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시라이시 츠무기] Alt. Ending 2. 그런 당신을/그런 너를, 저는 좋아합니다/나는 좋아합니다.

댓글: 0 / 조회: 76 / 추천: 0



본문 - 12-01, 2024 23:20에 작성됨.

Alternative Ending 2. 그런 당신을/그런 너를, 저는 좋아합니다/나는 좋아합니다.



 그 날의 노을을 기억한다. 눈물이 맺혀있는 서로의 눈에는 점점 져가는 노을이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 눈물이 애틋함으로 인해 우러나오는 것인지, 비통함으로 인해 흘러나오는 것인지 그 누구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더라도, 서로의 눈에 떠오른 노란 노을 빛이 정말 눈부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그리고... 부디, 행복하기를."


  "잠깐...! 잠깐만요...! 프로듀서...!"


 비록 타인이지만, 비록 보이는 시야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둘의 눈에 담기는 노을의 빛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둘은...



 상단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프로듀서...!"


  "..."


 출국 수속장으로 걸어가던 그는 제 간절한 외침을 듣자 다행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덧없는 눈길이 저에게 닿자 숨이 턱 하니 막혔습니다. 불러세우긴 했는데, 막상 프로듀서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그토록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은 온데간데 없고 머리가 새햐얘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를 보내준다면... 아마 다시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는 것만 같은 느낌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를. 프로듀서가 해준 적은 없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그 이야기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를 프로듀서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얼마 동안의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 적당히 소란스러운 공항의 인파를 뒤로 하고 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옛적에 어느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대형 농장의 주인이었는데, 그 해 가을은 풍년이라 창고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수확을 얻게 되었습니다."


  "츠무기 네가 어떻게 이 이야기를...?"


  "부자는 넘치는 수확을 어떻게 할 지 고민하다 이내 결심했습니다.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서 이 곡식을 다 담아둬야겠다! 몇 년 동안 쓸 물건을 쌓아뒀으니 일 안하고 쉬고 먹고 마시고 할 수 있겠지?' 라고 말하며 그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줄 사람은 주변에서 프로듀서 이외에 없긴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봐도 그가 직접 이 일화를 들려준 일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마 언젠가 꿈에서 이 이야기를 누군가 해준 것 같긴 하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그 날 저녁 이불을 덮고 누우면서도 싱글벙글하며 웃었습니다. 그는 잔뜩 모은 재물로 몇 년 동안 일하지 않고 잔뜩 잔치를 벌일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잠에 든 부자는... 다음 날 침대에서 잠든 채로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한 프로듀서는 꽤 놀란 눈치였습니다. 아마 그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인지 내용에 대해 별 의문을 가지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프로듀서는,


  "그래, 이 이야기...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잖아. 알고 있지. 그야 어렸을 때부터 자주 읽었던 이야기니까. 그래서 츠무기. 이 이야기를 지금 나에게 말해주는 이유가 뭐야?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니?"


  "..."


 당연한 것이지만, 잊고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무한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별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곁의 소중한 사람이 평생 옆에 있을 것만 같이 대합니다. 고마운 일이 있어도 '나중에 고맙다 하지 뭐' 라고 하거나, 잘못을 해도 '언젠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겠지' 라고 여기지만, 그러다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전까지 자신이 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후회하게 되어버립니다.


  "프로듀서... 있잖아요..."


  "어. 그래..."


 돌이켜보니 바보는 프로듀서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비단 이번에 프로듀서가 떠나버리지 않는다 해도, 시간이 흘러 언젠가 프로듀서는 저의 곁에 없을 거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결말은 항상 정해져 있으니까요. '회자정리'. 이별은 반드시 찾아오는 법. 하지만 이 당연하고도 자명한 사실을, 저는 너무나 당연히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코쿠 씨가 말했었죠. '솔직하지 못하다' 라고. 그야 그럴게,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남부끄러운 것이니까. 그렇지만... 서로의 진심을 숨기고 가리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짧으니까.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지금의 우리처럼 이별을 맞이할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저는,


  "프로듀서. 전 이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싫습니다."


  "..."


  "정말 별 수 없을 정도로 어른답지 못한 변변찮은 사람에, 담당 아이돌은 나몰라라 하고 다른 아이돌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바람둥이에, 로리콘에다가 맞는 걸 좋아하는 변태에, 매번 저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아주 당연하게 저지르는 파렴치한에, 아이같은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악동에..."


