 이야기가 퍼져있는거야?"

"아마 저희 사무소의 아이돌들은 전부 알고 있을걸요? 실제로 다녀온 사람들만 해도 절반이 넘고."

"그건 또 그렇네."

열 두명이라고 했었는데 페어리의 세 명, 류구코마치의 세 명, 타카츠키 까지 하면 일곱 명에 사무원 세 명을 더하면 그 아이돌 사무소의 과반수가 내 가게에 왔다 갔었다.

"그래서 저도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요."

"언제든지 와. 맛은 보장하니까."

"그거 기대되는데요. 윽─?"

"어? 아직 무리하면 안돼."

억지로 일어나려다 다시 통증이 오는지 주저않는 후드의 소녀를 급히 부축한다.

"가볍다곤 했지만 금방 뛰거나 걷는건 무리야. 좀 더 쉬어야 한다구."

"그치만 이제 슬슬 사무소에 돌아가봐야하고…."

"급한일이 없다면 무리해서 돌아가지 않는걸 추천한다만."

"레슨이 있다구요, 오전에. 솔직히 지금도 시간이 조금 아슬아슬하고."

"이렇게 다쳐버려선 레슨이고 뭐고 못하는거 아니냐? 게다가 운동했으니 샤워라도 해야할거고."

"그치만 보컬레슨이라서 다리랑은 그다지 상관이 없어요. 사무소에 샤워실과 갈아입을 옷도 준비되어있으니 그것도 괜찮구요."

고집도 여간 고집이 아니네 이 아이.

하지만 이렇게 열심인 아이의 뜻을 꺾기도 미안하니 돕기로 결정한다.

"사무소의 위치 어디야?"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조금만 걸으면 되니까 제가─"

"됬고, 업혀."

라고 말하며 등을 내민다.

"네?"

"가면서 길만 알려줘. 내가 데려다 줄테니까."

"그, 그치만!"

"너도 땀 잔뜩흘린 남자 등에 업히긴 싫겠지만 이정도는 양보하라구. 그나마 이 옷 싸구려다보니 안에서 밖으로 땀배출이 전혀 안되니 그나마 나을거야."

"아뇨! 그건 괜찮지만 방금까지 힘들게 뛴건 점주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힘들텐데 그렇게 까지 안해도…!"

"안그러면 네가 무리해서 걸으려 할 것 같으니까. 그리고 나름 회복력은 쓸만해서 벌써 다 회복될만큼 회복됬어. 너하나 업고 조금 걷는건 일도 아니야."

고집에는 고집이다.

또 거절하려는 후드의 소녀의 입을 막듯 막무가내로 등에 업어 올린다.

"으앗?!"

"읏차. 제대로 안업히면 네가 더 힘들다."

한번 몸을 튕겨 자리를 제대로 잡고 걷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야하냐? 말 안해주면 그냥 직진만 할거야."

"저, 저기! 저쪽으로 올라가면 되요."

일단 업어놓고 나니 순순히 말을 듣는다.

"처음 만난 남자 등에 업히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그래도 네가 레슨에 꼭 가야한다고 해서 하는 일이니까 조금만 참아."

"아까도 말했지만 괜찮아요. 도와주는것만해도 고맙고…그리고……"


'그리 싫지않은 기분. 남자 등이라는거 엄청 넓구나.'


"응? 뭐라고?"

"아뇨아뇨아뇨!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구요!"

뭐라 중얼거린거 같은데 정확히 듣지 못했다.

그저 급하게 방향을 가리키는 소녀의 말에 따라 이동할 뿐.

그런데 멀지 않다던 사무소가 왜이리 안나오냐.

멀쩡한 상태에서 업었으면 모르겠는데 회복력 어쩌구해도 지친건 소녀와 매한가지인 내 몸이 한번 더 녹초가 되어간다.

자연히 숨이 거칠어지고 몸은 크게 들썩이기 시작한다.

"저기, 역시 힘든것 같은데 여기서 그만 내리는게."

"거의 다 왔다며. 이왕 업은거 끝까지 책임지고 가야지. 그보다 여기 건너고 그 다음은?"

"한번 더 블럭을 넘어가면 되요."

진짜 다왔네 그럼.

5분 만 더 걸으면 될것 같다.

그렇게 속으로 최면을 걸듯 수도 없이 중얼거리며 마침내 사무소로 추정되는 건물 앞에 도착한다.

"으아~! 다왔다!"

"아아, 정말. 괜찮다고 말 했는데."

"이미 다와서 그런말 해봐야 소용없다."

"그렇네요…."

말 끝을 흐린 소녀가 더없이 환한 미소를 되돌려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 그렇게 솔직하게 고마워하는게 좋다구."

