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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X신데마스X아이마스]빛나는 우리들의 황금같은 나날들!!! - 8.땅값과 건설비용 중 더 비싼 것은?(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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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8, 2014 20:45에 작성됨.

복도는 방금 내려온 셔터 때문에 지나갈 수 없다. 어디로 갈려고 해도 문 때문에 다 잠겨있다.

"콜드플레이!"

콜드플레이로 몇 번을 때려보지만 셔터도 문도 벽도 꿈쩍하지 않았다. 쿠로사와 순경이 총을 쏴 보기도 하고 린이 마법을 날려보기도 했지만 흠집만 조금 날 뿐이다. 벽을 쳐 봐도 꿈쩍도 안 한다. 환풍기가 돌아가고는 있지만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는 않다.

"체력 낭비다. 내 아르테미시아도 못 뚫는 길이다."

군청색 드레스 위에 황금 갑옷을 입혀놓은, 채찍을 든 여왕님 같은 페르소나가 분한 듯 바닥을 내리쳤다. 내 콜드플레이가 쓰는 얼음 마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마법을 사용했지만, 역시 흠집만 조금 날 뿐이다.

"마치 '모든 공격에 내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네요....."

".....정확하다. 애초에 방어목적으로 설계된 셀터니까."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입혀봤자 쓸데없을 뿐. 포켓몬식으로 말하자면, 해피너스를 물대포로 쏘는 것과 같은 느낌일까. 게다가 그 해피너스가 숲의저주나 물붓기를 맞아서 타입이 바뀐 상태다.

"키리조, 빙결 가드킬은 쓰지 않는 건가?"

"그게, 적이 가드킬 계열 기술을 쓸 때를 대비해서 그런 기술을 쓰면 자동적으로 벽 안쪽에 있는 요격장치들이 작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일 썻다가는...."

키리조 씨가 복도 한구석을 쳐다봤다.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지만, 요격장치를 보이게 만들어두지는 않았겟지. 아무튼 요격장치가 작동하면 큰일난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다. 벽 어딘가에서 기관총 같은 게 튀어나올지도.

"그런데 혹시 저 요격장치들... 우리는 안 쏘나요?"

무전기 너머에서 들린 소리로 보건데, 아마 이곳의 방어장치는 전부 다 저쪽으로 넘어갔다고 봐야 하겠지. 지금도 이렇게 우리를 가둬버리고 있고. 만일 저쪽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를 봐로 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방어 시스템이랑 요격 시스템을 따로 움직이게 해 놓았다. 원래는 한쪽이 망가져도 다른 한 쪽을 문제없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거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도움이 되는군. 다만 그 컨트롤도 언제 넘어갈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

요격 시스템이 무사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키리조 씨가 한숨을 쉬었다. 아르테미시아는 아까 키리조 씨가 노려보던 곳을 계속 노려보고 있다. 작동하는 순간 바로 날려버릴 생각인 거겠지.

"적어도 다른 사람이랑 통신이라도 가능하다면"[어라? 나 불렀어?]

"......레이나?"

무전기에서 들린 소리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정답이다. 레이나 님이다!]

"레이나! 레이나지?!"

난죠는 다급히 무전기를 낚아채서 입에 갖다대고는 몇 번이고 레이나의 이름을 불렀다.

[헹, 누군가 했더니 히카루냐]

절박한 히카루와는 대조적으로, 코세키는 냉소적인 비웃음을 히카루에게 돌려줬다. 마치 깔보고 있는 것 같다.

[이 몸은 이제 레이나 님이라고! 니들 섀도우 워커랑은 이제 아무런 관계 없지!]

"그... 그럴리가 없어! 약속했잖아! 나랑 같이 정의를 지키자고!"

[넌 언제까지 그런 넌더리나는 정의 타령이나 할 거야?!]

"그게 바로 히어로...." [또 그놈의 라이더 어쩌구냐? 가면라이더는 벌써 코스믹 호러인 가이무라고!]

"가이무도 결국은 정의라고!"

[시대는 피카레스크다!]

어라 이 자식들 갑자기 라이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왜 전대물 이야기가 아니라 라이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라이더 같은 건 요즘 전대물한테 수익에서 밀리잖아? 토큐 레인보우보다도 못한 것들이잖아.

"저기 말이지 너희들....."

[그렇게 정의나 사랑 타령이 좋으면 프리큐어나 보라고!]

"....레이나아아아!!!!! 넌 지금 해서는 안 됄 말을 했어!!!!"

"짐의 어전에서 프리큐어에 대한 비방은 용납하지 않겠다!!!!"

와우, 칸자키의 참전인가.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을 만든 둘이다. 그런데 칸자키 프리큐어도 좋아했던 거냐. 그야 나도 다크 프리큐어는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중2병 완전체이기도 하고.

"그리고 레이나라고 했나? 감히 마왕 앞에서 소악마 주제에 입을 놀리다니!"

게다가 이런 때에도 충실히 자기 캐릭터 어필이다. 성장했구나 칸자키. 다시 봤다.

[소악마?! 레이나 님은 대마왕님이시다!!! 대마왕님이 시설 보안 담당인지 뭔지 해 먹을 것 같아?! 이 레이나 님이?!]

".....아무래도 조직 내 논공행상 및 인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어린 나이에 상당히 높은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너무 높았던 모양이군. 처음에는 별 말 없길래 괜찮은 줄 알았다만....."

어느 새 존댓말은 쿨하게 던져버린 린이였다. 것보다 이 조직 진짜로 괜찮은 거냐. 승진에 불만이 있다고 지 상사를 죽이려드는 꼬마가 있다고. 나 슬슬 소속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헤드헌터 씨가 날 건져가주지 않으려나~ 여기 페르소나 교환 가능한 딜러 놀아요~

"레이나! 넌 그런 애가 아니잖아! 지난번에만 해도 좀 더 높은 사람이 됐다고 소소한 곳에서 기뻐하던 너인데....!!"

[그 나약해빠진 코세키는 이미 죽었다!!! 지금 있는 건 전 세계를 지배할 여왕 레이나님이다아아아아아아켈록켈록켈록]

목 괜찮을까 저 꼬마애. 너무 핏대를 세우다가 목이 나가버리다니. 절대로 아이돌 하면 안될 체질이네 저 꼬마.

"저기... 목 괜찮아?"

린이 걱정되는 듯 무전기에 대고 물어봤다. 무전기 너머로 켈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아하니 긴급히 물을 찾는 것 같다.

[켈록켈록.... 하아... 하아....]

"프로듀서, 저 애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머리 상태 말이지?"

"머리도 목도."

의외로 어린아이한테는 친절할지도 모르는 린이였다. 신랄한 건 여전하지만.

"레이나! 괜찮은 거야?!"

[케헥... 하아... 너한테 걱정받을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아켈록!!!!!!]

주변 사람들은 전부 다 걱정하고 있다. 무전기 너머에서는 난리가 난 듯 하다. 소음 사이로 물이랑 위생병을 찾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라고. 것보다 이게 위생병까지 부를 사안이냐.

[나, 나는 여유롭단 말이다! 봐라! 이 몸이 얼마나 여유로운지 깨닫게 해 주마쿨럭쿨럭!!!]

기침 소리가 멈추자, 갑자기 천장 쪽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지. 아까도 봤지만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닌데....

"설마!! 모두 숨을 멈춰!! 빨리!!!"

"예?"

갑자기 쿠로사와 순경이 전에없던 큰 목소리로 다급히 외쳤다.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저 쿠로사와 순경이 말이다. 대체 무슨....

