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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호「나무를 심는 날이라나 봐요,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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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6, 2014 02:55에 작성됨.

그러니까 나무를 심으러 가요, 라고.
예고도 없이 집을 찾아온 유키호는, 문을 열어 주자 실로 갑작스럽게 그렇게 말해 왔다.

P「… 정말로?」

유키호「물론이예요」

예전부터 있던 일이다. 일이 없는 주말, 기껏 생긴 여가시간에도 유키호는 가끔 이렇게 생뚱맞은 일에 함께 어울려 달라며 요구해 오곤 했다. 평소에는 자기주장이 약하고 소극적인 주제에, 또 이럴 때만큼은 묘하게 강하게 밀어붙여오는 터라 함부로 거절할 수가 없다. 묘하게 반짝이는 것처럼도 보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눈을 돌렸다. 항복의 표시다. 만족했다는 듯 유키호가 배시시 미소를 짓는 통에,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녀석이다 싶어 이 쪽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P「농담은 아닌 모양이구나. 하지만 모처럼의 주말에 나 같은 아저씨와 나무를 심는 것뿐이라니, 그걸로 괜찮은 거야?」

유키호「아… 죄, 죄송해요. 역시 폐가 되었나요…?」 추욱

P「아니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말이야…」

유키호「그, 그렇다면 부디 함께 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귀찮은 아이라서, 죄송해요…」

이렇듯, 유키호는 조금만 회화의 방향이 그런 쪽으로 흘러가도 금방 자기비하를 시작한다. 유키호의 조금은 고쳐야 할 점이다. 뭐, 이런 점도 아이돌인 유키호를 좋아해 주는 팬들 사이에서는 '보호해 주고 싶어진다'며 나름대로 호평받고 있는 듯 하지만, 프로듀서인 내 입장에선 제법 걱정거리인 것이다.
혹시라도 이런 상태의 유키호를 잘못 대했다간 상당히 커뮤니케이션이 틀어지지만, 유키호를 프로듀스하게 된 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름대로의 경험은 쌓아 왔다.

P「유키호가 바란다면 기꺼이. 그건 그렇고 유키호는 기특하구나. 아무리 그런 날이라고는 해도, 실제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은 유키호 정도밖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유키호「그, 그렇지도 않아요오…」 화악

 조금 얼굴이 붉어진 유키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뺨이 한층 더 붉은색을 더했다. 이런 면도 있기에 싫어할 수가 없다고 할까… 그런 아이인 것이다.

유키호「저기, 목적지는 저희 집 근처의 뒷산인데요… 프로듀서의 집에선 조금 먼 곳이겠지만, 괜찮으신가요?」

P「응. 오늘은 특별한 일정도 없고, 유키호와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유키호「하우우… 노, 놀리지 말아주세요!」

P「하하하… 우선은 조금 기다려 주겠어? 나도 나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

유키호「아, 네!」

그렇게 대답한 유키호를 잠시 문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우선 씻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여자아이, 그것도 아이돌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독신 남성의 주말의 방 안은, 그다지 유키호에게 보여줄 만한 상태가 아니었던 탓이다.
흠흠. 프로듀서에게도 사생활은 있는 법이라고.

P「다 됐어. 오래 기다렸지, 유키호?」

유키호「앗, 아니예요. 아…」

대답하다 말고, 유키호가 어쩐지 신경쓰이는 시선으로 이 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P「…?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

유키호「에? 아, 아무 것도 아니예요! 그냥… 프로듀서의 그런 차림은, 처음 보는 거라서…」

P「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가.」

산에 올라간다고 들었으니 그에 맞게 활동하기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지만, 유키호에겐 신선하게 보인 모양이다. 그야 일할 때엔 언제나 셔츠에 넥타이 차림이니 그럴 만도 하려나.

유키호「에헤헤… 프로듀서의 평소의 모습, 저만 볼 수 있는 거네요?」

P「그렇게 되나? 그다지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 가볼까, 유키호」

유키호「네, 프로듀서!」



그렇게 유키호를 따라나서 전철을 몇 번인가 갈아타고 나자, 유키호가 말했던 산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동네 뒷산이라고 칭하면 딱 어울릴 듯한 소박한 산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키호가 말하는 산이니, 혹시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평범했다.
따라와 주세요오, 라며 앞장서서 나아가는 유키호의 뒤를 따랐다. 몇 명인가 등산객과 스쳐 지나가며 인사도 했지만, 유키호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 오는 통에 조금 곤란하기도 했다. 뭐, 그만큼 유키호가 유명한 아이돌이라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프로듀서로서는 기뻐할 만한 일이겠지.
그리 가파른 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산은 산인 만큼 조금은 숨이 차 왔는데도 유키호는 그렇게 힘든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감탄했다. 레슨과 무대로 다져진 체력, 이라는 것일까. 역시 내 쪽이 운동부족일 뿐인지도 모른다. 약간 반성했다. 

