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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호시이 자매의 더블데이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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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8, 2012 00:23에 작성됨.

  「밤늦은 시간에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소개팅 상대인 아카바네라고 합니다. 맡은 일이 바빠서 연락이 너무 늦었네요. 혹시 지금 연락가능하신지요?」
   “이게 뭐야.”
   나오는 핸드폰 액정에 뜬 메일을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정중한 메일이었다. 그 흔하디흔한 이모티콘도 하나 없이 딱딱해 보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진지한 느낌이 가득했다.
   ‘어째 영업용 메일 같네.’
   진지하고 정중한 메일. 나오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어처구니도 없었다. 하지만 늦었다는 걸 확실하게 인식하고 저자세를 보인다는 건 나오의 마음에 들었다. 나오는 대학 다니면서 또래 남자들의 가벼운 태도만 봐왔기에, 이런 메일은 되레 신선했다.
   “정말로 미안하긴 한가본데. 어쩌지…….”
   나오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바로 쉽게 대답해도 되려나. 연락 늦은 건 저쪽이니 괜히 가볍게 보이는 거 아냐?’
   사실상 이렇게 메일을 주고받는 게 소개팅에서의 나오와 프로듀서의 첫 접촉이었다. 첫인상이 소개팅의 반을 좌우하는 말도 있으니, 나오는 신중했다. 물론 불과 한 시간 전에 얼굴을 맞대고 만난 사이였지만 나오나 프로듀서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나오가 침대에 누워서 애꿎은 핸드폰 액정만 쓸어 넘길 때, 갑자기 핸드폰이 징징 울려댔다.
   “응?”
   새까맸던 액정이 켜졌다. 메일이 왔습니다. 무미건조한 알림 옆에 조그맣게 눈 익은 번호가 있었다. 소개팅 상대인 프로듀서다. 나오는 궁금해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역시 너무 늦은 시간이었나 보네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했습니다. 소개팅 건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니 편히 쉬시길 바랄게요. 아사쿠라 씨,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앗!”
   나오는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다. 그녀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액정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자, 자, 잠깐!”
   사실상 종결 선언을 한 프로듀서의 메일에 나오의 손이 황급히 움직였다. 나오는 바로 답장 버튼을 누르고 새하얀 공간에 글자를 채워 넣었다.
   ‘아직 한 마디도 못했단 말야. 그리고 끝내더라도 내가 할 거야!’
   차더라도 직접 차리라. 지독하게 차버려서 친구가 쓴 소리를 듣게 하도록. 지금까지 기다린 것도 다 그거 때문이었는데. 나오의 손가락이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메일이 늦어서 이제야 봤네요. 전 괜찮아요. 아카바네 씨.」 이거면 되겠지. 송신.’
   적당한 길이에, 살짝 토라진 티가 난 느낌의 메일. 물론 이모티콘은 없었다. 나오는 메일을 보내는 중이라고 뜬 액정을 지켜봤다. 몇 초도 걸리지 않아 완료 화면이 떴다.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답장은 언제 올까 하는 초조감이 나오를 찾아왔다. 나오는 침대 위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으며 얼굴 앞에 놓은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미키와 같은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지긋이 한곳을 바라본다.
   지잉. 핸드폰 액정이 반짝였다. 나오는 바로 두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확인했다.
  「아, 일어나 계셨군요. 다행이에요. 아사쿠라 씨가 벌써 주무시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제가 잠을 깨운 건 아니죠?」
   “흐응, 조심스러운 사람이네.”
   나오는 완벽하게 저자세를 취하는 프로듀서의 메일에 피식 웃었다. 나오는 바로 답장을 쓰려다 문득 프로듀서의 메일에 나온 호칭이 눈에 들어와 손을 멈췄다. 아사쿠라 씨. 나오 친구의 성. 상대방은 나오를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다.
   나오는 아사쿠라란 호칭을 바라보다가, 괜찮을 거라 생각하곤 다시 메일을 보냈다.
  「아직 안자고 있었어요. 아카바네 씨는 이제 일 끝나신 거예요?」
  「네, 하는 일이 그래선지 늘 이 시간쯤에 끝나네요. 지금 막 차로 집에 돌아가는 중이에요.」
  「어라, 차로 돌아가는 거면 지금 운전 중에 메일 하시나요? 위험할 텐데.」
  「지금은 갓길에 차 댄 다음에 메일하고 있어요. 교통법규는 확실히 지키니 걱정 마세요.」
   “푸핫, 차 대고 메일이라니.”
