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미키] 호시이 자매의 가정방문 -하-

댓글: 2 / 조회: 2694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10-14, 2012 22:12에 작성됨.

   분침이 오전 11시 반을 지나갔다. 째깍째깍 시계소리는 투박하게 울렸다. 프로듀서는 차마 정면을 보지 못하고 지금 방안에서 소리 내는 몇 개 안되는 물건 중 하나인 애꿎은 시계를 바라봤다.
   프로듀서의 무릎이 찌르르 아파왔다. 프로듀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다만 다른 곳엔 시선도 주지 않고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프로듀서만을 노려보는 여자로부터 뿜어 나오는 기세는 프로듀서를 그렇게 만들었다.
   미키와 함께 아침을 먹은 테이블을 가운데로, 프로듀서와 여자는 대치하며 앉은 상태였다.
   여자는 팔짱을 떡하니 끼며 편하게 앉아있었다. 무릎도 꿇은 채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인 프로듀서와는 전혀 달랐다.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프로듀서는 텅 빈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했다. 연하의 여자를 상대로 이렇게 저자세로 나가는 건 굴욕적이었지만, 방금 전에 일어난 상황이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으니.
   “……그러니까, 미키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아침밥 만들고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그랬다는 건가요? 아까는 앞치마 벗겨주려 했던 거고?”
   프로듀서는 여자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답답했던 대치가 풀릴 기미가 보였다.
   “벗기려는 건 어쨌든 맞네요. 이 변태.”
   그러나 돌아오는 건 경멸이 듬뿍 담긴 여자의 시선. 프로듀서는 억울해 미쳐버릴 심정이었다.
   “흥, 아무튼 사정은 대강 알았어요. 어쩐지 요즘 미키가 계속 요리 알려달라고 성화대더니.”
   여자는 팔짱을 슬며시 풀었다.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듯한 모습에 프로듀서도 고개를 살짝 들어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정말 미키와 쏙 닮아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자매란 게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미키가 금발로 염색하지 않았더라면 더욱 닮았으리라. 다만 둘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미키가 느긋하고 늘어지는 분위기라면, 여자는 똑 부러지고 야무진 인상이었다. 눈빛에도 항상 힘이 담겨있다.
   “저기…그런데 언니 분은 여기는 어떻게 알고…….”
   프로듀서는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는 프로듀서의 그런 태도가 영 못마땅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나오에요. 호시이 나오. 그리고 당신 집 주소는 우리 가족이라면 누구나 다 알아요.”
   “네?”
   “미키가 계속 떠들어댔으니까요. ‘이번 주말엔 허니 집에 놀러갈 거야. 미키, 까먹으면 안 되니까 달력에 적어놔야지!’라면서 집안 달력 싹 다에 주소를 적어놨어요.”
   프로듀서는 머리가 아파왔다. 미키네 가족 전부가 자신의 집 주소를 안다니. 거기다 나오가 미키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서 그런지, 집안에서 미키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즉, 집에서도 프로듀서를 향한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소리다. 심지어 미키의 부모님 앞에서도. 중학생 딸자식이 웬 늙다리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걸 보는 미키의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자 프로듀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후우……허니이…거긴 안 되는 거야…….”
   달짝지근하고 작은 신음과 숨소리가 짙은 미키의 잠꼬대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무거운 침묵을 박살냈다. 타이밍이 너무 좋아서 프로듀서는 차마 나오를 보기가 두려웠다.
   “헤에, 거기가 어디에요?”
   싸늘하다 못해 비수 같은 나오의 한마디가 프로듀서를 향해 툭 날아왔다.
   “그,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저건 그냥 잠꼬대에요!”
   프로듀서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더 이상 저자세였다간 완전히 나오의 기세에 꺾여버릴 거 같아, 이젠 나서야했다.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했어요. 미키가 하도 허니, 허니거려서 누굴까 진짜 궁금했는데 이런 사람이었군요.”
   “이, 이런 사람이라뇨. 전 그냥 멀쩡한 프로듀서입니다. 미키가 저러는 건 다 미키 혼자서 그러는 거지 전 아무 것도…….”
   “미키가 저렇게 누구를 좋아하는 건 처음 봐요. 분명 당신이 어떻게 미키를 꼬셔냈겠죠. 수단도 좋아라. 어떻게 중학생 여자아이를.”
