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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아이돌의 사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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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5, 2012 13:51에 작성됨.

*하루에 한편씩 올린다는게 그냥 건너 띄어 버렸군요... 과제로 바빠서 말이죠;
*신데마스의 리카란 캐릭과는 일절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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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가 식어가 선선해진 날씨에 따라 나뭇잎도 물들어갈 계절이었다. 그 계절에 맞춰 자신의 머리도 밝은 갈색으로 물들였다. 단순한 기분 전환이었다. 저번 달에 오디션을 봐서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었다. 처음에 오디션 합격을 통지 받았을 때는 금방이라도 TV에 출연해 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TV방송에 출연은 몇 번 했지만 그렇게 인기 있는 프로도 아니었고 그나마도 비중도 없었다. 노래도 앨범은 냈지만 별로 팔리지 않았고 콘서트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거기다 스케줄도 많지 않아 제대로 된 프로듀서도 붙어있지 않다. 오늘만 해도 남아버린 시간에 한가해줘 산책을 하러 시내로 나왔다. 
별다른 변장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을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없었다. 간혹 말을 걸어봤자 남보다 예쁜 자신의 외모에 흥미를 보이고 말을 거는 사람들 정도였다.
나와도 갈 곳은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좋았지만, 아이돌이란 직업에 한가로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음악매장에 왔다. 시내에서도 가장 큰 매장이었다. 여러 아이돌의 음반이 있었고, 인기가 없는 아이돌의 음반까지 적은 수량이지만 구비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적은 수량에는 자신의 앨범도 포함되어 있었다. 
멀찍이서 자신의 앨범이 있는 곳을 보았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앨범.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이렇게까지 전혀라 좋을 정도로 인기가 없다면 단념해버리고 싶어진다. 괜히 시간만 낭비하기 전에 일찌감치 이 길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소속 된 프로덕션도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 뵈도 나름 큰 회사인데다 인기 아이돌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자신이란 존재는 회사에 마이너스일 뿐이니깐.
한숨을 쉬고 매장에서 나오려 했다. 그 때, 자신의 앨범에 손을 뻗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앨범을 집고 플레이어의 헤드셋을 껴서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었다.


“좋잖아. 근데 왜 무명이지? 얼굴도 상당히 예쁘고 실력도 있는데. 아직 신인이라 그런가?”

처음으로 팬에게서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사소하지만 그 반응이 너무나 기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리카는 들뜨려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상대에게 다가섰다. 상대는 마침 헤드셋을 벗고 있었다.


“저기…….”

조심스럽게 상대를 불렀다. 갑자기 말을 걸면 놀라지 않을까 혹은 실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자신을 알아볼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네?”

상대는 의아해하며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또래 여자애보다 큰 것이 예전에는 콤플렉스였을 정도로 키가 큰 리카는 보통 남성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 리카를 약간이라지만 내려다보는 상대의 모습에 리카는 의외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 앨범 괜찮나요? 즐겁게 듣고 계시 길래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묻자 남자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싶었다. 성실하고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곧 남자는 리카에게 웃음을 보이더니 자신이 쓰고 있던 헤드셋을 리카의 머리에 씌어주었다. 갑작스런 그 행동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상대를 보다가 곧 노래에 집중했다. 헤드셋에서는 발라드풍의 경쾌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노래였다.
남자는 입을 뻐금거렸다. 헤드셋의 노래 때문에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뭐라고 묻는지는 입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어.때.요?

리카는 대답하지 않고 미소와 함께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러자 상대도 만족한 듯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리카가 헤드셋을 벗었을 때 남자는 앨범을 들고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계산대로 향하면서 슬쩍 물었다.

“지금 앨범을 사면 아이돌이 직접 사인을 해주나요?” 
“네?”

리카가 그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순간 멍하게 있다가 남자가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서 앨범의 사진을 툭툭 손가락으로 두들겼을 때 상황을 이해했다.

“에, 에엑!”



 

“에, 저기 그러니깐.”
“이름은 P입니다.”
“네, 저기 그럼 ‘P씨에게 리카가.’ 이정도면 될까요?” 