   굳이 메일을 보내기 위해 차까지 멈췄다는 상대방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나오는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나오는 베개에 묻었던 얼굴을 떼고 상체를 일으켜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 가셔서 연락하시지. 벌써 12시가 넘었는데.」
  「아사쿠라 씨를 계속 기다리게 할 수가 없어서요. 이것도 일 끝나고 바로 연락드린 거라……. 그리고 오늘 안엔 꼭 연락드리고 싶었어요.」
   ‘꼭’이란 단어를 나오는 곱씹었다.
   메일에서 보이는 상대는 진지한 남자였다. 늦게까지 일할 정도로 성실하고, 오늘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남자. 그리고 메일에 뜬 ‘아사쿠라’란 호칭. 나오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착한 사람 같은데 이렇게 속여도 되려나.’
   어차피 뻥 차버릴 상대라고 해도 상대에겐 죄가 없다. 죄라면 나오의 번호를 대신 알려준 아키코에게 있다. 나오의 마음 속에서 괜한 죄책감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끙, 모르겠어.’
   핸드폰을 꼭 쥐고 나오는 고민했다. 침대 위에서 좌우로 이리저리 뒹굴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기엔 너무 미안했다. 차라리 상대가 완전 꽝이었으면 이런 고민도 안했을 텐데. 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오는 새하얀 메일 기입란을 노려보다 결국 선택을 내렸다.
  「그래도요. 오늘은 일도 늦게 끝나시고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연락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요.」
   보류. 당장 답이 나오지 않으면 나중으로 넘기는 게 편했다. 그리고 나오도 착한 소개팅 상대가 일단 집에 들어가 쉬길 원했다. 자신이랑 메일 하느라 밖에서 있지 말고.
  「네, 그럼 전 이만 들어가도록 할게요. 대신 내일 다시 연락 드려도 될까요?」
  「괜찮아요(^_^) 조심히 집에 들어가세요~」
  「네, 아사쿠라 씨도 좋은 밤 보내시고, 안녕히 주무세요(^_^)」
   자신이 이모티콘을 쓰자 그걸 똑같이 따라한 프로듀서의 메일을 보는 나오의 얼굴이 살짝 느슨해졌다. 입 꼬리는 살짝 올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인사를 끝으로 프로듀서로부터 메일은 없었다. 나오는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 잘 시간이었다. 나오는 방의 불을 끄고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손을 멈췄다.
   완전히 침묵한 핸드폰은 메일을 주고받느라 계속 액정을 킨 탓인지 약간 따끈했다. 손 안의 온기를 느끼며 나오는 평소와는 달리 침대 바로 옆 탁자에 핸드폰을 놓았다.
   나오는 핸드폰을 계속 쥐고 있던 손을 가볍게 비비며, 긴장을 풀고 편히 누웠다. 발 한 켠에 구겨있던 이불도 쫙 펴서 몸을 감쌌다.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깊게 묻었다. 이불 한 자락을 손으로 잡으며, 나오는 눈을 감았다.
   ‘내일이라……. 아, 그러고 보니 12시 지났으니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겠네.’
   이미 자정을 지난 시간. 그럼에도 프로듀서는 내일이라고 말했다. 나오는 괜히 핸드폰을 집어 프로듀서가 보낸 메일을 다시 봤다.
   ‘진짜 내일이라고 썼잖아. 아마 오늘이겠지.’
   프로듀서가 착각한 거라 생각하며 나오는 프로듀서와 주고받은 메일들을 다시 쭉 살펴봤다. 정중한 말투로 가득한 상대방의 메일. 그걸 눈으로 슥 훑는 나오의 입가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 * * * * * * * *




   시간이 지나 아침 해가 뜰 무렵.
   나오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나오는 밤에 메일을 보다가 어느새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흐트러진 갈색 머리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오의 방에는 새액새액 숨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이 8시를 막 넘을 무렵, 조용했던 호시이 가족의 집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띵동, 띵동.
   경쾌하고 높은 소리. 딱 두 번 울렸지만 잠귀가 밝은 나오의 잠을 깨우긴 충분했다. 차분히 감겨있던 눈가가 꼼지락 움직이더니, 나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잠기운이 남은 눈동자는 약간 탁해보였다.
   ‘초인종소리가 난 거 같은데.’