"독이다!!! 독을 불어넣는 거다!!!!"

환풍기. 실외의 공기를 실내로 불어넣을 수 있다. 그리고 공기를 불어넣을 때 독도 같이 흘려보낼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환풍기에 독을 흘려보낸다는 짓은 생각도 안 할 테지만 지금 이 시설은 코세키가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 독만 구해온다면 환풍기에 독을 흘려보내는 것 쯤이야....!!!

덜컹거리는 소리가 환풍기쪽에서 들려올 때, 과거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린 순간

덜컥, 투욱.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슨 흉계인가?"

진짜로 강해진 것 같은 칸자키가 질문했다. 물론 딱히 대답을 바란 것 같지는 않고 말이지. 그리고 대답을 원했다고 한들 대답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적어도 하나 빼고는.

"비닐봉투로군...."

환풍구 사이로 떨어진 건 비닐봉투인듯 싶다. 그것도 무언가가 들어있는. 쿠로사와 순경도 긴장한 듯, 조심조심 비닐봉지 쪽으로 다가간다. 그대로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비닐봉지 안쪽을 확인한다.

"......."

".......순경님?"

.....설마, 독에?!

".......삼각김밥이다."

".....예?"

그... 삼각김밥이라면.. 그거? 편의점에서 파는 그거? 108엔(세금포함)에서 가끔씩 비싼 건 200엔이 넘어간다는 그거?

[봤느냐! 이것이 바로 코세키 레이나님의 여유다!!! 적에게 식량을 보내줄 정도로 여유롭지!!]

그러고보니 저녁을 안 먹고 왔네. 조금 배가 고파졌어..... 하나 집어먹을까? 코세키 레이나 님에게 감사하며 하나 받아가도록 할까.

"그만둬! 독을 탔을지도 몰라!"

[이 레이나님이 그렇게 졸렬해 보이느냐!!]

키리조의 제지에 기대도 안한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졸렬함을 넘어서 찌질한 데다가 유치하기까지 한 건 말하지 않는 게 좋을려나?

"아무튼 저거에 접근하지 마! 안쪽에 폭탄이 숨어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런 짓 안 한다] "저기.... 죄송한데요."

갑자기 마유가 우리 전부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까 문이 조각나서 녹아내리고 있었.... 엥?

"에에에에에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아까까지는 그렇게 쳐도 꿈쩍도 않던 문이 사라지다니...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그... 이 문 섀도 타임동안 구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든 거죠?"

"....그, 그렇다만?"

"모든 공격에 내성이라고 해서 피노코로 한번 베놈 재퍼를 썻는데 독에 걸리더니 금방 무너지던데요?"

"......."

공격에 내성이라고 했지 상태이상에 내성이라고는 안 했다.

"......브릴리언트!!!!!!"

그러고보니 우리 섀도 타임도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게 페르소나 쓰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는 건 비밀이다. 절대로 브릴리언트를 외친 키리조 씨를 무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거, 거기서 움직이지 마!]

"요모츠시코메, 포이즈마."

무섭게 생긴 시꺼먼 여성 귀신이 깔깔대며 벽에 독을 걸었다. 그대로 잠시 기다리자, 그렇게도 단단했던 벽은 금세 무너져내렸다. 우리는 보라색으로 부식되면서 조각조각나는 문을 조심스레 타넘고 지하로 향하기 시작했다.

"페르소나를 바꿀 수 있는 건가?"

"역시 특이한 건가요?"

키리조 씨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생각에 빠졋다. 아는 사람 중에 페르소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개인적인 일이라면 묻지 않는 게 좋겠지.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아무튼 계속 간다."

[가지 말라고!!!!]

그나저나 정말로 넓은 데다가 미로같네. 아직 지하로는 내려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지치는 것 같다. 섀도 타임도 아닌데 페르소나를 소환하려니 지치는 건가? 키리조 씨는 딱히 지친 기색은 없는 듯 히지만....

"아무래도 기운이 빠진 듯 하군. 미안하다만 이걸 먹고 좀 더 힘내줬으면 한다. 정신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지."

정신력을 회복시켜 준다는 캔디를 받았다. 마나포션 대용의 물건인가. 일단 입 안에 넣고 씹어보니 신 맛이 느껴진다. 덤으로 마나도 회복된 것 같고. 그러고 보니까 섀도 타임 동안 이런 걸 많이 구했지. 번거롭지만 다음부터는 챙겨다니도록 할까.

"다음은 이쪽이다."

"포이즈마!"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왜 내 말을 안 듣는거야?!?!?]

"레이나...."

난죠가 뭐라고 말하려 한 순간, 마유의 손이 난죠의 입을 막았다.

"난죠 씨, 지금 누구랑 이야기하려고 한 건가요?"

"....나는! 레이나의 친구야! 레이나를 말려야 한다고!"

"그러니까 그 레이나가 어디 있죠? 아까부터 목소리도 안 들리는데?"

[아까부터 말하고 있었거든?!?!?!?!?]

"아~ 그 레이나라는 분은 난죠 씨한테만 보이는 상상친구인가 보네요. 역시 둘 다 어린아이인거네요."

이제는 상상 속의 존재가 되어버린.... 어라? 상상 속의 존재를 어떻게 묘사해야 하지? 갑자기 왜 난 상상속의 존재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거지? 설마 내 상상속에 기거하는 신 같은 건가?!

[그러는 넌 아무리 봐도 싸이코잖아!!!!!! 상상 속에나 나올 법 한 싸이코 같은데?!]

"네~ 전 사랑에 미쳣답니다~"

어이 무섭잖아. 데우스(in 내머리속)도 도망치겠어.

[이 대마왕 코세키 레이나를 자꾸 화나게 했다간][어둠에 삼켜져라!][내 말을 끝까지 들어!!!!]

에~ 정말로~ 전혀 몰랐어~ 코세키 레이나 대마왕님이 이런 말단들에게까지 말을 걸어줄 리가 없잖아? 게다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일요일 아침에 나오는 유치원생들이나 볼 법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찌끄레기 악당 A같은 사람의 대사 같은 건 안 들어도 되잖아. 설마 이런 곳에서 복선을 뿌리지는 않겠지?

"프로듀서, 아까부터 이상한 환청이 들리는데 기분 탓이야?"

[환청 아니라고!!!!]

"이런 상황이니 지친 거겠지. 빨리 끝내고 쉬자. 그럼 좀 나아질 거야."

"상냥하네."

린의 칭찬에 머쓱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부끄러움에 뒤통수를 긁적거리고, 그 모습을 본 린이 살짝 웃은 듯 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고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첫사랑을 다시 한 번 체험하는 듯한 이 기분에 나도 모르게 두근거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니들 뭔 좋은 분위기가 되는 거야!!!!!!]

"앞에 포이즈마다."

[그리고 언제까지 나를 무시할 생각인 거야?!?]

"포이즈마! 그런데 여기 방어시설 이걸로 괜찮나요? 솔직히 독에 쇠가 부식된다는것도 좀......"

"애초에 셔터는 시간벌이나 길막기용이니까 상관없다. 녹는 데도 시간이 꽤나 걸리고, 그 동안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지. 하지만 바꿀 필요는 있는 것 같군. 방독 코팅이라도 해 둬야 할까..."

"방어와 예방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영겁의 세월을 반복해도 발끝에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이런 저열한 하책으로 뚫리는 방벽에게는 어떠한 강화라도 필요하다."

