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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 씨와 마시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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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7, 2013 23:05에 작성됨.

 찰칵거리는 셔터 소리와 새 소리가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합쳐졌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운치 있는 뜰과,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앤티크한 건물들이 풍기는, 햇볕과 다른 종류의 따스함이 자리하는 곳에서, 오늘의 일거리인 화보촬영이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늘의 화보촬영의 주인공인 타카가키 카에데가 있었다.
 “타카가키 씨, 좀 더 멀리 본다는 느낌으로 부탁해요.”
 “네.”
 평범한 옷이었다. 처음 오디션 장소에 입고 왔던 검은 원피스와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물론 그 옷도 센스가 없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화려함이나 멋짐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고, 오디션 이후에 가끔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지금 그녀의 오드아이가 향하는 시선과, 그 시선을 잡아내는 카메라맨에 나는 집중했다.
 카메라맨은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일류. 사진을 찍으면, 그 안에서 혼을 뽑아내 담아둔다는 평가를 받는 불세출의 포토그래퍼였다. 사실 자연의 모습 같은 걸 찍으면 지금 하는 아이돌 화보놀이 -몇몇은 이 일을 얕잡아보는 톤으로 놀이라고 말하곤 한다- 따위보다는 훨씬 많은 명예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아이돌의 화보 촬영이라니. 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수준에 평생 머무르겠지 하는 편견이 박힐 만도 했다. 하지만 그 포토그래퍼는, 일을 자주 같이 했으니 이 정도는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자연은 영혼이 없어요. 물론 그치들도 살아있는 생물이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자연을 찍고 있으면 감정보다는 본능을 잡아내게 된단 말이죠. 나도 사람이에요. 사람이 사람의 감정을 담아내고 싶어하는 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대답 이후로 그런 궁금증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는 평가야 어찌되었든 자기 길을 걸을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 아이돌을 확실히 감정을 보일 수 있게 찍어준다면, 그 또한 우리로써는 환영할 일이리라.
 그리고 그런 그에게 사진을 찍히고 있는 우리 프로덕션의 메인 아이돌. 타카가키 카에데. 이제 막 B랭크에 올라선 그녀는 최근 들어 좋은 의미로 화제에 오르내리는 일이 많아졌다. 업계에서도 어느 정도 대우받기 시작했고. 싱글 앨범의 판매량은 절호조였다. 그녀의 이미지와 노래실력을 이용해 가희 이미지를 박아 넣은 마케팅이 효과를 보인 것이리라. 이 방면으로 업계 최강인 ‘푸른 가희’를 따라잡기엔 아직 조금 벅차지만, 그녀의 재능이라면 금방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가리라, 아니 올라가 주리라 믿는 것이 프로덕션의 최근의 업무방향이었다.
 스물다섯이라는 아이돌이라기엔 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우리의 레슨과 빡빡한 스케줄을 잘 따라와 주었다. 그녀가 F랭크였던 시절에는 그 많은 레슨과 가끔 들어오는 싸구려 일거리들을 끝내고 나면, 나에게 보상을 졸라오곤 했다. 따뜻한 술 한 잔. 그것은 그녀에게도 좋은 휴식이 되었지만, 나 자신에게도 좋은 보상이 되었다. 작디작은 프로덕션. 당시 아이돌 한 명. 사장님, 프로듀서 한 명으로 이루어졌던 조촐한 사무소에서. 그녀는 내게 아이돌이라기 보단 동년배 친구에 가까웠고, 그런 그녀와 일을 마치고 술 한 잔 걸치는 것은 인생의 휴식과도 같았다. 그녀도 그런 것을 알기에 여러 번 어울려주지 않았을까.
 “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컷 더 찍겠습니다. 계단 쪽으로 올라와주실래요?”
 “알겠어요.”
 어느새 운치 있던 정원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따뜻하던 햇볕이 어느새 석양이 되어가고, 시원한 그늘은 어둠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 그녀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낮의 햇볕과도, 지금의 석양과도 다른 반짝임을. 마치 해를 관장하는 여신처럼, 돌계단을 제단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그 옆의 고풍스런 건물들을 신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그녀의 옆에 다가와 잎으로 만든 부채를 들고 그녀를 보좌하려 할 것 같은, 격(格)이 다르다고 표현할 만한 모습이었다.
