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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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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9, 2013 01:56에 작성됨.

 지금이야말로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제가 슬럼프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시겠죠. 죄송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답니다. 저는 슬럼프에 걸릴 만큼 대단한 스타가 아닌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읏, 남자 분들이 한가득……역시, 저한텐 도저히 무리예요─!"
 "잠깐 기다려 유키호, 스튜디오 바닥에 구멍을 파면 안 돼!"
 제가 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 건,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지금가지 계속 이어져 왔었던 거니까요. 갑자기 찾아오는 슬럼프일리가 절대 없습니다.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하기와라 유키호, 일단은 아이돌이라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진 모르겠지만, 일단은요. 지금 전 그라비아 잡지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와 있습니다. 어째서 땅딸보인데다가 빈약한 제가 이런 일을 맡게 된 건진 전혀 짐작이 가지 않지만요.
 "유키호? 이 문 좀 열어주면 안될까."
 "죄, 죄송해요오……."
 조금 전에 '촬영'이라 말하긴 했지만, 저는 촬영 스튜디오 뒤쪽의 대기실에서 농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진 묻지 말아 주세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선택한 거니까요. 남자와 개. 한심하게도, 저는 이 두 가지에 굉장히 약하답니다. 그 앞에만 서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국에는 구멍을 파고 들어가 도망쳐 버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저는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농성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응? 유키호, 걱정 하지 마. 다른 스태프들은 지금 이 앞에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와."
 "그렇지만, 그래도……. 저한테 촬영은 도저히 무리예요!"
 "후우……."
 프로듀서의 한숨소리가 문 뒤에서 들려옵니다. 이런 절 바보 같다고 생각하시는 거겠죠.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전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여버리고 말았지요. 도망쳐 버리고 싶다. 제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생각밖에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프로듀서에게 죄송한 마음은 물론 있습니다. 저도 촬영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고요. 하지만 밖으로 나가자마자 쏟아질 게 뻔한 남성 스태프 분들의 시선이, 제게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지금은 남자 스태프도 적으니까, 이 틈에 찍으면 되지 않을까, 유키호?"
 "못 하겠어요! 그런 거, 저한텐 원래부터 안 어울리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다시 고개를 푹 숙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눈에 띤 건 작은 창문 하나. 저 정도 크기라면, 제가 지나가기엔 충분하겠죠. 제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지금 있는 곳은 1층, 아무리 창문이 높다 해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엔 문제없는 수준일 테죠.
 "죄송해요 프로듀서."
 문 뒤에 서 있을 프로듀서에게, 나직하게 한 마디 말을 전합니다. 과연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조용히 창문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다행이 이쪽을 향한 시선 같은 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선 대신 다른 무언가가 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몇 걸음을 뛰곤 뒤를 돌아보자, 텅 빈 대기실이 창문 너머로 보였습니다. 저는 애써 고개를 돌려, 집을 향해 전속력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프로듀서. 멀어져가는 건물에 대고, 저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습니다. 창문가에 순간 보인 그림자가 마치 프로듀서 같았기에, 저는 발을 좀 더 빨리 놀렸습니다.

☆★

 "왜 그랬을까아……."
 또 후회할 짓을 저질러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무슨 자신으로 그렇게 도망쳐 버렸던 걸까요. 이렇게 후회할 줄만 알았더라면 그런 짓 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촬영을 할 순 없었을 테지만, 으우우우. 어떻게 해야 했던 걸까."
 저는 다시 이불에 머리를 파묻었습니다. 이미 늦어버린 걸 되돌릴 순 없는 노릇이겠지요. 이제 저는 프로듀서의 선고만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입니다. 네, 바로 사형선고 입니다. 조금 과장이 심한 걸까요? 하지만 분명 사형선고임엔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곧 프로듀서에게로부터 엄청난 질책의 전화를 받는다면, 전 아이돌 일을 그만두겠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돌 생활의 끝, 그것을 알릴 전화를 사형선고라 비유하면 되는 거겠죠.
