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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X신데마스X아이마스]빛나는 우리들의 황금같은 나날들!!! - 10. 35 ° 41'/139 ° 45' 의 미드나잇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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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2, 2014 23:06에 작성됨.

최신화는 http://www.joara.com/literature/view/book_intro.html?book_code=912644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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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하교 중인 여고생들을 쳐다본다. 음, 초등학생을 보고 있었다면 훌륭한 변태라고 매도당할 게 분명하다. 변태 따위는 죽어 마땅하다! 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은 척살의 대상이겠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옷차림을 추리닝 풀셋으로 맞추고 사진기를 들고서 헥헥댄다면 훌륭한 변태로 몰릴 것이다. 아니 그건 그냥 변태지만.

"늦네....."

다만 그런 나를 아무도 비난하지도 제지하지도 않는 것은 역시 걸친 옷의 힘이리라. 몸에 잘 맞춘, 길이 든 단정한 진회색 양복바지와 허리 안으로 반듯이 집어넣은 하얀 와이셔츠. 약간 헐렁하게 맨 군청색의 줄무니 넥타이. 게다가 와이셔츠 앞주머니에는 볼펜까지 꽃혀 있다. 누가 봐도 나무랄 데 없는 회사원이다.

"전화라도 해봐야 하나?"

여기에 지금처럼 장식 외의 의미는 없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짝퉁 손목시계로 시간을 간간이 확인해주면 이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사회인이다. 이런 복장이면 이미 120kg가 넘는 돼지 오타쿠이던 50kg도 안되는 멸치 꼴두기이던 외모와는 상관없이 신뢰와 안정을 가져다준다.

라고, 예전에 알던 비서 씨가 가르켜줬다. 고마워요 비서씨.

덕분에 하교중인 여고생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감상할 수 있게 됐어요. 이 은혜는 백번 고쳐 죽어도 잊지 않을께요.

"프로듀서."

"오, 린이냐? 약간 늦었네. 슬슬 전화하려던.... 옆에 있는 애들은 친구야?"

린 특유의 꽃향기와 함께, 내 시야를 여고생들이 한가득 메웠다. 전부 다 린의 친구인 듯, 린과 함께 수다떨기에 바쁘다.

"응. 내 친구들이야."

"아, 혹시 린 프로듀서라는 사람이야? 처음뵙겟습니다! 혼다 미오라고 합니다!"

혼다 미오. 씩씩한 여자아이다. 린과는 다른 활기찬 분위기를 지닌 듯 하다. 얼핏 보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에너지가 넘친다.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는 직접 보는 게 나은 타입이다.

"시, 시마무라 우즈키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꺄악!"

"우즈키?! 얘는 또 왜 아무것도 없는데서 넘어져?!"

시마무라 우즈키. 평범하게 이쁘다. 맹하다. 아마 별명은 맹순이가 아닐까. 천연같은 맹함은 오히려 무기라는 듯, 행동에서 어쩔 수 없는 귀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엉덩이가 크다. 엉덩이가 크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했다.

"정말이지.... 넌 왜 항상 넘어지는 거야. 손 내밀어. 잡아줄테니까. 매번 내 손만 빌리고 말이야..."

"고마워 나오. 에헤헤~"

넘어진 시마무라를 일으켜세워주는 머리를 뒤로 묶은 여학생. 이름은 카미야 나오. 약간 사나워보이는 눈매와 살짝 성깔있어 보이는 말투. 그런데도 친절하다. 아마 저게 츤데레라는 거겠지.

"손 안 벌리면 안타까워할 게 나오겠지만~"

"잠깐 카렌!!!"

호죠 카렌. 이 다섯 중에서는 가장 스탠다드한 여고생일까. 엉덩이를 빼고선 너무 스탠다드한 나머지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는 여고생이다. 그야말로 일반적인 JK의 표본이랄까. 뭐 이건 이것대로 좋지만.

"뭐랄까.... 개성넘치는 친구들이네."

"뭐야, 나 말고 다른 여자한테 눈독들이는 거야?"

"오옷?! 설마 벌써부터 스캔인 거야?!"

왜인지 혼다가 눈을 반짝이고 있다. 때밀이 백열장이라도 퍼부을 기세다. 에드몬드 혼다라고 했다가는 아마 얻어맞을 것 같아서 입 바깥에 내지는 않았다. 사실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린은 오해살 만한 말 하지 마."

"게다가 이름으로 부르다니! 이건 이미 확정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렌 여사님!"

"죄송해요. 미오가 딱히 악의가 있는 게 아니에요. 철이 없고 장난기가 많은 거니까 이해해 주세요."

한 순간에 혼다를 철없는 꼬마로 만들어버린 호죠 카렌에게 1포인트 부여하겠습니다. 마치 백열장을 쓰듯 호죠를 두들기는 혼다를 잠깐 보고 있는 사이, 카미야가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해서 봤더니 거기엔 험상굳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말 한마디에 죽빵 한대씩 먹여줄 것 같은 표정의 카미야가 있었다.

"당신.... 린이랑 진짜로 아무 관계도 없는 거지?"

"어, 어어...."

이 녀석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라고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평소에 솔직하지 못한 만큼 친구를 생각해 주는 거겠지. 옆에서 보고 있는 린도 기분좋은 듯 웃으면서 말리려고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만일 린한테 손이라도 댔다가는...."

"자자, 나오도 그만해. 프로듀서가 곤란해하잖아."

"하지만....."

어째 평소와는 다른 상냥한 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친구들 앞에서 이미지 관리를 할 정도로 귀여운 녀석은 아닐 줄 알았는데, 의외의 면이 있다.

"그나저나 내 친구들도 프로듀서 마음에 들은 것 같네."

"무슨 말이야?"

"방금 마음 속으로 내 친구들 평가하고 있었지?"

......정확하다. 평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뭣하기는 하지만.

"뭘 그리 놀라고 있어."

"아니, 어떻게 내 생각을 알았나 해서."

"알고 싶어?"

자기 프로듀서를 놀리는 게 최근 취미생활이 되어버린 린이다.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그런 관계 아니다. 평소에는 저 녀석이 맨날 나를 젖은 쓰레기 대한다고. 대체 오늘따라 왜 이리 내숭인 건지....."

"그만큼 신뢰하고 있는 거니까 안심해."

".....그만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거겟지!" "어머 들켯네."

정말이였냐. 설마설마 햇지만 진자로 그렇게 보고 있을 줄이야.... 기운 빠진다. 바닥에 쭈그려앉아서 길가던 개미나 괴롭혀야지. 길가에 쭈그려앉아서 땅바닥을 펜으로 긁어대는 나를 보며 린이 기막힌 듯 말했다.

"농담이야. 그렇게 풀죽을 건 없잖아."

"훗, 나를 기운차리게 하고 싶으면 그만한 어필을 해 보시지?"

"어필? 그럼 격투게임 연습이라도 해 볼까? 어필만은 훌륭할 텐데."

우와 이 여고생 무서워. 사람을 함부로 패려 하고 있어. 괜히 격투게임을 가르켜줬어~

"역시 린 말대로네. 재밌는 사람이야."

나와 린이 만담 시간을 가지는 동안, 호죠 카렌이 나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같이 있는 친구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린이 더 재밌네."

"맞아. 그렇네."

"잠깐! 니들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리고 사이좋게 린을 공격해 들어갔다. 역시 친구란 서로를 웃으면서 공격해야 하는 법이다. 그 점에서 보자면 린은 좋은 친구들을 뒀다고 할 수 있겟지. 얼굴이 빨개져서 화내는 린을 놀리느라 정신이 없는 린과 친구들. 마음속 어딘가에 남을만한 청춘의 한 페이지다.