둘은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리카는 살짝 긴장하며 신중하게 자신의 앨범에다 유성매직으로 사인을 하고 있었다. 팬에게 이렇게 사인을 해주는 건 처음인지라 혹시나 이상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신중히 하고 있었다.
글씨가 너무 크지 않을까? 말투가 너무 딱딱하지 않나? 그, 하트라도 붙일 걸 그랬나?
P는 옆에서 여유롭게 턱까지 괴며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이 리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대신 떼어 내주자 왠지 얼굴이 빨개진 리카가 두 손을 뻗어 앨범을 정중히 건네주고 있었다.

“그, 이정도면 될까요?”

-P씨에게 리카가.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끝에는 리카의 사인이 들어가 있었다. 어딘가 귀엽게 느껴지는 말과 사인이었다. 웃으며 P는 앨범을 받아들고 봉투 속에 넣었다.

“고맙습니다. 아이돌이 직접 사인을 해준 앨범을 받은 건 처음이네요.”
“그 저도 처음입니다!”

리카가 어딘지 긴장해 그렇게 소리치고 말았다. 순간 공원에 몇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모이는 게 보였다. 그 바람에 리카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고, P도 덩달아 같이 얼굴이 빨개졌다.

“그, 아직 무명이라 다행이네요. 유명하면 스캔들이었어요. 저기, 그러니깐 팬에게 칭찬을 듣고 사인요청을 받은 게 처음이란 말이었어요.”

리카는 작아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P는 소리내어 웃었다.

“쿡, 크크 그렇군요. 의외네요.”
“으, 아직 데뷔 한지 한 달 밖에 안 됐다고요.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

리카가 의기소침해져 말하자 P는 여전히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 뜻이 아니에요. 이 정도로 매력 있는 사람이 팬에게 사인요청을 받은 게 처음인 게 이상하단 뜻이었어요.”

P의 칭찬에 더 이상 빨개질 수 없는 얼굴을 숙이며 리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하지만 사실인걸요. 오늘만 해도 이렇게 돌아다녔지만 절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고…….”

그리고 시무룩해져 말을 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 모습도 큰 키와 다르게 점점 작아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리카의 머리를 P가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 그 따듯한 손길을 느끼며 리카가 고개를 들자 P는 웃어주었다.

“오늘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제가 있었잖아요.”

그 위로에 리카는 자신의 눈가에 고이려 했던 눈물을 닦아냈다.

“하하, 그러네요. 오늘은 아니군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키며 뒤돌아 P를 보았다. 바람이 불어와 낙엽이 리카의 뒤로 날리면서 긴 갈색 머리를 날려주었다. 순간 그 모습이 계절에 녹아들어 아름답게 보였다. 

“하지만 다음에도 또 팬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전 정말 인기가 없거든요. 그래서 프로덕션에서는 저에게 제대로 된 프로듀서도 붙여주지 않아요.”
“아직 신인이라 그래요. 곧 인기가 많아지실 거예요. 그럼 좋은 프로듀서도 나타나겠죠.”

“과연 그럴까요?”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리카씨는 이렇게 멋지니깐요. 거기다 꼭 톱아이돌이 되셔야 해요.”

P는 사인 받은 CD를 꺼내 흔들어보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야 이 CD가 리카씨의 첫 사인앨범이란 타이틀로 경매장에서 비싸게 팔릴 테니깐요.”
“아, 그게 목적이었군요! 돌려줘요!”
“싫습니다. 아이돌이 팬에게서 사인을 뺏어가는 게 어딨습니까?”
“여깄어요! 당신은 안 돼 돌려줘!”

리카가 덤벼들자 P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쳤다. 공원을 한 바퀴 뛰었을 때 서로 지쳐 다시 처음의 벤치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리카씨가 계속 아이돌을 하신다면 잘하면 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P가 손부채질을 하며 말하자 리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송국에서 일하세요?”
“아니요, 이번에 한 번 프로덕션에 지원해볼까 해서요. 작은 프로덕션인데 아이돌 프로듀서를 모집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리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 프로덕션으로 와서 제 프로듀서가 되시는 게 어때요?”
“하하, 그건 무리에요. 리카씨 프로덕션은 커서 저 같은 생초보는 면접조차 안 봐줄 거예요.”
“으, 그렇군요. 하지만 전 인기 없으니깐 제가 고집을 부린다면 허락해줄지도…….”
“그 반대죠. 지금은 아직 무명이니깐 곧 당신에게 맞는 프로듀서를 붙여줄 거예요. 큰 프로덕션이니, 그 만큼 신중하게 기획하는 거겠죠.”
“흐음.”

