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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프로듀서와 미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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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5, 2012 19:03에 작성됨.

오후 7시 반. 어느 방송국의 출연자 대기실에서, 프로듀서는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쳐다보고, 다시 벽에 붙어있는 작은 시계를 쳐다본다. 이제 곧 올 시간일 텐데……라 중얼거리는 프로듀서의 얼굴에는 초초함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 있는 스케줄만 끝내면 그 뒤에는 전부 비어있는데다가, 오늘 일은 방송국 쪽에서의 클레임이나 다른 신경 쓸 일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보이는 그의 초조한 얼굴, 누군가 걱정할 정도로 안쓰러워 보이는 표정을 띠고 있는 프로듀서. 하지만 마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기우였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듯, 프로듀서의 뱃속에서 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대기실 안에 울려 퍼졌다.

"……배고프다."

누군가 듣진 않았는지 슬쩍 두리번거리고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긁적이는 프로듀서. 그리고는 자신의 영업용 핸드폰을 꺼내, 다시 한 번 핸드폰을 확인한다. 오후 7시 31분. 프로듀서가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지 정확히 20시간 13분이 지난 뒤였다. 심야에 사무소에서 잔업을 하며 먹은 전병과 차 한 잔. 그 뒤엔 사무소에서 철야를 하곤 아침에 일어난 그대로 아이돌들의 스케줄을 계속 따라다녔다. 아이돌들의 식사는 물론 꼭 먹으라고 당부도 하고, 방송국이나 행사 주최 측에서 주는 도시락도 주며 어찌저찌 해결했지만 프로듀서에겐 그런 음식은 물론이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마지막 스케줄이 끝나는 지금까지 프로듀서는 내내 배고픈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이제 마지막……후우, 사무소 가기 전에 타루키정에 들러야지."

그래도 이제 곧 마지막 스케줄이 끝난다는 사실이, 프로듀서의 기분을 들뜨게 하고 있었다. 이제 아이돌을 배웅해주기만 하면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 있는 타루키정에서 정식 정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밥과 맛있는 된장국. 거기에 노릇노릇 구워진 생선까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그 음식 생각에, 프로듀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허니, 다녀왔어!"
"미키. 어서와."

프로듀서가 한참동안 음식 생각에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을 무렵, 대기실의 문이 활짝 열리며 그가 계속 기다리던 아이돌, 호시이 미키가 나타났다. 밝은 표정으로 그의 품속에 안기려드는 미키, 그 행동을 저지하면서도 프로듀서는 그녀가 돌아왔다는 기쁨에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드디어 식사를 할 수 있는 건가! 하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릴 무렵, 프로듀서의 눈에 미키가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미키, 그건……."
"이거? 주먹밥인거야! 디렉터……씨한테서 받았어!"

생글생글 웃으며 주먹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미키. 그 어중간하게 붙이는 '씨'란건 리츠코가 가르친 걸까 하며, 프로듀서는 눈앞의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생각에 빠져갔다. 혹시나 디렉터가 미키의 팬이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주먹밥을 먹고 있던 디렉터에게 미키의 특성인 매혹 같은걸 사용해 반 강제로 뺏어온걸까. 둘 중에 어느 쪽이든, 지금 프로듀서에게 있어서는 곤란하고도 괴로운 일일 뿐이었다. 몇 끼를 굶은 상태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미키의 즐거운 간식 시간. 아무리 무시하려 해 봐도, 배고픈 그의 눈에 음식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안 돼 안 돼. 아이돌의 음식을 뺏어먹는 프로듀서라니, 있을까 보냐.'

미키의 주먹밥을 저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프로듀서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성으로 애써 주먹밥 생각을 잊어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프로듀서가 아이돌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지 한발 물러서서 양보해 주는 사람이라 해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쉽게 참을 수는 없었다. 입안에 가득 고이는 침을 애써 삼켜가며 주먹밥을 무시하려 하는 프로듀서. 하지만 미키는 그런 건 전혀 모른다는 듯, 싱글벙글 거리며 그에게 이런 것을 물었다.

