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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호시이 자매의 더블데이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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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8, 2012 22:59에 작성됨.

   그리고 시간을 조금 돌려서.
   허름하고 낮은 건물. 창문에 투박하게 붙은 ‘765’라는 숫자만이 765 프로덕션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열 명이 넘는 인기 아이돌이 소속한 프로덕션의 건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건 안도 마찬가지다.
   그리 크지 않고 낡은 사무소. 그 사무소 안에서 프로듀서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열심히 핸드폰으로 통화 중이었다.
   “네, 이번 주말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아이돌 스케줄 비워두겠습니다.”
   프로듀서는 왼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오른손에 든 펜을 열심히 놀렸다. 스케줄이 빼곡히 적힌 수첩에 또 한 줄 스케줄이 추가된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프로듀서는 벌써 수천 번을 말해 익숙한 멘트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는 바로 수첩에 적힌 내용을 손으로 짚어가며 확인했다.
   “다음이 OO 방송국 프로듀서인가.”
   프로듀서는 전화를 돌려야할 상대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곤,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찾아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꽤 오랫동안 전화를 걸어서 핸드폰을 쥔 손이 뜨끈했지만 프로듀서는 신경 쓰지 않고 귀에 댔다.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의 노래가 컬러링으로 흘러나왔다. 765 프로 소속 아이돌은 아니다. 프로듀서가 그걸 한귀로 흘러들으며 기다리자 얼마 안 있어 상대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765 프로덕션의 아카바네라고 합니다.”
   인사를 시작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몇 번이고 통화한 상대고 이 사람을 통해 아이돌들의 스케줄을 잡은 적도 있어 대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서로의 필요와 의견을 주고받은 뒤, 전화가 슬슬 마무리 될 쯤.
   “네, 그건 그렇게 하면 될 겁니다. 음?”
   말을 하던 프로듀서의 책상에 그릇 하나가 살포시 놓였다. 달콤한 향이 솔솔 나는 과자가 앙증맞게 담긴 그릇.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쥔 채 고개를 들어 그릇을 놓은 상대방을 보았다.
   “프로듀서 씨, 이거 드세요.”
   머리에 빨간 리본을 귀엽게 단 아이돌. 하루카였다. 하루카는 전화에 방해 안 되게 프로듀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프로듀서는 하루카에게 고맙다며 말없이 웃어줬다. 하루카도 빙긋 마주 웃는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그 후 몇 분 뒤에 프로듀서의 전화는 끝이 났다. 그동안 하루카는 옆에서 서서 프로듀서가 전화 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매끄러운 눈동자가 말없이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하루카는 그저 쑥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그냥 프로듀서 씨가 전화 끝나는 거 기다려봤어요. 이제 전화는 다 하신 거예요?”
   “지금 돌려야할 건 다 한 거 같아. 과자 잘 먹을게.”
   프로듀서는 그릇의 과자를 하나 꺼내들었다. 과자의 표면엔 자그마한 하트가 앙증맞게 새겨있다. 프로듀서가 과자를 한입 베어 물자 하트 무늬가 입속으로 사라졌다. 달콤과 쌉싸름이 공존하는 맛은 절로 프로듀서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하루카가 직접 만든 거야?”
   “네, 이번엔 색다른 레시피를 사용해봤어요. 프로듀서 씨, 어떤가요?”
   “최고야. 하루카는 아이돌 그만두고 당장 과자 만들어 팔아도 성공할 걸.”
   프로듀서는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어줬다. 칭찬에 하루카의 볼이 붉어졌다.
   “에이, 과찬이에요, 과찬. 그리고 전 아이돌 생활이 제일 즐거운 걸요.”
   “하긴 하루카가 아이돌을 해줘야 나도 프로듀서로서 살아갈 수 있겠지. 하루카가 빠지면 꽤 타격이 크다고.”
   “걱정 마세요, 프로듀서 씨. 계속 프로듀서 씨 옆에서 아이돌할 테니까요~.”
   하루카의 표정에 장난기가 어린다. 프로듀서는 피식 웃으면서 핸드폰으로 온 메일을 확인했다. 바쁜 와중에 힐끔 보고 잊어버린 메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과자를 또 하나 집어 오독 씹으며, 가볍게 메일을 훑는 프로듀서의 눈에 메일 하나가 툭하니 걸렸다.