리카는 어딘가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시무룩해졌다. 만난 시간은 짧지만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은 아이돌이 되고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자신의 프로듀서가 되어 준다면 왠지 일이 잘 될 것만 같았다.

“뭐, 만일 합격 된다면 저도 프로듀서로서 성공할게요. 그렇게 되면 인기아이돌이 된 리카씨의 프로듀서로서 합격 할 수 있겠죠.” 
“하하, 그거 좋네요. 좋아요 그럼 제 프로듀서 자리는 비어둘게요.”
“아니, 곧 능력 좋은 프로듀서가 붙을 텐데요?”
“뭐, 처음 한 동안은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리카는 손가락으로 프로듀서를 가리켰다.

“당신하고 일하고 싶어졌으니깐 프로듀서 없이 성공해보이겠어요! 톱아이돌이 되면 제가 원하는 프로듀서를 쓸 수 있도록 프로덕션도 요구를 들어주겠죠. 그러니, 당신도 그 동안 프로듀서로서 열심히 공부해두세요! 일단 지금 지원하신 다는 곳에 꼭 합격할 것!”

프로듀서는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저랑 오늘 처음 만났는데 무슨 확신을 갖고…….”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전 당신과 같이 일하고 싶어졌어요! 그러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거에요! 톱 아이돌? 까짓거, 한 번 도전해보죠!”

아까까지 의기소침해진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P는 황당해 그냥 웃기만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면 저 모습이 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연이은 실패에 의기소침해져 풀이 팍 죽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P의 모습을 보고 리카는 자신의 얼굴을 P의 바로 앞까지 가져갔다.

“뭐에요 그 반응? 못 할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향긋한 샴푸 냄새가 P의 코를 찔렀다. P는 몸을 뒤로 살짝 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당신도 약속해요!”
“네?”

상대의 요구에 P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자 리카는 다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이번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로 합격하면 그 일을 끝내고 제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약속하세요!”
“그게 생각대로 될지…….”
“하세요!”
“하겠습니다!”

리카의 기세에 밀려 P는 그렇게 약속하고 말았다. 그 말에 만족한 미소를 지은 리카는 P에게서 물러나 몸을 빙글 돌리고 웃음기 짙게 말했다.

“좋아요. 약속하신 거예요? 그럼 다음은 연예계에서 뵈요!”

그리고 리카는 프로듀서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서 자리에서 떠났다. 프로듀서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 그 뒷모습을 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정말 기운차네. 저대로면 정말 톱아이돌이 되겠는 걸?”

그리고 지니고 있던 서류를 주머니에서 꺼내 봤다. 서류에는 765프로덕션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럼 나도 노력해야겠는데.”

그 약속이 지켜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취직은 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P는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로 일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고 리카는 정말 톱아이돌이 되어있었다. 그것도 정말 프로듀서도 없이. 본래의 성실함과 노력, 그리고 재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프로듀서가 되어 업계 이야기를 들으니 초반에 리카가 자기 프로덕션에서 취급이 나빴던 것은 그래 보였을 뿐이고, 리카의 재능을 알아본 프로덕션이 리카를 중심으로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그 과정이 느렸을 뿐이었었다. 그리고 초기의 프로젝트는 성공해 리카는 단숨에 큰 인기를 구사했고, 거기서 리카는 중간에 프로듀서와 결별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업계의 일들을 해내기 시작했다. 처음 그 기행에 프로덕션은 반대했지만, 리카의 고집과 그 결과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고 한다. 
P와 리카가 다시 만난 것은 미키의 스케줄에서였다. 미키는 리카를 능가할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프로덕션의 사정으로는 리카처럼 대형프로젝트로 단 번에 인기 아이돌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미키의 재능으로 인기는 서서히 모이고 있었고 그 때문에 프로덕션의 주 전력인 류구코마치보다도 먼저 대형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거기서 리카와 P는 만났다.
P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미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때 그의 옆으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좋은 아이네요. 제대로 성장한다면 톱아이돌이 될 것 같아요.”