   나오는 경멸 섞인 눈빛으로 프로듀서의 위아래를 훑었다. 프로듀서가 뭐라 변명해도 미키 언니로서 나오에겐 감히 동생을 현혹한 최저인 사람일 뿐이었다.
   따박따박 대답하는 나오의 기세에 처음부터 짓눌린 프로듀서는 나오의 매서운 시선을 마주하는 게 고작이었다.
   프로듀서는 흐늘흐늘한 미키와는 달리 당돌한 나오를 대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미키와 똑 닮은 외양은 낯익었지만 화난 미키 이상의 위압감은 처음이었다.
   이젠 뭐라 변명조차 하지 못하는 프로듀서를 나오는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그래서, 미키는 어쩔 건가요.”
   “네?”
   “시치미 떼지 마요. 미키를 진지하게 어떻게 할 건지 묻는 거예요. 부모님들은 모두 ‘미키가 좋으면 좋은 거지’라고 허허 웃고 넘기시지만, 전 안 그래요. 하나 뿐인 동생이 놈팡이에 홀려있는데.”
   “노, 놈팡이….”
   “놈팡이 맞죠. 나이 차이가 대체 몇이에요? 9살? 10살? 11살?”
   나오는 신랄하게 프로듀서를 조여 왔다. 나오는 미키와 프로듀서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아예 기정사실로 삼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억울했다.
   “정말로 미키하고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호시이 씨가 착각하시는 거라고요.”
   “착각? 아무 사이가 아니라면 미키가 저럴 리가 없잖아요! 매일매일 저한테 ‘어제는 허니가 머리 쓰다듬어 준 거야!’, ‘허니가 미키 귀엽다고 해줬어!’ 등등 허니, 허니, 허니라고 얼마나 자랑을 늘어놓는데요!”
   나오는 울분을 담아 버럭 소리 질렀다. 반응의 정도가 더욱 격해졌다. 프로듀서는 순간 지뢰를 밟았음을 직감했다. 아끼는 여동생을 나이 많은 남자가 채간 상황에 분노하는 언니로 보여 프로듀서는 숨을 죽였다.
   그런데 나오의 분노는 뭔가 이상했다.
   “저도 남자 친구가 없는데! 중학생인 동생이 벌써부터! 으으으……!”
   “남자친구…?”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나오를 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프로듀서는 무심코 그 단어를 내뱉었다.
   그게 진정한 지뢰였다. 나오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로부터 이글이글 불길이 타올랐다.
   “왜요! 그래요! 저 남자친구 없어요! 남자친구 없는 연도 = 나이라구요! 그런데 저보다 한창 어린 미키가 벌써 남자친구라니! 난 절대 인정 못해!”
   나오는 앉은 자리서 상체를 일으켜 프로듀서에게 삿대질했다. 얼굴을 향해 날카로운 창 같은 기세를 뿜는 나오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프로듀서는 몸을 움찔하며 뒤로 뺐다.
   프로듀서는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그, 그러니까 저는 미키랑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아잉……너무 강한 거야…허니이이…….”
   프로듀서는 진심으로 미키가 자고 있는지 의심했다. 프로듀서는 떨리는 심정으로 나오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은 테이블 위에서 마주했다.
   “…….”
   “…….”
   빠직, 나오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를 프로듀서는 똑똑히 들었다.
   “이 도둑놈아! 내 동생한테 무슨 짓한 거야!”
   나오는 테이블 위로 몸을 날렸다. 작은 테이블이지만 나오의 몸이 올라가긴 충분했다. 나오는 그 상태로 손을 쭉 뻗어 프로듀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켁!”
   “나도 아직 해본 적 없는데! 이 변태! 로리콘!”
   꾸우욱 나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프로듀서는 순식간에 달려든 나오에게 그대로 붙잡혀버렸다. 상대가 여자라 완력을 쓰지도 못해 프로듀서는 자신의 멱살을 쥔 나오의 팔만 가볍게 붙잡았다.
   “크윽, 그, 그게 아니라…….”
   변명을 늘어놓으려 해도 나오의 상태는 이미 폭주라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오가 올라탄 테이블의 한쪽 다리가 끼익 기우는 게 프로듀서의 눈에 들어왔다.
