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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해선 안될 짓]

댓글: 8 / 조회: 2816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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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8, 2014 15:40에 작성됨.

 

평소에 그저 생각 없이 살아오던 나에게
그녀는 깜깜한 골목을 비춰주는 가로등과도 같았다.
언제나 그녀를 생각할 때면 힘이 샘솟아 못할 일이 없었고,
슬퍼할 땐 내가 그 옆에서 같이 울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황당스럽게도
나는 지금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얻어 활동하고 있다.
한 번이라도 그녀를 만나볼 수 있을까, 빌딩 앞을 서성이던 도중,
이 사무소의 사장님께 프로듀서 제안을 받아버렸다.


당시엔 무척 당황스럽고 곤란한 마음에 거절해버렸지만,
그녀 옆을 지켜줄 수 있고, 웃는 모습을 많이 만들어 줄 생각에 그에 응하였다.


처음엔 대부분 실수투성이라 나 자신을 자책했다.
고작 이거 하려고 프로듀서역을 자청한 거냐고.
한심한 내가 아닌 유능한 누군가가 있었으면 그녀는 이미 톱 아이돌이 됐을 거라고.
아니, 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존재라고까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부족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프로듀서씨가 와주신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날 북돋아 주었다.
그 이후론 좌절하는 일 없이 승승장구로 일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현시점으로 그녀는 어느 정도 성장한 아이돌이다.
아직 '톱 아이돌'은 아니지만,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불리는 명칭에 불과하다.


이미 나 자신한테는 처음부터 톱 아이돌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금, 나는 해선 안 될 짓에 대해 깊은 갈등에 빠져있다.
상상조차 하는 것을 금하던 그 행동.
아니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양심이 나를 울리는 바로 그 감정.


다만, 최대한 다가가려곤 했다. 도달할 수 없을 뿐이지만.
자각하지 않은 상태로 간단한 스퀸십을 하거나, 어디 놀러 가는 날은 많았다.
즉, 친한 친구사이 정도는 되겠지.
물론 프로듀서와 아이돌이라는 기본적 관계하에서.

 

 

 

종종 집으로 가는 퇴근길의 대로변 스크린에선
그녀가 찍은 로맨스 영화의 예고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렇고 보니 처음 촬영한 날도 꽤 지났구나.


그녀는 처음으로 맡은 주연에다 장르가 장르인지라 선뜻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바로 동의했을 텐데 말이다.
다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기에 우물쭈물 망설이다 결국엔 하게 됐다.
그런데 첫 신부터가 키스신이지라… 좀 고생했다.


연습을 같은 사무소 아이돌인 마코토에게 부탁하려다 이건 실례라고 생각해 그만두었고,
쥬피터 애들에게 부탁하기엔 그쪽 사장님이 좀 걸려서 포기했다,
마지막 방법으로 나를 시험대상으로 삼았는데,
지금이면 그 감정 때문에 바로 거절했겠지만, 그땐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여튼 간에 몇 주 전 이 영화의 선행 상영회에 가서 그 장면을 직접 보았다.
그녀는 장면이 나옴과 동시에 두 손으로 표정을 가리고 힐끗힐끗 스크린을 바라보았고,
나는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을 했다.


차라리 정말로 저 영화의 톱스타 남성 배우가 그녀를 좋아한다면,
그것이 더욱 좋은 사진이 아닐까.
물론 스캔들이 실제로 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젯거리겠지.


하지만 내가 그 주인공이 된다면… 아, 아니다.
양심에 너무 찔려 들어와 도저히 그런 상상을 할 수가 없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연말 술자리에서 코토리씨에게 물었었다.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는 게 좋겠냐고.
그녀는 내가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사실 그게 답이긴 하다.
강요에 의한 선택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걸.


새해 기념 기원으로는 그녀를 줄곧 아이돌로서 대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모두 같이…라고.

 

 

 

 

어쨌든 이런저런 작년의 속사정을 모두 내뱉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사무소에서 이런 말을 지껄이다 누군가 들었다면 이불 뻥뻥 차고 있을만한 이야기일 텐데.


사무소가 아니라는 건, 지금은 집에 있다는 것.
원래 신년이면 특집이다 인사다 뭐다 해서 더욱 바쁜 시기이지만
사장님께서 모두에게 특별 휴가를 내려주셔서 당분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다만 나는 사무소 주변 월세방에서 그저 뒹굴고 있을 뿐이다.


물론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것은 아니다.
어제는 나와 같은 집구석 부류인 코토리씨와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2차에 3차… 그 이상은 이상하게도 기억이 안 난다.

 

 

 

처음 맛보는 휴가긴 한데, 할 게 도통 없다.
그동안 일에만 너무 열중하다 보니 취미생활은 이미 창고에 넣어둔 지 오래고,
연락처엔 방송국 사람들과 사무소 사람들만 빼곡히 들어차 있다.


사실 연락할 만한 사람이 있어도 다들 바쁘게 살고 있을 테니까,
…사적으로 만날 여유는 없을 테지.

그래도 한번 찾아볼까.
연휴 마지막 날인데 집에만 있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스크롤을 내려본다.


음… 이 사람… 누구더라.
어라, 잘못 눌렀다.
하필이면 하루카한테 전화를 걸어버렸네.


종료버튼을 누르려는데 '달칵'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사이에 받아버렸나.
아무런 말도 없이 끊기엔 좀 그러니 안부 인사라도 해봐야겠다.

 

 

 

수화기를 갖다 대는 찰나, 당황한 듯한 하루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귀를 기울여 보자.


"프,프로듀서씨? 어디 계신 거에요?"

'집에 있지 어디 있긴'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빠르게 또 다른 음성이 들려 온다.

"저기 왜 사무소가 닫혀있나요?"

[풉…푸흐흡…푸하하하하하]
그만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역시 하루카 다운 행동일까.

"왜 웃으시는 거에요!? 우으으"

조금 미안하긴 한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 더 미안한데 말이야.

[사무소가 망했어!]

"…네에에에??? 뭐, 뭐라고요!?"