 “네,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타카가키 씨, 수고하셨습니다.”
 “네, 사진사님도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촬영을 마친 그녀는 원래의 25세 여성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계단에 있었던 사람도 그녀였는데, 계단에서 내려온 그녀는 몇 년 된 친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들고 있던 더플코트를 가져다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더니, 코트를 걸쳐준 것이 나인 것을 알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프로듀서. 수고하셨어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딱딱한 대화가 이어진다. 그녀는 랭크 업이 차근차근 되어갈 때마다 팬이 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나나 다른 남성과 친한 모습을 보였을 때 인기에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사장님은 군소 사무소에서 나온 최초의 B랭크 아이돌을 그 이상으로 올려내고 싶어하셨고. 의심이 될 만한 일은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로 했다. 원래는 가볍게 반말로 대화하던 카에데와, 아니 카에데 씨와 나도.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뭐, 그녀는 그런 일이 있기 전에도 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곤 했지만. 내가 계속 지적해도 잘 고쳐지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었지.
 “코트,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프로듀서로써 당연한 일이죠.”
 “...그렇군요.”
 거리가 멀어진 기분이었다. 우리는 이런 딱딱한 대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레슨이 끝나갈 즈음 비라도 내려 낡아빠진 건물의 천장에 탁음을 울리게 하고, 그 탁음이 소리에서 흔적으로 변하며 레슨실 바닥을 적실 무렵이 되면, 자연스럽게 편의점에서 따뜻한 사케 한 팩을 사 오곤 했었다. 비에 흥건한 바닥과, 빗물이 바닥을 울리는 소리를 안주 삼아 종이팩을 부딪치며 웃곤 했는데. 그것이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처음으로 랭크 업 한 날, 축하를 하겠답시고 사장님과 함께 비싸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가, 술이 강한 그녀를 이기지 못하고 남자 둘이서 꼴사납게 나가떨어져 그녀를 곤란하게 했던 것도 마치 머나먼 과거의 일 같았다.
 “오늘 일정은 이게 마지막이었던가요?”
 “네. 내일은 오전 일정도 없어요. 오후부터 오시면 됩니다.”
 “음... 그럼 프로듀서. 조금 부탁드리고 싶은 게...”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 했다. 방금 전까지 하던 생각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조금 기대하게 된다.
 “무슨 일이세요?”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일 일정도 여유 있으니 한 잔 하러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라고 말할 뻔 했다. 거의 입을 떼기 직전이었다. 카에데 씨는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그녀도 나처럼 한 잔의 추억을 곱씹으며, 잠깐 나쁜 짓이라도 해 보고 싶은 기분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보지만, 그럴 리가 없다. 프로듀서인 나보다도 더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제멋대로인 사람도 아니고.
 
 “그럼, 내일 뵙죠.”
 “네, 내일 뵙겠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후, 카에데 씨는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요즈음 아무리 벌이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녀에게 따로 인원을 붙일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사무소는 아니었다. 그녀는 B랭크인 지금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했다. 변장은 완벽했지만 마음 한편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으리라.
 삐걱거리는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앞 소파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투 사이드 업으로 세팅한 채 한 여자아이가 뒹굴대고 있었다. 
 “어라? P군이네?”
 우리 사무소의 신인 아이돌인 죠가사키 리카였다.
 “어? 리카, 아직 집에 안 돌아갔어?”
 “언니를 기다리고 있다구!”
 리카가 사무소에 남아있는 경우는 십중팔구는 미카의 일이 끝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니면 레슨이라도 받고 있는 걸까?
 죠가사키 미카, 리카 자매는 카에데가 C랭크에 갓 올랐을 때 사무소에 들어왔다. 미카는 몇 주 전 D랭크에 입문했고, 리카는 E랭크에서 D랭크 승급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둘 다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었다. 자매 아이돌이란 게 세간에서 꽤 화제가 되기 마련이기도 하니까 키우는 방향성을 정하기가 쉬운 것도 있었다. 옆 동네 S랭크인 후타미 자매 같은 특이 케이스는 치워두더라도 말이다.
