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하루카와 치하야가 알콩달콩하는 이야기

댓글: 21 / 조회: 2114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04-19, 2014 13:36에 작성됨.

추웠던 겨울은 언제였냐는 듯, 날씨는 이미 완연한 봄이었다. 옅은 청색을 띈 흑발의 소녀, 키사라기 치하야는 전철역 벽에 기대어 악보를 읽고 있었다. 그녀의 귀를 덮은 헤드폰에서는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Are you ready♪~

 

  플랫폼 쪽에서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벨소리가 흘러나오고, 이내 인파가 하나둘씩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소녀가 치하야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치하야! 좋은 아치… 어, 어어?!"

 

  돈가라갓샹!
  그녀는 순간 몸을 기우뚱하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성대하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야야… 아파…"

 

  그러나 그 와중에도 치하야는 소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악보만 노려보고 있었다. 플랫폼에서 나타난 이 소녀는 치하야의 친구인 아마미 하루카였다. 갈색 머리칼에 귀여운 하얀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이 평범한 소녀는 뺨을 부풀렸다.

 

"우우- 치하야!"
"에? 하루카?! 어느 틈에 온 거야?"

 

  치하야는 화들짝 놀라며 헤드폰을 벗었다.

 

"어느 틈에라니! 아까 전부터 계속 손 흔들고 인사하고 있었는데!"
"정말!? 전혀 몰랐어!"

"하아… 치하야도 정말…"

 

  하루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표정을 풀고 치하야의 오른편에 서서 갑자기 팔짱을 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하루카의 스킨십에 놀란 치하야는 살짝 새된 비명을 질렀다.

"꺄!?"
"오, 그 비명소리 귀여운데-? 치하야, 마치 아이돌 같아~"

"아, 아이돌이잖아!"

 

  그렇다. 그녀들은 서로 친구이자, 765프로라는 사무소에 소속된 아이돌 동료이다. 사무소의 아이돌들 사이에서도 특히 친한 두 사람은 업무 외 시간에는 거의 항상 함께 돌아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새로 나온 시디를 사러 간다던지, 영화를 보러 간다던지. 그녀들의 우정은 팬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바였고, 팬들은 그녀들 사이에 하루치하라던가 하는 이름을 붙여서 갖가지 이야기들을 지어내고 있었다. 일부 팬들은 약간 불순한 상상력을 더하기도 하는 듯하지만.


'어라…?'

 

  하루카가 팔짱을 끼어 오는 그 순간, 치하야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하루카는 어제도 그제도 같이 있었는데, 뭔가 이전과 다르다고 그녀의 예민한 감이 말하고 있었다.

 

'리본…? 아냐'

 

  이제는 하루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머리의 리본 한 쌍. 물론 매일 다른 리본을 하고 오긴 하지만, 위화감의 정체는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신, 반성하세요. 하루카는 리본이 본체 같은 게 아냐!

 

'… 안 넘어지는 거?'

 

  치하야는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 생각을 날려버렸다. 아무리 하루카라지만 너무 실례되는 생각이니까. 아무리 하루카라도 하루쯤 넘어지지 않는 날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아, 치하야가 모를 뿐이지 이미 눈 앞에서 한번 넘어지긴 했지만.

 

"왜 그래, 치하야?"
"아, 아아아?! 아, 아냐, 아무것도!"

  하루카는 입술을 쭉 내밀며 실눈을 떴다.

"뭔가 수상한데… 치~하~야~"
"아, 벌써 이런 시간이! 슬슬 뛰지 않으면 늦을지도 몰라!"

"앗! 잠깐, 갑자기 뛰면,"

 

  돈가라갓샹!

 

  팔짱을 낀 채로 한 사람만 갑자기 달려나가니 다른 한 쪽이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하물며 그게 도짓코의 화신 아마미 하루카라면, 넘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 아닐까? 하루카는 마치 하늘에서 어미가 던져버린 아기새처럼 필사적으로 두 팔을 파닥였지만, 그녀는 새가 아니므로, 그러한 노력도 소용없이 성대하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야야… 벌써 두번째야…" 
"괘, 괜찮아, 하루카?"

"응! 상처는 없으니까!"

 

 

  꽤 심하게 넘어진 것 같은데… 치하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루카는 덜렁대는 점이 유일한 단점인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크게 넘어져도 결코 상처를 입는 일이 없었다. 친한 친구인 그녀에게도 이는 언제 봐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하기야 사무소 계단에서 굴러떨어져도 살짝 빨개지는 것 외에는 별 문제 없었기도 하고.

