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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천 엔 포장마차 입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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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4, 2014 02:12에 작성됨.

 


태양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푸르디 푸른 바다에서 몰려온 파도는 모래사장에 닿아 하얗게 부숴지곤 다시 돌아간다.


해변의 별장, 그 중 한 방의 발코니에 비스듬히 누워 차갑게 물방울이 맺힌 음료수 잔을 만지작거리곤 멍하니 바깥 풍경을 보며 여유를 만끽한다.


이 넓은 별장에 지금은 나 혼자.


"촬영 때문이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어디까지나 촬영이었다.


아카바네 씨 말로는 이 해변을 빌릴 수 있었던것도 촬영측의 사람들이 힘을 써줬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덕분에 나를 제외한, 촬영 모델인 아이돌들은 말할것도 없고 사무원측 사람들도 보조를 위해 전부 나가있는 상태다.


나야 사무소 직원도 아니고 일반이이니 촬영장에는 들어가지 않는것이 좋을것이라 판단해 이렇게 혼자 남은것이고.


"미키가 떼를 쓰는 바람에 조금 애먹긴 했지만."


계기는 분명 어제 있었던 그 장난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구조 때문일테지만 미키가 너무 달라붙는 기색이라 난감하다.


오늘도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예의 허니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안겨왔다가 아키즈키 씨에게 머리를 쥐어박히곤 한참이나 설교를 들었다.


아이돌인 입장에서 나같은 성인 남성에게 달라붙는게 옳지못한 행동이니 당연한 일일 테지만 미키는 여전히 그만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엔 설득과 훈계를 반복하던 아키즈키 씨와 아카바네 씨도 나중엔 반쯤 포기한 상태로 하다못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큼은 하지 말아달라고 확답은 받긴 했지만……그럼 다른사람이 없는 곳에선 변함이 없다는거잖아.


실제로 그 후 촬영 전까지 미키는 해냈다라는 듯한 표정으로 옆에 찰싹 붙어선 수다를 떨었지.


심지어 촬영장까지 팔짱끼고 끌고가려는걸 겨우 말렸다.


앞으로도 그럴거란 말인데 이거참 난감하구만.


하기야 그냥 나이차 많이나는 동생의 친밀함 표시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미키의 아이돌이라는 입장상 다른사람들이 봤을 때 그처럼 좋게 받아들여지진 않을테니 역시 걱정이다.


그렇게 미키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멀지 않은 모래사장에서 미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촬영 장소가 어느샌가 바뀌었는지 아까는 멀리 있는 바다 근처였는데 이번엔 모래사장이 시작되는 부근의 녹초지에서 촬영을 하는듯 하다.


연녹색 비키니를 입고 자신감 넘치게 포즈를 취하는 미키는 과연 어린 나이이지만 프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물끄러미 촬영 하는걸 지켜 보며 다시 한모금 음료수를 목으로 넘기는데 그 때 미키와 눈이 마주친다.


응원이라도 해줄겸 손을 흔들어 볼까 하는사이,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촬영중 임에도 불구하고 전력으로 팔을 흔드는 미키의 모습에 마시던 음료수를 뿜어낸다.


쟤, 쟤가 지금 뭐하는 거야?!


그 모습을 당연히 이상하게 여긴 촬영장 사람들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당탕 방안으로 뛰어들어 간다.


딱히 내가 잘못한것도 아니고 촬영측 사람들이 내가 사무소 사람들과 함께 왔다는걸 모르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방금은 너무하잖아?!


아이돌이 촬영 하다말고 세상사람 다알아라 싶은 몸짓으로 인사하는 사람이 동성 친구도 아닌 나같은 남정네인걸 다른사람들이 봤다간 무슨일이 있을지 모른다구!


한참을 숨어선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다시 빼곰 고개를 내미니 미키의 촬영이 끝났는지 쉬는시간이 되어 어수선해진 촬영장이 보인다.