[사장님이 휴가 주신다는 핑계로 사무소 자본금을 들고 도망가셨어]
죄송해요. 사장님.

"그,그럴리가 없어요! 사장님이 그럴리…"

[사실 말이야. 다 하루카가 잘못한 탓이야. 그런 실수만 하지 않았어도…!]
고등학생 시절에 해본 연극 연습이 이럴 때 도움을 주다니.

"에엣!? 제가 뭘…"

[정말 기억 안 나는 거야? 실망이야, 하루카]

"전…전 정말 뭘 잘못했는지…모르겠어요"

 

왠지 울먹거리는 것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둘까.

[사장님께서 주신 휴가가 내일까지인데 그걸 까먹다니 말이야]

"……!! 프-로-듀-서-씨!!"

[하하하. 새해 첫 농담은 어때? 그보다 정말 사무소에 와 있는 거야?]

"전 진담이에요! 복귀일이 오늘인 줄 알았어요!. 왔는데 불도 꺼져 있고, 문도 안 열려서 얼마나 놀랐다구요!"

[음…. 그렇다면 오늘 할 일 없겠네? 내가 그쪽으로 갈까?]
그렇게 주절거려 놓고 하는 행동은 이거라니.

"네…네? 상황이 이런지라 아무런 일정이 없긴 한데…"

[그럼 30분 후에 타루키정으로 갈 테니 기다려]

"자,잠깐ㅁ…"

결국 감정이 이겨버렸구만. 이렇게 되어버린 거 제대로 하자.

널브러져 있던 옷가지들을 쭉 나열해보고 입을만한 걸 찾아본다.
하도 정장만 입어서 그런지 평상복은 얼마 없다는 게 정말 아쉬운 상황.

 

 

 

지갑도 챙겼고, 옷도 나름 단정히 입었고, 마음도 진정시켰고…
윽, 시계를 보니 벌써 15분이 지나 있었다.
하루카는 이미 사무실 건물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너무 여유롭게 준비했다.
약속 잡은 사람 주제에 빨리 가도 모자랄 판인데 늦어버리다니.


다행히 머피의 법칙은 발동되지 않았는지 바로 택시를 잡아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아, 벌써 운을 이렇게 낭비해버렸다.

 

 

 

아무런 인기척 없이 타루키정에 들어섰다.
하루카는 점원분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듯 하다.
팬인 척 다가가 봐야지.
물론 안경은 벗고, 마크스도 두르고, 고개도 숙이고.


"어제는 집에만 쭉 있었어요. 그동안 못 만들어봤던 쿠키도 만들어보고…"

[저, 저기 아마미 하루카씨 맞나요?]

"네? 네"

[그게… 저 팬이에요! 여기에 싸인해주실 수 있나요?]
라며 하루카에게 오래전에 선물로 받았던 지갑과 만년필을 내민다.
눈치채기엔 너무 낡아서 다행이야.


"아… 뭐라고 써넣어 드릴까요?"

['프로듀서씨! 돔이에요! 돔!' 이라고 적어주세요]
너무 쉬운 문제이려나.

"프-로-듀-ㅅ……네!?"

[아니면 '도망가신 사장님을 잡기 위한 하루카의 대모험'이라고]

"으으으! 또 프로듀서씨예요!?"

[새해 첫 장난 대성공! 그보다 실망이야 하루카. 내 목소리도 못 알아 채다니]

"아,아니 저… 사실 저도 프로듀서씨인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일부러 속아드린 거라구요!"

[그래그래, 하루카는 참 착하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이렇게 평온하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과연 오늘은 무슨 위험이 닥칠는지 모르겠다.


"우으으… 이젠 어떤 장난을 치셔도 안 당할 거에요!"

대답 앉고 웃으며 계속 쓰다듬었더니, 양손으로 내 손을 잡고는 끌어내린다.
하루카는 볼을 빵빵 채우곤 심통 가득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다음 장난은 잠시 미뤄둬야겠네.

 

 

 

타루키정을 나서서 천천히 번화가로 향했다.
하루카는 내 앞에서 먼저 나아가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면,
그녀는 넓은 보폭으로 저 멀리 떨어진다.
때때로 뒤를 쳐다보며 혀를 내밀기도 하고.


일단은 제대로 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버틸 수 있는 한도 내에선 가능하면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다.
그 대망의 첫 번째를 시도해보자.


그러기 위해 다시금 기척 없이 다가가
오른손으로 재빨리 하루카의 왼손을 잡아챘다.


[역시 아직 한겨울이라 춥네]
하루카는 슬쩍 손을 잡아빼고는 무언가 묻지 않았지 여러 번 손을 뒤집었다.
그 후 살포시 내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엔 장난 안 치셨네요"

[당분간 안 하려고. 그보다 다시 잡는 걸 보니…]

"추, 추워서 그런 거에요!"

[그렇구나~ 역시 누구누구 마음처럼 따뜻하네~]
능글맞게 대답하니 하루카는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린다.
다시 말하지만 참 귀엽다.
물론 그 이상의 감정을 품지 않은.

 

 

 

 

오늘 하루 일정을 짜기 위해 사거리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선다.
아직 이른 아침에 휴일이라 있는 사람이라곤 거의 청소를 끝마친 직원과 우리 둘뿐.
카운터와 가깝고, 따뜻하게 햇볕이 들어오는 자리를 찾아 하루카를 안내한다.


[자, 이리 앉으시죠. 공주님]

"고,공주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냥 왠지 한번 해보고 싶었어. 하하하]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다. 역시 오토나시씨와 그런 영화를 보는 게 아니었어.
하긴 너무 고전이었지.

 

 

 

대충 목도리를 뭉쳐 탁상에 올려두고,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터 둔다.
이렇게 보니 코트뿐만 아니라 스웨터도 많이 해졌었네.


혼자 있을 땐 몰랐는데, 하루카랑 같이 있으니 행색이 초라해졌다.
뭐랄까, 하루카가 전시해두는 귀중품이라면, 난 뒤쪽에 쌓아둔 잡동사니 같은 느낌.
그냥 정장을 입고 올 걸 그랬나.

