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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코전(南無鼓傳) -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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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4, 2015 12:57에 작성됨.

    남무고(南無鼓), 또는 나무코라고 불리는 나라가 있었다. 나무코의 왕은 대대로 사장(社長)왕이라 불렸다. 지금의 왕으로 말하자면 성은 고목(高木)이요, 이름은 순차랑(順次郞), 자는 무면(無面)이며, 이차원(二次元)사람이었다.

 

    그의 선조 순일랑(順一郎)은 본디 북(太鼓)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그는 그만큼 음악과 예(藝)에 능하였으니, 사람을 얻어 나라를 세울 때도 나라의 용모와 재능이 출중한 여인들을 찾아, 천하가 본보기로 삼을 인물들로 가르치겠노라 하였다.

 

    곧 그는 ‘눈부신 아름다움으로써 어떤 이라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아 나라에 기관을 설치하고, 이를 아이도루(娥以夷淚)라 하였다. 그 뜻은 깊었으나, 이름이 듣기에 상스러우며 나라의 여인들을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상소가 끊이지 않았다.

 

    허나 오래 지나지 않아 왕의 뜻은 훌륭히 이루어졌으며 걱정은 기우(杞憂)에 그치니, 아이도루의 훌륭한 정신에 탄복하지 아니한 이가 없었다.

 

    그 뒤를 이은 사장왕은 선왕이 세운 국호, 예능천하지대본(藝能天下之大本)의 뜻을 충실히 받들었다. 왕은 기묘(奇妙)한 심미안과 괴벽(怪癖)을 가졌으나,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놀랍게 여기며 혜안(慧眼)이라 일컫기도 하였다. 그는 선왕 못지않게 훌륭히 아이도루를 다스렸다.

 

   천해(天海)에 아름다움을 꿈꾸지(美希) 않는 자가 없으며, 아이도루의 정신에 감화된 백성들의 마음에서 흐르는 빛이 달과 같았고(如月), 그 덕(德)이 두터워 나무코는 바깥에서 다섯 덕을 갖춘 나라(五德國)라고 불리웠다. 자나가는 작은 새(小鳥)의 지저귐마저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가히 나무코는 요순(堯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도 이르기 힘들 덕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며 나무코에도 근심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백성의 마음을 교화할 아이도루가 재물을 탐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든 자유로이 열람하던 서가가 드나듦에 돈을 받기 시작했으며, 아이도루의 새로운 뜻을 담은 노래들도 저자에서 자유로이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본디 백성들은 존경의 의미로 각자 재산의 일부를 모아 아이도루에 보내 왔으나, 이를 나라에서 정기적으로 징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도루를 떠받드는 자라면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 큰돈을 바쳐야 했으며, 이러한 처사에 끼니마저 굶게 된 백성들이 날로 늘어갔다. 무단으로 반출된 서화(書畵)가 시장의 외진 샛길에서 나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니 나라의 병과 폐단이 깊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아이도루의 노래와 시를 큰 슬픔과 눈물의 노래라며 대애루시(大哀淚詩)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디엘시‘라는 이름의 근원이다.

 

    덕망이 두텁던 나무코에 탐관오리가 들끓고,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니고동(仁後洞)이라는 고을에 아이도루의 본래 뜻을 잇는 초야(草野)의 학자들이 남아있었지만, 이들도 굶주리는 것은 한가지였다. 어느 날 왕이 이 광경을 눈으로 보고 탄식하며 이르되,

 

    “나라를 새로이 다잡을 때가 왔도다.”

 

    그리하여 왕은 새로이 제 이차(第二次) 아이도루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사장왕은 혜안이라 불리던 그의 취향을 믿고 아이도루를 크게 바꾸었으나, 그 형태가 괴이(怪異)하고 끔찍스러워 백성들은 대경(大驚)하였다.

