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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하루카. 다리를, 자르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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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7, 2014 01:16에 작성됨.

※ 잔혹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를 바랍니다.

 

발단은, 조금은 이질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극히 사소했다.

 

하루카「저녁을 만들어 줄게!」

치하야「… 응?」

 

묘하게 기대에 찬 것 같은 표정을 한 채로, 눈을 빛내며 하루카가 얼굴을 들이밀어 왔다. 사무소 소파에 앉아 이어폰에 손을 짚고 음악에 집중하던 치하야는 한 쪽 이어폰을 빼내고 하루카를 응시했다.

 

치하야「하루카, 딱히 그런 것…」

하루카「치하야의 오늘 저녁 메뉴는?」

팟, 하고 곧게 세워진 검지손가락이 눈 앞에 들이밀어졌다. 얼굴 다음은 손가락이라니, 친구 사이라도 조금은 예의를 배워 둬야 하지 않을까. 작은 한숨을 쉬고서 치하야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작게 읊조렸다.

치하야「편의점 도시락에 칼로리 메이트 두 조각, 비타민 워터 한 병.」

하루카「안 되잖아, 그러면!」

꽁, 하고 머리를 가볍게 얻어맞았다.

치하야「아얏… 저기 하루카, 왜 사람을 때리는 거야」

하루카「치하야는 여자애고, 한창 자랄 나이고, 아이돌인걸! 그렇게 먹어서는 아무 것도 제대로 챙길 수 없다구!」

치하야「영양은 제대로 챙길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리고 이미 자랄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해」

하루카「아아, 기각 기각~!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졌으므로, 치땅의 오늘 저녁은 이 하루카 씨가 손요리로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짝짝, 박수를 치며 하루카가 싱글벙글 웃었다. 뭘까, 대체. 하루카가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과연 이 화제는 생소했다. 뭔가 계기라도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이렇다 할 짚이는 것도 없었다.

 

치하야「… 치땅이 아니야. 그리고, 별로 하루카가 신경 써 주지 않아도 평소에도 그렇게 먹고 있는데다, 건강 상의 문제도 없으니까 괜찮아.」

하루카「흐음. 문제가 없구나…」

치하야「… 하루카?」

하루카「지그─시…」

치하야「입으로 그런 소리 내지 마. 그것보다, 바라보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에 따라서는 진심으로 화내게 될지도 모르는데」

하루카「아, 아하하하… 미안 미안, 치하야」

치하야「… 정말이지…」

 

애초에, 그다지 신경쓰고 있지 않으니까.


… 정말이다.

 

하루카「… 사실은, 그냥 구실에 가까울지도 몰라.」

약간 차분해진 목소리로, 하지만 여전히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하루카가 말하기 시작했다.

 

하루카「치하야를 위해서도 있지만, 내가 그러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더 클지도 몰라. 치하야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먹여 주고 싶고, 치하야의 집에 가 보고 싶고, 둘만의 걸즈 토크 같은 것도 좀 더 해 보고 싶고…」

치하야「엣… 가,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하루카…」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갑작스럽게 이런 화제라니,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 그야 하루카와는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럼에도 일 때문에 그다지 친구로서의 우정을 돈독히 할 기회도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이런 형태로라니.

치하야「… 하여튼, 하루카는 여러 모로 배려가 부족하구나」

하루카「엑? 그, 그런 거야? 하루카 씨는 방해인 거야!? 쿠─웅…」

치하야「그러니까 입으로 소리내지 말라니까. … 게다가 아무도 방해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하루카「헤?」

 

이런 것까지도, 직접 말해줘야만 아는 걸까.
아니, 어쩌면 그저 직접 듣고 싶어서 꾀를 부리고 있을 뿐일지도. 하루카는 그런 아이니까. 하지만 한 번쯤 속아넘어가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애써 숨기며 대답했다.