   업무 내용이나 아이돌과의 대화 일색인 메일 목록 중에서 유독 튀는 일상적인 내용.
   프로듀서는 자신이 새벽에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내일 다시 연락 드려도 될까요?」
   프로듀서는 가슴이 철렁했다. 과자를 먹던 손이 저절로 멈췄다.
   아사쿠라 아키코. 소개팅. 일에 치여 잊었던 약속이 떠올랐다. 프로듀서는 황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쯤. 이미 하루의 반절이 지나가 있었다. 그래도 이제 막 오후가 시작한 무렵이니 심각하게 늦은 정도는 아니다. 프로듀서는 당장 메일을 보내기 위해 핸드폰을 꾹꾹 조작했다.
   곧장 프로듀서는 내용을 기입할 새하얀 입력창과 마주했다. 그런데 키보드 위에 놓인 그의 엄지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라, 뭐라고 보내야 되지……?’
   시작하는 단어는? 안녕하세요? 잘 지냈나요? 등등. 여러 문장과 단어가 프로듀서의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는 이상하고. 아사쿠라 씨…는 역시 첫 단어부터 이름인 건 좀 그러려나. 끙…….’
   프로듀서는 여러 단어들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당장 시작할 첫 단어에서 막혀버렸다. 업무 전화는 척척 술술 말을 풀어냈는데, 정작 메일 하나 쓰는 거에 프로듀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꿎은 엄지손가락만 멈칫멈칫 움직여댔다.
   그리고 그 괴상한 모습을 옆에서 쭉 지켜본 하루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듀서 씨?”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하루카의 질문에 프로듀서는 고민에서 깨어났다. 프로듀서는 왠지 모르게 얼빠진 표정으로 하루카를 바라봤다.
   “프로듀서 씨의 표정이 갑자기 안 좋으신 거 같아서……. 혹시 연락할 때가 남았나요?”
   “아, 뭐, 그렇지. 연락 보낼 때가 하나 있어서.”
   프로듀서는 대강 얼버무렸다. 프로듀서는 업무용 연락도 아닌 단순한 소개팅 상대에게 메일 보내는 것 때문에 애먹고 있다는 걸 하루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또 연락 보낼 때가 있다는 말도 거짓말은 아니었고.
   하루카에게 그렇게 답한 프로듀서는 다시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은 핸드폰 액정을 노려봤다. 싸울 기세로 지긋이 노려봐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루카는 평소와 어딘가 다른 프로듀서의 모습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일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자리를 떠나려했다.
   “하루카 잠깐만. 뭐하나 물어봐도 돼?”
   멀어지려는 하루카에게 프로듀서는 불쑥 물었다. 결국 그는 혼자 생각하는 거에 지쳐 하루카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네, 괜찮아요. 어떤 건데요?”
   “그게…….”
   프로듀서는 반짝이는 하루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젊은 여성이랑 메일을 해야 하는데, 메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
   “네? 젊은 여성이요?”
   하루카의 눈이 커졌다.
   “저, 젊은 여성이라니요? 프로듀서 씨랑 어떤 관계인가요!”
   덩달아 하루카의 목소리도 커졌다. 하루카는 불쑥 프로듀서에게 다가왔다.
   “그냥 안지 얼마 안 된 사람이야. 다만 말할 게 있어서 그런 거지 별 관계는 아냐.”
   사실은 소개팅 상대이지만, 그걸 하루카한테 털어놓는 건 지뢰를 밟는 것과 마찬가지란 걸 프로듀서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정말로 별 관계 아니에요?”
   “진짜 아무 관계 아니라니까. 나도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일이야.”
   친구가 억지로 소개팅 잡아버려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사실이긴 했다.
   “흐음, 그런가요.”
   하루카는 프로듀서를 미심쩍은 눈으로 살피다가 스스로 납득했다. 방금 전만 해도 일 관련 연락을 돌리고 있었으니, 그 연장선이라고 하루카는 어림짐작했다.