 “카에데 언니는 돌아갔어?”
 “응. 화보 촬영하는 곳이 꽤 춥기도 했고.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나았을 거야.”
 “사실 오늘 촬영 전에 사무소에서 같이 쥬스를 먹긴 했지만-!”
 전부터 리카는 성인 여성들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다. 카에데 씨와 친하게 지내려는 것도 그 일환이리라.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자신의 누나도 동경의 대상인 리카이기 때문에, 카에데 씨 정도면 성인 여성의 귀감이 될 수준이겠지. 주변에 널브러진 잡지들을 보아하니, 오늘도 리카는 사무소 휴게실 책상 위에 여성잡지를 늘어놓고 이것저것 읽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널부러진 잡지 안에는 자극적인 타이틀들이 가득했다. 「티내지 마라! 현모양처 흉내내기!」, 「“나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어”를 돌려 말하는 법」, 「영악해진 남자들 머리 위에 서는 법」 같은. 흔히 말하는...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스위츠? 어장관리? 여하튼 리카에게 썩 좋지 않는 내용도 섞여 있었다. 저 나이에는 저런 의미 없는 정보에 물들기 쉬운 나이인지라 나름 검열을 하기 위해 몇 개를 치우기로 했다. 그렇게 몇 권의 잡지를 치워나갈 즈음 리카가 내가 치우려던 책을 홱 낚아채갔다.
 “아직 읽던 중이란 말야!”
 “「여자의 이런 행동, 남자에게 쉬워 보인다」? 이런 건 별 도움이 안 된다구.”
 “P군 치사해! 가져가서 자기가 읽으려는 거지?”
 “그럴 리가 있나. 애초에 내가 대상인 잡지도 아니잖아?”
 내가 잡지를 다시 낚아채자, 리카는 볼을 잔뜩 부풀리고는 흥 하는 소리를 연발하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을 보면 역시 열두 살 꼬마아이였다. 이런 잡지에 의해 세상의 더러운 때가 묻는 건, 그녀의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한 명의 인간으로 보더라도 좋은 일은 아니겠지. 이 나이의 아이들은 순수해야 좋은 것 아니겠는가. 다시 잡지를 치워 로커에 집어넣고 문을 잠그는 것과 거의 동시에, 사무소 문이 열리고 언니인 미카가 들어왔다.
 “오, 프로듀서.”
 “어서 와. 레슨?”
 “라디오였어! 날 좀 더 신경쓰라고! 프로듀서!”
 “네네, 하지만 난 카에데 씨 전담이라서 말이지.”
 칭얼대며 달라붙는 미카를 간신히 떨어트렸다. 어쨌든 이 둘이 돌아왔으니 오늘의 일도 거의 막바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둘을 집에 데려다주고 나면 뒷정리만 남으니까. 카에데 씨는 혼자 돌려보냈지만, 아무래도 이 둘은 아직 미성년자고 이 시간에 둘만 돌아다니게 하기엔 너무 위험했다. 주변의 위험도 위험이지만, 본인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더 문제였기 때문에, 내가 책임지고 집으로 데려다주는 게 보통 일과의 마지막이 되곤 한다.
 “오늘 카에데 언니랑 잡지 봤어!”
 “리카, 내가 그런 잡지 보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나도 두근두근 어디까지나 에스컬레이트! 하고 싶다구!”
 “리카!”
 “사이다처럼 터지는 사랑 모드♪”
 운전하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아서 좋다.

 다음 날, 오늘은 카에데 씨의 신곡 마지막 녹음일이다. 그녀를 태운 차가 녹음실 앞에 설 때까지, 우리 둘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 안에서 나는 소리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내비게이션의 기계적인 안내음성과, 매일 똑같은 노래만 지겨울 정도로 틀어대는 라디오 소리, 자동차 엔진의 배기음과 내가 클러치에서 발을 땔 때마다 들리는 낡은 변속기의 마찰음뿐이었다. 평소라면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겠지만, 녹음이 있는 날에는 그녀에게 자극을 주지 않는 편이 그녀의 녹음결과가 좋아지기 때문에 이런 날은 그녀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녹음실 앞에 차를 세우고, 침묵을 유지한 채 차에서 내려 승합차 옆문을 열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그녀가 녹음실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차 문을 닫았다. 그 후 그녀가 올라간 길을 따라 올라가자, 녹음실은 정적 속에 묻혀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아무것도 없는 듯 조용했다. 나는 엔지니어에게 손짓을 하고, 조용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걸로 되었다. 일단 차 안에서 잠이라도 한 숨 자야겠다.