"그러고보니까 요즘 린이 더 재밌어졋다고 생각햇는데. 설마 아이돌 일을 하면서 개그의 비의를 전승받은 건가?"

"아니라고!"

"린의 말대로지. 저 개그를 전승해 준 건 저 오빠라고. 그리고 린의 개그를 오빠한테 전승해 준 거고. 윈윈 전략이네? 사상 최초의 아이돌 개그커플 탄생을 눈 앞에 둔 건가? 우리는 역사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 증인" "그만해!!!!!!"

린을 한창 괴롭히고 있는 사이, 시마무라 우즈키가 살짝 빠져나와서 나한테 말을 걸었다.

"프로듀서 씨. 프로듀서 씨."

"음? 무슨 일이야?"

"린 말인데요. 예전보다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아아, 그러고보니 처음에 비해선 부드러워진 듯 한 느낌도 든다. 정확히는 뭐랄까.... 색깔이라는 게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

"아이돌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더 활기차졋고, 상냥해졌고, 재미있어졋고, 그리고... 에 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몰라서 중간에서 막혀버린 시마무라 우즈키가 결국 허둥대기 시작한다. 손을 뻣뻣하게 뻗고선 위아래로 흔들고 머리를 부여잡은 지 약 3초. 할 말을 정한 듯 시마무라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정말정말 좋은 느낌이에요!"

".....음, 그래. 그런 건 표현하기가 힘들지. 머리 굴리느라 수고했다."

결국엔 우에엥~ 거리는 걸 선택한 시마무라 우즈키는 일단 시야 한구석에 몰아넣고서 보존 처리하자. 아무튼, 린한테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이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대, 그대는 나.

그대, '여법황'의 아르카나에 좀 더 다가섯다]

이 즐거운 소동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지만, 슬슬 시간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스캔들이랑은 인연도" "미안하지만 아가씨들, 린은 지금부터 레슨이여서 이제 가야 해."

"오오~ 기사님의 에스코트입니까?"

"기사보다는 집사 쪽이 정확한 표현이겠지? 아무튼 슬슬 가지 않으면 진짜로 위험해."

아쉬워하는 린의 친구들을 뒤로하고, 학교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린을 태운다. 앞으로 유명해지면 이런 시간도 얼마 없겠지~ 같은 즐거운 상상을 하며 나도 차에 타려고 하던 차에, 호죠 카렌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프로듀서 씨."

"뭐야? 할 말은 간단히 부탁해."

"간단해. 나랑 전화번호 좀 교환할래?"

.........아니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할 건 없나. 친구인 린을 관리하는 내 전화번호를 등록하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만 여고생한테 이렇게 직접적으로 요청이 들어온 건 처음이다. 그래서 살짝 당황했을 뿐.

"안돼?"

"안될 건 없지. 번호 불" "정말?! 잠깐 폰 받을게!"

뭐라 말릴 새도 없이 재빠르게 폰을 내 손에서 가져가는 호죠 카렌.
버릇없기는. 한 번 따끔하게 주의를 줄까 싶었지만 린 친구에게 약간이라도 나쁜 이미지를 심어서 좋을 건 없다. 어차피 내가 린의 인간관계 하나하나까지 신경쓸 일도 없고, 거기에 말려들 일은 더더욱 없다. 일에 방해만 안 된다면 그걸로 족한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너무 안일했다는 걸까, 호죠 카렌이 다음에 내뱉은 말은 안일한 나한테 적절한 처벌이 되었다.

"......어라? 쿠로사와 순경이라는 사람한테서 문자" "와아악!!!!!"

위기감을 느낄 새도 없이 호죠의 손에서 폰을 다시 가져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난폭한 행동에 호죠가 놀란 듯 움츠러들었다.

"자, 잠깐만. 그렇게 험악하게 반응할 건 없잖아?"

"아, 그게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설명해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 섀도 타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냇다가는 여고생들이 날 단체로 정신병 환자로 몰아넣은 다음에 진짜로 쥐도새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병원으로 위장한 곳 어딘가에 쳐박힐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기에는 나만 나쁜 놈 될 것 같고.

".....프로듀서."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린이 입을 열었다. 린도 지금 상황은 얼추 파악했을 터이다. 여기서는 린의 센스를 믿어보기로 할까.

"또 짭새야? 사장님이 그쪽에서 손 씻은지가 언제인데....."

"리이이이이인?!?!?!?"

넌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너무 안일했어! 린의 센스를 믿은 게 잘못이였다고!!!!

"잠깐 당신 나와. 이야기 좀 하자."

갑자기 데레가 사라진 츤100%의 카미야 나오가 나타났다.

"니들이 그런 거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개인적인 일로 만나는 사람이라고!!!!"

"웃기지마! 당신 같은 위험인물한테 린을 맏겨둘 수 있을것같아?!"

"그러니까 전혀 위험한 거 아니라고!! 린 너도 이런 타이밍에서 왜 그런 장난을 쳐?!"

그야 프로듀서가 곤란해하는 것 같아서 분위기를 반전시켜 볼려고, 라는 린의 대답에 어디서부터 딴죽을 걸어줘야 할까. 도저히 견적도 안 나온다. 1류 개그맨이 와도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서는 도망칠 레벨이다.

"전에 인터넷에서 뭐 삿다가 사기당했다는 그 이야기야?"

분위기를 한번에 뒤집어서 엎은 다음 다시 엎어치기로 날려버린 린이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미리 말을 맞추지도 않고서 시도하는 위험한 거짓말. 상대방에 대한 신용이 없으면 섣불리 시도할 수 없다. 그만큼 린이 내 센스를 믿고 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여기서부터는 내 센스다.

"아아.... 그거 때문에 말이야.... 자세하게 말할만한 내용은 아니지."

"그래? 좀 안 좋은 일이야?"

재차 추격해오는 호죠 카렌. 린이 눈살을 약간 찌푸렷다. 하지만 이 정도의 추격으로 흔들릴 내가 아니다.

"뭐 좀 그런 일이여서. 그것보다 전화번호 등록하자고 햇었지? 불러줘."

"알았어."

터치패널에 표시된 숫자를 눌러서 호죠의 전화번호를 등록했다. 소동 끝에 등록한 전화번호여서 그런지, 머리 속에 확실히 남는 듯 하다

[나는 그대, 그대는 나......

그대, '사형수'의 아르카나를 손에 넣었다.]

"이걸로 등록 완료. 그나저나 린 말대로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야."

린이랑 좋은 콤비네~ 라고 말하며 린과 나를 쳐다보는 호죠.

"저기저기, 대체 어떻게 해서 린을 저렇게 톡톡 튀게 만든 거야? 역시 근성이랑 노력? 그런 건 나 별로 자신없는데..."

"글쎄...."

"역시 프로듀서 씨한테 뭔가 영업비밀이 있는 건가? 아니면 린이 프로듀서랑 잘 맞아서?"

혹시 이 녀석, 아이돌 일에 흥미있는 건가? 일단 여기 있는 린 친구들 전부 어느 정도 가망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아무튼 그 이야기는 나중이다. 지금은 레슨이 급하다.

"오오!? 설마 이건 린과 카렌의 불꽃튀는 진흙탕 한국드라마 식 연애전쟁의 시작인가?!"

"시끄러 에드몬드."

무슨 말인지 모르겟지만 내 욕이라는 건 알겠어! 라고 말하며 날뛰는 혼다를 카미야와 시마무라가 제압하는 동안, 난 재빨리 차에 시동을 걸고서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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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차 안.

"무슨 내용이야?"

린의 질문. 그리고 나의 대답.