유키호「이제 조금만 가면 도착해요, 프로듀서」

P「… 헉, 헉… 아, 그래…」

유키호「호, 혹시 힘드신가요? 그렇다면 잠깐 쉬어 가도…」

P「아니, 괜찮아… 괜찮으니까 계속 가 줘」

아무리 그래도 내가 프로듀스하는 아이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조금은 유치한 억지를 원동력으로 삼아, 어떻게든 산길을 계속 올랐다.


그 후로 얼마쯤이나 걸었을까. 슬슬 폐의 강도가 걱정되기 시작할 때 즈음, 유키호가 멈춰섰다.

유키호「여기예요, 프로듀서. 올라와 주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드디어 도착한 건가. 무릎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르느라 미처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에, 유키호가 한 손에 들고 있었던 손가방을 내려놓고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 그러고 보면, 유키호는 짐까지 들고 있었던가. 이래서야 완벽한 패배다.
조금 씁쓸한 패배감을 맛보고 있었던 내게 유키호가 다가와,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P「유키호, 이건?」

유키호「준비해 온 묘목이예요. 한 개뿐이지만요」

그리 크지 않은 화분 안에 나무의 묘목이 들어 있었다. 어떤 나무인 걸까. 좀 더 큰 상태였다면 알아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무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은 내게는 구별하는 것은 무리였다.

유키호「나무를 심으러 가겠다고 하니 아버님이 준비해 주셨어요. 으음, 뭔가 대단히 좋은 품종의 나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네요」

P「… 그런 걸 동네 뒷산에 심어도 괜찮은 거야?」

유키호「이, 이상할까요오…」

… 유키호의 아버지라고 듣고 나니, 특별한 점이 없는 묘목인데도 뭔가 대단하게 보인다. 이런 곳에 심어도 괜찮은 나무인 걸까.
숨도 어느 정도 편해졌기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길 중간에 등산객들의 휴식을 위해 마련된 장소라는 느낌의 약간 넓은 공터. 한 쪽에는 아담한 정자가 설치되어 있어, 앉아서 쉬다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연하게도 지금은 등산객이 아무도 없어, 있는 것은 유키호와 나 둘뿐이었다.
유키호는 어떤지 보니 가방 안에서 모종삽을 꺼낸 참이었다. 

 … 뭐라고 하면 좋을까.
유키호가 삽을 들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형용키 힘든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대로 금방이라도 구멍을 파고 숨어들 것 같은 불안감이라고 할까…

유키호「프로듀서?」

P「…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잠시 별 것 아닌 상상을 했어」

유키호「그런가요…?」

P「그런 거야」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유키호는 모종삽과 묘목을 들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걷던 유키호는 정자 앞에서 멈춰서더니,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 땅을 파는 유키호.

끄덕끄덕.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고개가 끄덕여지는 풍경이었다.

유키호「내가 내딛는 한 걸음을~ 비춰 주니까~」 푹 푹

 어느샌가 몰입한 유키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삽을 움직이고 있다. 몇 번이고 생각했던 거지만, 유키호의 의외의 체력은 어쩌면 저 삽질로 단련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항상 큰 삽을 휴대하고 다니는 만큼, 그런대로 신빙성 있는 가설이 아닐까.
그 옆에 다가가,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유키호「멈춰 서 버리더라도~… 아, 프로듀서」

P「조용하고 좋은 곳이네. 유키호는 여기 자주 오는 거야?」

유키호「아, 네에. 등산객 분들이 자주 들리셔서 항상 조용하지는 않지만, 주위의 풍경도 예쁘고… 가끔 등산하러 올 때마다 들리곤 해요」

P「그런가, 유키호는 등산도 하는구나… 조금 의외인걸」

유키호「어디까지나 가끔이고… 저, 저 같은 건 약골에 비실비실한걸요…」

… 하하하.
과도한 겸손은 이따금 타인을 상처입힐 때도 있는 거란다, 유키호.
그래, 굳이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네가 '저 같은 건 빈약해요' 라고 말할 때마다 분한 듯이 혀를 차는 누구라던가 말이야.

유키호「저, 나무를 심는다면 여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어요」 

어딘지 기뻐 보이는 표정으로 유키호가 말을 이었다.


