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실패한 사랑은 집착이 되어야 하는가 (中)

댓글: 7 / 조회: 1594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3-28, 2014 23:28에 작성됨.



실패한 사랑은 집착이 되어야 하는가 (中)


Ami side

집 앞에 익숙한 형태의 검은색 폴크스바겐이 선다.
볼 때마다 잡티 없이 번쩍거리는 차체는 주인의 성품을 고스란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전석의 윈도가 내려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나의 프로듀서. 릿쨩이다. 

"안녕 릿쨩"
"준비는 다 했니?"
"응"

인사를 하면서 조수석에 타자, 릿쨩의 차가 미끄러지듯이 출발한다.
3월이 되었어도 아직은 제법 쌀쌀한 거리가 차창 밖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마치 우리들의 시간처럼, 옆에있던 풍경은 어느새 지나가 버리는 걸까.
지나쳐버린 우리들의 세월을 나는 추억한다.

◇◆◇

765 프로덕션에 들어와서, 오빠를 만나고, 모두를 만나고.
아이돌을 시작한 지도 그렇게 벌써 3년이 훌쩍 지나, 4년이 다 되어간다.
약 4년 동안 사무소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4년이면 무엇이 어떻게 변한다고 말 해야 할까?
10으로도 5로도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애매한 기간 동안에, 변한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많이 있었다.

사무소는 어느덧 업계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규모가 커져서 새로운 후배들도 들어왔고, 집에서 걸어가기는 조금 힘들 정도의 위치에 있는 중심가의 큰 빌딩으로 사무소 위치도 이전했다.
칸막이로만 구분되어 있던 '휴게실'은, 이제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파와 커다란 TV 등으로 구성된 별도의 큰 리빙룸으로 변모해있다.   
옛날에는 프로듀서라곤 릿쨩과 오빠뿐이었는데, 이제는 원년 멤버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프로듀서 오빠, 언니들이 각 아이돌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많아 봤자 2~3명 혹은 하나의 유닛만을 담당하는 새로운 프로듀서들에게 있어서, 밑바닥부터 원년 멤버들의 황금시대를 일구어낸 오빠와 릿쨩은 이미 전설 취급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방송국의 관계자 사이에서 떠도는 '무대 뒤의 히다카 마이'가 오빠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모두 진심으로 빵 터졌다

아니 정말로, 다른 사무소의 아이돌들에게 사인해주는 것도 봤다니까?

아이돌처럼 프로듀서에도 랭크가 있다면 S랭크 프로듀서(혹은 전설의 프로듀서)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한편 원년 멤버들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아니면 변하지 않은 듯 변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어디 보자……


야요이치는 키가 컸지만, 여전히 귀엽다. 옛날처럼 금전적인 곤경을 겪고 있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얼마 전에 남동생이 중학교에 입학했다는 것 같다. 

이오링은 성격이 꽤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틱틱대는 부분이 있다. 4년동안 츤데레라니 얼마나 한결같은 거야.

마코찡은 여전히 언니 팬이 많지만 오빠 팬도 만만치 않게 늘어났다. 단지, 마코찡이 바라던 '귀여워~' 같은 시선은 아닌 것 같고, 쿨계 여성에 대한 동경에 가깝지만 마코찡은 행복한 듯 하다.

히비킹은 변함없이 활기차지만 햄조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부쩍 잠이 많아진 거 같다. 히비킹이 요새 걱정이 많은 듯하다. 

공주찡은… 변한게 없다. 공주찡은 왠지 태어났을 때부터 이 모습이었을 것 같다.

하루룽은 항상 밝고 상냥하지만, 예전만큼 잘 넘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요전에는 대학생 앙케이트에서 '결혼하고 싶은 여성 1위'로 선정되었다고 오빠에게 자랑했었지.

미키미키는 아직도 주먹밥을 좋아하지만, 낮잠은 좀 줄인 것 같다. 하루에 30분 정도로? 처음 만난 후배들 앞에서 오빠를 허니라고 불렀을 때는 난리가 났지만, 지금은 모두 적응했다.

유키뿅은 이제 소심하다기보단 배려가 넘치는 가련한 여성에 가까워졌다. 그래서인지 근래에 여동생 팬들이 부쩍 늘어났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거구나, 마코찡.

아, 그리고 릿쨩은 여전히 귀신 중사다! 단지, 후배 아이돌들에게는 여러모로 무른 면이 있다. 나 때는 안 저랬는데… 뭔가 치사하다고.

마미는……


뭐 아무튼.

이들은 세월에 비해서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이돌'이라서일까? 시간이 흘렀어도 가장 중요한 각자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즈사 언니의 표현대로라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님' 들이다.