"이틀 후에 섀도 타임이야. 준비해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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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신께서는 한신에게 오승환을 주셔서 그 쳐망할 요미우리를 꺽어버릴 수 있도록 허락하셧다. 이는 약빨의 마신이신 배리 본즈께서도 크게 놀라신 일이다. 아니라고? 그럼 말고.
그런데 약빨의 마신이신 분이여. 어찌하여 캣츠에는 쓸만한 선수와 감독을 주지 않으십니까?

"왜! 캣츠는! 브레이브스! 처럼! 될! 수! 없는! 거야!!!!!!!"

브레이브스 3대장같은 야구선수들이 왜 캣츠에 안 들어오는 거냐고! 어이 베이브 듣고있냐! 거 야구의 신 쯤 됐으면 캣츠에 사람 좀 내려달라고! 가능하면 타자! 4번! 외국인! 흑인! 타이콥 산타님! 제발 타자 좀 주세요!!!!

"히메카와 씨! 또 날뛰는 거에요?!"

"날뛰지 않고서 참을 수 있겟냐?!?!?"

호랑이 마스크를 뒤집어쓴 거인 하나가 날아가며 흩어지듯 사라졋다. 내 페르소나 '모사도라'가 날리는 쇠공은 그냥 평범하게 위험하다. 쇠공이 200km가 넘는 속도로 날아온다면야 그건 이미 전쟁용 무기의 친척이지. 원한다면 폭발할 수 있도록 해 놓을 수도 있고.

"애초에 맨날 호크스 호크스 호크스!!!!!"

섀도와 같이 바닥에 박혀버린 공이 빛을 내며 폭발한다. 이런 식으로 수류탄 홈런을 날려줄 수도 있다.

"큐슈에는 호크스뿐만이 아니라 캣츠도 있단 말이다!!!!!!!"

상대방이 상대방인만큼, 내 분노가 더더욱 가열된다. 호랑이 마스크의 거인들은 각각 한신과 요미우리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덕분에 내 분노는 끝이 모르도록 치솟고 있다. 특히 한신. 한신 한신 한시인 한시이이이이이인!!!!!!!

"왜 맨날 우리 캣츠가 한신한테 비교당하는 건데?! 같은 꼴찌라서 그런 거냐?!?!?"

게다가 한신은 이번에 일본시리즈 진출했다고 더 이상 같은 급으로 쳐주지도 않아! 걔들도 어차피 호크스한테 일본시리즈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린 주제에! 같은 동네 팀인 우리는 왜 무시하냐고!!!! 나 어릴 때만 해도 캣츠가 강팀으로 유명했다고!!

"캣츠 때문에 행복하지 않으신가요?"

"나~! 는! 행복합니다!!! 나~! 는! 행복합니다!!! 캣츠라서 행복합니다!!!!"

심야 12시. 도쿄 한 가운데에서 내 비명이 울려퍼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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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에 둘, 왼쪽에 다섯. 오른쪽에 셋.
그리고 새롭게 전방에 여섯. 4차선 골목길 한 가운데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다. 진형으로 보자면 최악. 사면초가에 빠진 항우의 형세다. 만일 몸을 보호할만한 수단이 없다면 이곳에서 죽는 건 필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

"금강. 불구. 사갈."

하지만, 몸을 지킬 수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내 '모순나선'은 공격력은 없다시피 하지만 무언가를 막고 지키는 데는 효과적이다. 지금처럼 결계를 핀 다음 남은 밧줄을 던져 상대방을 묶을 수도 있다.

"그거 한 번에 한마리씩밖에 못 묶어?"

"좀 더 힘을 내면 더 묶을 수 있지만, 그 정도로 위급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방패라면, 내 옆에서 쇠공을 날려대고 있는 히메카와 씨는 박격포다. 내가 묶어놓은 섀도들에게 흥분한 상태에서도, 차근차근 쇠공을 배트로 쳐 날려보낸다. 섀도의 몸에 둥그런 구멍이 난다. 폭탄처럼 폭발하는 공은 히메카와 씨가 직접 던져서 섀도들을 날려버리고 있다.

"그것도 그렇네."

히메카와 씨가 선사하는 폭투. 쇠공의 비 사이를 몇몇 섀도들이 만신창이가 되서 통과했지만, 그들 앞에 있는 건 이 도묘지 카린의 벽이다. 맹렬한 기세로 내 결계를 두들기지만 뚫지 못하고 오히려 밧줄에 잡혀 묶여버린다.
묶여서 움직이지 못하는 섀도들에게 모사도라가 접근하고, 금속질의 야구 방망이로 섀도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날려버린다. 피는 안 나오고 머리가 날아간 섀도는 바로바로 사라지지만, 비주얼만큼은 왠만한 조폭영화 못지 않게 폭력적이다. 무심코 눈을 돌려버릴 정도다.

[아아, 이쪽은 본부. 야구무녀 응답바람]

그렇게 한참을 여유롭게 싸우고 있자니, 오랫만에 아키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랫만이야, 잘 지냈어? 라고 인사를 건낼 타이밍이 아닌 게 안타깝다. 조금 더 안타까운 건, 만일 타이밍이 좋았어도 즐겁게 인사를 건낼 수는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대체 얼마나 야근에 시달린 건지, 무전기 너머에서조차 피로가 몰려오는 듯 하다. 어린 아이가 이렇게 피로에 찬 목소리라니, 가슴 속에서 동정심이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한다.

"야구무녀 아니야, 캣츠빠순""야구무녀. 응답했습니다."

그 동정심을 히메카와 씨의 헛소리와 함께 마음 속에 잠시 우겨넣는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전투중이다. 아무리 여유로운 상황이라고는 해도 한 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온다. 특히 내가 방심해버린다면 나와 같이 있는 히메카와 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잡념은 버린다는 말의 뜻이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의욕없이 받던 무녀수행 중에 들은 단어의 뜻이 이런 식으로 다가올 줄이야.

[오랫만이야. 갑작스럽게 미안하지만 다른 곳 좀 맡아 줄 수 있겠어?]

"음... 일단 달려드는 녀석들만 어떻게든 정리하면 말이야."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는 나에 비해, 히메카와 씨는 언제나 가벼운 태도다. 나도 이런 때가 아니고서는 내 나름대로 가벼운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히메카와 씨는 이럴 때라도 언제나 가벼운 태도다. 관점에 따라서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봐 줄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이럴 때 까지 가벼운 건 그냥 사람이 가볍고 생각없다고 해야 될지도 모른다.
......뭐, 만년꼴찌인 캣츠팬이라면 긍정적으로 되지 않고서야 도저히 팬질을 할 수 없겠지만.

"더 이상 섀도의 증원이 없다면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상시에는 아키하 상대로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왠지 통신할 때가 되면 존댓말이 나온다.

[그거 좋네. 이쪽이 조금 꼬일 것 같았는데 살았어. 본부습격 이후로 첫 섀도 타임이 이런 대규모 난투라니, 사람 굴려먹는 것도 정도가 있지.]

공순이를 갈지 말라고, 라고 말하며 불평하는 아키하. 하지만 오늘은 그런 불평도 과분할 정도다.

"대규모일 것도 없지. 오히려 이게 보통 아니야? 요 근래가 너무 자잘했던 거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 확실히 최근 2달동안은 자잘하긴 했지만, 오늘은 너무 대규모라고요. 봐요. 벌써 새로운 녀석들이....."

