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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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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3, 2013 22:09에 작성됨.

치하야의 비중이 98%입니다. 감안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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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말입니까?”
 사장님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항상 일처리가 빠르고 어디의 인맥인지 자신의 수완인지 알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미국행이라니,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어흠, 우리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도 그렇지만, 자네도 언제까지나 일본에서 썩어선 안 될 귀중한 인재라고 나는 생각한다네.”
 사장님의 평가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율이 반, 면전에 대고 저런 대사를 듣는 부끄러움이 반이었지만. 사장님이 나를 이렇게까지 고평가하고 계실 거라고는, 미국행보다 더 생각이 미치지 않는 일이라 얼떨떨하기만 했다.
 “평가는 감사합니다만, 아직 남은 일이...”
 “당장 출발하라는 건 아니라네, 일단 키사라기 군의 레코딩을 끝내고 난 뒤가 되겠지. 자네가 미국에서 프로듀스를 착실히 배워 돌아오게 되면, 키사라기 군과 다른 아이돌 제군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걸세.”
 사장님이 평소와 달리 굉장히 진지하셔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것을 수락의 뜻으로 받아들이셨는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나를 사장실 밖으로 내보냈다.
 뜬금없는 일이지만 내게도 야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프로듀스를 배워온다면 분명히 치하야나 다른 아이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테고, 나도 좀 더 네임벨류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 이름이 유명해져서 어떤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방송국 사람들의 태도라든지가 달라지겠지.
 “...미국, 인가.”
 “미국? 여행이라도 가시나요?”
 “코, 코토리 씨?! 왜 여기 계세요?”
 “피요?! 사무실이니까 당연히 사무원이 있어야지요?”
 아참, 여긴 사무실이지. 뜬금없는 이야기를 들었더니 정신이 없어진 모양이다.
 “하하하... 잠깐 정신이 없었어요. 코토리 씨, 차라도 드실래요?”
 “타 주시는 건가요?”
 “타 주셨으면 좀 편하겠는데요.”
 “...커피로 부탁드릴게요?”
 코토리 씨가 검은 아우라를 풍기며 웃는다. 좀 기분을 상하게 한 건가... 하긴, 부탁하는 방식이 잘못되긴 했지. 어차피 내가 탈 생각이긴 했었지만 조금 미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 이야기는 뭔가요?”
 사실대로 말할지, 숨겨야 할지 조금 고민하게 되지만, 일단 지금은 얼버무려야 할 것 같다. 왠지 코토리 씨가 알아버리면 사무소 전체에 소문이 날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치하야에게 좋은 영향을 줄 말은 아니니까.
 “휴가차 가볍게 갔다 올까 하는 생각을 좀 했어요, 아이돌 프로듀스의 본고장이라는 느낌이기도 하고 말이죠.”
 “휴가는 핑계고, 공부하고 오시려는 건 아닐까 좀 걱정되는데요?”
 “하하, 제가 매일 코토리 씨에게 일벌레 소리를 듣지만 그때 정도는 쉬고 싶을 것 같네요.”
 “그럼 다행이지만요. 프로듀서는 좀 더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해요. 애초에 프로듀서 씨는 너무 자주 야근하신다구요? 아이돌에게 걱정을 끼치는 프로듀서라니, 입장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엑, 그 녀석들 중에 제 걱정을 하는 녀석도 있나요?”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 프로듀서 씨는 여자 마음을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요?”
 “하하하...”
 녀석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었나 하고, 약간 반성하게 된다. 내가 그 아이들을 챙겨줘야 하는 입장인데 역으로 되어 버렸다. 모두가 날 걱정하지 않으려면 좀 더 활기찬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그러고 보니, 치하야는요?”
 “치하야라면 오늘은 레코딩입니다. 집중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끝날 때 데리러 가기로 했어요.”
 “아마, 프로듀서 씨가 있는 편이 집중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네?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커피는 다 타셨나요?”
 “지, 지금 배달하겠습니다.”
 일단 아직 치하야를 데리러 가려면 여유가 있으니, 지금 좀 쉬어두어야겠다. 담당 아이돌에게 걱정을 끼치는 프로듀서라니, 최악이지.

 누군가 옆에 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흑발의 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굉장히 잘 어울린다. 바람에 소금기가 섞여 있다고 느낀다. 아마 바닷가인 모양이다. 냄새로만 판단할 뿐, 주변 풍경은 그녀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좋은 냄새가 섞인 바람이네요. 후후.”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얼굴도 잘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미소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휘날리는 긴 머리와, 푸른색 원피스 자락. 그녀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 미소를 계속 볼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았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길 바라요.”
 그녀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나날을 의미하는 거라면, 나 또한 같은 생각이 든다. 누군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프로듀서 씨, 저는...”

 “...듀서 씨? 프로듀서 씨?”
 “음... 누구세요...?”
 “누구세요라니... 하루카에요. 치하야 쨩 못 보셨나요?”
 “치하야... 치하야는 지금 레코... 레코딩?!!”
 반사적으로 책상에서 일어나다 무릎을 책상에 돌진시킨 꼴이 되었다. 반사작용으로 다리가 튀어나가 책상을 걷어찬 꼴이 되었지만, 또 무릎이 미칠 듯 아프지만 일단 그런 건 머리에 와닿지 않았다. 지금 몇 시지?
 “프, 프로듀서 씨?”
 시계는 5시 3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코딩 종료는 5시라고 했었는데...!
 “프로듀서 씨, 무슨 일...”
 “미안, 하루카! 지금 좀 늦어서, 먼저 갈게!” 
 “앗, 프로듀서 씨?!”
 오랜만에 보는 하루카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은 치하야 쪽이 더 급하다. 안 그래도 요즘 레코딩으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치하야 옆에 있으면 주변 공기가 찌릿찌릿할 지경인데, 더 자극시키면 한동안은 냉전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길이 막히기 전에 빨리 출발해야겠다.
 그런데, 뭔가 굉장한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일단 이런 것보다는 빨리 치하야를 데리러 가지 않으면 안 되겠지.