 

    용궁(龍宮)의 현자라 칭송받던 아이도루의 네 현인은 쫓겨나고, 목성(木星)땅에서 온, 인상이 탁하고 재덕의 크기를 알 수 없는 자들이 관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선대 현인들을 너무나 업신여기니 이 모습이 슬프기 그지없었다. 온 나라 안 사람이 그들을 믿지 못함은 물론, 목성의 우두머리 되는 감당(甘党)의 난폭한 언행은 뭇 사람들을 개탄케 하였다. 충신도 국운이 불행에 다다랐다고 탄식하였으며, 시인들은 붓을 부러트리고, 악사들은 악기의 현을 끊었다. 마지막 덕이 남아 있던 니고동마저 수많은 현인들이 떠나 황량하기 그지없어, 때마침 나무코를 지난 한 시인은

 

    ‘맥수지탄의 광경을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

 

    라며 혀를 차면서 탄식하였다.

 

    나라에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무뢰한(無賴漢)들이 철권(鐵券)으로써 활개를 치게 되었다. 거리에서는 노란 가면을 쓴 백민(百民)이라 하는 도적들이 온갖 먹을거리를 쓸어 담았고, 그들과 더불어 색색의 귀신이 도성을 나돈다는 괴담마저 도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의 모습이 예전과 같지 아니하였다.

 

    괴로운 것은 사장왕 역시 한가지었다.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나라와 아이도루를 무척이나 아꼈으니 그의 비탄이 깊었음은 자명하였다.

 

    삼경(三更)이 되도록 걱정과 두려움에 마음이 소란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뜰을 밝게 비추던 달이 문득 구름에 가려지니 지척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기만 하였다. 돌연 먼 데서 인기척이 들리니 왕은 자신을 해(害)하러 온 자객인 줄로만 알고,

 

    “국세(國勢)가 아무리 혼란하다 한들 어찌 이러한 역모의 죄를 스스로 범하려 하느냐. 지금의 나무코를 어지럽게 한 것은 변(辯)할 바 없는 죄임에 틀림없으나, 너는 이 나라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느냐. 지금이라도 손에 들었을 흉물스런 무기를 버리고 이 곳을 떠나라. 그리하면 네 뒤를 쫓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나 기척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타난 것은 자객이 아닌 두 선녀(仙女)였더라.

 

   귀한 옷을 걸친 둘의 모습에서 광채가 휘황하고 향기가 진동하니 한 눈에 보아도 인간(人間)의 존재가 아니었다.

 

    키가 작은 선녀의 얼굴엔 뚜렷한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작은 신수(神獸)를 들었으며 긴 머리를 높이 묶고 동백기름을 비른지라 달빛 희미한 가운데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뽐냈다. 더불어 당당한 걸음에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기 어려운 박력(迫力)이 있었다.

 

    또 한 선녀는 다른 선녀에 비해 키가 컸으며, 몹시도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그 눈에서는 짐작키 어려울 정도의 깊은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흰 빛깔의 머리가 흩날리니 구름 속에 사라진 달빛이 바로 거기에 있는 듯하였다. 한 손에는 산초(山椒) 깎아 만든 젓가락을 들었으니, 이는 신기(神器)임이 분명하였다.

 

    한 나라의 왕을 눈앞에서 만나는 자는 그와 대등한 자로서 위엄을 챙기거나, 신과 민으로서자신을 한없이 낮추기 마련이나. 두 여인에게서는 비굴함도 방약무인(傍若無人)함도 보이지 않았으니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품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은빛의 머리를 한 여인,

 

    “멘요나.”

 

    하니, 왕은 그 진언(眞言)의 신비한 기운에 몸 속의 탁한 기운이 순간 풀리며, 혼탁(混濁)한 세상의 이치가 분별되는 것을 느꼈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과인을 이다지도 놀라게 하는가?”

 

    선녀 대답하길,

 

    “나의 이름은 귀음(貴音)이며, 함께 한 나의 벗은 향(響)이니라. 그 이상의 것은 황진(黃塵)의 자에게 이르지 못할 바로다.”

 

    이에 왕은 여인이 비범함을 다시 알아보며 크게 놀라였다. 곧 주안상을 들게 하였으나 검은 머리를 한 향이란 선녀는 흐트러짐 없는 말씨로,

 

    “그대는 술을 즐길 그릇이 되지못하도다.”