어느 새 섀도들이 증원되었다. 그것도 많이. 게다가 여러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최근 2개월 동안은 섀도가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 날은 운 없게 말려든 민간인들도 비교적 안전하다. 섀도들이 주로 페르소나 소유자들을 향해서 몰려드니까. 오히려 소란스럽지 않아서 우리도 말려든 사람을 못 찾는 경우가 가끔 있다. 무엇을 숨기랴, 나도 몇 번이나 말려들었다가 신사에 거대한 섀도가 나타나고 페르소나에 각성했을 때가 되서야 구조되었다.

[사람 찾기에는 딱 좋은 날이네.]

"구조에는 최악의 날이고."

요즘 도는 12시의 소문은, 말려들었다가 미처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이 여러 곳에 알리면서 퍼진 소문이다. 일단 보이는 족족 정보통제를 가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통제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지금도, 이 도쿄 곳곳에서 섀도 타임에 말려든 사람들이 목숨을 벌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혹은 도망치고 있거나.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저것들은 끝이 없네요."

"대화 중에 끼어들지 않는 건 불문율인데 말이야. 그런 상식조차 없다니."

"섀도한테 지능을 기대하는 거에요?"

입은 잡담, 페르소나는 전투. 다시 한 번 내 페르소나가 섀도들을 묶고, 히메카와 씨의 페르소나가 섀도들을 차례대로 격파해나간다. 증원되는 숫자보다 격멸되는 숫자가 빠르다. 이대로라면 지시대로 금방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이동할 곳이 어디야?"

[그쪽 위치에서 빨간 불 켜진 건물 보이지? 거기 옥상. 나도 거기 있어]

아키하도? 의외다. 평소에 전선에는 그닥 나서지 않던 아이다. 그야 페르소나 자체는 강력하지만, 단체전에서 마구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매우 중요한 감지능력도 갖추고 있으니 더더욱 후방에 박혀 있는 아이인데.

[거기서부터 나랑 히메카와가 포격을 날려댈 거야. 도묘지는 우리들 방어.]

"아아, 그런 뜻이구나. 알았어요. 곧 그리로 갈께요."

오늘같은 날에는 전방도 후방도 없다는 건가. 난전이라는 건 그런 거라지만 역시 왠만하면 어린아이는 뒤에 놓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지난번에 만난 다른 단체 쪽 사람도 말려든 아이들을 전부 뒤로 보내고 혼자서 보호하고 있었지. 장갑처럼 손에 끼우는 연극용 인형처럼 생긴 페르소나가 인상적이였다.
'불행하게 말려들어간 무력한 아이들을 지킨다' 그 사람이 말했던 거지. 전력이라면 일단 쓴다는 우리 쪽에 비하자면 양심적이고 올바르다. 부끄러워질 정도다.

[그럼 빨.... 이런, 그쪽에서 6층짜리 건물 하나 보여? 거기 2층에 사람 있다.]

아키하가 곤란한 듯 혀를 찼다. 6층짜리 건물. 주변을 둘러보자 금방 찾았다. 형형색색의 유리로 이루어진 도시 속에 어우러진, 또 다른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빌딩이다. 건물의 유리창, 그러니까 모든 구조물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 안에서 무언가 번쩍번쩍 빛난다. 마치 색깔을 입힌 조명을 보는 것 같다.

"뭐야, 구조.... 는 아니잖아. 저거 아무리 봐도 페르소나로 싸우고 있다고."

가까이 있는 우리보다 아키하의 감지가 빠르다니, 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걸까.

"가서 도와주나요?"

[그게 말이야...... 오늘 위에서 사람 나왔다.]

"......."

이번에 레이나가 일으킨 테러의 여파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 같다. 섀도우 워커는 특성상 경찰 상부의 지휘나 결정과는 상관없이 단독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경찰 윗쪽의 눈 밖에 나버렸고, 이번 사건을 통해 경찰 윗쪽에서 확실히 섀도우 워커를 손에 넣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제는 자위대 쪽 사람이 찾아왔더니, 오늘은 경찰의 높으신 분이다. 황실에서 특사를 보내도 안 놀랄 자신이 있다.

[일단 도와주고, 가서 페르소나 소환기 회수해줘. 그리고 바로 이쪽으로 오고.]

통신은 거기서 끝났다. 나와 히메카와 씨는 서로를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까요?"

"어쩌긴 뭘 어째. 언제나처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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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동족을 저렇게 학살해도 괜찮은지 아이기스는 묻고 싶습니다."

"시끄러워!! 내 동족 아니라고 몇 번을 귓구멍에 쑤셔박아줘야 알아들어쳐먹을래?!"

검은 섀도, 소의 머리뼈를 달고 있다. 쇠사슬에 묶인 검은 천 같은 몸뚱아리가 날뛰고, 양 뿔에서는 검붉은 매연이 뿜어져나온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그림자가 덩어리져 올라와서, 그 속에서 다시 손이 뻗어나와 동족인 섀도들을 학살하고 있다.

"애초에 난 라비리스 그년이랑은 다른 '인격'이라고!"

"세들어 사는 주제에 집주인에 관해 그런 폭언을 날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총소리, 총소리, 그리고 폭발음. 강렬한 굉음에 귀를 막지 않고서 버틸 수가 없다. 온 몸에 무장이 달린 안드로이드가 섀도들을 유린한다. 조준하고 쏘는 건지, 마구잡이로 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섀도가 죽어나간다는 결과는 동일하다. 건물을 통째로 구워버리는 화력에 이성이 없는 섀도들조차 주춤한다.

"그럼 내가 왜 나와있는지 설명해볼래?!"

은색에 가까운 청록색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노란 눈동자를 띈 여성이 화난 든 소리치자 그에 따라서 섀도가 괴성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한다. 여자가 자기 몸보다 큰 도끼를 휘두르고, 거기에 맞춰서 섀도가 팔을 휘두른다. 그 동선에 걸린 섀도들은 전부 다 찌부러지고 조각난다.

"역시나.... 오랫만에 동족학살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떼를 쓴 겁니까.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섀도의 가능성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나라고! 섀도 같은 게 아니야!"

"그건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나저나 숫자가 대규모로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는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대로, 섀도가 끝없이 몰려들고 있다. 아마 본능적으로 이 둘이 오늘 가장 위험한 적 중 하나라는 걸 눈치챈 거겠지. 수 많은 섀도를 찢고 자르고 뚫고 태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상태라면 다른 곳은 조금 여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넘치고 있다.

"길 반 섀도 반이라고! 한 번에 구워죽이기 딱 좋잖아! 마침 저기에 장작도 가득하고! 그 전에 이놈들부터 죽이고!"

섀도의 팔이 한 번 휘둘러진다. 이미 미용실이였던 무언가가 된 미용실은 이번에야말로 완벽히 미용실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섀도 타임 속에서도 용케도 제 모습을 비슷하게나마 유지하고 있던 곳이 결국 사라졋다. 섀도를 지우기 위한 주먹은 미용실을 지워버렸다.
그리곤 달려들 틈을 주지 않고 또 한번 주먹. 이번엔 붉은 피 같은 액체로 가득한 4층건물 크기의 사이키델릭 수조를 박살낸다. 4층짜리 수조는 유리가 깨져나가듯 산산히 깨져나가 붉은 내용물을 토해낸다.

그리고, 붉은 피의 폭포 위에 검붉은 매연이 들러붙었다. 매연이 붙은 곳 부터, 마치 피를 휘발유로 착각한 듯 타들어가며 불의 폭포로 변했다. 폭포는 강이 되고, 불의 강은 연필로 박박 그어놓아 그려놓은 사람 모습의 섀도를 장작삼아 더 검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잘 탄다! 구워! 태워! 찢어!"

섀도 위로 올라가 잠시 몸을 피한 섀도의 조종자 ----아마 이름이 라비리스라고 했었던가. 이중인격 비슷한 게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저런 면일 줄은 몰랐다. 레이나의 말대로라면 한 쪽은 사투리가 인상적인 학생회장이라고 했었으니, 저건 남은 한 쪽이겠지.