 

 

 

[뭐 마실래? 아무거나 골라봐]

"음… 그럼 저는 카라…"

[그래도 칼로리 높은 건 자제해줘. 요즘 몸무게 조절을 하고 있다고 들었거든. 확실히, 늘긴 했어]

내 말에 하루카는 고개를 숙이고 옆구리를 만지작거린다.
곧 시선을 눈치챘는지 급히 메뉴판을 올려다보고 있다.


사실 그렇게 늘진 않았어. 여전히 몸무게는 그 나잇대 평균이지.
다만 볼살이 만지작거리기 좋게 통통해진 정도?


"읏, 프로듀서씨. 소녀에게 그런 말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구요"

[난 아직 뒷바라지해줘야 할 어린애들로 밖에 안보인다만]

"어린애가 아니에요! 전엔 셀프 프로듀스도 해보고. 게다가 내년이면 무려 성인이에요?"

[한 달 전에 '제가 해결해볼게요!'하고 나가서는, 초장부터 일이 꼬여서 울상인 목소리로 전화한 게 누구 더…]

"스, 스톱, 스토옵!! 그, 그 이야기보단 오늘 어디 갈지 정해요. 네?"

[알겠으니까, 그전에 주문부터 하자. 눈치 보인다고]
하품을 하며 나를 쳐다보는 점원의 눈빛이 너무 신경 쓰여.

 

 

 

[아메리카노라… 그럼 난 카라멜 마끼아또]


   「네. 두 개 해서 0000원입니다」


[먼저 앉아있어. 내가 계산할게]

"네에-"

지갑에서 쿠폰과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네준다.
일정을 끝내고 사무소로 돌아오면서 자주 들렀기 때문에 도장은 이미 만석이다.
음, 한 번만 더 사면 경품인가.


천천히 쿠폰의 주의사항을 읽으면서 자리로 돌아온다.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었더니 하루카의 표정이 미묘하다.


"우- 프로듀서씨는 살 안 찌시나 보네요"

[하루카가 댄스 연습하는 만큼 나도 방방곡곡 뛰어다니거든. 9명을 다 프로듀스하려면 쉴 시간이 없어]

"그렇긴 하네요…. 그래도 제대로 쉴 땐 쉬어 주세요"

[네가 오늘 착각하지만 않았으면 편히 집에 있을 수 있었는데]

"……"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울적한 표정 짓지 마]

[사실 오늘 할 게 없었거든. 다행히 하루카가 착각해서 이렇게 나와 있을 수 있으니 좋네]

"그런가요? 에헤헤"

 

 

 

   「커피 나왔습니다」


부드럽게 하루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커피를 받으러 나간다.


왼손에 있는 컵에 올리고당을 조금.
그리고 오른손을 올려 한 모금 마셔본다.
여기 지점은 다른 데보다 더 씁쓸해서 처음엔 마시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잠 깨기엔 탁월하니 나쁠 건 없지. 익숙해졌기도 하고.

 

[자 여기, 좀 달 거야]

하루카의 볼에 왼손의 컵을 갖다 댄다.


"앗,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아메리카노가 아닌데요?"

[음? 내가 이미 마셔버렸는걸. 그리고 달달한 커피는 느끼해서]

"그럼 왜 시키셨어요?"

[왜일까? 혹시 카라멜 싫으면 내가 마실게. 이리 줘]

"입 댔는데…"

[응?]

"아, 아니에요! 프로듀서씨를 위해서라도, 마셔드리죠!"

 

 

 

안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장과 펜을 꺼내 적을 준비를 하지만,
정작 하루카나 나나 막상 어딜 갈지 생각해둔 게 없었다.
아무리 고심해도 떠오르는 게…


"흐으음… 놀이공원!"

[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 돼]

"그럼… 어딘가로의 여행?"

[미안, 내가 차가 없다]
사무소용 중형차가 있지만, 열쇠가 코토리씨에게 있다는 것이 문제.
달라고 전화를 하면 찰떡같이 따라올 것이 뻔하니….


"우… 스케이트장요!"

[놀이공원과 같은 이유로 기각]
사실 마음 먹고 간다면야 가능한데, 일단 내가 못 타서 말이지.


"우으- 그럼 갈 수 있는 데가 없잖아요"

[인기 아이돌이니 어쩔 수 없지. 아무도 못 알아보는 것보단 좋잖아?]

"그건 그렇지만 서도… 아?!"


[응? 무슨 좋은 생각 떠올랐어?]
하루카의 눈빛이 이상하게 나를 향해 있다. 뭘 꾸미는 걸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진 않겠지.


[혹시 의류매장에 갈 생각이야?]

"어? 어떻게 아셨어요? 에헤헤… 프로듀서씨랑 텔레파시가 통했나 보네요~"

역시…. 계속 느끼는 건데, 얼마나 후줄근하게 입었으면 그렇게 눈에 띄는 거지.
하긴 최신 유행하고 영 거리가 먼 옷들만 잔뜩이다.

 

 

 

"커피 사주셨으니까 옷은 제가 살게요"

[아냐아냐, 이거 얼마나 한다고. 그리고 휴가비도 받아서 괜찮아]
이런 데에 써도 괜찮으려나. 뭐 나한테 쓰는 거니까 상관없겠지.


"안돼요! 제가 살 거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거에요!"

[윽, 너무 막무가내야]

"그리고 계속 받기만 하는 것도 썩 좋진 않다구요"

[그런가. 난 받을 때는 그게 뭐든지 간에 좋던데. 서류만 빼고]

"아하하. 그러니까, 가요! 빨리요!"


오늘따라 더 활기찬 느낌이다. 어제 무슨 일 있었나,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난 아직도 숙취가 풀리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지 말걸.


잘못 걸었으니 이렇게 됬나. 그럼 가길 잘 했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로변의 종합상가에 도착했다.
하루 내내 여기만 둘러봐도 될 정도로 큰 곳이니 잘 온 걸지도.
입구로 들어서기 전, 하루카의 변장을 세심히 고쳐준다.
혹시라도 들키면 무척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게 뻔하니 말이다.


