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프로듀서
게시판 카테고리.
글
[시라이시 츠무기] 38. 부디, 행복하기를.
댓글: 0 / 조회: 94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1-11, 2024 00:31에 작성됨.
38. 부디, 행복하기를.
"시라이시 양, 첫 눈에 보고 알았습니다. 당신은 사파이어 원석입니다. 분명 당신이라면...!"
처음 츠무기를 스카우트하기 시작할 때, 그녀도 283에서 아이돌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마음에 들어서 이를 받아들여 줬다고 여겼었다. 츠무기는 착하고 소심해서 타인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어째서 제가 여기 오고 가는 이유를 전부 당신에게 말해줘야 하는 건가요!? 프로듀서는 유코쿠 씨랑 함께 사무소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죠...!"
그러다 츠무기와 다투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어찌어찌 그녀와 화해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마음이 여린 츠무기는 사과를 저버리지 못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당신은 이걸 생각해본 적은 있나요? 제가 왜 이렇게 아픈 걸 참아가며 춤을 추는지, 그리고 그게 과연 누구 때문인지?"
시즌 4까지 나아오면서 츠무기를 더 나은 아이돌로 만들기 위해, 아무리 고되고 힘들더라도, 많은 일정과 연습을 할당해 무작정 그녀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츠무기가 과연 누구 때문에 이를 참는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그저 이해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아니, 이해해주지 못해도 그대로 있어줬으면 했습니다. 전부... 전부 당신을 위해서 하려고 한 건데..."
그럼에도 그녀를 상처입히고 말았다. 츠무기가 이렇게 참는 것은 자신의 바보같은 프로듀서를 위함이란 걸 깨닫지 못하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렇게... 시라이시 츠무기가... 흑... 무릎을... 꿇었습니다... 흑... 이제... 이제 됐... 으흑...!"
의도적으로 츠무기가 자신의 꿈을 저버리게 하기 위해 모진 말을 내뱉고 울게 만들었다. 츠무기가 받는 고통과 아픔은 그녀가 아이돌을 함이 아니라, 바로 츠무기의 프로듀서 때문이란 걸 깨닫지 못하고.
'이건 전부... 내 자신의 탓이다...'
이 모든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선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걸지도. 아이돌을 제대로 프로듀스하지 못하는 무능한 프로듀서. 아이돌을 멋대로 상처입히는 못된 프로듀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은 무익한 사람. 죄인 중에 괴수. 그런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은,
「그때 죽어버렸어야 했는데...」
1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음... 그래, 누가 읽게 시켜볼까? 시라이시가 한번 읽어보겠니?"
"..."
"자, 시라이시? 첫 번째 문단부터 읽어보렴."
"..."
"시라이시?"
"아, 아아! 죄, 죄송합니다..."
"시라이시, 괜찮니? 근 며칠 간 안색이 좀 안 좋은데..."
"..."
선생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한번 두번 있던 것도 아니고, 며칠 간 이렇게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고 사실상 수업 시간 내내 생각이 다른 곳에 가있었습니다. 물론 요즘에 이런 저런 일들이 정말이지 많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흑... 시라이시 츠무기가... 무릎을... 흑..."
"...츠무기 도대체 왜 네가..."
그 무엇보다 어제에 있던 일이 내내 제 마음속을 어지러이 흔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 기억들을 떨쳐내고 수업에 집중하려 해보아도, 그때의 기억을 제 머리에서 지워버릴 수 없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마냥 저를 상처입히는 그 사람의 기억을.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인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그 눈물의 기억을. 그리고,
"이렇게... 시라이시 츠무기가... 흑... 무릎을... 꿇었습니다... 흑... 이제... 이제 됐... 으흑...!"
"츠무기 도대체 왜 네가... 도대체 네가 무슨 잘못을 지었다고..."
저를 상처입히는 와중에도 뭔가 괴로운 듯 이를 악물고 있는 그의 기억을. 무릎 꿇은 채 울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자 망연자실 넋이 나간 듯이 저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인 그의 기억을.
"죄송... 합니다..."