   “근데 프로듀서 씨는 평소에 저희나 코토리 씨한테는 메일 잘 보내지 않나요? 그런 식으로 보내시면 될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뭔가 어색해서. 하루카나 사무소 사람들은 편하잖아. 벌써 일 년 넘게 같이 일한 사이기도 하고.”
   “저희가 편한가요?”
   “당연하지. 우린 가족 같은 사이잖아.”
   프로듀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만큼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고 많은 일을 같이 해왔다. 거기에 765 프로는 모두가 끈끈한 유대감을 지닌 분위기였으니.
   반면 ‘가족 같은 사이’라는 말을 들은 하루카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프로듀서야 그만큼 친밀하단 뜻이었지만, 하루카는 그와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
   “가족…….”
   그 단어를 소중하게 중얼거리며, 하루카는 기분이 좋아져 헤실헤실 웃었다. 메일에 온 정신이 팔린 프로듀서는 그런 하루카의 기색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하루카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갑자기 손뼉을 딱 쳤다.
   “맞다, 그럼 지금이 딱 점심시간 무렵이니 점심은 잘 드셨냐고 물어보는 건 어때요?”
   “점심, 오, 그거 괜찮네! 바로 보내봐야겠다. 고마워!”
   “헤헤, 뭘요.”
   하루카는 프로듀서의 칭찬에 쑥스러운 듯 수줍게 웃었다. 프로듀서는 다시 한 번 하루카에게 고맙다고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바로 그때, 프로듀서의 입을 막듯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카~!”
   “하루카 씨, 잠깐 이쪽으로 와주세요!”
   사무소의 가운데에 놓인 소파 쪽에 있던 다른 아이돌들이었다. 늘어지는 목소리와 밝고 힘찬 어린아이의 목소리. 미키와 야요이다.
   하루카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한번 보곤, 프로듀서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전 가볼게요. 프로듀서 씨, 파이팅이에요!”
   하루카는 두 손을 꾹 쥐어 가슴에 모으며 씩씩하게 프로듀서에게 기합을 불어넣어줬다. 물론 일을 힘내라는 의미에서였지만, 프로듀서는 그냥 하루카의 응원에 기분이 좋아 웃었다.
   소파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하루카를 뒤로 하며, 프로듀서는 다시 핸드폰을 바라봤다.
  「점심은 잘 드셨나요(^_^)?……」
   점심으로 시작을 끊자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일분도 안 걸려서 만족스러운 메일을 쓴 프로듀서는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메일을 한번 검토하고, 바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 * * * * * * * *




   시간은 프로듀서가 메일을 보내기 전 쯤.
   대학교의 한 강의실은 칠판에서 열띤 강의를 펼치는 반백의 교수와 그의 가르침을 받은 대학생들로 가득 차있었다. 널찍한 공책에 열심히 필기하는 모범생, 필기보단 교수의 강의를 고갤 끄덕이며 적당히 듣는 학생, 아니면 아예 딴 짓을 하는 학생 등. 각양각생의 평범한 학생들이 있었다.
   나오는 강의실의 앞에서 네 번째 줄쯤에 앉아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책상 위엔 전공서적, 교수의 판서를 적는 노트, 여러 가지 색깔의 펜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핸드폰이 나오의 눈에 가장 띄기 쉬운 곳에 있었다.
   “에, 그러니까. 여기서 교육 방법은…….”
   교수의 말에 따라 나오의 손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눈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나오는 수업에 충실한 어엿한 모범생 중 하나였다.
   ‘아직도 안 왔나.’
   잠깐 수업이 느슨해질 틈에 나오는 핸드폰을 교수 몰래 건드려 액정을 켜봤다. 연락은 없었다. 메일도, 전화도. 나오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다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그걸 나오는 계속 반복했다. 수업 듣다가 핸드폰 확인, 다시 수업에 집중.
   이렇게 나오가 바삐 움직일 무렵에 나오의 옆자리에 앉은 아키코는 꾸벅꾸벅 졸았다. 책은 펼쳤지만 펜을 이상하게 쥔 아키코의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늘 이런 친구기에 나오는 아키코를 깨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한지 어언 한 시간을 넘어 두 시간에 달할 무렵이 되자, 열심히 수업을 듣던 학생들도 서서히 지친 기색을 보였다. 수업을 애초에 포기한 그룹 중엔 아키코처럼 자는 학생도 눈에 띠게 늘어났다.