슥 훑어보다 한쪽 구석에서 아키즈키 씨에게 혼나고 있는듯한 미키가 눈에 들어온다.


……자업자득이야 미키.


그리 생각하며 앞으로도 꽤나 미키덕분에 고단해질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쉰다.


 


"우우~ 마음에 안드는거야."


"그치만 역시 자제해줘. 아까 아키즈키 씨나 아카바네 씨도 말했지만 하다못해 다른사람들 앞에서 만큼은."


촬영이 끝난건 해가 완전히 넘어갈때 쯤이 되어서다.


촬영팀은 좋은 촬영이 되었다며 사무소 사람들과 인사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내일 오후까지는 편하게 있어도 좋다고 했으니 모두들 일이 끝나고 몸도 마음도 한껏 풀어진채 휴식에 한껏 취해있다.


사무소 사람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내 옆에도 편하게 옷을 갈아입은 미키가 볼에 바람을 넣은채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그치만 미키가 허니를 좋아하는건 다른사람들이 알아도 상관없는걸. 오히려 알아줬으면 하는거야."


"그럼 안돼잖아. 미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실례라구. 아마 모두들 슬퍼할껄."


"우으."


그제서야 미키는 그건 좋지 않은데 라는 기색이다.


"게다가 잘못하다간 톱 아이돌이 되지 못할거야. 꿈이라고 했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그럼 톱 아이돌이 되면 괜찮은거야?"


그 말에 잠깐 고민한다.


톱 아이돌이 되는것과 아이돌이 연애하는건 별개의 문제지만 본인의 꿈을 이루었으니 아이돌을 그만두어도 좋다면 괜찮은거 아닌가?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적지않은 시간이 지난 그쯤되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럴걸."


"그럼 결정한거야! 미키 빨리 톱 아이돌이 되는거야. 그리고……."


거기서 미키는 더없이 환하게 미소짓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루어봐."


"에헤헤."


기분좋게 웃는 미키를 잠시 보고있자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시끄러워진 기색이 느껴져 신경을 돌려본다.


"꺄아악!!"


"깜짝이야."


뭘까 하는데 갑작스레 터지는 비명.


놀라 탄성하는데 미키가 무슨일인지 대답해준다.


"아마 마빡이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서 그런거인거야.오기전에 잠깐 지나가다 들은거야."


"호오. 미키는 그런거 관심 없나보네."


"귀신은 딱히 무섭지 않은거야. 그보단……으으."


갑자기 무얼 생각했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미키를 보다 그 대상이 누군지 깨닫곤 피식 웃는다.


"그렇게 아키즈키 씨가 무서우면 말을 잘들으면 되잖아."


"그치만 너무 하라는건 많고 하지 말라는건 많은거야."


"전부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인걸. 아카바네 씨랑은 잘지내더니."


"그건 미키도 아는거야. 리츠코도 레이 언니도 어떤 마음으로 하는말인지는. 그래도 그것과 무서운건 별개인거야."


거기서 한차례 질색하듯 고개를 휘휘 젓는 미키의 모습에 이번엔 소리내어 웃다 다시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투닥거리는 미키에게 사과한다.


 


저녁은 바베큐로 진행되었다.


사람수가 많다보니 일일히 보통의 식사로 준비하는것보단 이편이 편한데다 역시 야외에 와선 바베큐만큼 느낌있고 훌륭한 파티가 없으니.


한참 고기를 구워 먹으며 기분을 내는데 갑자기 아미가 주위의 시선을 모은다.


"잠깐 주모~옥!"


모두가 각자 하던 행동을 멈추고 뭘까 싶어 쳐다보니 아미가 음흉한 미소를 띄며 말을 잇는다.


"오늘이 지나면 휴가도 끝이라궁? 그런데 그냥 이렇게 먹고 마시고 끝내는건 좀 아쉽지 않아?"


아미의 말에 모두가 어수선해진다.


저 표정뒤에 무슨 폭탄발언이 있을지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나 다를까 아미는 손을 착 앞으로 내밀며 속에 품었던 말을 뱉는다.