조금 주위를 경계하며 들어간 것이 무색하게도,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긴장을 풀고 입구에서 서성이던 그녀에게 손짓을 한다.
그녀도 좀전의 나처럼 살금살금 들어오고 있다.


[오~ 하루카! 이쪽이야, 이쪽!]
그녀는 내 말에 화들짝 놀래선 헐레벌떡 뛰어온다.


"프,프로듀서씨-! 그렇게 크게 외치시면 어떡해요-!"

[뭐 어때. 하루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많잖아?]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잖아요…"

[그래그래, 다음부턴 조심할게. 자, 그럼 가자]
일단 매장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둘러보기로 한다.
저번 방문 때도 길을 잃어버려서 약속에 늦어버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매장이 자주자주 바뀌기도 해서, 다른 브랜드인데 같은 업종이 들어오는 경우.
그래,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어떤 게 더 좋으려나~"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원피스. 그것도 날 보면서.


[하루카. 여긴 여성 캐주얼복 매장인데]

"엣, 아… 아우우… 정신을 어디 두고 왔는 지…"

[아까 치마를 고를 때 식겁했어. 하루카한테 남한테 말 못 할 그런 취미가 있나 생각 했거든]


내 말에 당황한 하루카는 손에서 들고 있던 옷가지들을 놓쳐버렸다.
다시 주울 새도 없이 고개와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그, 그런 취미라뇨!? 그런 거 절대로 없어요!!"

[아하하. 그렇게 강하게 부정하니 의심스러운걸~]

"아, 아아니에요!! 착각한 거 뿐이라구요--!!"


그렇게 외치고는 바로 옆 남성복 매장으로 도망치듯 달려간다.
내가 생각한 그 취미와 하루카가 생각한 것은 과연 일치하는 걸까.
뭐 반응을 보니 맞는 것 같다.

 

 

 

 

아아, 1시간째 나는 마네킹 신세이다.
이게 바로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의 기분인가.
그동안에 다른 곳에 다녀와도 모를 정도라면 얼마나 빠져있는 거지
아까의 일을 복수하려고 하는 듯하기도 하고.


목각인형이 되어 버리기 전에 스트레칭을 해본다.
역시 난 이렇게 앉아있는 것보다는 계속 움직이는 게 더 편해.


하루카가 날 향해 손짓한다.
드디어 제발 이번에는 골랐다고 해줘.


"이건 어때요? 이것도…. 역시 옷걸이가 좋으니 다 좋네요"


오… 어디 나갔다 와야겠다.


"다 어울리는데…. 어떡하지…"


[받는 거니 불평은 안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코트를 좋아해]
요즘 패딩이다 뭐다 해서 많이 사 입는 것은 따뜻하긴 한데 너무 뚱뚱해 보이기도 하고.
일단 개성이 없어져서 좋아하지 않는다.

 

"코트라… 확실히 코트가 더 잘 어울리시네요!"

[하루카가 고민할 동안 다른 거는 사뒀으니 느긋하게 골라봐]
사실 좀 빨리해줬으면 하지만.


"에? 언제 사셨어요? 우우… 제가 골라드리려고 했는데-"

[이대로라면 한나절이 지나도 여기서 못 벗어날 것 같으니까 그래]
하루카에게 오른팔에 찬 손목시계를 보여주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손가락으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표시해 주니, 그제야 알아채선 멋쩍은 웃음을 띤다.


"여기서 계속 있어도 상관없잖아요? 시간도 아직 많구요"

[내일 스케줄도 있고, 혹시 모르는 막차 시간도 있잖아? 그리고 다른 곳도 가고 싶어서]

"그럼 빨리 골라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고심하고 또 고심한 하루카의 선택은 약간은 검보라빛이 나는 더블코트.
내가 산 옷은 채도가 낮은 다홍빛 스웨터와 평범한 흰 와이셔츠.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하루카의 붉은색 코트와도 잘 어울리니 괜찮아 보인다.


이제서야 제대로 입은 느낌이 난다. 동일 선상에 섰다고 해야 하나.


[옷이 날개네, 날개야]

"그럼 프로듀서씨는 천사겠네요?"

[…하하하]

"우읏, 그런 반응을 보이시면 무안하다구요"

[천사는 나보다 하루카가 아닐까]
윽, 머릿속의 생각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뱉어버렸다.


"네?"

[아무것도 아니야~]

"으음…? 앗, 히비키쨩의 노래에요! 노래! 여기 들어가 봐도 돼요?"

[그래, 알았어. 천천히 둘러보고 와. 천천히]
신이 난 하루카가 음반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너무 들떠서는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 주변에서 가장 큰 매장으로, 꽤 매니악한 장르까지 취급하는 곳이다.
프로듀서일 초창기엔 앨범이 잘 팔리나 자주 들렀지.
손님인 척 가장해서 하루카 것을 맨 앞에 두기도 했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앨범이 아예 없을 때 기분이 미묘해진다.
없다는 매진이라는 말도 되지만, 인기가 없어서 입고가 안 됐단 말도 되니까.
그나저나 하루카는 어디로 갔는 지 알 수가 없구만.


주변을 둘러보니 전시된 MP3나 음향 주변기기들이 눈에 띈다.
이 작은 스피커는 얼마지. 어우, 내 두 달 생활비하고 맞먹네.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다른 사무소의 앨범을 쭉 보다 보니 어느새 765프로의 앨범만을 모아둔 특설 판매대가 보인다.
1년 만에 이렇게 대접이 달라진 걸 느끼니 왠지 가슴이 벅찬다.
조만간 다시 올 테니 그때도 이리되어 있으면 좋겠다.


판매대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발매된 지 오래된 것들인가.
무릎을 굽히고 맨 아래층으로 눈을 돌리니 한 익숙한 표지가 보인다.


이 앨범은 내가 프로듀서가 되기 전 처음으로 샀던 하루카의 앨범이다.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 발견한 기념으로 하나 사가야겠다.