그에 비해서 치하야 언니, 아즈사 언니, 그리고 피요…아니 코토리 언니에게는 큰 변화가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피요쨩… 아니 코토리 언니의 결혼이었다. 

상대는 연예계와는 관계없는 한 회사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는데, 피요…아니 코토리 언니의 말에 따르면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나 뭐라나. 
아무래도 팅 하고 왔다는 듯하다. 대단하구나 '팅'이라는 건.

'나, 20대에 결혼할 수 있었어---!!' 하고 절규하던 코토리 언니의 결혼식 전날 모습은 아마 내가 죽을 날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결혼한 후에도 사무소를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딸을 출산하면서 사장님에게 무기한 육아휴가를 받은 것 같다.
얼마 전에 딸을 데리고 사무소에 왔는데, 딸도 귀여웠지만 완연한 어머니의 모습이 된 코토리 언니는 
그 옛날 혼자서 얇은 책을 읽으며 '크헤헤' 하고 웃던 피요쨩과는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를 두고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쓸쓸하다구…

두 번째로 있던 변화는 1년 전쯤에 있었던 치하야 언니의 출국이다.

애당초 아이돌보다는 세계적인 가수를 목표로 했던 치하야 언니는, 미국의 거대 음악 프로덕션과 제휴하는 형태로 해서 미국에 진출할 수 있을만큼, 국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고고한 가희를 모르는 일본인은 없다.
하지만 그 가희에게도 모두와 함께했던 3년간의 세월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시간이었다고 해도 되겠지.

출국 당일 아침까지는 무덤덤해 보였던 치하야 언니의 표정은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해서
모두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하루룽이 '괜찮다면 비행기 안에서 먹어줘.' 하면서 내민 쿠키 주머니를 받았을 때는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장님은 치하야 언니와 계속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반년에 한번은 귀국할 거라고 우릴 달래줬지만…
그것이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사장님도 잘 알고 계시는지 그 이상 말씀하진 않았다.

시간이 되어, 치하야 언니가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게이트를 통과하려 할 때는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치하야쨩! 힘내! 꼭 건강히 돌아와야 해!' 

하고 하루룽이 외쳤을 때에는, 결국 모두 울어버렸다.

처음 만났을 때에 노래 이외의 모든 것을 거절하는 것 같았던 치하야 언니는
차가운듯한 표정에 미소 짓는 것조차 곤란해하던 치하야 언니는
하지만 사실은 단지 남을 대하는 게 서툴렀을 뿐인 치하야 언니는
 
발걸음을 멈춘 채 떨리는 작은 등을 돌려 우리 쪽을 향했다.
눈물로 뿌옇게 된 시야 속에 비친 치하야 언니의 표정은 울고 있었다.

"…응!"

그리고 웃었다.
모두와 '약속'을 부르던 때와 똑 닮은 그 미소를 보면서
아, 치하야 언니는 변할 수 있었구나…… 하고 마음속 깊이 느꼈다.

◇◆◇

치하야 언니는 그 후에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사무소에 전화한다. 
한 달 전에는 귀국해서 사무소에 들르자 후배들이 엄청나게 달라붙어서 쭈뼛쭈뼛 곤란해했다. 그 흐름을 타고 하루룽까지 달라붙은 건 좀 깼…귀여웠지만.
그런 부분은 미국에 갔어도 여전히 치하야 언니답지만, 그래도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조금 더 부드러운 미소로 주변에 응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려나.


치하야 언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변화라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일수록, 그리워지기 쉬운 법이다.
사무소에는 어린애 같은 면모가 있던 동인녀 피요쨩도, 무뚝뚝하게 주변을 거절하는 치하야 언니도 더는 없다.
변화는 시간이 흘러간 자국과도 같아서,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무언가는 변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따위는 없다. 


"도착했어"

상념을 깨는 릿쨩의 목소리에 나는 급작스레 현실로 의식을 되돌린다.
눈앞에 보이는 건 거대한 돔. 달리던 차는 어느새 멈춰있다.
꽤 긴 시간 동안 멍하니 있었던 모양이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오늘 정도는 나답지 않게 감상에 빠져버리게 되는걸.

"먼저 들어가서 준비해"
"예~써~"

오늘은 류구 코마치의 해체 콘서트. 

그리고 아즈사 언니의 은퇴가 있는 날이니까.


P side

몇 시간 후에 아즈사씨가 은퇴한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감회에 젖지 않을 수가 없다.
나나 리츠코나 소속 아이돌의 은퇴는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아마 리츠코는 나보다 더 할 테고.
그 리츠코는 지금 무대 아래쪽에서 리허설과 최종 점검작업 등으로 한창이다.
뭔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아이돌의 마지막 정도는 제가 마무리 짓고 싶네요.'라고 거절하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류구의 4년은 오롯이 리츠코와 그녀들의 것이었으니까.