 "……으으."
 그렇게 마음먹었긴 해도 역시 꾸중을 듣는 건 무섭습니다. 특히나 꾸중을 하는 사람이 바로 친절하신 프로듀서라면 더더욱요. 어디선가에서 평소에 친절한 사람일수록 화를 내면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듯합니다. 분명 그 말은 사실이겠지요.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건만, 벌써부터 손이 떨려옵니다.
 ─♪♩♪
 "앗!"
 핸드폰에서 울려 퍼진 커다란 벨소리가 제 방 안을 가득 뒤덮습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발신인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 액정 화면에는 프로듀서라는 글자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수십 번 다짐했을 터이건만. 핸드폰 스피커에 귀를 대기엔 액정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를 끄집어내야 했습니다.
 "여, 여보세요?"
 겨우 쥐어짜낸 목소리로,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곧이어 들릴 프로듀서의 꾸중에 대비하여 미리 눈을 찡그리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직접 눈앞에서 보는 건 아니긴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달 까요.
 "유키호"
 "네에, 넷!"
 스피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생각보다 침착했습니다. 그렇군요, 이제 저 같은 건 포기해 버리신 걸까요. 물론 아이돌 일을 그만두겠다는 제 계획을 더 쉽게 이룰 수 있게 된 부분에선 잘 된 일이지만, 프로듀서에게 죄송한 마음은 여전합니다. 여태까지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인 절 일부러 데리고 있었으니까요.
 "너 정말이지……."
 저도 모르게 으읏, 하는 소리가 입에서 새어나옵니다. 역시 저 같은 애는 아무리 각오해봤자 이런 것에 버틸 순 없는 걸까요. 어느새 눈물까지 나오려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들을 질책은 더 많을 텐데, 어쩌자고 이러는 걸까요. 바보 같은 제 자신이 밉기만 합니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제 마음을 읽어 주실 리가 없겠죠. 프로듀서의 말이 이어집니다.
 "정말─…대단했잖아! 그것 봐 유키호, 너도 할 수 있다니깐?"
 "……네?"
 프로듀서가 한 영문을 모를 말에,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할 수 있다'니, 대체 무슨 얘길 하시는 걸까요? 궁금증이 쉴 새 없이 밀려들어 왔지만, 프로듀서는 제가 말할 기회 같은 건 주지 않은 채로 쉴 새 없이 말을 이어나가셨습니다.
 "감독님도 굉장히 만족하셨더라. 끝나자마자 바로 가 버려서 칭찬도 못 해서 아쉽다고 하셨다니깐?"
 "네에……."
 "아, 그리고 다음 스케줄은 나중에 따로 연락해줄게. 그럼 내일도 그 시간에 사무소에서 보자. 푹 쉬렴."
 그 말을 끝으로, 프로듀서는 순식간에 통화를 끝내버리셨습니다. 물론 전 프로듀서가 한 말들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멍하니 있을 뿐이었죠. 아, 혹시 꿈인 걸까요. 네, 꿈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저는 당장 제 볼을 죽 잡아당겼습니다.
 "아으─"
 아픈 걸로 봐서, 꿈은 아닌가 봅니다. 그렇다면 프로듀서가 한 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요?
 "혹시나 다른 사람이 나인 척 하고 대신 해 준 걸까……."
 "'대신'이란 말은 맞지만, '다른 사람'이란 말은 맞지 않는걸."
 "네, 네? 누구세요?"
 등 뒤에서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에, 저는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그 말은 이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어느새 열려있는 창문. 그 창틀을 한 손으로 잡은 채 저를 바라보는 그 사람. 저를 향해 생긋 웃어 보이고 있는 그 얼굴은 분명, 평상시에 거울에서나 보던 제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도 좀 이상하겠지?"