"잠깐 나랑 같이 보트 좀 타자!"

"무슨 짓"

라비리스는 아이기스를 낚아채고는 자기 페르소나 위에 태웠다. 뭔가 불만을 큰 소리로 말하려고 한 아이기스지만, 타죽으면서도 몰려드는 섀도들 때문에 입을 다물고 전투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불의 강 한가운데를, 마치 보트처럼 거니는 라비리스의 섀도. 사람 형상의 무언가가 끊임없이 흐르는 불 속에서 춤춘다. 그 안에서 혼자 유유자적 떠다니는 검은 섀도를 향해. 마치 손을 뻗어 지옥에서의 구원을 바라는 듯 하다.

"정원초과다!"

도끼질에 쓸려서 조각나는 것은 불지옥 속에서는 구원일까.

"그냥 조용히 구워지라고! 조각나고 싶으면 이쪽으로 오고!"

타닥타닥. 사람 같은 게 타들어가는 소리. 라비리스의 페르소나가 내는 것 과는 다른 연기들. 섀도인 걸 알고 있지만 결국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참상이다. 연옥 속에서 두 기계만이 무감정한 노동을 반복하고 있다. 잘 구워진 섀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다. 손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일이라면 손님의 유무는 알 바 아니라는 듯.

"자매기라는 게 이런 취향이라니.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겁니다."

"앙? 귀염성 없는 여동생년한테 잠깐 보트투어 좀 시켜주는 게 뭐 어때서? 게다가 좋은 보트잖아?"

"차라리 나이스보트가 나을 지경입니다."

의도적으로 제작한 불지옥. 중간중간 보이는 또 다른 액체가 가득한 수조를 깨트려 세를 불리고 있다. 이 시간을 모두 태워날리려 하는 듯, 라비리스의 웃음소리가 높아져간다. 옆에서 질린다는 듯 쳐다보는 아이기스.

"나이스보트? 뭐야 그거."

"몰라도 되는 것입니다."

불의 강 속에서 섀도가 춤춘다. 그 모습에 자기도 열광한 듯 더 날뛰는 라비리스. 마치 무대 위에 선 아이돌 같다. 열광하는 섀도 관객 앞에서 춤추는 섀도 아이돌. 관람료는 아마 섀도들의 목숨.
나도 여기서 더 지켜보다가는 저 무희에게 관람료를 지불하게 될 지도 모른다. 콘서트는 공짜 관람이 제맛인 법.

"돌아가자, 송버드."

진한 푸른색 깃털을 가진, 마치 사람같은 다리를 갖고 있는 새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 곳곳에는 안 들키고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계장치 비슷한 것들이 가득 달려있다. 이게 바로 내 페르소나, 송버드다.

"어차피 더 이상 볼 것도..... 응?"

조용히 돌아갈 채비를 하던 도중, 불의 강 속에서 이질적인 무언가가 보인다. 분명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색깔이 보인다. 옷이 보인다. 확실하다, 사람이다. 여성이다. 나이는 25세. 페르소나를 통해 알아낸 정보다.

"뭐야? 민간인이 말려든.... 것 같지는 않군."

불에 타지 않는 사람이다.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띄고서 조용히 라비리스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지옥불이 그녀도 구워버리기 위해서 몇 번이고 들이닥치지만, 그녀는 아무런 상처도 화상도 없이 강 속을 걸어왔다. 마치 여신이 산책을 나온 듯 하다. 수증기의 장막이 그녀를 보호하듯 감싸, 한층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페르소나 사용, 확인했습니다."

신비의 여신에게 불의 강 정도로 상처를 입힐 수 있을까.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순간이지만 이 하야미 카나데가 다른 여자의 외모에 질투를 느낄 정도의 압도적인 미모. 그리고 마치 지상에 산책을 나온 듯 한 신비감.

"온천물이 조금 뜨겁네요."

"......하?"

그리고, 불타는 지옥의 광경 정도로는 흔들림조차 줄 수 없는 의연함.

"처음뵙겟습니다. 타카가키 카에데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그 섀도 위에 같이 타도 될까요?"

"......섀도가 아니야. 내 페르소나야. 그리고 탑승료가 조금 비싸다고."

"탑승료요? 지금 돈이 없는데...."

전혀 곤란하지 않은 듯, 곤란한 사정을 설명하는 타카가키 카에데. 라비리스는 그 대답이 재밌는 건지 한 번 코웃음을 치고선 도끼로 그녀의 앞쪽 공간을 일자로 베어날렸다.

"민간인한테 뭐 하는 짓입니까?!"

"뭐긴 뭐야, 일이지. 동생년아, 월급을 받았으면 그대로 축내지 말고 일을 해야 하는 법이라고."

기계다운 침착함을 잊고서 당황한 듯 라비리스를 말리는 아이기스. 자매기체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라비리스.

"어머, 혹시 강도였나요?"

여전히 마이페이스를 잃지 않는 타카가키 카에데. 얼핏 보면 그냥 얼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새 몸 주위에 수증기를 내뿜는 병이 나타났다.

"그게 아니라 저희는...."

당황해서 사정을 설명하려는 아이기스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고선 라비리스가 입을 열었다.

"섀도우 워커다! 네년이 갖고있는 페르소나 소환기를 회수해가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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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와 나의 첫 만남은 빈말로도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었지.

"가면라이더 같은 건 재미없잖아? 맨날 좋은 녀석들만 이기고. 그런 거나 보니까 나보다 작은 거라고."

아빠는 가면라이더의 팬이다. 내가 유치원일 때 부터 매 주말 아침만 되면 날 깨워서 TV앞으로 데려갈 정도로 말이야. 푹 자는 아이는 쑥쑥 큰다던데, 내 키가 지금 또래평균보다 낮은 이유는 아빠 때문일 게 분명해.

뭐, 작은 키는 가면라이더의 팬이 된 대가라고 생각하면 감당하지 못할 건 아니지만. 하지만 그 전에 가면라이더를 모욕한 건 용서할 수 없어! 라고 생각한 나는 그 때 앞뒤 안 가리고 레이나한테 덤벼들었고,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고 뻗어버렸었지. 기절하기 전에 본 레이나의 썩소만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팍 상한다고.

"손수 만든 주먹밥인 줄 알았어? 유감이야! 편의점에서 팔던 연어알 주먹밥을 그냥 사온 거야!"

세상만사를 빈정거리로만 취급하던 것 같은 레이나였지만, 사실은 착하고 마음씨 좋은 녀석이였어. 잘난 척은 다 하면서도 결국에는 남과 같이 있었고, 남의 작태를 빈정거리면서도 결국에는 손을 내밀던 녀석이였지. 건방지게 큰 소리를 쳐도 조금만 세게 나오면 그새 겁먹어버리는 겁쟁이 같은 면도 있었고. 이래나저래나 결국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였을 뿐이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는 거지? 그럼 관두겠어! 당신도! 경찰도! 박사도! 전부 다 같은 놈들이였어!"

레이나가 섀도우 워커를 뛰쳐나간 날, 레이나가 처음 보여준 솔직한 모습이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아.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빈정대는 게 아닌, 뱃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 한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귀에 들리고 있어. 지금도

정신을 잃은 지금도

이렇게나

....

.....?

"난죠!? 정신차려!"

"아...."

시키의 비명소리에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저쪽의 공격에 기절해버린 모양이네.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 심하게 다친 건가? 멍한 채로 다시 눈이 감겨오려고 하는 찰나에 따스한 빛이 느껴지네.