  "츠무기... 정말 미..."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달려와서는 이것저것 친절히 알려주는 선생님에, 아이돌로서 나아가는 와중에 길을 잃으면 어느샌가 옆에 다가와서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에, 사람들을 도와주기 좋아하고 항상 뭔가 재미있는 듯 웃고 있는 호인에, 가슴에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을 즐겁게 노래하는 몽상가에, 제가 위험한 위기에 빠질 때마다 매번 나타나 저를 구해주었던 영웅에..."


  "..."


  "그런 당신을, 저는 좋아합니다."


 드디어... 드디어 말해버렸습니다... 사무소 분들이 저에게 솔직해지라고 조언을 했을 적에는 이 감정이 뭔지 몰랐습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감정이 다른 것이라고 여겼어서. 이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어서.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떠나려는 지금 이 순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곁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힘께 있어줄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진실된 속마음을 숨기고 겉치레하기엔 우리 삶은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그렇기에...


  "하하... 츠무기. 그건 너무 비겁하잖아... 그야 그럴게..."


  "네...?"


  "아무리 봐도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저 날 붙잡기 위해 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으니까."


  "..."


 웃고 있으면서도 당장 울 것만 같은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자 아무 말도 그에게 해줄 수 없었습니다. 사실, 무언가 계획하고 했던 말은 아니었습니다. 왜 갑자기 프로듀서에게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들려준 건지, 왜 갑자기 프로듀서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건지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프로듀서를 떠나지 못하게 막고자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없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 프로듀서가 하는 말을 듣자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점점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츠무기 네가 전에 말했잖니. 너는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싫어한다고.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레 나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될 리가 없잖아. 내 말이 틀렸니?"


  "아, 아니에요... 무, 물론 전에는 그렇게 말했었지만, 지... 지금은...!"


  "츠무기 네가 가진 감정은 좋아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를 거야. 가령... 그래. 학교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 같은 거야. 반에서 한두 명 있지 않니?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친구가. 그렇게 선생님을 좋아하는 감정이 정말로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보다는, 아마 존경의 감정에 더 가까울 거야. 츠무기 네가 나를 보고 드는 감정이... 싫어한다는 감정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것과는 다른, 그러니까 존경심...? 존경을 살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고... 아마 친구 같은 거겠지."


  "읏..."


 그 말을 듣자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뿌예졌습니다. 저는 제 감정을 뭐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닌데. 어째서 애써 부끄러움을 이기고 그에게 전한 제 진심을, 그는 진정으로 받아주지 않는 걸까요... 그리고... 어렵사리 내뱉은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이전에 제가 했던 말로 인해 프로듀서가 제 진심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그의 뺨을 때리면서, 시간이 지난 뒤에 제가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후회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 아니에요 프로듀서... 저는... 저는!"


  "만약 그럼에도 너의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이 그런 존경이나 우정과는 다른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도 츠무기 너에게 해줘야만 하는 말이 하나 있어."


  "에...?"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는 프로듀서는 말을 하다 말고는 저를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침묵이 1분, 2분. 이따금 들려오는, 뭐가 즐거운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시끌벅적한 공항의 소음. 그렇게 몇 분을 서로 아무 말 없이 서있었을까... 그 침묵을 이기지 못한 제가 먼저 입을 열려고 하자 프로듀서는,


  "츠무기.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아..."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역시 프로듀서는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던 것이군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거절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의 진심을 더 일찍 말해줬어야 하는데... 허나 아무리 과거에 있던 일을 후회한다 하더라도 이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다시 되새기자 장이 끊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그의 말에 아무 답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고 있자,


  "그 사람은... 꽤 이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어. 물론 그런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기에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지만, 어째 주변 사람들은 다 눈치채고 있더라고. 그 사람만 빼고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예쁘다고 생각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은발에..."


 그 사람이 덧없는 미소를 띄운 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늘어놓는 말을 듣자 점점 마음이 비통에 사무쳤습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서 주먹으로 제 가슴을 내리치고 싶었습니다. 은발... 역시 프로듀서는 유코쿠 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군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자신의 마음에 누군가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다른 누군가 들어오는 것은 사뭇 어려운 일이기에. 그러기에 프로듀서는 제 진심을 받아줄 수 없는 것이겠죠. 프로듀서는 유코쿠 키리코 씨를 이 세상 누구보다 좋아하...


