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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호시이 자매의 더블데이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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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0, 2012 15:12에 작성됨.

   해가 기울고 오후 수업이 마무리될 쯤이 되자 저녁 수업이 없는 학생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려 발을 분주히 움직였다. 교문을 나서는 학생의 수도 많았다. 널찍한 크기와 고풍스러운 필체로 대학교 이름이 적힌 교문을 벗어나는 학생 중에 나오와 아키코의 모습이 있었다.
   둘은 나란히 서서 교문을 빠져나갔는데, 아키코는 어떤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오, 그럼 난 가볼 테니까 잘 들어가~”
   남자친구에게 찰싹 달라붙은 채 아키코는 나오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했다. 나오도 똑같이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다만 꽃이 피듯 활짝 핀 아키코와는 달리 나오의 표정은 어딘가 굳어있었다.
   그렇게 바보 커플과 헤어진 나오는 바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액정을 키는 버튼을 꾹 눌렀다.
   ‘아직도 답이 없네…….’
   무심한 핸드폰은 아무 반응이 없다. 나오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괜히 핸드폰 화면을 휙휙 넘기다가, 그것마저 지루해져 다시 핸드폰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나오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버스정류장엔 나오처럼 버스를 타려는 학생들이 많아 인파로 붐볐다.
   그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자리를 만든 나오는 자신이 탈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림판으로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7분. 그러는 중 알림판에 뜬 현재 시간도 자연히 보게 됐다.
   메일을 보낸 지 벌써 세 시간 반 째.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시간이다.
   ‘분명 일이 바빠서 그런 거야. 응, 오늘 오전도 일 바빴다고 했으니까.’
   나오는 스스로 프로듀서의 변명을 만들어냈다. 자작한 변명으로 애써 위안하며, 나오는 버스가 올 차선 저편을 바라봤다. 언젠가 올 거라 생각하면서.




   * * * * * * * * *




   같은 시각에 프로듀서는 막 촬영을 마쳤다. 촬영 감독의 촬영 끝났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감독을 향해 달려갔다.
   “오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는 감독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방송 업계에서 공손함은 미덕이 아니라 필수였다. 감독도 그의 인사를 웃는 얼굴로 받았다.
   “내가 고생하기 보단 아이돌들이 고생 많이 했죠. 특히 765 프로 아이돌들 정말 많이 좋아졌던데. 역시 인기 상승세인 아이돌답다니까.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면 자주 캐스팅할게요.”
   “다 감독님의 지시가 좋아서 그렇지요. 앞으로도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나중에 또 연락할게요.”
   프로듀서와 감독은 하하호호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끝냈다. 프로듀서는 신이 난 발걸음으로 촬영을 끝낸 아이돌들이 기다릴 대기실로 향했다.
   프로듀서가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서 앉아 쉬고 있던 미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쪼르르 달려왔다.
   “허니! 오늘 미키 어땠어?”
   “엄청 잘했어. 감독도 좋다고 칭찬하더라니까. 앞으로도 쭉 이렇게만 해주면 자주 캐스팅하겠다고도 하더라.”
   “와! 진짜? 미키 노력한 보람이 있는 거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미키는 기뻐 제자리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 모습을 프로듀서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프로듀서 씨, 저는요?”
   “하루카도 물론 잘했지. 둘 다 요즘 컨디션 최고야. 이대로라면 이번 달 아이돌 랭크 업은 문제없겠어.”
   “헤헤, 그런가요. 앞으로도 힘낼게요!”
   하루카는 앙증맞은 두 주먹을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일이 술술 풀리는 기분이라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 다음 스케줄인 화보 찍으러 어서 가자. 다른 아이돌들도 기다릴 거야. 화보도 열심히 해보자!”
   “네!”
   “응―인 거야!”
   세 사람의 들뜬 목소리가 대기실을 가득 채웠다. 프로듀서와 아이돌 간에는 활기가 넘쳐흘러 그 사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지금이라면 어떤 일도 해내겠다는 자신감도 한가득이다.