내가 피식 웃으며 손짓을 하자 업혀오는동안 어느정도 아물었는지 이제 어렵지않게 서서 몇번 다리를 움직여 보던 소녀가 주저앉은 내 손을 잡아 일으킨다.

"또 왜?"

"여기까지 온거 사무소에 잠깐 들렸다 가세요. 답례도 하고싶고."

"그치만 나 지금 완전 땀으로 샤워한 상태인데."

이런 냄새나는 몰골로 아이돌 사무소 같은데 들어가면 안될것 같은걸.

"괜찮아요!"

"으억! 잡아 끌지마! 알았어! 내발로 걸어갈께! 야!"

거의 끌려가다시피 계단을 올라가 사무소의 문 앞에 선다.

다친애 맞아? 뭐 이렇게 힘이 좋은거람.

투덜거리며 잡혀있던 손목을 쓰다듬는데 어쩐지 이상함을 느낀다.

그런데 아이돌 사무소치곤 건물이 너무 허름한거 같은데.

군데군데 보수해야 할곳이 눈에 띄고 상큼한 이미지를 대변하는 아이돌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 내부 모습이다.

턱을 쓰다듬으며 골몰히 생각에 잠겨있는사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 소녀에게 다시 이끌려 사무소 안으로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아, 마코토 왔어?"

활기차게 인사하는 후드의 소녀(이름은 마코토인가?)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갈색머리의 소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저쪽 너머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또 한명의 여성에게도 눈길이 간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여성은 놀란 눈으로 입가에 손을 가져가댄다.

"어머! 점주 씨?!"

"또 뵙네요, 오토나시 씨."

여기서 날 본게 의외인 모양이다. 하긴 나조차도 아직 얼떨떨 하니까.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이야기 하면 좀 깁니다만. 적당히 줄여서 말하자면 저 아이가 다치는 바람에 제가 여기까지 데려다 줬습니다."

앞의 광란의 질주는 쏙 빼놓고 결론만 말하자 오토나시 씨는 잘 모르겠다는 눈치이면서도 대충 이해한건지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마코토가 다친건가요?"

"그리 심한건 아닙니다. 그냥 무리하게 운동하다보니 근육이 조금. 아마 지금쯤이면 많이 나아졌을거고요."

실제로 방금 날 끌고 여기까지 온걸보면 말이지.

확인차 물어보자 역시나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이름이 마코토라고 하는구나."

"풀 네임은 키쿠치 마코토! 편하게 불러주세요 점주 씨."

"그럼 키쿠치."

"……편하게 부르라고 했는데 어째서."

"알았어 마코토."

"헤헷!"

이름으로 불리는게 그렇게 좋은가?

됬다!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마코토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해본다.

그나저나 사무소 안에서 봐도 그리 좋은 건물은 아니구나.

관리를 잘 한 덕분에 깔끔하긴 하지만 건물 자체가 영 별로다.

게다가 창문에 저거 뭐야. 테이프?

밖에서 보이면 제대로 보이게끔 거꾸로 765 라고 창문에 어설프게 붙어있는 테이프가 정말 이곳이 아이돌 사무소가 맞나 하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아하하… 여유가 없으니까요 사무소."

내 시선이 닿은 창문을 본 오토나시 씨가 아픈곳을 찔린것 처럼 민망해한다.

이런, 이야기를 돌려야겠다.

계속 그런 쪽으로 대화가 진행되는건 좋지않으니 서둘러 다른 화제를 꺼내든다.

"그보다 다른 아이돌들은 안보이네요? 아, 저 아이도 아이돌인가요?"

"힉?!"

"……왜 놀래."

아까부터 마코토 옆에 딱 붙어있는 소녀를 가리키자 그것만으로도 기겁을 하며 마코토의 뒤로 숨는 모습에 어이없어하자 서둘러 마코토가 설명해준다.

"유키호는 남자를 무서워하거든요."

남성공포증이라.

"아이돌 지망생?"

"네. 유키호도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남자를 무서워하고."

"그렇죠."

"……화이팅."

"아하하."

마코토가 멋쩍게 웃는다.

해줄말이 그것밖에 없다.

아이돌인데. 그것도 여자아이 아이돌인데 주 팬층으로 삼아야할 남성을 두려워한다라.

이 사무소 정말 특이한 아이들이 많구나.

"그보다 앉으세요! 답례라고도 했고 모처럼 오셨으니 차라도 내올게요."

"아, 마코토. 차라면 내가…."

"이번엔 내가 할게. 유키호도 앉아있어."

