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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X신데마스X아이마스]빛나는 우리들의 황금같은 나날들!!! - 7. 승룡권! 승룡돌파! 히어로! 왕자님!(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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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8, 2014 20:40에 작성됨.

여기 올리는 것도 오랫만이네요. 그동안 조아라 쪽에서 쌓인 것들 방출 들어갑니다~

 

 

가면라이더는 애들이나 보는 거 야냐? 라고 생각하는 당신. 아마 정답이다. 그리고 후뢰시맨이니 뭐니 하는 전대물은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말하는 당신, 잠깐 섀도 타임으로 기어나와. 나랑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대화 수단은 페르소나.

......물론 지금 들어오면 곤란하지. 지금 한창 섀도들과 달밤에 활극을 벌이고 있는 시점이니까. 나 살기도 바쁜 시간에 대화는 무슨. 페르소나도 경찰봉도 대화의 대체수단은 안 된다고. 페르소나는 어디까지나 섀도에게. 그리고 섀도는 대화라는 걸 시도해주지 않지. 그렇다면 페르소나로 대화하는 수 밖에! 이것이야말로 인간과 섀도의 대화인 것이다!
는 무슨. 적어도 대화는 상대방을 기타로 내리찍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내리친 상대방이 날아다니는 그릇이 아니라는

조건도 필요하고. 그리고 음..... 아무튼 지금 필요한 건 대화가 아니지!

"지금이다!!!"

"라이더 킥!!!!!"

뭔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갑옷을 입은 페르소나가 섀도들한테 불꽃을 쏴댄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파이어브레스'같은 느낌이다. 그럼 방금 라이더킥은 누구냐고?

"난죠! 한대 때리면 빠져! 너무 가까이 붙어도 위험해!!"

내 얼굴에 라이더킥을 멕여준 장본인이지 뭐. 함자는 난죠 히카루라고 하던가. 난죠르노라고 하길래 조직폭력배를 동경하는 얼빠진 이탈리아 청년인줄 알았는데 완전히 반대였다. 정의의 히어로를 동경하는 일본 여자아이였다.

.......아니 뭐, 아직 나이도 어려보이고 하니 나이답다면 나이다울 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이 나이 때 여자아이는 가면라이더보다는 프리큐어 아닌가? 아니면 아이카츠라던가.

"괜찮아! 히어로는 죽지 않아!"

붉은 갑옷을 입은 페르소나가 불을 뿌리는 곳 한가운데에서 말하니 그런대로 그림은 나온다. 뭐 실제로 위험하지는 않아 보이고. 이 정도 섀도라면은 한두대 쯤 '맨몸'으로 맞아도 큰 위협은 안 된다.

"그래도 아픈 건 아프다고. 이치노세도 오늘은 섀도 타임에서 싸우는데 니가 다치면 곤란해."

오늘은 이치노세도 섀도 타임동안 싸운다는 듯 하다. 평소에는 자기 건물에 틀아박혀 있는 녀석이 왠일인가 싶었지만, 갑작스럽게 섀도 타임 예보가 떠버린 덕분에 여러 곳에서 전력공백이 발생해버려서 그걸 메꾸려고 직접 뛰어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이치노세에 대한 평가를 살짝 업그레이드 시킬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괴상한 연구소 쪽에서부터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다고는 하는데, 길에 섀도들이 많아서 문제라는 듯 하다.

그리고 마유도 그 쪽에서 달려오고 있다. 장비 받으러 갔다가 갑작스럽게 섀도 타임 이야기가 나와서 그냥 그쪽에서부터 여기까지 오기로 했다.

"괜찮아! 내 '카부토'는 무적이라고!"

아무튼, 지금은 난죠 히카루와 같이 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천재박사의 충고를 한 귀로 흘려버리는 건가. 패기가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물론 난 저런 패기는 없고 있어도 안 부리지만.

"짐의 조력도 있도다! 작은 영웅이여, 그 힘을 마음껏 보이도록 하라! 스쿠카쟈!"

칸자키는 슬슬 스쿠카쟈 마왕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팔아먹어도 될 것 같네.

멍하니 생각하면서 페르소나로 주변 적들을 공격하던 도중 갑자기 캉, 하는 소리와 함께 페르소나의 공격이 어딘가에 막힌 걸 깨달았다. 급히 떨어져서 살펴보니, 이번엔 하얀색 접시들이 나타났다.

"코펠이다! 바닥에 떨어져도 안 작살난다는 그거! 린! 지원 부탁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린의 윈드 토커카 폭풍같은 바람을 날렸다. 이어서 나도 얼음들을 퍼부어주었다. 하지만....

"안 먹히잖아?!"

"흠... 내 총도 잘 안 박히는군."

그나마 쿠로사와 순경의 총은 어느 정도는 박히는 것 같지만, 저 숫자를 상대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난죠 역시 불을 질러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버리고 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만둬. 여기서 쏘면 말려든다."

아키하가 가디언 탐색을 잠깐 멈추고 공격을 날리려 했지만, 쿠로사와가 제지했다. 여기서 아키하가 페르소나를 썻다가는 우리 전부 다 말려들어갈 게 뻔하다.

"갑자기 불리한 상황이 되어버렸네, 프로듀서."

".....일단 마법을 퍼부어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는 걸로 할까?"

갑작스럽게 나타난 본차이나 그릇들 때문에 위기에 몰렸다. 그릇 안쪽에 흉측한 얼굴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리를 보고서 분노하는 듯, 비웃는 듯 켈켈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느낌 때문에 온 몸에 절로 오한이 들었다. 옆에 있는 린도 같은 느낌을 받은 듯 움츠러들었다.

"이녀석들....."

섀도들도 승기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걸 깨달은 듯, 켈켈거리는 기분나쁜 웃음과 함께 전부 다 돌격을 시작했다.

"물, 물러서지 말지어다! 라쿤다! 라쿤다!"

그러는 칸자키야말로 뒤로 물러서지 마! 라고 해주고 싶지만, 애초에 칸자키는 직접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지원해주는 타입이다. 게다가, 벌벌 떨면서도 착실하게 저쪽의 방어력을 깎고 있다. 어차피 원거리에서는 잘 먹히지도 않으니, 방어력을 떨어트린 다음에 근거리에서 처리하는 게 났다. 칸자키가 이걸 다 계산했을 것 같지는 않아도.

"....온다."

누가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에 모두가 침을 삼켰다.

"켈켈켈... 케헤렉!!!"

그 말이 신호였을까, 말이 나온 그 순간 섀도들 사이, 정확히는 뒷편에서 큰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갑자기 마법공격으로 나온건가 해서 크게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다르다. 본차이나 접시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에?"

