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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4월 3일의 기적."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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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3, 2014 23:42에 작성됨.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두고 취직자리에 골머리를 썩던 어떤 겨울날 일이었다. 그 날도 면접에서 죽을 쑤고 친구들을 불러 가부키쵸에서 술이나 한 잔 할 생각이었다. 기운도 없고, 자괴감에 남 시선도 신경쓰이지 않게 되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신주쿠 거리를 걷고 있었던 차에 누군가 어깨를 쿡쿡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기운없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 바라보니 감색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년인이 서 있었다.
 
"자네, 팅하고 왔네. 취업 준비생으로 보이네만, 혹시 괜찮다면 나와 잠시 이야기 하지 않겠나?"
 
평소였다면 의심에 젖어 손만 대충 휘휘 저어 거절하고 지나쳤을테지만, 나 자신, 어지간히 졸업 전에 취직하고 싶었는지 그 말에 훌렁 넘어가 중년 남자와 가까이 있던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타카기 준지로. 연예인 사무소 765프로덕션을 경영하고 있네."
 
그렇게 자기 소개를 하며 정중히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도 제대로 765프로덕션이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제게 말을 거신 이유는...”
 
"처음에 말 하지 않았나. 팅하고 왔다네. 직감이 말이야."
 
타카기씨는 영문 모를 소리를 당연하다는 듯 입에 담았다.
 
"여하튼 그래서 말이네. 자네를 우리 사무소에서 고용하고 싶네만, 어떤가? 취직도 잘 되지 않아 곤란해보이네만."
 
그 말 그대로였기에 뭐라 딱히 대답도 못 하고 어물거리고 있으니 타카시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사무소는 여자 아이돌이 주력이라서 말이지. 귀여~운 소녀들이 즐비한 직장에서 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득이라 보지 않나?"
 
타카기씨가 단정한 풍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대학시절 내내 남자놈들과만 어울려 다녔던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끄응,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타카기씨는 그런 내 모습에 다시금 슬쩍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가 졸업할 때까지 대략 한달 반. 그 동안만 고민해주게. 자네가 거절한다면, 나는 쓰린 속을 다잡고 물러나는 수 밖에. 그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 주게."
 
타카기씨가 떠나며 그런 말을 남겼다. 어쩔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평소 이상으로 친구들에게 걱정을 끼치며 한계까지 퍼 마신 그 날의 술맛은 예상 이상으로 최악이었고, 숙취는 이틀이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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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졸업하는 그 날까지 취직하지 못 하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보루로 넣었던 아주 작은 규모의 무역사마저 불합격한 탓에 내 자존심은 바닥에 곤두박질 쳐 있었다. 짜증나니 술이나 한 잔 할까 하며 지갑을 뒤지던 도중에 명함이 한 장 눈에 띄었다.
 
‘765프로덕션 사장 타카기 준지로.’
 
그러고보니 연예인 사무소의 사장이 직접 돌아다니며 직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팅하고 왔다’니 뭐니 하면서. 그래, 이 명함을 발견한 내 심정이 바로 ‘팅하고 왔다’ 였다. 어차피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심, 취직만 하면 아무래도 좋았다.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명함에 적혀있는 사무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765프로덕션입니다.
 
새가 지저귀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가 휴대전화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곤혹스러운 나머지 전화에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거리고 있자니 다시 상대방에서 무언가 말 하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혹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다면 통화 상태가 안 좋으니 다시 걸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만.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할 말을 정돈하려 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쪽 사장님이라는 타카기 준지로씨가 저를 고용하려 하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저, 그게, 타카기 준지로라는 분이 계신가요?”
 
- 네. 저희 사장님이십니다만, 지금은 업무로 인해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용건을 말씀해주신다면 돌아오시는 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타카기씨에게 자기소개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그, 어, 신주쿠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이라고 하면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명함을 주시며 일자리가 곤란할 때 연락하라고 하셨습니다만.”
 
- 아-, 사장님께서 팅하고 온 사람이 있다며 슬슬 전화가 올 때가 됐다고 하신 그 분이시군요. 전화가 오면 사무소 주소를 알려드리고 찾아오라고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만, 알려 드릴까요?
 