   “자, 잠깐! 위험……!”   프로듀서가 입을 떼자마자 나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테이블의 한쪽 다리가 완전히 꺾였다. 프로듀서와 가까운 쪽 다리가 무너지자, 테이블 위의 나오는 프로듀서 쪽으로 굴렀다.
   “꺄악!”
   나오는 가느다란 비명과 함께 앞으로 떨어졌다. 그곳엔 당황한 표정인 프로듀서가 있다.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쭉 미끄러진 나오는 얼굴부터 프로듀서의 품에 부딪혔다. 프로듀서는 본의 아니게 나오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으으…….”
   나오는 충격에 신음을 흘렸다. 부드럽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의 무언가에 나오는 얼굴을 묻었다. 기분 좋은 따스함이 무언가와 맞닿은 뺨으로부터 전해왔다. 처음 맡아보는 낯선 사람의 체향이 풍겨온다.
   순간 나오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싫지 않은 느낌은 분명했다. 나오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괜찮아요?”
   “읏……!”
   나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프로듀서의 얼굴이었다. 바로 코앞에 위치한 프로듀서의 모습에 나오는 움찔 몸을 떨었다. 나오는 일어나려 손에 닿는 걸 집으니 그건 프로듀서의 옷이었다.
   남자의 품에 안겨있다.
   처음 직면하는 사태에 나오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럽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다. 그렇지만 나오는 이렇게 변해버린 얼굴을 프로듀서에게 보여주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오는 프로듀서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로 경직했다. 프로듀서 역시 자신의 위에 올라버린 나오를 힘으로 밀어내기도 뭐해서 곤란했다.
   “으읏,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는 거야!”
   바로 그때, 침대 위에서 자던 미키가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미키는 큰 소리가 난 근원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아직 잠기운인 남은 미키의 눈에 프로듀서와 나오가 한 덩어리로 엉겨있는 게 보였다.
   미키의 눈에서 잠기운이 싹 사라졌다.
   “허니랑……나오 언니?”
   두 사람은 미키의 목소리를 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침대 위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미키의 시선.
   “미, 미키?”
   “뭐하는 거야?”
   싸늘한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오는 몸을 황급히 프로듀서로부터 떼려 했다. 그러나 몸이 꼬여 미끄러지는 바람에 오히려 다시 품에 안긴 꼴이 되었다.
   “이, 이건……그, 그래! 실수인거야!”
   나오는 프로듀서의 몸에 착 붙은 채로 변명했다. 왠지 말투도 미키 말투다. 그러나 변명은 하나도 미키에게 먹히지 않았다.
   “우우, 나오 언니! 허니는 미키 꺼인거야!”
   미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 위로 몸을 던졌다. 나오는 바로 몸을 옆으로 피했지만, 그 아래 있던 프로듀서는 피할 새도 없이 미키를 몸으로 받아야했다.
   “으겍!”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이 프로듀서의 얼굴을 짓눌렀다. 50킬로도 되지 않아 미키는 가벼웠지만 그래도 충격은 충격이었다.
   결국 프로듀서가 미키에 깔리는 걸로 소란은 일단락되었다.

   * * * * * * * * *

   “다행이야. 그러니깐 나오 언니는 허니 안 노리는 거지?”
   “다, 당연하지! 내가 왜 이런 남자를…….”
   미키와 나오는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프로듀서는 그 모습을 반대편에서 지켜보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미키의 폭주는 나오와 프로듀서가 필사적으로 해명한 끝에 풀어졌다. 무너진 테이블도 프로듀서가 다시 다리를 펴서 놓았다. 미키가 일어나 떠드는 것만 빼면 처음에 나오가 들이닥친 상황과 같았다.
   미키는 나오의 대답을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뭐, 나오 언니가 노려도 허니는 가슴 큰 게 취향이니 걱정 없는 거야. 미키가 언니보다 가슴 크니깐.”
   미키는 나오의 가슴팍을 쳐다보더니 히죽 웃었다. 여동생의 무시어린 시선에 나오는 바로 발끈했다.
   “미키가 이상한 거야! 그리고 나 정도면 충분히 큰 거라고!”
   나오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들어보면서 대답했다. 평균 이상인 가슴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 자극적인 모습에 프로듀서는 얼굴을 붉히며 바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인 프로듀서가 있는데도 나오의 태도는 당당했다.
