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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미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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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0, 2014 23:21에 작성됨.

하루카가 묵고 가기로 했다.
하루카도 나도 예전에 비해 바빠졌기 때문에, 집이 먼 하루카는 이따금씩 우리집에서 자고 가곤 했다. 
하루카가 집에 오는 날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혼자사는 집에 사람의 온기가 스며든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 둘 다 아이돌 일이 바쁘기에 저녁을 거르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둘이서 간단한 야참을 차려 먹는 날이 많다. 요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나와는 달리, 하루카는 능숙하게 요리를 한다. 야채를 썰고, 프라이팬을 휘두르는 하루카를 보고있자면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에이프런을 두르고 있는 하루카는 정말 아름답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심장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카가 만든 간단한 볶음밥을 해서 먹고 있었다. 물론 나도 도왔다. 야채 다지기 정도지만.
그리고 밥을 다 먹고난 후, 사건은 일어났다.
'내일은 프로듀서님을 만나러 가기로 했지?'라고 하루카가 물어보았다. 나는 살짝 놀랐다. 어째서 프로듀서와의 약속을 하루카가 알고 있는거지? 결론은 금새 도출되었다. 프로듀서가 하루카에게 말한 거겠지. 별로 비밀이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쉽게 납득했다. 하지만 둘이서 만날 약속을 하루카에게 말했다는 사실에 조금 서운했다.
'질투인가.'
내 입으로 말하기도 조금 이상하지만, 나의 독점욕은 놀랄만큼 강했다. 이전에는 그 욕구가 '노래'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가 없다면 난 살아갈 의미가 없다, 라고 극단적으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외곬수적인 기질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노래에 대한 욕구는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소유욕의 방향은 조금 바뀌었다. 
나를 언제나 지탱해주던 사람, 
나의 옆에서 지켜봐주었던 사람,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었던 사람,
언제나 응원해주던 사람.
다만, 그 사람의 입장 상 어느 한 명에게 소속되거나 소유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품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하루카에게 '어째서 그 사실을 하루카가 알고 있는거야? 뭐 대충 짐작은 가지만.'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연스럽게도 하루카는 프로듀서가 알려주었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내가 감당하기엔 조금 역부족이 아니었을런지, 라고 생각된다.

"나, 프로듀서님과 사귀고 있거든. 통화하는 거, 들었어."

헤헤헷─. 하고 웃는 하루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거지?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이야~ 라고 말했지만, 뭐 대충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기도 하고."
하루카가, 프로듀서와, 사귀...?
"치하야에게는 숨기기 싫었으니까. 그래서 미리 말했어."

뭐,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프로듀서가 무기한 휴직을 신청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카에게서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다른 아이돌들은 프로듀서의 소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고, 리츠코나 오토나시씨도 대략적인 이야기는 아는 눈치였지만(물론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다), 하루카만큼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프로듀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예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하루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묻어나오는 현재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조금씩 가슴이 메어왔다. 
하루카라면, 괜찮다. 라고 혼자 납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도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프로듀서의 옆에 있는 걸 상상해보면 하루카만큼 어울리는 아이도 없을거라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나보다도.
사무적으로 보면 오토나시씨나 리츠코가 훨씬 어울릴거라 생각되지만 하루카만큼 밝음이 없다.
다른 아이돌들의 경우는... 보자. 일단 중학생 조는 아웃. 여러가지 의미로. 타카츠키씨가 프로듀서와 붙어있다니, 상상도 할 수 없어.
미우라씨? 천연 보케는 감당하기 어려울거라 생각된다.
가나하씨? 중학생조로 넣도록하자.
시죠씨? 모든 프로필이 비밀인 사람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하기와라씨는 우선 남성 공포증은 먼저 고치도록 하자.
마코토는... 센스가 문제일까. 우선적으로.
이래저래 하루카라면, 이라고 납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혼자서는 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하루카가 있으니 참도록 하자.