 

치하야「원한다면 따라와도 괜찮다는 의미야. 하지만 늦은 시간인데, 괜찮겠어?」

하루카「아… 응응! 애초에 내일 주말이잖아! 치하야도 나도, 둘 다 오프인걸!」

치하야「…… 묵고 가겠다는 의미야?」

하루카「당연한 거 아니야?」

치하야「아니야. 아니니까 의아한 것처럼 갸웃거리지 말아 줘. … 아니, 그렇다고 풀죽지도 마. 거절한 거 아니니까.」

하루카「헤헤, 치하야는 새침데기!」

치하야「… 정말로 피곤한 애라니까.」

 

그런, 어딘가의 만담과도 닮은 시시한 회화를 마치고서 하루카와 함께 사무소를 나섰다.

심야에 가까운 시간, 인적은 고사하고 도로를 지나는 차량조차 드물다. 오늘 따라 스케줄이 늦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런 부분까지도 하루카와 겹쳐졌던 것도 일종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겨,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이내 도달한 버스에 탑승했다. 막차 시간이었기에 승객도 많지 않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버스 안에는 치하야와 하루카만이 남게 되었다.

치하야의 집은 거의 버스의 종점에 가까웠지만, 이제 곧 도착할 정도까지는 와 있었다. 창 밖의 풍경을 보아 조금만 더 있으면 한창 철근 공사 중인 공사장을 지나치고, 무기질적인 맨션 앞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이 치하야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무기질적이라는 것은 순전히 하루카의 감상이었지만, 치하야도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루카「흥흥, 흥흐흥… ♪」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하루카를 흘깃 본 후, 치하야는 이어폰을 꺼내 핸드폰과 연결시킨 후 양쪽 귀에 꽂았다.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스스로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상태를 체크하고, 고칠 점을 찾아내기 위한 소소한 셀프 트레이닝이다.

…아, 이 부분은 역시 신경쓰인다. 프로듀서에게는 물어봤지만, 별 문제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밖에 듣지 못했었지. 하루카에게 물어보면 뭔가 의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저기, 하루카─」

「─ 어떻게 생각해?」

확실하게, 그렇게 물었을까.

적어도 그렇게 물으려고 했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 순간, 세계가 뒤흔들렸다.

 

 


***

 

 


치하야「으, 음…」

흐릿한 시야.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도 비슷한, 하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의 의식의 각성.
무언가 아련한 감각을 느끼며, 키사라기 치하야는 눈을 뜨고, 어쩐지 주위가 어둡구나. 그렇게 생각한 다음, 별 생각 없이 앞머리를 쓸어넘기고 눈을 비비기 위해 오른손을 눈 앞까지 가져오려 하다가,

치하야「… 아, 흑…!?」

강렬한 아픔에, 숨이 넘어갈 듯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내려다본 팔은.
잔혹하리만치 찌그러진 형태의 의자 사이에 쑤셔박히듯 끼어 있었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던 몽롱한 의식이, 지나친 통증으로 단숨에 또렷해졌다. 그와 동시에,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자비없이 엄습해 왔다.

치하야「아, 아아… 아아…!!」

버스를, 탔다.
언제나처럼 일을 끝내고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고 좌석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을 조작해 전에 녹음했던 곡을 재생한 후 목소리를 잘못 내었던 부분은 없는지 스스로 체크하며,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물으려고 한 순간 버스가 한 차례 크게 흔들리고,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르륵.
이마에서부터, 뜨겁고 기분나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욱씬거리며 쑤셔 오는 머리. 아프다. 팔이, 너무 아파.
기억은 없었지만 처한 상황은 명백했다. 사고다. 운전기사가 부주의했던 것일까. 다른 차량이 버스를 들이받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어둡고, 엉망으로 깨어진 조명은 애처롭게 몇 번인가 명멸하더니 이내 빛을 내지 않게 되었다. 압도적으로, 고요했다.

어둠에 조금은 익숙해진 동공이 주위의 광경을 약간이나마 인식하기 시작했다. 찌릿찌릿 팔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아픔에 신음을 흘리며, 가까스로 목만을 움직여 옆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종점에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던 치하야만이 버스에 남아 있는 유일한 승객이었다. 또다른 희생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에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물어보려고 했었다.


어떻게 생각해?