   미키는 나오가 내보인 가슴을 힐끔 보더니 자신의 가슴을 쭉 피며 코웃음을 쳤다. 프로듀서는 또 고개를 돌렸다.
   “미키, 패배자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 거야.”
   “크윽! 이게 진짜!”
   결국 자매는 아웅다웅 다투기 시작했다. 나오가 뭐라 발끈하면 미키는 유들유들한 태도로 슬쩍 빠져나가 버렸다. 그 모습에 나오는 더 화를 냈다. 프로듀서는 호시이 자매의 모습을 지켜보며 평소에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대강 파악했다.
   그렇게 시답잖은 일로 말다툼하다가, 미키가 문득 나오에게 질문했다.
   “근데 나오 언니는 여긴 웬일이야? 허니랑 단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걸 깨려고 왔다!, 가 아니라 미키 네가 집 음식 재료를 모두 싸갔잖아! 덕분에 아침도 굶었어!”
   나오는 텅 빈 배를 통통 두드리며 버럭 소리 질렀다.
   그제야 프로듀서는 미키가 들고 온 봉투가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이해했다. 고작 주먹밥 몇 개 만드는 것치고는 재료가 너무 많았다. 지금도 남은 재료들이 수북이 부엌 한편에 쌓여있다.
   “그거야 허니에게 요리 잔뜩잔뜩 해주고 싶었는걸.”
   “가족은, 가족들은 생각 안 해?!”
   미키의 당당한 태도는 듣고 있는 프로듀서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어찌되었든 프로듀서 때문에 나오를 포함한 호시이 가에 피해를 입혔으니.
   “언닌 요리 잘해서 괜찮은 거야. 엄마랑 아빠는 언니 요리 먹으면 되고.”
   “재료가 없는 데 요리를 어떻게 해!”
   다시 버럭. 나오는 미키의 반응에 일일이 버럭 소리쳤다. 그만큼 나오는 분하고 답답했다. 위압적인 나오의 태도에도 미키는 잘 모르겠다는 듯 평화로웠다.
   완전히 기가 눌린 프로듀서와는 달리, 미키는 쌩쌩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는 프로듀서가 나오를 안쓰럽게 생각할 정도로.
   아무리 혼을 내도 태도에 변함이 없는 미키를 보며, 결국 나오가 먼저 백기를 흔들었다. 나오는 텅 빈 배를 움켜쥐며 무너졌다.
   “으……소리 지르니까 더 배고파……. 맞다, 미키 너 요리한 거 남아있어?”
   “응! 주먹밥 몇 개 남아있어. 미키가 가져다줄게!”
   미키는 폴짝 일어나 총총 부엌으로 걸어갔다. 이제 다시 프로듀서와 나오는 단 둘이 남았다.
   허기가 져 바닥을 바라보던 나오는 고개를 쓱 들어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던 프로듀서를 노려봤다. 날카로운 시선에 프로듀서는 몸을 움찔했다.
   나오는 프로듀서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움직였다.
   ‘이. 변. 태.’
   나오는 소리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렸지만, 프로듀서는 나오가 뭐라고 했는지 똑똑히 알아들었다. 나오는 흥 콧소리를 내곤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단단히 나오에게 미움 받은 프로듀서는 무척 난처했다.
   “나오 언니, 여기 주먹밥이야!”
   마침 미키가 남은 주먹밥이 담긴 그릇을 들고 와 프로듀서는 안도했다. 미키는 테이블 위에 그릇을 놓았다.
   “어디 보자.”
   나오는 손을 뻗어 가장 앞에 있는 주먹밥을 집었다. 프로듀서는 미키 주먹밥의 강렬한 맛을 떠올리곤 나오를 말리려했으나 이미 나오가 주먹밥을 입에 넣은 뒤였다.
   새하얀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물자, 나오의 표정이 급변했다.
   “윽, 이거 맛이 왜 이래?”
   “언니, 맛 이상해?”
   “완전 짜! 다른 건……으엑, 달아!”
   나오는 먹은 주먹밥을 퉤퉤 뱉었다. 한껏 찡그려진 나오의 표정을 보자 왠지 프로듀서는 속이 시원했다.
   “미키, 너 대체 주먹밥을 어떻게 만든 거야?”
   “그거야 물론 언니가 알려준 대로 만든 거야. 이상하네, 허니는 맛있게 먹어줬는데.”
