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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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42. 아이돌로서 살아가는 이유
"시라이시 츠무기, 1등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디션에서 우승한 츠무기를 향해 관객석에서 엄청난 환호가 들려왔다. 수많은 관객의 우레와도 같은 갈채를 받는 츠무기는 무대 위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하, 뭐라고 했어. 이긴다고 했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분명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이제 츠무기가 준결승과 결승에서 맞붙어야 하는 상대들은 지금까지 봐왔단 상대들보다 더욱 압도적인 실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싶었다. 그 날은 그저... 그저 네 개의 시즌 동안 쉼 없이 노력하며 땀과 눈물을 흘려온 츠무기를 격려해주며 즐겁게 웃고 떠들고 싶었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은 날이었다.
1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무소로 복귀하고 얼마 뒤,
"네... 그럼 이번 시즌에 필요한 만큼의 팬 수는 확보했다는 말이군요. 다행입니다..."
"후훗... 츠무기 쨩이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이니 말이에요. 다행이에요~."
츠무기는 잠시 옆방에서 쉬고 있으라고 한 뒤에, 하즈키 씨와 이번 공연을 비롯한 이번 시즌, 이번 주 전반적인 결과에 대해 사후강평을 했다. 당연하면 당연하겠지만, 오디션에서 이긴다고 「W.I.N.G.」 본편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수 이상의 팬을 해당 시즌 중 확보해야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니까. 물론 오디션에서 우승하는 것은 팬이 늘어나는 절호의 기회이지만, 운이 없는 아이돌들은 오디션에서 이기고서도 「W.I.N.G.」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리고 이번 주는... 또 하나, 중요한 소식이 있어요!"
사실 하즈키 씨가 할 말은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성과로 미루어 보면 츠무기가 목표 팬수를 달성하고 난 뒤에 「W.I.N.G.」 준결승까지 진출한다는 점은 깨닫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즈키 씨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무려... 「W.I.N.G.」 출현이 정해졌어요! 해냈어요, 프로듀서 님!"
그렇게 마치 자신이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만 같이 기뻐하는 하즈키 씨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하였지만, 그래도 애써 억누르려 해도 점점 자라가는 부담감이 자신의 존재감을 몇 번이고 드러냈다. 장장 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노력해온 것의 성과가 드디어 결실을 맺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당장 1주일 뒤에 나가야 하는 준결승에는 온갖 강자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두 번째 기회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시즌 1부터 4까지는 우발사태를 고려하여 계획을 편성할 수 있어서, 이번에 츠무기가 노력해주었던 시즌 3이나 4 기간에는 간신히 막판에 오디션에 우승해서 다음 시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바로 코앞까지 닥친 준결승과 결승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네... 「W.I.N.G.」 준결승. 바로 다음 주에 있죠. 바로 다음 주에."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건 진심으로 축하할 만한 결과이다. 절대 다수의 아이돌들은 이 「W.I.N.G.」 준결승의 입구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니까. 지금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츠무기가 어떻게 생각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달성해준 성과에 대해 제대로 칭찬을 해줘야만 한다.
"츠무기. 「W.I.N.G.」 출전이 결정되었어. 축하해."
"..."
"츠무기?"
"아... 네! 뭐라고 말했었나요?"
"「W.I.N.G.」 출전이 결정됐어, 츠무기. 축하해."
"그, 그렇군요..."
츠무기라면 이런 소식을 듣고 같은 나이대의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기뻐서 뛰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 결과를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일부나마 보여줬으면. 그렇게 바랐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했어, 츠무기. 이제 준결승이..."
"네... 준결승까지... 불과 1주일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음?"
"준결승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장장 8개월에 달하는 기간 동안 저와 당신이 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거잖아요."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고? 글쎄... 난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W.I.N.G.」 에서 우승하기 위해 기껏 노력해왔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그대로 실패. 제가 알기론, 「W.I.N.G.」 우승자만이 그 영광을 누릴 수 있고 우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수백 수천의 아이돌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듀서인 당신은 저보다 잘 알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츠무기의 반박이 어째 평소 이상으로 날카로웠다. 왜인지는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점점 이 도전의 결말에 가까워 지면서 그녀의 강박이 조금씩 심해지는 듯 하였다. 물론, 츠무기의 말이 맞다. 「W.I.N.G.」 도전은 승자독식. 마지막 결승에서 이긴 아이돌만이 「W.I.N.G.」 우승자의 타이틀을 가져가고, 이외 도전자들은 그간 들인 노력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한다. 하지만,
"음... 내가 모든 걸 츠무기보다 더 잘 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건 내가 츠무기 너보다 잘 아는 게 맞는 것 같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승자독식이 아니라면, 그럼 「W.I.N.G.」 도전에 패배한 아이돌들은 무엇이 남는다는 거죠?"