부유가 아닌 비행을 선택한 접시들은 반조각난 모습으로 공중 높이 날아올려져서는 바닥에 떨어지며 그대로 깨졋다. 당황한 듯 우왕자왕하는 도중에 몇 마리가 더 같은 꼴을 당하자 그제서야 반은 우리한테 오고 반은 저쪽으로 가버렸다.

"반 정도라면!!"

근접해 붙은 놈들을 각자 공격해서 쳐낸다. 칸자키가 걸어놓은 라쿤다가 방어력을 낮춰줘서인지, 접근하는 족족 쓰러지고 있다.

"린!"

"난 괜찮아!!"

페르소나 뿐만 아니라 사람도 나서서 싸우고 있다. 난죠는 아예 물을 만난 듯 날뛰고 있고, 린도 커터칼을 휘두르며 어떻게든 저항하고 있다.

나도 골프채를 휘둘러가며 그릇을 하나하나 깨트리고 있다.

"쿠훼엙!"

"적어도 화분이였으면 좋겠어! 가게에서 쓸 화분 값은 굳을 테니까!"

"난 그릇! 이번에 이사올 때 집에서 그릇을 별로 안 챙겨 왔어! 설거지가 쌓이면 밥을 못 먹는다고!"

뭐, 잡담할 여유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방금 전 보다야 훨씬 편해진 건 분명하다. 그런데 저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건.....

"냐, 하하하~ 하아아~ 하아아~ 응!"

"프로듀서한테서 떨어져!!!!!!"

".....새로운 섀도다!"

"새로운 섀도?! 프로듀서?! 괜찮으신가요?!"

아니 그러니까 너 말이야 너. 니가 섀도라고요 이 아가씨야.

"피노코! 일단 전부 다 정리해!"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페르소나)가 메스를 들고서 그릇들을 반토막내면서 날려버린다. 한 번 휘두를 때 마다 바람도 같이 나오는 거냐. 보통 잘리면 그냥 그 자리에서 떨어지잖아. 저 페르소나 얼마나 힘이 좋은 거야.

"케게겔!!!"

"이게!!"

....그리고, 마유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적어도 마유의 힘은 자기 페르소나 만큼은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유는 식칼이다. 저거 지난번 쥬네스 갔을 때 본 물건이다. 똑같은 거 팔고 있었다. 꽤나 비싸서 옆에 있는 싸구려로 사왔었지. 아무튼 마유는 저것만 가지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공의 경계를 찍어대고 있다. 혹시 직사의 마안이라도 갖고 있는 건가? 라고 착각할 정도다.

"가디언 반응! 이쪽으로 나오려고 한다!"

"왜 그 녀석들은 맨날 우리 근처로 오는 거야?!"

"그거야 지금 움직이는 사람들을 찾다 보니까 그렇지! 아무튼 잡담할 시간 없어!"

하늘이 일그러지고, 그곳에서 큼지막한 그릇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호위하듯 다른 그릇들이 더 나타났다.
자기는 지금까지 나타난 놈들이랑은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 그릇 한가운데에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저놈이야!"

아키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유가 땅을 박차고 달려나간다. 거대한 그릇은 뒤에서 무언가 마법을 준비하고 있고, 호위하는 그릇들과 다른 자잘한 녀석들이 마유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위험한 사람은 도와주는 것이 히어로!"

어느 새 날아든 난죠가 마유 근처의 잡병들을 정리하면서 마유가 갈 길을 만들어줬다. 불로 싹 구운 다음 주먹과 다리로 후두려패는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저거?! 위험해! 피해!!"

가디언 주위로 나타난 검은 에너지를 보자마자 아키하와 쿠로사와가 다급하게 소리쳣다. 설마 무언가 위험한 건가?

"이럴 때 등장하는 게 바로 이치노세 님이지~ 샤카퐁크(SHAKAPONK)는 패트리아이를 사용했다!"

괴상한 원숭이의 얼굴 같은 페르소나가 이치노세 뒤에서 나타났다. 사용자의 정신상태를 반영한 건지 온갖 색들이 기분나쁘게 칠해져있는 데다가 표정까지도 이상하다. 침팬지인지 오랑우탄인지 구분이 안 가는 건 덤이다.

"떨어..?!"

"....네가 떨어져."

원숭이에 눈에서 나온 광선이 가디언의 움직임을 정지시켜놓은 사이, 달려든 마유가 식칼을 섀도에게 꽂아넣었다.

".....우와....."

그대로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칼을 한 바퀴 돌리고, 그대로 역수로 잡아 위쪽으로 베어서 잘라버린다. 마치 연한 생선살이 잘려나가는 듯 찢겨나가는 가디언. 가디언이 잘려나간 자리에서부터, 세상이 원래 모습대로 잘려나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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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가 들어왔어."

가디언이 정리되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공원 한 가운데. 저 멀리서 산책중이던 커플이 굉장히 눈에 거슬린다. 이쪽은 죽을 고생 하면서 섀도랑 싸우고 있는데 저것들은 둘이서 사이좋게 알콩달콩 앗흥하고 있다. 누가 공원 한 가운데에 바퀴벌레를 풀어놓은 거야?

"방해라니?"

커플들에 대한 분노를 담아서 저 둘의 알콩달콩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아키하의 이야기가 우선이다. 방해라니. 대체 무슨 말일까. 쿠로사와 순경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집히는 게 없는 듯 하다. 반면, 이치노세는 무슨 이야기인 지 아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는 잃지 않았지만.

"섀도 타임 예보 시스템에 말이야. 누군가 예측을 방해한 흔적이 있어."

예지를 방해한다. 마치 SF소설이나 판타지소설에 나올 것 만 같은 설명이건만 듣고 있는 우리들은 현실의 사람이다. 허구 속의 등장인물과는 미래예상과 실제 미래의 차이만큼 다른 존재다. 에보도 아니고 예지를 방해한다니, 그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과학자 입에서 튀어나올

만 한 말인가.

눈 앞에서 튀어나와 귀로 들어왔으니 문제지.

"항상 예지가 들어맞는 건 아니야. 틀릴 때도 있지."

"확률 54%라던지. 그 때는 준비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지."

"린의 말대로야. 문제는 이번 건 명백히 '방해'가 들어왔다는 거야. 방금 전 까지 컴퓨터에 잡히던 확률은 3.1%였어. 정말 재수없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안 일어나겠지."

3.1%라. 확실히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단순히 무수한 가능성을 부정하고서 닥쳐온 시련의 시간은 아닌가?"