 

 

 

한 손엔 봉투를 들고, 한 손엔 핸드폰
오랜만에 이어폰을 꽂아 들어보았다.
그동안은 바로 옆에서, 아니면 TV로 보았으니까.


     「너를 우연히 발견했어」


확실히 노래 실력이 좋아지긴 했다.
그렇다고 예전에 나빴단 뜻은 아냐. 그때는 뭐든지 좋았으니까.
물론 지금도 변함없다.


     「여기서 멈춰 서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눈을 감고 들으니 바로 내 옆에 그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크린 너머에 있지만, 그녀의 온기에 마음을 녹이곤 했었지.
마주 볼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를 향해 미소 짓는 것 같았어.


프로듀서가 된 이후론 팬의 마음으로는 대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게 아쉽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혼란도 그 때문일까.
언제나 다가갈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정말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뿐~♬ 이에요. 프로듀서씨"'

[…엑!? 하루카!?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으음…… 중간부터요? 그보다 이어폰 제대로 안 끼워져 있어서 다 들려요"

[정말이네…]
크윽, 왠지 부끄럽다. 다음엔 이런 실수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야요이의 신 앨범을 하나 더 사고 나오는 도중,
문뜩 한 생각이 떠올라 엘리베이터로 발길을 돌렸다.


이 건물의 옥상엔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성수기엔 저 랭크의 아이돌이나 무명가수, 그 외 사람들에게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기 때문에
꽤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하루카도, 다른 765프로 아이돌들도 고작 한 번만 올라가 본 무대이기도 하고.


물론 오늘 같은 날엔 아무나 올라가도 되지만.

 

 

 

옥상에 도착했다는 알림 소리가 들린다.
쇼핑백에서 내가 직전까지 입던 코트와 마스크를 꺼내 하루카에게 내민다.


[자, 이거 입고,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무슨 일인지는 곧 알게 될 거야.


무대를 향해 조심스레 걸어나간다. 몇몇 무리가 보인다.
아이와 함께 놀러 온 가정, 몇몇 연인들에, 여기 직원분들이라. 이 정도면 관객은 충분하다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와 약간 고민한 후 말을 건넨다.


[아직 연습 중인 신곡 있지? 그걸 여기서 아카펠라로 불러봐. 그냥 흥얼거려도 상관없어]

"네? 아, 아직 잘 못 부르는데요?"

[그러니까 하라는 거야. 아무도 모르는 노래에, 어색하다면 하루카인지 못 알아챌 테니까]

"그래도…"

[혹시, 이제는 이런 작은 곳에서 부르는 게 창피한 거야?]

"아, 아니에요! 전 팬분들이랑 직접 마주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기쁜걸요!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자신 있게 다녀오렴]
하루카의 모자를 푹 눌러주고 어깨를 톡톡 쳐준다.


이러니 왠지 내가 기획했던 첫 무대가 생각난다.
입장부터 넘어질 뻔하고, 최장할 때도 넘어질 뻔해서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높지 못했었지.
사무소로 돌아가는 도중엔 결국 같이 넘어지기도 했고.
하여튼 이런저런 실수는 잦았는데, 그만큼 하루카의 이름을 알리는 방면에선 대성공이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하루카의 옷매무새를 훑어본다.
코트 자체가 롱코트였던지라 치마를 가려주기엔 충분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으로 또 가려주고, 턱 부분을 마스크로 완전방어 해주니
그녀인지 전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이곳 이 시간에 여기에 찾아올 것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목이 메서 말하지 못했어…"

"흐음…. 프로듀서씨. 템포를 조금 늦춰도 될까요?"

[네 편한 대로 해. 여긴 너의 무대니까]

"그럼 다녀올게요"


일반적으로 그녀의 곡 중 대부분을 활기 차고 발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본인도 그걸 잘 소화해 내면서, 인기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 준비하는 신곡은 아련하면서도 슬픈 감정을 담아 부르는 곡이다.
익숙지 않아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닌 데다, 흥행에 대해선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경험을 쌓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카가 무대 위로 올라가니 서로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자리에 착석한다.
이곳에서의 암묵적 룰이려나.
노래의 장르가 뭐든지, 누구든지 간에 상관없이 경청해준다.


이 무대가 단순하게 무료로 자리를 대여해 주고,
사람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인기가 있던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여기에 올 이유도 없었을 테니.


"시작하겠습니다"


하루카는 숨 한번 크게 내쉬고 내 쪽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다른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짝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하지만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던 날들」


처음은 약간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곧 안정을 찾아간다.
음원이랑 같이 불렀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모든 불안을 끌고 나아가고 있어」


관객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호응이다.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앨범 발매할 때 이 버전을 같이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째서일까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채워지니까」

 

 

 

 

이렇게 노래가 끝난 뒤 후속 반응을 듣는 것도 꽤 좋은 여흥이다.
다만 혹시 모를 악평은 걸러내서 알려줘야 하므로 먼저 하루카를 내려보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뭐라고 말하려는지 들어볼까.


「방금 그 목소리 하루카쨩 같지 않았냐?」

「어? 듣고 보니 그러네? 에이. 우리의 하루카쨩이 여길 왜 오겠냐. 일로도 바쁜데」

「내가 알아낸 정보로는 오늘까지 휴일이라고 들었다」


금방 하루카란 걸 들켰구나. 아니 그보다 일정은 어떻게 안 거지.
분명 이걸 아는 사람은 업계 관계자 분들과 사무소 아이들밖에 없다.


후, 하필 그 많고 많은 사람 중 극성 팬이라니. 오늘따라 운이 없다.

「그럼 직접 확인해볼까? 주변에 매니저도 없는 것 같아」

「좋은 생각인데? 하루카쨩을 직접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잠깐 기다려… 어딜 간다는 거야.
급히 달려가 봤지만 이미 문은 닫혀 내려가고 있다.
윽, 저번에도 극성 팬이 하루카에게 달려드는 통에 꽤 마음고생이 심했지.


그런데 오늘은 계획에 없던, 전혀 우려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일단 내가 막는다고 막아지는 수도 아니니 전면으로 나서는 방법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의류 매장으로 가면서 올라왔던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오라고 하루카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와 동시에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향한다.