 예상대로였다.
 “프로듀서...”
 “미안...”
 그녀 주변 1m 안에서 산소가 다 타버릴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공기가 희박해져서 숨이 막힌다. 나라도 화낼 일이긴 하지만, 조금쯤은 사정을 봐 주길 바랐는데.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조금 적당히 해 주세요.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렸다구요.”
 “미안, 면목이 없다...”
 “이후에 스케줄이 없어서 망정이지, 펑크라도 내셨으면 어쩌시려고 하셨나요.”
 “...미안.”
 진심으로 지금은 치하야가 무섭다. 일단 뭔가 화를 풀게 해줄 거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정말 미안해, 사과의 뜻으로...”
 “사과의 뜻으로, 저녁이라도 대접받아야 속이 풀릴 것 같네요.”
 “응?”
 치하야가 먼저 이런 말을 꺼낼 줄이야. 의외이긴 하지만 찬스가 왔다. 이걸로 화를 좀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로 화가 풀린다면야, 식사 정도는 대접하도록 할게.”
 “그럼, 장소는 제가 원하는 곳으로 해도 될까요?”
 “사과의 의미도 있으니, 그런 걸로 투정부리면 화낼 거지?”
 “...그렇게 화내는 것처럼 보였나요?”
 왠지 치하야가 살짝 얼굴을 붉힌다. 어라, 오늘 뭔가 분위기가 다르지 않나? 하고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평소 레코딩 때는 이렇게 차려입고 나온 적이 없었는데. 냉각된 분위기가 풀리고 나니 꽤 신경을 쓰고 나온 모습이란 걸 새삼스레 알게 된다.
 “하하, 이제 좀 평소의 치하야같네. 방금 전까지 무서웠다구?”
 “무, 무섭다니...”
 “자자, 일단 빨리 가자구. 내일도 스케줄이 있으니 오래 끌 순 없으니까.”
 뭔가 반박을 하려는 치하야를 차에 밀어 넣었다.

 치하야가 안내하는 대로 차를 몰아 도착한 식당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안이 다 비쳐 보이는 유리구조라 실내 인테리어가 다 보였는데, 거대한 와인 셀러와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인테리어된, 한 눈에 봐도 부자의 아우라를 풍기는 레스토랑. 공연 등에 쓰이는 듯한 피아노 등의 악기들도 중앙에 자리해 있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월급으론 무리가 아닐까?
 “치하야, 여기 많이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겉보기만 그렇지, 그렇게 비싸진 않아요. 그리고 비싸다고 하더라도...”
 “하더라도?”
 “여....여....여자...아이를 기다리게 한 벌이니까요...”
 “푸핫?!”
 치...치하야가 이런 말투를... 신선한 충격이라 순간 뿜어버렸다.
 “큿, 하루카는 어떻게 이런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 갑자기 왜 그런 말투를 쓰는 거야?”
 “어, 어차피 저랑 이런 곳에 오셔도 즐겁지 않으시겠지만, 기왕에 프로듀서도 식사를 하러 온 거니, 조금 밝은 모습으로 행동하면 프로듀서도 즐겁지 않을까 해서...”
 이상한 데에 마음을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치하야는 너무 자기비하가 심한 것이 단점이다. 765 프로덕션 안에서 그녀가 절대 뭔가 부족하거나 모자란 아이가 아니라는 건 이 아이를 1년 남짓 프로듀스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렇게 억지로 뭔가 하지 않아도 치하야랑 이런 곳에 오는 건 즐거운 일이야.”
 “에, 프로듀서...”
 조금 부끄러운 말을 했다. 괜히 치하야랑 눈 마주치기가 힘들어졌네. 애써 시선을 회피하며 차를 주차시켰다.