   “자, 이걸 한번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교육 사상은…….”
   반백의 교수는 지치지도 않는지 더욱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나오도 지침 없이 꾸준히 수업에 따라 붙었다. 간간히 핸드폰을 몰래 확인한다는 것만 빼면 정말 훌륭한 모범생이었다.
   나오는 교수가 칠판에 쓴 판서를 다른 색깔의 펜으로 쓰기 위해 손을 뻗자, 쭉 잠잠했던 핸드폰의 액정이 소리 없이 켜졌다. 나오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핸드폰에 집중된다.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켜진 핸드폰. 나오는 조심스레 핸드폰을 가까이 당겨 액정을 확인했다.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알림. 나오는 순간 환호를 지를 뻔했다. 나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펜을 집어 필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나오는 액정을 건드려 메일의 내용을 확인했다.
   프로듀서로부터의 메일이다. 
  「점심은 잘 드셨나요(^_^)?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계신가요?」
   질문형의 짤막한 메일이었지만 나오는 그거로도 좋았다. 나오는 핸드폰을 집어 책상 아래로 가져가 곧장 답장을 썼다.
  「네, 친구랑 학교에서 간단하게 먹었어요. 아카바네 씨는요?」
   답장을 보내곤 다시 나오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놨다. 나오가 다시 수업에 집중하려는 찰나에, 또 메일이 왔다.
  「오전 업무가 늦게 끝나서 적당히 편의점 음식으로 때웠어요. 일이 덜 바빴으면 더 빨리 연락드렸을 텐데, 죄송해요.」
  「죄송하긴요. 그래도 어제보다는 연락 빠르잖아요.(^ㅡ^) 하시는 일이 정말 바쁘신가 봐요. 어제도 늦게 끝나시더니.」
  「방송 쪽에서 일해선지 여기저기 이동할 때도 많고, 챙길 일도 많네요ㅠㅠ 아사쿠라 씨는 지금 뭐하고 계셨어요?」
   프로듀서의 답장은 바로바로 날아왔다. 나오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잡아 책상 아래에 두곤 아예 시선을 내렸다. 더 이상 수업은 나오의 머릿속에 없었다.
   나오의 엄지손가락들은 경쾌하게 춤을 추듯 액정 위에서 움직였다. 바로 보낼 메일이 완성됐다.
  「수업 듣는 중이었어요~ 아카바네 씨는 쉬는 중이에요?」
  「아, 그렇긴 한데 수업 중이셨군요ㅠㅠ 수업에 집중하셔야 할 텐데 괜히 메일 보낸 건 아닌지…….」
  「괜찮아요(^∇^) 어차피 곧 끝날 수업이에요~」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넣는 나오의 표정은 밝았다.
  「그럼 다행이네요. 수업은 어떤 내용이에요? 교대생이시라고 들었는데.」
  「딱 맞추셨어요. 교육 전공 수업 듣는 중이었거든요. 수업은 교수님이 잘 가르치셔서 좋긴 한데, 역시 어렵네요(ㅜ_ㅜ)」
  「그래도 아사쿠라 씨는 머리 좋으시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렇죠?」
   프로듀서의 근거 없는 메일에 나오는 그만 풉하고 소리죽여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옆에서 쿨쿨 자는 아키코가 머리가 좋다니. 뭔가 정보가 잘못 전달된 모양이다.
  「에이, 그렇지 않아요. 저 머리 안 좋은 걸요.」
  「어라, 그런가요? 메일 쓰시는 느낌으로는 정말 똑똑하실 거 같은 데.」
   ‘느낌이라니, 괜히 빈말하기는.’
   피식 웃으면서도 나오는 기분이 좋았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마음에 드는 상대로부터의 칭찬은 받을수록 좋다.
   나오는 경쾌한 기분을 담아 답장을 쓰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다.
   “호시이 나오!”
   “네, 넵!”