"여름 하면 공포! 거기다 밖에서 느끼는 공포라하면 역시 담력시험! 오늘밤 모두 담력시험을 해보자궁!"


"""뭐어어?!"""


몇명의 목소리가 겹쳐 여름 밤바다를 울린다.


"히익! 저, 전 안돼요! 다, 담력시험이라니 그런건 도저히…!"


"그, 그래! 괜히 어두운곳을 돌아다니다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말만 들었는데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유키호와 애써 아닌척 하면서도 당황한게 보이는 마코토를 시작으로 몇몇 공포에 면역이 없는 이들이 반대를 하고 나선다.


"오호~! 과연 아미 대원! 재밌겠는데? 안그래 이오링?"


"뭐, 뭐어~ 유치하잖아 그런건?"


"마빡이는 무서운거야?"


"누, 누가 무서워! 그럴리가 없잖아?!"


"어머~ 그럼 이오리는 찬성인거네. 나도 재밌을것 같고 한번 참여해볼까?"


"윽."


이미 이야기를 들은 마미는 할 마음이 가득, 미키는 어찌 되어도 좋은것 같고 이오리도 자존심에 못이겨 끌어들여지게 된데다 미우라 씨도 흥미가 있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아마미도 무서워 하는것 같지만 키라사기 양과 함께 하기로 한 모양인데다 사무원측도 아키즈키 씨는 중립, 나머지 아카바네 씨와 오토나시 씨 둘은 한껏 들떠있다.


……어째 이 사무소의 사원들은 실제 나이와 역순으로 행동하는것 같단 말이지.


그거야 어쨌건 나머지 야요이나 히비키도 찬성이고 결국 과반수 찬성으로 진행이 결정되었다.


거기다 이야기를 들은 사장님이 별장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선 쓸만한 담력시험 코스도 전해받고 아주 본격적이다.


"하긴 이제 여름이니 예능프로그램 같은곳에서 얼마든지 납량특집 기획을 할지도 모르고 대비차원에서 한다고 생각해도 좋을거야. 무섭겠지만 그래도 예능처럼 일부러 놀래키는 사람들은 없으니 연습삼아 한다고 생각해줘."


"흐우우…그래도…."


아카바네 씨 그럴듯한 설득에도 무서움은 어쩌지 못하고 아직까지 망설이는 유키호.


유키호는 겁이 많으니까. 역시 무리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아카바네 씨의 말마따나 언젠가 이런 기획의 일을 하게 될수도 있는데 걱정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작게 한숨 쉬는데 바로 옆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시죠우 씨가 어쩐지 초점없는 눈으로 멍하니 앞을 보고 있는걸 알아챈다.


"저 시죠우 씨."


"무슨일이신지요?"


"괜찮습니까? 어딘가 이상해 보입니다만."


"예. 괜찮사옵니다. 아뇨, 아닙니다. 역시 몸이 좋지 않은듯 하옵니다. 전 이만 여기서 들어가는 편이."


뭔가 횡설수설이다.


평소 차분하고 침착한 시죠우 씨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혼란에 가득찬 모습에 나도 그렇게 되어버릴것 같아지려는데 아키즈키씨가 박수치며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에 겨우 정신차린다.


"그럼 코스는 사장님이 말씀해주신 그대로 길만 따라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외길인 모양이니까 절대로 그 외의 길이 아닌 곳으론 가지 말아줘. 그리고 안전을 위해 2인 1조로 하게 될거야."


"에? 2인 1조 인가요?"


"그래. 그리고 되도록이면 너희들끼리 보단 성인들과 조를 이루도록 할테고."


비율이 안맞으니 어쩔수 없는 경우도 있긴하겠지만 이라며 안경을 치켜올리는 아키즈키 씨의 말에 유키호가 문득 말없이 생각에 잠긴다.


"그럼 오빠랑 한 조가 될수도…."


"저기 유키호?"