P가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프로듀서가 되기 전에 제일 처음 만난 아이돌이 웃으며 서있었다.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지만 둘은 그 때와 같이 서로를 향해 웃어보였다.

“정말 오랜 만이네. 축하해, 톱아이돌이 된 걸. 성공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설마 정말로 프로듀서 없이 성공할 줄은 몰랐어.”

P는 친숙한 어조로 말했다. 그 때는 상대를 높여 불렀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리카의 나이도 알았고, 거기다 겨우 두 번째 만남이지만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져서이다. P의 칭찬에 리카는 큰 가슴을 쭉 내밀며 개의치 않고 뽐내듯 말했다. 

“당연하죠. 제가 거짓말을 한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니 이제 당신 차례에요.”
“나?”
“설마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죠?”

그 질문에 P는 머리를 긁었다.

“설마 그 약속을 아직도 기억할 줄이야.”
“저에게는 중요한 약속이었다고요. 그리고 억지로라도 지키게 할 생각이고.”

리카가 P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묘한 눈초리를 지었다.

“하하, 알겠어. 근데 아직도 여기 일이 끝나지 않아서 말이야.”
“일이라면 역시 저 아이를 톱아이돌로 만드는 건가요?”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맡고 있는 건 저 아이만 아니라서 말이야.”

P는 곤란하다는 듯 말을 흐렸다. 그 말에 리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한 명 더 있는 거예요?”
“아니, 한 명이 아니라 회사사정으로 류구코마치를 제외한 아이돌을 프로듀서하고 있어.”

그 말에 리카는 아미를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잠깐만요, 당신 프로덕션의 아이돌은 틀림없이 12명이었죠?”
“하하 맞아. 잘 알고 있네?”
“류구코마치가 세명.”
“맞아.”
“그럼 9명을 당신이 담당하고 있다고요?”
“하하, 그렇게 됐어.”


리카는 신음소리를 흘렸다. 혼자서 9명을 프로듀서하다니, 말이 안됐다. 765아이돌들은 나날이 인기가 높아져 가고 있는, 아이돌 업계에서는 무서운 돌풍의 주역들이다. 그런 아이돌들을 혼자서? 
프로듀서의 몸도 힘들지만 아이돌들에게도 좋지 않았다. 어쩐지 그쪽 아이돌들의 성장이 최근 정체되고 있다 싶었다.


“지금의 765프로덕션이면 프로듀서 지원자도 많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모두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맡기에는 조건이 안 맞아서……. 인원은 필요하지만 사람이 안와. 최소 둘은 와야 우리 아이들도 제대로 성장할텐데.”

P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리카도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긴. 지금의 당신네 아이돌들을 맡으려면 실력 있는 프로듀서야 할 텐데. 그런 프로듀서는 돈도 비싸니. 거기다 그런 프로듀서가 둘이나……. 아무리 사정이 좋아졌다해도 작은 프로덕션인 765로서는 힘들겠네요.”
“하하 맞아. 정확히 아는데? 역시 현재 최고의 아이돌.”
“용케 다른 프로덕션에 아이돌들을 안 뺏기고 있네요?”
“어려울 때부터 같이 한 아이들이라 쉽게 떠나려 하지 않아. 좋은 조건이면 우리도 보내는 쪽으로 설득하고 있지만 본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 말에 사정을 아는 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P가 소속된 프로덕션은 예전부터 관찰해왔다. 그 때문에 어떤 식으로 아이돌들이 성장해왔는지도 잘 알고 있다.

“당신도 고생이 많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어기는 건 용서 못해요.”
“하하, 알았어.”
“허니! 바람피우는 건 용서할 수 없는 거야!”

공연을 끝낸 미키가 달려와 P의 팔에 매달리며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미키는 상대를 경제하 듯 노려보고 있었다.

“허니?”

그 호칭에 리카가 인상을 쓰자 P가 당황해 변명을 했다.