유키호라 불리는 갈색머리의 소녀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저 끄트머리에 조심스레 앉는다.

내가 소파의 왼쪽 끝이라면 저 소녀는 반대쪽 소파의 내가 보는걸 기준으로 오른쪽 끝.

최대한 멀어지려고 하는 마음이 여기까지 닿는다.

대화는 불가능에 가깝겠네 이래서야.

오토나시 씨라도 있으면 좋았을련만 일이 좀 남아있다며 금방 마무리하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컴퓨터 앞에서 화면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서로 미칠듯한 어색함속에 내가 다리만 동동 구르는데 문득 소녀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유키호? 가만있어보자 내가 이 이름을 어디서 들었더라?

유키호, 유키호, 유키호……유키…호?

"유키호?!"

"꺄아악?!"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름을 외치자 엄청 놀란듯 비명을 지르는 유키호와 더불어 급탕실로 보이는 방에서 차를 타던 마코토, 저쪽 너머 방에서 일을 하고있던 오토나시 씨도 놀라 튀쳐나온다.

""무슨 일이에요?!""

"아, 아뇨. 큰일은 아니고, 그보다 유키호 맞지?"

한편으로는 달려오는 둘을 진정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키호에게 이름을 확인해본다.

"이름을 말하시는거라면 유키호가 맞는데요오…."

"혹시 성은 하기와라?"

"에엣? 어떻게 그걸?"

내가 본인의 성을 알아맞히자 다시 한번 놀라는 유키호에게 서둘러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필한다.

"나야 나. 기억안나? 아직 네가 초등학생일 때 네 아버지인 하기와라 씨를 도왔었던.  그때 유난히 험상궂은 주위사람중에 그나마 멀쩡했던 사람이 나여서 그런진 몰라도 잘 따랐었잖아."

"어라…?"

유키호도 내 말에 무언가가 떠오른것 같으면서도 기억이 가물가물 한건지 곰곰히 생각에 빠진다.

그러다 손뼉을 딱 치며 말한다.

"서, 설마 그때 그 오빠?"

"기억이 난것 같네."

나도 이제야 그때의 어렸던 유키호의 얼굴과 지금의 성장한 모습이 매치가 되기 시작한다.

내가 반가움에 환하게 웃자 유키호는 반가움 반 서운함 반의 미묘한 얼굴을 푹 숙인다.

"우우…얼마전에 아빠가 다시 만났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보게될줄은……. 그때 말도 없이 사라져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세요?"

"미안하다. 안그러면 네가 엄청 울것 같아서. 어차피 가야하는데 마지막으로 우는얼굴을 보고가면 좀 그렇잖아."

"그래도 인사정도는 하면 좋았잖아요!"

"글쎄 미안하데두."

내가 머리를 긁으며 사과하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마코토와 오토나시 씨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건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본다.

"저기, 그러니까 유키호가 점주 씨랑 알던사이?"

"그보다 유키호가 남자랑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게다가 저렇게 큰소리까지?"

그런 두사람의 마음은 일단 한 쪽에 접어두고 우선 유키호를 달래는데 최선을 다한다.

거참 이렇게 무서운 아이가 아니었던것 같은데. 게다가 지금은 남성공포증이라더니 나한텐 뭐가 그렇게 할말이 많은거야.

결국 한참을 듣고나서야 진정한 유키호가 정신을 차리더니 "엣…! 내, 내가 무슨짓을! 구, 구멍 파고 뭍혀 있을께요오~!" 라며 어디서 꺼내들은건지 모를 삽을 들고 바닥을 파려는걸 말리는것으로 상황은 일단락 되었다.

오늘은 휴일인데 어째서 일하는 날보다 힘든거냐.

새벽부터 무지하게 피곤한 하루다.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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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만에 뵙네요. 과제가 많아서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본편의 이야기를 하자면 마코토와 유키호의 등장입니다. 또한 아직 하루가 끝난게 아니라 다음화까지 이어지게 되겠네요. 사실 원래 이번화 안에 끝내려다 이상하게 내용이 길어져서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화로 떠넘기는 거지만요. 흐흐.
오랜만에 쓴데다 애초에 가볍게 쓰는거라 퇴고같은걸 안하다보니 오타나 이상한 부분이 많을것 같은데 혹시나 읽다 발견하시고 말씀해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ps. 처음 본 땀을 흘린 남자에게 여성이 업혔을 때 두근거리게 되는 조건은 두가지 입니다.

잘생길 것

못생기지 말 것


또한 어렸을 때 잘 놀아준 아이와 다시 만났을 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조건도 두가지 입니다.

못생기지 말 것

잘생길 것


빌어먹을 현실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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