하지만 단순히 낮다고 하면,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대체 뭐가 되는걸까. 아무리 낮아도 단지 운이 없었던 거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긴급히 연락하기 바로 전, 확률이 갑자기 변동을 일으켰지."

"....무슨 소리에요?"

표정을 굳히고 아키하를 노려보는 마유. 그 질문엔 약간의 분노가 담겨있었다.

"자자~ 마마유땅 너무 얼굴이 굳었다고. 이거 먹고 스마일~ 해봐~ 아무튼 지금부터는 이 내가 설명하겠습니다~"

마유의 험악한 분위기를 읽고서 이치노세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지금 서로 아귀다툼을 해 봤자 좋을 건 하나 없을 게 분명하다. 긴장된 공기도 날려버리는 이 여자 특유의 4차원적인 분위기가 마유를 진정시켰다.

"만일 확률이 안 변하고 그대로 이어졌다가 오늘 빵! 하고 터졌다면 그거야 뭐 천국에서 주사위 놀이하는 양반 탓이지~ 그건 어쩔 수가 없어.

슈퍼컴퓨터로 예측한 날씨가 빗나가는 것 같은 거니까."

이치노세는 산만하게 돌아다니면서 몸을 배배 꼬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집중을 유지할 수 없는 듯, 눈은 이미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던 확률이 갑자기 변하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방금 전까지 3.1%였던 확률이 갑자기 77.5%로 변했어. 25배씩이나~"

"...그러니까, 단지 재수가 없던 게 아니라 우리가 알던 확률을 누가 숨기고 거짓 정보를 보여준 거라고 거라고 보면 되나?"

"정답! 아키하쨩 조수씨한테 박수~ 짝짝짝~"

이치노세의 박수소리가 허무하게 공원 한 구석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진짜 확률을 숨기고 거짓정보를 보여주는 건 더 이상 운의 영역이 아니지. 우리들 인간의 영역이나이다~"

이것으로 이치노세 박사님의 오늘의 강연 코너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보고 싶지 않다. 자기 설명이 끝나자 뭔가 수상한 액체를 들이키는 사람의 강연을 들어야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혹시 지난번에 말한 '적대적인 집단'이랑 관련있는 거야?"

"혹시가 아니다. 확실한 사실이지."

쿠로사와 순경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을 심판하러 이 난죠르노가 온 거지!"

옆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난죠도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마유가 갑자기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다.

"저기 마유, 아무리 첫 만남이 첫 만남이라지만......"

"프로듀서의 얼굴에 발차기를 날린 게 심판이라면, 난죠 씨는 조금 더 지능이라는 걸 키우는 게 어떨까요?"

마유의 독설. 그리고 린과 란코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저 둘은 내 비명소리를 사무소 바깥에서 듣고서 튀어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만일 쿠로사와 순경이 제 때 오지 않았다면 어린이 상대로 크게 싸움이 날 뻔 했다.

"영웅은 공부 따윈 안 한다고!"

"연장자의 충고는 들으라고 있는 거랍니다?"

문제는 지금 어린이 상대로 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거지. 지금만큼은 이치노세도 끼어들기 싫은 듯(단순히 옆에서 즐기는 거일 수도 있겟지만) 조용히 보고만 있다.

"둘 다 그만해라. 개인적으로 싸울 거면 둘만 있을 때 해라."

결국 쿠로사와 순경이 제지하고 나서야 마유는 표정을 누그러트렸다. 어디까지나 '지금은 넘어가겠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빛이 흉흉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둘만 있을 때 진짜로 싸우겠다고 나서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난죠, 다음부터는 사람이 하는 말을 끝까지 잘 듣고 생각하고 움직여라. 사쿠마도 프로듀서 얼굴에 발차기 한 번 당한 걸로 계속 험악한 분위기 만들지 말고."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섀도 타임동안 활동하는 집단은 우리 말고도 여럿이 있고, 그 모두가 적은 아니지만 아군도 아니다. 향후 활동에 주의하도록."

지난 번에 사쿠마가 있던 곳에서 발견된 남자는 명백히 적이겠지.

"법규의 수호자여, 짐의 하문을 받아들이겠는가?"

"......용법이 틀렸다만, 뭐 좋아. 질문이 뭔가, 칸자키."

"은하수 속 별 숫자처럼 많은 모임과, 사방천지에 분령을 두고 있는 이곳 중, 왜 우리만이 불운의 그림자를 받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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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간 휴식!"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트레이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린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신곡 샘플을 받은 후 갑자기 난이도가 올라간 트레이닝은 역시 힘든 걸까. 나중에 트레이너에게 말해서 훈련강도를 조금 낮춰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안 그래도 이번에 첫 TV일자리까지 들어왔는데 트레이닝 때문에 컨디션을 망쳐서 방송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는 건 언어도단이자 본말전도다.

"하아.... 하아....."

지금 바로 말하지 않는 이유? 린이 땀에 젖어서 헥헥대는 모습을 더 감상하고 싶어서는 절대로 아니다. 지금도 내 스타드리를 마시게 해 주려고 하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감상하는 사람으로서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지. 이 정도면 훌륭한 이유다.

"힘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프로듀서의 스타드리니까!"

"......굉장히 불순하고 음험한 목적이 있는 것 같지만, 뭐 고마워. 잘 마실게."

"불순하고 음험하다니, 너무하네. 나 만큼 퓨어하고 순수한 남자가 어디 있다고."

"동어반복. 그리고 순수하지도 않아."

린은 질렸다는 듯 내 말을 끊고선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대꾸할 기력도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나저나 새 노래는 어때? 괜찮아?"

그럼 슬슬 린에게 신곡에 대한 감상을 물어봐야지. 부르는 당사자가 이 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둬야 향후 영업방침을 정할 수 있을 테니까. 협조적으로 나와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

"조금은 협조적으로 나와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말. 그야말로 무관심의 극치로 애초에 관심도 없으니 어찌되든 상관없는 느낌이라는 듯 한 말투로 툭 던지듯 대답하는 저 쿨시크하고 드라이한 대답. 그런데 이런 대답으로는 안된다고!

"좀 더 표현력과 감정을 담아서 대답해줬으면 하는데."

"표현력과 감정이라....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는데."

린은 곤란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역시 그런 거랑은 인연이 없던 건가. 칸자키나 아베 씨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나이 여자아이한테 맞는 감성이란 걸 깨달아줬으면 한다.

"감정은 둘째치고, 표현력이라는 건 중요해요. 사실 노래의 전부라고 할 수 있죠."