 “의외로 메뉴 가격이 양심적이네. 조금 안심했어.”
 “아무리 벌칙이라도 그렇게 부담스러운 곳으로 데려가진 않아요.”
 디너 코스요리가 %^&%엔, 이 정도 인테리어에 이 정도 풍경을 가진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 가격이면 양심적이다 못해 단골이 되고 싶을 정도다. 의외로 사람도 적은 편이라 치하야를 알아보는 손님도 없으니, ‘푸른 가희, 연상의 남자와 데이트 현장 포착!’ 같은 이상한 소문이 날 일은 없겠지.
 “이런 좋은 곳에 의외로 손님이 없네.”
 “다들 겉만 보고 가격이 무서워서 함부로 접근을 못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우연찮게 레코딩 담당자 분들과 만찬회를 와서 알게 된 곳이구요.”
 하긴, 나도 처음 인테리어를 보고 식겁을 했으니.
 “자주 오고 싶은데, 여기.”
 “...저도 자주 오고 싶네요.”
 침묵의 시간이다.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는 듯한 침묵.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찰나, 낮에 사장님께 들은 미국 연수가 생각이 났다. 미국 일, 확정된 건 아니지만 치하야에게 이야기해 두어야 할까? 나는 그녀의 전담 프로듀서이고, 내 신변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야 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레코딩이 진행 중인 지금, 그녀의 감정을 흔들지도 모르는 일을 지금 내가 말해도 될까?
 “저기, 프로듀서?”
 “어, 응?”
 “왜 그러세요, 심각한 얼굴을 하시고...”
 아차, 너무 깊게 생각하고 있었나. 그래도 치하야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인데, 역으로 그녀를 걱정시키면 몹쓸 놈이 되겠지. 여기선 말을 돌려볼까.
 “아, 미안. 잠깐 통장잔고 생각을 좀.”
 “...프로듀서, 그렇게 부담되시면 제가 계산할게요.”
 “아, 아니아니, 농담, 농담이니까! 그냥 해 본 말이니까!”
 실수했다. 농담을 좀 해 본다는 게 치하야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 손을 필사적으로 휘저으며 변명해본다.
 “...정말요?”
 치하야가 볼을 부풀린다.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잠깐 말을 못 이어나갈 뻔 했다.
 “정말이옵니다. 필히 제가 계산케 해 주십시오, 치하야님.”
 “후후, 그런 말투도 의외로 어울리시네요.”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 다행이다, 기분 상한 건 아니겠지. 맑게 웃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괜시리 나도 미소짓게 된다.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가만, 왠지 저 미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메인 디시가 나왔네요.”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어느새 메인 디시. 요즘 코스 요리는 다 이렇게 사이클이 빠른가?
 “치하야는 웰던이었지?”
 “미디움이나 레어는 덜 익었다는 느낌이라 조금 거부감이 들어서... 프로듀서는 미디움이었죠?”
 “응, 나도 많이 먹어본 건 아니지만.”
 “조금 나눠주시면 안 될까요?”
 “상관없긴 한데, 괜찮겠어?”
 “괜찮을 거에요. 프, 프로듀서가 잘라주시면요...”
 “...그래?”
 미묘한 기분이긴 하지만, 오늘은 그녀에게 사과의 의미를 담아 온 자리니까, 그녀를 모신다는 기분으로 행동해야 한다. 스테이크를 한 입 크기로 잘라 그녀의 접시에 덜어 넣었다. 치하야는 한참을 접시에 덜어진 미디움 스테이크를 쳐다보다, 슬쩍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생각보다 맛있네요.”
 몇 번 씹어보고 살짝 미소짓는 치하야.
 “미디움도 괜찮지? 레어는 아직 나도 좀 무리긴 하지만.”
 “혹시 다음에 올 일이 있으면, 레어에도 도전을...”
 “다음이 있으면 말이지.”
 “그렇네요, 다음이 있으면 좋겠는데.”
 아차, 기왕 나왔는데 다음 타령을 하는 건 좀 아닌가?
 “아, 미안해. 다음에도 꼭 데려올 테니까.”
 “괜찮아요, 오늘은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재미있게 즐기다 가죠.”
 내가 변명했지만, 치하야는 조용히 웃으며 식사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그래, 기왕에 나왔는데, 즐거워하는 치하야의 표정을 바꾸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레코딩은 어땠어?”
 “이제 마지막 한 곡만 남았어요. 곡은 들어보셨던가요?”
 웨이터에게 다음 코스요리를 좀 천천히 내와 달라고 부탁한 후, 레코딩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여태 치하야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도 제대로 모르는구나. 집중하고 싶다고 해서 레코딩 현장에는 잘 안 갔더니 이런 꼴이 되어 버렸다.
 “미안, 아직 못 들어봤어.”
 “마지막 곡은 리메이크에요. 원래는 한국 노래라는데, 좋은 음악이에요.”
 “전에도 말했지만, 이번엔 아이돌보다는 보컬리스트라는 느낌으로 나갈 생각인데.”
 “댄스는 연습도 거의 참가하지 않는 상황인지라, 시켜도 못 할 거에요.”
 이런 얘기가 자연스레 나오다니, 데뷔 초의 치하야를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아이돌은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 거쳐 가는 것뿐이다.’ 라고 서슴없이 말하던 그녀가 이번 솔로 앨범의 컨셉을 처음 밝혔을 때 ‘아이돌이라는 것도 버리기 아까워졌네요.’ 라고 말했을 때는 내 귀를 의심했을 정도로. 어쨌든 그녀는 이 앨범으로 보컬리스트로써의 기반을 확실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좀 아쉽겠지. 그녀의 노래만큼이나, 춤추는 모습도 좋았으니까.
 “프로듀서는 이번 앨범 작업엔 결국 얼굴도 못 비추는 거네요.”
 “치하야의 부탁이었잖아? 혼자 있는 편이 집중된다고. 뭐, 나로서는 치하야의 노래를 못 듣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프로듀서가 있는 편이 더 집중될 거예요.”
 음, 그럼 다음 레코딩에는 좀 일찍... 잠깐만, 뭐라고?
 “프로듀서가 있는 편이 집중하는데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응? 저번엔 집중이 안 된다고... 아니, 그것보다 그거 무슨 의미야?”
 “엣, 무슨 의미냐니...”
 아차, 실수다. 게임이었으면 배드 커뮤니케이션.
 “그, 그냥 레코딩할 노래를 듣고 나니까, 프로듀서가 있으나 없으나 크게 문제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니까요!”
 얼굴까지 붉히며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치하야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데, 뭘 변명하고 있는 거지? 변명하는 게 아니면 그저 오늘 저녁식사 덕분에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건가? 여태 프로듀스하면서 치하야가 노래 이외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일은 드물었는데, 역시 오늘, 뭔가 이상하지 않나?
 “치하야, 오늘 무슨 일 있어?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아, 아뇨! 전 딱히 아무 일도 없는데요...”
 묘하게 유키호 같은 반응이다. 역시 뭔가 이상하지만 본인이 아무 일 없다고 하면 추궁해봐야 스트레스만 되겠지. 하고 발을 빼려는 찰나.
 “무슨 일이 있는 건 제가 아니라 프로듀서 쪽 아닌가요?”
 ...응? 갑자기 무슨 소리지?
 “미국, 가신다면서요?”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답답해졌는지,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낸다. 나도 오늘 들은 미국 얘기를 그녀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직 정해진 건 아닌데. 어디서 들었어?”
 “사장님께서 담당 아이돌이니 제가 알아둬야 할 거라고 레코딩 중에 연락이 왔어요.”
 사장님... 그런 얘기를 한창 레코딩하느라 집중하는 아이한테... 그런데 그게 지금 치하야의 기분과 상관이 있나?
 “아직 간다고 정하진 않았어. 설령 가더라도 치하야의 이번 레코딩이 끝나고, 레코딩한 곡의 활동이 다 끝난 후에 가게 될 거야.”
 “최대한 빨리 가는 걸로 하세요.”
 “뭐?”
 “빨리 가는 방향으로 하세요. 좋은 기회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치하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테이크를 입에 넣는다.
 “그, 그건 아직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다신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요? 기회, 놓치지 마세요.”
 뭔가 이상하다. 너무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마치 내가 가기를 바라는 듯이.
 “하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고 나면 치하야의 프로듀스는 누가...”
 “765 프로, 이제 꽤 성장했어요. 프로듀서 정도의 공백은 채울 수 있겠죠. 여차하면 리츠코도 있고.”
 이 타이밍에 갑자기 냉정침착인가. 오늘의 치하야는 종잡을 수가 없다. 솔직히 지금은 좀 충격받았다. 그래서인지 나답지 않게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치하야는... 그, 내가 가는게 아쉽...거나 그러지 않아?”
 “프로듀서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사장님이 연설을 하셨거든요. 직접 오시기도 하셨고.”
 그 정도 이유로 이렇게 쉽게 나한테 가라고 하는 건가? 이야기 들은 지 하루도 안 된 상태에서?
 “하지만 아직 치하야의 레코딩도...”
 “그냥 가세요. 레코딩 정도는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정 힘들다면 대리는 구할 수 있겠죠. 전 상관하지 마시고 가시는 게 어떨까요.”
 그냥 가라고? 당신의 대체자 정도는 얼마든지 있다고? 치하야에게 있어 내 존재감은 겨우 그 정도였나? 내 위치는 그녀의 안에서 ‘대체 가능한 일회용’ 정도에 불과한 건가? 
 “치하야는... 치하야는, 내가 없어도 된다는 거야?”
 “......”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조금 흥분한 말투가 되어 버렸더니, 치하야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가 지금 기분이 어떤지 조금은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레스토랑, 중앙에 작은 무대가 있어요.”
 “뭐라구?”
 그녀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여기서도 잘 보여요. 잘 들리구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깊은 한숨을 내쉬어 본다. 그러고 나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방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아무리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어도 치하야는 이제 열일곱이다. 그녀는 성인도 아닌데 내가 너무 멋대로 굴어버린 건 아닌가? 아니, 근데 난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지? 치하야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게 내 감정을 왜 이렇게 뒤흔드는 거지? 난 그녀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거지? 가지 말아달라고? 당신이 필요하다고? 이게 무슨 멜로 드라마도 아니고, 난 왜 그녀에 관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많은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할 무렵, 앞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앞을 돌아보니, 무대 위에 피아니스트를 대동한 치하야가 서 있었다.
 “잘 보인다는 게 이 얘기였구나...”
 무심결에 중얼거린다. 치하야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고개 숙여 인사한다.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765 프로덕션의 키사라기 치하야라고 합니다.”
 손님들이 치하야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누군지 아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이 곳에서 매번 좋은 식사를 대접받고 있습니다. 그것에 감사를 하고 싶어서, 여러분들과 이 곳 직원 분들에게 노래를 하나 선보이려고 합니다.”
 조용한 박수와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손님이 좀 적어서 그렇지, 아마 모두들 좋아하고 있는 모양이다. 원래라면 나와 상의 없이 이런 일을 해선 안 되겠지만, 왠지 그녀의 노래가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는, 아직 미발표곡입니다. 리메이크곡인데 레코딩 중이라 가사도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입니다. 제가 지금 악보를 가진 곡이 이것뿐이라, 부득의하게 고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의 의미를 전할 수 있게, 열심히 부르겠습니다.”
 박수 소리가 점점 커진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는다. 치하야는, 마이크를 잡는다.