"저기 허니, 나 여기서 주먹밥 먹어도 돼?"
"어? 아아, 아. 괘, 괜찮아. 어차피 이 대기실, 아직 비워주지 않아도 되니까."
"만세인거야—! 그럼, 잘 먹겠습니다 인거야!"

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주먹밥을 한 입 무는 미키. 그것이 바로 프로듀서에게 있어서 고행의 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미키의 입안에서 부서져가는 새하얀 밥알들, 그와 함께 보스락 거리는 김에서 반사되는 빛, 거기에 끝부분에 묻어있는 소금이 반짝임을 더해준다. 그와 함께 터져 나오는 고깃국물. 소고기 주먹밥이었던 것일까, 하얀 밥을 물들이는 갈색 섞인 고깃국물이 미키의 입 안으로 들어간다. 오물거리며 작은 입을 움직이는 미키, 그 모습에 프로듀서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킴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한 단어.

"맛있겠다……."
"……우응?"

갑작스런 프로듀서의 그 말에, 미키는 고개를 들곤 그를 바라보며 갸웃, 하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동시에 자신이 무슨 말을 꺼냈는지 그제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어찌해야 할 줄 모르는 프로듀서. 저도 모르게 꺼낸 말이었던 걸까, 당황하여서는 어—그러니까, 그게, 하는 말만 꺼내고 있을 뿐 제대로 변명조차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키는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걸까, 궁금증을 가득 품은 표정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뀐 미키.

"허니, 혹시……굶주렸던 거야?"
"응? 그, 그게 말이지. 그러니까……응."

미키의 날카로운 말에, 어떻게든 부정해 보려던 프로듀서는 결국 고개를 끄덕여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굶주렸다는 말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배가 고프다는 건, 굶주렸다는 건 프로듀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담당 아이돌에게 자신이 배고프다는 걸 알게 하다니, 지금당장 미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프로듀서였지만, 미키의 반응은 그와 정 반대였다.

"그런 거라면 진작 말하지 왜 숨겼던 거야, 허니!"
"으, 응? 그야 미키 넌 내 담당 아이돌이니까……."

내가 배고프단 말 같은 건, 프로듀서로써 절대 말 못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프로듀서는 이미 들켜버린 사실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금 괜한 신경을 쓰게 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인다. 하지만 미키는 오히려 어떤 스위치라도 켜진 건지 눈을 반짝이며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한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설픈 웃음을 흘리는 프로듀서.

"걱정 마! 미키 적으로 그런 사소한 것 따위는 상관 없는 거야! 허니, 무엇보다 중요한건 허니의 마음이니까!"
"그치만 그, 미키 네가 신경 쓰면 어쩌나 해서……."
"미키는 괜찮은 걸? 오히려 일찍 말해주지 그랬어 허니."

아핫, 하고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프로듀서를 바라보는 미키.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오른쪽 눈으로 윙크까지 해 보이는 미키의 반응에, 프로듀서는 마치 자신이 괜히 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왠지 미키의 반응이 겨우 배고프다고 말한 것 치고는 조금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시. 어느새 주먹밥을 흡입하듯이 먹어버린 미키가 뒷짐을 진 채로 그를 올려다보더니, 총총총 대기실 문 앞으로 가버린다.

"자, 그럼 가는 거야 허니."
"응? ……아, 미안. 난 신경 쓰지 말고—"
"괜찮은 거야. 미키, 지금당장 프로듀서랑 그곳에 가고 싶은 걸?"
"그렇다고 해서 주먹밥을 그렇게 급하게 먹을 필요는 없었는데……역시,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미키!"

프로듀서의 사과에, 미키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손을 내젓는다. 그리고는 프로듀서의 손을 잡아끌며 대기실 문 밖으로 나가는 미키. 그에 미키의 이런 과한 반응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프로듀서는 순순히 그녀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느새, 스케줄용 차에 타고 있었다.

"자, 출발인거야!"
"……저기 미키, 같이 가려고?"
"당연한 거야! 미키, 허니랑 같이 거기 가는걸 꿈꿔왔었거든!"