"미안해, 치하야."
"뭐가 미안하다는거야? 오히려 난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치하야도 프로듀서님, 좋아하고 있었잖아?"
"무...!"
세간의 평가보다 나는 감정을 잘 숨기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금방 얼굴이 빨개지는데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거야?"
까르르하고 하루카가 웃는다. 
"우, 웃지마..."
"그치만 치하야가 너무 귀여운걸~♡"
"하...! 하루카!"
이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


다음 날, 같이 휴무를 얻은 하루카와 나는 프로듀서를 찾아갔다. 행선지를 말할 때 하루카가 조금 머뭇거리는 것이 불안하다 싶었더니, 병원이라고 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혀오는 것 같다. 이전에 하루카 대신 떨어졌을 때도 병원에 입원했었으니까, 라며 애써 불안을 억누른다.
하루카가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무기한 휴직을 선언할 정도라면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불안감이 커져간다.
하루카가 문을 두드리고, 프로듀서의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마음을 굳게 먹고 병실 안을 보았다. 
"아..."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프로듀서는 야위어 있었다.
"아! 정말! 프로듀서님! 또 식사 안하셨죠!"
"조금은 먹었다니까. 조금은."
"영양 밸런스 맞춰서 들어오는 음식들이니까 전부 다 드셔야죠."
"맛이 없는걸~ 먹고싶지 않은 걸~"
"그런 말을 하는건 요 입인가요오~?"
하루카가 프로듀서의 볼을 붙잡고 늘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 무심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셋이서 함께 웃어버렸다. 이렇게 웃는게 얼마만이지. 하지만 프로듀서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메인다.

"그럼 치하야의 집에서 바로 온거야?"
"네."
하루카가 사과를 갈아 프로듀서에게 떠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속이 쓰리다. 인정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쉽게 익숙해지진 않을 것 같다.
"안 본 사이 닭살 커플이 되어버리셨네요? 프로듀서."
"이게 다 하루카 탓이야."
"그게 왜 제 탓인가요?"
뽀료통한 표정을 지으며 하루카가 갈아둔 사과를 먹어버렸다.
"아! 내 사과!"
"그런 말 하는 프로듀서님에게는 안~줄거에요!"
"쿡쿡..."
분위기가 따뜻하다. 아직은 겨울이지만 봄날처럼 햇살도 따사롭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불안감이 남아 심장을 찌른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난 어떻게 해야하지?
그보다,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슬슬 장난은 그만 치시고, 이제 말씀해주세요. 프로듀서."
"뭘?"
프로듀서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정말, 이 사람은 언제까지고 애같다니까요.
"왜 입원해있는건지, 언제까지 입원해야 하는지."
치하야가 조금 화난 듯 노려봅니다. 이런 치하야는 무서워요.
프로듀서님이 자세를 바로 잡고 앉습니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암이야, 라고 조용히 고합니다. 치하야의 눈이 흔들립니다.
"암? 이라고 하신건가요? 프로듀서?"
"응."
치하야가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 같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프로듀서님이 거기에 잔혹한 선언을 했습니다.
"처음 의사가 이야기할 때, 3개월 정도 남았다고 했어. 이후 치료로 조금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얼마 살지 못하는 건 변하지 않는 것 같아."
물 속에서 이야기하듯 뻐끔거리는 치하야에게 프로듀서가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미안."
치하야가 소리없는 고함을 지릅니다.