 저를 향해 생긋 웃는 그 모습을 보자, 제 머릿속엔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도플갱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세상에 있다는 그거요. 분명 사무소에 널브러져 있던 책에서 봤던 대로라면, 그 도플갱어들이 서로 만나 버리면 한 사람이 죽어 버린다는 얘기가 실려 있었던 것 같…….
 "와앗! 이, 이쪽으로 다가오지 마세요!"
 "잠깐만, 난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도플갱어인거죠? 그럼 이렇게 다가오면 누군가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요!"
 "걱정 하지 않아도 돼. 난 도플갱어 같은 게 아니니까."
 "네?"
 그 말에 전 뒷걸음질 치는 걸 멈추고, 그 사람을 바라봤습니다. 변함없이 저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왠지 모를 오한이 들기 시작합니다.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그 사람은 제게로 점점 다가왔습니다.
 "난 말이지, 하기와라 유키호, 그러니까 네가 직접 만든 너의 대역……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대역?"
 "응, 딱 이거다! 할 만한 단어는 없지만, 얼추 그런 느낌이야. 유키호 네가 원해서 날 만들어낸, 대역이란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 게 바로 나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저로써는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샌가 제 앞에 있는 분의 말에 저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나 영문을 모를 이야기뿐인데 어째서일까요.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설마 오늘도……."
 "응. 유키호 네가 도망쳤을 때, 대역으로써 내가 대신 촬영을 했던 거야."
 '도망쳤을 때.' 그 말이, 제 심장 깊숙한 곳을 찌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잠시뿐. 저는 이내 안도했습니다. 제 눈앞에 있는 이 분이 저 대신 촬영을 해 주셨다면, 나중에라도 제가 혼날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저어……정말 고맙습니다."
 "인사 같은 건 필요 없어. 난 네가 원해서 여기에 나타난 거니까 말이야. 유키호 네가 원한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널 도와줄 수 있어."
 "네에? 하지만 계속 그럴 순……."
 "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아 숨 쉬게 되었는데, 이거에 비하면 그 정도 일이야 약과지.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줘. 내가 전부 다 대신 해 줄 테니까."
 "정말이요?"
 그 분이 말한 마지막 말에, 저는 눈을 커다랗게 떴습니다.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남자 스태프 분들을 보고 도망칠 필요도 없습니다. 개와 함께 찍어야 하는 화보 촬영도 거절할 필요가 없고요. 게다가 프로듀서를 힘들게 하지 않게 되겠죠. 저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 분을 쳐다봤고, 이내 전 고개를 끄덕이는 그 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일부턴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아. 그런 생각이 제 머릿속에서 지나갔습니다.

☆★
 
 저는 지금 '혹시나?'가 정말 이뤄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대사에 군더더기 없는 연기. 감독님의 입에서는 컷! 이라는 소리가 계속해서 나고 있습니다. 여태껏 제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완벽한 드라마 촬영. 자칭 '대역'이라는 분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유키호, 연기 대단했어. 언제 그렇게 실력을 쌓은 거야? 최고였어. 다음번엔 조연이 아니라 주연 역을 해도 문제없겠는 걸!"
 "대단하지도 않은 건데요 뭘. 아, 그럼 전 잠시 화장실 좀……."
 "그래, 10분 뒤에 또 촬영이 있으니까 늦지 않도록 하렴."
 평소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과한 칭찬. 아니, 저 실력이라면 응당 받아야할 칭찬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프로듀서로부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칭찬들을 뿌리치고, 그 분은 제가 있는 곳으로 걸어 오셨습니다.
 "괜찮았어?"
 "네, 대단했어요! 저라면 절대 못 할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도 말했지만 고맙단 말은 안 해도 된다니깐? 그보다 이제 남자 배우가 나오지 않는 장면이니까, 유키호 네가 직접 나가야지."
