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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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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8, 2014 09:01에 작성됨.


 촬영을 마치고 방송국 건물에서 나오자 이미 바깥은 검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 완연한 여름인지 해가 진 이후에도 약간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별로 쾌적하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에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려 할 때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프로듀서?”
 “수고했어. 별 문제 없었지?”

 갓길에 차를 대놓고 그 앞에 서서 손을 흔들던 사람은 프로듀서였다. 최근에는 나 말고도 다른 아이돌들을 관리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아졌는지 이제는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었지만 프로듀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내가 성장한 증거로 여기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일이 별로 없었나보네?”
 
 내 질문에 프로듀서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말도 마.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힘든가보네. 그런데 용케도 와줬네.”
 “어… 낮에 그렇게 일을 많이 하니까 밤에는 비더라고. 그래서 린한테 왔지.”
 
 솔직히 말하자면 의외였다. 간신히 난 시간에 쉰다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와줬다는 것에 감사하고 놀랐다.

 “그리고 린을 데려가고 싶었던 곳도 있고 말이야.”
 “에? 나를?”
 “조금 돌아가는 게 늦을 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 프로듀서가 가려는 데가 어디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프로듀서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준 적은 그다지 없었다. 아직 내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 전에는 나도 프로듀서도 그다지 바쁘지 않았기에 프로듀서가 소개해주는 곳으로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하곤 했지만 그것도 하지 못하게 된지 제법 된 일이었다.
 
 “그럼 타. 괜찮다고는 해도 서두르지 않으면 정말로 시간이 늦어질 테니까.”

 뒤쪽에 세워진 차를 프로듀서가 가리켰다. 먼저 운전석에 타는 프로듀서를 보며 조수석 쪽에 타는 게 좋을지 뒷자리에 타는 게 좋을지 생각하다가 조수석에 타기로 정했다. 흔치 않은 기회니까 소중히 하지 않으면.

 “어라, 차 새로 산거야?”
 
 타기 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예전의 차와는 달랐다. 조금 작긴 했지만 아기자기하고 캐주얼한 디자인이었다.

 “아, 새로 하나 샀지. 어때, 마음에 들어?”
 “그것보다 전에 있던 차는 어떻게 된 거야?”
 “그건 회사 차고 이건 내 차인 거지.”

 겉으로는 별 거 아닌 듯이 말하는 프로듀서였지만 의기양양해하는 게 나에게는 보였다. 오랫동안 봐 온 사이여서인지 이제는 상대의 작은 변화도 알아차리고 마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것보다’라는 말은 조금 충격인데…”
 “에, 아니 그런 뜻은 아니야. 깔끔하고 마음에 드는걸.”

 프로듀서의 새 차니까 내 마음에 드는 건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말인 걸까?

 “그래? 그럼 다행이네. 보람이 있는걸.”
 
 프로듀서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노리고서 하는 건지 자기도 모르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착각을 하게 되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그럼 출발할게.”

 프로듀서가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자 조그마한 차는 소리 없이 조용히 달려나갔다. 밴이나 버스 같은 건 큰 차여서 그런지 흔들림이 많았는데 이 차는 그런 게 전혀 없어서 편안했다.

 “어디로 가는지 이제는 말해 줄 수 있어?”
 “국립천문대.”
 
 분명 국립천문대라면 미타카 시에 있었던가. 그다지 먼 곳은 아니어서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천문대는 왜 가려는 거야?”
 “…모르고 있었구나?”
 “응? 뭘?”

 어리둥절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프로듀서는 후훗 하고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뭐야. 왜 웃는 건데.”
 “아니, 린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아서.”
 “……?”

 그 때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국립천문대에 도착하자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이 칠석… 그런 거였구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문대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탄자쿠가 잔뜩 걸려있는 대나무였다. 그제서야 오늘이 칠석이라는 걸 생각해냈다. 프로듀서의 말대로 요즘 정신없이 달려와서 그런지 칠석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런 날이니까 린이랑 별을 보러 오고 싶어서 말이지.”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어째서인지 나도 모르게 괜히 퉁명스럽게 말해버렸다. 여기까지 데려와줬는데 내 말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프로듀서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도 탄자쿠 쓸까?"
 “그래.”

 하얀 종이 위에 어떤 소원을 적어야할까. 정말로 원하는 바를 쓰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었고 옆에 프로듀서도 있으니까 무리.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옆을 슬쩍 보니 프로듀서는 이미 소원을 적어서 대나무 끝에 매달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뭐라고 적었어?”
 “너희들의 꿈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적었지.”

 살펴보니 프로듀서가 말한 대로 모두의 꿈, 그러니까 톱 아이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원이 적혀있었다.
 
 “린은 아직이야?”
 “아니, 다 됐어.”

 나도 톱 아이돌을 향해 계속 달려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소원을 적어 프로듀서가 매단 것 바로 옆에 매달았다.

 “나도 프로듀서와 같은 마음이니까.”
 “오오, 린이 불타올랐는걸.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고!”

 프로듀서는 그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프로듀서.”
 “나야말로.”

 평범한 악수보다 조금 더 길게 잡고 있던 손이 다시 떨어지고 잠시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이내 프로듀서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 그럼 이제 별을 보러 가자.”
 “그, 그래.”

 미묘한 거리를 두고 나와 프로듀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여기까지 와서 플라네타리움만 보고 간다는 건 아쉬우니까 직접 보러 갈까?”
 “그러네. 오늘은 날씨도 다행히 맑고.”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프로듀서는 윗층으로 향하지 않고 들어온 출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망원경으로 보려던 거 아니었어?”
 “더 좋은 데가 있거든.”