   쩌렁쩌렁한 부름에 나오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핸드폰은 숨기지도 못한 채 왼손에 그대로 쥔 상태였다. 나오는 자신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는 교수와 마주해야했다. 삽시간에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나오를 향해 쏠렸다.
   “뭘 그렇게 재밌게 메일하고 있나? 그리고 옆에 자는 친구도 좀 깨워주지 그래. 어차피 옆의 친구는 강의 들어봤자 거기서 거기다만, 그래도 도리란 게 있지 않나.”
   “넵, 아, 아키코, 아키코.”
   “으음…….”
   교수의 지적에 나오는 잠에 곯아떨어진 아키코를 흔들어 깨웠다. 분위기가 확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꿈나라 속인지 아키코는 눈을 비비며 흐느적흐느적 일어났다.
   “뭐야, 강의 끝났어?”
   “강의 아직 안 끝났네.”
   “흡, 교, 교수님!”
   아키코는 나오를 따라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났다. 교수의 말과 강의실 곳곳에서 피식 터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시선에 아키코는 멍한 정신을 퍼뜩 차렸다.
   “아사쿠라 군이야 뭐 늘 있는 일이니 그렇다 쳐도, 호시이 군이 강의 중에 딴청 피우는 건 처음 보는 군. 혹시 남자친구라도 생겼나?”
   “아, 아닙니다!”
   고개를 훽훽 흔들며 부정하는 나오의 볼이 붉어지자, 짓궂은 몇몇 학생들은 휘유, 하며 탄성을 보내왔다. 남녀 관계는 어디서라도 흥미를 끄는 소재거리이니.
   “남자친구가 생긴 건 축하할 일이다만, 그래도 강의 시간에 메일 보내는 건 자중해주게. 아무튼, 시간도 다 됐으니 오늘 강의는 여기서 끝내지. 모두 수고했네.”
   교수의 말에 강의실의 학생들은 일제히 인사했다. 특히 일어난 나오와 아키코는 누구보다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교수가 빠져나가자 굳어있던 강의실의 공기가 확 풀렸다. 책 등 짐을 챙기는 소리,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 학생들의 대화 소리 등으로 강의실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나오는 별 말 없이 교수가 강의실을 나가는 걸 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감점 당하는 줄 알았네.”
   다행히 지적으로 끝났기 망정이지, 태도 점수를 감점 당했다면 성적에 큰 타격이 되었을 터다.
   “에고, 잘 자고 있었는데 이게 뭔 난리야. 근데 나오는 웬일로 걸렸어? 나오 넌 메일 같은 거 수업 중엔 절대 안하잖아.”
   “잠깐 사정이 있어서 그래. 뭐 수업 끝났으니까 짐 챙겨서 나가자.”
   나오는 부지런히 팔을 움직여 책이나 펜 등을 가방 속에 차례차례 넣었다. 아키코는 의자에 풀썩 앉으며 그런 나오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흐음……너 진짜 남자친구 생긴 거 아냐?”
   “남자친구? 에이, 그런 거 아냐.”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수상해…….”
   아키코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오를 지긋이 바라봤다. 나오는 그런 아키코를 애써 무시하며 짐을 챙겼다.
   “빨리 짐 챙겨. 안 그러면 버리고 간다?”
   “으잉, 빨리 챙길 테니 나 버리지 마~”
   가벼운 애교가 담긴 아키코의 목소리에도 당연히 나오는 별 감흥이 없었다. 나오는 아키코가 짐을 챙길 동안 아까 보내려다 못한 답장을 재빨리 핸드폰을 조작해 보냈다.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네요. 맞다, 아카바네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다 챙겼다~.”
   송신 버튼을 누르자 마침 아키코도 짐을 다 챙겨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래? 그럼 어서 다음 강의실로 가자.”
   “응~!”
   아키코는 늘어지게 대답하면서도 나오의 모습을 몰래 살폈다. 묘하게 들떠 보이는 나오의 표정. 아키코의 눈썰미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아키코의 축 처진 눈초리는 둔해보였지만, 이런 쪽 눈치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뭔가 분명히 있는데.’
   흥미진진한 냄새가 나오로부터 물씬 풍겼다. 파란의 분위기다. 아키코는 나오의 스타일 좋은 뒷모습을 가는 눈초리로 쭉 지켜봤다.