 “프로듀서 씨.”
 “으......카에데?”
 “카에데 씨에요. 프로듀서 씨.”
 의자에서 몸을 급히 젖혔다. 어느새 해가 져가는 중이었다. 카에데... 씨는 이미 차에 앉아있는 채였다. 얼마나 차에서 기다린 거지?
 “죄,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뇨. 오자마자 바로 깨웠어요.”
 왠지 모를 무미건조함에, 급하게 몸을 추스른다. 녹음은 잘 끝났을까?
 “카에데 씨, 녹음은 어떻게 되셨어요?”
 “끝났어요. 잘 마무리했어요.”
 미소인지 조소인지, 잘 알 수 없는 웃음. 그녀의 감정을 읽지 못하게 된 건 또 언제부터였을까. 아니면 내가 여태까지 그녀의 기분을 잘 파악해왔다는 허튼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이유야 무엇이 되었든, 그녀의 기분을 읽지 못하게 된 건 뼈아픈 일이다. 프로듀서로써도, 한 명의 사람으로써도. 그 뼈아픔 때문이었을까, 나는 조금 객기를 부려 보고 싶어졌다.
 “그럼 카에데 씨, 녹음이 무사히 끝난 걸 축하할 겸, 오랜만에 마시러 가지 않으실래요?”
 “...네?”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아마 실언이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린다. 나는 차에 시동을 걸며 백미러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 그 사진사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본능보다는 감정’ 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난 본능을 주체하지 못한 짐승이고, 그녀는 감정에 충실한 미녀인가. 이거야 뭐, 현대판 미녀와 야수가 되어 버린 꼴이다.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하고 없던 일로 바꿔야 하나를 고민하며 차를 도로로 빼내는 사이,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어려울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괜한 소리를 해서.”
 “아뇨...”
 그녀의 대답을 듣지 않았으면 했는데. 본능을 누르지 못한 야수는 울부짖듯이 거칠게 운전대를 흔들어댔다. 미녀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진 야수는 백미러를 뽑아 던질 기세로 돌려버리고, 앞만을 바라봤다. 뒤에서 그를 지켜보는 미녀는, 야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만화에서처럼 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감싸줄까, 아니면 비정한 현실에 입각하여 공포를 느끼며 도망칠까. 차의 엔진소리가, 그를 대신해서 늑대의 비명을 질렀다.

 역시, 얘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네도 어서 마시게!”
 “앗, 사장님!! 그거 더 드시면 영수증 안 끊어드릴 거에요!”
 “우후후, 사케도 풍미가 있네. P씨도 어서 마시라구.”
 어차피 사무실에서 이렇게 술로 잔치를 열 걸 알았다면, 괜히 그런 얘기를 꺼내서 분위기를 갈아 마시는 짓은 안 했을 거다. 미성년인 죠가사키 자매는 집에 돌아간 모양인지, 사무소에는 사장님과 치히로 씨, 그리고 현재 D랭크. 카에데 씨의 뒤를 바짝 쫓겠다고 선언한 시노 씨가 있었다.
 “시노 씨는 내일 오전에 스케쥴 있잖아요! 적당히 마셔 주세요.”
 “치히로 씨, 이런 풍미를 즐기지 않으면, 일이 안 될 거라구. 카에데쨩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럼요. 시노 씨. 저도 한 잔 부탁드려요.”
 “카에데 씨!”
 치히로 씨가 혼자 고군분투하는 사이, 사장님은 만취 상태로 얼굴이 새빨개진 채 이리저리 너풀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무소의 미래는 나와 치히로 씨가 쥐고 있는 것 같다. 카에데 씨는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띄고, 데운 사케에 손을 가져갔다. 뭐야, 술 먹기 싫다더니.