타루키정에 같이 가려고 하다니, 혹시 미키도 지금 배가 고픈 건가? 같은 생각을 하는 프로듀서. 하긴, 좀 전에 주먹밥도 먹었으니 배고픈 걸까. 라며 가볍게 넘겨버리며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프로듀서. 그 소리에 미키는 더더욱 신나서 미소를 띠며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이 날만을 기다려왔던 거야, 허니도 드디어 미키의 매력에 넘어왔구나! 란 생각을 하며 헤죽헤죽 웃는 미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대화하는 핀트는, 어딘가 조금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사실도 모른 채 잠시 신호에 걸려 멈춘 차 안에서 미키는, 오해의 씨앗을 더 키워나려는 듯 대기실에서 하던 말을 죽 이어나갔다.

"저기, 허니. 언제부터 그랬던 거야?"
"응? 언제부터냐니……음, 처음부터라고 해야 할까."

아침 스케줄이 시작할 때 미키를 만났을 때부터, 배고팠으니까. 라며 머릿속으로 기억을 되짚어가는 프로듀서. 미키는 프로듀서의 대답에 흐음, 하며 콧소리 섞인 목소리를 내곤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꽉 막힌 도로를 보기 싫었던 걸까, 잠시 처음부터……란 말을 입안에서 되놰 보더니 프로듀서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까보다는 조금 더 들뜬 목소리로 미키는 그를 불렀다.

"그 말은 처음부터 헤롱헤롱~거렸던 거야?"
"헤롱헤롱?……뭐어, 그렇게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 거라면 미키한테 일찍 말해주지 그랬어! 미키는 허니가 처음부터 말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미키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성실하게 답해주는 프로듀서. 배고파서 해롱거렸다는 것도 일단 말이 되는 건가? 라 생각하며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미키에게 있어서 그것은 촉진제라도 된 걸까. 눈초리를 살짝 올리며 입까지 삐죽 튀어나온 상태로 툴툴거리는 미키. 어딜 봐도 화나서 무섭다기 보단 귀엽다는 감상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프로듀서는 이럴 때의 미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일까. 미안미안, 이라며 가벼운 사과를 일단 한 번 해 준 뒤에, 신호에 걸려 차가 잠시 멈추자 미키의 얼굴을 바라봐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담당 아이돌이 신경쓸만한 일을 자기 입으로 말하면, 그건 곧 프로듀서 실격이지. 그런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냐."
"흐음, 그렇게 말하면, 허니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데 말이야……."

아직 잘 모르겠다는 듯이 갸웃, 하고 한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는 미키. 하지만 그 정도 이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프로듀서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위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도 한참 동안 팔짱을 낀 상태로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미키는, 이내 아후우—하곤 하품을 하더니 결국은 생각하길 포기한 듯 기지개를 켜곤 다시 프로듀서 쪽을 쳐다봤다.

"그치만, 역시 좀 더 일찍 말해줬으면 좋았을 거야."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잖아……."
"뭐, 이젠 괜찮은 거야! 미키는 솔직하지 못한 허니도 귀여워서 좋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말과 함께 해맑은 웃음을 보이는 미키, 프로듀서 또한 웃는 낯엔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듯 웃음으로 조금 전의 말을 넘겨버렸다. 다시 움직이는 자동차, 정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프로듀서를 한참이고 생글거리며 바라보던 미키는,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자신의 작은 손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이내 미키의 손에 들려나온 것은 짙은 파란색의 봉지로 감싸져 있는 비스킷 몇 개였다.

"미키, 그거……."
"이거 말야? 아까 그 디렉터!……씨의 친구한테 받았던 거야."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디렉터의 친구라는 사람이 프로듀서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프로듀서가 그런 원망의 말을 머릿속으로 저주라도 내리듯 퍼붓고 있는 새, 미키의 손에는 어느새 그렇게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네모난 비스킷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는 와작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비스킷을 한 입 깨물어 보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프로듀서의 머릿속은 식욕의 번뇌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음— 맛있는 거야! 저기저기 허니, 허니도 한 개 먹을래?"
"아, 아니! 난 신경 쓰지 말고, 미키 네가 먹고 싶은 만큼 먹어."
"그런 거야? 그럼……음, 역시 최고야!"