정말로 혼자였다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있었지?


─ 저기, 어떻게 생각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떠올리면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혼자인 편이 훨씬 낫다. 혼자여야만 했다.

─ 저기,


치하야「… 아니… 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고요.
그 안에 미약하지만 확실한 소리가 작게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숨소리.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치하야의 것은, 아니다.

치하야「우욱… 큭…!!」

자유로운 왼팔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오른팔이 약간 당겨져, 날카로운 통증이 덮쳐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신없이 주위를 더듬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잡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지만, 기대는 끔찍한 형태로 배반되었다.

차갑다. 손에 잡히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부드러웠다. 단순히 철 조각 따위의 무언가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부드러운 감촉. 미약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치하야「… 루카」

치하야「하루, … 하루카?」

 

─ 저기, 하루카

─ 어떻게 생각해?

 

가쁜 숨소리만이 울려퍼지는 와중.


「… 치」


─ 무척 좋다고 생각하는데?

─ 그게, 치하야가 부른 노래인걸!


들었었다.

그런 대답을, 들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카「치하, 야…」

 


꼬옥.
돌아온 대답을 듣고서, 맞잡은 손에 한 층 더 힘을 불어넣었다.

내 잘못이다. 전부 내 탓이다. 하루카를 집으로 부르는 게 아니었다.
식사를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는 것 따위, 별로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 평소대로의 일상이었는데도, 제대로 된 식사를 만들어 주겠다는 하루카의 친절을 못 이기는 척 받아물어 버리는 게 아니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일까. 왜 하필이면 지금인가. 안 돼. 하루카를 잃을 수는 없어. 어째서 하루카마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턱 하고 숨이 막혔다.

치하야「큭… 윽…!!」

숨이 쉬어지지 않아, 부족한 산소에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필사적으로 얕게 숨을 쉬기 위해 공기를 들이키기를 거듭하자 어떻게든 다시 호흡할 수 있었다.

치하야「… 학, 학, 하…!」

어딘가를 다쳐서도, 아픔에 몸이 굳어서도 아니었다. 기도를 틀어막고 호흡마저도 잊게 만든 것은, 격심한 공포였다.
지금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그럼에도 결코 잊을 수 없을 아주 어렸던 시절의 경험. 소중한 사람을 앗아갔던, 교통사고. 세계를 시커멓게 물들였던 절망의 기억.
그것이 이런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자신과,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를 함께 말려들게 하는 형태로.

만약 꿈이라면, 너무나도 악질적인 악몽이었다.

하루카「… 치하야…? 여, 기…」

어둠 속에서, 하루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려 애쓰고 있었다. 아직 의식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인지, 큰 상처를 입은 것인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를 생각하기 전에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치하야「하, 하루카!! … 괜찮, 아,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걸까.
멈추지 않고 오들오들 떨리는 왼팔만을 가까스로 뻗어, 미친듯이 하루카의 손을 쓰다듬으며 괜찮다는 말만을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로 괜찮아지기라도 하는 걸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는데도.

 

유우에게는 아무런 말도,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하루카에게라도. 하루카는 반드시 내가.
거의 본능적인 반응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하루카「… 아얏… 아… 파」

치하야「하루카…? 몸은 움직일 수 있어? 다친 곳은…?」

하루카「어떻게… 된 거야, 치하야…? 여기, 어디…」

하루카「아…」

 

상황을 파악한 것일까. 혼란스러운 것인지 정리되지 않은 말만을 늘어놓던 하루카가 돌연 침묵했다.

하루카「… 그렇, 구나」

하루카「나, 치하야랑 버스를 타서… 그래서, 치하야의 집에…」

하루카「… 버스가 뒤집어져서」

 

비교적 평탄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 것을보면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안도했다. 하루카를 빼앗아 가지 않아 주어서, 고마워요.

누구에게 향하는 감사인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감사하고 싶었다.

 

하루카「… 아, 아…! 치하야는… 괜찮은 거야?」

치하야「응, 난 괜찮아, 하루카… 그러니까, 걱정… 큭!」

하루카를 안심시켜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강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엉망으로 일그러진 의자에 짓눌린 오른팔에서, 참기 힘든 격통이 주기적으로 욱신욱신 전해져 왔다.

