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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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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0, 2014 01:15에 작성됨.

- 4월 #일, 오후 11시

“정말 이러기야? 너무하네!”

“그래! 나 너무한 여자야! 늙고 추한 아줌마라구! 그러니까 다른 젊고 이쁜 여자 찾아봐!”

“잠깐, 내가 한 말은 그런 말이 아니잖아!”

“시끄러워, 이젠 끝이야!”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스친 뒤 힘껏 뛰어간다. 남자는 잠시 멍하니 서 있더니 그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오전 10시.

오늘은 미즈키가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그녀는 신데렐라 프로덕션 소속 아이돌이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완벽한 체형을 가지고 있어서 모델로 자주 불려나갔다. 그리고 오늘은 중요한 패션잡지의 모델로서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카와시마씨, 좀 웃어보세요!”

“……”

베이지색 바탕의 꽃무늬가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미즈키의 어두운 표정이 밝은 색으로 가득한 촬영장의 분위기를 우울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사진사는 어떻게든 그녀를 달래보려고 노력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에이, 카와시마씨 지금 무슨 장례식장 사진 찍는 것도 아니고, 왜 이리 우울한 표정을 하고 계신 겁니까?”

“……”

지쳐버린 사진사가 짜증섞인 투로 미즈키에게 불만을 표시한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노려본 뒤, 그냥 밖으로 걸어나가버렸다.

“어? 어어? 카와시마씨, 어디가세요?”

미즈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그녀의 프로듀서가 잔뜩 화가 나 있는 사진사에게 간단한 사과의 제스처를 취한 뒤 그녀의 뒤를 따라 뛰어나갔다.

30분 후,

결국 오늘 촬영은 완전히 취소되었다. 그녀의 상태를 우려한 프로듀서는 미즈키에게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귀가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그녀는 귀가하지 않고 응접실 한쪽 구석에 고개를 숙인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제 카와시마씨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걸?”

우즈키와 치히로는 무거운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 앉아있는 미즈키를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설마 오늘이 마법에 걸린 ㄴ……”

“치히로씨! 좀 조용히 해요! 카와시마씨가 듣겠어요!”

우즈키는 급하게 손으로 치히로의 입을 막았다. 미즈키는 그녀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잠시 우즈키와 치히로가 서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이내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테이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으으…… 카와시마씨가 왜 저러는지 정말 모르겠어! 궁금하다구!”

“어어어?? 치히로씨! 잠깐만요……”

좀 더 두고보자고 말하는 우즈키를 뒤로한 채 치히로는 미즈키 옆에 다가와 사뿐히 자리에 앉는다. 그녀는 치히로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한 듯 미동도 없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세요? 설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

미즈키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흐, 흐흑… 나쁜놈, 왜 그런거야…”

“카, 카와시마씨?”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끅… 그것도 몰라주고… 흐흑… 바보! 멍청이!”

미즈키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당황한 치히로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놀란 우즈키가 치히로를 향해 다급하게 뛰어간다.

“우, 우즈키! 카와시마씨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고있어? 나쁜놈이라는게 설마 나를 말하는건가?!”

“에, 그건 좀 아닌거 같은걸요? 사실 좀 맞는거 같긴 하지만…”

“어이, 잠깐. 방금 전에 너 뭐라고 했니?”

치히로가 악마의 미소를 짓자 우즈키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휘젓는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치히로씨! 그러고보니… 요즘 카와시마씨 남자친구 생기셨잖아요.”

“그랬었나? 그러고보니 요즘 카와시마씨가 이상할 정도로 자주 스케줄에 빠지고 얼굴도 점점 이뻐지는 것 처럼 보이던데, 그런 거였구나!”

“저렇게 우는 걸 보면 어제 분명 남자친구분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라구요.”

“그…그럼 난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어휴, 답답해! 그러니까 치히로씨에게 남자친구가 없……”

“어이. 노처녀 놀리다 걸리면 너 국물도 없는거 알지?”

“네, 죄송함다. 풉……”

치히로의 얼굴색이 울그락푸르락하게 바뀌어가기 시작했고 우즈키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돌려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즈키?”

“일단 손수건을 갖다드린 뒤에 차도 한 잔 대접해줘요. 그리고 무슨 이야기든 들어주다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럼 나는 카와시마씨에게 대접할 차를 가져올 테니, 우즈키는 내 책상서랍 열어보면 손수건 한 장 있거든, 그거 가져와.”

“네!”

치히로와 우즈키는 각자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 같은 날, 같은 시각

“그러면 지금부터 주간 부서 정기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마케팅 협력 1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그에게 중요한 정기회의를 시작하는 날이지만, 그는 멍한 표정을 지은 채로 프레젠테이션을 쳐다본다. 화면이 화려하게 오락가락하며 가끔씩 몇몇 사람들이 웃기도 하지만, 그는 초점없는 눈으로 계속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

“이상으로 오늘 협력지원부의 주간보고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가쓰라씨가 기술지원부 주간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회의장이 이내 조용해졌다. 다들 기술지원부의 주간보고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올라오지 않은 채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또 다른 몇몇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지 않는 상대와 못다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가쓰라 군을 한번 더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이 가쓰라, 얼른 발표해!”

“아… 아, 네. 지금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노로 다듬어진 과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온 뒤에서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발표를 시작했다.

점심 시간.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가쓰라를 멀리서 보던 과장은 깊은 한 숨을 내쉬며 그의 옆에 앉아 자신이 가져온 우동을 먹으려고 하다가 멈춘다. 그리고는…

“괜찮아, 괜찮아. 사람이 한번쯤은 실수할 때도 있는거지, 뭘 그래.”