'역시 외주를 주니까 이 꼴이 나네... 그렇지만 직접 만들면 예산이....'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부여잡은 키리조 씨와 함께 아래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 1층에 도착하고 나서 조금 지났을까, 칸자키가 걱정되는 거라도 있는 듯 키리조에게 뭔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붉은 여왕이여...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그대의 권속들과 피의 맹약으로써 이어져있지 않은 지금은 오리무중이 아닌가."

"무슨 말이지?"

오오 살짝 이해하기 힘든 말이네. 하지만 란코어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 나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통신이 안 돼서 상황을 알 수 없으니 걱정이라고 키리조 씨에게 말하는 거에요."

"아아, 그런 뜻이엿군. 확실히 그건 걱정이긴 하다만..... 4층이 그렇게 쉽게 뚫리지는 않을 거다."

아니 그거 진작에 털렸는데요.

"어디까지나 그건 데이터에 대한 간섭이였지. 이번에는 물리적으로 대놓고 싸우려고 하고 있는거다. 4층의 보안시설은 작동 안 하겠지만, 내부 인원으로 어떻게든 될 거다. 예측 시스템은 보안시설이 탈취당한 순간 전기를 끊었을 테고, 다시 부팅시켜서 세팅하자면 그 이케부쿠로가 달라붙어도 꼬박 하루는 걸린다."

"그 내부 인원만으로도 괜찮나요? 오늘은 여러 곳으로 사람을 분산시켜놓은게...."

"전부 다 수비의 달인들이니까 괜찮다. 늦게 도착하지만 않는다면 여유롭게 막을 수 있지."

게다가 다른 지부의 사람들도 전부 다 이쪽에 모이기 시작할 거다, 라는 키리조 씨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다시 한 번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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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섬세한 전자장비이다. 그 성능이 올라갈수록 복잡성과 섬세함은 정비례등식으로 올라간다. 날씨를 예측하는 슈퍼컴퓨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섬세한 기계는 작은 충격에도 망가지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누구나 머리가 나쁘다고 인정하는 무카이 타쿠미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저 새끼들!!!!"

저 슈퍼컴퓨터인지 뭔지 하는 문명의 이기를 박살내버리기 위해서 무카이 타쿠미는 그런대로 준비를 해 왔다. 스폰서한테 받은 화기들부터 시작해서 엄폐물로 쓸 나무판자들이랑 휘발유나 화염병 같은 전통적인 부류에 속하는 방화도구들과 전자제품에 특효일 것 같은 네오 뭐시긴가 하는 자석까지 잔뜩 들고 왔다. 덤으로 스폰서한테 약도 받아 왔다. 준비물 중 자석을 타쿠미 자신이 직접 구해서 스마트폰이랑 같이 들고 온 탓에 자기 스마트폰이 망가졌다는 걸 깨달은 건 작전 시작 직전이였다.

즉, 폭주족인 타쿠미는 작전 시작 직전부터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빡쳐있었다는 것이다.

"누님! 이거 아무리 쳐도쳐도 재생하는데요!!!! 지금 내 존슨처럼!!!"

상반신의 옷을 벗어던지고, 하반신은 끈팬티로 중요한 곳만 간신히 가린 남자가 소리쳤다. 머리는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듯, 머리카락이 어께가지 길게 늘어져 있다. 살짝만 손대도 푸석푸석한 기운과 함께 비듬이 눈처럼 떨어질 것 만 같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됀 상태고, 입에서는 칠칠맞게 침을 흘리고 있다.

"오늘 누님이 주신 새 약이 잘 받습니다! 누님 젖꼭지에 박고 싶"

기껏 준비해 온 엄폐물이 무색하게 앞으로 뛰쳐나가서 페르소나를 쓰려고 한 알몸의 뚱뚱한 남자가 뒤로 넘어갔다. 무언가에 강하게 얻어맞은 듯 뱃살 한가운데에 움푹 들어간 구덩이가 생겼다.

"어디서 더러운 살덩이를 들이대는 거야?! 여기 있는 것들은 니들 목숨보다는 더 비싸다고!"

이전 린과 프로듀서를 구출할 때 같이 있던 쿠로사와 순경의 부하가 더러운 걸 본 듯 눈을 찌푸렸다. 약에 취한 채로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돼지를 보는 건 누구에게나 심히 불편한 일일 게 분명하다.

"쇠공?! 이 자식들 야구하냐?! 내 투볼 원빠따 실력을 보여주마! 이걸로 야구동영상을 찍을 때 마다 여자를 다 장외홈런 시켜버렸지!"

잡졸 하나가 광기어린 눈을 하고선 저쪽의 쇠공 투척도 무시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목표는 단 하나. 저쪽에 보이는 여자다. 벌써부터 이기고 나서 여자들을 전리품처럼 잡아간 다음 계속 박아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되는 듯 팬티가 커지기 시작했다.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져가 DRUG를 마시고 흠뻑 젖은 다리를 활짝 벌린다면!"

"미안하게 됐네요! 스무살 음주가무 야구팬 히메카와 유키입니다! '모사도라', 날려버려!!!!"

약간 키가 작은, 활기찬 인상의 장발 여성이 페르소나 소환기를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얀 마네킹 위에 한신타이거.... 가 아니라 캣츠의 유니폼을 입혀놓은 모습의 페르소나가 나타났다. 한 손엔 아까 던진 쇠공, 다른 한 손에는 알루미늄 배트를 들고 있다. 용도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녀의 페르소나인 모사도라는 공을 던져서 달려오던 남자의 고간에 정확히 명중시킨 다음, 쓰러져가던 남자를 배트로 멀리 날려버렸다.

"누님! 장외홈런입니다! 저 새끼 죽은 것 같은데요? 크헤헤헤!!"

"미친아! 지금 상황이 안 보여?!"

타쿠미를 빡치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 갈아먹을 부하들이다. 일단 부하들이라고 데려오긴 했지만 전부 다 약에 취해서 저렇게 쓸데없이 당해서야 도움도 안 된다. 이래서는 스폰서에게 얼굴도 못 든다. 애초에 받아먹기만 하고 튈 생각으로 가득차있던 타쿠미이긴 하지만, 아직 뜯어먹을 거리가 남은 '봉'을 그대로 버리는 것도 수지가 안 맞는다.

'따지고 보면 섀도 타임인지 뭔지에 말려들어간 거 자체가 수지에 안 맞는 일이긴 했지만' 타쿠미는 그렇게 생각하고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쏴! 더 쏴버려! 죽기 전에 한놈이라도 더 죽이고 쏘라고! 그리고 컴퓨터에도 쏴! 저거 아직 기스도 안 갔다고!"

"그렇게는 안 된다고!!"

마지막으로 타쿠미를 빡치게 만드는 세 번째 이유이자, 가장 큰 이유는 저 멀쩡한 컴퓨터다. 큼지막해서 노리기도 쉬운 게 저렇게나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도 고장나거나 부숴진 게 없다. 무너지지 않는 마천루처럼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은 느낌이 타쿠미를 더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저 밧줄 대체 뭐야!!"

"밧줄이 아닙니다! 금줄(注連繩)입니다!"

밧줄과 금줄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 타쿠미가 알 리가 없었고, 그렇기에 종이가 쑤셔넣어진 밧줄 따위에 공격이 전부 다 막혀버린다는 건 그녀를 더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밧줄이 쳐지는 곳 마다 반투명한 방어막 같은 게 생겨서 이쪽의 공격을 다 차단하고 있다.

"이 도묘지 카린을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제 '모순나선'은 당신들한테 뚫리지 않습니다!"