   잠에서 깬 나오는 상체를 조심스레 일으켰다. 정돈 안 된 머리카락 몇 가닥이 뭉쳐 삐죽삐죽 삐져나왔다. 나오는 입을 벌려 하품했다.
   “아후우.”
   동생 미키와 똑같은 하품소리를 내며 나오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오는 슬쩍 눈을 비볐다. 아무 의미 없이 입을 우물거리던 나오의 눈에 침대 위에 놓인 핸드폰이 들어왔다. 그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나오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반쯤 감았던 나오의 눈동자에 생기가 감돌았다. 나오는 바로 핸드폰을 집어 확인했다. 
   “……안 왔네.”
   나오의 눈동자는 반짝임을 잃고 다시 축 늘어졌다. 소개팅 상대방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뭐, 아직 아침이니까. 어제도 늦게 들어갔을 테니 아직 자고 있을 거야.’
   자신도 모르게 소개팅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는 나오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대신 잠깐 잠잠했던 잠기운이 다시 슬금슬금 밀려들어왔다. 오늘 수업은 오후부터 있다는 걸 떠올리며 나오는 좀 더 자기 위해 침대에 다시 누우려했다.
   띵동.
   그때 나오의 귀에 또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나오는 누우려는 걸 그만두고 방문 쪽을 바라봤다.
   ‘부모님이나 미키는 벌써 나갔나. 음…….’
   초인종소리가 벌써 세 번이나 울렸는데도 다른 가족들의 반응이 없는 걸 보면 나가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직 잠기운이 완연히 남은 나오는 얼굴을 한번 찡그리더니, 결국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나오의 옷차림은 자기 전보다 흐트러져있었다. 입고 잔 품이 큰 티셔츠는 더욱 헐렁해보였다. 다만 옷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매끈한 피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선지 더욱 탄력이 넘쳤다.
   나오는 인터폰이 아니라 바로 현관문으로 향했다. 정신이 온전했다면 인터폰으로 누가 왔는지 확인하고 문을 열어줬을 테지만, 지금 나오는 반쯤 잠에 빠진 상태였다. 나오는 밀려오는 졸음에 한시라도 빨리 일을 처리하고 자고 싶었다.
   별생각 없이 나오는 바로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누구세요?”
   나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현관문 밖의 상대에게 물었다. 아무 반응 없이 갑자기 문이 열리리라 상상도 못한 상대방은 되레 놀라 뒤로 물러섰다.
   “호, 호시이 씨?”
   얼빠진 듯한 목소리. 나오는 상대방의 모습이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 프로듀서였다.
   “뭐야, 프로듀서였어요? 이 이른 시간에 뭐에요?”
   프로듀서를 보며 나오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짜증을 완연하게 드러내는 나오의 모습에 프로듀서는 움찔했다.
   변함없이 적개심 넘치는 태도에 움츠려들다가 프로듀서는 지금 나오가 어떤 차림인지 파악했다. 짧은 반바지 아래 매끈하게 드러난 맨다리. 거기에 헐렁하고 얇은 티셔츠는 가슴을 완전히 가리지 못하고 윗부분—이른바 가슴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프로듀서는 얼굴을 붉히며 나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미, 미키 데리러 왔어. 오, 오전에 방송 녹화가 있어서 내가 직접 데리러 오는 게 빠르거든.”
   “미키요? 미키라면 벌써 나간 거 같은데.”
   나오는 프로듀서의 더듬거리는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집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우당탕하는 큰 소리가 미키의 방 쪽에서 났다.
   “앗, 허니 벌써 온 거야? 나오 언니, 허니한테 좀 기다려달라고 전해줘!”
   “그렇다네요.”
   나오는 현관 밖으로도 들릴 정도로 큰 미키의 목소리를 듣고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답했다. 프로듀서는 여전히 나오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 그럼 난 차 안에서 기다릴 테니 미키보고 거기로 와달라고 전해줘.”
   “굳이 그럴 필요 있어요? 미키 곧 나올 텐데 그냥 같이 만나서 가요.”
   “아, 아냐. 먼저 가있을게.”
   프로듀서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자 나오는 프로듀서의 이상한 기색을 알아차렸다. 흘끔흘끔 흔들리는 시선은 나오를 피하듯이 움직였고, 더운 날씨도 아닌데 프로듀서의 이마엔 땀이 맺혀 있었다. 얼굴도 붉었고.