"일단, 잠깐 어디 좀 놀러갈까? 오늘은 당장 할 거 없지?"
"엣...? 가, 갑자기요? 무엇보다, 제가 당신과 어디 놀러가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당일 약속은 너무 급작스러운데..."
"기억 안나? 전에 놀러 가자고 약속했어. 그럼 가자고?"
"와, 와앗...! 너무 그렇게 갑작스레 잡아끌지 말라고 몇 번을 그렇게 말했는데...!"
말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하며 츠무기의 손을 잡고 사무실 밖으로 나섰지만, 그 기세와는 달리 속으론 심히 걱정스러웠다. 어떤 말을 그녀에게 해줘야 할지. 어떻게 해야 점점 불안해 하며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츠무기를 달래줄 수 있는지. 그것이 과연 가능한지 스스로에게 불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닌 해야만 한다는 문제이다. 기껏 다시 츠무기가 이끌어준 이 길을, 할 수 있는 힘껏 프로듀서로써 나아가겠다고 다짐했으니까.
"여기는..."
"맞아. 멀리서 보기만 했지, 이 정도로 가까이 오는 건 처음이지?"
"네. 도쿄 타워..."
"시즌 4 끝나고 나서 오기로 약속했잖니. 기억나?"
"예... 그런 약속을 했었죠."
사무소에서 츠무기를 이끌고 나온 곳은 도쿄 시내 한복판에 있는 도쿄 타워였다. 한적한 골목을 걸으며 멀리에서부터 보이는, 도시의 야경을 비추고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니 시즌 4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근방을 츠무기와 방문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에는 시바코엔 역 주변의 대형 불교 사원에 맞닿아 있는 언덕에서 해질녘의 도심지를 바라보았는데, 지금 같이 해가 져버린 저녁 시간대에 볼 수 있는, 수많은 마천루들이 내뿜는 불빛은 마치 보름달이 뜬 날의 달무리를 보는 것만 같아서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한 달 조금 넘었는데, 어째 한참 예전에 온 것만 같네."
"그렇네요... 마침 그때 이 근방을 지나쳤던... 아..."
"응?"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선 츠무기의 반응이 의아해 주변을 둘러보자, 이 근처가 이전에 양아치들과 한바탕 붙었던 곳이란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때에도 당신은... 저를 위해서..."
"어? 뭐라고 했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가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저 앞을 보고 멈칫하는 이유가 이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인한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있었던 일이 그녀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 점은 사세당연하지만, 츠무기가 한 말이 그것과 연관하여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 원망하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지금까지 그녀에게 지었던 과오로 인해서 마치 원망의 말처럼 들리는 것은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불교 사원과 맞닿아 있는 사잇길을 몇 분이나 걸었을까.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도쿄 타워의 거대한 하단부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전에 해가 지기 전에 봤을 때의 모습과는 달리, 불이 켜진 뒤의 탑이 멀리서부터 이 도시의 일대를 밝게 비추는 모습이 꽤나 볼만 했다. 그렇게 경사길을 조금 올라갔을까, 탑의 하단부에 여러 매대들과 일대를 수십개의 잉어 모양의 깃발들로 장식을 해놓은 광경을 보니 조금씩 가슴이 뛰었다.
"멀리서 보면 탑 아래에 이런 곳들이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생각보다 무언가 많군요."
"맞아. 원래라면 여기 매대들도 다 장사 중이고 관광객들도 많아야 하는데, 비수기이기도 하고 시간이 좀 늦어서 조금 한적하긴 하네."
만약 연휴에다가 이른 저녁 시간대에 방문했더라면 타워 위를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대기 줄이 바깥까지 길게 늘어져 있겠지만, 다행히 대기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은 덕에 금방 전망대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한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자,
"그런데, 프로듀서."
"응?"
