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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검은 고양이와 잠깐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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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8, 2025 21:26에 작성됨.

 의지가 되는 사람이 좋다.


 키타자와 시호는 아이돌이고, 직업 특성상 잘생긴 남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두루 만나게 된다. 아무래도 보통의 여자라면 눈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키타자와 시호도 붕어눈이 아니기 때문에―딱히 시라이시 츠무기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一당연히 잘생긴 남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키타자와 시호 본인이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키타자와 시호는 그런 남자를 한 명, 알고 있다.


 저기, 키타자와 시호가 앉아 있는 소파에서 조금 떨어진 곳, 작은 책상 앞에서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일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그런 사람.


 평소처럼 특별한 표정 변화 없이, 묵묵하게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회사원, 어디에나 있는 양복쟁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키타자와 시호에게 있어서 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다.


 단순히 외모, 학력, 능력, 재력…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여러 조건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하기에는 키타자와 시호는 너무 어렸고, 설령 그녀가 충분한 나이었다 하더라도, 이 사람의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놓고 재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런 남자로서의, 사회인으로서의 조건들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어딜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정도가 아니라, 이런 사람을 찾으라면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저, 키타자와 시호가 그런 것들 때문에 이 사람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뜻이 절대, 결단코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다른 어쭙잖은 남자들과 다르게, 키타자와 시호가 전적으로 의지해왔고, 의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일하고 있는 프로듀서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딱히 의식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키타자와 시호의 본능이 자꾸 시선을 빼앗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뭐, 어차피 오늘의 스케줄은 다 끝난데다가, 레슨도 없다. 주말이기 때문에 시어터에 오래 남아있을 이유도 딱히 없거니와, 약속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키타자와 시호가 네 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시어터, 그것도 자그마한 사무실 소파에 앉아 남아있는 것은, 전적으로 프로듀서 씨가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모친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기에, 키타자와 시호가 키타자와 리쿠 군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저녁은 가족끼리 오붓하게 먹을 예정이지만, 그때까진 두어 시간가량의 여유가 있다.


 조금 더, 프로듀서 씨와 같은 공간에 있는, 그녀만의 두근거림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프로듀서 씨? 괜찮으신가요…?”


 “……?!”


 하지만 프로듀서 씨의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아오바 미사키, 사무원의 목소리에 키타자와 시호는 핫,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진 프로듀서 씨의 얼굴을 보면서 이런저런 소녀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몰랐는데, 확실히 평소의 프로듀서 씨가 아니다.


 “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괜찮아요. 업무 보는 데에는 문제없습니다.”


 “…….”


 “…….”


 프로듀서 씨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오바 미사키도, 그리고 키타자와 시호도 이미 알아차렸다. 그야, 그녀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미, 프로듀서 씨는 평소 같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곤, 조금 피곤해 보이시는걸요?”


 “그런가요? 딱히…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언제나처럼 사람 좋게 헤실거리며 대충 받아넘기려 하지만, 그런 그 사람의 눈가에 숨길 수 없는 깊은 피로의 흔적이, 평소보다 축 처진 어깨가, 힘을 주지 못하고 앞으로 살짝 고꾸라진 목이, 키타자와 시호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 아오바 미사키 또한 프로듀서 씨의 그런 점들을 하나하나 알아차렸으리라. 그러니까 아오바 미사키답지 않은 강한 어조로, 딱 잘라 프로듀서 씨에게 말하는 것이리라.


 “안 돼요, 조금 쉬시고 오세요.”


 “나중에 퇴근하고 쉬면 되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고, 집에서도 업무 보고 있으시잖아요.”


 “…….”


 아마 프로듀서 씨라면 귀가해서도 일을 하시겠지, 그런 생각에 아오바 미사키가 찔러 본 것이겠지만, 그 말이 정확했는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만 짓는다.


 “그러니까 프로듀서 씨, 잠깐 눈이라도 붙이신 뒤에 하시는 게 어떠세요? 그 보고서는 제가 대신 작성해 드릴 테니까요.”


 “아오바 씨,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 일은 제가 해야지요.”


 “으…….”


 철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로듀서 씨는 아오바 미사키의 친절을 살며시 밀어낸다. 딱히 동료 사무원을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성격이리라. 자기 일은 반드시 자기가 책임지고 끝내야 하는 사람.