 

    하니, 목소리는 명랑(明朗)하나 그 담대함은 장수들의 기세도 꺾을 듯하고, 서릿발 같은 꾸짖음엔 몽매(蒙昧)한 자라도 단박에 잘못을 깨우칠 듯하였다.

 

    왕은 놀라긴 하였으나 심기가 언짢아져 말하길,

 

    “과인의 용렬(庸劣)함을 꾸짖는 것인가. 왕으로서 어찌 그대들을 귀인으로 대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

 

    향 말하길,

 

    “스스로의 어리석음조차 알지 못하니 태평성대는 벼랑 위의 꽃이도다.”

 

    귀음 역시 손의 산초저를 거두며 말하길,

 

     “객(客)을 대접하는 것은 예(禮)의 기본 중 하나이며, 사람이 만남에 있어 필요(必要)에 어긋나지 않는 금준(金樽)과 옥반(玉盤)은 금할 바 아니나, 시국을 생각하여 벗의 뜻을 따르라.”

 

    잇따른 질타에 왕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는 본디 흑정(黑井)의 사람이라. 비록 지극(至極)의 뜻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스러져가는 나라의 덕을 살리지 못할 법도 없노라.”

 

    왕은 풍파 속에 외딴 땅을 만난 뱃사람 같은 모양으로 기뻐하였다. 왕이 앉은 자세를 바로하고 덕을 다시 세울 비책을 물으며 자신의 뜻을 설명하려 하자, 왕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향이 손을 저었다.

 

    “말이 장황하며 헛된 것이 많으니 모두 듣는다 한들 수가 나올 턱이 없도다. 그대에게 아이도루를 새로이 개편할 여유가 있는가.”

 

    “시간이 촉박하며 나라의 사정이 어려워 난점이 많노라. 제이(第二)의 방책을 듣고자 하니 어떠한가.”

 

    “꺼리는 일이 많아 글렀도다.”

 

    향의 말에 다급해진 왕이 간청하길,

 

    “과인에게 남은 것은 지금의 아이도루 뿐이며, 이는 돌이키기도 개혁하기도 난감하도다. 가장 지탄을 받는 세 학자 역시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어 그들을 쉽사리 내쫓을 수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왕을 보며 향,

 

     “난쿠루나이사.”

 

    하는 진언을 읊으니 그 신통함이 조바심을 가라앉히며,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도 잃지 않을 평정심을 주었다. 귀음 웃으며 말하길,

 

    “초패왕은 퉁소소리 구슬픈 가운데에서도 진격하였고, 끝내 운명이 다하였음에도 그의 기세는 권토중래의 말로서 남아있도다. 천하 어디에 비책이 없겠는가. 비통함을 그치고 우리의 책략을 따른다면, 필히 성과가 있을 것이니라.”

 

    하여, 비책을 전하니, 그 마디마디가 새로운 이치에 눈을 뜨게 하고 조리(條理)에 그름이 없더라. 창(唱)에서 비롯하여 모(貌)와 무(舞)를 관통하는 선녀들의 통찰에 왕은 신선한 생각이 여울(水瀬) 흐르듯 샘솟았다. 밤늦도록 이어지는 논(論)은 보름이나 이어졌지만, 사장왕은 물론 함께하여 듣는 신하들도 지치는 기색이 없었으니 마침내 한 가지 계략에 이르게 되었다.

 

    그 계략이란 것은, 아이도루를 기운이 다한 흉상(凶箱)의 땅에서 물의 기운이 뛰어난 애니(涯泥)로 옮기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었으니, 과연 새로운 터에서의 아이도루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였다.

 

    애니는 물의 기운이 항상 진동하여, 떠났던 용궁(龍宮)의 정신이 되살아나는 듯하였다. 또한 목성(木星)의 마른 기운이 물을 만나고 그 성질이 부드러워지며 오해가 절로 풀리니 목성의 세 인물 역시 상당한 현인이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새로운 아이도루는 지난날 성행하였던 니고동의 풍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백성들은 잃었던 오덕의 마음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옛 아이도루의 개편에 다친 상처를 여전히 떨치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떠나갔던 나무코의 백성이 하나 둘 돌아오고, 애니를 지나다 새로이 나무코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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