   * * * * * * * * *




   시간이 조금 지나, 나오는 아무 일 없이 집에 도착했다. 나오는 잠긴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미키는 아이돌 일중이고 부모님 역시 일 때문에 늘 늦게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간 나오는 자신의 방에 가방을 벗어 놓으며 침대에 털썩 앉았다.
   버스엔 자리가 없어 나오는 쭉 서서 와야 했기에 다리가 약간 욱신거렸다. 가는 다리를 손으로 적당히 주무르다가 방 한 편에 내려놓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나오는 주무르는 걸 멈추고 가방에 손을 뻗어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나오는 침대 가장자리에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며 앉았다. 꺼진 액정을 묵묵히 바라보며 나오는 버튼을 꾹 눌렀다.
   “안 왔네…….”
   아무 변동 없는 핸드폰을 보자 나오의 자세가 더 기울었다. 액정을 빤히 보다가 나오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밥이나 먹자.’
   나오는 평소엔 더 늦게 저녁을 먹었지만 오늘은 할 일도 없으니 빨리 밥을 먹고 싶었다. 나오는 한 손에 핸드폰을 쥔 채 방을 나섰다.
   주방으로 간 나오는 전기밥솥에서 적당히 밥을 푸고, 냉장고에서 반찬 몇 개를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 국은 끓여놓은 게 없어 없었다. 국 재료는 냉장고에 있으니 하면 금방 하겠지만, 나오는 그냥 식탁 앞에 앉았다.
   간소한 저녁은 금방 끝이 났다. TV조차 키지 않아 묵묵히 조용한 저녁을 마친 나오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식탁 한편에 놓은 핸드폰을 다시 확인했다. 역시 연락은 없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나오는 식탁을 치우고 젓가락과 밥그릇은 싱크대에 넣었다. 싱크대 안엔 나오가 놓은 그릇 말고도 설거지거리가 몇 개 있었다. 나오는 핸드폰을 싱크대 위 중 물 안 튀기는 곳에 올려놓고, 팔을 걷어 붙여 설거지를 시작했다.
   첨벙, 쪼르르 물소리가 났다. 세재를 뿌린 수세미로 그릇을 깨끗이 닦으며 물로 헹궈 마무리했다. 설거지거리는 그렇게 많지 않아 설거지 역시 금세 끝났다. 수건에 손을 닦고 나오는 또 핸드폰을 확인했다. 연락은 핸드폰이 고장 난 것처럼 없었다.
   나오는 눈을 한번 찡그리곤, 바지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이제 뭐하지. 학교 과제도 없고, 친구랑 연락해서 놀기는 귀찮고. 그냥 TV나 볼까.’
   그렇게 금방 할 일을 정한 나오는 거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거실의 소파에 푹 몸을 묻으며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TV엔 그다지 흥미 없는 버라이어티쇼가 방송 중이다. 채널을 바뀌기도 귀찮아 나오는 멍한 눈동자로 그걸 봤다.
   철 지난 코미디언이 웃기려고 무리수를 두는 순간에, 갑자기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이 크게 울렸다. 울림은 한번. 메일이다. 나오는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러자 핸드폰엔.
  「남친이랑 저녁 먹는 중~(♡∇♡)// 남친이 맛있는 거 사줬다, 히히. 사진 한번 봐봥~」
   첨부된 사진엔 아키코와 그 남친이 음식을 가운데에 두고 손으로 브이자를 지으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아키코였다. 나오는 얼굴을 팍 찌푸렸다.
   “아니 얘는 기분 좋으면 지네끼리 잘 놀 것이지 왜 메일 보내는 거야. 귀찮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나오는 답장도 하기 싫어 바로 메일을 닫고 탁자에 핸드폰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놨다. 나오는 한동안 분이 안 풀려 씩씩댔다. 커플이라면 굳이 러브러브를 남에게 자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괜히 짜증나게.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은 나오는 핸드폰을 휙 낚아채곤 바로 메일함을 열었다. 그리곤 프로듀서의 번호를 찾아 눌러 메일 작성 란을 띠웠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답장이 계속 없으시길래.」
   순식간에 메일을 써 내린 나오는 바로 송신 버튼을 눌렀다.
   ‘연락이 없으면 이쪽에서 먼저 하면 되지. 흥.’
   나오는 토라진 얼굴로 방금 막 프로듀서를 향해 메일을 보낸 핸드폰을 쭉 노려봤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곧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 * * * * * * * *