 앗, 깜빡할 뻔 했네요. 아무리 저를 대신해서 드라마 촬영을 해 주실 분이 있다 하더라도, 너무 부탁드릴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바통을 터치해서, 이번엔 제가 촬영 장비 앞으로 걸어 나갑니다. 남자 감독님의 눈을 피해, 저는 상대역인 여배우분을 응시했습니다.
 "좋아, 하기와라양. 조금 전처럼만 해 줘. 쓰리, 투, 원, 액션!"
 감독님의 간단한 지시와 함께, 슬레이트가 커다란 말에 맞춰 딱, 하는 소릴 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제가 해야 할 대사를 입 밖으로 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죄송해요……."
 "정말 괜찮다니깐?"
 저는 또 다시 그 분께 드라마 촬영 일을 넘겨드려 버렸습니다. 대본을 깜빡 해 버릴 줄이야……. 감독님께 된통 혼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채다니, 정말로 전 바보인가 봅니다. 게다가 프로듀서 까지 절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셨으니, 말 다했죠. 그분껜 죄송하지만, 얼른 대신 해 달라고 부탁한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이란 이런 거겠죠.
 "다음은 보컬 트레이닝이었지?"
 "네. 이번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냥 트레이닝이니까, 도와주실 필욘 하나도 없는걸요."
 "그래도 언제든지 대신 해줬으면 하는 게 있음 말해줘. 언제 어디서든지 도와줄 테니까."
 그분은 그렇게 말하며 제게 생긋 웃어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갑자기 저의 대역이라 주장하시는 분이 나타나고, 저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으니 말이죠. 얼굴이 똑같이 생겨서 거부감이 없는 걸까요.
 "그럼 전 다녀올게요!"
 저는 그분께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트레이닝 룸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엔 언제나처럼 다른 학생 몇 분과 트레이닝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제 막 온 저를 향해 반갑게 인사 해 주시는 모든 분들. 저 또한 가볍게 목례로 답하며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오늘 수업은 정확한 음으로 발성하기. 가장 기초이면서도 어려운 수업입니다. 평소엔 선생님이 피아노로 음을 잡아 주시지만, 오늘은 기본음부터 학생이 직접 잡아야 합니다.
 "도─…."
 "조금 낮아. 더 높여야지."
 "레─"
 "넌 너무 높아. 여태까지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나는 거야?"
 "미-"
 "다시 다시! 나 참, 너희들 정말 이렇게 할 거야?"
 노기 띤 얼굴로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저를 비롯한 학생들은 이미 위축 된 상태였죠. 조금 뒤면 제 차례가 다가옵니다. 여기서 완벽하게 해낸다면 선생님의 화도 조금은 풀리겠지만, 그런 건 제겐 무리겠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문득 밖에서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가 떠올랐습니다.
 "저, 저어……."
 "무슨 일이야?"
 저는 재빨리 그 곳을 빠져나와, 몰래 절 기다리는 대역 분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생글거리는 미소로 저를 바라보시는 그 분. 저는 얼른 용건을 전했습니다.
 "'도'음을 한 번만 잡아 주시면 안 될까요?"
 레슨마저 그 분께 맡겨 버릴 순 없으니까요. 이번에도 역시, 그분께선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이윽고 레슨 룸 앞 복도에서 퍼지는 맑은 '도'음. 역시나 저보다 몇 배는 더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발성입니다. 과연 여기에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최대한 노력 해 봐야…….
 "하기와라양, 밖에서 뭐 하는 거니?"
 "와앗!"
 철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신 건 다름 아닌 선생님이셨습니다. 큰일, 정말로 큰일이에요! 만약에 제 옆에 있는 대역 분을 봐 버리신다면…….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아마 굉장히 놀라시겠죠. 그 뒤엔 프로듀서도 대역 분의 존재를 알아채게 되실 게 분명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타인─타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르게 불러야 되는 걸까요?─에게 맡긴 사실을 프로듀서가 아시게 된다면, 엄청나게 화내시겠죠.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제가 안절부절 못 하며 불안에 떠는 사이에, 선생님이 복도 쪽으로 완전히 나와 버리셨으니 까요. 선생님의 시선 끝에는 저와 대역 분이 있습니다. 저는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저어, 선생님! 사실, 이건, 그게─"
 "네 차롄데 밖에서 뭐 하고 있어? 얼른 들어와."