타카기씨는 나를 기억하고 있던 것 뿐 아니라 벌써 고용할 준비까지 하고 있던 모양이다. 이제 나로써는 거절 할 구실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런 뜻을 전하자 전화 상대는 사무소 주소를 알려주었다. …어쩐지 사장이나 되는 사람이 직접 사람을 구하러 다닌다 싶었더니, 사무소가 신주쿠였구나. 물론 신주쿠 역 근처는 아니었지만….
 
“아,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바로 찾아뵈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 네, 사장님께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세요. 아마 내일은 하루 종일 사무소에 계실테니 언제 오셔도 괜찮아요.
 
“그러면 오후 두시쯤 찾아뵙도록 하지요. 사장님께 감사인사를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꼭 전해드릴게요. 참, 빌딩 입구는 건물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셔야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이래저래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미리 내일 채비를 시작한다. 양복에 술냄새에 담배냄새, 같이 마신 친구가 토악질을 해 댄 탓에 그 냄새까지 배어 끔찍한 냄새가 났기에 황급히 세탁기에 던져넣고 타카기씨를 만나 할 얘기와 물어볼 것 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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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심히 세탁한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냄새를 빼려고 열심히 빨기는 빨았지만 아직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확인해본 결과 20분 가까이 걸어야 하는건 마찬가지지만, 요요기 역에서 내리는 편이 그나마 가까웠다. 아예 일찌감치 집을 나서서 신주쿠에서 점심을 먹고 약간 시간을 보낸 뒤에 765프로덕션 사무소에 찾아가기로 했다. 10분정도 일찍 사무소 주소에 도착했다. 4층 건물의 3층 창문에 검테이프로 커다랗게 765라고 쓰여 있었다. 알아보기 참 편하네. 피식 웃으며 어제 들은대로 건물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계단 옆에 박스가 난잡하게 쌓여있었다. 1층 정식집의 물건일까. 당연하게 엘리베이터를 향해 갔지만, 커다랗게 ‘고장’이라고 써 있었다. 3층이면 별로 높은것도 아니니 별 생각 없이 걸어 올라갔다.
3층에 도착하자 눈 앞에 바로 보이는 것은 비어있는 옷걸이와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작은 철제 사물함이었다. 사무소가 좁아서 밖에 내놓았나, 하며 흐린 유리창에 궁서체로 765프로덕션이라 적힌 문을 두들기고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어제 전화드린 P입니다만.”
 
“아-, 오셨네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인사를 듣는둥 마는둥 사무소를 두리번거리다가 코앞까지 사람이 온 것을 느끼고 앞을 보자 상당한 미인이 있었다. 찰랑이는 단발을 노란색 카츄사로 장식하고, 녹색을 기조로 한 사무원 제복을 맵시좋게 차려입은 스타일마저 좋은 사람이었다. 오른쪽 입꼬리 아래쪽에 흔히 먼로점이라 부르는 점이 있어서 그 스타일에서 나오는 색기를 더욱 더 강조하고 있었다.
 
“저, 저기….”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 미인이 뺨을 살짝 붉히며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인사를 하기로 했다.
 
“아, 죄송합니다. P라고 합니다. 어제 전화받으셨던 분이신가요?”
 
“네. 765프로덕션의 사무업무를 담당하고있는 오토나시 코토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오토나시씨. 사장님은 안에 계신가요?”
 
“네, 사장실에 계세요. 지금 바로 안내해드릴게요.”
 
어제 하루 종일 사무소에 있는다 했지만, 오늘 갑자기 예정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기우였다.
 
“사장님, P씨가 찾아오셨습니다.”
 
- 오, 어서 들어오게.
 
사무소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문이 사장실 문이었던 모양이다. 사장실은 뭐,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평범한 모습이었다. 벽에 책장이 두엇 있고, 창문을 등진 커다란 업무 책상, 그리고 문 가까이에 놓인 응접 테이블 등 무엇 하나 특이한 구석은 없었다.
 
“어서오게, 이렇게 찾아온 것을 보니 결국 취업은 실패했나보군?”
 
타카기씨는 씩 웃으며 놀리듯 말하며 응접 테이블 상석에 앉으며 나도 앉으라고 권했다.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았다.
 
“뭐, 그렇죠. 마지막 보험이라 생각했던 회사마저 저를 안 받아주더군요.”
 