"아, 아냐! 그럼... 옆에 친구가 대신 읽어볼까? 첫 번째 문단인..."
그렇게 그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뭐라 중얼대다가, 이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는 사무소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렇게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이대로 프로듀서가 영영 떠나가 버리는 것은 아닌가. 다행히, 이전 쉬는 시간에 나나쿠사 씨에게서부터 문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츠무기 쨩... 학교 공부는 잘 되어가니?」
「앗, 네... 큰 문제는... 없습니다.」
「프로듀서 님... 오늘 사무소에 나오시긴 했는데...」
그 말을 뒤로 다른 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나나쿠사 씨는 사무원이기에 정말 바쁠 것이니까요. 뭔가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하교하고 나서 사무소에서 프로듀서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이번에도 잘 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꼭 그와 제대로 말을 해볼 것입니다. 잘 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도... 그렇게 오만한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안녕하세요..."
학교가 끝난 뒤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바로 사무소로 출근하자, 어제와 같이 뭔가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항상 지금 시간대라면 신발장에 프로듀서의 신발이 있어야 하지만,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프로듀서는 옥상에 있는 것일까요..."
신고 온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난 뒤에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나쿠사 씨, 선배 프로듀서 님... 혹시 무슨 일..."
"이 자식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아, 츠무기 미안! 좀 지나갈게!"
"앗..."
선배 프로듀서 님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사무실 밖으로 서둘러 걸어나갔습니다. 그렇게 걸어나가며 하던 말이 뭔가 마음에 걸려서,
"나나쿠사 씨, 혹시 프로듀서는..."
"츠무기 쨩... 오늘 프로듀서 님에게서 연락 왔었니?"
"네...? 그, 그야 오지 않았습니다만..."
"그렇구나..."
나나쿠사 씨는 소파에 천천히 앉고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보는 이조차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덧없는 미소였기에 저 또한 몇 초간 멍하니 서있었지만, 이어서 정신을 차리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나쿠사 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나쿠사 씨. 지금 무슨 일인가요? 프로듀서는 어디에 있고, 또 왜..."
"..."
나나쿠사 씨는 대답을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여진 어느 봉투를 제 방향으로 밀었습니다. 그 봉투 위에 큼지막하게 써있는 제목은,
"사직서..."
"..."
"이게... 이게 왜... 전에 프로듀서가 찢어버렸는데..."
이전에 프로듀서와 다투고 나서 어떻게든 다시 화해했을 당시에, 도쿄에 지낼 곳이 없어서 잠시 그의 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사람의 집에 있던 사직서를 우연히 발견해서 이를 추궁하자, 그는 사직서를 찢어버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츠무기. 예전에 병원에서 해줬던 말 기억 나?"
"..."
"츠무기가 잘못될 일 없게 항상 네 곁에 있어줄 거라고 했었어. 네가 먼저 떠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떠날 일은 절대 없을 거니까 안심해."
그때 보았던 사직서인지 아니면 새로 작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듀서의 사직서가 제 눈 앞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이, 이럴 수가..."
봉투를 열고 안에 들어있는 종이를 펼쳐서 보자, 양식에 맞춰서 사직서가 쓰여있었습니다. 양식 중앙에는,
「상기 본인은 위와 같은 사정으로 인해 ....부로 사직하고자 하오니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혀있지만 위에 사유에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았습니다.
"말도 안돼... 어, 어떻게... 말도 없이..."
"츠무기 쨩도 프로듀서 님께 들은 게 없었구나."
"프로듀서는... 프로듀서가 남긴 말이 없었나요? 왜 퇴사한다든가, 아니면 어디로 갈 거라든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나지 않을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편지라든가 아니면 무슨 전언을 분명히..."
"츠무기 쨩. 진정해."
평소의 느긋한 나나쿠사 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나쿠사 씨는 저를 진지한 표정으로 담담히 응시했습니다. 나나쿠사 씨는 소파에서 일어서면서 제 어깨에 손을 얹고, 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츠무기 쨩. 잘 들으렴. 이건 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이란다."