 “치히로 씨. 저도 한 잔.”
 “프로듀서까지...”
 사실 지금은 나까지 술에 입을 가져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치히로 씨가 맨 정신이었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사무원이지 프로듀서가 아니다. 이 사무소에 프로듀서는 나뿐이었고. 내일 스케쥴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내가 술에 절어 쓰러진다든지, 담당 아이돌에게 추태를 부린다든지 하는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누가 들으면 어린애냐고 삿대질할 이유였다. 즐겁다는 듯이 술에 입을 가져다대는 카에데 씨를 보자니, 왠지 모를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기분이었다. 한 잔씩 마실 때마다 왠지 모를 죄악감이 들긴 했지만.
 “카에데쨩. 이런 날엔 취해서 주정 좀 부린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구.”
 “취해서 소주 잔 들고 주정부리잔... 후후...”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시노 씨와 나란히 앉아 이상한 말장난에 웃음 짓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자리에서 분위기를 깰 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었으니. 일단은 참고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 쯤 마시자, 어느새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조금씩 술을 먹기 시작했던 치히로 씨도 어지러워 드러누웠고. 시노 씨는 내일 스케쥴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내가 배웅을 나갔다 왔다. 사장님은 뭐, 애초부터 드러누운 채였지만. 결국 지금 사무소에서 잔을 부딪치고 있는 건 나와 카에데 씨 둘 뿐이었다.
 “카에데 씨.”
 “네, 프로듀서.”
 잔에 술을 채워보았다. 그녀는 별다른 거절의 동작 없이 채워진 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이 잔을 또 비워내고 나에게 미소를 보이겠지.
 “역시 카에데 씨는 술을 좋아하시네요.”
 “네. 오늘도 즐겁네요. 후후.”
 속된 말로, 배알이 꼬였다. 다 같이 마시는 자리는 즐거워하면서도. 나와 같이 하는 자리는 거절해놓고 다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는 즐겁다는 말이 왜 이렇게 나를 화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나도 조금 취했겠지. 평소라면 이 또한 사장님 지시의 일환이라고 웃어넘겼겠지만. 알코올이라는 놈은 인간의 감정을 쥐락펴락하여 요동치게 만드는 법이었다.
 이미 벌게진 볼에 손을 괴고 술잔을 넘기는 그녀를 보고, 나도 눈앞의 술잔을 비워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평소의 그녀였다면 아마, 정말 나와 술이 마시고 싶었다면 다른 강행돌파책을 사용해서라도 도망쳐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녀가 지금 나랑 술을 마시는 결과가 되었지만. 내가 바라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아까는 왜...”
 “네? 아, 아까 말씀하셨던 거라면, 사장님의 행동방침이란 게...”
 “카에데.”
 씨 같은 쓸데없는 꼬리는 떼어내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상대가 카에데였기 때문에 여기까지 참아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서론본론 다 떼어내고 뭔가 말을 하려고 했더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취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그녀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 빌어먹을...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취해서 머리가 안 돌아가잖아...”
 카에데는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지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머리가 아파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뱅뱅 돌던 말을 어떻게든 요약해서 꺼내보기로 했다.
 “내가 싫어?”
 ...앗차, 너무 요약했다.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한 거지 지금?
 “...싫다 좋다를 구분하자면, 프로듀서는 좋다 쪽이에요.”
 그리고 카에데는 그 바보같은 말에 더 바보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취해서 환청이라도 듣는 건가?
 “제가 프로듀서를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행동방침은 행동방침일 뿐이에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프로듀서랑 마시러 가고 싶다구요.”
 “그, 그럼 아까 전에 내가 마시러 가자고 권한 건 왜 거절한 거야?”
 “그, 그게...”
 카에데가 머뭇거린다. 이런 표정을 짓는 카에데는, 그녀가 유명해지기 전에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듣고 웃지 마세요? 지금 생각해보니 바보 같은 일이었으니까요.”

 “우우... 한가해! 난 좀 더 일하고 싶다구!”