“이렇게 찾아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네만, 꽤나 빨리 왔군. 내 생각으로는 졸업하고 난 뒤에도 한두달 취업전선에서 구르다가 찾아올 것 같았어.”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홧술이나 하려 지갑을 뒤지다가 전에 주셨던 명함을 발견했거든요. 그때 하신 그 말을 빌리자면, ‘팅하고’ 왔습니다.”
 
그 때 그 만남을 떠올리며 농담조로 말하자, 타카기 사장은 무릎을 치며 커다랗게 웃었다.
 
“하하하! 그래그래, 팅하고 왔다 이거지. 좋네, 좋아. 자네만 생각이 있다면 당장 내일부터 일 해 줬으면 해.”
 
“네? 따로 면접 같은 것도 없이 말인가요?”
 
너무도 호쾌한 결정에 아연해져서 묻자, 타카기씨는 무슨 당연한걸 묻냐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말하지 않았나? 팅하고 왔다고. 이미 면접은 본 것과 마찬가지네.”
 
“네…. 그럼 저는 무슨 일을 하게 되는거죠? 역시 사무업무인가요?”
 
내 질문에 타카기씨는 별 이상한 질문을 다 한다는 듯 기묘한 표정을 짓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뼉을 치고서는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설명하지 않았군. 우리 765프로는 분명 앞으로 커다란 별이 될 소녀들을 열둘이나 데리고 있네만, 아쉽게도 그 소녀들을 별이 그득한 하늘로 이끌어 갈 프로듀서가 없는 상황이네.”
 
“네….”
 
“그 아이들의 재능은 보증할 수 있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원석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끄집어 내서 다듬지 않으면 빛날 수 없는 법이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도중에 자네가 내 눈 앞에 나타난걸세. 정말 팅하고 왔지.”
 
“그 말씀은….”
 
“자네는 앞으로 우리 765프로의 프로듀서로 일해줬으면 하네.”
 
너무 터무니없는 말에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아이돌은 TV에서밖에 본 기억이 없고, 그마저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다. 지금 가장 잘 나가는 아이돌이 누군지를 물어도 대답하지 못 할 판에, 아이돌을 프로듀스하라고? 농담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물론, 이 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네에게 아무 준비 없이 일을 하라는 말은 아니네. 자네가 이 제안을 승낙한다면 기초는 모두 알려주겠네. 그것만으로 자네는 저 아이들을 빛나는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밝게 빛나게 만들 수 있네, 내 보증함세.”
 
…기초를 배울 수 있던 없던, 이 제안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올해 신입사원 모집 기간은 대부분 끝나가고, 남아있는 회사에 내가 취직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하물며 여기서는 나를 꼭 데려가야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타카기 사장님.”
 
“그래,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하네. 그리고 곧바로 업무 교육을 시작해보도록 할까. 내 자네를 위해 기본적인 내용들을 최대한 압축해 소책자로 준비했네. 내가 간파한 자네의 재능이라면 이 정도 정보만 가지고도 충분히 그 아이들을 다듬을 수 있을테지.”
 
그렇게 말하며 타카기씨…아니, 이제 사장님이다. 사장님이 책상 서랍에서 꺼내 온 것은 A5사이즈의 파일이었다. 받아들자마자 목차부터 확인했다. 업무 기초, 프로듀서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영업, 아이돌을 대하는 방법, 컨디션 관리법, 스케쥴 관리 노하우, 판매 전략 등등…, 2백장 정도 되는 분량 안에 사장님이 말씀하신 기초가 들어있는 모양이다.
 
“그럼, 오늘부터 2주간…. 그래, 4월 3일까지는 출근하지 않아도 좋네. 월급을 빼지는 않을테니 걱정하지 말고. 대신 그 매뉴얼을 철저히 읽고, 번화가를 다니며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도록 하게. 그리고 4월 3일 아침, 자네가 파악한 트렌드를 매뉴얼의 내용에 대입해 내게 보고하게. 그것이 자네의 첫 일일세. 알겠나?”
 
“네.”
 