왜?
어째서?
신은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거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는거야?
유우도, 프로듀서도!
저주스러운 신에게 원망을 토해보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은 나에게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래서 프로듀서는 하루카를 받아들인 거로군요."
"마지막에는 이루어주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나요?"
"모두의 마음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 선택이 하루카였던 것 뿐."
하루카가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프로듀서를 소유한 건 결국 하루카였다. 어울리는 것 따위 필요 없어. 프로듀서의 마지막조차 지키지 못한다니, 그럴 순 없어!
"하루카는 좋겠네."
"치, 치하야?"
"결국 모든걸 가진건 하루카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치하야? 하루카는 어디까지나..."
"프로듀서는 조용히하세요."
"치하야..."
"하루카는 언제나 그랬지. 나에게 남은건 노래밖에 없을 때에도 언제나 밝은 곳에서 웃고 있고.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도 넌 빛나고 있었어. 그런 하루카가 부러웠어. 그 빛을 나눠받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어. 내가 가지지 못한 걸, 넌 항상 가지고 있었지."
"치하야, 그만...!"
"돌려줘! 나에게서 빼앗아간 것을! 프로듀서를! 돌려줘!"
"치하야! 그만해!"
"많은 걸 가진 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에게서 뭘, 얼마나 더 빼앗아가야 만족하겠어? 돌려달라고! 프로듀서를!"


"힘든건... 모든걸 놔버리고 싶은건 내쪽이라고!"
하루카가 소리친다. 에?
"언제나 치하야만 힘든 척 하지마! 유우군을 잃은 것도 알아! 프로듀서님이 이런 상황인게 충격인 것도 알겠어! 하지만! 그걸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어떻겠냐고!"
억눌러왔던 하루카의 기분이 목소리가 되어 나온다. 가슴이 저리다.
"리츠코씨도! 코토리씨도! 아즈사씨도! 유키호도! 미키도! 지금까지 프로듀서가 만나서 이야기한 사람들 모두 충격을 받았어! 그래도! 그때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루카의 말을 듣고 지금에서야 상기한다. 하루카도 고작 열여덟살 고등학생일 뿐이었는데. 난 너무 큰 짐을 지운게 아닐까.
"치하야가 충격이 크다는건 알겠지만! 다른 사람도! 게다가 나는! 이제야 프로듀서님과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는데!!!"
"하, 하루카..."
치하야가 멍하니 하루카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난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심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프로듀서님을 볼 때마다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걸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더...!"
"하루카, 그만해."
내 말에 하루카가 흠칫 놀란다. 그리고는 표정이 일그러진다. 무심코 본심을 내뱉었다는걸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프, 프로듀서님... 그게, 아니고... 저기..."
"미안. 하루카. 치하야도 미안해. 이런 분위기로 만들어서."
"프로...듀서님..."
심호흡을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둘 다 우선은 나가줄래?"
"아..."
하루카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 같아 보인다. 주저앉는 하루카를 보며 너스콜을 누른다.
"죄송합니다. 여기 좀 도와주시겠어요?"
서둘러 달려온 간호사분이 하루카와 치하야를 데리고 나간다. 둘 다 정신을 반 쯤 놓고 있어서 힘들텐데. 죄송스럽다.
"아, 그리고 당분간은 면회 사절로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간호사분이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닫혀진 문 밖으로 하루카의 절규가 들려온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안.
하지만 놓아야하는 쪽은 나인 것 같아.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하루카에게 사과한다.


간호사실로 데려온 하루카와 치하야는 둘 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큰일이 날까봐 당직 의사선생님께 상태를 보여드렸습니다만, 불행 중 다행히도 큰 이상은 없다고합니다. 단지 정신적인 충격이 큰 것으로 보이는 하루카의 경우는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둘러 비상연락처를 찾아 P씨의 보호자로 등록되있는 번호 중 하나로 연락을 했습니다.
"네, 여보세요? 아키즈키 리츠코씨 되시나요?"
"아, 다름이 아니고요, 여기 병원인데요, P씨를 문병왔던 하루카 양과 치하야 양이 상태가 조금... 음... 안 좋아서요. 가능하시다면 찾아와서 데리고 가셨으면 좋겠는데요."
"네? 아뇨, 딱히 외상이 있는 건 아닌데..."
"네, 네. 알겠습니다. 부탁드려요."

그리고 찾아온 아키즈키씨가 둘을 태워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P씨의 병실 앞에는 '면회사절' 팻말을 걸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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