 “리카, 프로듀서가 힘내서 일을 가져다주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으렴.”
 “하지만 지금은 뭔가 움직이고 싶은걸!”
 “연습실에 가서 댄스 레슨이라도 복습하는 건 어떨까?”
 “연습실은 지금 언니가 쓰고 있는걸.”
 카에데는 잠깐 생각하다가, 숄더백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움직이는 게 필요하면, 요 앞 편의점에서 음료수라도 사다 줄래?”
 “카에데 언니가 먹고 싶은 거잖아...”
 “캔 쥬스, 리카가 원하는 거 같이 사 와도 되니까.”
 “갔다 올게! 얏호!”
 리카를 편의점으로 보내고, 화보 촬영 전까지 잠깐 휴식을 취하려고 한 그녀의 눈에 방금 전까지 리카가 읽는 둥 마는 둥 하던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큼지막한 굵기의 「여자의 이런 행동, 남자에게 쉬워 보인다!」 라는 타이틀이 찍힌 기사가 쓰여 있다. 그녀는 쉬는 동안의 읽을거리라고 생각하며 잡지를 손에 들었다.

 “그래서, 거기 있던 내용에 ‘술을 먼저 권하지 마라‘ 는 내용이?”
 “...네.”
 “그 밑에는 ‘술을 권해져도 한 번 정도는 거절해라’ 는 내용도 있었다고?”
 “......네.”
 “...풉...”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카에데는 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웃지 말아 달라니까요...”
 “하, 하지만.... 푸핫, 리카도 걸러 보던 잡지의 이상한 기사에... 푸흡...”
 “...이럴 것 같아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구요.”
 “아니... 잡지를 진지하게 보고 있었을 카에데를 상상하니까, 귀여워서... 푸핫!”
 결국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트려 버렸다.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카에데는 더 얼굴이 빨개진 채였다. 그렇게 부끄러울 일인가 싶은 생각도 좀 들었지만, 뭐 됐나.
 “그럼 카에데, 나중에 시간 한번 내달라구.” 지금 말투는 조금 그랬다고 생각했다. 픽업 아티스트도 아니고. 아니, 픽업 아티스트라고 하는 부류라면 저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작업을 거는 듯한 멘트를 날리는 바보짓은 하지 않겠지. 하지만 내 멍청한 소리에도, 카에데는 미소를 지었다.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후후.”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내 기억이 끊겼다.

 다음 날 아침. 뇌가 한 세 개쯤 되는 기분을 만끽하며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다음 일정을 기다리는 카에데를 만났다.
 “카에데 씨. 오늘 일정, 알고 계세요?”
 “네. 오전에 저번에 찍은 화보가 실릴 잡지와 인터뷰하고, 오후에는 무대가 있죠?”
 “잘 기억하시네요. 그럼 바로 인터뷰 장소로 갈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는 괜찮아요. 프로듀서는 숙취, 괜찮으세요?”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표정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어제의 미소를 다시 지어보이며, 나를 따라 차에 타기 위해 이동했다.
 “자, 가시죠.”
 “네. 아, 프로듀서?”
 “네?”
 그녀는 차에 올라타며, 문을 닫기 위해 서서 기다리는 날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방금 전에 지은 미소와는 조금 다른, 또 다른 감정. 이 감정은 뭘까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그녀가 선수를 쳤다.
 “정말로 기대하고 있으니까, 꼭 불러주세요?”
 나는 잠깐 머뭇거리다,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비슷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그녀만이 알겠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고 기어를 올린다. 성으로 돌아온 미녀를 보고 인간으로 돌아온 야수처럼. 기분 좋은 엔진 소리를 울리는 자동차를 내 몸과 같이 운전하며 다음 스케쥴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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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 씨 소재로 글을 한번 꼭 써보고 싶었는데 미루다 보니... 좀 오래 걸렸네요.
마미전 플롯도 생각해놔야 되는데... 이제 이걸 끝냈으니 슬슬 써보려고 합니다.
여하튼 여러분 카에데 씨는 25세가 아니라 지상에 강림하신 지 25년째 되시는 여신님입니다.
모두 경배하세요 ㅇ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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