“음, 이 방에 들어올 때 까지만 해도 가지고 있던 망설임이 깔끔하게 사라졌군.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분발하게.”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2주 후에 만나세.”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고개를 깊게 숙이고 사장실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기울여 안에서 하는 대화를 엿듣고 있던 오토나시씨가 있었다. 문을 연 채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오토나시씨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세를 바로 잡고 사무소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뒷모습을 보니 목덜미까지 새빨갛다. 미인인데 저런 모습은 왠지 깨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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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낮에는 매뉴얼을 읽으며 공부하고, 밤에는 번화가라는 번화가는 모두 돌아보며 첫 업무를 했다. 취업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을 때, 하나같이 ‘너처럼 옷도 변변하게 못 갖춰입는 놈이 무슨 아이돌 프로듀서냐. 조만간 잘리겠구나’ 같은 반응을 보이기에 오히려 오기가 생겨 더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타카기 사장님의 말씀대로라고나 할까, 매뉴얼을 읽으며 번화가를 관찰하자 확실히 세간의 유행이 읽히기 시작했다. 십대의 거리, 이십대의 거리 혹은 패셔너블한 이들의 거리, 신나게 놀기 원하는 이들의 거리 등, 유행이 모두 다르고 그 유행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2주 전의 나는 눈꼽만큼도 모르던 사실이다.
 
그리고 4월 3일이 찾아왔다. 첫 출근, 그리고 이 첫 출근이 내 앞으로의 직장 생활을 결정할 것이다. 아무래도 첫 출근인 만큼 규정된 출근 시간인 9시보다 한 시간 일찍 사무소에 도착했다. 빌딩 앞에 서서 일찍 와봐야 분명 문이 잠겨 있을 텐데 어쩌지, 하는 생각을 20분 가까이 하다가 혹시 열려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문고리를 돌려봤더니 웬걸, 20분간 헛 고민했다는 듯 문이 열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누군가 있다는 뜻일테니, 문을 열고 힘차게 아침인사를 하며 사무소에 들어갔다. 사무소 안에는 청소를 막 끝냈는지 빗자루를 정리하고 있는 오토나시씨가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P씨. 첫 출근부터 굉장히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오토나시씨.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요. 오토나시씨도 굉장히 일찍 출근하셨네요.”
 
“네, 신입사원이 오니 분명 일찍 출근할거라 생각했거든요.”
 
“아하하, 생각이 읽혀버렸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뭐, 신입사원이 하는 생각 따위 다 비슷하겠지. 나는 처음 방문했던 날 제대로 살펴보지 못 한 사무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건 업무용 책상들. 실제로 사용하고 있어서 서류등이 가득 꽂힌 책상이 둘, 그리고 창문을 등지고 있는 사용하지 않아서 텅텅 비어있는 책상이 둘 있었다. 저 둘 중 하나가 내 자리가 되겠지.
 
“아, 사무소 안내를 해드려야겠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내가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본 오토나시씨가 안내해주겠다고 나섰다.
 
“입구에서 오른쪽 창가쪽에 책상 네 개가 있지요? 안쪽으로 있는 책상 두 개가 지금 저하고 사무원 겸 아이돌인 아키즈키 리츠코씨가 사용하는 책상이에요. P씨는 반대쪽 책상 둘 중 하나를 쓰시면 돼요.”
 
역시 그렇군. 그런데 사무원 겸 아이돌?
 
“사무원 겸 아이돌이라니요?”
 
“아…, 리츠코씨는 원래 사무원 아르바이트로 들어오셨는데 사장님이 ‘팅하고 왔다’고 하시면서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아이돌도 같이 하고 계세요. 사무원으로서도 유능하고, 아이돌의 재능도 충분해요.”
 
“아…, 대단한 분이네요….”
 
“그렇죠? 나이 열 아홉에 그렇게 사무업무를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저는 매일같이 혼나는걸요….”
 
“…….”
 
별로 듣고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20대 중반은 되어보이는 사람이 19살 아이한테 일을 못한다고 혼난다니….
 
“우……, 왠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지만, 넘어갈게요. 저쪽 칸막이 안쪽이 응접실이에요. 사무소에서 기자님들과 인터뷰 할 때나 아이돌 상품 관련해서 업체 직원분이 오실 때 쓰기 위해 만들어 둔 곳이에요.”
 