"트레이너씨."

뭔가 특이해 보이는 차를 가지고 트레이너 씨가 나타났다. 잠깐 자리를 비운 건 저 차를 타기 위해서였던 건가?

"노래, 특히 댄스곡은 곡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요. 예를 들자면, 귀엽고 발랄한 곡에는 귀여움과 발랄함, 활기참이 묻어나야 하죠. 멋진 곡에는 강렬함이 느껴져야 하고요."

"...잘 모르겠네."

잘 모르겠다는 건가. 차라리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면 나을텐데 말이야.

"뭐, 다른 사람들의 안무를 참조하는 것도 도움이 되죠. 아니면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지도 모르지만요."

"어이 트레이너씨. 스캔이 될 만한 발언은 관둬주세요."

"어머 실례."

사랑 노래를 부르기 위해선 사랑을 경험해야 한다니, 아이돌한테 그런 건 무리 아닙니까. 아니 뭐 우리 같은 최약소한테는 그런 관심조차 없겠지만. 혹시 나중에 성공했을 때 그런 스캔이 터져버리면 어떻게 버틸 수 가 없다고.

"사랑이라....."

"음? 뭐야 린. 혹시 관심있는 거야?"

설마 나한테 관심이 있다던지?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사랑이라니. 금기 중의 금기잖아. 나한테 대쉬하는 아이돌은 없었으면 한다고. 설마 너도 마유랑 같은 부류인 거냐. 그러고보니까 린이랑 마유는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사이가 좋았지.

"그야 뭐..... 조금이라면"

"어이....."

이쪽을 슬쩍슬쩍 쳐다보는 린. 어라 잠깐 설마...

"......."

이거 참, 이제부터 린한테 어떻게 대해줘야 하지? 얼굴을 살짝 붉히고 이쪽을 보면서 부끄러운 듯이 쭈구려앉은 린이 귀엽기는 하지만, 우리 사이는 어디까지나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관계다. 그야 뭐 린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고맙게 생각하고, 분에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거절하는 수 밖에 없겠지.

"저기.. 린 설마..."

"....뭐야."

하아, 역시인가. 어쩔 수 없지. 여기선 린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내가 총대를 매는 수 밖에....!

"린, 미안하지만..... 네 마음은 거절할께. 우린 어디까지나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야."

"...에?"

아연히 이쪽을 쳐다보는 린.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표정이 그려져 있다. 그야 뭐, 이렇게 먼저 자기 할 말을 읽고서 사랑고백을 거절해버리면 충격이겠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사무소는 규모가 작아. 최약체지. 사실 스캔이 일어나도 관심가져줄 만한 사람도 없지만 만일 우리가 조금만 더 커진다면 그 때는 이야기가 달라져. 업계에 갓 뛰어든 햇병아리가 스캔을 일으킨 거라고. 좋다 하고 잡아먹으려 들겠지."

그런 상황은 피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린, 나는" "뭐야, 설마 내가 프로듀서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거야?"

......에?

"뭘 혼자서 분위기 내고 있는 거야. 나도 한창 때의 여고생이라고. 그야 흥미가 없으면 거짓말이지."

하, 하지만 방금 반응은 아무리 봐도 사랑하는 소녀의 그 반응이였다고! 소녀틱한 사랑의 화학반응이였다고! 사랑의 효소 느낌이 났다고!

"남 앞에서 말하는 건 부끄럽다고."

"나, 남?!?!?!?!"

설마 그 타인이라던지 하는 그거 말이야? HAHAHA, 너무 우스워서 사장님 말투가 나오네. 나와 린이 타인이라니 절대로 그럴 일 없잖아. 그 전에 이게 내 착각이라니 그런 쪽팔리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절대로 말이야. UHAHAHAHAH!!!!!

"뭔 사장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기분나빠."

"쿠헥!!!"

"프로듀서씨?!"

그, 그러니까 린은 나한테 연애감정 같은 거 품은 적도 없고 사랑이니 뭐니 하는 말에 내가 멋대로 린이 날 좋아한다고 착각해서 만들어낸 뇌내망상이라는 거야? 설마 그런 말은 아니겠지?

"그런 거 맞아."

"퓨훼휴리우룹!!!!!"

"의미를 모르겠어!!!!"

리, 린이 프레스 턴을 2개나 가져가.... 쿨럭.....

"사랑하는 사람의 기분이라.... 적어도 프로듀서 상대로는 무리일 것 같네."

아, 나 죽었다.

"프, 프로듀서씨?!"

"트레이너씨... 전 여기서 죽지만 부디 린의 마음만큼은... 커헉...."

"죽으면 안 돼요! 여기 제 언니가 타온 특제 드링크를 드시고 기운내는 거에요!!!"

나를 깨우기 위해서 가까이 붙은 트레이너 씨. 눈 앞에 그 훌륭한 메론이 들어온다. 땀에 흠뻑 젖은 트레이닝 복 너머로 비치는 가슴의 윤곽, 그리고 살결. 점점 몸에 활기가 돌아오는 느낌이다. 좋았어.

"고마... 워... 요..."

주로 하복부 아래쪽 해면체에 돌아오는 활기를 느끼며, 나는 트레이너 씨가 만들어 온 드링크를 입에 대었다.

"........그런데 이거 뭘로 만......."

입에 대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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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웩. 이치노세의 눈 앞이 시꺼매졋다."

그 이치노세가 눈을 찌푸릴 정도의 음료인 거냐?!?!?!?!?!??!?!?! 이건 뭐 쿠스하 즙도 아니고. 무섭도다. 트레이너씨 언니의 건강 드링크. 마실 때 묘하게 아스팔트 향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진짜로 쿠스하 즙일 줄이야. 나중에 나조잼 같은 거라도 만들어오는 거 아냐?

"대체 이딴 걸 만든 게 누구야? 나한테 좀 알려줘."

이치노세가 물었다. 평소의 냐하하~ 모드는 어디가고 경악한 연구자의 표정이 되었다. 음, 그 마음 이해한다.

".....우리 아이돌들 트레이너 언니 되는 사람이야."

그 사람도 트레이너 일을 한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걸 마셔대는 아이돌들이 갑자기 불쌍해진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가라 경쟁자여. 저딴 걸 계속 마셔댄다면 언젠가는 중독증상(진짜 독)으로 죽을 거야. 분명해.

"아니, 이거 건강에는 확실히 좋아. 사실 성능만 생각하자면 아키하조수 씨가 맨날 마시는 스타드리인가 뭔가보다 더 좋아."

"정말?"