  "흔히 볼 수 없는 은발에... 저 푸르른 하늘과도 같은 유리색 눈 말이야."


 에...? 은발에 푸른 눈이면... 설마...


  "그런데 그 사람 말이야. 예쁘긴 한데, 정말 바보같은 거 있지. 먹는 걸 좋아해서 휴일마다 디저트 가게를 순회하며 디저트를 마구마구 먹고. 그러다 살쪘다고 울상 지으면서 댄스 레슨 때 더욱 매진하고. 매번 진중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데, 걸핏하면 당황해서 본인이 안 쓴다고 주장하는 사투리까지 써가면서 흥분하고. 도도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툭하면 어리버리한 허당같은 모습이나 보여주고. 나보고 맨날 변태라고 몰아가면서 막상 부적절하고 이상한 망상은 본인이 하고. 워낙 까칠해서 내가 순수하게 걱정하는 말을 건네도 뭔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그리고... 나를 이 세상 누구보다 싫어하고."


  "프, 프로듀서... 그건..."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지만 필요할 때에는 나서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정도로 믿음직스럽고. 야마토 나데시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의가 바르며 단아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늦은 밤까지 아픈 부상을 참아가며 끊임없이 노래와 댄스를 연습하는 노력가이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노래를 부를 때, 춤을 출 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욱 밝게 빛나는 어엿한 아이돌이고."


  "프로듀서..."


  "시라이시 츠무기 양. 그런 너를, 나는 좋아합니다."


 그 말을 듣자 뭐라 할 것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에서 눈물이 더욱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아..."


 프로듀서도 저를 좋아하고 있었군요... 사무소의 다른 분들이 하는 말을 얼핏 듣다 보면 이를 눈치챌 수는 있었습니다. 물론 저를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거나 따뜻한 말을 해줄 때에는 정말 그런가 싶기도 했었지만, 다른 아이돌들이나 사무원인 나나쿠사 씨에게 저에게 하는 것만큼 따뜻하게 대해줄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저에게 몇 번 모질게 말을 할 때가 떠오르며 그런 추측을 애써 배제했습니다. 프로듀서는 모든 여성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구나. 저에게 대해주는 것만큼 다른 아이돌이나 나나쿠사 씨에게 그대로 해주겠구나. 저를 좋아하기에 이렇게 해주는 것일 리가 없고, 원체 저렇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구나, 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타일렀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프로듀서는 정말 저를 좋아하고 있던 것이군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서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기쁨으로 인해 우러나오는 눈물이 되어 저의 볼을 가로질러 흘러내렸습니다.


  "그런 너를, 나는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프로듀서... 그런 당신을..."


  "그러니까... 시라이시 츠무기 양. 이제 이별입니다."


  "...에?"


 프로듀서의 갑작스러운 말을 듣자 제가 들은 것이 맞나 하여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어째서...?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이별을...? 아마 제가 잘못 들은 것이겠죠. 왜냐면 일반적으로 사고했을 때에는,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이별이야."


  "어째서... 어째서죠...?"


 충격으로 인해서 그런지 흐르던 눈물도 어느 순간 멎고는 목소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저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그야... 너를 위해서. 너를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저를... 좋아해서...?"


  "츠무기. 내가 너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 너에게 입혔던 상처...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그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이전에 프로듀서가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말들은,


  '야, 시라이시 츠무기.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찾아보면 다른 사무소에도 너랑 비슷한 컨셉의 아이돌들이 꽤 있다고. 걔네들도 될까 말까인데, 너가 다른 특별한 게 있어서 이런 오디션에서 쉽게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읏..."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프로듀서가 제게 입힌 상처를 떠올리면 그가 저를 떠나가야만 한다는 걸 증명해버리는 꼴인데...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시라이시 츠무기. 내가 너한테 그런 걸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나 있어? 그렇게 해주면 내가 너한테 고맙다고 말할 줄 알았던 거야? 너야말로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거야?'


  "프, 프로듀서... 저는... 저는..."


  '애초에, 네가 아이돌을 하는 것도 시라이시 가(家)의 가업을 이을 때까지의 놀이잖아.'


  "읏..."