"그치만 제가 뭘 어떻게... 당장 저한테도 온 연락이 없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츠무기 쨩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프로듀서 님이 다른 곳에서 잘 살기를 빌어주는 수밖에 없어. 그게 츠무기 쨩이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 하렴."
"그치만... 그치만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데, 저 같은 게 뭘..."
"츠무기 쨩. 방금 프로듀서 님이 듣고 있었다면, '저 같은 게' 라는 말을 했다고 뭐라 하셨을 거야. 프로듀서 님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같이 지냈잖니? 츠무기 짱이 알던 프로듀서 님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잘 생각해보렴. '츠무기 쨩 같은 게' 아니라 '츠무기 쨩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야."
"..."
"나도 한번 프로듀서 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확인해볼 테니, 츠무기 쨩도 힘내주렴. 알겠지?"
원래 알던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말투로 조용히 말을 하는 나나쿠사 씨는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 전화를 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섰습니다.
"나나쿠사 씨...! 나나쿠사 씨..."
사무실을 나서는 나나쿠사 씨를 불러보았지만, 이내 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나나쿠사 씨는 사무실을 떠나면서 저에게 힘내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대로 이제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프로듀서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프로듀서의 아무 것도 모르는 저 같은 게.
"저 같은 게... 과연 할 수... 아니, 프로듀서가 보고 있었다면 '저 같은 게' 아닌 '저밖에 할 수 없는 것' 이라 해줬겠죠. 그 사람이라면..."
낙천적인지, 아니면 바보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프로듀서는 저를 항상 믿어주었습니다. '츠무기는 할 수 있어' 라든가, '난 츠무기를 믿어' 라고 하거나. 그에 반해 저는 그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프로듀서는 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만큼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길기에 그럴 것이겠죠.
"적지 않은 시간을 같이 보냈었죠. 물론 보낸 시간이 길고 짧음과 그 사람을 어느 정도 까지 아느냐는 다른 문제이지만,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당신을 보내줄 수는 없습니다."
결의를 다지기 위해 그대로 선 채 심호흡을 깊게 한번 내쉬고는, 프로듀서의 책상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탐정이라면... 온갖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내는 명탐정이라면, 프로듀서의 자리에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프로듀서의 책상은 이미 나나쿠사 씨나 선배 프로듀서 님이 한번 뒤져본 듯 서랍들이 조금씩 열려있고 서류철이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분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건 여기에 단서가 아예 없거나, 아니면 찾기 어려운 곳에 있다는 거겠죠. 그렇게 그의 책상 위를 훑어보다 이윽고 눈에 들어온 것은,
"컴퓨터... 원래라면 화면이 켜있거나, 잠깐 자리를 비운다 하면 절전모드여야 할 것인데... 아예 꺼진 걸 보면 아무도 컴퓨터는 확인을 하지 못한 걸까요..."
꺼진 컴퓨터의 전원을 눌러서 다시 켜자, 짧은 시간이 흐른 뒤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화면이 떴습니다.
"어... 어라? 그러고 보니 암호를 입력해야 했었죠..."
사실 쓸 일이 거의 없었지만, 드물게 프로듀서의 컴퓨터를 이용해야 할 때에는 프로듀서에게 부탁해서 그의 PC를 쓰곤 했었습니다. 화면보호기를 설정해두진 않았기에 만약 화면이 켜져 있다면 그가 없어도 쓸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전원이 꺼져 있었으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분명 그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단서가 있을 것입니다... 비밀번호를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과연 뭘까요?"
과거의 기억을 곰곰이 되짚자, 어느 순간 오류로 인해 컴퓨터가 갑작스레 꺼졌을 적이 떠올랐습니다.
"어, 어? 뭐야! 거의 다 작성했는데! 아, 미치겠다. 내가 진짜..."
라고 그는 투덜대면서 다시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는 키보드를 짧게 3에서 5회 정도 타이핑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이 컴퓨터를 부팅하고 난 뒤에 입력하는 비밀번호일 것이지만, 당시 제가 앉아있던 곳에서는 그가 입력한 것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명탐정이라면... 작은 단서조차 놓쳐서는 안되는 법... 빠르게 4회 정도 타이핑을 한 것이면... 아마 숫자 네 자리? 프로듀서와 관련 있는 숫자 네 자리가 과연 무엇이..."