평상시라면 하루카가 1층으로 오고 그대로 내가 도착한 후,
메인홀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지금은 휴일 정오. 보통 이때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피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서로 찾지 못하다 일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하루카에게 자신을 몰래 쫓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문자가 왔다.
웬만하면 모르게 지나가려고 했는데.


전화를 하면 그들이 그녀임을 확신할 가능성이 높으니 다시 문자를 보낸다.
내려오고 나서 계단 오른쪽에 보이는 길로 나오라고.


나는 먼저 가서 나갈 길만 제대로 확인해 두면 된다.
그러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뛰어 나가야 한다.

 

 

 

[헉…헉…헉……. 어라?]
내가 착각했나. 분명 여기가 뒷문을 향하는 길이었을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들 이쪽으로 몰려오는 통에 다시 돌아 나갈 여유는 없다.
일단 숨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자.


[응? 하루카! 이쪽으로!]
나를 못보고 지나치고 있던 하루카의 손목을 잡아 상가 골목으로 이끈다.
전등이 켜지지 않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약간 어두컴컴한 곳으로.
그리고 성급히 변장하고 있던 옷들을 모두 쇼핑백 안으로 넣어 둔다.


"프, 프로듀서씨!? 여긴 막다른 곳인데요…!?"

[잠깐 눈 감고 가만히 있어줘]
그녀의 머리 양 옆으로 팔을 쭉 뻗고 허리를 굽힌다.
전에 말했던 영화장면 연습을 다시 시도해 보는 것일 뿐이다.


"이, 이래서는 마치…"

[쉿]


모든 감각을 뒤편의 사람들에게로 집중한다.
눈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잠시 뒤 그들의 헐떡이는 숨소리와 둔탁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렇고 보니 머리의 리본을 푸는 것을 깜빡했다.
이대로라면 쉽게 들킬 터, 조치가 필요하다.


"!?"


뻗고 있던 팔을 접어 양손으로 자연스레 하루카의 머리를 감싸 안는다.
그에 놀라 움츠러드는 몸.


[미안. 잠깐만…]
그녀의 얼굴과 맞닿을 것처럼 가까이 접근한다.
누가 봐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우와, 저긴 대낮부터 뜨겁네…」

「야, 벌써 가버렸네. 아쉽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혹시 모르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제 눈 떠도 돼]
시끄럽던 바깥 풍경이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

[하루카?]

"아…아, 네!"

[괜찮아? 식은땀도 흘리는데… 열도 있는 것 같고]

"괜찮아요! 아무렇지도…않아요! 자 이제 가요…"


하루카의 컨디션도 살필 겸 밥도 먹을 겸 주변 식당에서 한숨 돌리기로 했다.

 

 

 

조금 전의 일 이후 하루카의 반응이 미묘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걸까. 역시 무대에 서는 일은 들키기 쉬웠나.
확실히 하루카의 음색이 특이하긴 하다. 내가 그것에 반했기도 하지.


평소 같았으면 신이 나게 주문을 하거나 이거 먹어도 되냐며 물어봤겠지만,
지금의 하루카는 그저 메뉴판만 뚫어지게 보고 있을 뿐이다.


결정이라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또 절레절레 젓기도 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쉬기도 하고,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내 눈치를 보기도 하고…


[정말 아픈 거 아니지? 괜히 말하는 걸로 보이겠지만 참으려고는 절대 하지 마]

"아뇨…. 아픈 데는 없어요. 다만…"

[다만?]

"그냥…그냥……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이걸로 주문할게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하루카는 멍한 상태 그대로다.
뭐 때문일까,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을 텐데.


이럴 때 장난으로 풀어주는 건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이만 집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네? 아직 해도 창창하게 떠 있는데…"

[내일 일도 생각해야지.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집에서 쉬어]

"정말 괜찮은데…. 후우우……"


아쉽다. 좀 더 오랫동안 있을 줄 알았더니.
이젠 웬만해선 혼자 보내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전철 플랫폼에서 하루카를 배웅한다. 의자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본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넘겼구나.
긴장을 풀었더니 온갖 감정을 품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저기 프로듀서씨"


하루카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 문이 닫히기 전 내렸나.
이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아직 내 마음을 바로잡지 못했는데.
그래, 침착하게 받아주자.


[하루카? 아직 안 갔어?]

"네…. 물어볼 게 있어서 다시 왔어요"

[뭐가 궁금해서 다시 온 걸까?]

"프, 프로듀서씨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왠지 불안한 그녀의 말.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길 빌어본다.
그보다 뭐라고 답해야 좋을까. 그래, 보편적인 게 좋겠지.


[음… 하루카는 귀엽고, 보면 힘이 나고, 모두에게 상냥하고, 765프로를 이끌어주는 리더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어떤 개인적 감정도 담지 않고, 그저 프로듀서의 평가서 같은 담백한 대답.
여기서 그녀의 의문이 풀렸으면 좋겠다.


"아…저…그런 것도 좋지만"

"절 이성으로 생각하시나요?"

 

 

 

[……]
내가 맞닥뜨리지 않으려던 최악의 상황이다. 여기서 곧바로 벗어나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내 다리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이제 전 프로듀서씨 말대로 더 이상 참지 않을거에요"


이런 일이 언젠간 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그 상황과 맞닥뜨리니 머릿속이 백지가 돼버렸다.
진정하자. 진정해.


[난 그런 목적으로 말한게 아냐]

"하지만 저한텐 그렇게 들렸는 걸요"

"그동안 계속 고민해왔어요. 줄곧 생각해 왔었다구요"

 

 

 

[하루카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어. 하지만 안되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잖아?]
내가 꺼낸 말들이 도리어 내 마음을 조여온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그렇지만…"

[스캔들은 아이돌 활동에 치명적이야. 그것도 같은 사무소의 프로듀서라면 더더욱]
구설수에 휘둘려 힘들어하는 하루카는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예전처럼 사무실에 혼자 쓸쓸히 있던 것 또한.