"......오냐,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시험 좀 해 주마! 이니셜D! 작살을 내 버려!"

타쿠미가 페르소나 소환기의 방아쇠를 당기자,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그 위에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딱 달라붙어 있다. 마치 융합한 것 처럼 보이는 형태다.

"이대로 돌격이다!!! 붉은 카포테!!!"

타쿠미의 지시가 떨어지자, 갑자기 오토바이의 스피드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도묘지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이니셜D는 바로 금줄 앞까지 초고속으로 달려와 충돌해버렸다.

"크윽...."

"스피드가 빠르면 더 쎄지는 거였지?!"

진짜로 불꽃이 튀어오르는 접전. 도묘지가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지만 점점 금줄들이 밀려나면서 풀리고 있다. 아마 얼마 버티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 '이대로라면 뚫려버려!' 라고 도묘지가 생각한 순간, 아군의 도움이 들어왔다.

"데카쟈~ 고객님 죄송하지만 여기선 유턴이에요~ 냐하하~"

"이치노세 씨!"

"참잘했어요 DMJ~ 조금만 더 버텨! 시스템 복구랑 탈취가 진행될려면 좀 기다려야 돼! 아키하가 지금 열심히 하고 있으니 힘내자고~ 우선 이것부터 처리하자!"

데카쟈 때문에 올라간 스피드가 전부 다 원래대로 돌아가버려서 어쩔 줄을 몰라하던 이니셜 D와 타쿠미에게 쇠공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타쿠미와 그 쫄다구들이 히메카와 유키를 공격하려고 해도, 도묘지의 방어와 이치노세의 방어 앞에서 무력화된다. 일방적으로 타쿠미가 얻어맞는 상황.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타쿠미는 무전기를 들고 '스폰서'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이쪽도 못 간다고! 애초에 그쪽은 당신들 힘으로 어떻게든 해야지!"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폭력적인 소리에 무라카미 토모에는 눈쌀을 찌푸리며 난폭하게 대답했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난동에는 난동으로 대접해주는 것이 이 세상의 예의였던가. 적어도 향후 폭력조직을 이어받을 토모에에게 있어선 그것은 예의범절 이전에 의무의 범주에 속했다.

[그러니까 그게 안 되는 상황이라고!!!]

"당신네들한테 준 약이 얼마치인지 알기나 해? 총은 또 공짜인 줄 알아?! 거긴 당신들 선에서 어떻게든 족쳐놔야지!!"

아직 어려보이는 소녀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험한 말을 뱉어내며 무전기 너머의 타쿠미를 협박하는 모습은 이미 야쿠자 그 자체다.

"아무튼 지금 이쪽도 꼬였어! 끊어!"

토모에는 신경질적으로 무전기의 전원을 내려버리곤 전쟁터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래쪽의 양아치들은 어떨 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람들을 부리면서 항쟁에 나선 이상 그곳에서 눈을 돌려선 안 된다라는 게 토모에의 철학이자 철칙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 철칙을 잠깐 어기고 싶어질 정도로 좋지 않다.

"부상자는?"

"심하게 다친 놈들이 몇 있기는 하지만 목은 아직 붙어있슴다."

"다행이네. 혹시라도 우리들 정체를 들킬 일은 없겠지?"

"뭐... 그야 아가씨의 페르소나에 달렷슴다."

토모에는 자신의 대답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눈 앞의 남자를 보고 보고 속이 끓는 듯 한 기분을 느꼇다. 그녀가 이걸 참는 이유는 지금 이 장소는 앞으로 그녀가 조직 안에서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는가, 앞으로 아버지의 조직을 물려받을 만한 인재인가를 판가름하는 장소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도 그걸 보기 위해서 온 거다. 토모에에게 충성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무라카미구미의 차기 패권을 노리는 간부들에게 자기 정보를 보내고 있다. 만일 형세가 토모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그 자리에서 배신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토모에는 이 믿을 수 없는 부하를 옆에 두고 있었다. 자신이 그들보다 위에 있다면 이 자는 자기 밑으로 들어올 게 확실하니까. 심복으로 쓰고, 적당히 버려버리기에 딱 좋은 인재다. 토모에에게 있어서, 그녀의 아버지가 한 말은 말은 거의 다 옳았다.

"형님! 누님! 이거 반격할만한 각도가 안 나옵니다! 엄폐물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손만 내놓고 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냥 시간만 끌면 돼!"

도로에서 민폐 끼치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들한테는 기대도 안 했다. 애초에 그쪽은 토모에한테 있어서 덤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코세키 레이나랑 같이 나눠먹을 배당금이다. 조직에 낼 상납금은 이미 준비했지만 사업이라는 건 자기자본이라는 게 중요하다. 비상시를 대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지하에서 폭주족들이 저지르는 일도 벌이에 포함되기는 하니까 짜증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아악! 나 죽는다!"

"어이, 저 놈 뒤로 빼라. 일단 이 벤에 집어넣고서 대충 빨간약 발라주고."

자신들이 한 일이라는 걸 들킬 생각은 절대로 없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을 잃을 생각도 없다. 물론 잡힐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까 벤 안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본다. 부상자가 나오면 즉시즉시 벤으로 옮겨서 치료.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면 전원 도주.

"저기.. 슬슬 퇴각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애들도 많이 다쳣고, 더 있으면 잡힐 것 같고...."

"괜찮아. 내 페르소나는 치료나 도주에는 최적화되어있으니까. 블랙 레인, 디아."

차 안을 둥둥 떠다니는 가죽점퍼에서 은은한 빛이 남과 동시에, 실려온 야쿠자의 상처가 회복되어간다. 놀람을 넘어 경악하고 있는 부하를 내버려두고, 토모에는 저 멀리 자신들의 발을 이렇게까지 묶어두는 녀석에게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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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옥상. 말라보이는 여성이 서 있다. 유기물질이 아닌, 금속질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여성이다. 만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무심코 반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흉흉한 무장들을 본다면 그럴 생각이 싹 사라질 게 분명하다.

"명중입니다. 아니, 명중당해 주셧습니다."

평소에 싸우는 섀도들보다 느립니다. 라는 안도감의 표현인지 부족함에 대한 불만인지 모를 감상을 입 바깥으로 낸 후, 아이기스는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벨트를 타고 순식간에 총알이 빨려올라간다. 적이 조금이라도 모습을 보이거나, 나올 기색이라도 보이면 주저없이 총알을 퍼부어버린다. 아무리 엄폐물 뒤에 숨어있다고는 해도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고, 한번이라도 잘못하면 죽어버린다.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곤 해도 섀도가 아닌 것에 총을 쏘는 건 싫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 말투로 키리조 미츠루 앞에서 실컷 불평불만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 좋은 일이다, 라고 아이기스는 생각했다. 생각과 동시에 왼팔로 다른 기관총을 들고서 다른 쪽에 있는 적을 쏘기 시작했다. 적은 하나둘이 아니다. 개개인이 달려드는 게 아니라, 여러 집단이 한번에 이쪽을 공격하고 있다. 대부분은 지하에서 날뛰고 있는 녀석들 같은 오합지졸이지만, 가끔씩 저기 복면을 쓴 야쿠자처럼 나름 통제가 이루어지는 집단도 있다.

원래는 이 상황을 전달해야 하지만, 그 전달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아이기스는 키리조 미츠루가 건물 안에 같혀서 바깥 상황을 모르는 상태라고 추측했고 실제로 그 추측은 한 군데도 틀린 곳이 없었다.