"왜 하필이면 도쿄 타워인거죠? 도쿄에서 놀러갈 수 있는 곳은 여기만이 아닐 뿐더러, 보았던 곳을 다시 가는 것보다는 비슷한 유형의 장소들이 많지 않나요? 조금만 지하철을 타고 가면 도쿄 스카이 트리가 있기도 하고."
"그렇네... 음... 글쎄.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
"하...?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당신은 매사에 이렇게 대충대충 임하는군요. 여기가 싫은 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애당초 약속을 잡을 때 굳이 이곳을 선정한 이유가 고작 당신의 변덕이란 점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군요."
"윽... 아하하, 그래도 싫지는 않다니까 다행이네."
"하아, 정말이지..."
"그래도 난 여기를 츠무기 너와 함께 오고 싶었어."
"네?"
"그때 시즌 4의 초반 때... 너를 데리고 보러 온 곳도 여기였고... 네가 내 병문안을 왔을 적에 본 풍경도 이 곳이었으니까. 출국하려고 했을 때 공항에서 네가 그 풍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여기 없지 않았을까."
"아..."
그 말을 들은 츠무기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 말을 뒤로 얼마 동안 대화가 단절되어 버렸다. 엘리베이터의 대기줄을 서고 있는 와중에 시끄럽게 떠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어지는 침묵으로 인해 분위기가 뭔가 어색해져 버렸다.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시간 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닌데...
"자, 여기가 중간의 전망대가 있는 층이고, 여기 탑의 중간부에서 100미터를 다시 올라가면 그제서야 특별 전망대가 나와."
"설마... 아까 엘리베이터에선 더 올라갈 수 없지 않았나요? 이렇게 높이 올라왔는데 아직 더 올라갈 곳이 있다니..."
"저기 오른쪽으로 쭉 돌면 엘리베이터를 갈아탈 수 있어. 보면 저기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지? 저기서 기다리다 보면 최상층으로 올라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어."
"그, 그렇군요..."
그렇게 10여분 간 줄을 서고, 도쿄 타워에 대한 간략한 투어 겸 설명을 들은 뒤에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서 중간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는 다르게, 바깥이 그대로 보이는 유리창을 내다보니 타워 주변에 있는 낮은 건물들이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좋은 풍경이... 음?"
"으, 으으..."
"츠무기? 괜찮은 거야?"
"그, 아, 아니... 괜찮... 으..."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엘리베이터가 위를 올라가기 시작하자 츠무기는 겁을 먹어버린 모양이었다. 밖을 내다보면 열기구나 헬리콥터를 탈 때처럼 멀어져 가는 바닥이 적나라하게 보이진 않아 그리 무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빠르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10대 소녀에게 겁을 먹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츠무기. 밖에 내다보지 말고. 내 등에 좀 기대고 있으면 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은 좀 나아질거야."
"으으, 네..."
예상했던 반응은, '아, 아니! 괜찮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를 무슨 아이 취급하는 건가요!?' 였지만 의외로 츠무기는 순순히 고개를 등에 기대고는 어린 아이처럼 소매를 꽉 붙잡았다.
"위까지 얼마 안걸릴 거니까 조금만 참아."
"..."
그렇게 몇 분간 십수 명의 사람들 가운데서 어색하게 츠무기와 서있었을까,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최상층까지 도착해서 이내 츠무기를 데리고 특별 전망대로 발을 내디뎠다.
"특별 전망대... 전반적인 느낌은 아까의 전망대와 크게 다르지는 않군요."
"그래? 아까는 우리보다 높은 건물들이 주변에 워낙 많기도 해서 가까이 있는 도심지 말고는 보이진 않았는데, 지금 봐봐. 우리보다 높은 건물들도 그닥 많지도 않고, 저 멀리까지도 잘 보이지 않니?"
"정말이지... 단순히 보이는 것 말고 이 도심의 야경을 말하는 거였는데, 당신은 굳이 제 말에 그렇게 하나하나 반박을 해야 성미에 맞는 것입니까?"
"아하하, 미안 미안~."
"흥!"
어느새 평소처럼의 매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츠무기를 보자 마음이 놓였다. 위로 올라오고 나서 츠무기가 힘들어서 더는 못있겠다고 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까와는 달리 괜찮은 모양새였다.
"이젠 괜찮아졌구나, 츠무기."
"아, 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까와는 달리 저 아래를 내려다 보아도 괜찮습니다."