 키타자와 시호가 알고 있는 프로듀서 씨는, 그런 우직한 사람이니까. 그렇기에 키타자와 시호가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은 저렇게 스스로 힘든 길을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키타자와 시호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보 같은 사람. 미련한 사람. 그래서 더 믿음직한 것이겠지.


 그런 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의 안사람, 다시 말해 아내에 걸맞으리라.


 ……내조라는 것이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키타자와 시호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 아오바 미사키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곤 프로듀서 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아오바 미사키에게 조심스레 말한다.


 “프로듀서 씨는, 제게 맡겨주세요.”


 “……?”


 비장한 얼굴의 키타자와 시호와는 달리, 아오바 미사키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무원의 반응은 관심도 없다는 듯, 키타자와 시호는 어느새 아오바 미사키를 지나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프로듀서 씨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곤, 예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상체를 살그머니 숙여 프로듀서 씨의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인다.


 “프로듀서 씨, 잠시 괜찮으신가요.”


 “아……시호구나. 무슨 일이니?”


 귓가에 갑작스레 담당 아이돌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깜짝 놀란 듯하여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다가, 이내 특유의 풀린 표정으로 키타자와 시호를 바라본다. 그런 프로듀서 씨가 조금 귀여워서였을까, 자기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려놓는다.


 “조금, 프로듀서 씨가 도와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어서요.”


 “어, 지금?”


 “네. 지금 바로요.”


 “……그래, 알겠어. 도와줄게.”


 생뚱맞은 부탁이었으나, 프로듀서 씨는 잠시 머뭇거렸을 뿐, 이내 내용도 물어보지 않고 도와주겠다 흔쾌히 답변한다. 역시나 이 사람은, 키타자와 시호에게 많이 무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쪽은, 키타자와 시호 본인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런 확신이 있었으니까. 프로듀서 씨에게 갑작스레 뭔가 요청을 한다 해도, 그 사람이라면 반드시 승낙할 거라고. 그런 사람이니까.


 “그러면, 같이 수면실로 갈까요?”


 “자, 잠깐…갑자기 수면실에?”


 “자, 어서요. 분명히 도와주신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키타자와 시호는 프로듀서 씨의 손을 잡는다. 남자의 손을 잡아보는 것은 몇 번 있는 일이었지만, 솔직히 릿군 아니면 프로듀서 씨뿐이다.


 하지만 릿군의 작고 귀여운, 말랑말랑한 손과는 다르게, 프로듀서 씨의 손은 크고 단단한…듬직한 남성의 손이었다. 이 손으로 가끔 키타자와 시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거나, 어깨를 두들겨 긴장을 풀어주거나 하는, 그런 믿음직한 손길.


 항상 끌려만 갔던 그 손을, 이번에는 키타자와 시호가 끌어당긴다.


 이런 상황에서도 프로듀서 씨는 키타자와 시호의 부탁이 무슨 내용인지 일절 물어보지 않고,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그리곤 옆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아오바 미사키를 보며 어깨를 으쓱인 뒤, 키타자와 시호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을 떠난다.


 아마 눈치가 빠른 프로듀서 씨니까, 이미 알아차리셨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알고 있다. 키타자와 시호가 프로듀서 씨를 왜 수면실로 데려가는지.


 하지만 동시에, 끝까지 모른 척하실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이니까, 바보 같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수면실에 들어오자마자 구석 한편에 마련된 침대로 걸어간다. 프로듀서 씨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키타자와 시호를 보고 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여기까지 와서 안 돼, 라고 하시진 않을 테니까.


 “최근에 릿군이 그…잠을 깊게 못 자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조심스레, 이미 들켜버린 거짓말을 시작한다. 프로듀서 씨는 그렇구나, 라며 침대 한쪽에 앉는다.


 그 옆에, 치마를 가지런하게 정돈하며 조심스레 앉는다. 머리 하나도 더 차이 나는 키에, 프로듀서 씨를 올려다보게 된다. 릿군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키타자와 시호는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 조금…잠을 잘 자게 하는 방법을 시험해보고 싶어서요.”


 “그런 거라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도 괜찮잖아, 그렇게 말씀하시겠지. 사무원이나 다른 아이돌들에게 부탁해도 충분한 일을, 굳이 자신에게 부탁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프로듀서 씨는 알고 계시잖아요. 키타자와 시호가 왜 프로듀서 씨에게 이런 거짓말을 하는지. 절대적으로 당신의 피곤한 몸을 생각해서, 휴식을 위해, 그리고 키타자와 시호의…약간의 사심을 위해서라는 것을.