 노래가 시작되었다.
 피아노만으로 하는 반주라서인지, 화음이 거의 없는 간단한 구성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하야의 목소리가 합쳐지기 시작한다. 반주가 치하야의 목소리를 잘 받혀주고 있다. 작은 음에서 점점 소리가 커진다. 물론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왠지 마음으로, 이 가사가 얼마나 슬픈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나오게 할지는 알 것 같았다.
 후렴부가 나온다. 치하야도 감정을 굳이 억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터트리고 있다. 마치 이 자리에서 슬퍼서 죽어버릴 것만 같이. 하지만 그러면서도 애써 덤덤해하려고 노력하는 듯이. 후렴의 고조되는 부분이 지나면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온다. 마치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치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는 듯이. 참아야만 한다고 두 번 세 번 되뇌듯이.
 마지막으로 그녀가 목소리를 억누르며, 노래를 마친다. 손님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몇 안 되는 손님들이지만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지칠 때까지 박수를 치는 남자도 보인다. 나도 멀리서나마 치하야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건, 치하야에겐 눈치 채이지 않게 하자.

 “잘 들으셨나요?”
 잠시 후, 치하야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냥 이대로 자리로 돌아왔다간 내가 무슨 의심을 받을지 모르니, 잠깐 무대 쪽으로 가서 프로듀서인 티를 팍팍 내고 먼저 와서 앉아 있었지만.
 “처음 들었어, 치하야의 신곡.”
 “어떠셨나요?”
 “...정말, 치하야는 최고야. 감동했어.”
 “...감사합니다.”
 치하야가 얼굴을 붉힌다.
 “...오늘은 돌아가죠.”
 “그러자.”
 방금 전까지 하던 심각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의 치하야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치하야를 차에 태워 배웅하기로 했다. 그녀가 차에 타고, 시동을 걸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한 가지만 물어보기로 했다.
 “치하야, 그 노래. 가사 내용이 뭐야?”
 “...사실, 저도 아직 몰라요. 저 곡은 아직 가사 번역이 안 끝나서...”
 “그래? 그럼 나중에 다시 들어볼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녀는 가사를 모르면서도, 그렇게 감정을 넣어 노래할 수 있었던 걸까?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지만, 왠지 지금 그녀에게 더는 무슨 질문도 할 수 없었다. 더 물어보면, 날개옷을 돌려받은 선녀처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가겠다고?”
 “예. 빠를수록 좋습니다. 치하야도 그러길 바라는 눈치였구요.”
 며칠 뒤, 사장님에게 답변을 하기로 했다. 사실 조금 고민해 보려고 했는데, 어제 일이 있고 나니 빨리 정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하야의 레코딩 작업은 내가 있을 때 마칠 수 있겠지. 왜인지 그녀에게 등 떠밀리듯 한 꼴이 되긴 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좀 홀가분해졌다.
 “치하야에게는, 사징님이 얘기하셨다고요.”
 “키사라기 군은 자네의 담당이니까. 그녀가 다른 누구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네.”
 “그렇습니까.”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한 건 아닌가?”
 “아닙니다. 오히려 덕분에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상관없네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치하야가 권유해 준 덕에 마음을 굳힌 거니까. 다만 정말 이렇게 가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은 남아있다. 그 불안감도 아마 오래가진 않겠지만.
 “그럼, 키사라기 군의 레코딩이 끝나는 대로 출국 일정을 집겠네. 그동안 신변 정리도 할 겸, 자네도 휴가를 좀 쓰는 게 어떨까 하는데.”
 “안 그래도 부탁드릴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한 끝에, 출국은 레코딩이 끝나는 주의 주말로 결정했다. 그 전에 나도 본가에 잠깐 내려가봐야지.
 