……설명이 이상하다. 마치 아직 한번도 못 써봤다는 것 같은데…….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 것 같네요. 그리고 거의 틀리지 않았을거에요…….”
 
“정말인가요…….”
 
“하지만 P씨가 오셨으니 앞으로는 달라질거라고 믿어요! 그럼 다음 갈게요. 응접실을 보고 바로 왼쪽이 우리 아이돌들 휴게실이에요. 아직 대부분 일이 없어서 사무소에서 집에 돌아갈 때 까지 저기 앉아서 놀고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면서도 너무 슬퍼요….”
 
“…….”
 
너무하다. 상상 이상으로 너무하다. 사장님이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그정도일줄은 몰랐다….
 
“그리고 사장실 바로 오른쪽이 급탕실이에요. 차를 타거나 간단한 간식정도는 만들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어요. 그리고 휴게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저 화이트보드가 우리 아이돌들 스케쥴표에요! 새하얗지만요…….”
 
취직 안하는게 낫지 않았을까……하는 불안감이 몸을 엄습한다. 정말 괜찮은건가 이 회사…….
 
그렇게 안내가 끝난 뒤 내 자리를 정해서 정돈하고 오토나시씨에게 이런저런 업무에 대해 듣고 있자니 사장님이 출근하셨다. 사장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단히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바로 들어오라고 하며 사장실로 들어가셨다.
 
똑똑.
 
“P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래그래, 어서 들어오게.
 
2주 전에 봤던 것과 똑같은 방이다. 뭐, 당연한가.
 
“어디, 처음 출근한 감상은 어떤가? 오토나시군이 이것저것 알려줬을테지?”
 
“네…….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프로듀서가 없어서 아이돌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지만, 설마 모두 다 일이 하나도 없을줄이야….”
 
“하하, 내가 자네에게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걸세. 그래, 내 숙제는 제대로 했나?”
 
“물론입니다. 지난 2주간 도내의 수많은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트렌드를 읽어 봤습니다만…….”
 
그리고 대략 30분에 걸쳐 내가 알게 된 내용들을 하나하나 보고했다. 처음에는 기대된다는 표정이던 사장님은 점차 눈이 동그래지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함박웃음을 짓고 계셨다.
 
“하하하하!! 아주 만족스럽군. 아직 미숙한 면은 있네만, 내가 처음에 기대한 것보다 아득히 훌륭한 결과네. 정말 만족스러워!”
 
사장님은 박수까지 치면서 기뻐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는 실감은 없었지만, 저렇게 놀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런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략 5분간 박수치며 즐거워하던 사장님은 어느정도 진정되었는지 자세를 바로하고 책상 서랍에서 파일을 하나 꺼냈다.
 
“자, 이것이 자네에게 부탁할 아이돌들의 프로필이네. 총 열 두 명이 있네만, 일단 한 아이만 부탁하도록 하지. 이 파일에서 자네가 가장 ‘팅하고 온’ 아이를 한명 골라주게.”
 
파일을 받아 한 장, 한 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아키즈키 리츠코, 아마미 하루카, 가나하 히비키, 키쿠치 마코토, 키사라기 치하야, 시죠 타카네, 타카츠키 야요이, 하기와라 유키호, 후타미 아미, 후타미 마미, 호시이 미키, 미나세 이오리. 이렇게 열 세 명인가. 나이가 열 세 살에서 스물 한 살까지…범위가 상당히 넓구나. 전원 어디서 이렇게 긁어모았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한명 한명이 겹치는 개성이 없다. ……하지만 선재 사진에서는 그 매력이 눈꼽만큼도 전해지지 않는 점이 대단하다. 세상에, 이렇게 엉망으로 찍을 수도 있구나…… 특히 이 쌍둥이. 원숭이 옷은 대체 무슨 센스야……. 프로필을 앞뒤로 팔락이며 보던 중에 어느새한 장의 프로필에서 손이 멈췄다. 
 
아마미 하루카, 17세. 키는 158cm, 몸무게는 46kg. 생일은… 오늘이네? 흠, 혈액형은 O형이고, 쓰리사이즈가 83-56-82. 키에 비해 상당한 몸매구나… 똑같이 고등학교 2학년인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아이와 비교된다. 양쪽 옆머리에 단 리본이 특징적인 귀여운 아이다. 응, 이 아이를 맨 처음 맡아보고 싶어.
 