"이럴때 후카가 있었다면 좋을텐데....."

아니면 쿠지카와 리세나. 둘의 능력은 통신선이 끊어진 정도로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 그리고 오늘은 하필이면 그 둘이 없다. 일부러 그 둘이 없는 오늘을 노린 게 확실하다. 후카는 키리조 그룹의 신제품 개발 관련으로 연구소로 출장, 리세는 방송 일정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다. 여기가 습격당하고 있다고 연락이야 진작에 했지만 제 때 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리세는 쿠마모토에 있고, 후카는 아예 해외 연구소에 있다. 어떻게 비행기를 수배해도 제 시간에는 무리겠지.

"그래도, 바깥에 있는 적들은 감소추세니까 괜찮습니다. 곳곳에 퍼져있는 사람들도 모이고 있으니 지하가 무사하면 OK입니다. 무엇보다, 미츠루가 손쉽게 당할 리가 없습니다. 만일 방어시설만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제가 없어도 혼자서 다 정리 가능합니다. 그러니 제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없지만, 혼잣말을 해 본다. 자신의 혼잣말도 '그'에게 들릴 것을 기원하면서.

등 뒤에 달린 연장포가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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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이라는 건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작전계획 같은 건 작전시작 5분 만에 무용지물이 된다. 그 사실은 폭력을 동반하든 동반하지 않든 차이가 없다. 그녀의 인생 또한 그랬으며 그녀의 직장생활 또한 그랬으며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 또한 그랬다.

'이대로는 계란에 바위치기를 한 꼴이다. 그리고 이 실패에 대해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 즉 자기 책임이다'라는 영원불멸의 등식이 와쿠이 루미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잘못 했다가는 이번에 책임지게 되는 건 자신이다. 자신이 새롭게 일하기 시작한 곳도 결국 사회조직이고,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돌아가는 원리는 똑같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그녀의 마음 속 짐을 덜어주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이 새끼들이이이이이!!!!!! 다 박살을 내 주마아아아!!!!!!!!!"

저거한테 걸려서 죽느니 그냥 책임 뒤집어쓰고 도망치는게 낫다고 점이다. 저게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타츠미 칸지, 봉제인형 등의 팬시상품 관련 브랜드인 '타츠미'의 사장이자 수석 디자이너다. 주 거래처는 쥬네스. 덤으로 쥬네스의 차기 사장으로 점쳐지는 하라무라와 잘 아는 사이다. 전에 비서로써 일할 때 유명한 사업가에 대한 조사는 어느 정도 해 놨기 때문에 한 눈에 보고 떠올릴 수 있었다. 다만 페르소나 보유자라는 사실은 몰랐고, 저런 격정적인 모습을 가졌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여차하면 도망친 다음에 책임이 돌아오기 전 섀도우 워커 쪽으로 붙어버리는 수도 있다. 수 많은 정보와 함께. 세간에서는 그런 걸 보고 흔히 배신이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배신에 대해서 딱히 죄책감을 품고 있지 않았다.

"으랏차!!!!"

공원에 심어진 나무와 조각상들이 날아간다. 아마 엄폐물 속에 숨어있는 적들을 찾는 게 분명하다. 다만 그 찾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과는 상당히 다를 뿐이다. 와쿠이 루미는 엄폐물 째로 날려버린다는 발상은 하지 못했다. 그녀는 싸움에 익숙하지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어이! 저 미친놈이 우릴 다 날려버리고 있다고! 이거 어떻게.....]

픽, 하고 통신을 끊어버렸다. 어차피 루미가 챙겨와야 할 사람은 코세키 레이나 정도다. 나머지는 그냥 쩌리에 가깝다. 덤이다. 누가 죽든 알 바 아니라고, 루미는 그렇게 다짐했다. 여기 있는 놈들 대부분은 버려도 아무 상관도 없는 놈들이라고, 루미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다만, 작전은 작전이다. 본래 목표인 슈퍼컴퓨터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작전 실패를 뜻한다. 피해를 입혀도, 작전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면 그건 실패한 거다.

"하아... 정말 작전대로 돌아가지를 않네."

원래 작전은 방어 시스템을 레이나가 무력화시키고, 그 다음 미리 바깥에 대기하던 졸병들이 한번에 달려들어서 시설 째로 박살내고, 마지막에는 지하에 있는 슈퍼컴퓨터도 작살내는 거였다. 물론 루미도 현실적으로 시설을 작살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다. 재빨리 슈퍼컴퓨터만 파괴하고 나올 생각이였다. 하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어디로 숨은 거냐!!!!!"

"히익!"

엄폐물이나 나무를 날려가며 국지적인 번개를 동반한 돌풍을 일으키며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으니, 당연히 겁먹고 소리를 내며 도망치는 녀석도 나오는 법이다. 도망치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고, 루미도 딱히 그걸 보고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소리를 내고 모습을 보인 건 실책이다.

"거기 있는 거냐!!! 강살참!!!!"

타츠미 칸지의 제육천마왕이 한 번 주먹을 휘두르자 도망치던 사람 하나가 그자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주, 죽여! 먼저 죽이라고!!!"

몇 명인가 튀어나와서 페르소나를 꺼냈다. 어차피 타츠미 칸지에게 얻어맞을 운명일 테지만 조금이라도 반항해 보려는 자포자기의 심정일까. 하지만 그 무모함은 칸지가 깨부수기도 전에 부숴졋다. 어디선가 날아온 연장포탄에 다 맞아버린 것이다.

"저 사이보그처럼 생긴 게 예상 외였어......"

건물 루미에게 섀도우 워커의 사람 하나하나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있어봤자 키리조 미츠루 정도다. 그러므로 아이기스가 사이보그가 아니라 안드로이드라는 것 또한 몰랐다. 그녀에게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를 구분할 만한 지식은 없다. 루미의 지식은 SF나 문학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

[뒤쪽에서 습격해와요! 어떻게 해요! 지금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루미는 슬슬 퇴각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마 여기 더 있다가는 붙잡히고 말 것이다. 그 때는 그 때 대로 이쪽을 배신하고 섀도우 워커랑 협력해서 잘 빠져나갈 수 있을 테지만, 기왕이면 지금 있는 곳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는 쪽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신 같은 건 리스크가 크다는 걸 루미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계속 싸워. 조금만 기다리면 증원이 올 거야.]

그리고, 배신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보다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는 게 더 낫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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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실패야, 도망치자]

"뭐?! 무슨 웃기는 소리야!!"

섀도우 워커 본부 3층. 코세키 레이나의 일갈에 옆에 있던 하야미 카나데가 물을 찾기 시작햇다. 또 핏대를 높이다가 목이 걸려서 켈록대는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져온 물이 한 모금 분량 빼고는 다 떨어졋다는 걸 깨달은 순간 카나데는 그냥 자기가 물을 마셔버렸다.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것 같콜록콜록....."

역시나 하는 생각에 카나데가 한숨을 쉬었다.

"무... 콜록.. 물을..."

"방금 내가 다 마셔버렸어."

바닥을 굴러다니는 레이나를 보면 죄책감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쓸데 없는 배려심은 오히려 역효과다' 라는 그녀의 인생지론에 따르자면 이럴 때 배려해주는 건 상대방이 너무 큰 마음의 부담을 갖게 되므로 오히려 안 도와주는 게 올바른 처신이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인생지론에 따르면.

"호, 혼자서 다 마신... 쿨럭...."