 “미, 미국이라구요???”
 “허니! 미키를 버리고 혼자 가는 건 안 되는 거야!”
 역시나 미키가 안겨오려고 한다. 사장님도 계시는지라 최대한 점잖게 밀쳐낸다. 다른 아이돌들은 미키와는 달리 벙찐 표정이다, 심지어 아미나 마미조차도.
 “오, 오빠도 드디어 세계진출인가!”
 “우, 우리를 제쳐두고 선제공격인가?”
 “그렇게 더듬으면서 운율을 맞춰도 말이지...”
 억지로 하는 게 다 드러난다. 이 녀석들 너무 알기 쉬워...
 “흠흠, 그런고로, 키사라기 군의 레코딩이 끝나고 나면 그 주에 송별회를 하는 걸로 하겠네.”
 “치하야의 레코딩이라면 모레가 마지막인 걸로 아는데요?”
 “그, 그럼 앞으로 1주일도 안 남은 건가요...”
 정확하게 오늘로 1주일 남은 셈이다. 송별회가 금요일이고 출발일이 일요일이니까.
 “그런 이유로, 오늘부터 프로듀서는 송별회 당일까지 본가에 내려가 볼 수 있게 휴가를 내게 하겠네. 아이돌 제군들도 오늘부터 조금씩 프로듀서의 빈자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네...”
 “네인 거야...”
 다들 눈에 띄게 풀이 죽어서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뭐, 다들 내가 없어도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아이들이고, 지금 실제로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니까. 나같이 별 도움 안 되는 프로듀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겠지.
 대체업무자를 구할 때까지, 코토리 씨가 매니지먼트를 조금 도와주기로 하셨는지라, 다들 일을 하러 간 사이에 리츠코와 함께 인수인계를 하기로 했다.
 “정말, 갑자기 놀랐다구요?”
 “미안, 리츠코. 사실 나도 조금 급작스럽게 결정하긴 했지.”
 “전에 프로듀서 씨가 말했던 미국 얘기가 여행이 아니었군요?”
 코토리 씨, 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계시나. 이 정도 꼼꼼함이면 한동안 잘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다.
 “하하, 사실은 그날 사장님에게 제의를 받았어요.” 
 “미국이라... 프로듀서가 없는 동안, 류구코마치도 치하야, 아니 그 이상의 랭크로 올려둘 테니까, 돌아와서 놀라지 마세요?”
 “SS랭크라도 있는 거야?”
 “뭔가요, 그 거만한 말투는!”
 “잠, 잠깐! 농담이니까 쥘부채는 봐 달라고!”
 도망가는 나와, 내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올 기세의 리츠코, 그걸 보며 뭔가 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코토리 씨. 문득 이 풍경도 한동안 멀어지겠구나 생각하니 아련한 느낌이다. 딱히 쥘부채를 맞아서 정신이 아련해진 건 아니다. 정말로.