그러고보니 뭔가 몸이 건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긴 하다. 좀 더 기운이 솟아오르는 느낌이랄까? 켈로그 시리얼보다는 확실히 건강에 좋은 듯 하다. 호랑이 기운까지는 아니여도 늑대 기운은 나고. 특히 여자 앞에선. 물론 이치노세는 그런 느낌이 나는 대상은 아니지만. 아니 뭐 차려입혀놓고 입만 다물게 한다면 그런대로 괜찮을 듯 싶기는 하지만.

"뭣하면 이것도 마셔볼래?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조것도 이런것도 저런것도...."

"왜 갑자기 정체불명의 음료가 늘어나게 된 걸까."

스타드리만 해도 정체를 모르겠고. 아키하는 해명불가고, 이치노세는 해명한 듯 하지만 입다물고 있는 게 재미있다고 안 가르쳐 주고. 맛은 좋고 스태미너 회복에도 좋을 것 같긴 한데 이걸 계속 마셔도 되는지 영 찝찝하다.

뭐, 지금은 그런 찝찝함보다 훨씬 더 큰 찝찝함을 해결해야 하지만.

"이치노세."

"우연일까?"

".....사람이 할 말을 먼저 앞질러가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이거 의외로 기분나쁘네. 아니, 이런 상황이여서 더 날카로워진 건가? 아니면 이게 원래 스타일?

어제의 사건 후, 나는 바로 이치노세에게 연락해(전화번호는 이전에 쿠로사와 순경에게 받아두었다)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게 있으니 상담에 응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이치노세는 흔쾌히 은해줬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있으면서 응해주다니, 대범하다고 해야 하나.

"쿠로사와의 대답은 간단했어. 우연이라고. 이쪽이랑 싸우려드는 놈들이 어쩌다보니 우리 지부를 노리게 되었다, 라는 거지. 딱히 우리한테 핀 포인트로 원한이나 적의가 있던 게 아니라 그냥 만만해보인 게 우리라는 거지."

그래도 규모 자체는 그런데로 있는 편인데 말이야~ 라고 속편히 대답하는 이치노세.

"그런데 아키하조수는 그 말 믿어?"

".....쿠로사와 순경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소리야?"

아군을 믿지 못하는 상황인가, 아니면 이치노세가 그렇게 유도하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쉽게 믿을 수는 없다.

"아니~"

"......."

쓸데없는 독백이였다.

"뭐, 아키하조수도 슬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좋을 것 같네. 아마 쿠로사와 순경도 슬슬 이야기해줄 테니까 내가 할 필요는 없지만~ 그동안은 바쁘기도 하고 조수's의 적응기간도 있어서 말 안하고 있었지만."

".......역시 뭔가 있는 건가?"

"있지, 그것도 굉장한 놈들이. 예를 들자면 눈 앞의 나라던지~"

.....잠깐, 지금 뭐라고....

"아, 딱히 걱정은 안해도 되. 난 어디까지나 계약직이라는 소리야. 내 유능함과는 별개로 말이야."

유능한 계약직인가. 뭐, 본인 스타일 자체가 한 곳에 머무르는 타입 같지는 않으니. 너무 자유분방해서 계약으로는 어떻게 묶어둘 수가 없는 거겠지. 그리고 자유롭게 살 정도로 돈은 많은 듯 하고. 그런데 계약직이라는 건......

"그러니까, 계약이 끝나면 바로 다른 곳으로 넘어가버릴 수 있다는 건가?"

"딩동댕동~ 날 찾는 건 키리조 그룹뿐만이 아니라고~ 물론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생각은 없지만."

"아키하 때문인가?"

".....어머, 역시 아키하조수인건가?"

놀란 듯 나를 쳐다보는 이치노세. 이번에는 내가 선수를 쳣다.

"아니 뭐, 아키하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를 대충 보면 알지. 아마 우리 들어오기 전엔 걔 인간관계는 너랑 쿠로사와 순경 정도였을 것 같은데?"

그 녀석, 나쁜 녀석은 아니지만 사람 대하는 기술이 부족해서 말이지. 특히 첫대면부터 마치 선심쓰듯이 돈을 주겟다고 한 건 이런 대접에 익숙한 나도 조금 아니다 싶었지. 그리고 평소에 먹는 것도 전부 다 외식이나 편의점이였던 듯 하고.

그런 녀석이 기댈 수 있는 인간관계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쿠로사와 순경은 여러가지로 가까이에서 챙겨주고, 이치노세는 아마 같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이다 보니까 서로 친해진 거일려나. 과정은 어찌되었든, 그 녀석의 인간관계는 이 정도다.

"뭐, 그 외에도 난죠라던지...... 플랜이 틀어지지만 않았어도 말이지.... 에휴~"

"그러고보니까 지난번에도 아키하랑 쿠로사와 순경이 플랜인지 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던데........."

플랜이 틀어져버려서 인원이 부족하게 되었다고 했지. 혹시 난죠 말고 플랜 따라 들어올 사람도 페르소나 사용자였던 걸까? 그런데 그게 틀어졌다는 건.....

".....그 사람, 죽은 거야?"

"아니, 살아있어~ 차라리 죽어줬으면 했지만~"

우와 갑자기 심한 말을 하네. 남한테 죽으라니. 아니 뭐 나야 린한테 가끔(이라고 보기에는 꽤 자주) 듣긴 하지만.

"뭐, 이번 일을 저지른 사람도 아마 그녀석이겠지. 이런 류의 일을 망쳐놓는 장난질은 그 녀석의 특기니까."

"꽤나 신랄하네."

그러고보니 이치노세의 태도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전보다 좀 더 딱딱하고 냉정한, 차가운 주사기 같은 느낌이다. 혹시 평소의 그 정신나간 모습은 가면인건가?

"뭐, 그래봤자 내 실력에는 못 미치지만~ 냐하하~"

.....설마. 가면이라면 좀 더 제대로 되먹은 놈을 쓰겟지.

"아무튼 뭐, 범인 쪽은 누군지 파악 가능하니까 걱정하진 마. 심증도 있고, 물증도 있고 말이야. 이쪽의 예지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래? 누군지 알면 다행이고 뭐."

이번 일이 우연의 소행이 아니라는 걸 안 것만으로도 여기 온 목적은 달성했다. 슬슬 돌아가도록 할까.

"아, 그렇지. 하나 부탁해도 될까?"

적당히 이야기를 멈추고 돌아갈까 생각하던 도중, 이치노세가 갑작스럽게 부탁을 해 왔다. 그나저나 이치노세의 부탁?