다만 그 같잖은 인생지론의 피해자에게 있어서 그런 개소리는 어찌되든 좋았다. 일단 방금 전까지 분명히 남아있던 물이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다는 건 그 누군가의 고의 때문이라고 확신해도 되니까. 상냥함은 때론 독이 될 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좋은 쪽으로 작용한다.

[저기, 듣고 있어?]

"자, 잠깐""아아, 여기는 석류. SM영화씨 응답했습니다."

[.....말해두지만 비서 일 중에 변태적인 일은 없어. 세크리터리 같은 로맨스도 없고.]

루미의 불평이 무전기 너머로 전해졋다. 동시에 전해지는 폭력적인 파열음 속에서도 당당하고 조심스럽게 불평불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심장인 루미를 보고 카나데는 내심 감탄했다. 만일 루미의 머리 속에서 배신에 대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면 감탄이 조금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에이. 영화 재미있""무전기 내놔! 그래서, 지금 무슨 웃기는 소리 하는 거야?! 퇴각이라니!!"

코세키 레이나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무전기 너머로 다시 한 번 항의를 시도했다. 항의라기 보다는 적의와 살의에 가까운 그런 무언가였다. 작전 시작 전까지만 해도 나름 괜찮았던 레이나의 태도를 기억하고 있던 카나데는, 레이나의 변화에 상당한 위화감을 느꼇다. '정서불안정?'이라는 생각이 카나데의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이 녀석이랑 알고 지낸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동안 그런 징조는 보지 못했다.

"저기 말이야 레이나""차라리 여기서 잡혀죽는 거라면 모를까 퇴각은 안해!"

카나데의 머리 속에 도망이라는 선택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황을 다 내팽겨치고 도망치는 거다. 그리고 카나데는 그 선택지를 곱게 구겨서 머리 속 쓰레기통에 쳐던져 넣어버렸다. 딱히 일이 아니여도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저 녀석들을 얼마나....."

레이나는 이제 감정이 북받히는 듯, 숨이 넘어갈 정도로 화내고 있다. 카나데는 레이나를 보면서 잠시 생각한 다음, 일단 움직이는 게 낫겟다고 판단했다. 어떻게든 레이나를 다독여주는 게 급선무다. 이대로라면 안해도 될 실수까지 해버린다는 인식은 카나데한테 없었지만, 인식 근저에 깔린 본능은 레이나를 진정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회는 나중에 또 있을 거야. 지금은 도망치자."

레이나와 섀도우 워커의 관계가 안 좋은 건 카나데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왜인지 레이나 쪽이 그들을 일방적으로 싫어하고 있는 것도. 아무리 유능해도 결국은 어린 꼬마. 카나데 자신도 오래 살았다고는 절대로 말 안하지만 적어도 여기서 가장 나이가 많은 건 자신이고, 레이나를 도닥여줘야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꼬마를 다독여주는 일이 딱히 싫지도 않다.

"......알았어. 일단 퇴각하자."

레이나도 겨우 고집을 꺾은 듯, 카나데의 말을 듣기로 했다. 우는 아이의 땡깡을 받아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카나데는 안도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퇴각해주지는 않아! 적어도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성이 안 찬다고! 슈퍼 레이나 여왕님은 넘어져도 그냥은 안 일어난다고!"

너무 이른 안도였다.

"에?"

"먼저 가! 난 방금 천재적인 계획이 하나 생각났다고!!!!!"

먼저 가라니? 지금 안 가면 또 언제 가자고? 카나데의 머리 속을 의문과 경악이 가득 메우기 시작할 때, 레이나가 또 한 번 자신당당하게 말했다. 덕분에 모든 의문이 사라졌다. 의문은 모두 경악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말해두지만 이건 전략적 후퇴라고! 절대로 물러선 게 아니니까!"

자기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하는 카나데였다. 그리고 카나데는 먼저 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서도 움직이지 않을 정도의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아니였다. 어차피 본인의 허락도 나왔겟다, 재빨리 도망칠 준비를 시작한 카나데. 자신의 페르소나를 쓴다면 충분히 '날아서' '안 들키고'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는 찰나, 레이나의 지시가 떨어졋다.

"먼저 4층 여자화장실로 가! 거기 비품실에서 숨어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오면 같이 도망치는 거야! 그 전까지는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당할 거라고!"

그리고 퇴로를 차단당한 카나데가 아연실색해버렸다. 설마 먼저 가라는 게 그거였냐! 라고 항의하는 카나데였지만 이미 레이나는 들은 척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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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튀어!"

4층까지 어찌어찌 내려왔다. 실내에서 오토바이(할리 데이비슨으로 추정)를 타고 있는 장발 검은머리 거유 폭주족 누님을 만났다. 좋았어 이거면 상황설명은 완벽해. 그 외의 다른 건 필요없어.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려서 내 마음에 기스를 낸 것도, 옆에 널부러져 있는 이상하게 생긴 잡졸 엑스트라 AB(이하생략)도 말이다. 거유라는 건 좋은 거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속편하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늦었잖아요!"

야구점퍼를 입고 알류미늄 배트로 무장한 야구팬을 가장한 훌리건 같은 여자가 키리조 씨에게 불만스런 목소리를 냈다. 저기 금줄 너머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무녀 코스프레 한 여학생은 안도한 듯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았다. 아키하는 저 안에서 시스템 복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고, 이치노세는......

"어이 뭐해."

"응?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인간 남성의 생리적인 반응에 대한 실험?"

족히 120kg는 넘어보이는 뱃살의 남자 바닥에 알몸으로 널부러져 있다. 다리 사이에 무언가를 꼿꼿이 세우고 있지만 살에 묻혀서 잘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인다. 안 보인다고. 그런데 이치노세는 그걸 또 본다고 남자의 다리를 벌려놓고선 차마 말할 수 없는 그곳을 콕콕 찔러보고 있다. 아 몰라 안보여.

"음.... 역시 맨가슴이라도 눈 앞에 들이대주는 쪽이 효율이 높나?"

"뭘 그렇게 쳐다봐요! 빨리 말려요! 우리들은 이제 한계라고요!"

야구팬 여자가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를 그렇게 찾은 이유가 설마 저거 때문인가. 아무튼 키리조 씨가 어떻게든 해 줘야....

"부흐라! 부흐라! 제길, 슈퍼컴퓨터 때문에 제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

애초에 이쪽은 안중에도 없던 듯, 아까까지 우리가 개척해온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도망치는 폭주족을 쫒고 있다. 아무래도 헛수고가 될 것 같지만.

"시스템 상황은?"

"일단 이걸로..... OK. 이제 방어시설은 내가 전원 넣을 때 까지는 완전 해제야. 요격시설도 작동 안 할거고. 일단 지금 할 일은 슈퍼컴퓨터 복구 정도일려나......"

쿠로사와 순경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치노세의 얼굴에 그늘이 졋다. 이치노세가 꼬박 하루 걸려 복구시킨다고 하니, 아마 철야로 작업하게 되지 않을까. 그걸 생각한다면 그늘이 지는 것도 당연하다. 어린 나이에 철야을 시키는 이곳도 너무하다곤 생각하지만 내가 뭐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받아."

".....오오, 스타드리를 챙겨올 줄이야. 훌륭한 조수네."

"이제부터 철야작업일 텐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공돌이든 공순이든 결국 밤새워서 갈려져나갈 운명을 피할 순 없다던가. 아키하는 한숨을 내쉬며 스타드리를 들이켯다.