아이돌 미우라 아즈사가 은퇴.

내가 직접 프로듀스하는 아이돌 중에 아직 은퇴한 아이는 없지만, 언젠가는 치하야나 아즈사씨처럼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나갈 것이다.
765의 작은 사무소에서 손을 겹쳐 화이팅을 외치던 모습을 떠올려, 괜스레 손이 시려진다.
포개어진 손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나는 프로듀서를 그만둘 때까지 보게 되겠지.


"모든 것이 끝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인가……"

아즈사씨의 말 아래서 느껴졌던 감정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괴롭다.
그것은 내가 제일 경계했던 감정. 책임감의 우리 속에 깊게 가둬둔 마음.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그녀들은 알고 있음에도 쇠창살 너머로 손을 뻗어와 내 죄책감을 마구 찌른다. 

그 모습은 얼마나 무섭고, 애처롭고, 사랑스럽고…

원망스러운가.

◇◆◇

약 1년 전, 치하야가 미국으로 떠났을 때가 떠오른다.
치하야는 함께했던 3년간 정말로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주로 좋은 의미로.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잘 웃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기분 좋은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곧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노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믿고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고집을 항상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들 때마다 옆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쁘게 웃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프로듀서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떠나기 약 일주일 전, 치하야는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거절의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치하야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다. 그것이 그녀의 말에서 전해졌기 때문이다.
마음을 거절해야 하는 고통을 가지지 않도록, 그야말로 상대가 '나'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배려.
혼자서 사랑하고, 스스로 거절하고, 자신만이 상처받고, 갈무리해 그 결론만을 전달하는 고독한 과정을, 그녀는 나를 위해 해 주었던 것이다.

정말로 어른이 되었구나, 치하야. 
그리고 미안해.

그 모든 마음을 담아 나는 단지 한마디 대답했다.

고마워.


공항에서 작별하기 직전 치하야가 잠시 나를 따로 불러냈다.
출국 당일. 몹시 우울할 거라 생각했던 치하야는,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일본에의 미련을 끊어냈다는 증거와도 같아서 시원섭섭했다. 물론 나에게 그것을 입에 담을 자격 따윈 없다.
치하야 특유의 진지한 눈이 나를 직시하자, 주위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역시 현역 톱 아이돌이라고나 할까.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던 나에게 치하야는 말했다.

"프로듀서. 하루카를 잘 부탁드려요."
"이봐, 나는 하루카의 프로듀서라고?"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할 거다. 하루카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아니면 하루카가 담당을 바꿔달라고 요청한다든지……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외로워서 죽어버린다.
하지만 치하야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치하야의 표정이 살짝 흐려진다.

"…알고 계시면서"
"모른다고"
"프로듀서"
"…"
"하다못해…… 확실하게 거절해 주세요."

제가 해야만 했던 배려를 그녀들도 똑같이 겪어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요. 하고
치하야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침묵했다.

계속 침묵을 지키자, 치하야가 졌다는 듯 대화를 끝냈다. 전혀 기쁘지 않은 승리다.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등을 돌려 모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게이트가 닫힐 때까지 이제 1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으니 모두와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구나.
나는 치하야의 등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을 던진다. 받는 사람이 없는 일방적인 캐치볼. 이런 방식으로밖에 건넬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

치하야. 나는…

◇◆◇

그리고 게이트 앞에서의 이별.
그곳에서 치하야가 미소 지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나와 그녀들이 겹쳐온 시간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이고 행복이었다. 

그리고 다가온 또 하나의 이별.

리츠코는 류구의, 그리고 아즈사씨의 마지막 무대 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받게 될까.
그리고 나는 그 무대 뒤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즈사씨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아즈사씨… 제발……"

상처받지 않으면 좋을 텐데……


관객석에서 지켜본 아즈사씨의 무대는 시종일관 그녀의 세계였다.
'류구 코마치'의 멤버인 이오리와 아미 역시 S랭크 유닛 류구 코마치의 마지막에 걸맞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아즈사씨는 아름다웠고, 성스러웠고,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무대의 마지막의 마지막.
노래도, 앵콜도, 앵콜의 앵콜조차 끝난 순간에 아즈사씨는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쥐었다.
넓은 돔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눈과 귀는, 지금 그녀만을 위해 존재한다.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팬들에게, 그리고 함께해준 동료들에게 지금까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지금쯤 리츠코는 이미 눈물투성이겠지.