치하야「하, 윽… 크읏…!!」

하루카「치, 치하야…!? 괜찮아? 다친 거야!?」

치하야「하아, 하아, 윽… 하, 루카… 난, 괜찮으니까…」

하루카「전혀 괜찮은 목소리가 아닌걸…! 조, 조금만 기다… 꺅!」

몸을 일으키려던 하루카가 크게 휘청거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역시 어딘가 다쳤는지도 모른다.

치하야「하, 하루카!」

하루카「… 아, 야야… 괜찮아, 치하야… 움직일 수, 있어…」

 

위태롭게 비틀대며, 하루카가 조금 몸을 일으켰다. 버스의 차체는 처참하게 찌그러져 있는데다 가로로 넘어져 있는 탓에 똑바로 설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벽을 짚고 어떻게든 손을 짚고 엎드리듯 일어선 하루카가 버스의 앞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하루카「하아, 하… 으…」

치하야「하루카…? 어, 어디 가는 거야…?」

하루카「… 기사 분이 괜찮으신지, 확인해야지…」

힘겹게 운전석 옆까지 다다른 하루카가 조심스레 몸을 굽혀 운전석 안쪽을 살피더니, 조금 안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루카「응… 숨은 쉬고 있어. 의식은 없는 것 같지만… 빨리 도움을 요청해야만…」

주머니를 뒤적이던 하루카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멀쩡한 통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하루카「으으… 어쩌면 좋지」

치하야「하루카, 핸드폰이라면 내 것이 있…」

그렇게 말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다. 핸드폰은 분명히 오른손에 꺼내들고 있었다. 이어폰을 사용해 음악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오른손은 지금, 찌릿찌릿한 아픔과 함께 구조물 사이에 눌리듯 끼어 있다. 때문에 핸드폰 역시 사용할 수 없었다. 어쩌면 건너편에 적게나마 여유가 남아 있어 핸드폰 자체는 멀쩡할지도 몰랐지만, 팔을 꺼낼 수가 없어서야 무용지물이었다.

치하야「… 버스가, 전복된 사고야. 아마 우리가 따로 구조를 요청하지 않아도… 금방, 구조대원들이 와 줄 거야… 조금만, 기다리…」

 

치하야「… 윽…!!」

 

하루카「치하야…? 왜 그래?」

톱으로 긁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통증 탓에 채 말을 잇지 못한 것이 신경쓰였는지 하루카가 이 쪽으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머리맡까지 다가온 하루카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기는 했지만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하고 있을 때, 하루카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하루카「치하야… 팔, 이…」

치하야「……」

 

괴로운 시선을 힐끗 향하자, 오른팔에서는 그리 격하지는 않은 기세로, 그러나 섬뜩한 색을 띈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루카「괘, 괜찮아, 치하야…? 팔, 굉장히 아파 보여…」

치하야「… 나는, 괜찮아, 하루카… 참을 만해」

하루카「하, 하지만… 이렇게나 꽉 끼어서…! 조금만 당겨 보자!」

치하야「자, 잠깐! … 아, 윽……!!」

하루카가 팔을 잡고 당기자, 눈앞에 번개가 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의 격통이 휘몰아쳤다. 팔은 단단히 짓눌려 있는 것인지 어설프게 당기는 힘으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치하야「아, 아앗, 아아아아, 흑…!! 하악, 하아…!」

하루카「읏… 안, 빠져…! 미안해, 치하야! 많이 아픈 거야?」

치하야「하, 하아, 하… 괜찮, 아…」

난생 처음 겪는 잔혹할 정도의 아픔에 피가 배도록 입술을 깨물고, 몸을 파르르 떨면서, 눈물이 고인 눈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있을까.
하루카로서도 그 정도는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루카「치하야…」

치하야의 몸은 위험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까지도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교통사고, 그 한가운데에 내던져져 있는 것이다. 무섭고, 두려워서,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을 것이다. 몸을 유린하는 아픔에 괴로워하며, 가장 기피하고 두려워하던 상황과 맞닥뜨려 눈조차 돌리지 못하는 소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하루카「… 으윽…!」

무언가 결심한 것인지, 하루카가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기는 듯 하고 있던 몸의 방향을 거꾸로 바꾸어 다리를 아래쪽으로 가게 해, 치하야의 팔을 누르고 있는 의자에 딛었다. 양팔로는 치하야의 오른팔을 붙들었다.