"크으~"

저 감탄사에서 연구와 야근에 절은 중년 과학자의 포스가 느껴졋다. 역시 천재 과학자에게도 야근과 잔업은 피할 수 없는 숙명같은 것인가 보다. 벌써부터 애가 나이먹은 아저씨가 되다니. 이전에 영양관리 한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지장이 있을 게 분명하다.

"아키하~ 혹시 괜찮으면 내가 만든 새 피로회복제로 생동성실험 한번 안 해볼래?"

"안해. 그리고 그 이상한 짓 그만해!"

"에~ 이상한 게 아니라고. 이건 어디까지나 남녀 공통으로 생리적인 반응이라고."

일반적으로 생리적 현상은 건물 바닥에 널부러진 돼지 상대로 일으키지는 않습니다만? 첫 만남부터 대놓고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운을 풍기던 아키하가 못 볼걸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슬쩍슬쩍 저걸 보려고 하는 게 귀엽다. 내 주포를 보여주면 반응이 어떨려나?

"......저기 말이다 마유, 왜 식칼이 내 다리 사이에 들어와 있는 걸까?"

"그야 프로듀서가 저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하니까요."

갑자기 린의 눈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란코도 이제는 부끄러움 속에 약간의 환멸이 배여나온 듯 한 눈빛을 하고 있다. 난죠는 라이더 킥을 준비하고 있다.

"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오해다! 난 결코 이상한 생각 같은 거 안 했어!"

"음, 거짓말이다! 마유! 여기서는 내가 직접 라이더 킥으로 차서 부숴버리겠다!"

"아뇨, 여기선 제가 고통 없이 한순간에 잘라드릴거에요."

끼야아아악?!?!? 누군가 나 좀 살려줘!!!!!! 요시츠네님루시펠님사탄님메사이어님벨제부브님메타트론님인수라님야훼님누구라도좋으니까제발내자손좀살려줘요!!!!!!!!

"미안하다, 놓쳐버렸다. 도망치는 것 하나는 빠르더군..... 그런데 뭐 하고 있는 거지?"

키리조 씨는 다리 사이에 식칼이 들어와있는 나와 라이더킥을 준비하는 난죠와 남의 다리 사이를 뒤젂거리고 있는 이치노세를 보고 어이없는 듯 중얼거렸다.

"살았다아아아아!!!!!!!!!!"

"영문을 모르겠군.... 뭐 좋다. 사쿠마, 흉기는 집어넣도록. 그리고 이치노세는 당장 떨어져. '처형'해 버리는 수가 있다."

이치노세가 겁먹은 듯 바로 떨어져버렸다. 키리조 씨가 싸우는 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역시 굉장히 강하나 보다. 저 마이페이스인 이치노세가 바로 말을 들을 정도면 보통 강한 게 아닐텐데.... 게다가 '처형'이라니, 단어 선택에서부터 무섭다.

"얘들 아무래도 약 먹이고 그냥 죽으라고 돌격시킨 거네. 그것도 흥분제 계열로."

변태짓이야 어찌되었든, 이치노세는 벌써 분석을 끝마친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로 조잡하게 섞었네. 대충 흥분해서 날뛸 수 있는 놈들은 다 집어넣었어. 이대로 두면 이것들 뇌혈관 같은 곳 나가서 죽을텐데 어떡해요?"

"그런 것들 그냥 내버려둬요. 빨리 돌아가서 야구나 보자고요. 오늘 캣츠 해외원정경기있는 날인데 방송 다 놓치게 생겼어."

그 만년꼴지 한신타이거..... 가 아니라 캣츠가 해외원정? 돈이 남아도나 보네. 그거 보러 빨리 가고 싶다는 이 여자도 대단하고.

"아직 돌아가는 건 조금....... 뒷정리는 어떻게 하나요?"

무녀 아가씨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확실히 이건 좀 심각하다. 벽이 한 군데 빠짐없이 푹 파여있는 데다가 사람이 한두군데 부러진 채로 널부러져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무너지고 부숴진 기물들은 덤이다.

"대장님! 우선 잔당 소탕과 부상자 구출을 우선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설 정비는 내일 해도 늦지 않습니다!"

난죠가 말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늦기 전에 빨리 레이나를 잡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 일입니다!"

레이나를 잡아와야 한다는 것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난죠가 생각하는 거랑 내가 생각하는 거랑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일단 왜 배신을 했는지 이야기는 들어봐야 하니까. 설마 단순히 인사에 불만이 있었다는 것 만으로 이런 사고를 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렇군. 우선..... 음, 전파는 통하는군."

키리조 씨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까까지는 전파도 통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찌어찌 통하는 듯 하다. 방어시설 자체를 OFF시켜놨으니 전파도 통한다는 건가? 잠깐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고 있자니 폰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발신원은 눈 앞에 있는 붉은머리.

[전원 시설에 잔류하고 있는 잔당 소탕과 부상자 확보 및 치료에 임하라]

일단 남아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전부 처리하고 체포하게 되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도 일 하는 건가? 내일은 전원 일정이 있는데... 말하면.....

"음? 아이기스인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상황은? 좋아. 바깥에서 들어온 녀석들도 다 돈좌시킨 건가. 훌륭하다. 허가? 물론 허가한다. 저항하면 '처형'해도 좋다."

말하면 처형당한다. 말하면 처형당한다. 중요하니까 두 번 생각했다. 내일 일 어쩌지?!?!?!?! 섀도 타임이야 딱 12시 지나면 끝이지만, 지금 시간이..... 10시네. 오늘 섀도 타임은 없을 지도 몰라도, 확실한 건 이 일 했다가는 새벽 2시는 넘어버린다. 저 셋은 아직 체력 약한 학생들이다.

"......."

셋은 앞으로 있을 살면서 처음인 밤샘작업에 동원되는 걸 생각하고는 얼굴을 찌푸렷다. 하루 쯤이야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 기껏 아이돌이 되겟다고 해서 와 준 아이돌인데 이렇게 둘 수는 없다.

"저기... 키리조씨."

"무슨 일이지? 바쁘다만."

"죄송한데 저희는 이만 빠져도 될까요? 그.... 내일 촬영이 있어서....."

말했다! 말해버렸어! 말했다고! 일단 저 셋에게는 먼저 도망치라는 사인을 보내두자. 사인 같은 건 없지만 아무튼 마음이 통하기를 비는 수 밖에! 내가 처형당하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저 셋은 빨리 돌려보내서 자게 해야 해!

"....뭐 좋다. 다만 조금만 더 도와줬으면 하는군. 일단 적 측 부상자들을 모아서 비밀수용소에 넘길 생각이다. 회복마법이나 응급처치가 가능하면 조금 도와줬으면 하는데."

....살았다!!!!!

"11시경에는 각자 집으로 갈 수 있도록 차량을 준비하겠다. 적 소탕은 다른 인원들로 진행할 수 있으니 걱정말도록."

말하기 전에는 바로 처형당하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만, 의외로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였다. 남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짜냇다.

"저기 대장님. 저도 가면 안될까요? 이번 캣츠 원정경기가 11시 반부터 시작인데....."

"안된다."

우선 국내 프로리그 우승부터 하고 오도록, 이라는 키리조 씨의 한마디에 무너진 야구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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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마시지 않고선 못 배기겟어!"

애가 술 마시는 거 아니다, 라는 말은 못하지. 약간 체격이 작아서 몰랐는데 알고보니 20살이란다. 술 마셔도 되는 나이라나 뭐라나. 다만 미성년자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삼가해줬으면 하는데. 특히 아이돌들 앞에서는. 뭐, 음주스캔 정도에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지는 않지만.