“그냥 우리 사이의 친근한 별명 같은 거야!”
“허니는 허니인거야!”
“미키!”

리카는 그 둘의 모습에 가라앉은 눈동자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헤- 그렇구나. 나와의 약속이 늦어진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거 때문이었구나. 네네, 과거의 약속 따위는 이제 중요하지 않겠죠. 그럼 이만 과거의 여자는 사라져 드리죠-”   

그리고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휙하고 등을 돌려 자리에서 떠나갔다.

“잠깐, 리카! 그런게 아니라!”
“과거의 여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제대로 빠짐없이 설명해봐!”
“아니 이상한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으악! 리카, 설명 좀 해줘!”
“왜 그 여자를 그렇게 부르는 거야? 설마 허니……. 정말 바람피고 있던 거야? 안 되겠어. 하루카들에게도 말해줘야 하는 거야!” 
“잠만 소란을 만들지마! 기다려 리카!”

뒤의 소란스러움을 느끼며 리카는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날 기다리게 한 복수에요. 그래도 혼자 10명을 프로듀서하다니…….”

능력은 확실히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본인과 아이돌들 모두에게 나쁜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을까?”

참고로 그날 P는 미키에 의해 퍼진 소문으로 일주일 동안 765여성들에게 문책을 당해야만 했다. 더불어 미키는 톱아이돌인 리카를 알아보지 못해 소문의 여성은 ‘과거의 여자’라는 수상쩍은 인물로 변해 있었다.



 

765프로덕션의 프로듀서가 과로로 쓰러졌다. 별로 호들갑 떨 일은 아니었지만 리카에게만은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역시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단순히 그의 건강 문제만이 아니다. 그가 빠짐으로서 일어날 공백은 아이돌들에게도 좋지 않다. 그렇게 아이돌들의 성장이 정체되어서는 그가 자신의 프로듀서로 올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톱아이돌이라고는 하지만 회사의 그런 일까지 도와줄 방법은 자신에게는 없었다.
해봤자 자신이 참여하는 방송과 프로젝트에 765아이돌들을 불러 도와주는 정도였다.
그의 병문안은 시간이 날 때 두 번 정도 갔었다. 그 때 분 그의 얼굴은 굉장히 수척해져 있었다.

“어떻게 든 해야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신과 인연이 있는 프로듀서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예전부터 같이 이 업계에서 일했던 친구 둘과 같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생각이야. 세 명이서 분야를 정해 다수의 아이돌들을 성장시키는 거지. 그래서 우리 셋 다 이번에 같이 일하던 아이돌들이 은퇴할 때 같이 나왔는데, 웃기게도 우리 셋을 동시에 고용해 줄 프로덕션을 찾지 못했어.” 

그 이야기에 리카의 표정은 밝아졌다. 세 명의 프로듀서는 모두 일류아이돌들을 키워낸 실력이 확실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셋을 동시에 고용하려는 프로덕션은 없었다. 셋이 원하는 계획은 대형프로덕션에서 진행가능 한 수준인데, 대형프로덕션에서는 굳이 세사람을 고용해 시험을 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곳 중에 안성맞춤인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저기, 혹시 765프로덕션의 아이돌에 대해 아세요?”
“765? 아, 거기는 우리도 눈독 들이고 있어.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많으니깐 어떤 의미로는 딱 우리들이 원하는 곳이지. 하지만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제법 커졌다지만 그 정도의 자금을 쓰기는 어려운 곳이라…….”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부족한 자금은 제가 드릴 테니 그곳에서 일해주세요!”
“네가? 어째서?”

남자가 의아해 하자 리카는 순간 뭐라 할지 머리를 굴렸다. 차마 프로듀서를 위해서란 말은 부끄러워 할 수가 없던 것이다.

“거기 아이돌들은 예전부터 저도 친분을 갖고 있거든요! 거기다 거기 프로듀서와도 친분이 있는데, 이번에 그 프로듀서가 과로로 쓰러져 아이돌들이 일하기 힘들게 됐어요. 그 아이들은 늘 볼 때마다 안타까웠거든요. 틀림없이 더 성장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 뿐이라고? 네가 정이 많고 착하다는 건 알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안 돼. 미안하지만 그런 불확실성으론 우리의 오랜 계획을 실행할 곳을 정할 수는 없어. 거기다 우리 셋이 가면 네가 자금을 준다 해도 그 곳의 프로듀서 중 하나는 확실히 프로덕션을 떠나야해. 그런걸 생각하면 너의 친절은 말이 안 돼.”