"부탁? 네가 나한테 부탁이라니..... 인체실험 대상이 되라는 부탁이라면 미리 거절해두지."

이 녀석이 나한테 부탁할만한 건 그 정도밖에 없다고. 아마 날 묶어놓은 다음에 '당신에겐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걸'이라던지 말하면서 날 성배 안으로 밀어넣을 게 분명하다고. 초기 fate 식으로 말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앞으로도 아키하랑 계속 같이 지내줬으면 해서 말이야~ 냐하하하~"

"정말로 의외의 부탁이여서 놀랐다. 아무튼 아키하를 부탁한다는 거지?"

이래나저래나 해도 역시 이치노세는 아키하를 신경쓰는 것 같다. 음음, 좋은 모습이야. 한발자국만 더 나가서 백합이 되어버리면 좋을 텐데.

"그래그래. 아키하조수도 알다시피 아키하는 사람 대하는 게 그 모양이라~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는 고독한 늑대(풉)랍니다~ 그러니까 조수's가 옆에 붙어서 아키하의 친구가 되어줬으면 해. 부탁이야."

[나는 그대, 그대는 나

그대, '탑'의 아르카나에 좀 더 다가섯다]

"알았어. 그 정도야 뭐."

아키하도 외로운 건 싫을테니까. 적어도 누군가가 같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좋겠지.

"고마워~ 냐하하~ 햐핫~ 선물로 이거 줄께~!"

"감사의 표시인건가? 그나저나 이거... 양복이잖아!?"

이치노세가 넘겨준 그것... 두말할 것도 없이 토탈리 퍼펙틀리한 양복이였다. 매우 짙은 곤색(검정색이 아니다!!!!!)의 슈트에 하얀색의 정갈해보이는 와이셔츠. 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와인색 체크무니 넥타이. 단촐하면서도 견고해보이는 벨트. 그야말로 완벽한 양복이였다.

"이치노세.... 사랑한다!!! 아키하는 나한테 맏겨다오!!!!!"

"냐하~앙~ 후후후~"

기뻐서 이치노세랑 한참동안 방방 뛰어다녔다. 덕분에 사무실에 돌아오는 게 늦어져서 센카와 씨한테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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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게 됐네."

밤... 이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애매한 저녁 8시. 쿠로사와 순경의 사과로 오늘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장소는 언제나 그랫듯이 지하 1층. 주최자는 쿠로사와 순경이다.

"혹시 또 섀도 타임이 오는 건가요?"

일단 오늘의 발생 확률은 12.2%다. 물론 이걸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안심할 수는 없지. 게다가 안심해도 되는 상황이였으면 쿠로사와 순경이 우리를 불러모으지도 않았을 게 분명하다. 꽤나 갑작스러운 호출이다.

"지난 섀도 타임에서부터 3일.... 시기적으로 이상할 건 없지만, 일단 부른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이유는 전원 다 모이면 말해주겠네."

마유의 질문에 쿠로사와가 대답했다. 그러고보니까 아키하랑 난죠가 보이지 않는다. 난죠는 잘 모르겠지만 아키하는 항상 여기 있었는데, 오늘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아키하랑 난죠는 약간 처리할 일이 있어서 늦어진다. 이치노세랑 같이 올 예정이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지의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박차고 들어오는 난죠.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아키하와 이치노세. 이걸로 전원이 소집된 셈인가.

"여전히 예의없는 발차기" "쿠로사와 순경님!!!! 그 이야기가 사실이에요?!?!"

난죠는 마유의 독설을 사뿐히 차날려버리곤 쿠로사와 순경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물었다기보다는 힐난이나 질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느껴질 정도의 기세로,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아마 녁살을 잡고서 흔들어버릴지도 모를 것 같다. 그 만한 박력을 가진 무언가가 난죠에게서 느껴졌다.

"난죠인가. 전원 집합이군. 그럼 바로 갈까. 설명은 가면서 시작하겠다."

"가면서?"

그 만큼 급한 상황인 건가? 아까부터 초조한 듯 시계를 쳐다보며 시간을 재고 있던 건 다 이유가 있던 건가. 뛰쳐나가듯 나간 쿠로사와 뒤 쪽에 난죠가 바짝 붙어서 뛰어간다. 모두 허둥대며 급히 둘의 뒤를 따라가고, 언제부터인가 건물 앞에 세워둔 벤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긴급히 소집한 이유를 알려주겠다. 지금까지 예측 시스템에 간섭하던 게 누구인지 알아냈어."

12인승 벤에 시동을 걸고서, 언제나처럼 담담하고 냉정하게 말을 꺼내는 쿠로사와. 반면, 아키하와 난죠는 초조하고 불안한 듯 신경질 가득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치노세는 조용히 창 밖을 쳐다보고 있다. 입에서 몇 번씩 이상한 웃음소리만 낼 뿐.

"우리의 앞을 막은 소악마의 정체를 꿰뚫어보았단 말이더냐."

".......어이 쿠로사와."

갑작스럽게 칸자키를 경계하기 시작하는 아키하.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칸자키가 당황해한다. 평소에 보여주던 자만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싸늘한 눈초리만이 아키하에게 남아있었다.

"오해다. 아이돌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어. 칸자키가 어쩌다 보니까 찍은 거겠지."

"지, 짐이 뭔가 금기를 어긴 것인가?"

"그런 건 없다. 다만 이번 범인의 특징이랑 너무나 들어맞아서 그렇지."

칸자키가 말한 게... 소악마인가? 범인이 누군지 알고, 게다가 상대방의 특징까지 꿰고 있다라.... 그 정도로 잘 아는 녀석한테 공격당한 건가. 평소에 이런 녀석들은 마크해두지 않나?

"무슨 말 하고 싶은 지 알 것 같군."

"아... 죄송합니다."

"신경쓰지 않으니까 괜찮다. 다만 다음부턴 주의하도록."

평소보다 조금 더 날카로워진것 같은 쿠로사와 순경이다.

".......뒤를 맞은 거라고, 뒤를."

아키하가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범인은 아키하의 지인인 것 같다. 그것도 꽤나 가까운.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 분명해."

안절부절못하며 주먹을 꽉 쥔 난죠가 겨우 입에서 소리를 내었다. 아까 가면라이더 같은 기세로 쿠로사와에게 돌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난죠의 그 모습을 보던 이치노세는 기도 안 차는듯 콧소리를 내며 비웃기 시작했다.

"오해도 뭐고 없어~ 너도 봤잖아. 애초에 우리는 속아버린 거라고. 그 꼬마한테~ 설마 아군한테 이런 식으로 배신을 당하다니."