   미키는 나오와 프로듀서의 상반된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에 나오는 프로듀서를 조금이나마 다시 봤다. 두 사람이 먹은 미키의 주먹밥 맛이 다를 리가 없으니 프로듀서가 미키를 생각해서 꾸역꾸역 먹은 거라고 나오는 생각했다.
   ‘보기보다 착한 구석도 있네.’
   나오의 속에서 프로듀서의 평판이 조금 올라갔지만, 프로듀서는 그걸 알 턱이 없었다. 프로듀서는 그저 시계를 바라보며 빨리 시간이 지나 이 자매가 집을 떠나기를 빌었다.
   그런 프로듀서에게 나오가 물었다.
   “저기, 잠깐 부엌 써도 돼요?”
   “부엌이요?”
   “미키가 만든 주먹밥은 도저히 못 먹겠으니까, 직접 뭐라도 만들어 먹어야죠. 어차피 재료도 다 있겠다.”
   의외의 제안에 프로듀서의 눈동자가 커졌다. 프로듀서는 즉답했다.
   “물론이죠! 부디 요리 해주세요!”
   아침밥을 미키의 끔찍한 주먹밥으로 시작한 프로듀서에게 나오의 제안은 한줄기 광명이었다. 프로듀서의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도저히 음식이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어서, 밥을 안 먹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프로듀서의 무척이나 적극적인 반응에 오히려 나오가 당황했다. 나오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프로듀서의 모습을 처음 봤다.
   ‘뭐, 뭐야. 그렇게 내 요리가 먹고 싶은 거야?’
   나오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자신의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남자는 아버지 빼고 프로듀서가 처음이었다.
   “앗, 나오 언니 요리하게? 미키도 도울래!”
   “아냐!” “괜찮아!”
   미키의 말에 프로듀서와 나오는 무의식적으로 동시에 대답했다. 말을 맞춘 것처럼 두 사람의 대답은 딱 맞아떨어졌다.
   “미키 요리 안 해도 괜찮아?”
   “괜찮고말고. 미키는 쉬고 있어, 이 언니가 다 해줄게!”
   “그래, 호시이 씨 말이 맞아. 미키는 여기서 나랑 같이 쉬자.”
   두 사람은 힘을 모아 미키를 달랬다. 만약 미키가 요리를 하게 되면 아무리 나오와 함께라도 어떤 음식이 탄생할지 모른다.
   “허니가 놀아준다면야 그렇게 할래!”
   미키는 두 사람이 어떤 심정인지 전혀 모른 채 그냥 프로듀서가 같이 놀아주는 게 기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나오는 속으로 안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쉬고 있어. 금방 요리해올게.”
   “응!”
   미키의 상쾌한 대답을 뒤로하며, 부엌으로 떠나는 나오는 가면서 프로듀서에게 다시 한 번 눈빛을 보냈다.
   허튼 짓 하지 말라는 경고의 시선. 전보다는 많이 경계가 사라졌지만 그래도 프로듀서에겐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 * * * * * * * *

   탁탁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고기를 볶는 소리가 부엌을 가득 메운다. 냄비 안의 고소한 된장국의 냄새가 부엌에서 풍겨왔다. 앞치마를 맨 나오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오의 움직임은 미키와 닮은 듯하면서도 보다 정교했다. 완벽하게 짜인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듯 나오의 요리 과정은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갔다.
   미키와 프로듀서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나오의 요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특히 프로듀서는 온 정신이 나오 쪽에 쏠려있었다. 맛이 없어도 좋으니 제발 먹어도 괜찮은 음식이기를.
   음식의 냄새가 짙어지고 다른 소리가 사라지자, 나오는 그릇에 요리를 담고 국그릇엔 된장국을 펐다. 이윽고 큰 쟁반에 요리들을 담아 나오는 테이블로 가져왔다.
   프로듀서와 미키도 나오를 도와 음식을 차렸다. 주먹밥 딸랑 하나였던 미키의 요리와는 다르게, 나오는 간단한 반찬부터 해서 따뜻한 된장국까지 있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나오의 메인 음식은 바로.
   “주먹밥?”
   “네, 주먹밥이에요.”
   테이블 가운데 수북이 쌓인 주먹밥을 놀랜 눈으로 보는 프로듀서에게 나오는 뭐 이상하냐는 어투로 대답했다.