"꺅?! 네, 네?!"


뭔가를 중얼거리는 유키호를 이상하게 여겨 어깨를 건드려보니 유키호가 화들짝 놀라버린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 그보다 역시 안될것 같으면 그만두는게 어때."


"아, 아니에요! 프로듀서 씨 말대로 언젠간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대비하는게 역시 나을것 같아요오­­­­…."


처음에 기세좋게 말하다 끝에와선 다시 수그러들긴 했지만 그래도 참가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무섭지만 참고 해보겠다는 의지가 기특해 흐뭇하게 웃는데 옆에서 꿈틀거리는 시죠우 씨의 기색에 다시 눈이 돌아간다.


"유키호도 참여인가요……."


"그러고보니 시죠우씨 몸이 안좋다고 하셨죠. 그럼 담력시험은 역시."


"아뇨. 참가하겠사옵니다. 모두가, 저 유키호도 두려움을 참으며 참가하는데 저라고 빠질수는 없지요."


하며 사뭇 비장하게 표정을 굳힌다.


다만 참는다는게 몸이 안좋은걸 참는건지 다른 무언지 모르겠지만.


그것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잠자코 조가 짜여져 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즉석으로 나무젓가락에 똑같은 번호를 써 뜯곤 컵에 넣어 섞어 제비뽑기를 한다.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총 열 여섯, 그러므로 여덟조.


본래 열 일곱명 이지만 사장님은 짝도 맞지 않고 본인도 별 마음이 없으므로 별장에 남아 지휘소 역할을 하기로 하셨다.


"미키는 허니랑 하고 싶은거야!"


"그래그래 제비가 같은거라면 말이지."


라며 나도 차례에 맞추어 젓가락을 뽑는다.


"어디보자 8번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8번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한 쪽에선 아미와 아카바네 씨가 같은 조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응훗훗, 프로듀서 언니와 함께라니 이것 참 즐거울것 같은걸~?"


"자, 잠깐. 역시 난 그만두고 싶어. 무심코 분위기 타버렸지만 나도 귀신은 무서운걸."


"이미 늦었다궁? 거기다 귀신이 꼭 나온다는 법은 없잖앙? 나오지 않는다는 법도 없지만."


"히이익?!"


손전등을 탁하고 얼굴 아래서 키곤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미덕에 아카바네 씨가 질색하며 뒷걸음질 친다.


어쩐지 저쪽 조는 보호자 측이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것 같은데.


여튼 그 뒤로 제비 뽑기는 이어져 모든 제비가 뽑혔다.


그 뒤 되도록 성인과 한 조를 이루려는 것 때문에 어느정도 조정 후 비로소 모든 조가 짜여졌다.


앞서 말한 아카바네 씨와 아미 그리고 미우라 씨와 이오리.


"후후 이오리와 같은 조네? 잘 부탁해?"


"흐, 흠. 아즈사라면 조금은 의지해도 괜찮겠지……."


"어머? 무슨말 했어?"


"아, 아무것도 아냐."


키사라기 양과 아마미.


"치하야랑 같은 조가 된건 기쁘지만 역시 좀 무서워. 기대도 괜찮지 치하야?"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부디."


"헤헤 역시 치하야가 옆에 있으니까 단단하네."


"……단단?"


"아, 아니 든든! 든든!"


오토나시 씨와 마코토.


"저, 저기 막상 시작하려니까 나도 좀 겁나는데."


"코토리 씨가 그러면 어떡해요? 보호자 잖아요?!"


"거, 걱정하지마! 어떻게든 될거야? 말뿐이지만!"


"으아앗~! 조 바꿔줘요 리츠코오~!"


히비키와 야요이.


"우우 귀신은 무섭지만 그래도 재밌을것 같아요!"


"흐흥~ 자신은 완벽하니까 귀신같은건 하나도 무섭지 않다구?"


"어라? 히비키 씨. 뒤에 뭔가 하얀게 날아다니는것 같은데요?"