"픽시, 디아!"

아이돌 프로듀서인가. 이름은 전에 들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아. 머리를 맞아서일까.

"윈드토커!"

린이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 모양의 인형들과 싸우고 있다. 기억났다. 저 녀석들이 쏜 전격에 맞아서 잠시 기절한 거였지. 잠시라고는 해도 극히 짧은 시간인 것 같지만. 이렇게 누워있을 시간은 없는 듯 하다. 내가 잠시 기절해 있던 만큼 전력에는 공백이 생기지. 란코는 지금 현재 전력외 상태고. 게다가 시키랑 프로듀서까지 날 치료하러 온 만큼 더더욱 밀려버리겠지? 이렇게 있을 시간이 없어!

"미안! 바로 전선으로 나갈께!"

"기다려!!!"

기다릴 여유는 없어. 지금은 나서서 적을 무찌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약간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전선으로 튀어나갔지만, 그대로 땅바닥에 얼굴부터 쳐박혀버렸다. 어째서? 전신에 저릿한 고통이 느껴진다. 아파. 다시 정신을 잃을 것 같아.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아. 전기에 맞았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아직 치료 다 안 끝났다고! 란코!"

저쪽의 프로듀서, 이전까지 생각하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야. 처음에 아키하한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쁜 변태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였던 것 같네. 좋은 변태였다. 사과해야지. 잘못한 일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는 건 나쁜 일이야. 죄악이다.

"패, 패럴라디!"

란코의 주문에 몸의 마비가 가라않는다. 전격을 맞은 걸로도 모자라서 마비에 걸렸던 건가. 이런 추태를 보일 줄이야, 히어로 지망생답지 않은 실수다. 언제 어디서나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살짝 실수가 있었다.

"고마워... 난 이제 괜찮아.... 이렇게 앉아있을 때가... 으윽, 아니야!!"

"기다려! 넌 전기에 약하잖아! 정면으로 나서지 마!"

하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레이나가 다시 내 옆에 올 수 없어. 인정받고, 공을 세운다. 출세한다. 그리고 레이나를 되찾아올 꺼야. 쉽지는 않지만, 레이나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야. 레이나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나지 않으면 이야기도 들을 수 없겟지. 이야기하면 분명 서로 다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쿠로사와 순경과 미츠루 대장님도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면 다 알아줄 게 분명하다고.

"나가지 않으면....!!"

몸을 일으키고 다시 달려간다. 이번에는 전격에 맞는 일이 없도록. 장비로 약점을 보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장비는 굉장히 구하기 어렵고 만들기도 어려워. 결국엔 맞지 않도록 피하거나 맞고서도 버티는 수 밖에 없어.

"난죠를 막아라냐하응!"

뛰어나가던 나를 란코가 붙잡았다. 왜 붙잡는 거야?! 이런 곳에서 멈춰있을 수는 없다고! 레이나가! 레이나랑 만나서 이야기를......

"막지 마! 저 녀석들을 무찌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여기서 멈추면 안돼!"

"영웅이여! 그대의 몸을 생각하라! 저자들은 마왕의 권능을 거부하고 있도다! 짐의 도움도 없이 어디를 가려느냐!"

곰인형들 너머로 더 큰 곰인형이 보인다. 가디언은 아니지만, 이 근처의 곰인형 섀도들을 통솔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저 곰은 란코가 카쟈 계열 마법을 쓰거나 운다 계열 마법을 쓰면 그자리에서 바로 효과를 지워버린다. 계속 효과를 지우게 하는 걸로 저 큰곰의 행동을 막고 있긴 하지만, 그걸 뺀다면 실질적으로 지금 전투에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나가야 한다. 어떻게든 나가야 한다고.

"일단 난죠는 뒤쪽에서 불로 지원사격 부탁해~ 전면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아~"

내가 아까까지 날뛰던 정면에서는 지금 마유랑 사나에 씨가 날뛰고 있는 것 같다. 강하네, 라고 무심코 생각해버렸다. 마유와 페르소나가 긴 칼을 휘두를 때 마다 인형들이 솜을 흩뿌리며 사라져간다. 형형색색의 솜들이 쏟아지는 모습이 마치 사람의 내장 같아. 기분나빠. 우연히 본 고어영화에 나온 장면같아.

"난죠 씨 괜찮아요?!"

마유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나랑 싸울 생각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첫 만남이 이상해서인지 마유는 계속 날 싫어하던 것 같던데, 지금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네. 다행이다.

"마유! 왼쪽!"

"알고있어요!"

이쪽을 쳐다보면서, 섀도를 보지 않고서 왼쪽으로 일본도를 휘두르는 마유. 그것도 한손으로. 적당히 대충 휘둘렀는데 섀도가 잘려나가면서 솜을 뱉어내고 있어. 힘이 무식한 건지 칼을 잘 다루는 건지.... 명백히 전자일 확률이 높지만.

"린! 저 노란 곰인형들부터 먼저 처리해!"

방금 나한테 전격을 날린 인형은 노란색 곰인형이였다. 아마 속성별로 알아보기 쉽게 색깔을 변화시킨 거겠지. 왜 그런 배려를 해주는지는 의문이지만, 섀도한테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알았어. 마하갈!!!!"

사나에 씨의 지시에 린이 바람을 날린다. 폭풍과도 같은 강풍에 노란 곰들이 바람에 날라가고 찢겨진다. 노란색 개체들은 그런대로 튼튼하던데 린의 마법에는 한방에 찢겨나간다. 혹시 약점인 걸까.
린이 페르소나로 폭풍을 만들며 노란 곰들을 다 제거해간다. 하지만 동시에 붉은 색 곰인형들이 린에게 불덩이를 날린다.

"위험해! 마카라 콘!!"

린의 안색이 시퍼래지기 전에 사나에 씨가 옥수수를 던.... 뭐야? 진짜 옥수수를 던지네. 그것도 린한테.....
라고 생각하는 건 일순간 뿐이다. 린 근처까지 날아간 옥수수가 방어막을 만들었다. 그대로 불꽃의 세례를 모두 다 막아내고, 그대로 튕겨내버리고 있잖아. 옥수수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저렇게 쓰는 아이템인건가.

"덕분에 살았어!"

"살았어 '요'겠지? 꼬마야?"

"덕분에 살았어요 마하갈!"

"이게?! 사나에 언니 고마워요라고 해야지!"

난 상당히 위험한 상황으로 느껴지지만, 사나에 언니는 이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롭게 린의 말에 딴죽을 걸고 있다. 정작 그 린은 호흡이 가빠서 발음이 제대로 안 되서 의도치 않게 받아친 것 같지만.

"히카루! 전기 쓰는 놈들은 린이 다 치웠어! 빨리 나와! 총각은 계속 뒤에서 회복 부탁해!"

드디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어! 빨리 나가야지! 난 대답도 없이 바로 전선으로 뛰쳐나갔다. 도착한 곳에 약간 있던 섀도우를 한번에 날려버리곤, 모여있는 섀도들에게 파이어브레스로 불을 질러준다. 그리고선 다시 한 번 돌격이다! 한번에 적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섀도를 닥치는 대로 날려버린다!

"뭐 하는 거에요?! 진형을 망가트릴 생각이에요?! 너무 나갔잖아요!!"

"한번에 다 날려버리면 OK인 거잖아?! 시키! 저녀석들 발좀 잠시 묶어줘!"

"알, 알았어~ 필살 석화전파!!!!"

시키의 샤카퐁크를 중심으로, 흉흉한 전파가 퍼져나간다. 불길한 괴전파에 휩쓸린 섀도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더니, 점점 돌이 되어 굳어같다. 좋아, 이거라면 갈 수 있어!