"그럴 리가 없다고! 레이나는 그럴 녀석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면 못 속일 사람은 없지. 코세키 고것은 그걸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엿을 먹은 거지~"

'그 년 하나 때문에 다 엿된 거'라는 이치노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난죠가 이치노세의 녁살을 잡아올렸다.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는 난죠와 잡히고서도 특유의 웃음을 잃지 않는 이치노세. 더 이상 가만히 뒀다가는 도착하기도 전에 주먹다짐이 날 게 뻔하다.

"어이 너희들" "둘 다 조용. 설명을 시작하겠다."

쿠로사와 순경의 한마디에 싸우려던 둘이 한번에 조용해졌다. 결코 큰 목소리는 아니지만, 위압감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청중이 모두 침묵한 것을 확인한 후, 쿠로사와 순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전에도 설명했다시피 섀도 타임동안 활동하는 조직은 우리뿐만이 아니고, 우리 조직... 정확히는 '섀도우 워커'는 그 중에서도 여러 곳에 지부를 설치할 만큼 큰 조직이지. 사실 정부 휘하의 특무부대라서 작을 수가 없지만. 그리고 큰 조직인 만큼 각 지부들을 엮고 통괄하는 '총본부'가 존재하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도 그곳이고."

총본부라.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커진 듯 한 느낌이 든다. 사실 지금까지 너무 작은 그림만 봐 온 거라서 커졋다고 느껴질 뿐이겟지만. 다만 나 같은 말단에게는 보이긴 해도 너무 먼 곳이다. 총본부라는 곳이 있다고 알아두면 충분한 정도의 이야기다. 이렇게 보니 마치 내가 파견업체 직원이 된 것 같다. 사실 계약 내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 총본부란 곳에 가고 있는 거야?"

그냥 창밖에 지나치는 야경을 주시하기만 하던 린이 물었다. 이쪽을 쳐다보지는 않았고, 그저 입만 움직였다. 아마 자신의 예상이 맞는지 틀렸는지를 재확인하기 위한 의례적인 질문이겠지.

"맞아. 그리고 그쪽에 우리 예측 시스템이 있는 곳이야. 예측 시스템의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히어로 활동을 하는 거지."

난죠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대답했다. 딱히 쿠로사와가 제지하지는 않았다. 아키하도 이치노세도 딱히 반론은 없었다.

"그 예측 시스템이라는 거... 바깥에서 함부로 손 댈수 없게 만들어놓은 거 아닌가요?"

"원칙대로라면. 실제로도 지하 깊은 곳에 설치해둔 데다가, 온갖 보안검사를 거친 후에야 인가된 한정인원만이 들어갈 수 있지."

그러니까... 코세키 레이나인가 하는 사람은 그 본부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온갖 보안을 뚫어버린 다음에 그 시스템에 손을 댔다는 말이다. 혹시 섀도우 워커의 보안이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엉터리인 건가. 정부 예산=내 세금이 이런 곳에서 또 낭비되는 꼴을 보다니.

".....간단히 뚫려버리는 경비라니, 옛날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전개 아니야?"

"원래 그렇게 간단히 뚫릴 일은 없지. 건물 자체도 온갖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으니까. 문제는......"

린의 신랄한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하는 쿠로사와 순경. 그런데 어째서 마지막 말을 내뱉기 전에 끊는 걸까..... 역시, 그거인가.

".....문제는, 이번 사태의 주범인 코세키 레이나는 원래 우리 쪽 사람이였다는 거다."

쿠로사와 순경의 한숨 섞인 대답에 모두 말을 잊고 침묵했다. 교통신호에 걸린 교차로에 멈춰선 차가 빨리 움직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레이나는 그런 녀석이 아니야......"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난죠가 목을 쥐어짜는 듯한 소리로 작게 말했다.

"레이나는, 나랑 같이 모두를 지키자고....."

아무래도, 난죠는 그 레이나라는 사람이랑 친했던 것 같다.

"뭐, 너도 속아넘어간 거지~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땐 나도 놀라긴 했지만.... 애초에 계획이 틀어진 이유가 걔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번 일은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을 텐데~ .....정말이지, 뒤를 맞아버렸어."

그러고보니 이전에....

[사실 하나 더 있긴 했지만 그쪽은 틀어져버려서 말이야~ 안 그래도 요즘 섀도 타임에서 범죄가 늘고 있는데 곤란하다고~]

이치노세가 말했던 그 틀어진 계획이라는 게....... 그 코세키 레이나라는 사람과 관련된 계획이였던 건가.

"저기 쿠로사와 순경님. 진짜 오해 같은 게 아닐까요?"

"그건 가 봐야 알겠지. 지금은 일단 서두르는 수 밖에."

난죠의 말에 원칙적이고 사무적인 대답을 들려주고는, 쿠로사와 순경은 교차로에서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 모두의 침묵.

"그런데 말이에요. 저기.... 그 본청이라는 건물은 어디에 있죠?"

이 침묵을 깨버린 건 내 질문이다. 어디로 가는 지 알아둬서 나쁠 건 없겠지.

"도쿄 시 미나토구 오다이바. 내가 이전에 근무하던 곳이고...... 키리조 그룹의 영애이자 우리 부대의 대장인 키리조 미츠루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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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관 학원에서 전철로 3정거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 차로 가면 교통이 복잡해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섀도우 워커의 총본부라는 곳이 있다. 롯폰기 힐즈 한복판에 세워둔 8층짜리 건물. 이 빌어먹게 땅값 비싼 일본 최고의 부동산에 본부를 세우다니. 얼마나 돈지랄을 해대는 거야. 경찰시설이라면 그냥 아다치 근처에 떨궈두라고.

"게다가 건물부지 안쪽에 공원까지...... 비싸게도 노는구만."

공공기관 주제에 자본주의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듯 악의적이고 기만적인 자들이 준비한 건물 부지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보기에 넓은 부지가 붙어있는 고급스럽게 생긴 돈을 빨아들이는 다용도 빌딩이지만, 그 안쪽은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집합소다.

"오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쿠로사와 순경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고고한 분위기를 고압적으로 발산하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인사를 건냈다.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몸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스니킹 슈츠와 하얀 모피코트의 조합이 여성의 색기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려주고 있다. 얼핏 보자면 거리에서 봄을 파는 여성처럼 보일 수도 있는 복장. 하지만 그런 류의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퇴폐적인 분위기는 없다. 붉은 머리카락이 이끌어주는 고귀함과 고고함이 천박해보일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이쪽이야말로 좀 늦은 것 같군. 뭐, 일단은 인사다. 소개하마. 여기 계신 분이 섀도우 워커의 대장인 키리조 미츠루다."