 "……네?"
 선생님은 저와 대역 분이 있다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을 내미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채로 가만히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답답하다는 듯 직접 손을 잡고는 레슨 룸 안으로 억지로 끌고 가 버리셨습니다.
 ─제가 아닌, 대역 분을요.
 저는 그저 문 밖에 오도카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유키호가 원했으니까."
 대역 분은, 제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이 저를 보지 못했던 건가, 에 대한 답변이죠. 대역 분이 거기에 이어서 말한 이야길 대충 정리 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대역 분은 제가 원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것이라면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도우려고 하신 다네요. 이번엔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선생님께 대역 분을 들키고 싶지 않다.'와 '레슨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 이 두 가지가 대역 분께 전해졌기 때문에, 저를 잠시간 보이지 않게 하셨던 거라고 합니다. 직접 경험한 일이지만, 아직 꿈만 같네요…….
 "미안해. 레슨은 유키호 네가 직접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니에요. 덕분에 선생님 기분도 풀리신 것 같으니까,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말해야 할 정도인걸요."
 "그렇담 다행이지만."
 대역 분은 그렇게 중얼거리시더니, 제가 건네 드렸던 이온 음료를 한 모금 마십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니, 그 모습은 영락없이 제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대역 분 말론 당연한 거라고 했지만, 신기하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쌍둥이가 서로를 바라보는 게 이런 느낌일까요. 꼭 빼닮은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제가 어느 날 사라져 버려도 아무도 못 알아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키호."
 "……네?"
 "무슨 일 있어?"
 어느새 대역 분은 음료수 마시길 멈추시고 저를 빤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허둥대다, 의자에서 떨어질 뻔 했고요. 너무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나 봅니다. 왠지 부끄러워지네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손사래를 치며 얼른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대역 분은 더 이상 저를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이온음료를 마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에 전 안도의 한숨을 쉰 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펼쳐보았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보았기에 구깃구깃 해진 종이의 제일 위에는 커다란 글자로 '세트 리스트'라 쓰여 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죽 열거되어 있는 갖가지 곡의 이름들과 여러 사람들의 이름. 이미 예상하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얼마 뒤에 있을 정기 라이브의 세트 리스트입니다.
 765 프로덕션에 들어와 처음으로 참가해 보는 정기 라이브. 그 걱정 반 설렘 반인 라이브의 리허설이 바로 오늘, 그것도 잠시 뒤에 있을 예정입니다.
 "잘 끝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네? 아, 네에! 실수를 하나도 안 했으면 좋겠네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자, 대역 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기분 탓인 건진 모르겠지만, 그 분은 여태까지 계속 보여주셨던 미소가 아닌, 묘한 분위기가 풍겨져 나오는 웃음을 보여주고 있으신 것만 같았습니다.
 "유키호, 슬슬 나갈 준비 해야지?"
 "네, 네엣!"
 그 알듯 말듯 한 웃음 뒤편에 숨겨진 것을 밝혀내려 한 것도 잠시, 저는 프로듀서의 목소리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안무와 가사를 떠올리고는, 절대 잊지 않도록 몇 번이고 되뇌어봅니다.
 "그럼 다녀올게요."
 살짝 고개를 숙여 그 분께 가벼운 인사를 하고 대기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미 제 앞 차례였던 아이는 성공적으로 리허설을 마쳤나 봅니다. 무대 옆 의자에서 땀을 식히고 있네요. 이 좋은 분위기에서 제가 실수라도 한다면……아니 아니, 일부러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되겠죠. 일단은 부딪혀 보는 겁니다.
 "유키호, 힘내!"