   “어디 몸 안 좋아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냐! 괘, 괜찮아!”
   그런 프로듀서가 이상해보여 나오는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한걸음 다가서자 프로듀서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확 물러섰다.
   나오는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피하는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언짢았다. 오기가 생긴 나오는 성큼 프로듀서에게 더 다가갔다.
   “뭐에요? 뭐 이상한 거 본 사람처럼. 기분 나쁘게시리.”
   “그, 그게…….”
   “그게가 뭐에요. 똑바로 말해 봐요.”
   나오의 요구에도 프로듀서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오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럴수록 나오의 기분은 더 나빠졌다.
   “휴우, 준비 끝! 좋은 아침이야, 허니!”
   그때 구원의 목소리가 찾아왔다. 방에서 간단한 메이크업을 한 미키는 아침인데도 반짝였다. 미키는 손을 크게 흔들어 인사하며 종종걸음으로 나오와 프로듀서가 대치한 현관으로 뛰어왔다.
   “미키!”
   프로듀서는 미키가 눈물 나게 반가웠다. 프로듀서를 압박하던 나오의 기세도 풀어졌다.
   “어라? 언니랑 허니는 뭐하는 거야?”
   상황을 전혀 모르는 미키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물어왔다.
   “아무 것도 아냐. 미키, 오늘도 일 열심히 해.”
   “응! 미키 힘낼게! 그런데 나오 언니는 안 추워?”
   “응? 내가 왜?”
   뜬금없는 미키의 말에 나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미키는 나오의 전신을 슥 훑으며 답했다.
   “티셔츠도 헐렁거리고 바지도 짧아 보이는 거야. 그럼 차림으로 있다간 감기 걸릴지도 모르는 거야.”
   “어?”
   미키의 걱정스런 말에 나오는 그제야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현관 옆엔 큰 거울이 붙어있어 그걸로 나오는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똑똑히 보았다. 헐렁하고 얇은 티셔츠 한 장으론 가려지지 않는 가슴의 윗부분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순간 나오는 프로듀서의 이상한 태도를 포함해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나오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나오는 재빨리 손으로 가슴팍을 가리며, 프로듀서를 홱 째려봤다.
   “크윽……! 이 변태!”
   나오는 새빨간 사과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프로듀서를 크게 쏘아 붙였다. 눈가엔 눈물마저 어렸다. 손으로 가슴을 가린 채 나오는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갑자기 뛰어가는 나오의 뒷모습과 쾅 큰 소리를 내며 닫히는 방문을 미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프로듀서는 ‘또 저질렀다.’라는 낭패 어린 얼굴로 바라봤다. 이걸로 나오 안에서 프로듀서의 평가는 또 한 번 바닥을 찍었다.
   “나오 언니가 갑자기 왜 그러지? 아, 설마 허니 또 나오 언니한테 음흉한 짓한 거야?”
   “아냐! 절대 아냐!”
   “미키처럼 예쁜 애인을 놔두고 허니도 참. 허니는 바람둥이인거야! 미키, 아무리 나오 언니라도 허니가 다른 여자에게 껄떡거리는 건 싫어!”
   미키는 쀼루퉁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프로듀서를 째려봤다. 프로듀서는 억울해 미쳐버릴 심정이었다.
   “아, 그래도 나오 언니라면 괜찮을지 모르겠네. 미키, 나오 언니보단 가슴 크니까. 허니는 거유 취향이니 걱정 없는 거야!”
   에헴, 하고 안 그래도 큰 가슴을 더욱 내밀며 미키는 당당하게 외쳤다. 프로듀서는 나오가 방에 들어간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키의 말을 나오가 들었으면 분명 더 화냈을 테니.
   “거유 취향 아니라니까. 에휴, 아무튼 어서 가자. 녹화 시간 늦겠어.”
   “응! 어서 가는 거야!”
   미키는 밝게 외치며 프로듀서의 팔을 잡고 씩씩하게 앞으로 먼저 나갔다. 그런 미키에게 이끌려 나가며 프로듀서는 호시이 가족의 집을 떠났다.
   프로듀서는 열린 현관문을 닫으며 나오에 대해 생각했다.
   ‘미키의 언니한테 계속 안 좋은 인상을 심는 거 같은 데 어쩌지. 으, 역시 여자는 대하기 어려워…….’