 

"미안해. 하루카. 갑자기 뛰어서…"
"아냐, 정말 괜찮으니까!"

 

  하루카는 치하야 때문에 넘어졌는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치 성인의 뒤에 비친다는 후광이 보이는 듯 했다. 그녀의 빛나는 미소에 치하야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자, 치하야! 사무소까지 시합이야!"
"앗!? 갑자기, 비겁해!"

 

  갑자기 꺄르르 웃으며 뛰기 시작한 하루카의 뒤를 쫒으며 치하야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대체 그 위화감은 뭐였을까…?'

 

"하아, 하아, 하아...."
"벌써 지친 거야!?"

 

"하아, 이상하네.... 이 정도는 가뿐했는데"
"하루카도 요즘 활동이 바쁘니까, 피곤한 게 아닐까?"

"그런가?"

 


  몇 개의 골목을 지나 큰길로 나가자 삐쭉 솟은 건물들 사이로, 아주 오래 전에 지은 듯한 저층 빌딩들이 길가에 줄지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타루키 정이라고 적힌 음식점 앞에 섰다. 이 음식점은 두 사람의 소속사인 765프로와 같은 건물이다.

 

"아마미 씨랑 키사라기 씨? 오늘은 일찍 왔네"
"아, 오가와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제 텔레비전에 나왔더라?"
"아, 보셨군요! 감사합니다!"

"응, 두사람 다 잘 하던데? 손님들도 반응이 좋더라! 다음에 또 밥 먹으러 오렴!"

 

  두 사람은 뺨을 긁적이며 건물로 들어섰다. 하루카가 말했다.

 

"에헤헤… 봐 주고 계시구나…."

"응, 조금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 하루카. 발 조심해!"

 

  빌딩에는 낡은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한참 오래 전부터 고장나서 움직이지 않는다. 좀 고쳐줬으면 하지만 근시일내에 해결될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 사무소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
"… 아무도 안 계시는 모양이네"

"코토리 씨, 사무소 문을 열어 두고 어디에 가셨을까…."
"뭐, 잠깐 화장실에라도 가신 거 아닐까?"

  하루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까나?"

 

  치하야는 뚜벅뚜벅 걸어 사무소 한켠에 걸린 화이트보드로 다가갔다. 이 화이트보드에는 아이돌 전원의 스케쥴이 시간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물론 그날그날의 스케쥴은 미리 수첩에 적어두지만, 밤새 변경이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확인은 해 두어야 한다. 프로듀서는 늦은 밤에는 가급적 전화를 하지 않는 편이니까.

 

  오늘의 일정은 하루카와 함께 레슨.

"……. 뭐, 변화는 없네"

 

  하긴 뭔가가 바뀌었다면 전화가 아니더라도 메일 등으로 연락했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어쩐지 맥이 풀렸다. 치하야가 사무소 소파에 앉아 다시 악보를 확인하려던 참에, 하루카가 웃으며 달라붙어왔다.

 

"에헤헤, 치하야 쨩! 같이 앉자!"

 

  치하야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칸 옆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된다면, 아무래도 조용히 악보를 읽고 있으려던 계획은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하루카는 은근히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라,

"우-"

 

  그새 입술을 쭉 내밀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치하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루카?"
"그게- 치하야 쨩이 하루카를 무시하고 악보만 보고 있는걸요-"

  으아, 코맹맹이 소리. 하루카에게는 미안하지만 살짝 짜증이 날지도. 귀엽긴 하지만?

 

  물론 치하야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경솔한 사람은 아니다. 상대가 하루카가 아니었다면 말하고도 남았겠지만 치하야에게 있어 하루카는 소중한 친구니까.

  그러나 못 들은 척 다시 악보로 시선을 돌리려던 순간 하루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나, 사무소 사람들이랑 나눠 먹으려고 쿠키 구워왔어! 같이 먹자!"
"!"

 

  치하야는 악보를 옆으로 휙하고 치워버렸다. 하루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치하야는 그런 하루카의 손을 지켜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후훗, 꼬리 살랑거리는 강아지 같아'

 

  하루카는 이 모습을 자신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카메라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치하야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을 것이 틀림없는데! 뭐, 물론 지금까지 힙겹게 쌓아올린 고고한 가희라는 이미지는 붕괴되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짜잔! 하루카씨의 쿠키 대공개! 꺗?!"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비닐봉지 속에 담긴 초코칩 쿠키...
  아니, 쿠키였던 무언가였다.