 "넵!"
 타월로 땀을 닦던 아이가 절 보더니 그렇게 응원 해 줍니다. 잔뜩 긴장해 버려서 너무 크게 대답해 버렸던 걸까요. 상대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즉시 사과하려 했지만, 어느새 프로듀서가 무대 건너편에서 제가 나가야 한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사과는 나중에 해야겠네요.
 "좋아, 시작한다!"
 제가 무대 위로 올라온 것을 확인하신 남자 스태프 분이, 무대 앞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칩니다. 저는 그 모습에 잠시 놀라서 얼어붙어 버렸지만, 얼른 알겠다는 신호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습니다. 어느새 제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습니다. 괜찮아, 리허설이니까 괜찮아. 저는 몇 번이고 되뇌었습니다. ……앗!
 "─이제……짝사랑과는 작별 해 볼래♪"
 큰일 났습니다. 정말로, 너무나도 큰일 났습니다. 긴장을 푸려는 데에 너무 집중해 버려서, 깜빡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사실을 눈치 채자마자 재빨리 이어 불러 보았지만, 이미 한 소절을 지나쳐 버린 뒤였습니다. 무대 앞 스태프 분들도 그 사실을 알아채셨는지, 술렁거리는 소리가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구멍파고 들어가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실수는 돌이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제 와서 다시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엄청난 폐를 끼치는 것일 테니까요. 저는 얼른 이어지는 안무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발이 엉켜버렸단 것을 안 것은, 바닥에 넘어지고 난 뒤였습니다.
 "유키호 괜찮아? 죄송합니다, 음악 좀 꺼주세요!"
 순간 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멈춰버린 노래. 제게로 달려오시는 프로듀서. 거기에 더해서, 스태프 분들의 목소리가 제게 들려 왔습니다.
 "리허설인데 이래서야……."
 "이번 라이브는 큰 일 나겠구먼."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멍하니 정면만을 보고 있자, 어느새 제 앞으로 프로듀서라 추정되는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추정'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 눈이 눈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죠.
 "어디 안 다쳤어? 몸이라도 안 좋은 거니, 유키호?"
 "……프로듀서."
 "응?"
 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제 상태를 살피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어느새 제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전 역시 안 되겠어요."
 그 말을 신호탄으로, 저는 무작정 자리에서 일어 나 대기실 쪽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등 뒤에선 프로듀서가 제게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저는 그것을 무시하고 문이 열려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두운 방 안. 저는 다리가 풀려서 문에 등을 기댄 채 스르르 주저앉았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어느새 제 앞에는 대역 분이 서 계셨습니다. 눈물 때문에 그 표정까진 알 수 없었지만요. 저는 대답 대신 무릎을 끌어 모아선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는 저와 그 분. 문 바깥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다급한 발소리가 연이어 들려옵니다. 이윽고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려옵니다.
 "여기, 메일 왔어."
 대역 분의 말에 고개를 슬쩍 들자 제 눈앞에는 저의 핸드폰이 있었습니다. 제 쪽을 바라보시며 자신의 손에 있는 핸드폰을 제게 들이미시는 그 분. 저는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들었습니다.
 [유키호, 어디 있어?]
 프로듀서가 보낸 메일에는 그 한 문장만 덩그러니 적혀 져 있었습니다. 그냥 무시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결국 전 짧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전 안되겠어요. 대신 다른 사람을 써 주세요.]
 송신되는 것을 확인한 뒤에, 저는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 버렸습니다. 몇 번이고 진동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한 채, 여전히 제 앞에 서 있는 대역 분을 올려다봤습니다.
 "라이브를 대신 해 달라고 할 생각이야?"
 "……네. 제가 해 봤자, 다른 분들께 민폐만 될 테니까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대역 분의 그 말에, 저는 인내심이 끊어져 버렸나 봅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무언가가 그대로 터져 나왔습니다.