프로듀서의 말에 미키는 해맑은 표정으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스킷을 입 안에 넣은 채로 우물거리는 미키. 그녀의 입 주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가 프로듀서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어느새 미키의 손에 들려있는 또 하나의 비스킷. 앙—하는 소릴 내며 미키의 입안에 들어가는 그 먹을거리에 시선을 뺏긴 채로 멍하니 바라보며, 프로듀서는 다시 한 번 군침을 삼켰다.

"마지막 한 개……. 아까운거야."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우응, 하고 마지막 하나 남은 비스킷을 손에 들고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는 미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프로듀서는 그야말로 미쳐버릴 지경이다. 기름기로 살짝 빛나는 표면, 거기에 군데군데 뿌려진 소금 몇 알갱이가 프로듀서에게 유혹이라도 하듯 두꺼운—어디까지나 프로듀서의 관점이긴 하지만—속을 내놓고 있었다. 한 입만 먹었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입만 먹으면 이 허기를 어떻게든 참을 수 있을 거 같은데……라며 프로듀서가 번뇌에 빠지는 동안, 마치 소심한 태도의 그를 놀리듯 미키가 비스킷을 입에 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프로듀서의 이성은 날아가 버렸다.

"……미키."
"우음?"
"미안하지만, 잘 먹겠습니다."

아직 깨물지 않은 비스킷을 입술로 문 채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물음 섞인 미키의 답이 돌아오기 무섭게, 프로듀서는 한 마디 말과 함께 미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쓸데없는 동작 하나 없이 깔끔하게, 미키의 입에 물려있던 비스킷에 오직 입만을 대선, 자신의 입 안에 옮겨넣어버렸다. 어쩌면 입술이 닿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입을 우물거리며 비스킷의 맛을 음미하고 있을 무렵 프로듀서의 머릿속에서 문득 떠올랐다.

"……아, 어, 저기, 미키? 저, 정말 미안!"
"허니……."

저건 분명 화났구나, 화난 말투야 하는 생각이 프로듀서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 나이에 여중생을, 그것도 담당 아이돌에게 겨우 비스킷 하나 때문에 이렇게 터무니없는 짓을 해버리다니. 자책하고 또 자책하며, 프로듀서는 어느새 길가에 세워진 차 안에서 고개를 숙였다. 미키는 계속해서 묵묵부답, 프로듀서를 감싸는 묘한 불안감이, 그의 몸에 식은땀을 흘리게 하고 있었다. 이윽고 미키는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명확하게 말했다.

"허니, 고개 들어봐."
"으, 응."

완전히 저자세로 미키의 명령에 따라 천천히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드는 프로듀서. 슬쩍 미키의 얼굴을 살피기 위해 시선을 위로 향하자, 그녀는 히죽, 하고 웃어 보인다. ……웃었다고?
예상 못한 미키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한 듯 눈치를 살피던 것도 잊고 미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프로듀서. 그 표정에 미키는 더욱 더 밝은 미소를 보인다.

"……미키?"
"아하핫, 허니도 참. 미키는 그런 거 갖고 신경 안 쓰는 거야! 그리고 미키 적으론 말야, ……한 번 더 해줘도 좋은걸?"
"다, 다시 안 할 거야 그런 거!"

어느새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젓는 프로듀서. 그 모습을 본 미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린다. 미키의 시선을 피하며 얼른 차를 움직이는 프로듀서, 하지만 차가 다음 신호에 걸린 뒤에도 여전히 차 안은 미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눈물까지 맺힌 미키가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기기 시작했다.