   프로듀서는 선뜩 주먹밥에 손을 가져가지 못했다. 미키의 주먹밥을 그토록 심한 경험을 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와, 언니의 주먹밥 짱 맛있는데! 미키, 엄청 행복한 거야!”
   “후후, 많이 먹어. 주먹밥 안에도 이것저것 많이 넣었으니까.”
   “응! 미키는 언니 정말 좋은 거야!”
   미키는 나오의 주먹밥을 앞에 두고 정말 눈부시게 웃었다. 그 웃음에 나오도 밝게 웃었다. 화기애애한 자매의 모습은 훈훈했다. 미키는 양손에 주먹밥을 한 개씩 들더니 와구와구 먹었다.
   반면 프로듀서는 나오의 주먹밥을 가만히 바라만 봤다. 주먹밥의 외관은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모양도 전부 보기 좋은 원 형태인데다 크기도 일정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을 보고 있으니 프로듀서는 침이 꿀꺽 넘어갔다.
   “안 먹고 뭐해요?”
   주먹밥 한 개를 쥐고 먹던 나오가 프로듀서가 가만히 있는 걸 보고 퉁명스럽게 물어왔다.
   “아, 그게…….”
   “남자가 답답하게. 독 같은 거 안 넣었으니 어서 먹어요. 자자.”
   쭈뼛쭈뼛하는 프로듀서의 손에 나오는 억지로 주먹밥을 쥐어줬다. 주먹밥을 쥔 프로듀서는 이제 먹을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는 나오를 믿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주먹밥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프로듀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맛있어!”
   프로듀서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 밥알. 주먹밥 사이사이에 박힌 야채는 아삭거리는 식감을 냈다. 달콤한 소스로 조린 볶은 고기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했다. 마무리는 식욕을 돋우는 적당한 짠맛. 프로듀서는 순식간에 주먹밥 하나를 먹어치웠다.
   “이거 진짜 맛있어! 호시이 씨는 요리 잘하는 구나!”
   프로듀서는 나오를 향해 마음 깊이 우러난 칭찬을 보냈다. 이게 요리다. 음식이다. 프로듀서는 미키의 지옥 같던 주먹밥에 고통 받던 혀가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주먹밥을 하나 또 들면서, 프로듀서는 이번엔 된장국을 마셨다.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혀를 감싼다. 프로듀서는 눈물이 다 날듯했다.
   “국도 맛있어! 진짜진짜 맛있다!”
   프로듀서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음식을 이렇게 칭찬하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아, 알겠으니깐 어서 먹기나 해요.”
   나오는 노골적인 프로듀서의 칭찬에 고개를 돌렸다. 반찬을 집어 먹으려던 나오는 반찬 그릇이 아니라 자신의 된장국을 자신의 젓가락으로 쿡 찔렀다.
   세 사람은 나오의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미키야 주먹밥이면 모든지 좋으니 행복했지만, 프로듀서는 오늘 처음으로 먹는 제대로 된 음식에 속으로 계속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나오도 허기가 진 상태여서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이윽고 그릇이 전부 텅 비워지고, 행복한 식사가 끝이 났다.
   “정말 잘 먹었어. 휴우.”
   “미키도 잘 먹은 거야!”
   프로듀서는 포만감에 함빡 젖었다. 미키도 침대에 등을 기대며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행복하게 웃었다. 나오도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고, 미키 옆에 사뿐히 앉았다.
   때마침 창문을 통해 정오의 따스한 햇볕이 들어왔다. 아직 공기에 남은 음식의 향기는 아직도 식사 중인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세 사람은 바닥에 앉아 느긋이 쉬었다. 온화한 분위기가 원룸을 가득 메웠다.
   “호시이 씨도 주먹밥 좋아해?”
   평화로운 분위기를 음미하던 프로듀서가 문득 나오에게 질문했다. 프로듀서는 어느새 나오에게 말을 놓고 있었지만, 말하는 프로듀서도 듣는 나오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하죠. 주먹밥의 새하얀 몸통은 야채, 고기 뭐든지 들어가는 보물 상자라고요. 또 먹기도 편해서 들고 다니기도 좋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영양소를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는 완전식품이라고요!”
   “응, 미키도 주먹밥 엄청 좋아!”