 "당연하잖아요! 남자가, 개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레슨도 라이브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제가 도움이 될 리가 없잖아요! 매번 할 수 있다, 너라면 괜찮다고 듣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고요! 결국 이렇게 될 바엔 차라리……저 같은 건 없어져 버리는 게 나아요!"
 그렇게 소리친 직후.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어느새 저는 바닥에 누워 있었고, 목에는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조금 전에 화낸 것도 잊은 채, 저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것은─
 ─무서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양 손으로 제 목을 조르고 있는 대역 분이었습니다.
 "잠깐, 무슨─아욱, 짓을……."
 "네가 말했잖아?"
 그 분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같은 건 '없어져 버리는 게' 낫다고. 그치? 그럼 내가 도와줄게. 유키호, 너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내가 전부 대신해줄테니까."
 "윽, 그건 말도 안 되는 거──크윽."
 목은 점점 더 세게 졸려지고 있었습니다. 목은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오겠죠. 하지만 그런 바람들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계속해서 조여오고, 또 조여 올 뿐. 한 마디 말조차도 꺼낼 수 없도록, 손아귀 힘은 더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점점 아득해지는 머릿속.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전 쓸모없는 아이. 필요 없는 아이. 그러니까, 저를 대신 해 줄 능력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정말로 사라져 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간단한 거였습니다. 저는 발버둥치길 멈췄습니다.
 "제길, 유키호는 대체 어디 간 거야……."
 "……프로……듀서?"
 눈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가고 있을 때 쯤. 어디선가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저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쓸데없는 발버둥 치지 마, 어차피 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해 뒀으니까."
 대역 분의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까 보컬 레슨 때 저를 보이지 않으시게 하셨던 방법을 쓰시고 있으신 걸까요. 괜히 저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시다니. 왠지 미안해집니다. 그러고 보면, 이 분께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멋대로 도망쳐 버려서, 이다음부터 제 역할을 하실 이 분이 그 죄를 뒤집어 써 버리는 거니까요. 프로듀서에게도, 죄송한 마음만이 가득합니다. 문 뒤에 서 있으실 프로듀서는, 바깥에서 계속해서 저를 찾고 계셨습니다.
 슬슬, 한계가 찾아오나 봅니다. 공기를 얻지 못한 폐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기침도 뱉어내지 못할 정도로 좁아져 버린 기도 또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것만 같은 감각들. 온 몸에는 힘이 빠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마 마지막 순간에 듣는 소리일 한 마디 말이 어디선가 들려왔습니다.
 "대신이라니……. 그런 게 될 리가 없잖아."
 ……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정신이 아득해 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거기에 이어지는 말을 들으려 했습니다.
 "함께 정상으로 향하자는 약속은, 다름 아닌 너랑 했었던 거잖아 유키호……!"
 무언가 각성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손으로, 제 목을 잡고 있는 손을 잡습니다. 기분 탓인 진 모르겠지만, 어느새 손아귀 힘도 약해진 것만 같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떼어냅니다.
 "뭐야, 뭐야, 뭐야 뭐야 뭐야 뭐냐고!"
 대역 분은 당황한 듯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거기에 일일이 반응해 줄 여유 같은 건 제게 없었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저는 죽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제 목에서 대역 분의 손이 떨어집니다. 그와 동시에 제 목에서는 기침이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동안 공급하지 못했던 공기를 폐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자,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뭐야, 왜……왜 갑자기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왜 갑자기 살아야 한다고 원한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사라지겠다고, 그렇게 바랬었잖아!"
 "……후우,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 제 뒤에서 시퍼렇게 질린 채로 몸을 떨며 저를 바라보고 있는 대역 분을 쳐다봤습니다.
 "물론 전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이고, 아무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를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이유가 딱 하나 있었어요."
 저는 다시 한 번 기침을 하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프로듀서와 함께 걸어 나가자고 약속했던 건, 다름 아닌 저거든요. 억지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만은 다른 분께 양보할 수 없는 제 목표예요. 그걸 이루기 전까진, 누군가가 제 삶을 대신해 줄 수는 없어요."