"히이익?! 뭐, 뭔데? 뭐야 뭐?!"


"아, 비닐봉투였네요."


유키호와 마미.


"흐응~? 기분이 별로같아 보이는걸 유키뿅. 마미랑 같은조가 된게 마음에 안드는거야?"


"그, 그런게 아니야. 그치만…."


"그치만?"


"아, 아무것도 아니야."


뭐지? 방금 유키호가 나를 본듯한데. 착각인가.


여튼 그리고.


"싫은거야! 미키는 허니랑 같은 조가 하고 싶은거야!"


"제비뽑기가 이렇게 되었잖아? 괜한 투정 부리지 말아!"


"으우우~! 허니이~"


"아하하."


운명의 장난인지 아키즈키 씨와 미키가 같은 조가 되어 흡사 미키는 비련의 히로인이 된듯 눈물을 글썽인다.


다만 조정이 있었던 다른 아이돌과 달리 처음부터 아키즈키 씨와 바로 매칭된 미키는 어느정도 운명이라고 봐도 좋을까.


혼자 생각하곤 피식 웃다 이번엔 아까와 같이 내 옆에 있는 한사람을 돌아본다.


"이렇게 되었네요. 잘 부탁합니다. 시죠우 씨."


"예."


대답이 간결해 살짝 안색을 살피니 역시나 굳어있다.


짐작은 가지만 본인이 말할 마음이 없어보이니 가만히 있을까.


더이상 말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사이 처음으로 미우라 씨와 이오리가 출발한다.


순서는 제비에 써진 숫자대로.


나와 시죠우 씨는 마지막 순서가 되겠지.


그러던 사이 어느정도 시간을 두고 다음 조도 출발한다.


차례차례 하나둘씩 떠나가고.


마침내 마지막 우리의 차례가 왔다.


그때까지 제일 먼저 출발한 미우라 씨와 이오리도 돌아오지 않은걸로 봐선 담력시험의 길은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모양인지 아니면 지체되고 있는건지.


직접 확인하면 될일이니 이제 슬슬 출발할까.


"가죠. 시죠우 씨."


"네."


역시나 대답은 짧달막하다.


거기다 말은 그리했지만 한걸음도 움직이지않는 시죠우 씨의 모습에 먼저 발을 내딛어 걷기 시작하자 그제야 우물쭈물 따라오기 시작한다.


담력시험의 코스라고 해봐야 결국 별장 옆의 산책로이다.


물론 적막한 밤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가 합해지면 훌륭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지만서도.


편한 마음으로 밤에 산보를 나온 기분을 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려니 간혹 바람소리나 나뭇가지가 밟혀 부러지는 소리에 흠칫거리는 시죠우 씨의 기색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안쓰럽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누가 숨어서 놀래키거나 하진 않을테니 조금만 참으면 될테지.


혹시나 아미나 마미가 장난을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틋 스치긴 했어도 그 둘도 유키호나 아바카네 씨를 챙겨야하니(놀려야하니) 그럴 여유는 없을거고.


다만 가끔씩 뒤돌아보며 시죠우 씨가 너무 뒤쳐지지 않도록 발걸음을 맞추어 가는데 갑자기 옆 풀숲에서 들썩거리는 소리가 나는것에 순간 걸음을 멈추고 긴장한다.


덩달아 시죠우 씨도 전보다 더 바짝 얼어선건 당연지사.


뭐야. 정말 아미나 마미가 숨어있나?


만약 그렇다면 먼저 선수치고 역으로 놀래켜줄 심산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다가가려는데.


파삭!


"우왓!"


"히야얏?!"


거무스름한 무언가가 빠르게 뛰쳐나와 반대편으로 사라지는것에 놀라 소리친다.


크기로 봐선 작은 산짐승 같은데 놀라버렸잖아.


식은땀을 훔치고 마음을 추스르는데 시죠우 씨에 생각이 닿는다.


"아차. 괜찮으십니까 시죠우 씨?"