   나오가 눈을 빛내며 주먹밥 예찬을 늘어놓자, 미키도 박수를 치며 동조했다. 과연 호시이 자매. 둘은 생김새만 닮은 게 아니라 식성도 비슷했다. 미키가 왜 그렇게 주먹밥을 좋아했는지 프로듀서는 조금 이해했다.
   주먹밥이란 화제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난 뒤, 다시 원룸은 느긋한 공기가 흘렀다. 그때 프로듀서에게 익숙한 소리가 났다.
   “…아후.”
   “……아후.”
   쏙 닮은 하품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프로듀서가 호시이 자매를 보자 둘은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 맺힌 눈을 비비고, 입을 우물거렸다.
   “밥 먹으니 역시 졸리네……역시 아침부터 무리했나.”
   “미키도 졸린 거야……아후우….”
   “미키도? 나도 그런데. 좀 잘까?”
   나오는 옆에 붙어있는 미키에게 물었다. 프로듀서의 눈엔 나오나 미키 모두 무척 나른해보였다.
   “응, 미키는 나오 언니랑 자고 싶은 거야.”
   미키의 말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타박타박 걸으며 프로듀서의 텅 빈 침대로 다가갔다. 흐느적거리는 자매를 보자 프로듀서는 멍한 정신이 확 깼다.
   “잠깐, 둘 다 자려고?”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 간다는 건 거기서 자겠다는 거다. 빨리 호시이 자매가 나갔으면 하는 프로듀서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나오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프로듀서를 내려다봤다.
   “좀 잘게요. 요리까지 해줬으니 괜찮잖아요……아후…….”
   “맞아. 주먹밥 잔뜩 먹어서 미키 엄청 졸린 거야….”
   비틀비틀 침대의 안쪽으로 기어들어가는 미키는 이미 반쯤 졸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말릴 틈도 없이 미키는 쭉 누워버리더니 푹 잠에 빠졌다.
   나오도 그 옆, 즉 침대 바깥쪽에 누웠다. 눈을 감기 전에 나오는 당황한 표정의 프로듀서를 노려봤다.
   “허튼 짓하면 손 부러트릴 거예요…….”
   졸려 흐느적거리는 목소리로 나오는 프로듀서에게 경고했다. 그리곤 눈을 딱 감고 미키 쪽으로 몸을 돌려 자버렸다.
   이윽고 프로듀서의 침대 위에선 새액새액 호시이 자매의 숨소리만 들렸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잠들어버린 자매를 보며 프로듀서는 황당했다.
   ‘역시 자매는 자매네.’
   하품소리에 이어 순식간에 잠드는 것도 똑같다.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든 두 사람을 보았다.
   비주얼이 뛰어난 걸로 유명한 미키와 무척 닮은 나오가 나란히 누워 자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프로듀서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프로듀서가 시계를 보니 시간은 열두 시 반쯤이었다. 다행히 오늘 당장 사무소에서 처리해야할 일은 없었다. 담당 아이돌의 스케줄도 비어있다.
   ‘내일 일 준비도 하긴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하는 게 미리 해치우는 게 프로듀서의 속이 편했다. 그렇지만 기분 좋게 잠든 두 사람을 깨우기도 그렇고, 이 둘을 놔두고 집을 떠나기도 그랬다.
   프로듀서는 잠든 두 사람을 방해하긴 싫었기에 일도, TV 시청도, 컴퓨터도 하지 못했다. 프로듀서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멍하니 앉아있던 프로듀서도 입을 벌리며 하품을 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따뜻해 기분이 좋았다. 적당히 소화된 느낌이 도는 배도 좋았다. 프로듀서의 눈을 끔뻑 감았다 떴다.
   ‘안되겠다. 나도 자야지.’
   할 일이 없으니 졸음만 밀려왔다. 미키 때문에 방해받아 부족한 잠기운이 스르륵 되살아났다. 기분 좋게 잠든 두 사람을 보던 프로듀서도 결국 바닥에 자리 잡아 쿠션 하나를 접어 베개로 쓰고, 완전히 드러누웠다.
   몰려오는 수마에 프로듀서는 금방 떨어졌다. 얼마 안가 프로듀서는 쿨쿨 소리를 내며 잠에 곯아떨어졌다.
   프로듀서마저 잠에 빠지자 원룸은 세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 푸근한 햇빛이 세 사람을 감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쿵, 하고 작은 소리가 조용하던 원룸을 깨웠다.