"히메카와 언니, 일해."

린이 히메카와 유키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린과 칸자키가 회복마법을 쓰고(칸자키도 최근 들어 회복마법을 쓸 수 있게 된 듯 하다. 린보다 효율은 떨어지는 것 같지만) 마유가 디아로는 낫지 않는 골절상이나 과다출혈을 응급처치로 상태악화를 막는다. 그리고 그렇게 처치된 사람을 방금 온 경찰차인지 범인 운반차량인지로 옮기는 게 나와 히메카와가 하는 일이다.

"에에~ 나 너무 나이가 많아서 일하면 허리가 아파~"

"짐의 권속 중에는 우주 너머에서 온 영원한 17세 외계인도 있노라. 지구에 현현한 지 30년이 넘어가는 기만자도 노동에 힘쓰고 있노라."

"......친해지는 게 빠르네요."

그러는 마유도 일하는 중간중간 히메카와랑 이야기하고 있다. 장벽을 느낄 수 없는 친근감 넘치는 태도로 근처 소녀들이랑 어느 새 융합해버렸다. 사진만 찍어서 따로 놓고 본다면 그림이 된다. 화보집으로 팔아도 될 수준이다.

"마마유는 언니랑 같이 마셔줄 거지~?"

"......죄송하지만 저 술은 조금....."

대화하는 내용만 아니면 말이지.

"자자, 그렇게 내빼는 거 아니라고?"

"내빼는 게 아니라 저 진짜로 술은 냄새도 싫어해서......."

아무리 봐도 곤란해하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 하지만 여자 둘이 딱 달라붙어 있는 광경이니 적당히 경고만 해 두고 냅두자.

"적당히 하고 떨어져, 히메카와. 일 땡땡이치면 캣츠가 멀어질 거라고."

"자자 일하자 일! 노동 만세! 캣츠 만세!"

"환자 살살 옮겨!!!!"

페르소나를 소환하고 들것에 사람을 싣고서 2인 1조(페르소나+사람)로 사람을 나른다. 그냥 업고 갔다가는 기껏 막아놓은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들것에 실린 사람을 구속용 끈으로 들것이랑 같이 묶고, 소지품을 검사하고서 마지막으로 손을 못 쓰도록 장갑을 씌워놓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온갖 안전장치를 다 한 후에야 방금 온 범인 운반차량으로 넘긴다.

"크으......."

"난죠르노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해! 포기하고 얌전히 잡히라고!"

아직 남아있던 남자 셋이 난죠에게 맞고서 쓰러졋다. 우리가 모르는 동안 위층에서는 굉장한 싸움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공원 곳곳이 날아가 있다. 뭔가 폭발한 듯 한 흔적도 많다. 방어시설은 전부 작동 안 한다고 들었으니, 이건 누군가가 남긴 흔적이라는 건데.....

"키리조 대장님! 정리 끝났슴다!"

체격이 큰 험상굳게 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여러 군데 찢기고 탄 양복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마치 다른 조직과의 전쟁을 끝마치고 온 야쿠자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눈 근처에는 흉터까지 있다. 척 봐도 경찰 신세 좀 여러번 져 봤을 것 같은 폭력배다.

"수고했다, 타츠미 칸지.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군."

"다쳣다면 제 지갑이 다쳣슴다. 시가넷TV쪽 사람이랑 저녁식사 끝나자마자 불려서 양복 차림으로 왔슴다."

타츠미... 타츠미?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타츠미라면... 그 봉제인형 메이커잖아요?! 게다가 타츠미 칸지라면...... 설마 수석디자이너 본인이?!"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그쪽이였나. 몇 번 광고로도 보고 쥬네스에서도 파는 걸 봤다. 한정판인가 뭔가를 살 때는 돈깨나 들었지. 아무튼 타츠미표 봉제인형은 칸자키 마왕님이 칸자키로 변해서 놀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어, 어둠에 삼켜지세요! 칸자키 란코라고 해요!"

".....저기...." "아,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돌이 이거 실례를.... 전 신데렐라 걸스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입니다. 여기 있는 세명이 저희 회사 소속 아이돌이고요."

그나저나 첫 인상이랑 완전히 정반대의 사람이다. 험악한 야쿠자인 줄 알았더니 봉제인형 회사의 유명 디자이너일 줄이야.

"처음뵙겟슴다. 타츠미 코퍼레이션의 사장인 타츠미 칸지임다..... 아이돌 하는 친구들이 새로 가입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너희들이냐?"

사장까지 겸하고 있는 건가. 아무튼 대답은 YES.

"힘들겟구만, 내 친구도 아이돌 하고 있는 중인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떨어져 나간다던데... 힘내라. 뭣하면 조금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도와주신다면 저희야 좋죠."

뭐, 아이돌 안다고 해 봤자 B급일 듯 하지만. 연예계에서 큰 도움은 안될 것 같다. 아무리 디자이너라고 해도 야쿠자랑 관계있을 것 같고... 야쿠자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끽해봣자 B급 아이돌이지 뭐.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 전에.... 지금 들고있는 사람을 좀 도와주고 싶은데요?"

"음? 아아 미안. 곧 내려놓을게. 내가 팬 놈들은 다 힘조절해서 팼으니까 크게 안 다쳤어."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슬슬 린이 정신적인 피로를 호소하려고 하는 시점이였는데 잠깐 쉬게 해야지. 나야 뭐 몸만 쓰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일어나 새꺄! 저기 가서 누워!"

"일어나게 했다 눕게 했다.... 망할....."

"불만 있냐?"

한마디에 깨갱 하고 고개를 숙이는 누군가의 부하 A엿다. 그러고보니까 뭔가 이사람들도 서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것 같은데.......

"나, 난 잘못 없다고! 아는 사람한테 부탁받아서 온 거니까! 그 아는 사람이... 어라?"

"그년이 우릴 갖고 놀았다는 거잖아요! 걔들은 진작에 도망쳣다고요!!"

"형님이 우릴 버리고 갔다니...."

여기 온 이유도 제각각인 듯 하다. 혹시 통일된 조직이 아닌 건가?

"아무래도 모두 다른 곳에서 제각각 온 것 같네요."

"아.. 아, 예. 그런 것 같네요. 수녀님."

금발의 수녀가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보일락 말락 뜬 실눈과 온화한 미소가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한 손에는 응급치료 세트를 들고서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치료해주고 있는 걸까? 그나저나 정말로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뭐야? 또 수녀님이야?"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타츠미 씨."

"일단 이쪽은 우리 영역이라고..... 수녀님이 무슨 일 하려는지는 알고 말리지도 않겠지만 함부로 들어오는 건 좀 삼가해줬으면 한다고."

영역이라니.... 직장 내 권력다툼이 심하나 보다. 그나저나 이 수녀님은 누구지?

"클라리스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미력하나마 하느님의 뜻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고요. 저 소녀들은 지친 것 같으니 쉬게 하는 게 어떠신지"

"저희야 고맙죠. 린! 칸자키! 마유! 휴식이다!"

지친 기색이 드러나려고 하는 셋에게 스타드리를 던져준 다음, 난 다시 일로 돌아갔다. 나랑 히메카와가 환자를 나르는 동안, 클라리스 수녀는 페르소나를 꺼내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에스겔, 디아."

......치료하는 건 좋은데... 참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저 페르소나 아무리 봐도 치료용이 아니다. 프랑스 사람인 아는 형이 예전에 보여준 그 뭐나..... 오함마 시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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