"괘, 괘괘, 괜찮…."


"안 괜찮아보이네요."


어지간히 놀란건지 풀썩 주저앉아선 고장난 기계처럼 말을 하려는 시죠우 씨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다가간다.


"그냥 토끼 같은 동물인 모양이에요. 귀신같은건 아니니까 진정하세요."


자세를 낮추어 다독이며 묻는다.


"일어설수 있겠어요?"


시죠우 씨가 일어서려 하는듯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나 다리에 힘이 풀린건지 금방 다시 주저앉아 버린다.


"아무래도 조금 쉬었다 가는게 나을것 같네요."


"죄송하옵니다…."


"아뇨, 죄송할것까진."


사람마다 약점이 있는거니까.


내가 물에 약한것 처럼 시죠우 씨는 귀신같은 오컬트에 약한 모양이다.


전에 포장마차에서 언틋 눈치 채긴 했지만 역시나 억지로 참고 담력시험에 참가했지만 끝까지 버텨내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하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도 있었는데요."


"유키호 또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참가하였사옵니다. 저라고 도망칠 수는 없사옵니다."
­­
비록 아직 두려움에 떠는 눈이긴 하지만 그리 말하는 시죠우 씨는 분명 진심으로 보인다.


이거 참 어쩔수 없구만.


나도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의아해하는 시죠우 씨에게 대답해준다.


"그럼 조금만 쉬었다 갈까요. 끝까지 통과해야죠. 도망치지 않았으니."


"……네."


시죠우 씨는 살풋 웃으며 차분히 마음을 다잡기 시작한다.


다만.


부스럭.


"햣!?"


바람 한번, 소리 한번 날때마다 다시 놀라 큰눈을 휘둥그레 뜨곤 불안해하기 일수다.


큰일이네.


"아무래도 여기선 진정하기 힘드실 것 같은데요."


"소, 송구스럽지만 그 말이 사실인듯 하옵니다."


아까보단 나아져 말은 더듬거리나마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지만 여전히 다리에 힘은 돌아오지 않은 모양.


하는수 없나.


"업히실 의향 있으십니까."


"네?"


내 말에 시죠우 씨가 되묻는다.


"실례가 안된다면 업고 앞으로 갈까 해서요. 업혔다고 해도 끝까지 완주하면 도망치거나 하는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면 역시 외간남자의 등에 업히는게 꺼려지는걸까.


시죠우 씨는 잠깐 망설이는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여 승낙한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내밀자 힘들게 시죠우 씨가 등에 올라탄다.


……존재감이 뚜렷하구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괜시리 헛기침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한곳에 신경이 쏠렸지만 이내 걷다보니 그 외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작지않은 키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가벼운 점이라던가 어깨를 스치는 부드러운 은발의 감촉이라던가.


아이돌이란 즉 우상.


과연 누구나 선망할 대상인가.


평소에도 그랬고 저번 촬영 때도 느끼긴 했지만 이리 가까이 있으려니 새삼 다시 깨닫는다.


어깨 너머, 어째서인지 달빛향기라고 느껴지는 그 은은한 향취에 무심코 정신이 팔려있으려니 시죠우 씨가 말을 걸어온다.


"점주 씨는 무섭지 않사옵니까?"


"귀신이 말입니까?"


시죠우 씨가 긍정한다.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호러영화 라던가 이런 담력시험이라던가 하는건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유령의 집같은 곳에서 깜짝 놀라거나 하는건 나도 ­마찬가지고 귀신은 반신반의하지만 혹시라도 진짜 마주친다면 기겁해서 도망치겠지.


"그치만 참는거죠. 어른이 되면 참는게 익숙해지거든요."


"어제 미키를 구할때와 같이 말이옵니까."


"비슷한 걸지도. 그때 말했듯 물이 무서워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선 참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이 쉬운건 아닐 것입니다. 참는다는게 어렵다는건 저도 잘 아니까요."


"음. 아마도 먹을것과 관련해서 말이지요."