 그리고 키타자와 시호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둘러대는 것이, 프로듀서 씨 나름의 방어기제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의 키타자와 시호 앞에서, 그런 것은 하등 소용이 없다는 것 또한.


 “프로듀서 씨니까요. 아니면, 혹시 다른 남자들에게 이런 비밀스러운 부탁을 하길 바라시나요?”


 “시호…….”


 언제부터 이 아이가 이리도 비겁해졌단 말인가, 그는 말끝을 흐리며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하지만 그 또한 이미 알고 있다. 키타자와 시호에게, 그의 속내를 숨기는 것은 소용없다는 것을.


 “그런 건 싫으시잖아요. 그러니까, 자아…이쪽으로.”


 “…….”


 후후 웃으며 자기 허벅지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는 담당 아이돌을 보며, 프로듀서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건,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리라.


 이것 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하시면서도, 순순히 키타자와 시호의 말에 따라 주시잖아. 이러면 안 돼 라느니, 옳지 못하다느니 어쩌니 같은 말도 안 하시고, 키타자와 시호의 작은 어리광을 그대로 받아주시잖아.


 “…정말 동생 때문인 거지?”


 마지막 저항일까, 릿군 때문이냐고 구태여 물어본다. 왜요, 아니라고 대답할까 봐 그러시나요. 릿군 때문이 아니라면, 키타자와 시호의 마음이 프로듀서 씨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런 괘씸한 속내, 혼내드리고 싶지만…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프로듀서 씨, 전혀 쉬실 것 같지 않으니까요.


 “글쎄요, 어떨까요.”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입은 이미 짓궂은 목소리로 프로듀서 씨에게 말하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프로듀서 씨가 왠지 모르게 귀여워서, 조금쯤 골려주고 싶었나 보다.


 “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만두실 건가요?”


 “…….”


 프로듀서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키타자와 시호, 당신의 담당 아이돌이 부탁하는 거잖아요. 거부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이내, 프로듀서 씨는 체념한 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키타자와 시호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려놓는다. 말랑하면서도 폭신한 피부의 감촉, 프로듀서 씨가 주무시는 데에 이만한 사치도 없으리라.


 “한숨 돌리시고, 잠시 눈 좀 붙이세요. 삼십 분 정도 있다가 깨워드릴 테니까요.”


 “이렇게까진 안 해줘도 되는데.”


 “가끔은, 어른도 어리광 부리셔도 괜찮아요.”


 “……그래, 부탁할게.”


 말로는 못 당하겠는지, 그는 피식 웃으며 키타자와 시호의 허벅지 위에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프로듀서 씨의 가슴께가 일정하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쌔액쌔액 숨을 쉬시는 것이, 마치 잠든 어린 릿군과도 같아, 무심코 후후, 작게 웃어버린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의지할만한, 믿음직한 사람이더니, 지금은 키타자와 시호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프로듀서 씨의 새로운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듯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떨쳐낸다.


 “항상 감사해요, 프로듀서 씨.”


 작게, 프로듀서 씨가 깨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레, 마음 깊은 곳에 항상 간직하는 본심을 살그머니 꺼낸다. 언제나 키타자와 시호를 위해 불철주야 몸을 아끼지 않는,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라기에는 조금 더 듬직한,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니까, 키타자와 시호의 당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직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본심처럼, 그런 미래가 언젠간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리고…좋아해요, 정말로요.”


 프로듀서 씨는 듣지 못하시겠지만, 키타자와 시호 자신의 다짐이기도 하다.


 조심스레 프로듀서 씨의 뺨에 손을 올려놓는다. 다정하고 듬직한 사람이다. 여전히, 키타자와 시호는 의지가 되는 사람이 좋다.


 하지만 프로듀서 씨라면, 이쪽을 의지해주는 사람이어도 괜찮으리라. 프로듀서 씨의 얼굴을 살며시 끌어안으며, 키타자와 시호는 허리를 숙인다.


 쪽―, 하는 짤막한 소리가 고요한 수면실에 울려 퍼진다.


 시어터의 겨울은, 따스한 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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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호 생일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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