  분명 원래는 과자 틀로 찍어낸 평범한 쿠키의 형상을 하고 있었겠지만, 이미 원래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으스러져 있었다.

 

"어, 어째서... 앗!"

  하루카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까 넘어지면서 뭉개졌나 봐! 아아아아아......."

 

  나는 어째서 이렇게 덜렁이인 걸까- 같은 소리를 계속 중얼대면서 좌절하는 하루카. 그런 하루카의 어깨 위로 치하야의 손이 올라왔다.

 

"괘아나, 하으카. 언헤하허엄 하으카의 흐히은 마싯흐니하"
"... 저기, 치하야 쨩.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까 그거 다 먹고 얘기해 줄래?"

  꿀꺽.

 

"켁켁켁"
"어째서?! 나 재촉하지 않았거든?! 아니, 그것보다 괜찮아 치하야 쨩!?"

  치하야는 하루카가 급탕실에 뛰어가서 가져온 물을 마시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하루카는 그 동안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후우, 죽는 줄 알았당께."
"갑자기 사투리로 말하는 건 그만둬.... 그것보다 치하야,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거야?"

 

  치하야는 뺨에 붙은 쿠키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긁어내며 말했다.

 

 

"응, 하루카는 역시 훌륭한-"
"응응!"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귀여웠다.
  그걸 보니 치하야는 어쩐지 하루카가 놀리고 싶어졌다.

  치하야의 머릿속에 빛줄기가 번뜩하고 스쳐갔다.

 

"제빵사가 될 수 있겠구나 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치하야는 정색하며 말했다.

"약간은 도시와 떨어진, 아직 전원 분위기가 남은 동네. 그곳의 약간은 평범하게 생긴 듯한 빵집. 세련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쿠키이지만, 그 쿠키의 단맛은 마치 어머니가 갓 구워준 듯한... 극한의 평범한 단맛"
"!? 평범한데 극한!?"

 

하루카는 리액션이 좋다. 하나하나 흘리지 않고 태클을 넣는 것이, 아이돌을 그만두면 예능인으로 계속 연예활동을 계속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쩌면, 아니, 확실히 노래보다는 이쪽에 재능이 있지 않을까?

 

"아, 하지만 역시 이런 평범한 쿠키로는 제빵사로 먹고 살기 힘들지도."
"갑자기 독설?!"
"후훗, 그래도 난 좋아해. 다른 아이들도 하루카의 쿠키는 좋아하니까."

하루카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응. 특히 유키호가 타 준 차와 잘 어울려. 극한의 떫은 맛과 극한의 단맛이 궁극의 하모니를 이루며 서로의 독성을 상쇄한다고나 할까...?"
"독성!? 내 쿠키는 독인 거야? 아니, 그보다 유키호에게 사과해!"
"후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루카. 농담인 게 당연하잖아."

 

"정말! 치하야의 농담은 심장에 나쁘다니까-"
"응. 유키호의 차를 어떻게 여기에 댈 수 있겠어. 가엾게도."
"쿠쿵-! 하루카 상처받았어...."

고개를 푹 숙이며 축 늘어지는 하루카.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치하야는 하루카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귀여워서 계속 놀리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놀리기만 하면 가여우니까 이제 슬슬 토닥여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후훗. 미안해 하루카. 하루카가 너무 귀여워서 그냥 놀려주고 싶었어"
"응?"

하루카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치하야 쨩, 다시 한번 말해주겠어?"
"? 그냥 놀려주고 싶었어"

하루카는 손사래를 치며 다시 물었다.

 

"아니아니, 그거 말고 그 전에"
"하루카가 너무 귀여웠어"

 

삐익-!
마치 새빨갛게 달아오른 주전자처럼 하루카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치하야에게 그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라, 하루카는 무방비한 상태로 잔뜩 얻어맞아 그로기 상태가 된 복서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에-에헤헤... 치하야쨩-"

 

치하야에게 찰싹 달라붙어 뺨을 치하야의 어꺠에 마구 비비기 시작한 하루카. 치하야는 하루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스킨십을 묵묵히 받아주고 있었다.

"하루카도 참...,"

 

그러다가 하루카의 볼과 치하야의 볼이 맞닿은 그 순간, 치하야는 방금 전에 느꼈던 위화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어?"
"왜 으헤, 히하야?" 부비적부비적

"설마.... 아니.... 그게, 하루카."

 

치하야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하루카,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지 않아?"

 ----------------------------

 

어휴 오랜만에 글 쓰려니 힘드네요! 하루카가 귀여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됐을지?
시리즈니까 계속되겠죠 아마-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