"……."


꾸우욱.


"크헉! 죄, 죄송합니다!"


말없이 시죠우 씨가 목에 감고있던 팔에 힘을 주는 바람에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숨겨진 완력이 대단하구만 시죠우 씨.


"실례이옵니다."


"예, 사과드릴께요."


"사실 그것도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욕심과 유혹을 참아낸다는건 실로 쉬운일이 아니라는걸 언제나 느끼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니까요."
­­­
성인成人은 성인聖人이 아니니까.


보통의 사람들에겐 자신의 내면을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다는건 그야말로 꿈과도 같은 이야기겠지.
­
"그 말대로라면 점주 씨도 마찬가지 일 것이옵니다. 참는다는걸 조금쯤은 미숙히 하여도 크게 흠잡힐 일은 없을텐데요."


"딱히 참는일은 없는데요. 언제나 하고싶은대로 행동하고 있고."


아마 많고 적음을 따지면 나보다 자유롭게 사는 쪽은 적음, 절제하며 사는 사람은 많을테지.


하지만 등 뒤의 시죠우 씨의 의견은 다른지 고개를 젓는것이 느껴진다.


"허나 야요이를 돕는것도 그렇고 지난번 저와 함께했던 촬영도 마찬가지. 듣기론 그 외에도 저희 사무소 동료들, 타인이라 해도 좋을 이들을 돕기 위해 본인의 안식을 여러번 포기하지 않았사옵니까."


"그건 참는것과도 포기와도 다릅니다."


시죠우 씨의 말이 멈춘다.


설명을 요구하는것 같은 그 침묵에 마저 말을 잇는다.


"말했잖습니까? 하고 싶은대로 행동했다고. 비록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가 도왔던 사무소의 사람들은 충분히 제가 도와도 좋을만한 사람들이라고 판단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어쩔수 없는 돈과 시간의 할애는 말 그대로 어쩔수 없는 것이고."


"저희들을 그렇게 판단한 기준은 무엇이옵니까?"


"없습니다. 사람보는 눈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요. 다만 오히려 그런 제 눈에도 그 사무소의 사람들은 아이돌 일을 위해 진심을 다한다는게 보였으니 그래서 좋은사람이라 믿게 되었을지도요."


다시금 시죠우 씨가 침묵한다.


다만 이번엔 그 분위기가 어째 묘하다.


자꾸 간질간질해지는 듯한 기분.


아무 이유없이 등을 긁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상황에 찜찜해 하려니 시죠우 씨가 입을 연다.


"그렇사옵니까. 하지만 역시 참아내고 있군요."


"음? 아니라고 말씀 드렸."


"그것이 아닌 별개의 이야기 이옵니다. 앞서 말한건 충분히 점주 씨의 진심이 전해졌으니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좋사옵니다. 다만……언젠가 스스로 깨달을 날이 오겠지요."


라며 후후 웃는 시죠우 씨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뭐지. 어쩐지 마음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것 같은 기분이다.


­그 이상야릇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괜히 높아진 톤으로 서둘러 말을 돌린다.


"참는다거나 아직은 그런 고민하지 않아도 좋겠지요. 내가 아는 어떤 할아버지 말씀으론 본인 나이가 되어도 간혹 절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데 하물며 시죠 씨야 어리니까요."


"후후."


"어라? 시죠우 씨?"


갑작스레 다시 낮게 웃는 시죠우 씨의 반응에 당황한다.


"예, 말씀대로 전 아직 어리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어린 저에게 계속 경어를 사용하시는 것이옵니까? 사무소의 다른 동료들에겐 쉬이 말을 놓으시면서."


"어, 어쩌다보니?"


초면에 만났을 때 부터 이어진 경어가 쭉 이어진것이기에 딱히 이유는 없지만서도.


어리지만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그 특유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아무도 듣지않는 설명을 속으로 하고 있는데 시죠우 씨가 다시 작게 웃는다.