"키리조 미츠루다. 미숙한 실력이지만 섀도우 워커의 대장직을 맡고 있다."

키리조 미츠루..... 아아, 전 사장인 키리조 타케하루의 직계자손인가. 정확히는 딸이였지.

"창업일가일 뿐이다. 주식을 좀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권이 있는 건 아냐."

그러고보니까 학생 때 산케이신문에 그 기사가 나왔었지. 키리조 타케하루가 전부 다 처분해버렸다고. 덕분에 그쪽 집안 사람들이 난리도 아니였다던데.

"뭐.... 예전 일은 그만 이야기하지. 오늘은 바쁜 와중에 불러서 미안하군. 그 동안 있던 일도 전부 쿠로사와 순경님께 들었다. 처음부터 힘든 경험을 한 듯 싶군."

"하하.... 그건 큰일이였죠."

연상의 여자, 그것도 굉장한 권력자, 일반적으론 나랑 말도 안 섞어줄 것 같은 사람이 말을 걸어오니 참 대하기가 어렵다. 어떻게든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적당한 솔직함으로 대답하는 게 전부다. 나랑은 사는 세계가 다르다.

"긴장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오늘은 싸우는 일도 없을 거야."

"예? 하지만....."

키리조 씨는 갑작스럽게 싸움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모두 벙 쪄버렸다. 아키하랑 이치노세까지 말이다. 쿠로사와 순경은 이걸 미리 알고 있던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키하랑 이치노세랑 난죠는 논외다. 아키하랑 이치노세는 지금 바로 시스템실로 가고, 난죠는 이따가 쿠로사와 순경이랑 같이 움직이도록."

아키하와 이치노세는 키리조 씨의 명령을 듣자마자 바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그럼 저희들은....."

"오늘은 너희들 얼굴 보려고 불렀다. 약간 늦은 면접같은 거지."

약간 정도가 아닌 듯 하지만, 뭐 상황이 상황이였으니 넘어가자. 옆에 있는 린이랑 칸자키랑 마유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해주는 거일려나.

"범인 수색은 어떻게 하고.... 요?"

나이스 린. 슬슬 존댓말이 입에 붙기 시작하는구나. 가끔씩 일하는 곳에서도 반말이 튀어나와서 수습하느라 진땀뺀 적도 있는데 오늘은 높고도 높으신 분 앞에서 실수없이 잘 했다.

"그건 신경쓰지 않아도 됀다. 애초에 코세키 그 녀석이 우리 본부 쪽으로 돌격해오지도 않을 테고, 너희들 말고도 다른 인원들을 도시 곳곳에 풀었으니까. 별도로 추적조도 편성해 놨고."

"우리들은 그냥 얼굴만 볼 생각인 건가요?"

"예비대 같은 거지. 겸사겸사 얼굴도 볼 겸 해서."

마유에 약간 날카로운 질문에 의외로 친절하고 솔직하게 대답해주는 키리조 씨.

"예비대.... 그것은 짐의 권속들을" "칸자키 란코라고 했나? 쿠로사와 순경님이 말한 대로네..... 뭐,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사람 대하는 거에 문제가 없다면 괜찮지만..."

"그건 괜찮아요. 이 녀석 이래봐도 일단은 착하고 겁많은 애니까요."

'무, 무례한 금기!!!!' 같은 말을 외치면서 날 주먹으로 투닥투닥하는 칸자키는 상큼히 무시.

"그런데... 면접이라면 무슨 질문을 하는 거죠?"

이번에는 약간의 시간차도 없이 스무스하게 존댓말로 질문하는 린. 점점 성장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흠..... 그렇네. 그럼 우선, 왜 우리 '섀도우 워커' 에 들어왔는지 말해줬으면 하는데."

들어온 이유? 나랑 린은 뭐.... 살자고 한 짓이니까. 그 때는 당장 의탁할 수 있는 곳이 이곳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 들어온 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몇 번 섀도 타임을 겪어보면서 알게 됐지만, 만일 이쪽에 의탁하지 않았다면 난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페이가 좀 쎄서 말이야.

"보수가 많아서요. 아이돌 일보다 더."

"잠깐 리이이이이이인?!?!?"

넌 왜 갑자기 폭탄을 떨구는 거야! 성장한 거 아니였어?! 성장한 건 요 주둥아리 뿐이였던 거냐!!!!

"왜냐고요? 그야 저랑 프로듀서는 '운명'으로 맺어진 관계니까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무슨 말 하는 거야 마마유우우?!?!?!"

".........쿠로사와 순경님의 눈도 때로는 틀리다는 건가?"

키, 키리조 님의 눈에서 갑자기 냉동빔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최상급 특공에 노력치 만땅에 자속 보정까지 받은 놈이! 빙결 부스터가 덤으로 보일 정도인데?!

"운명과 인과의 이끌림이로다!"

"그만해! 이 이상 말했다가는 '처형'당할 거라고!!!"

아마 마하부흐다인과 절대영도의 콤보를 얻어맏고 산 채로 얼음동상이 될 게 분명하다. 내성이고 뭐고 없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얻어맞는 거겠지.

"뭐, 아무튼 앞으로 힘내주길 바란다."

무시당했어! 처형도 안 하고 무시해버렸어! 니들한테는 기대하는 것도 없으니 그냥 사고만 치지 말라는 눈을 하고 있다고! 나 저런 눈 본 적 있어! 아마 내가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그쪽 사장이 날 쳐다보던 눈이였어!

설마 이걸로 진짜로 끝이라는 건.....

[비상!]

콰앙, 이라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건물 전체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복도 한가운데에서 셔터가 내려오고, 문들이 자동적으로 걸리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냐! 상황보고를 해라!"

키리조 씨의 다급한 목소리. 곧바로 무전기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 그게 지금 상황 파악-----]

하지만, 무전기에서 나온 소리는 곧바로 끊겨버렸다.

"응답해라! 통제소 응답해라!!"

[-----소용없다고. 대장님]

키리조 씨가 응답하지 않는 무전기에 대고 몇 번이나 외치던 도중, 그 무전기가 대답을 해 줬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앳된 끼가 남아있는 악동의 목소리다.

[현 시간부로 이 멍청이 모임 빌딩은, 이 코세키 레이나님과 그 꼬봉들이 점령하겟다!!!! 그러니까 거기서 조용히 기다려 달라고!!! 후하하하하하!!!]

무전기 너머로 방금 전까지 화제가 되었던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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