유키호「조그마한 정자 옆의, 누구나 앉아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에 심어서… 물을 주거나 하는 등산객도 있겠죠」

유키호「저도 산에 올라올 때마다 한 번씩 돌봐 주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분명히 큰 나무가 되어 있을 거예요」

유키호「만약 그렇게 되면 딱 적당한 느낌으로 정자에 그늘을 드리워 주지 않을까 해서… 에헤헤」


수줍은 듯 웃는 유키호의 옆얼굴은, 조금은 가냘프면서도, 사랑스러웠다. 프로듀서로서의 감상으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솔직한 느낌이었다.
문득 떠올린 한 마디가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P「그렇네. 그 나무는 앞으로 유키호보다 커지고, 나보다도 커져서, 이 정자보다도 커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P「… 적어도 나만큼 커지기 전까지는, 유키호를 톱 아이돌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유키호「네…?」 갸웃

P「그,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야」

스스로 말하고도 조금 멋쩍어져서 시선을 돌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유키호가 푸훗, 하고 작게 웃었다.

P「… 노, 놀리지 말라고, 유키호. 나름대로 프로듀서로서의 각오를 말한 거니까」

유키호「후훗… 아녜요, 놀리려는 게 아니라… 기뻐서 그러는 거예요, 프로듀서… 쿠훗」

P「역시 웃고 있잖아!」

그 후로도 잠시 동안 키득키득 웃던 유키호는, 내 침통한 얼굴을 보았는지 이내 웃기를 멈추고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유키호「… 그렇네요. 저도, 이렇게나 부족하고 못난 아이지만…」

유키호「힘내서, 프로듀서를 따라서 톱 아이돌이 되어 보일게요」

유키호「그러니까 앞으로도 제 옆에서 저를 도와 주세요, 프로듀서」

P「… 아아, 당연한 거지」

뭐, 제법 잘 알고 있잖아. 웃음거리가 된 것은 조금 어떨까 싶지만, 어쩐지 마음이 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드시, 톱 아이돌로 만들어 주고 싶다. 이 아이의 프로듀서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바람이었다.

유키호「아, 이 정도면 적당한 깊이로 팠으려나요?」

유키호의 말에 구멍을 확인해 보자, 확실히 어느 정도 깊이 파여 있었다. 저 정도 크기의 묘목이라면 충분히 심을 수 있지 않을까.

P「응, 이제 괜찮지 않을까」

유키호「그러면 심을게요」

유키호가 화분에서 묘목을 빼내자, 흙채로 뿌리가 들려나왔다. 그것을 파 놓은 구멍에 조심스레 집어넣은 유키호는 모종삽으로 흙을 다시 채워넣기 시작했다.
방금 이야기했던, 이 나무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조금 행복해 보이는 그 미소에 따라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구멍은 다 채워지고, 이젠 땅 위에 덩그러니 심어진 묘목만이 남게 되었다. 심어놓고 보니 생각보다 더 볼품없는 모양새라 약간 김이 빠졌지만, 유키호는 만족하는 것 같으니 괜찮겠지.

유키호「영차… 이제 내려가도록 해요, 프로듀서」

P「응, 그렇네. 돌아갈까」

유키호「… 또, 만나러 올게」

유키호는 허리를 숙이더니, 묘목을 톡톡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나도 멀찍이서나마 묘목에게 인사를 고했다. 또 만나러 오마.



다행히도 산을 내려오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스스로의 부족한 기초체력을 뼈저리게 실감한 내게는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를 몇십 분. 어느샌가 전철역에 도착해 있었다.

유키호「프로듀서, 그러면 전 이제 집으로 돌아갈게요」

유키호「오늘은 저 같은 것과 어울려 주셔서… 저, 정말 감사했어요!」 꾸벅

 유키호는 두 손을 모으고선 크게 허리숙여 인사를 했다. …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관계인데, 저렇게까지 정중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것이 유키호인 것이다.

P「아니, 나도 오랜만에 산에 갈 수 있어서 즐거웠어. 나름대로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고」

그러고 보면, 묘목에게도 그런 약속을 했었지. 조금은 사족을 달아도 괜찮을까.

P「… 유키호. 나중에 유키호가 지금보다 더 유명한 아이돌이 되어서, 저 나무도 지금보다 훨씬 자라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나면」

P「그 때는… 또 같이 보러 와줄 테니까.」

P「유키호가 좋을 때에 불러 줘. 기다리고 있을게」

네에, 라고.
언제나처럼 말끝을 길게 늘이는 말투로 인사하며, 유키호는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나를 배웅했다.

웃음도, 눈물도, 그 모든 것과 함께 걸어나가.
분명, 강해질 수 있었어.

유키호가 흥얼거리던 곡의 가사를, 어울리지 않게도 약간 중얼거려 보았다.
이제 특별한 시간도 끝나고, 언제나의 일상이 시작된다. 그것은 톱 아이돌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가는 과정.
하지만, 그 과정에도 조금 특별한 기다림이 하나 더해질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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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초유의 식목일 기념 SS.
유키호의 좋은 점을 충분히 전하기에는 부족했겠지만,
정말 간만에 막힘없이 써내려갈 수 있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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