   같은 시간. 프로듀서의 가방 안에 깊숙이 놓인 핸드폰이 나오의 메일을 받아 지이잉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금방 화보 촬영 현장의 왁자지껄한 소음에 묻혀버렸다.
   이번 화보의 컨셉은 수영복이라 촬영에 임한 아이돌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수영복을 입은 상태였다. 프로듀서는 촬영 관계자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갑자기 저편에서 발랄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오빠! 마미 수영복 좀 봐봐!”
   연분홍 비키니를 입은 여자아이가 탁탁 경쾌한 발걸음으로 프로듀서를 향해 달려왔다. 마미는 머리엔 빨간 빵모자를, 비키니 위엔 빨간 재킷을 입어 발랄한 생기가 넘쳤다. 
   프로듀서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 바퀴 빙그르 돌자, 비키니 하의에 달린 치마가 펄럭였다. 이제 중학생이 된 여자아이다운 싱그러움이 물씬 풍겼다.
   “어때? 매력적이지?”
   찡긋 윙크하는 마미에겐 성숙한 여인의 매력보단 아이다운 장난기가 가득했다.
   “응, 잘 어울려.”
   프로듀서가 그런 마미를 보며 귀엽다며 웃어주자, 마미의 뒤에서 마미와 쏙 닮은 아이가 볼을 부풀리며 튀어나왔다.
   “아미가 더 매력적일 걸! 오빠, 이거 봐봐!”
   마미와 색깔만 다른 옷을 입은 아미였다. 모자와 재킷의 빨강이 검정으로, 비키니의 연분홍은 연노랑이었다. 아미는 포즈를 잡으며 한껏 자신의 매력을 프로듀서에게 어필했다.
   “아미도 수영복 잘 어울리네. 자자, 일하러 가야지.”
   물론 프로듀서는 그저 귀엽게만 보일 뿐이라, 적당히 대답하고 웃어줬다. 그 대답에도 쌍둥이는 좋아 까르르 웃었다.
   “흥, 무슨 매력이야. 전부 꼬맹이 주제에.”
   그렇게 말한 여자아이는 긴 갈색머리를 쓸어 넘기며 아미와 마미를 보며 코웃음을 한번 치더니 당당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여자아이는 아미, 마미와는 달리 새하얀 원피스 형태의 수영복 차림이었다. 수영복에는 프릴이 고급스럽게 붙어있어 드레스 같았다. 그리곤 품이 넓은 모자를 써 아가씨다운 분위기였다.
   “애당초 그런 비키니는 너희같이 꼬맹이 스타일은 무리야. 알겠어? 적어도 나 이오리 님처럼 스타일 좋은 여성만 소화할 수 있는 거라고.”
   여자아이, 이오리는 자신의 가슴 쪽에 손을 올리며 한껏 깔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오링은 아미, 마미보다 가슴 작으면서! 응훗후, 혹시 가슴 쪽에 헐렁한 거 아냐~?”
   “맞아맞아! 이오링 가슴 작잖아!”
   아미, 마미 쌍둥이도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라 바로 반격해왔다. 이오리의 가슴 사이즈는 77, 쌍둥이는 78이다. 1년전만 해도 키도 가슴도 쌍둥이보다 컸던 이오리였기에 꽤나 타격이 컸다.
   “키이이잇, 한번 해보자는 거지!”
   “그 승부 받아들이겠다! 아미랑 마미 절대 안 질 거야!”
   “누가 더 매력적인지 가려보자구!”
   세 아이는 서로를 향해 갸르릉거리며 바로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격화되는 사태에 프로듀서는 세 사람을 말리려했다.
   “자, 잠깐. 아직 촬영 중이니까 모두 조용히 있는 게…….”
   “오빠는 가만있어! 이건 여자의 승부라고!”
   “맞아! 오빠는 참견하지 마!”
   “넌 이 일에서 빠져! 내 일이니까!”
   중재는 세 아이의 박력에 눌려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슬슬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어서, 프로듀서는 혼을 내더라도 진정시켜야 할이지 고민했다.
   그때, 촬영을 막 마친 다른 아이돌들이 큰 소리가 나는 걸 듣고 다가왔다.
   “앗, 세 사람 다 촬영장에선 큰 소리 내면 안 돼. 다른 분들한테 폐잖아.”
   “하루카 말대로 인거야. 미키 시끄러운 건 싫어~.”
   “어머, 싸움은 안 된단다. 쉿 해야지.”
   “아미, 마미, 이오리. 여자아이는 항상 몸가짐을 신경써야합니다.”
   하루카, 미키, 아즈사, 타카네였다. 네 사람은 저마다 세 아이에게 한마디씩 훈계를 줬는데, 세 아이들은 훈계보단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가슴, 가슴, 가슴, 가슴. 세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성숙한 가슴들이 각자의 위용을 뽐냈다.
   아미, 마미, 이오리는 그 압력에 눌려 움찔 뒤로 물러섰다. 네 사람의 스타일을 보니 누가 더 매력적인지에 대해 싸웠던 자신들이 다 바보 같은 느낌이다.
   세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더니 서로를 살펴봤다. 무언의 동질감이 형성되었다.
   “…이오링, 우리 힘내자.”
   “…신기하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었어.”
   “우린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분명 크면 저렇게 될 걸!”
   동병상련의 정이 갑자기 피어오르더니, 세 아이는 금세 의기투합했다. 언젠가 커질 거라 굳게 믿으면서.
   그리고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파란색 장발 머리카락을 지닌 슬림한 스타일의 아이돌이 “큿…….”하고 울었지만 그걸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진정되는 상황을 보며 프로듀서는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진정됐고 다시 촬영은 원활히 시작되었다. 프로듀서는 촬영을 살피며 전반적인 진행을 확인했다. 바삐 움직이는 프로듀서의 머릿속에선 가방 깊숙이 넣어둔 핸드폰을 확인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나오가 보낸 두 번째 메일은 잊혀졌다.