 시간은 화살과도 같았다. 본가에서는 날 보자마자 등짝을 후려갈기신 어머니와, 너는 왜 그런 중차대한 일을 우리와 상의도 없이 결정하느냐며 버럭 화를 내시던 아버지에게 연신 사과만 하다가 돌아온 것 같다. 물론 두 분 모두 내가 짐을 쌀 때는 이것저것 챙겨주시느라 내가 다 정신이 없었지만.
 사무소로 돌아온 후엔 더 빠르게 지나갔다. 금요일에 있었던 송별회에는 운이 좋아서인지 전원이 참석할 수 있었다. 레코딩 작업 마무리가 덜 된 치하야만 제외하고 말이지. 코토리 씨가 못 만나는게 아쉬울 것 같다고 옆에서 넌지시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말이나 내 감정이야 어찌되었든, 치하야가 등을 밀어준 덕분에 결정한 미국행이고. 그녀도 나도 서로간에 아쉬움이 남을 것 같진 않았다. 라고 생각했다. 송별회는 즐거웠다. 물론 마지막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린 미키와, 미키를 따라 울기 시작하는 몇 녀석들을 달래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그것 보세요, 프로듀서 씨를 걱정하는 아이들, 이렇게 많다구요?”
 “하하, 왠지 부끄럽네요 그거.”
 미성년자 녀석들을 집에 다 보내고 마련한 술자리. 코토리 씨와 리츠코까지는 좋은데...
 “어머, 타카네쨩. 잘 마시네?”
 “후후, 가능하다면 달을 보며 마시고 싶었습니다만... 그것은 참아야겠지요. 날이 차가워졌으니.”
 “아즈사 씨, 타카네는 여기 왜 있는 겁니까?”
 “귀하, 저 또한 올해부터 성인이 된 것입니다.”
 그건 알고 있지만 말이지. 음주는 20세부터 아니었던가?
 “괜찮겠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괘은찮사오옵니다.”
 “벌써부터 혀가 늘어지잖아... 리츠코가 있는데도 말리지 않는 게 신기하네.”
 “오늘은 좀 특별하잖아요? 다른 날도 아니고, 프로듀서의 송별회니까요.”
 “...그렇게 특별한 날 취급해줄 건 없는데.”
 사실은 정말 고마웠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서 더더욱, 나의 빈자리가 클 것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잘 참았으니까, 이틀만 더 참으면 되니까, 오늘도 참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가 더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기억을 잃게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후로듀우샤!!!! 미국 같은 데 가봤자라구요~?! 어차피 가서 가슴 큰 카우걸이랑 놀 거면, 여기 아즈사 씨도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미우라 아즈사~ 노래하겠습니다~!”
 효과는 굉장했다. 리츠코와 아즈사 씨 한정이긴 했지만. 코토리 씨는 뭔가 즐거운 표정으로 목소리가 커진 리츠코와 마구잡이로 노래를 시작한 아즈사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당히 기분좋을 정도로 취한 상태인가.
 “귀하.”
 “타, 타카네?”
 타카네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혀가 꼬여있었는데. 순식간에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무서울 정도의 회복력이다.
 “치하야와는, 만나지 않고 가십니까.”
 “...그렇게 됬네.”
 “아쉽지는 않으신지요.”
 잘 모르겠다. 그녀에게 등떠밀려 가는 거라 그런지, 아니면 그녀가 자신의 말처럼 나 없이도 레코딩을 깔끔히 마무리하고 있어서인지, 아쉬운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잘 모르겠어.”
 “...귀하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요오... 프로듀서 씨는 너무 무감각하다구요~? 여자아이의 마음 같은 건 전혀 모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주변 사람한테 상처나 입히는 거라구요~!”
 코토리 씨,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더니 발음이 심하게 꼬이는 것 때문에 말을 안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자아이의 마음? 주변 사람에게 상처? 무슨 소리지?
 “코토리님. 많이 취하신 듯 한데, 좀 쉬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괜찮아요~! 오토나시 코토리 이십ㅍ...”
 생기발랄하기 그지없던 그녀가, 태엽이라도 끊긴 듯 테이블에 풀썩 떨어지더니,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숨쉬는 소리가 없었으면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귀하, 한 잔 더 어떠신지요?”
 “아, 응... 그래. 부탁할게.”
 타카네가 차분히 술병을 기울인다. 약간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뿐인데 단아하다는 느낌을 준다. 뭐, 이게 타카네의 세일즈 포인트기도 하지만, 이런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이 있단 걸 팬들이 알면 그 사람은 목숨 붙어있기 힘들 거다. 조심해야지.
 “귀하. 치하야에게 아쉬운 것이 있으십니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귀하가 오늘 송별회 내내 개운치 못하다는 표정이 만면에 가득했으니까요.”
 그렇게 표정에 드러날 정도로 고민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때때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무엇으로 인해 고통스러운지 깨닫지 못하는 일도 있는 법입니다.”
 “그럴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무언가 쌓여있긴 한데 푸는 법을 모르겠어.”
 “그대로 안고 가셔도 됩니다, 귀하.”
 “이 감정을?”
 “그 감정이야말로 귀하의 앞으로의 삶의 힘이 될 것입니다.”
 “솔직히, 이런 답답한 감정이 삶의 힘이 될지 확신이 안 서는데.”
 또, 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생각에 없던 말이 자꾸만 튀어나온다. 술의 힘인지, 시간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타카네의 힘인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 감정을 안고 가실지 버리실지 선택하시는 게 빠를수록 좋다는 겁니다.”
 “이 감정의 정체도 모르는데?”
 “그건 곧 아시게 될 겁니다.”
 타카네의 말은 거의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나조차 알지 못하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던 나였기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갑갑하게 하는가? 낯선 곳에의 두려움? 곧 혼자가 될 거란 고독감? 모두와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
 “그렇게 깊이 생각하신다 해도, 계기가 없으면 답은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타카네, 마음을 읽지 말라구...”
 “후후, 그렇게 얼굴에 다 드러나게 고민하시면, 누구든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타카네가 따라준 술잔을 비운다. 술은 식도를 타고 흘러 위장에 뜨거움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 뜨거움 덕분에 잠깐이나마, 복잡한 일은 증발해 사라진다. 계기를 기다려라, 인가. 이틀 안에 그 계기가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설득력이 넘치는 타카네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뭐에 대해선지도 잘 모르겠지만, 고마워, 타카네.”
 “아닙니다. 동료들의 고민을 풀어주는 것은 동료로써 당연한 일이겠지요.”
 순간, 타카네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농염한 미소를 흘린다. 그와 동시에, 내 정신은 블랙아웃에 접어들었다.