"맞아... 확 높은 게 그나마 괜찮아. 어중간하게 높을 때가 가장 무섭거든. 나도 수천 피트 위에서 뛰어내릴 때보다, 고작 11미터짜리 탑에서 뛰어내릴 때가 가장 무서웠어."
"음...? 그 정도 되는 높이에서 떨어지면 필시 다치게 될 것인데... 왜 굳이 그런 곳에서 뛰어내리나요?"
"아하하... 그렇네..."
그렇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츠무기와 함께 전망대의 창문 너머로 이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둘러보면 수백, 수천만명이 자신의 고향이라 부르는 이 광대한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물론 날이 저물었으니 저 먼치의 풍경은 잘 보이진 않지만, 대신하여 마치 별자리를 뿌려놓은 것만 같이 형형색색 빛나는 이 도시의 야경이 눈부시게 빛난다. 그렇게 찡한 가슴을 안고 창에 기대 밖을 바라보고 있자,
"밖을 바라보다 든 생각인데... 당신 말이 맞다면, 왜 10미터 남짓일 때 지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무서울까요? 10미터보다 아득히 높은, 250m나 되는 이 전망대에서 아래를 바라보는게 더 무서워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별로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으음... 그러게. 예전에 누가 이걸 설명해주셨는데... 왜였지?"
츠무기도 매한가지로 바깥을 연신 둘러보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지면을 몇 번이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고소공포증에 대한 의문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당연했다. 2~3층 높이에서 무언가에 매달린 채 아래를 쳐다보면 꽤나 무섭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곳에서는 그런 감상이 덜하기 때문이다.
"후우... 정말이지, 다 아는 것처럼 말하더니... 이럴 때는 당신은..."
"그건 아마 심리적인 이유겠지."
"네?"
"지금처럼 250m의 높이 위에 있을 때에... 주변을 한번 둘러봐봐. 시야가 넓어지고 밑이 보이지 않으니 여기가 얼마나 높은지 그리 체감이 들지 않잖아."
"그건 그렇네요. 저기 아래를 내려다보면 지면이 보이긴 하지만, 당신 말대로 별 느낌이 들지는 않네요."
"하지만, 물론 츠무기 네가 11m 막타워 같은 곳을 올라갈 일은 아마 없겠지만, 그런 비슷하게 높은 곳에 올라가면 바닥이 정확히 보이거든. 내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느껴지는 거야."
"으음... 잘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저는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아마..."
"그래. 마치 츠무기 네가 불과 1주일도 남지 않은 「W.I.N.G.」 준결승과 그 다음에 있을 결승이 걱정되서 그런 것과 비슷한 거겠지."
"네?"
"츠무기 너가 앞으로 수 년동안 아이돌로 살아가면서 헤쳐나가야 할 역경에 비하면, 「W.I.N.G.」 은 그리 막중하고 어려운 도전이 아니야. 「W.I.N.G.」 뒤에 있을 「S.T.E.P.」 나 그보다도 더 어려울 「G.R.A.D.」 . 그리고 이런 도전들 이외에도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을 여러 활동들. 다만, 지금 너의 눈 앞에는 일주일 뒤의 「W.I.N.G.」 준결승이 있기에 그것이 가장 부담스럽게 다가올 테니까."
"..."
"물론 「W.I.N.G.」 도전이 아무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건 아니야.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도전들을 지금부터 미리 걱정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소리도 아니고. 다만... 나는 츠무기 네가 너무 여기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W.I.N.G.」 에서 떨어져도 되니까 말이야. 왜냐면, 한번 둘러봐."
머뭇거리는 츠무기의 앞에 손을 들어 눈에 드는 이곳 저곳을 가리켰다. 옆에 잠잠히 서있는 츠무기는 어째서인지 뭐라 말을 하려고 하는 듯한 눈치였다. 뭔가 입술을 옴짝달싹하며 시선을 이리 저리 돌리는 모습은 무슨 말을 하고 싶긴 하지만 차마 못하고 있다는 뜻일건데... 다만 츠무기 본인은 지금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묵묵히 앞을 바라보았다.
"바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11m 아래의 지면이 물론 제일 신경 쓰이겠지만, 눈을 위로 들면 다른 것들이 보이니까. 우리가 지나쳐왔던 불교 사원. 저 멀리 보이는 도쿄 스카이트리. 더 멀리에 있는 레인보우 브릿지. 그 너머에 보이는 바다와 그 위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는 윤슬. 눈앞에 닥친 것에서 눈을 돌려 위를 올려보면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니까."