 처음 아이돌이 되었을 때. 프로듀서와 함께 했던 약속. 비록 잘 하는 것 하나 없고, 남자와 개를 무서워하는데다가, 빈약하고 땅꼬마인 저. 궁지에 몰리면 구멍을 파서 도망쳐 버리곤 하는 저. 하지만 목표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자고, 그때 그 날 프로듀서와 약속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 자신과 한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약한 나를 바꿔보자고, 나와 한 약속. 어째서 잊고 있었던 걸까요.
 "……그렇구나."
 대역 분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쉬워하시는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뻐하시는 것만 같은 표정. 저는 가만히 그 분이 말을 이어가길 기다렸습니다.
 "결국 넌 네가 직접 하는 길을 택했구나. ……그게 네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지."
 "막으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조금 전의 태도와는 정 반대인 그 말에, 저는 의문을 참지 못해 재빨리 질문 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옅은 미소를 띤 표정으로 저를 잠시 바라보는 대역 분. 그리고는 제 쪽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해 주는 대역이니까. 네가 살고 싶다면.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저랑 비슷하시네요. 혼자선 못 한다는 점 말이에요."
 "그런가, 결국 나도 너니까 말이야."
 "……그런가요."
 대역 분은 제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천천히, 다정하게요. 바깥에서는 계속해서 바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프로듀서는 다른 곳으로 가 버린 걸까요.
 "이제 가야지. 프로듀서가 찾고 계실 테잖아?"
 제 어께를 토닥이면서 미소를 머금고 저를 바라보는 대역 분. 저 또한 미소로 답하며, 그 분의 손이 제게서 떨어지자마자 천천히 뒤로 돌아 문고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새로운 의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어떻게 되는 거죠?"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네 앞에 나타났으니까, 네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겠지, 넌 더 이상 날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그런가요."
 사라져 버린다. 그것에 대해 대역 분은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문고리를 잡은 채로 문 쪽과 대역 분을 번갈아서 바라봤습니다. 그런 제 고민을 대역 분께서는 알아채신 듯이, 제 등을 가볍게 쳤습니다.
 "난 괜찮아. 네가 또 나를 필요로 한다면 또 어느 샌가 나타나 있을 테니까. 뭐, 더 이상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대역 분은 문고리를 잡은 제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습니다.
 "너는 나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잖아. 그걸 이뤄야지?"
 동의를 구하는 듯한 시선. 그에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문고리는 돌아가고, 바깥에서는 밝은 빛과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달려 나갔습니다. 저를 발견한 스태프들이 소란스러워짐을 깨달았지만, 저는 그것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갔습니다.
 무대를 향해, 그리고 더 큰 꿈을 향해, 저는 계속해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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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KB..인간이 아니므미다..
크흑 그 전에 늦어버려서 죄송합니다 주최자란 놈이.. 이렇게 늦다니!! 이건 전부 여러분의 작품을 보느라 정신팔려서 그런거니 어쩔 수 없어요!! 양해 해 주세요!....죄송합니다 도게자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뭐 이리 길어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네요. 평소처럼 적당히 내용 짠건데 어느새 길어졌어..
덧붙여서 제시어는 '사'였습니다. 시압님이 그냥 사라고 하셔서 使, 그러니까 부릴 사로 해서 대역이란걸 넣은건데 지금 보니 死에도 좀 가까웠던거 같네요. 잠시뿐이긴 하지만 뭐... 왠지 억지같지만 신경쓰지 않는게 이기는겁니다! 네!

여하튼 고3이라 단편제는 다음에도 열 수 있을련지 없을련지 모르겠네요 ㅠㅠ 아무래도 다른분께 대신 맡기거나 제시어 돌리는 것만 해야겠네요 으으으..
단편제 참여해 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이런 주최자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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