 “네, 잘 들어가셨죠? 죄송합니다, 제가 챙겼어야 했는데. 길은 잘 찾아가신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집엔 무사히 도착했답니다.’
 “저도 기억이 중간에 끊어져서 말이죠, 면목이 없네요.”
 ‘괜찮아요, 타카네쨩도 다들 무사히 집에 보냈다고 하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럼 아즈사 씨도 오늘은 푹 쉬세요.”
 ‘프로듀서 씨야말로요.’
 “그럼 쉬세요, 끊겠습니다.”
 ‘잠깐만요, 스케쥴이 바뀌지 않는 한 공항에 가겠지만요. 혹시 모르니 미리 인사할게요. 수고 많으셨어요, 프로듀서 씨. 잘 다녀오세요.“
 “하하하... 아즈사 씨도 다시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전화를 끊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내 옷가지들과, 머리맡에 놓여진 물 한잔. 그리고 쪽지.
 ‘너무 무리하지 말아 주세요.’
 ...타카네인가. 마지막까지 멀쩡했던 건 그녀뿐이기도 하고. 일단 물을 천천히 마신 후, 다시 침대에 눕는다. 이제 오늘이 올해 일본에서 보내는 사실상 마지막 날. 어제 일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아즈사 씨의 전화 덕분인지, 어제 타카네와의 대화 덕분인지 꽤 침착해질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오후 세 시. 사실상 저녁이나 챙겨먹고 나면 다시 자게 될 것이다. 사장님께서는 오늘은 나올 필요 없으니 푹 쉬고 내일 보자고 하셨고, 오늘은 집에서 조용히 보낼 듯하다.
 그때, 익숙한 착신음이 들린다. 치하야의 노래. 부랴부랴 침대에서 일어나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차분히 전화를 받는다. 최대한 멀쩡한 척을 해야 한다.
 “여보세요, 치하야?”
 “네, 저에요. 프로듀서.”
 저녁을 먹은 날 이후 처음으로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목소리가 오랜만이라 그런가?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 아니오... 아무 것도!”
 역시, 미묘하게 감정이 살아있다. 톤이 높다고 해야 할지,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마 레코딩이 순조로운 듯하다. 그녀가 기분이 좋아졌다면 다행이다. 저번 일로 기분 상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레코딩은 어때?”
 “순조로워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말인데요.”
 “응? 무슨 일이라도 있어?”
 “마지막 작업이 내일인데, 비행기 시간과 미묘하게 겹쳐서... 조금, 늦을지도 몰라요.”
 “...그래?”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그녀에게 할 말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가.
 “괜찮아. 늦어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원, 원망이라니...”
 “농담이야. 웃기려고 한 얘기에 미묘한 반응인 걸, 평소의 치하야라 안심했어.”
 “프로듀서...”
 “...걱정하지 마, 잘 갔다 올 테니까.”
 “네, 저도 프로듀서 말대로, 잘 할 수 있으니까요.”
 ...내 말대로?
 “후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침묵을 하시네요?”
 “...타카네한테 독심술이라도 배우고 있는 거야?”
 “그럴 리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실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도대체 치하야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여하튼, 늦지 않는다면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응, 그래.”
 “그럼 전 쉬는 시간이 끝나서요. 오늘은 푹 쉬세요, 프로듀서.”
 의문투성이인 전화가 끊긴다. 하지만 그 의문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치하야와 전화해서 뭔가 홀가분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침대에 눕는다. 마음이 훨씬 편해진 것 같다. 무심결에 눈을 감으니, 미미한 바닷바람과 누군가의 긴 생머리가 스쳐지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사무소. 아이돌의 모습은 없다. 나를 기다린 건 사장님과 코토리 씨, 리츠코 뿐이다.
 “아이들은 최대한 시간 맞춰서 공항으로 직접 오기로 했어요.”
 “류구코마치는, 리츠코 없이도 괜찮은 거야?”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들이라구요?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프로듀서 티를 내시네요.”
 “하하하, 딱히 미국에 간다고 해서, 그가 프로듀서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라네.”
 실없는 대화가 오간다. 이 대화도 한동안 듣기 힘들 거란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조금 시큰해온다. 하지만 괜찮다. 요 며칠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털어버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출국 수속을 밟는 중에도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 가득했다.
 “허니-!”
 당연하다는 듯이 미키가 안겨온다. 뭐, 오늘은 봐 주는 걸로 할까. 미키의 뒤로, 스케줄에 치여 오지 않을 것처럼 굴던 모두가 서 있었다. 어제 말했던 대로, 치하야는 없었지만.
 “프로듀서 씨!”
 하루카가 나에게 무언가 내민다. 봉투였다.
 “위로금이라도 주는 거야?”
 “뿌뿌-! 틀린 거야!”
 “편지에요! 편지!”
 봉투 뒷면을 보자. 차분한 정자로 ‘키사라기 치하야’ 라고 적혀 있었다.
 “치하야 쨩이, 혹시 오늘 늦게 되면 전해 달라고 했어요!”
 “치하야 씨가 가장 아쉬울 테니까, 미키도 허니가 이 정도 바람피우는 건 용서해주는 거야.”
 “바람이라니...”
 봉투를 열어보려고 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타카네가 손목을 잡아챈다. 무슨 여자애가 힘이 이렇게...!
 “귀하, 편지는 비행기에서 뜯어보게 해 달라는, 치하야의 간청이 있었습니다.”
 “그, 그래?”
 손을 움찔거리는게 고작이라니... 타카네, 힘 너무 센 거 아닌가?
 “아미랑 마미는 오늘 조용하네?”
 “오늘 같은 날 장난칠 정도RO-!”
 “무신경은 아니라GU-!”
 “어차피, 울 것 같은걸 참는 거겠지?” 
 “이오링!”
 “뭐, 어쨌든 잘 다녀오도록 해. 가서 당신의 무능함이 조금이나마 없어졌으면 좋겠네.”
 “하여튼 이오리도 솔직하지 못하다니깐. 이동 중에 제일 불안해했으면서.”
 “무... 무슨 소리야!!!! 마코토!!”
 다들 평소의 그녀들이라 안심되는 대화다. 편지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부탁한 대로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도록 할까.
 “모두들, 지금 하는 것처럼 1년 동안 기운차게 있어 줘. 금방 돌아올 테니까.”
 “네!!”
 걸어 들어가며 뒤를 돌아봤다. 모두들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채였다. 이제 괜찮으니 들어가라는 의미로 좀 더 힘껏 손을 흔들어 봤지만, 모두 발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계속 손짓만 하다가 비행기라도 놓칠까, 돌아서기로 했다.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돌아오면 모두에게 평생 동안 고마워해도 모자를 것 같은 기분이다. 조금 눈시울이 붉어진 건 들키지 않고 싶으니 돌아선 김에 당당한 척 걸어가 본다.

 비행기는 의외로 한적했다. 보통 일요일에 해외로 나가는 사람은 좀 드물지. 가벼운 짐을 짐칸에 올려두고 자리에 앉아, 치하야의 편지를 꺼냈다. 흰 봉투에는 ‘프로듀서에게’ 라고 적혀있을 뿐이었다. 봉투 안의 편지지도 흰 바탕에 줄이 그어진 투박한 편지지였다. 치하야답다고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편지를 펼쳐본다.
 