 다 극복한 줄 알았는데. 다 용서한 줄 알았는데. 그로 인해 입었던 상처들을 되새기자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야, 정말로 아팠으니까. 몇 날 며칠 눈물로 밤을 지새울 정도로 아팠으니까. 생판 모르는 남이 했으면 그리 아프지 않았을 말을, 그 누구도 아닌 프로듀서에게서. 저에게 소중한 사람에게서 들어버린 것이니까.


  "지금도 떠오르잖아. 내가 너에게 입혔던 상처들이. 츠무기 네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너의 옆에 있어야 할 건 나 같은 게 아닌 다른 제대로 된 사람이어야 할 거야."


  "아니에요 프로듀서... 저는..."


  "줄곧 고민했어. 어떻게 하면 츠무기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그렇게 고민하다, 이제서야 깨달은 거야. 네 옆에 있어줄 사람이 나여서는 안돼. 너를 만나기 이전에 내가 지었던 과오들... 그리고 너를 만난 이후에 내가 지었던 죄악들... 속죄하지 못한 나 같은 것 때문에 너를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되겠지."


  "프로듀서... 저는...! 저는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츠무기. 이제 이별이야."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붙잡아야 하는데. 그러나 어째서인지 지면에 딛은 두 발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서있자,


  "그래... 츠무기. 아까 내가 너에게 이렇게 말했지. 츠무기 네가 나를 보고 드는 감정은 아마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것과는 다른 친구 같은 거라고."


  "그건...!"


  "비록 너의 감정이 우정과는 다른 것일지라도, 너의 프로듀서를 그만 둔 시점에선 이것이 제일 적절할 거 같아."


  "그러니까 우정 같은 것이 아니라...!"


  "츠무기. 카나자와에서부터 날 따라 283까지 와줘서, 정말 고마워. 비록 험난했지만 「W.I.N.G.」 도전 간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노력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와 같이 여러 풍경을 보러 가줘서, 정말 고마워. 283 프로덕션에서 같이 보낸 매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어. 그렇게 프로듀서로 있을 수 있다는 건 힘들지만 즐거운 일이었어.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은, 너와 함께 본 저녁의 노을 빛은... 아마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야."


  "프로듀서... 부디 제 말을..."


  "아마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저 멀리서 항상 너의 소식을 보고 들으며 응원할게. 고마워, 내 친구 츠무기. 그럼 안녕."


 프로듀서는 덧없는 미소가 아닌, 어째서인지 활짝 밝은 웃음을 띄우며 저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그대로 둔 채 출국 수속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프로, 듀서... 아, 안돼요... 기, 기다려요..."


 하지만 프로듀서는 제 말이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건지 그대로 멀리 멀리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런 프로듀서의 모습을 보자 아까부터 애써 울지 않으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다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했잖아요... 절대 먼저 떠나지 않기로... 아직 「W.I.N.G.」 결승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눈에 머금은 눈물 때문에 멀리 걸어가는 프로듀서가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을 들은 건지 프로듀서는 잠시 멈춰서는 듯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있는 곳을 향해 뒤돌아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초간 제자리에서 서있다가 다시 발을 뗀 그는 저 멀리 나아갈 뿐이었습니다. 제가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제가 붙잡을 수 없는 곳으로.


  "프로듀서... 안돼요... 가지마... 기다려요 프로듀서..."


 어느새 한 무리의 인파에 가려져서 이제 프로듀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게 제가 볼 수 있는 프로듀서의 마지막 모습이겠죠. 이제 더는 프로듀서를 볼 수 없겠죠. 이 사실을 깨닫자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애타는 마음에,


  "프로듀서!!!"


 하고 외쳐보았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 한복판에서 바보처럼 주저앉은 채, 아무 말 없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비통함이 가득 찬 가슴을 제 주먹을 들어 내리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만약 다른 말을 했다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선택지를 골랐다면... 프로듀서를 붙잡을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아무리 후회한다 한들, 이젠 떠나버린 프로듀서가 돌아올 리 없겠죠.


  "흑... 으흑..."


 그렇게 프로듀서와 처음 친구가 된 날에, 프로듀서였던 제 친구는 저의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그 날은 해가 질 때까지 공항에서 주저앉은 채 울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Alternative Ending 2. 그런 당신을/그런 너를, 저는 좋아합니다/나는 좋아합니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