리카는 우물쭈물 거렸다. 뭐라 둘러 될 말이 없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눈을 감고 말했다.

“……고요.” 
“뭐라고?”
“그곳의 프로듀서는 원래 제 프로듀서가 되었어야 했다고요!”

뻘게진 얼굴로 그리 소리치자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짓궂은 얼굴을 했다.

“오호라, 톱아이돌이면서도 고집스럽게 프로듀서를 쓰지 않는 천하의 리카가 왜 그런가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그, 그런 이유라니, 무슨 이유요?”

리카가 빨개진 얼굴로 노려보며 말하자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니야. 그건 중요하지 않지. 뭐, 덕분에 확실한 이유가 생겼군. 좋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볼게. 우리들은 765프로에 지원하겠어. 단, 부족한 자금은 너에게 확실히 요구할거야? 각오 단단히 해둬. 부족한 자금만 요구한다지만, 그래도 프로젝트의 자금이야. 톱아이돌이라도 큰 지출이 될 거야.”
“상관없어요!”

리카는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남자는 놀리듯 중얼 거렸다.

“사랑하는 소녀는 강하구나-”
“뭐라고 하셨죠?”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해바라기 아이돌님-”
“으이, 정말!”




그렇게 765프로덕션에는 새로운 프로듀서 셋이 들어가고, 한 명의 프로듀서가 빠지게 되었다. 그 후 765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의 성장은 확실히 눈에 띄게 빨라졌다. 처음 잠시 동안 프로듀서가 빠지고 침체되는 듯 했지만 곧 굉장한 인기를 얻으면 실력을 보였다.
그 기사를 웃으며 보던 리카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시내로 나왔다.
예전과는 다르다. 이제는 이렇게 변장을 해도 사람들이 알아보며 몰려들 때가 많아 밖을 돌아다니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 때에 느꼈던 씁쓸함을 생각하면 지금이 좋았다. 콧노래를 부르면 그 때 갔던 음악매장에 들어갔다. 거기서 자신의 앨범을 하나 사서 직접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 앨범을 들고 나와 공원의 벤치로 갔다. 거기에는 편한 웃음으로 앉아 있는 한 안경 쓴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에게 다가가 사인을 한 앨범케이스를 내밀었다.

-약속 지켜! 리카가.

그 사인을 보고 남자는 웃으며 앨범을 받아들었다. 리카는 그 옆에 털석 앉으며 투덜거렸다.

“정말. 난 오래 전부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준비해왔는데. 당신 너무 늦어.”
“하하, 미안미안. 대신 그만큼 열심히 일할게.”
“실컷 부려먹을 거야.”

그리고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렇게 둘의 약속은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지켜질 수 있었다.




 

-after

“잠깐만, 왜 프로듀서가 되자마자 바로 미국이야!”
“어쩔 수 없는 걸! 이건 이미 1년 전부터 기획 된 프로젝트라고! 당신이 너무 늦어서 그렇잖아! 에, 뭐야 왜 숙소의 방이 두 개로 나뉜 거야!”
“왜? 방이 적어?”
“반대야! 하나면 되는데……. 에이, 사장이 또 멋대로!”
“리카! 비행기 안에서 통화는 금지야!”
“이쪽이 더 급해! 빨리 전화해서 방을 변경해야…….”
“그냥 두 개로 참아!”
“안 돼! 1년 전부터 계획 한 신혼여행이…….”
“뭐?”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어쨌든 도착하자마자 방은 변경할거야!”

우역곡절 끝에 방은 하나로 변경 되었지만, P는 끝끝내 리카에게 기대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더욱 삐진 리카를 달래느라 이유도 모르고 P는 고생해야 했다.

“이,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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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아이마스 팬픽입니다~ 이 리카란 캐릭터는 신데마스를 모를 때 쓴거라 이름이 겹쳐 곤혹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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