 프로듀서에게.
 아마 프로듀서가 이 편지를 받으셨다면, 공항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거겠죠.
 사실은 이렇게 글 같은 걸 써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 사교성이 그렇게 좋지 않더라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편지를 하는 건, 송별회 때 이미 프로듀서에게 질문에 대한 대답 비슷한 걸 들었기 때문이에요.
 어제 전화를 받는 프로듀서의 태도를 보고, 기억이 없으시다는 걸 알았어요. 프로듀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가 프로듀서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계셨다면, 그 날 전화를 끊자마자 프로듀서가 있는 곳으로 갔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기억이 없으실 테니, 어제 제가 했던 말은 다시 알려드릴게요.
 프로듀서에게 녹음에 집중이 안 되니까 레코딩은 혼자 하고 싶다고 했던 것, 레코딩이 끝나고 늦게 오셔서 화가 났던 것, 프로듀서가 빨리 미국으로 가는 게 좋다는 것, 전부 거짓말이에요. 오히려 프로듀서가 있었다면, 그 레코딩은 좀 더 좋은 곡이 되었을 거에요. 레코딩이 끝나고 늦게 오실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프로듀서가 미국에 가는 건, 절대로 싫었어요.
 프로듀서는 저에게 길을 열어주셨어요. 노래만이 전부라고 덤덤히 말하던 저에게,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어요. 노래를 부르기 위해 프로듀서와 함께하던 제가, 프로듀서와 함께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그런 소중한 사람이 없어지는 게 싫었어요. 냉정하게 예전을 돌아보면, 저는 프로듀서를 신용하지도 않았었고, 저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심한 말도 했었지만, 프로듀서는 그런 저를 끝까지 믿어 주셨어요. 그런 사람이 떠나간다는데...
 하지만, 이것도 전부 프로듀서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사장님 말대로, 프로듀서가 미국에서 돌아오면 저를 좀 더 높은 곳으로, 좀 더 먼 곳까지 이끌어 주리라 믿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잠깐 보내보려고 해요. 미국에 가서도 힘내 주세요. 치하야로부터.
 p.s. 참, 한 가지 더 거짓말 한 게 있어요. 저녁을 먹으러 가서 제가 불렀던 노래. 사실 가사의 의미, 알고 있었어요. 그 날은 그 노래를 부르려고 이미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제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뒤에 가사 내용을 남겨 둘게요.

 나는 이상하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뒷장을 펼쳐보았다.

아주 덤덤한 얼굴로 나는 뒤돌아섰지만
나의 허무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네
아직 못 다한 말들이 내게 남겨져 있지만
아픈 마음에 목이 메어와 아무 말 못했네
지난날들을 되새기며, 수많은 추억을 헤이며,
길고 긴 밤을 새워야지, 나의 외로움 달래야지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치하야...”
 목이 막혀서, 간신히 이름만 부를 수 있었다. 가사도 모른다던 그녀가, 그렇게 감정이 가득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도대체 송별회 직전까지 가득했던 그 먹먹함이 뭔지도 이제 설명할 수 있었다. 그건 이별의 아픔이었던 거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야 하는 죄책감이었던 거다. 하지만 왜 이제야 깨닫느냐는 자책감에 몸부림칠 새도 없이, 안전벨트를 착용해 달라는 램프가 들어왔다.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사라져간다. 어느새 도착한 치하야는 창가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 버리셨네요...”
 비행기 이륙 시간에 조금 늦게 도착한 모양이다. 헝클어진 머리와 목덜미에 남아 있는 땀이, 그녀가 공항 입구에서부터 얼마나 달려왔는지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복잡한 표정으로 비행기가 사라진 구름 속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숨을 고르고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기다릴 수 있으니까... 힘낼 수 있으니까.”
 나지막하게, 마치 자기 자신을 다독이듯이 그녀는 혼잣말을 계속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녀는 몸을 떨고 있었다. 갑자기 달린 것의 반동인지, 아니면 기다림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몸의 솔직함인지는 그녀도 모를 것이다. 그 떨림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나는 그녀의 어깨를 껴안았다.
 “치하야.”
 “프...프로듀서?? 비, 비행기는 이미...”
 “괜찮아, 하나 보냈다. 다음 비행기에 서서라도 미국은 갈 거야.”
 “그, 그게 그렇게 쉽게...”
 “괜찮다니까. 그보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 있자.”
 치하야의 떨림이 멎었다.
 “...프로듀서.”
 “응.”
 “...편지, 보셨나요?”
 “응.”
 “...부끄러워지네요.”
 “나도 그래.”
 “그 날, 기억은...”
 “미안, 하나도 기억 안 나.”
 “......”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 하는 말이랑 의미는 다르지 않을 거야.”
 그녀는 숨을 죽인 채였다. 나는 안고 있던 그녀의 어깨를 더 끌어당겼다.
 “좋아하니까, 금방 돌아올게.”
 “...네.”
 “치하야도, 다시 한 번 말해 줘.”
 “...좋아하니까, 기다릴게요.”
 “...고마워.”

 그 날, 다시 꿈을 꾸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그녀는, 내가 살아오면서 봤던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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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뭐라고 소개를 해야되나...
안녕하세요 일요일 밤 불타는금요일입니다 -_-/
사실 가입한지는 꽤나 오래됬는데 인사가 늦었네요.
나름 글을 쓴다고 깝치는 사람인지라 '인사는 글로 해야지!' 하고 허세를 부리다 보니...
어느새 가입한지 111일이 되었네요. 그동안 조용조용히 볼거 다 보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헤헤;;
뭐 사실 이 글도 꽤 오래 전부터 썼었는데 늘어지다 늘어지다 다 뜯어고치고... 
완전 졸작이 되어버렸네요. 순전히 치하야P인 제 취향인 글인지라 여러모로 죄송합니다.

기회가 되면 치하야 시점에서 같은 내용을 한번 더 써보고 싶어서
복선도 쪼오끔 깔아봤는데... 시간이 될지는...모르겠네요...
재미있게 읽어 주셨다면 그저 감사합니다. 모두 주말 마무리 잘 하세요 -_-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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