   * * * * * * * * *




   시간이 지나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두워지는 시간에, 나오는 혼자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직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째깍거리는 시계소리를 멍하니 들으며 나오는 천장을 바라봤다.
   나오의 머리 옆엔 핸드폰이 놓여있었다. 핸드폰은 아키코의 메일 이후로 쭉 침묵 상태다. 나오가 직접 메일을 보냈음에도 상대방은 답장을 주지 않았다. 한 시간, 두 시간,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쓰려졌다던가, 아니면 사고가 났다던가…….’
   불길한 생각에 나오는 가벼운 오한이 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상대지만 큰 사고를 당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에이, 아닐 거야. 그냥 바빠서 그런 거겠지.’
   나오는 흉흉한 상상을 애써 지우며 몸을 뒤척였다. 일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그럴 거다. 메일을 확인할 틈도 없이 바빠서.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메일 하나는 확인할 수 있잖아. 이거 일부러 무시하는 거 아냐?’
   나오는 표정을 찌푸렸다.
   혹시 자신이 싫어져서 메일을 봤음에도 대답안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가짜라는 게 들통 나서 실망해 메일을 하지 않는 건 아닐까……이번엔 다른 방향으로 부정적인 예측들이 나오의 머릿속을 점령했다.
   나오는 전화를 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왠지 아닌 거 같아 하지 못했다. 메일을 주고받은 지 이제 이틀인데 전화를 거는 건 정말 큰 결심이 필요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오는 별별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러던 중 묵묵부답인 핸드폰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오는 뒤척거리는 걸 멈추고 지긋이 핸드폰을 노려봤다.
   나오는 검지와 엄지를 모아 답답한 핸드폰에게 딱밤을 한방 먹여줬다. 딱,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핸드폰은 위치만 바뀌었을 뿐 답이 없다.
   “바보…….”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나오는 베개에 얼굴을 깊숙이 파묻었다. 아침에 햇볕에 말린 베개에선 싱그러운 향이 났다.