   * * * * * * * * *




  「그럼 다섯 살 차이군요. 생각보다 꽤 많이 나네요.」
  「생각보다요? 아, 설마 제 나이 더 많이 나갈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메일 쓰시는 게 차분하셔서요. 제가 아는 그 나이 대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이라.」
   프로듀서는 자신이 프로듀스하는 아이돌 중 한 명인 미우라 아즈사를 떠올리며 메일을 쳤다. 프로듀서가 아는 나오 또래 사람은 아즈사뿐이다. 아즈사는 좋게 말하면 느슨하고, 나쁘게 말하면 멍한 성격이라 나오와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래도 다섯 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제 주위에도 다섯 살 넘게 차이나는 커플들도 있는걸요.」
  「하긴 나이보단 사람이 잘 맞는 게 중요하겠죠. 나이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증명하는 건 아니니까요.」
   프로듀서는 이번엔 같은 프로듀서인 아키즈키 리츠코를 떠올렸다. 리츠코는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음에도 류구코마치라는 어엿한 아이돌 유닛을 훌륭하게 프로듀스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나오로부터의 답장은 곧장 날아왔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제 또래 남자 애들은 영 다 푼수들이라 말도 잘 안통해서 답답할 때가 많아요. 아카바네 씨 같은 사람이 주위에 많다면 편할 텐데ㅠㅠ」
   은근히 자신을 칭찬해주는 나오의 메일에 프로듀서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바로 답장을 보내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했다.
   “허니, 뭐하는 거야?”
   그때 프로듀서의 왼편에서 불쑥 금발 머리칼이 나타나 시야를 가렸다. 탐스러운 금발의 주인, 미키는 머리를 쏙 내밀어 프로듀서의 핸드폰을 훔쳐보려했다. 프로듀서는 황급히 핸드폰을 치웠다.
   “미키, 프로듀서 씨는 일하는 중이니까 방해하면 안 돼. 그리고 차 안에선 얌전히 있어야지.”
   미키의 반대쪽, 즉 프로듀서의 오른쪽에서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로를 달리는 차가 덜컹거리자 머리에 단 빨간 리본 두 개가 살짝 흔들렸다.
   “칫, 하루카는 허니가 뭐하는 지 안 궁금한 거야? 미키는 엄청 궁금한데.”
   “그거야 나도 궁금하지. 하지만 프로듀서 씨는 우리를 위해 열심히 하시고 계시니까, 방해하면 안 돼. 알겠어?”
   “네――인 거야.”
   미키는 하루카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미키 특유의 말버릇은 평소보다 더욱 느슨했다.
   하루카 덕분에 미키의 마수에서 벗어난 프로듀서는 하루카에게 고맙다는 의미를 담은 시선을 보냈다. 사실 일 내용의 메일은 아니라서 찔리긴 했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다.
   그때 미키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아후, 미키 졸린 거야. 허니, 미키 허니 무릎 써도 돼?”
   “무릎?”
   “응, 이렇게.”
   스륵하며 미키는 몸에 힘을 빼더니 머리를 내려 프로듀서의 무릎을 벴다. 볼륨감 있는 금발 머리칼이 프로듀서의 무릎을 덮어 아래로 흘러내렸다. 이른바 ‘무릎베개’다.
   “자, 잠깐! 미키 그건 이상하잖아!”
   그 망측한 모습에 하루카는 바로 펄쩍 뛰었다. 하지만 미키는 몸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여 완전히 자리 잡아 버렸다.
   “아후우, 허니의 무릎 편한 거야. 딱딱하지만 딱 좋아서 잠 솔솔 오는 거야. 그럼 미키 잘게~”
   그 말을 끝으로 미키의 눈꺼풀이 감기더니 다시는 뜨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무릎을 차지한 미키에 옴짝달싹 못한 채 굳어버렸다. 되레 하루카는 프로듀서의 무릎을 점령한 미키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하루카의 표정엔 분함과 질투가 공존했다. 하루카는 어떡하냐며 프로듀서를 바라봤다.