"마유! 가자고!"

"에, 에엣?! 알았어요! 그러니까...." "마구 날뛰기!!!!!"

마유와 내가 섀도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날뛰기 시작한다. 주변에 있는 섀도들이 전부 다 쓸려나간다. 돌이 된 부분은 돌조각이 되고, 돌이 되지 않은 곳은 솜조각이 되어 흩어진다. 어린아이의 동심 같은 곰인형들은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남은 잔챙이들은 사나에 씨가 적당히 정리하고 있으니.....

"이제 저 큰 놈 하나인가?"

거대한 곰인형의 오른쪽 손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비져나왔다. 왼손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진짜 곰처럼 네발로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곰의 손 근처로 검은 구체 같은 것이 모여들고 있다. 돌진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고 있는 걸까? 피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한번에 죽을거야. 그러면은 레이나도 못 만나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못 물어보겠지?

"온다!"

란코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아마 보호하는 게 고작이겠지.
그런데... 저 녀석 지금 란코 쪽을 노리고 있잖아?! 가장 귀찮은 보조요원을 노린다니, 설마 저 녀석 판단능력을 갖고 있는 건가?!

"란코! 위험해!!"

내 외침이 무색하게, 이미 곰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저 거체에, 묵직함을 갖춘 고속의 돌진. 저 상태에서 손톱 대용의 칼날에 걸리면 연약한 여자아이는 그냥 찢겨나갈 게 당연하다. 자신의 방어력을 올리는 기술은 써봣자 효과도 없고, 저 거리에서는 발동하기도 전에 맞아버린다. 몸을 던져 막으려고 해도 내 거리에서는... "잠깐 뭐하는 거야!!"

"프로듀서?!"

란코와 곰 사이에, 콜드플레이가 나타나서 끼어들었다. 곰은 기세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
프로듀서가 약간의 틈 동안 란코를 곰의 이동방향에서 빼왔다. 그리고 페르소나와 곰이 격돌했다.

"크아악!!!"

검게 뭉쳐진 에너지를, 돌진하는 힘과 함께 밀어서 같이 날려보낸 곰의 일격에 콜드플레이가 날아간다. 그것보다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괜찮은 거야?!

"으... 으윽...."

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다. 페르소나가 입은 상처가 자신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친 거잖아. 설마 이 녀석 그걸 알고서도 란코를 보호하려....

"프로듀서! 정신차려요! 프로듀서!!!!!"

일단 기절한 상태인 것 같다. 목숨에는 아직 지장이 없어. 저걸 빨리 해치우고 나면 응급처치를 하고 충분히 치료할 수 있겟지. 하지만 저걸 잡지 않으면 요원한 이야기다.

".....한번 더 온다."

싫은 예감이 든다. 모두 직감한 듯, 자세를 다잡았다. 저 곰의 오른손에 다시 한 번 검은 구체가 모인다. 노리는 것은 프로듀서. 만일 이번 기술도 프로듀서가 얻어맞게 된다면 확실하게 죽는다. 논리가 아니라, 직감으로 죽음을 느꼇다.

죽음이 담긴 오른손과 굳은 듯 움직이지 않는 왼손. 저걸 멈출 방법은..... 굳은 왼손?

"시키! 저 녀석 왼손이 굳어있어! 아까 쓴 석화전파가 먹힌 거야!!! '주살'이 먹히는 놈이야!"

"!!!!"

시키가 이제서야 눈치챈 듯 경악한 얼굴로 곰의 왼손을 바라봤다. 만일 아키하가 있었다면 바로 알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키하의 지원을 바랄 수는 없지. 이미 다른 곳에서 불꽃놀이라도 시작한 듯, 여기까지 포격 소리가 들려오고 있잖아.

"오, 온다!!!!"

"냐아아앗!!!!!!"

급하게 샤카퐁크로 마법을 준비하는 시키. 그 순간, 곰이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눈 앞이 캄캄하다. 얻어맞은 게 아니라 눈을 감아버렸어. 무서워서. 누가 죽을까봐, 혹은 내가 죽을까봐.

"KA-BOOM"

메마른 굉음, 그리고 곰의 비명소리. 내 예상을 벗어난 일에 눈을 떠 보니, 사나에 씨의 옆에 푸른 거미가 서 있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로봇이다. 푸른 거미처럼 생긴 로봇. 다만 다리는 2쌍, 손은 1쌍으로 거미와는 다르다. 그리고 얼굴 부분에 작은 포대가 들어서 있다.

"다치코마, 다시 한 번 파사의 광탄."

그리고 또 한번의 굉음, 그리고 섬광. 곰의 돌격을 저지한 걸로도 모자라서 넘어트리기까지 했다.

"시키, 지금이야!"

"알았어! 무드!"

검은 마법진이 시키 앞에 나타나고, 검은 오오라가 곰을 감싼다. 일어나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쳐 보지만, 사나에 씨가 먹인 일격이 큰 것 같네. 일어서지를 못한다.
결국엔 검은 무언가에 완전히 삼켜져서, 사라져버리는 곰. 이걸로 지금의 전투는 끝났다.

"것보다 프로듀서는?!"

"일단 치료할께. 윈드토커! 메디아!"

남자의 몸이, 빠른 속도로 생기를 되찾아간다. 란코는 옆에서 다행이라는 듯, 미안한 듯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상처가 나아지면서, 감각이 느껴지는 듯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신음소리를 흘리는 프로듀서.

[그쪽 누구 안 다쳤어? 안 다쳤지?]

아키하의 통신. 무언가 곤란한 일이 있는 것 같은 목소리다.

"저쪽 프로듀"[아무도 안 다쳤구나, 고에너지 반응이 있어서 연락해보라던데.]"잠깐 무슨"

내가 뭐라고 따지기 전에, 사나에 언니가 날 제지했다. 이치노세는 무전기에 손을 뻗고서 아키하에게 연락을 시작한다

"별 거 아니야~ 저쪽이 뭔가 하려고 했는데 그 전에 처리해버렸어~ 냐하하~ 이상 보고 끝~"

[그래? 알았어 이치노세. 그쪽에는 '이상 없음. 잘 하고 있음'으로 전해둘께. 고마워]

무전을 끊는 아키하. 그리고 사나에 언니의 표정이 영 개운치가 않아보이네. 프로듀서가 기절한 게 아픈 것도 있겠지만. 그거랑은 또 별개로 무언가가 있는 건가?

"......무슨 생각이야?"

"무슨 생각이긴 무슨 생각이야. 아키하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 내 전 직장 쪽 잘나신 분 대놓고 속일 생각이지."

사나에 씨의 표정에 담배연기가 낀 듯 했다. 침묵이 깔리고, 프로듀서를 간호하는 마유와 란코의 목소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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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아키하! 히로시마 도요카프 훌리건이! 캣츠 욕을 해가지고! 잠깐 드잡이질 좀 하는 중이야!]

[예상 외의 난적입니다. 지원으당장 여기 사람 보내! 야 무전기... 여보세요. 타카가키 카에데라고 합니다만.]

아키하는 통신을 듣고서는 고개를 젓고서 한숨을 쉬었다. 대규모의 섀도 타임이 있는 날은 언제나 이렇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아키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오늘 이쪽에 어떤 금붕어 똥이 붙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닐텐데, 왜 이렇게 생각이 없을까. 애도 아니고.
아키하가 애라는 건 잠깐 넘어가자.

"엉망진창이구만."

뭐라고 반박하려던 아키하.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쿠로사와 순경에게 바통을 넘긴다. 자기가 나서봤자 될만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아키하는 잘 알고 있었다.