“……”

과장이 가쓰라의 어깨를 살살 두드리며 위로했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무답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과장은 다크서클이 낀 초췌한 가쓰라의 얼굴을 살피고서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그에게 넌지시 질문을 한다.

“혹시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나?”

“……”

가쓰라는 그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억지로 쑤셔넣듯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과장은 괜히 더 건드렸다가 큰 일만 만들어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조용히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 오후 9시 10분

이름을 알 수 없는 호반공원의 어딘가, 붉은 빛을 내는 가로등 아래 미즈키가 근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서 있었다.

“그 사람, 올까, 안 올까?”

“내가 아무렇게나 말해버리는 바람에 실망해서 안 오겠지?”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렇게 오랫동안 사귀었는데, 설마 안 오겠어…?”

그렇게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혼잣말로 정리하면서 보낸 지도 어느 덧 세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미즈키는 후회와 절망이 가득한 깊은 한숨을 쉬며 가로등에 기대어 조용하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가까워져갔고, 혼자서 흐느끼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자신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남자가 흥얼거리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힘껏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젯 밤과 같은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했다. 남자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고, 여자는 얼마나 울었던지 토끼눈처럼 빨갛게 변해있었다.

“기다리고 있었구나 미즈키! 다시는 안 올 것처럼 말하고 도망가더니……”

“……”

미즈키는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이내 고개를 한 쪽으로 돌려 그를 외면하려 했다. 가쓰라는 자신을 외면하는 미즈키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미즈키……”

“……?”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가쓰라를 쳐다보았고, 말을 하고 싶은데 제대로 되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는 그의 표정이 보였다. 여러가지로 얽혀있는 감정 때문에 가쓰라의 속마음을 알아챌 수 없었던 그녀는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에, 미즈키? 그러니까 말이야, 나……”

“……”

“에또, 그게 음…… 어렵네.”

“무슨 말 하려는 거야, 가쓰라군?”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던 가쓰라는 그런 자신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의 ‘한 마디’를 들으려다 지쳐버린 미즈키는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가쓰라군, 정말로 내가 마음에 안들었나보네. 알았어. 내가 사라져줄께.”

그렇게 아무말도 못한 채 고개를 숙여버린 가쓰라를 내버려두고 돌아가려는 미즈키가 갑자기 멈춘다. 그가 그녀의 왼팔을 힘껏 붙잡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미즈키는 그를 떼어내기 위해 있는 힘껏 팔을 흔들기 시작한다.

“놔! 이거 놓으란 말야!”

“……미안해.”

미즈키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처음 사귄 이래로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안했던 가쓰라가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의 진심이 궁금했던 그녀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물어본다.

“못들었어.”

“……미안해, 미즈키. 내가 잘못했어.”

“……”

“어젯밤에 내가 당신한테 중년여성들이 쓰는 화장품을 추천해주고, 아줌마라고 놀려서 마음 상했지? 사실 나는 미즈키가 TV에서 그냥 웃어 넘기길래 평소에도 그런 줄 알고 그냥 편하게 농담으로, 장난으로 그랬던 건데, 그렇게 화를 낼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어.”

“……”

미즈키는 자신의 흉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오른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 다음 고개를 돌려 사과하는 가쓰라를 따스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께. 만약 내가 다시 이런 장난을 친다면 어떤 벌도 달게 받을께.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줘. 제발…”

그녀는 고개숙여 사과하는 가쓰라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비록 그에게서 엄청난 술냄새가 풍겨왔지만, 미즈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려고 그렇게 힘들어 한 거였구나. 나도 미안해 가쓰라군. 속마음을 몰라줘서.”

미즈키는 양 손으로 가쓰라의 얼굴을 들고 자신의 입술을 그의 입술에 포개었다.

그렇게 공원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 이틀 뒤

결국 가쓰라와 미즈키는 다음 날 사이좋게 결근했다. 각자의 직장으로부터 분노가득한 전화가 빗발쳤지만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나머지는 싹 무시했다.

그리고 오늘, 가쓰라는 자신의 자동차로 미즈키가 소속되어 있는 프로덕션까지 태워주었다. 평소와 다르게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손을 꼭 붙잡고 문앞까지 함께 걸어갔다.

“고마워 가쓰라군.”

“그래 미즈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일하고, 저녁에 보자구. 아차, 오늘 저녁엔 어디서 만나지?”

“음…… 우리 집 앞에 괜찮은 선술집이 있는데 거기서 만나면 어떨까?”

“좋아.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내가 자동차를 세워놓고 와야하니 조금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가쓰라군이 기다리라고 하면 하루종일 기다려줄 수 있어!”

“고마워, 미즈키. 그럼 잘 다녀와.”

그렇게 자신의 차로 돌아가려는 가쓰라의 옷깃을 미즈키가 붙잡는다. 가쓰라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는 이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눈을 꼭 감고 입을 모은 채로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미, 미즈키? 여기서 그건 좀 곤란해. 많은 사람들이 본다구.”

“뭐 어때, 내 남자친구에게 굿모닝 키스 받는거 아무 문제 없다구! 스캔들 나면 결혼해버리면 되지!”

“에, 에헤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는 미즈키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다. 키스를 받은 그녀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사무실을 향해 뛰어들어간다. 가쓰라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이내 차에 올라탄다.






???: 폭발해버려라 리얼충들!!

???: 제발 진정해요 사무원씨! 여기서 이러시면 다른 아이돌들이 다 본다구요!

 

 - Comments -

지난 금요일 밤에 엘튼 존의 앨범 중에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라는 노래를 듣다가 이걸로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즉흥적으로 써본 글입니다. 부족한 필력으로 쓴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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