   “미키, 이미 잠들어 버린 거 같으니까 그냥 이대로 두자. 어차피 곧 방송국 도착하잖아.”
   “네……프로듀서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죠.”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제 자리를 잡는 하루카는 프로듀서에게 들키지 않게 미키를 살짝 흘겨봤다. 그 시선엔 부러움이 가득했다.
   무릎을 차지한 미키가 부담스러웠지만 얼추 상황이 정리되었다. 프로듀서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나오를 향해 메일을 썼다.
  「하하, 그래도 좋은 사람은 찾아보면 분명 있을 겁니다. 이제 또 수업 들으러 가시는 건가요?」
  「네, 그래도 오늘은 이번 수업으로 끝이에요~(^∇^)♪」
   답장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에 담긴 나오의 즐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메일로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하고 주고받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라서, 프로듀서는 신기하면서도 색다른 기분이었다.
   바로 답장을 쓰는 프로듀서의 표정은 부드럽게 들떠있었다. 입가는 느슨해지고, 눈은 가벼운 호선을 그린다.
   그런 프로듀서의 얼굴을 아래서 지켜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있었다.
   잠든 줄 알았던 미키는 실눈을 떠서 프로듀서의 표정을 무릎을 벤 순간부터 쭉 지켜봤다. 핸드폰을 통해 누군가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웃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허니…….’
   미키는 속으로 나지막이 프로듀서를 불렀다. 뭔가 있다. 분명히 프로듀서에게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키는 그 무언가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이른바 여자의 감이 무섭게 번뜩였다.
   프로듀서는 설마 자신의 무릎 위에서 미키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상상도 못한 채 나오와 기분 좋게 메일을 계속 주고받았다.
  「……아, 그럼 지금도 일 나가시는 거예요?」
  「이번엔 방송국에 스케줄이 잡혔거든요. 꽤 좋은 일이라 부디 잘 해내기를 바라고 있는 중입니다.」
   메일로 나누는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어 이젠 주고받는 게 상당히 편해졌다. 서로의 나이도, 하는 일도 대강 알게 되었다. 단순히 문자의 나열인 메일을 보내고 받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프로듀서가 나오에게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릴 때, 방송국을 향해 달리던 차가 멈췄다. 프로듀서와 아이돌들을 태운 차는 어느새 방송국에 도착했다.
   하루카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큰 건물을 가리켰다.
   “프로듀서 씨, 방송국이에요!”
   “응, 어서 내리자. 빨리 가서 대본도 다시 한 번 맞춰봐야지. 자, 미키, 방송국 도착했어.”
   “아후……도착한 거야?”
   프로듀서는 잠든 미키를 흔들어 깨웠다. 물론 잠든 척한 중인 미키는 바로 일어났다. 계속 깨워야 겨우 일어나는 평소와는 달리 일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눈에 띠게 짧았지만, 프로듀서는 내리는 데 정신이 팔려 알아차리지 못했다.
   세 사람은 차례차례 차를 내려 방송국을 향했다. 방송국 건물에 들어가자 하루카와 미키가 나올 방송의 관계자가 있었다.
   “765 프로 여러분 오셨군요! 언제 오시나 쭉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방송은 잘 준비해오셨습니까?”
   “예, 미리 받은 대본으로 연습시켜뒀습니다. 혹시 대본에 변동사항 같은 거 있습니까?”
   “안 그래도 그래서 기다린 거예요. 아이돌들의 출연 순서가 바뀌어서…….”
   프로듀서와 방송 관계자는 방송 대본을 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미키와 하루카도 옆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쫑긋 귀를 세우고 경청했다.
   세 사람은 차 안에서의 모습과 달랐다. 방송국에 들어왔으니 본격적인 일의 시작이다.
   프로듀서가 펜을 꺼내들어 관계자의 말을 받아 적을 때, 프로듀서의 주머니 속 깊숙이 박힌 핸드폰의 액정이 깜빡였다.
  「아카바네 씨, 스케줄이면 방송국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나오로부터의 메일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관계자의 말에 집중해 메일이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의 즐거운 메일 주고받기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이 글도 이제 막 중반을 지났네요. 슬슬 분위기가 고조되는 전개로 나아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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