   * * * * * * * * *




   촬영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화보 촬영이 아이돌들의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이었기에, 프로듀서와 아이돌들은 촬영장을 나와 귀갓길에 올랐다.
   프로듀서는 자신의 차 옆에 서서, 프로듀서를 배웅하기 위해 서있는 아이돌들을 보며 말했다.
   “정말 안 데려다 줘도 괜찮겠어?”
   “각자 같은 방향인 사람들끼리 가면 돼요. 시간도 늦었으니 프로듀서 씨도 어서 들어가 쉬셔야죠.”
   “하루카 말이 맞아, 프로듀서! 우리 걱정 말고 먼저 가라구!”
   히비키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다른 아이돌들도 모두 같은 분위기였다.
   “나랑 야요이, 쌍둥이는 우리 집 차가 온다고 했으니 그거 타고 가면 돼. 그러니까 어서 가버리라고.”
   “와, 이오리네 차 타도 되는 거야? 그 으리으리하고 긴 검정색 차?”
   전에 이오리네 차를 타본 적이 있는지 야요이는 눈을 반짝였다. 아미, 마미도 좋은지 신이 나 “이오링 최고!”라고 연신 외쳤다. 길고 으리으리한 검정색 차는 리무진으로, 이오리가 재벌집 딸인지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였다.
   “나머지 사람들이랑은 같이 역까지 가면 돼요. 아, 그리고 아즈사 씨도 걱정 마세요. 타카네 씨가 잘 맡아준다고 했어요.”
   “예, 아즈사는 제가 책임지고 집까지 데려가겠습니다. 귀하,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하루카 옆의 타카네는 아즈사의 뒤에 척하니 섰다. 타카네 특유의 고고한 분위기가 섞여 아즈사를 수호하는 신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작 장본인인 아즈사는 아무 것도 눈치 못 채 그저 사람 좋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아즈사는 꽤나 길치여서, 765 프로 전원의 걱정을 받았다.
   아즈사의 문제도 해결되니 프로듀서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프로듀서는 떠나기로 마음먹고 아이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다들 무사히 조심해서 들어가.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메일 해주고.”
   “우리가 어린아이인가. 프로듀서나 잘 도착해서 우리에게 문자 보내주라구.”
   히비키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프로듀서도 알겠다며 대답하면서 밝게 웃었다.
   아이돌들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모습으로 프로듀서를 배웅하곤, 각자의 귀갓길에 올랐다. 점점 멀어지는 아이돌들을 보며 프로듀서는 운전석 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차문을 닫은 뒤 프로듀서는 시동을 걸기 위해 가방에서 차키를 꺼내다가, 가방 구석에 박혀있는 핸드폰을 발견했다.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집었다.
   ‘한동안 확인 안했는데, 중요한 메일이라도 왔으려나.’
   프로듀서는 왠지 불안한 심정으로 핸드폰의 액정을 켰다. 시동을 걸지 않아 어두운 차 안이 미약한 핸드폰 빛으로 밝아졌다. 아니나 다를까 부재중 메일이 몇 통 와있었다. 다행인 건 전화는 안 왔다는 점이다.
   프로듀서는 메일함에 들어가 부재중 메일들의 제목을 쭉 확인했다. 리츠코로부터의 메일, 코토리로부터의 안내 메일, 방송 관계자가 보낸 메일. 대부분이 업무 관련 메일이었다. 시급한 내용을 담은 건 없어 안심하고 메일을 슥슥 넘기는데, 그때 뭔가 다른 메일 두 통이 툭 보였다.
  「아카바네 씨, 스케줄이면 방송국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이건 8시간 전쯤에 온 메일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답장이 계속 없으시길래.」
   이건 4시간 전쯤에 온 메일이었고.
   모두 발신인은 ‘아사쿠라 아키코’. 즉 나오였다. 왜 답장이 없냐고 묻는 메일로 나오로부터의 메일은 끝이었다. 프로듀서는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메일을 8시간이나 무시한 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이 얼마나 상해있을지 상상하니 프로듀서는 엄청난 낭패감에 휩싸였다. 
   ‘이거 큰일 났네……. 일단 빨리 답장해야겠다.’
   프로듀서는 차 시동을 거는 것도 잊고 재빨리 메일 작성 란을 켜 두 손으로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아사쿠라 씨, 정말 죄송합니다! 메일을 그만 이제 확인했네요ㅠㅠ그리고」
   “허니, 아직 안 가고 뭐하는 거야?”
   그때 아무도 없어야할 차의 뒷좌석에서 미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다음 편으로 비축이 끝입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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