"만약 알려진다고 해도…. 팬분들은… 분명 이해해 주실 거에요!! 그러니까…"

[아니. 난 이해 못 하겠고, 괜찮지 않아]
모두가 이해해 준다고 해도, 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다만 분명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몰려온다.

 

"역시…안되는 거겠죠? 아하하……하아아…"


하루카는 손을 얼굴로 향함과 동시에 뒤돌아선다.


[저기…]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잠깐, 내가 이런 걸 원했었나. 분명 이게 아니었을 터인데.
내가 정말 하루카를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저 가만히…"


내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 슬퍼하는 그녀의 모습.
하지만 왜 나는 아직도 나에 대한 고민에만 빠져 있을까.
지금 이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닌데….

 

 

 

아니, 아니다. 죄책감이 아냐. 이 느낌은 분명 혐오감이다.
내 행동들은 줄곧 내 입장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기분일 리가 없어.

그래…. 난 오늘의 약속도, 카페에서도, 그리고 좀 전의 사건에서조차.
겉으로는 하루카를 위함이었지만, 결국 내 개인적인 선택만을 강요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언제나 하루카의 감정은 배제하고 있었다.
용기 내어 다가가려고 하는 자신을 항상 이렇게 내쳐버리는 상황만 반복됐지.


프로듀서가 되며 했던 다짐은 어디 가고,
이제 나에겐 치졸한 변명만 남아 있다.

 

 

 

나만 고통스러워 한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난 그 변명이라는 회피를 통해 안정을 찾았고,
하루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혼란 속으로 집어삼켜 져 가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도 그녀는 고백이라는 해방구로 탈출하려 했던 것일 텐데.
여기 있는 놈은 또 자신만을 위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이런 프로듀서 같지도 않은 놈이 여기에 있을 자격이 있는 걸까.
아, 여기서 놓아버리는 선택지는 또 나만을 선택한 결론이구나.


정말 이젠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도망치면 안 된다.
난 중요하지 않았어. 아니, 처음부터 신경 쓰지 말았어야 했어.

 

왜냐면 지금의 난, 네가 없었으면 이렇게 있을 수 없으니까.

 

 

 

 

[역시 어린애구만. 영락없이 울보네, 울보]

"울보 아니에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하루카에게 다가가 정면으로 바라본다.
감정을 추스르는데 신경을 모두 써서 앞에 내가 온 것도 눈치 못 챈듯하다.


아무 말 없이 조심스레 오른손 검지를 하루카의 아랫입술에 대본다.
이상한 감촉을 느낀 그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그에 반하여 나는 두 발자국 다가가선 다시 대본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는 올려다본다.


"하지 마세요…"


대답하지 않고 검지를 살며시 때서는 내 아랫입술에 갔다 댄다.


"……"


이번엔 반대로. 그 상태 그대로 이어서 하루카의 입술에 대었다.


"어…어…"

[이해한 거야? 아니면 한 번 더 해보고]

"그, 그만 해주세요…"

[지금의 나는 이런 것밖에 못해서 미안해]

"장난은 이제 그만…"

[확실히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할 거야. 난 한심한 놈이니까]

"하, 한심하지 않아요! 프로듀서씨는…프로듀서씨는…"

 

 

 

[아니. 난 정말 한심해.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고백도 못 하는 나 같은 놈은]

"……네?"

[우스운 일이지. 호박이 덩굴째 들어왔었는데 그걸 차버리다니]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우습다고 했지. 역시 하루카도 내 꼴이 우스워 보이는구나]

"아니아니아니, 그거 말구요…"

[…말하지 않아도 알 텐데. 하루카는 심술쟁이네]

"흥…. 프로듀서씨 말대로 심술쟁이라서 모르겠네요!"


삐쳐있는 하루카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고 보니 오늘 제대로 하기로 했지 참.
그럼 그 대망의 두 번째.

 

 

 

[좋아해, 하루카]

 

 

 

으아아. 역시 무리다. 내가 말해놓고 내가 버티질 못하겠다.
내뱉고 나서부턴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루카가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좋은 반응은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용기 내어 힐끗 그녀를 쳐다보니 고개를 숙이곤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실실 웃고 있다.
좋은 반응일까나. 처음 보는 모습이다.


[하루카, 여기 봐봐]
눈물은 멈춘 지 오래전. 하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터질듯한 느낌.
운다는 감정표현은 그게 어떤 의미든지 간에 마음이 불편하다.


[자, 어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그러다 쑥스러웠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역시…. 그런 표정 짓고 있으면 쓰나. 난 웃고 있는 하루카가 제일 좋은데 말이지]

"……그런가요? 에헤헤…"

[그래. 그렇게만 있어준다면, 난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

"그, 그 뜻은…"

[알아서 생각해줘. 부끄러우니까]

 

 

 

 

[근데 말이야]

"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던데]
역시 진지한 상황은 좋아하지 않아. 난 이런 게 제격이지.


"우읏!? 프, 프로듀서씨가 좋, 좋아…좋아한다고 하셔서… 그런 거잖아요!"

[나는 웃는 모습이 좋다고밖에 안 했는데~]
부끄러워하는 하루카의 귓가에 능글맞게 답한다.
그러자 하루카는 나를 밀치고 저 멀리 떨어진다.


"흥이네요. 흥! 이젠 프로듀서씨 같은 거 몰라요!"

[…그렇구나. 난 이제서야 하루카를 알 것 같다고 느꼈는데. 하루카는 아니구나]

"엣, 아, 저 그게…"


그녀는 우물쭈물 뭐라고 말을 하려 손을 올리다 다시 내린다.


[그럼 하루카가 모르는 일반인1은 이만 가봐야지]

"자, 잠깐만요"

[……]
말을 못 들은 척 그냥 지나간다.
어, 잠깐. 이거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버리면 어쩌지.

 

"이제부터 알려주시면 되잖아요!! 잘 모르니까…"


역시 걱정할 건 아니었나.
다시 돌아서서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러다 그저 웃으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하루카는 내 손을 잡아 내릴려다, 더 강하게 잡은 채 가만히 있는다.