이런 경우에는 기회가 무한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비밀번호 입력을 5회 틀리게 되면 계정이 잠시 잠겨버리게 되겠죠. 그렇기에, 신중하게 입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듀서는 단순한 사람이니까... 일단 0000?"
물론 해당 비밀번호가 숫자 네 자리인지 확실하지도 않고, 설령 숫자가 맞다 하더라도 단번에 맞출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걸 떠올리면, 확률은 10을 네 번 곱하니 1/10000. 전부다 대입해서 맞출 가능성은 희박하니 무턱대고 찍는 것보단 그와 관련된 숫자를 입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0000은 정답이 아니군요... 음? 이건?"
입력한 답이 틀리자, 이내 화면 하단에 비밀번호의 힌트가 나타났습니다. 그 힌트는 이렇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생일 4자리」
"앗... 생일...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의 생일을 저는 아직 모르는데... 이걸 어찌 해야..."
그와 함께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전 그의 생일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프로듀서는 제 생일 때 선물까지 챙겨줬었는데... 프로듀서의 생일은 아마 사장실에 있는 행정철 사이에 있는 그의 이력서에 써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행정철들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찰나,
"잠깐만... 제 생일 때 선물을 챙겨줬기도 했고... 과연 프로듀서가 자신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해놨을까... 제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라면..."
정말 바보같은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자의식 과잉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문득 그가 이전에 해줬던 말이 뇌리에 스쳤습니다. 이전에 그와 다투면서 그에게 무엇이 우선이냐고 묻자 프로듀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난 츠무기 네가 우선이야.」
왜 갑자기 그때의 그가 저에게 해줬던 말이 떠오르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틀려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잠시 머리를 스쳐지나간 숫자를 입력하기로 했습니다. 고심 끝에 비밀번호 입력칸에 기입한 숫자는...
"저의 생일인 5월 29일... 0529..."
이어서 컴퓨터 화면에는 몇 초간 로딩화면이 뜨다가,
「환영합니다.」
바탕화면으로 넘어가면서 그가 정리해둔 폴더와 파일이 모니터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는 제 이목을 끌 제목을 가진 한 워드 파일이 있었습니다.
「츠무기에게.」
"이건..."
홀린 듯이 그 워드 파일을 클릭해서 열자, 장문의 편지가 제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내용은,
「츠무기에게.
츠무기. 잘 지내고 있니? 정말 미안하구나. 이런 말은 원래 직접 해야 하지만, 편지로 대신 전한다는 점을 용서해주렴. 아니, 너에게 잘못한 것이 워낙 많은데 이것까지 용서해달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으려나.
난 지금 이 편지를 츠무기 네가 먼저 나에게 와서 화해하려 했던 날의 늦은 밤에 쓰고 있어. 모두가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이 사무소에 다시 들어와서 작성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너무나도 많았는데 막상 쓰려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거 있지. 그래서 내용이 두서없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렴.
있잖아, 츠무기. 난 츠무기 너를 처음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이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단아한 여자아이가 있다니 말이야. 어쩌면, 프로듀싱은 핑계고 그저 너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마침 직업이 프로듀서이기도 했으니 그렇게 말을 걸 명분은 충분하잖아? 그래서 그렇게 스카웃을 했는데, 심지어 우리 사무소에 들어오기까지 하다니 말이야. 정말 이게 꿈인가 싶었어. 그런 기적이 일어나줬는데, 결국엔 사람 마음이라는게 있잖아. 매일매일 보니까 그 감사함이 조금씩 옅어지더라고. 츠무기를 어제도 봤고,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볼건데, 이렇게 매일 보는 것이 당연한 거지 않나, 라는 그런 자만한 생각. 앞으로는 너를 다시 볼 수 없는데, 조금이라도 너를 볼 수 있을 때 더 봐둘 걸, 그렇게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퍽이나 안타깝고 그래.