“슬슬 결정한 모양이군? 어디어디, 아마미 하루카군인가.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아이네. 조금 덜렁대는 것이 옥에 티네만,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재능을 가진 아이네. 지금쯤 와 있을테니 가서 만나보게. 그리고 업무 보고는 2주에 한번 월요일에 하도록 하고, 그 프로필 파일은 가져가게.”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나왔다. 사장실을 나서자 여자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수다를 떠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온걸 눈치챈 오토나시씨가 이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자, 얘들아. 잠깐만 주목해주겠니? 소개 할 사람이 있어.”
 
“뭐야? 소개 할 사람이라니. 이 이오리쨩을 모실 하인이라도 데려온거야?”
“이오리쨩, 그건 아니지 않을까~?”
““누구? 누구? 뭐하는 사람?””
“어머, 새로 직원분이라도 오신건가요?”
 
“아즈사씨 말씀대로에요. P씨, 이쪽으로 와주세요.”
 
나는 약간 쭈뼛거리며 코토리씨 옆에 섰다. 이미 프로필은 전부 보았으나, 실물을 보니 더더욱 대단한 매력에 위축되고 말았다.
 
“반갑습니다, 오늘부로 765프로의 프로듀서로서 근무하게 된 P라고 합니다. 아직 여러분 모두를 맡을 수는 없겠지만, 더더욱 노력해서 모두 다 톱 아이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왠지 모자라보이네, 당신.”
“이오리쨩, 처음 뵙는 분에게 말이 심해.”
““저기저기, 오빠. 아미랑 마미도 프로듀스 해 줄거야?””
“어머머, 기대하고 있을게요, 프로듀서씨.”
 
“미나세 이오리양, 지금은 못미더울지 모르겠지만, 금방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줄테니 기대해줘. 그리고, 타카츠키 야요이양, 감싸줘서 고마워. 후타미 아미와 후타미 마미지? 조금만 기다려주면 최고의 아이돌로 만들어 줄게. 그리고, 미우라 아즈사씨. 그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에게 대답하면서 나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개를 돌린 미나세 이오리를 제외한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이 기대에 보답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하지만, 그를 위해서 한 명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도록 해 볼까.
 
“그런데, 아마미 하루카양은 사무소에 오지 않았나요? 처음에 그녀를 프로듀스 해 볼 생각입니다만.”
 
오토나시씨에게 물어보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금새 뭔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말 했다.
 
“아마, 근처 공원에 가 있을거에요. 벚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들떠있었으니까요. 한 번 찾아가보세요.”
 
봄 향기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꽃을 보러 갔다니, 참으로 어울리는 모습이다. 나는 오토나시씨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한 뒤 그 공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사무소에서 걸어서 대략 10분거리에 있는 요요기 공원에 벚꽃이 대단히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사진으로 본 인상만으로 아마미 하루카를 찾아서 공원을 한참 헤메이고 있었더니, 벚꽃을 올려다 보고 있는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목덜미까지 오는 갈색 단발, 체크무늬 블라우스와 검은 미니스커트. 머리 양 옆에 묶은 노란 리본. 아마미 하루카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나 걸어보기로 했다.
 
“저기….”
 
“네?”
 
소녀가 뒤돌아 보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 안에, 천사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정돈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프로필에서 본 그 사진, 아마미 하루카였다.
 
“아…저…아마미 하루카양, 맞지요?”
 
“아, 네! 맞아요. ……어디서 뵌 적이 있던가요? 그렇다면 죄송해요, 정말로 기억이 안 나네요…….”
 
“아, 아뇨. 저기, 그…이번에 당신을 프로듀스하게 된 765프로의 신입사원, P라고 합니다.”
 
“에? 네? 프로듀스? 저를요?”
 
흩날리는 벚꽃 잎 안에서 놀란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 그 때 그 모습에, 나는…….
 
이 소녀에게 반한 것이 아닐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서장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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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본업 번역쟁이인 카네P입니다. 창작판에서 뵙는건 처음이네요.
 
하루카 오신 날 기념, 카네P의 더러운 창작력 전개 장편 프로젝트입니다. 분량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략 크리스마스 까지의 이야기를 그려 볼 예정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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