 다시 천문대 밖으로 나가는 프로듀서는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를 가로질러 나있는 길을 향해 걸었고 나는 뒤를 따라 걷는 모양새가 되었다.

 “용케도 이런 데를 알고 있네.”
 “어릴 적에 자주 왔었으니까.”

 어릴 적에 천문대에 드나드는 아이는 그다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름 멋져 보이기도 했다. 누구나 우주에 대한 동경은 있는 거니까.

 “뭐, 어릴 때도 아닌가. 플라네타리움이라던가 천체 망원경이라던가 하는 건 남자의 로망이니까 말이야.”
 
 자랑스럽게 말하는 프로듀서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살며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직도 어린아이네.”
 “오히려 어린아이는 천체관측 같은 건 하기 힘들지만 말이야.”

 요즘 아이들은 조금 더 단순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다. 만화라던가 게임이라던가 열중하고 있는 것 같고.

 “린은 요즘 어때? 힘들지는 않아?”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즐거워.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예전에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아가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나를 응원해주는 걸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처음 아이돌이 되었을 때에는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의심과 불안뿐이었다. 지금처럼 같이 정상을 노리는 많은 동료들도 없이 나와 비슷한 몇몇 뿐이었고 그들이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씩 포기할 때면 나도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아이돌 같은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게 나를 위한 일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해 왔었다. 지금도 나는 부족한 점이 많고 불안한 마음도 가득하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준 건 프로듀서였다.

 “프로듀서는 어때?”
 “음… 나도 보람을 느끼지. 예전에는 TV로만 보던 아이돌들을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니 어릴 적의 나는 생각도 못했었지. 모두와 함께 어떻게 하면 될지 생각하고 이끌어주고 하다보면 마치 여동생들의 오빠가 된 기분이야.”
 “카에데 씨 같은 경우에는 연상이니까 오빠라고 하기에는 조금 뭐하지 않아? 뭐,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동안 목적지에 도착한 건지 프로듀서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주 커다란 공터의 가장자리에는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었고 넓은 공터에는 그 자리를 비추는 별빛과 우리 둘 뿐이었다.

 “예쁘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절경이었다. 검은 밤하늘은 마치 보석을 박아놓은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수 천 개, 수 만 개의 별들로 가득했고 나와 프로듀서는 그저 하늘을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칠석의 하늘이라고 하면 역시 봐야할 건…”

 프로듀서가 가리키는 별은 굳이 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법 했다.

 “알타이르, 베가, 그리고 데네브겠지.”
 
 견우성 알타이르, 직녀성 베가, 그리고 둘을 이어주는 데네브. 여름의 대삼각형이라고 하는 별들이었다. 프로듀서의 손끝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밝은 세 별들이 보였다.

 “사실 망원경으로 본다고 해도 별로 다를 게 없으니까 차라리 이렇게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어.”
 “확실히 이쪽이 나은 것 같네.”
 
 칠석에 단 하루만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 사이에 펼쳐진 은하수에는 까마귀 대신에 별들이 둘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 같았다.

 “난 말이지, 예전에는 저 별로 떠나는 게 꿈이었어.”

 프로듀서는 한참을 별을 바라보더니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저 머나먼 세계로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고 싶었어. 그렇게 하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해서 해보고 싶었던 거야.”

 프로듀서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린은 예전의 생활이나 평범한 행복이 그립지는 않아?”
 “무슨 이야기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평범하게 연인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 그런 거 말이야. 아이돌이 된 이상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

 프로듀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잊어버린 칠석날처럼 그런 게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 아이돌의 길에 접어들고서 지금까지 뒤돌아보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여기까지 달려만 왔기 때문에 지금 이외의 생활은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글쎄 잘 모르겠는걸. 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에이, 정말로?”
 “연애 같은 건 생각도 해본 적 없고 말이야.”

 슬쩍 프로듀서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의 표정은 미묘했다. 무표정인 것도 아니고 실망한 것도 아니고 기뻐하는 것도 아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그 나이의 소녀라면 관심 있지 않아?”
 “아이돌이잖아. 보는 시선도 많고 오히려 찾아오는 사람은 전혀 없으니까.”

 좋아해주는 팬들은 제법 있고 그 팬들에게는 감사한 마음이지만 연애하고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라이브 같은 때에 ‘시부린! 결혼해줘!’ 같은걸 외치는 사람을 연애대상으로 봐야 하는 걸까?"
 “아니 그건 좀 아니라고 보는데.”

 내 장난 섞인 말에 프로듀서는 난감한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잘 모르겠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응? 린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아직은 말할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만 보아야 한다는 일이 아무리 가슴이 아프고 미어져도 아직은 말할 수 없다.

 “있다고 한 적도 없다는 것만 알아 둬.”
 “아이돌은 이래저래 민감하니까 조심해야한다고.”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말할 수가 없었다. 처음 그 날부터 항상 뒤쫓아온 그의 모습을 보며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에서 프로듀서는 단순한 프로듀서 이상의 존재가 되어있었다.

 “프로듀서, 앞으로도 같이 가 줄 거지? 나는 계속 달려갈 테니까.”
 “물론이지.”

 앞으로도 곁에 있어 주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하는 나는 언제쯤이면 내 마음을 숨기지 않고 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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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날짜는 지나가버렸지만 칠석을 소재로 네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으며 슥슥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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