이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 난 츠무기 네가 우선이라고. 물론 츠무기 너의 입장에서 보기엔 과연 내가 그런 행동을 보여줬나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나 나름대로 그렇게 하려고 했단다? 그저... 그저 이제야 알아챈 거야. 츠무기의 아이돌 활동을 위해서라면, 정녕 너를 위해서라면, 내가 너의 곁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지금까지 네가 슬퍼하던 때, 네가 울던 때. 돌이켜보면 그게 전부다... 전부다 나 때문이었으니까. 전부 내가 원인이었으니까.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상처입히는... 역병과도 같은 죄인 중에 괴수니까.
이제 더 이상 너의 앞길을 막아서고 싶지 않아. 무엇보다, 지금같은 판국에 이르게 된 것은 다 내 욕심으로 시작된 일이었으니까. 츠무기. 난 네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가 내 곁에 있으면 너에겐 슬픔만 생길 뿐이니까 말이야.
츠무기. 이제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부디, 행복하기를.
프로듀서.」
"프로듀서..."
그가 쓴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마치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아 멍하니 그의 자리에 앉아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보같고 철없는 아이같다고 생각하기만 했지, 저에 대한 이런 생각을 그가 하고 있을 거라곤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때때로 보여주던 괴롭고 슬픈 표정들은, 아마 그가 가지고 있던 이런 사념들로 인해 우러나온 것이었을까요...
"아냐 아냐... 정신 차려야 돼...! 그렇다고 바보 프로듀서를 그냥 보내줄 수는 없는 거니까... 어딘가에 다른 단서가..."
그가 쓴 편지에 정신이 매몰되어 있었지만, 저의 목적은 처음부터 변치 않았습니다. 프로듀서가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 심란한 마음을 다잡고 그의 컴퓨터를 더 뒤져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단서를 찾는 노력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탕화면 중간에 '새 폴더' 라고 써있는 폴더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폴더를 클릭해서 열자,
"이건... 항공권...?"
항공권 파일을 제외하고는 이외의 서류와 사진들이 전부 어려운 영어 단어로 되어 있어서 저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 건 프로듀서가 외국으로 떠날 생각으로 항공권을 구매했단 것이었습니다.
"왜 굳이 여기로... 그보다 출발 일자는... 오늘?"
비행기의 출국 날짜는 오늘 저녁이었습니다. 이륙 시간은 지금부터 약 3시간 후... 문득 프로듀서가 이전에 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니 츠무기, 너 재벌 2세야? 신칸센 왕복 값이 3만엔인데 카나자와를 매주 아니면 격주에 한번 가는 거야?"
"아, 아니 그 정도로 자주 가지는 않는다구요!? 그리고 3만엔이 저에게도 푼돈은 아니기에 그렇게 함부로 쓸 수 있는 금액이 아닌데, 당신은 저를 그런 씀씀이가 부족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러고 보니... 굳이 비싼 신칸센 말고 비행기로도 카나자와 방면으로 갈 수 있지 않아? 물론 비행기 타는 건 좀 성가시기도 하지. 난 해외로 많이 다녀봐서 아는 거다만, 수속 절차라는 것이 있어서 이륙 최소 2시간 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거든. 츠무기는 이런 거 알고 있었니?"
"다, 당신이란 사람은...! 저를 비행기도 잘 모르는 촌구석 시골뜨기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비... 비행기가 무서워서 못 타는게...!"
이전에 프로듀서와 했던 지극히 평범하고도 바보 같았던 대화를 떠올리니 가슴 한 켠이 아려왔습니다. 프로듀서의 편지에도 적혀있듯이, 저 또한 그와 함께 있던 일상들을 내심 당연하게 생각해왔습니다. 어제도 보았고,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볼 것이니 그렇게 쭉 함께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프로듀서를 막지 못하면 그 당연한 일상이 제 삶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겠죠...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한탄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이륙 두 시간 전에는 출국 수속을 한다고 합니다. 비록 엇갈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프로듀서가 일찍 출국 수속을 위해 들어가서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도도 해보지 않을 수는 없기에, 얼른 사무소 밖으로 뛰쳐나와서 공항을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습니다.