"그리고 아이돌이 되어서도, 계속 꿈을 꿀 수 있었어요"

그녀의 시선이 어느새 내가 있는 곳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착각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언젠가 아즈사씨가 냈던 퀴즈의 정답.
그 정답을 지금 고하고 있었으므로.

"저와 같은 꿈을 꾸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쏟아지는 엄청난 박수소리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녀가 말하는 아이돌. 그녀가 말하는 팬.

아이돌은 꿈을 파는 존재가 아니다.
아이돌은 꿈을 꾸는 존재다.

팬은 꿈을 사는 존재가 아니다.
아이돌과 함께, 같은 꿈을 꾸는 존재다.

그리고 프로듀서도……


그 박수소리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내 주변이 전부 눈물과 울음투성이인 것은

"저, 미우라 아즈사는… 오늘부로 아이돌을 종료합니다!"

…그 꿈이 끝났기 때문이겠지.



공연은 끝났다.

관객들이 전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기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오리와 아미가 아즈사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이오리가 저렇게까지 엉망진창으로 우는 것은 처음 본다.
리츠코는 울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눈이 빨갛고 눈가의 화장이 지워져 있다.
단지 아즈사씨 홀로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대기실을 다시 나서려던 나를 아즈사씨가 멈춰 세운다.
아즈사씨가 리츠코에게 귀엣말을 하자, 리츠코씨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오리와 아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반발하지 않을까 싶었던 이오리는, 의외로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아미는 아즈사씨와 나를 지긋이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뭐, 나조차도 앞으로 어떤 전개가 일어날지 대략 짐작이 되는데 이오리와 아미가 그걸 모를 리가 없겠지.

조용해진 대기실. 순식간에 둘만 남겨졌다.
나는 결심하지도 못한 채로 그녀가 준비한 링에 오른다.

"P씨…"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녀가 살포시 웃는다.

"후훗. 언제 한번 이렇게 불러보고 싶었답니다."
"아즈사씨…"
"그치만 저만 이름으로 불리고, 뭔가 불공평하지 않나요?"

내가 말을 꺼내려는 걸 가로막듯이, 아즈사씨는 장난스럽게 말을 잇는다.

"오늘 무대는 어땠나요?"
"…최고였습니다."

칭찬도 거짓말도 아니다. 
그녀가 4년간 꾸어왔던 꿈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던가.
조금이지만 리츠코가 부러워졌을 정도로.

"퀴즈의 정답. 알 수 있었나요?"
"네."
"조금은 P씨의 마음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네."

그야말로. 

생각해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녀는 운명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 아이돌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팬들은 그 꿈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었다.
왜 나는 지금까지 눈치챌 수 없었던 것일까.

'나의 세계'에서 이것은 불가능한 현상이라는 것을.


"항상 P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답니다." 

아즈사씨가 나를 불렀던 이유. 그리고 계속 간직해왔던 그녀의 마음. 
아즈사씨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면서 말을 잇는다.

"언젠가 P씨는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어요."
"아즈사씨…"
"그리고, '마음'을 상처입히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랄게요."
"…!"

물론 여기도 포함이에요. 하면서 아즈사씨는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그것은 마치…
자신은 거절당해도, 상처받아도 괜찮다는 말처럼 들려서
그 숭고함과 자애를 어떻게 해야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당신의 마음은 이 정도였나요. 

그녀가, 그녀의 말이,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 부딫혀 내 세계를 부숴간다.

나는 결심한다.


"P씨."
"…네."

지금부터 시작되는 건 방해해선 안 되는 일종의 의식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그 사이에 반드시 생기는 인연의 실. 그 실타래로 꽁꽁 묶어둔 마음을 풀어내 서로 부딪히는 시간.
눈이 마주치자, 아즈사씨의 표정이 약간 흔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연다.

"당신의 곁에서 계속 꿈꿀 수 있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

아즈사씨의 '꿈'은, 아이돌 활동 자체를 뜻하는 게 아니다.
아이돌 '미우라 아즈사'가 아이돌로서 계속 꾸어왔던 꿈.
여성 '미우라 아즈사'가 어릴 적부터 줄곧 동경했던 것.

"제 운명의 사람이 되어주세요"

아이돌이 꿈을 꾸는 존재라고 한다면, 분명 프로듀서는…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나도 그녀와 같은 꿈을 꿀 수 있었을까?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깊은 아쉬움 속에 나는 대답했다.

"후훗. 야속한 사람…"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 오늘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깨워주셔서 고마워요. 프로듀서씨."


그녀가 나를 살포시 껴안았다.



-----

下편이 길어져서 두 개로 나눕니다.
下편에 계속.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