"새빨개진 허니, 엄청 귀여운 거야! 아핫."
"그……미키, 정말 미안.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도,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괜찮은 거야! 아까부터 말했지만, 허니가 굉장히 굶주려 있어서 그랬던 것뿐이니까. 미키는 이해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굶주렸다는 말은 좀……이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프로듀서. 그에 잠시간 맞는 말이잖아 허니? 하는 표정을 짓는 미키를 바라보더니, 생각에 잠긴 듯 프로듀서는 허공을 바라본다. 그리곤 차가 다시 움직일 때 즈음, 프로듀서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치만 역시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대신 미키, 네 소원을 하나 들어줄게."
"미키의 소원?"
"응, 사과의 의미라고나 할까……."

어색하게 웃는 프로듀서, 하지만 그 답에 미키는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프로듀서 쪽에서는 사과라도 모자라기에 일단 막 생각 난 말이라도 해둔 거였겠지만, 미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사과 선물이라 생각됬던건지 아까보다 몇 배로 맑게 웃으며, 놀람에 재차 그 사실을 확인한다.

"저, 정말인거야!? 미키의 소원, 들어주는 거야?"
"뭐어, 그렇지. 사과의 의미니까 어떤 소원이든 상관없어."
"정말이지! 그럼말야, 응, 미키는……."

끙끙거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가장 좋은 소원을 고르는 미키. 그 귀여운 모습에 프로듀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어느새 조금 전까지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어딘가에 밀어놓고 왔는지, 순수하게 미키를 보며 웃음을 흘리는 프로듀서. 그 행동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을 삐쭉 내밀며 잠시 동안 프로듀서를 바라보던 미키는, 이내 아! 하고 크게 소리치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프로듀서 쪽을 바라봤다.

"허니, 그럼 이거. 입으로 떼어줄래?"
"……뭐?"

프로듀서의 반문에, 미키는 웃으며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의 입가를—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입가의 과자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이거 말야, 허니의 입으로 떼어줬음 좋겠어!"
"미, 미키, 너 정말……!"

프로듀서의 그 당혹스러움을 담은 말에도, 미키는 응? 미키가 뭐라도 잘못 했어? 란 표정이었다. 프로듀서의 입장에선, 어처구니없는 반응일 뿐이었다. 계속해서 자신만을 빤히 바라보는 미키의 시선에 못 이겨, 프로듀서는 일단 자동차를 길가에 잠시 멈췄다.

"저기말야 미키, 너……."
"응? 왜 그래, 미키의 소원 뭐든지 들어준다고 했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만 이건……."

곤란한 표정으로 미키의 시선을 피하며 프로듀서는 궁여지책을 짜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 소원이란 건, 본의 아니게 한 그 키스 비슷한 것에 대한 프로듀서로써의, 성인 남성의 입장으로써의 최대한 해 줄 수 있는 사과의 의미였다. 그런데도 또 그 비슷한 짓을 하라니, 프로듀서에게는 도저히 미키의 그 소원을 들어줄만한 뻔뻔함이 없었다.

"허니, 굶주렸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확 저질러 버려도 되는 거야!"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우물쭈물 거리는 프로듀서의 반응에, 미키는 그의 눈을 응시한다. 따가운 시선에 어쩔 줄 몰라선 입을 닫아버리는 프로듀서. 그 반응에 미키는 천천히, 프로듀서를 향해 다가간다.

"여기서 저질러 버려도 되는 거야."
"……미키."
"응? 허니. 괜찮다구."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말야."

점점 매혹적인 목소리로 프로듀서를 유혹하기 위해 다가오는 미키. 잠시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그대로 넘어가 버려, 인간으로써 저지르면 안 될 짓을 저질러 버릴 것만 같은 프로듀서. 그런 아찔한 상황에, 프로듀서는 애써 고개를 내저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숨을 깊이 들이 마쉬고는, 등 뒤론 식은땀을 흘리며, 미키에게 넘어가지 않겠단 굳은 결심을 하며,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아무리, 아무리 내가 배고프다지만……미키 네 입가에 묻은 과자까지 먹을 생각은 없다고!"
"……응?"