"하아... 하아... 제발, 늦지 않았기를..."
약 한 시간 정도 뒤, 늦은 저녁의 공항에 저는 도착을 했습니다. 해는 점점 저물어가 주변은 어두워지고 있지만 아직 이 공항의 인파는 붐비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는데... 그를 어떻게 찾으면 좋지? 사람 한 명씩 붙잡고 확인해볼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다 문득 눈 앞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습니다. 안내 데스크. 만약 프로듀서가 제 상황에 있었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물불 가리지 않으며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 또한, 그 사람처럼 행동하고자 한다면...
"저, 저기...! 혹시 미아 찾기는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앗, 미아인가요!? 미아가 발생했을 때는 먼저 이름과 나이, 인상착의 등을 알려주시면..."
"네...! 그 사람의 이름은...!"
5분 뒤,
"하아... 역시 이 방법도 되지 않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도대체 어찌 해야..."
"츠무기... 역시 너였구나. 미아 찾기라고 하길래 이런 건 선배 프로듀서나 나나쿠사 씨 정도는 되어야 할 발상이지 않나 싶었는데, 꽤 의외네."
"프로듀서..."
"애당초 내가 공항에 있을 건 어떻게 안 거야? 역시 내 컴퓨터를 몰래 뒤져봤던 거겠지? 아이고... 츠무기를 이런 사람으로 키운 기억은 없는데... 이건 전부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
"..."
그렇게 애타게 찾던 사람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뒤에서 나타나자,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이어서 그런지 뭔가 평소에 그와 대화할 때와 같았습니다. 평소라면 이제 제가 그의 말에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는, 이어서 있을 스케줄에 대해 토의하겠죠. 차이점이라면, 이제 그와 이야기할 것은 제 스케줄이 아니며, 제가 그를 붙잡지 못한다면 프로듀서는 제 옆을 영영 떠나버린다는 것을.
"프로듀서... 왜 그런 곳을..."
"...왜 거기를 가려고 하냐고?"
"그야...! 엄청 위험한 곳이잖아요...! 오늘 아침 뉴스에도 나왔잖아요.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다는 곳인데, 그런 죽을 수도 있는 곳을 왜 당신이 가려고 하나요?"
"츠무기. 기억 나? 이전에 네가 물어봤잖아. 만약 카나자와에서 나와 네가 화해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했을 거냐고."
"아..."
그때의 일... 잊을 수가 없죠. 프로듀서의 집에 처음 갔을 때, 그의 가방 위에 올려져 있던 사직서를 보고 그를 추궁하며 물어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는,
"그때 나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야.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일을 하러 간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당신에게 어울리는 일이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외치자 그는 천천히 저에게 걸어오더니, 이내 제 어깨에 손을 얹고는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츠무기. 그런 건 밝은 세계에 사는 너와 같은 아이는 몰라도 되는 거니까."
"밝은 세계...? 그, 그치만... 그런 곳은 가면 너무 위험하잖아요! 가서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나 같은 건 그때 죽어버렸어야..."
"네...?"
간신히 미소를 띄우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그의 모습이 뭔가 위태위태해서 잘못 건드리면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전부... 내가 원인이었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책임져야만 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젠 츠무기 너까지... 다 내가 없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었던 거야."
"프로듀서..."
"츠무기. 그러므로 간절히 부탁하니..."
"읏... 당신..."
"이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그리고... 부디, 행복하기를."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는 프로듀서는 저와의 만남에 종지부를 찍고는, 고개를 돌려 출국 수속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그 말을 들은 프로듀서는 걸어가다 말고는 잠시 멈춰서서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이 기회가. 둘도 없을 이 기회가 프로듀서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프로듀서...!"
그를 막아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저는 프로듀서에게...
1. 저의 진심을 전해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2. 저의 설교를 들려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에 대해.
2번 링크의 설문이나 댓글을 통해 다음 화에서 츠무기가 할 행동을 선택합니다.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