   프로듀서는 자신에 대한 나오의 평가가 급전직하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락해 화를 풀 방법도 없으니 무리였다. 그저 더 화를 돋우는 행동만 하지 말자고 그는 다짐했다.




   * * * * * * * * *




   “……이랬다니까. 아니 옷차림이 그랬으면 좀 말해주지 그걸 뻔히 보고 있었다니까.”
   “어머, 진짜? 웬일이야. 완전 변태네, 변태.”
   아키코는 깜짝 놀라하며 나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나오는 아침에 일어난 일을 풀어놓으며 다시 화가 나 냉커피를 한 모금 벌컥 들이켰다.
   “전에도 이거랑 비슷한 일 있었고. 암튼 최악이야 그 프로듀서는.”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데. 동생은 별 일 없어? 뭐 이상한 수작이라도 당한 거 아냐?”
   아키코의 말에 나오는 피식 웃었다. 미키가 이상한 수작을 당하다니.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미키는 괜찮아. 그 아이라면 알아서 잘 할 테니. 그리고 그런 일 생기면 당장 내가 한 대 콱 쳐버릴 테니 아키코는 걱정하지 마.”
   “하긴 우리 나오 성격이라면 든든하지. 흐흐.”
   “그래그래, 내가 또 한 성격하잖니.”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나오와 아키코는 같이 점심을 하고 대학 안에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오후 수업 시작 전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어 둘은 종종 이렇게 시간을 때우곤 했다.
   둘이 마주앉은 동그란 탁자 위에 두 사람의 커피와 물건이 올려있었다. 특히 나오의 핸드폰은 나오의 손 가까이에 있었다.
   나오는 핸드폰 액정을 켜 슬쩍 메일이 왔는지 확인했다. 역시나 안 왔다. 실망한 기색이 어리는 나오의 표정을 보며, 아키코는 커피를 빨대로 한 모금 쭉 들이키더니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소개팅 건은 잘 해결했어?”
   “응? 소개팅?”
   당황한 나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소개팅 말야. 내가 어제 대신 거절해달라는 거. 딱 잘라 거절해줬지?”
   “아, 그, 그거? 그게, 아직 거절 못했어.”
   “뭐? 어제 연락 안 온 거야?”
   “그런 건 아닌데…….”
   나오는 말을 흐렸다. 아키코에게 제대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어제는 연락이 너무 늦게 와서 거절하는 걸 미뤘다, 라고 말하기엔 좀 그랬다. 애당초 거절하는 걸 굳이 미룬 이유는 아키코를 골탕 먹이기 위해 최대한 잔인하게 소개팅 상대방을 차기 위한 것이었으니.
   “연락 왔으면 바로 거절하면 되잖아.”
   아키코는 나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사정이 있었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
   “뭐, 나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어차피 난 부탁하는 입장이니까, 나오만 잘 믿을게.”
   “응, 맡겨만 줘.”
   나오는 괜히 당당한 태도를 취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색한 티가 팍팍 났다. 아키코는 나오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여 의심쩍은 눈빛으로 슥 훑었다. 이런 쪽에는 특히 감이 좋은 친구라 나오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흐음, 뭔가 이상한데…….”
   “뭐, 뭐가.”
   “나오가 이렇게 당황하는 건 되게 오랜만이라서. 혹시 뭔 일 있는 거 아냐? 그 사람이랑?”
   “무슨 일이라니. 아무 일도 없었어.”
   딱 잘라 말하는 나오의 태도에 아키코는 더 이상 캐물어보는 걸 포기하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대답대신 미심쩍은 분위기가 흘렀다.
   나오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의 속마음을 친구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나오는 핸드폰 액정을 켰다.
   “아, 벌써 이런 시간이네. 자, 수업 들으러 가자!”
   “응, 그러자.”
   딱 봐도 과장된 태도로 움직이는 나오를 향한 의심을 아키코는 거두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아키코는 나오의 행동을 쭉 살펴봤다.
   이런 아키코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오는 핸드폰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아직도 연락 없네……. 벌써 점심이 지났는데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걸어가는 도중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나오는 생각했다. 실망과 걱정이 들어난 나오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어두웠다.



   보시면 계속 나오의 턴이 쭉 지속되는 데, 나중에는 미키도 폭발적으로 나올 테니 걱정 말아주세요. 괜히 ‘호시이 자매’란 타이틀을 붙인 게 아니니까요.
   그럼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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