   “으음…….”
   깊이 잠들었던 프로듀서는 왠지 모르게 더워 몸을 뒤척였다. 햇빛이 강해졌긴 했지만 이불도 덮지 않은 것치고는 더웠다. 따뜻한 물건이 바로 곁에 있는 느낌. 프로듀서는 잠결에 그것으로부터 떨어지려했다.
   물컹, 뒤척이던 프로듀서의 팔꿈치에 무언가 부드러운 물체가 닿았다. 따스한 온기와 탄력이 전해지는 물체. 프로듀서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
   프로듀서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나오였다. 잠에 푹 빠진 나오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며 프로듀서의 바로 옆에서 자고 있었다. 코가 스칠 거 같은 거리에 나오가 있자 프로듀서는 몸을 뒤로 빼려했다.
   “음냐, 음냐….”
   그런데 나오가 손을 뻗어 프로듀서의 몸 위에 올렸다. 잠꼬대다. 꿈에 젖은 나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프로듀서의 옷을 꾸욱 잡아버렸다.
   이 상태서 몸을 뺐다간 분명 나오가 깨리라. 프로듀서는 그대로 경직했다.
   ‘왜 호시이 씨가 여기 있어?!’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며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그러자 아까 들린 쿵 소리가 떠올랐다. 침대 바깥쪽에 있던 나오가 자다가 굴러 떨어져,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빨리 떨어져야 되는데. 이거 또 미키가 봤다간…….’
   미키가 폭발하리라. 그리고 나오도 눈을 떠 상황을 파악하곤 폭발하리라. 프로듀서는 끔찍한 상상에 몸서리를 쳤다.
   ‘어쩌지, 어쩌지…….’
   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프로듀서는 고민에 빠졌다. 프로듀서는 우선 몸을 천천히 움직여 나오로부터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자 나오가 다시 움직였다.
   “헤헤, 곰돌이 좋은 거야….”
   꾸우욱. 이번엔 나오는 아예 프로듀서를 끌어안아버렸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나오의 감촉에 프로듀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부드러움, 따스함, 보드라움, 그리고 아찔한 나오의 체향. 나오는 미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프로듀서는 더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젠 빠져나갈 기력도 잃어 프로듀서는 그대로 나오에게 몸을 맡겼다. 나오가 이 상태로 계속 있지는 않을거라 믿어 프로듀서는 때를 기다리려 했다.
   “으음……어라…?”
   그때 침대 위에서 잠에 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오 언니가 없는 거야…어디 있어…?”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키가 깨어났다.
   침대 위에서 일어난 미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윽고 침대 옆으로 고개를 쏙 내밀어 봤다.
   그리고 나오와 프로듀서의 상황을 목격했다.
   “허니랑 나오 언니가 같이 자고 있네….”
   미키의 느긋한 목소리에 프로듀서는 눈을 꾹 감아 잠든 척했다.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프로듀서는 모든 걸 포기했다.
   “우음…미키도 허니랑 같이 자고 싶은 거야….”
   미키는 프로듀서의 예상과 달리, 잠에 아직도 취해서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더니 프로듀서의 빈 옆 자리로 다가가 누워버렸다.
   “허니, 잘 자.”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미키는 나오처럼 프로듀서를 끌어안았다. 눈을 감은 프로듀서는 갑자기 느껴지는 새로운 감촉에 깜짝 놀랐다.
   나오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촉. 그래도 아찔한 건 똑같았다. 나오에 이어 미키에게도 끌어안아진 프로듀서는 미칠 거 같았다.
   왼쪽에는 나오가, 오른쪽에는 미키가 있다. 호시이 자매 사이에서 끼어버린 프로듀서는 괴로운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이젠 잠도 제대로 못자는 구나. 신이시여, 왜 제게 이런 고난을…!’
   프로듀서는 속으로 슬프게, 구슬프게 울었다. 프로듀서의 평화로운 일요일은 호시이 자매에 의해 그렇게 박살나버렸다.
   그리고 잠에서 깬 나오에 의해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과 나오와 프로듀서가 함께 자는 모습을 똑바로 인식한 미키의 질투가 폭발한 건, 이 뒤의 일이었다.



   나오 성격을 좀 왈가닥으로 지었는데, 괜찮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