치하야「하루카…? 됐어, 어차피 이제 곧 구조가 올 테니까… 내 팔 같은 건 가만히 놔둬도─」

하루카「하지만… 윽, 치하야가, 이렇게나 아파하는걸…! 못본 척할 수 없어! 거기에 오랫동안 피가 안 통하면, 큰일날지도 몰라…!!」

 

그렇게 말한 하루카는 다리에 힘을 넣어, 팔이 빠져나올 공간을 벌리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끼익끼익 하고 철제의 구조물이 불길한 소리를 낸다.

치하야「아, 힉…!? 하루캇, 윽, 으윽…!!」

진동은 고스란히 격통이 되어, 팔에서부터 타고 올라와 자비없이 몰아쳤다. 아프다. 너무나도 아프다. 어쩌면 팔을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규격을 넘어선 아픔. 참기 힘든 괴로움에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고 있을 때,

하루카「하아, 하아, 으읏…!! 조금씩, 움직여…!」

정말이었다. 끼긱끼긱, 날카로운 쇳소리를 울리며 조금씩 의자가 들려지고 있었다. 공간이 생긴다. 짓눌려 피가 통하지 않던 팔과 손가락 끝까지, 혈액이 돌기 시작한다. 욱씬거리는 통증과 말단의 감각이 동시에 되살아난다.

치하야「하아, 큭…! 으, 아윽…!!」

하루카「치하야, 당겨─!!」

과도하게 힘을 넣어 후들후들 떨리는 하루카의 다리는, 그러나 확실하게 조금씩 팔이 움직일 여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 뿐이다. 그렇게 직감하고, 악문 이에 힘을 더한 후, 오른팔을 끌어당겼다.

치하야「아, 흐, 아아아아아─!!」

조금씩 끌려나온다. 폭발하는 아픔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흐릿해지는 의식의 한편에서 그렇게 느끼면서,

 

 

치하야「─ 윽!」

하루카「꺄악…!?」


쿵, 하고 무언가가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치하야「─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 하루카, 하루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하루카를 쉴새없이 불렀다.

치하야「나, 나왔어… 팔, 내, 팔…! … 빠져, 나왔어…!!」

아직까지 격렬하게 쑤셔 오는 오른팔은, 그러나 끼인 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있었다. 날카로운 부분에 찔린 것인지 상처가 나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손에 꽉 쥐고 있던 핸드폰도 다행히 무사했다.

하루카의 덕분이다. 구조가 올 때까지 계속 이 상태였다면, 어쩌면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격통의 여운에 몸을 떠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하루카를 불렀지만,

치하야「하아, 하아… 하루카, 하루카…? 하루카, 왜, 그래…」


하루카「… 아, 윽… 으윽…!!」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낌새가 이상했다.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하루카의 신음은, 명백하게 고통 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치하야「… 하루카…?」

왼팔을 눈앞으로 당겨 눈물을 닦아내고, 가늘게 눈을 떠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살피자 보인 것은.

 


하루카「흑, 우… 아…! 하아, 아윽…!」


쏟아져 내린 잔해에 절반이 넘게 깔려,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하루카의 왼쪽 다리였다.

 

 

---

 

현실적인 고증 문제도 그렇고, 아이돌 대우도 그렇고, 정말 그냥 쓴 게 아까워서 올렸다는 느낌이라 좀 스스로도… 제목부터가 잔혹해서 불편하게 여기시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어 그 부분도 걱정됩니다. 요청이 들어온다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내용을 생각하면 저 제목이 가장 들어맞는 터라, 한참을 고민했지만 포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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