"그럼 어쩌다보니 말을 놓는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시죠우."


"타카네. 그것이 저의 이름이옵니다."


"……타카네."


"잘하셨사옵니다."


타카네가 다시 키득거린다.


뭐야 이거. 분명 내가 한참 연상인데도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왠지 모를 기분 나쁘지 않은 패배감에 쓴 입맛을 다시는데 타카네가 목에 감고있던 팔을 풀며 말한다.


"이제 괜찮아졌사옵니다."


"그래? 엇차."


그 말에 자리에 서서 타카네를 내려주자 잠시 비틀거린 타카네는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옆에 선다.


그나저나 한참을 걸은것 같은데 아직도 보이지 않네. 도착지.


역시 아까 예상했던대로 산책로가 꽤나 길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천천히 앞서 걸어가는 타카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오늘은 만월이로군요. 달이 참 아름답지 않사옵니까."


하며 느긋히 돌아선다.


그 말대로 하늘 높이 보름달이 떠있다.


둥글게 가득찬 달을 보니, 그리고 그 아래 빛을 받으며 서있는 타카네를 보며 감상을 말한다.


"그렇네. 아름다워."


달밤 아래 서있는, 신비하기 그지없는 타카네 모습은 그 말이 아깝지 않다고, 그 누구라도 말할테니.


 


얼마간을 걸어 겨우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다.


훌쩍이며 서로 부둥켜 안은 아카바네 씨와 오토나시 씨나 무슨 장난을 친건지 한껏 즐거워하는 아미와 마미, 그 외에도 서로 담력 시험의 이야기로 떠들썩한 앞서 도착한 조 들의 정신없는 모습에 웃고있으려니 우리가 돌아온걸 눈치챈 마미가 다가온다.


­"역시 공주찡과 점주 오빠는 멀쩡하구나. 처음이랑 바뀐게 없어."


하기야 타카네야 도중에 다리가 풀렸었어도 아까 업혀있다 내려온 이후로는 평소처럼 차분하게 스스로 걸었고 여기에서 본 사람들은 멀쩡하게 보일테지. 나야 말할 것도 없고.


마미가 재미없다는듯 툴툴대고 있는데 타카네가 슬며시 나선다.


"점주씨가 많이 의지가 되었사옵니다. 또한 바뀐게 없진 않지요. 그렇지 않사옵니까 점주 씨?"


"어 뭐. 그렇지."


뜬금없는 질문에 얼버무리곤 만다.


바뀐거라면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 말인가?


그 외엔 딱히 없지 않나 하고 있는데 타카네가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들릴듯 말듯 귀엣말을 한다.


'호칭의 이야기는 아니옵니다.'


그리곤 고아한 발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본다.


"……흠."


나로선 그저 아까도 지었을 쓴 웃음을 짓곤 마는 수 밖에.


 


그냥 일기


오랜만에 담력시험을 해봤다. 하기야 뭔가 튀어나오는게 아니긴 했지만서도. 이름모를 산짐승 때문에 놀라긴 했어도 그냥 밤에 산책을 즐긴 정도지. 그나저나 시죠우 씨, 아니 타카네에겐 완전 한방 먹었다. 쪼잔해 보일진 몰라도 언젠간 복수를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 그리고 어제에 이어서 또 사장님이 아무래도 소외받는것 같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기분탓일거라 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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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입니다!


학기가 시작하면 바쁘네요 역시. 이번 연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본가에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짬이 남는 틈에 한편 쓰게 되었네요. 재밌는지도 모를 이 글을 기다려주신다는 분들이 계신다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밖에는…….


이번화는 타카네의 타임! 입니다. 언제나 차분하고 흐트러짐이 없어보이지만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설정이 참 마음에 듭니다 흐흐. 거기다 아마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은 미묘함(?)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은데 역시나 결국은 미묘함. 쉽사리 이거다! 라는 식의 전개는 아직 아니되옵니다 후후.


ps. 또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음을 기다려주신다면……너무 늦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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