귀엽네. 물론 그 이상의 감정으로.

 

 

 

 

한 손엔 서류가방,
한 손엔 커피를 들고 가는 출근길.
그래, 평소와 같은 날이지.
나와 그녀만 빼고는 말이야.

 

"안녕하세요. 프로듀서씨…"

[오, 안녕 하루카. 근데 코토리씨는 어디 가셨어?]

"머리 아프다면서 옥상에 올라가셨어요…"

[푸흡…]

사실 어제 하루카와 이야기를 할 때
무음으로 설정해둔 핸드폰에 여러 차례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울 때 발견해선 답신을 보내봤는데, 새벽 즈음에 문자가 왔었지.


   「프로듀서씨이이이 저 너무 외로워요오오오오오」


괜찮습니다. 전 이제 외롭지 않거든요.
코토리씨. 그저께도 그렇고, 어제도 그렇고, 도대체 얼마나 마셔댄 겁니까.
이 문자를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도 안 가는구만.

 

 

 

탁상 위에 커피를 올려두고 급탕실로 향한다.
어제 서로 헤어지기 전, 하루카가 나에게 건넨 쿠키를 사무소에 보관해 두었다.
조용히 냉장고에서 꺼내 조금 덜어 그릇에 담는다.
오늘은 이걸 먹기 위해 아침도 건너뛰었다고.


[자 그럼,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 볼까!]
내 자리에 앉아 서류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전원버튼을 누른다.
부팅이 되는 것을 기다리다 쿠키를 집어 하나 먹는다.
적당하게 느껴지는 단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스케줄을 정리하고 있자니 이상하게 조용한 사무소가 신경 쓰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루카도 보이지 않고, 어딜간 거…아, 저기 있네.


소파에 뒤돌아 앉아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하루카의 모습.
들어온 후로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던가. 기억을 되짚어 봐도 떠오르는 일이 없다.


[하루카, 무슨 할 말 있어?]

"아뇨…그냥… 프로듀서씨는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응? 오늘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오늘 말고요! 어제…어제인데……"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다시 수줍게 앉는다.
시선을 나와 맞추지 못하고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다 뭔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붉어지면서 더 움츠러든다.


"그…어제…제 고, 고백 말이에요오!!"

[아 그거? 뭐 신경 써야 하는 일이었나…]
사실 그 이후에 조금은 신경 썼다. 지금이야 느낌도 감상평도 없지만.


"네에엣!?"

[난 지금이나 그때나 같은 생각이거든]

"그게 무슨 뜻이에요?"

[어린애들은 이런 거 몰라도 돼]

"읏, 이번 년만 지나가면 이제 그런 말 못하실 거에요!"

[그래,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느긋하게 진행할 테니까]

"우- 더욱 모르겠어요"


한 발짝 더 내딛기. 아직은 이르다.
알아챘으니까. 이대로라면 내가 좀 더 일찍 도착할 것 같지만.

 

 

 

 

다시 스케줄을 정리하다 또 무언가 신경 쓰인다.
아, 어제 USB에 조금 해뒀지. 안주머니에 넣어 뒀을 터인데.
여기에… 이게… 이거였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서 음악을 듣던 하루카에게 다가간다.


[참, 하루카. 여기 선물]

"판다 스트랩이네요? 프로듀서씨, 감사드려요"

[그렇고 보니 커피도 깜빡했네]

"이거 그 카페 상품이네요"


벌써 알아채다니. 하긴 뒷판에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로고를 못 볼 리가 없지.
경품이라서 싫어하는 기색은 안 보이니 다행이야.
나중엔 제대로 된 인형이라도 사줘야겠네. 한 사람 크기만 한 걸로 사줄까.

 

 

 

여전히 카라멜 마끼아또는 냄새만 맡아도 느끼하다.
다른 단 거는 먹기 좋던데 이것만 변종.
다시 마셔볼까 했던 컵을 내리고 왼손을 들어 한 모금 넘긴다. 역시 씁쓸한 게 좋지.
이상하게 약간의 달달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흐음…. 이거 원래 뚜껑 없는 상품이던가…]
왠지 모를 위화감에 컵을 유심히 둘러본다.
뚜껑이 없었다면 오늘 횡단보도에서 엎었을 터인데 말이다.


"아뇨. 좀 전에 제가 먹을 땐 있었어요"

[쿨럭… 잏, 이거 마셨던 거야?]
마시다가 놀라서 사레들릴 뻔했다.


"뭐…이젠 저도 신경 안 쓰게요"

[혹시 말이야…. 카라멜 먼저 마시고 이거 먹었어?]

"네. 쓴맛은 중화시켜도 쓰더라구요. 역시 무리에요! 무리!"


[크윽…!?]
컵의 입구를 자세히 보니, 내가 입을 댄 자리에 연한 황토색의 물방울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입술이 바짝 말라간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루카의 눈치를 보다 컵을 탁자에 올려두고 뒤돌아선다.
입안에서 맴도는 묘한 단맛에 혼란스러워진다.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 또 생각한다.

 

 

 

조금 진정되어 뒤돌아 보니, 하루카가 컵에 입을 대고 있다.
내가 당혹감에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그녀는 그저 웃는다.


[무, 무무무슨 짓이야, 하루카]

"아하하, 겨우 이런 일 가지고 그러세요"

[겨, 겨우라니…]
하루카가 이렇게 대담했었나.
아니면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모습인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뀐 것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오늘의 프로듀서씨는 저처럼 애 같네요"


다시는 애라고 놀리면 안 되겠다. 이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 불가.
담담한 척 아무런 말 없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래, 일이나 하자, 일.


"이젠 이보다 더할 텐데…"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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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두 달 만에 올려보는 글이네요.

원래 이렇게 길게 잡진 않았는데 애정이 과하다 보니 글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아무도 안 궁금 하겠지만, 중간에 나오는 곡은 笑って!와 さよならをありがとう입니다.

부분부분 가사가 적절해서 넣어봤어요.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곡입니다. 헉헉

 

어쨌든 하루카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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