"그건..."
"츠무기. 난 네가 「W.I.N.G.」 준결승이나 결승에서 떨어져도 좋아. 「W.I.N.G.」 이나 「S.T.E.P.」 , 「G.R.A.D.」 같은 것들은 아이돌 활동의 전부도 아니고 일부일 뿐이기에. 그저... 그저 나는 네가 아이돌로 살아가는 매일매일이 즐겁고 웃음이 가득했으면 좋겠어. 그저 그 뿐."
"하지만..."
"하지만?"
미루어 보건대 츠무기는 이 말에 온전히 찬성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는 당연히 예상하는 바였다. 그야, 노력했으니까. 「W.I.N.G.」 에서의 우승이라는 결과를 위해 몇 달의 기간 동안 쉼없이 달려왔는데, 갑작스레 이 도전에서 실패해도 된다고 하면 쉽게 납득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기에는 여태껏 수없이 노력해왔는데..."
"그래. 지금까지 같이 열심히 노력해왔지. 그 노력들이 대부분 「W.I.N.G.」 에서 우승하기 위한 것인 걸 딱히 부정하지는 않아. 다만..."
"..."
2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츠무기는, 왜 아이돌이 된 거야? 무엇을 위해 아이돌로서 살아가고 있는 거니?"
"네...? 그, 그건..."
전혀 예상할 수 없었을 질문이었다. 그러니 츠무기도 이렇게 당황하여 애써 할 말을 고르고 있을 것이니까. 물론 츠무기가 왜 아이돌이 되고 싶어한지는 예전에 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이전에 그녀가 아이돌을 그만둔다며 보낸 편지에 나와있었던 내용이었으니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건... 어렸을 때부터 지녀왔던 제 꿈이기에..."
"그래. 지금 내 눈앞에 한 사람의 어엿한 아이돌로서 위풍당당하게 서있잖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가슴에 담아두기만 하다 어느새 잊어버릴 아이돌이란 꿈을 정말로 이뤄낸, 우리 283 프로덕션의 시라이시 츠무기가."
"그, 위풍당당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그 다음에는?"
"...네?"
"아이돌이 되겠단 꿈을 이뤘으니 이제 바로 그만둬도 되는거야? 아니겠지. 그야, 아이돌이 되는 것이나, 「W.I.N.G.」 또는 「G.R.A.D.」 에서 우승하는 건 End State가 아닌, 그러니까 최종 목표가 아닌 그저 중간 과정일 뿐이니까."
"중간 과정..."
"그러니 다시 물어볼게. 츠무기는, 무엇을 위해 아이돌로서 살아가고 있는 거니?"
"제가... 아이돌로서... 살아가는 이유는..."
츠무기는 고개를 떨구고는 얼마 동안 쉽사리 입술을 떼지 못했다. 사실, 대부분 아이돌에게 이 질문을 한다 하더라도 쉽사리 답변할 아이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이돌뿐만 아닌 이 세상의 모두가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은 답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달려가는 길의 목표를 알며 나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고 살아가는 것. 이를 모른 채 걷는 것은 그저 방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
"잘... 모르겠어요..."
차마 답을 못하며 고개를 젓는 츠무기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이 꾹 눌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비단 츠무기만이 아닌 이 세상 모두가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 어려운 질문을 그녀가 쉽게 답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래. 함께... 알아나가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비록 스스로 나아가는 길의 목표와 존재 이유를 모른다 하여도 이 세상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듯, 아이돌의 길을 걸어가는 츠무기 또한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이 아이돌로서 살아가는 이유를 마침내 찾아내고는 이를 함께 공유해줄 것이다. 자신이 이를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노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함께 알아가자. 츠무기가 아이돌로서 살아가는 이유를."
그렇게 시즌 4의 오디션에서 우승을 하여 「W.I.N.G.」 준결승에 진출하게 된 날. 담당 아이돌인 츠무기와 함께 도쿄 타워의 전망대에서 늦은 밤의 어둠을 자신의 조명으로 밝게 물들이는 이 도시의 마천루들을 바라보았다. 무거워진 마음을 지닌 채, 그 날은 밤이 더욱 깊어질 때까지 도쿄 타워의 전망대에서 츠무기와 함께 저 야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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