프로듀서의 그 말에, 미키는 순간 그 자리에서 멈춰 그의 얼굴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곤 이내 조수석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미키.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프로듀서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제야 멀어진 그녀를 보고 안심하던 프로듀서는 한참 안심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허니. 배고프다니?"
"응? 아까부터 말했잖아. 배고프다고. 정말,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선……하아."
"무슨 소리인거야? 그럼 말야 허니, 지금부터 갈 거긴?"
"거기? 아, 타루키정 말하는 거야?"

프로듀서와 미키의 일렬의 대화. 그것이 끝나자마자 미키는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더니, 이내 묘한 표정을 짓더니 푹 고개를 숙여버린다. 그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여전히 미키만을 바라보며 응? 왜 그래, 라며 물어오는 프로듀서.

"으으……허니, 실망인거야."
"응? 왜 그래, 방금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허니, 정말 바보인거야!"

어느새 눈물까지 맺혀선 프로듀서를 원망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미키. 오히려 더 당황한 것은 프로듀서였다. 어째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도 모른 채 안절부절 거리고 있던 프로듀서는, 얼른 차 한구석에 박혀있던 주유소에서 받은 휴지를 꺼내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여전히 안쓰러운 소릴 내며 미키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키, 그……. 미안."

결국 프로듀서는 영문도 모른 채 사과해버렸다. 대체 무슨 일 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게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온 말. 하지만 그 말에 어느 정도 진정된 듯, 미키는 훌쩍거리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대충 눈가를 닦아내었다. 여전히 풀이 죽은 건 확실히 보였지만, 어느 정도 나아졌으니 이젠 괜찮다고 생각한 듯, 프로듀서는 미키 쪽을 잠시 바라보면서도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키는 멍하니 정면만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다, 무언가가 생각 난 듯 프로듀서 쪽을 바라보았다.

"……저기, 허니."
"왜 그래 미키?"
"아까 그 소원, 지금도 쓸 수 있는 거야?"
"아, 물론. ……그, 조금 전 같은 건 곤란하지만 말야."

프로듀서의 그 말에, 자동차의 덜컹거림에 따라 고개를 앞뒤로 끄덕이던 미키는 다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또 무슨 소원을 비려는 걸까 하며 걱정에 잠긴 프로듀서.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의외의 말이었다.

"……그럼말야, 지금부터 미키가 가고 싶은 곳에 같이 가도 돼?"
"응? 아, 뭐 그런 거라면 괜찮아."

그 답이 들려온 순간, 미키의 입에는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치만 일단 타루키 정에 들르면 안 될까? ……그, 너무 배가 고파서."
"응, 근데 미키가 가고 싶은 곳, 꼭 같이 가야 해?"
"아, 물론이지. 꼭 같이 갈게."
"약속 한거다!……후후후."

프로듀서의 확답에, 미소를 짓는 미키. 그 미소를 보곤 이제야 괜찮아 진걸까, 하며 프로듀서는 안심의 한숨을 내쉰다. 어느새 한껏 텐션이 올라선 콧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하는 미키. 대체 어딜 가려기에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라며 의문을 품은 프로듀서가, 그녀 쪽을 잠시 바라보며 이렇게 질문했다.

"그런데 어딜 가려는 거야 미키?"
"후후, 굉장히 좋은 곳인. ……응, 남자와 여자가 가기엔 굉장히 좋은 곳인 거야."

데이트라도 할 작정인가, 하며 헛웃음을 내뱉는 프로듀서. 뭐, 조금 전에 미안한 짓을 했으니 언제나 데이트, 데이트 거리며 불렀으니 이번 한번쯤은 함께 어울려 줘도 좋겠지라며 미소를 짓는 프로듀서. 그 모습을 본 미키는, 프로듀서를 향해 해맑은 웃음을 보여줬다.

'……후후, 기대하고 있을게, 허니. 미키도 굶주렸으니까.'

두 사람을 태운 차는, 그렇게 타루키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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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가 생겼음 전에 쓴걸 올려야징! 하는 마음으로 투척!
미키 귀여워요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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