"대규모 전선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통제는 불가능하고, 작전계획은 시작 5분만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

"그건 니들이 못해서겠지."

아까부터 시시콜콜 트집을 잡는 경찰 쪽의 간부의 이름을 상기해내려던 아키하는 이내 그 쓸모없는 작업을 포기했다. 권력기관 사이의의 정치적 알력 쪽은 아키하에게 있어서 흥미 바깥의 일이였고, 아키하는 일반적인 천재가 그렇듯 흥미 바깥에 일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다만 쿠로사와를 비롯한 사람들이 질책당할 때 마다 불쾌감만 싸여갈 뿐이였다.

[아키하! 이쪽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에 포격 날려!]

"기다려. 금방 날릴게."

한두곳에서 싸우는 게 아니다. 오늘 이 도쿄는 유리 빌딩숲 속의 전쟁터고, 아키하는 그 안에서 모든 걸 보는 망원경이자 적을 부수는 대포였다. 동시의 자신의 이론을 실험하고 있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어이! 망할 애새끼야! 듣고 있냐?! 아키하한테 무슨 막말을 하는 겁니까!!!]

[무전으로 대화하다니... 너무 무정하지 않아요?]

"듣고 있어. 이쪽에서 반응도 확인했고. 지금부터 말하는 포인트로 몰아넣을 수 있겠어?"

무리이든 말든 상관없다. 다른 수는 있으니까.

"다 날려버려, VIKI"

아키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페르소나로 포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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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불에 고구마를 구우면 맛있답니다."

불의 강은 가뭄에 시달린 듯 말라붙고, 바닥에는 물줄기가 남아 타오르고 있다. 강바닥 도로의 갈라진 틈 사이로 붉은 열기가 아직 남아서 조금씩 꺼져가고 있다. 그 틈 사이로,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고구마를 굽는다면 그야 맛있기는 할 것이다.
다만 그걸 구워먹을 정도로 강심장, 혹은 괴짜라는 어려운 조건이 붙는다는 게 문제다. 카에데가 둘 중 어느 분류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히 알 수 있다.

"소환기를 이쪽으로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카에데의 한 박자 어긋난 여유로운 말에, 아이기스는 무정하게 용건만을 대답으로 내놓았다. 이 경우, 페르소나 소환기의 회수가 그 용건에 해당한다.
어딘가의 높으신 분들께서 근엄히 말씀하시길 "페르소나는 무기 같은 거고, 일반인들이 무기를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페르소나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소환기는 우리가 회수한다!"라고 하셧다. 이 소환기가 없으면 페르소나 보유자들이 섀도 타임동안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선 경찰의 힘을 믿으라고 주장하지만, 그 경찰들조차 자기들 몸 하니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시간 동안, 공권력이 미치는 곳은 공권력 자기 자신에게 한정된다.

"이게 없으면 제 몸을 지킬 수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순순히 소환기를 내놓겠는가. 자기 자신이 한 말조차 지키지 못하고, 남의 것을 가져간만큼 대가와 보상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라는 건 도둑에게 금은방을 맡기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결국 억지로 가져가려는 쪽이 경찰이 되었고, 경찰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경찰과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다.

"예전에 여러분들을 믿고서 소환기를 내준 적이 있지만, 결국 여러분들은 제 때 힘이 되어주지 못했죠."

"언니 말 잘하는데? 그 말 우리 윗대가리 앞에서 해 줬으면 하는데. 일단은 같이 올래?"

어차피 말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테지만 말야, 라고 라비리스가 덧붙였다.

"음...."

대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 정도야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카에데가 고민하는 듯 신음소리를 내는 건 단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놀리기 위해서일까.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대답은 NO다.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고 모두 다 알고 있던 답이다.

"역시 안되겠어요. 사람 얼굴 앞에 도끼를 휘두르는 사람은 믿을 수 없으니까요"

"그 따위 적당히 가져다붙인 이유는 안 필요하잖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잔불이 내뱉은 마지막 열풍들을 흩어내며 돌진해오는 섀도우 라비리스. 도끼는 집어넣고, 페르소나를 앞세워서 오는 게 그녀가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인내심과 자제심이다. 어찌 되었든 상대는 민간인이다. 지난번처럼 대놓고 악의를 앞세워 습격해오지 않는 이상, 심한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는 인식은 섀도우 라비리스의 머리속에도 제대로 박혀 있었다.
그 '심한 상처'의 기준이 남들보다 좀 넉넉할 뿐이다.

섀도우 라비리스의 페르소나, 아스테리오스가 흉측한 손으로 카에데를 공격했다. 손톱으로 잘라내고, 주먹으로 으깬다. 양 손으로 꿰뚫은 다음 그대로 좌우로 찢어내버리기도 하고, 손톱을 깊숙히 박은 다음 남아있는 불구덩이 한가운데로 던져서 쑤셔박는다.

"먹히질 않습니다."

"알고 있다고!!!"

그런데도, 타카가키 카에데에게는 손조차 닿지 않는다. 지금까지 아스테리오스가 찢어낸 것은 그저 장막. 타카가키 카에데의 페르소나일 뿐이다. 게다가, 찢겨도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않고 바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무리 때리고 쳐도 카에데 본인은커녕 페르소나에게조차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쳐낼 때 마다 오로라처럼 빛나며 더 힘을 회복하는 것만 같다.

"아무래도 물리공격은 먹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라비리스의 뒤에서 제압용 탄을 간간히 날리던 아이기스가 말했다. 카에데를 감싸안은 오로라가, 마치 후리소데처럼 길게 늘어져서 펄럭인다. 아마 페르소나의 얼굴이라고 보이는 부분에는 손거울처럼 생긴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다.

"이년이....."

섀도우 라비리스는 이를 갈며 죽일 듯이 카에데를 노려봤다. 계속 노려봤자 딱히 무슨 수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계속 노려보고, 그것 때문에 더 분노에 휩싸인 섀도우 라비리스. 특히 저 여유롭고 은은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만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계속 유지하는 게 섀도우 라비리스를 더욱 분노로 몰고갔다. 이러다가는 현재 잠깐 잠들어있는 '라비리스'에게도 영향이 갈 지도 몰랐다.

"그래! 어디 한 번 누가 뒤지나 해 보자! 그 쳐 갈아먹을 면상을 불바닥에 뇌 직전까지 미디엄으로 구워주마!"

"미녀의 얼굴을 그런 식으로 상하게 한다니, 역시 섀도의 발상입니다."

아이기스의 감탄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튼, 섀도우 라비리스와 카에데가 한창 날뛰고 있는 사이, 아이기스는 아무도 모르게 한쪽 팔의 '탄'을 바꿨다. 만일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제압 자체는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아이기스는 생각했다. 다만 이 방법은 제압대상에게 상처가 크게 남는다. 지금 정면에서 라비리스만 날뛰게 내버려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움직이면 덥죠? 시원한 보리차라도 한 잔 마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제가 부채질이라도 해 드릴까요?"

카에데의 페르소나가 잠시 꿈틀대더니, 그 일부가 부채처럼 변해 카에데에게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반반하면 대가리가 병신이라더니 딱 그 꼴이네. 여기서 부채질 쳐 해 봤자 온풍밖에 안 나온다고. 니 과학시간에 졸았지? 안봐도 야동이다."

'내 예상이 맞은 것입니다'아이기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만 한다면 큰 상처 없이 제압할 수도 있겠다는 게 아이기스의 판단이였다. 방법만 알면 라비리스도 섀도우 라비리스도 상성 때문에 약간 고전할 지언정 제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아이기스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전 평화주의자랍니다. 지금도 공격은 하나도 안 하고 있어요. 타인을 공경하면 공격도 안 하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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