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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36. 전부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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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3, 2024 23:56에 작성됨.

36. 전부 당신을 위해서



 1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칼을 손에 쥔 채로 천천히 걸어오던 불량배가 그대로 제 발치에 고꾸라지자 저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프로듀서는 아까... 아까 칼에 찔리고는 발길질을 당하고 있었는데... 기적이라도 일어난 건지, 아니면 이번에도 프로듀서가 어떻게든 해준 건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앞에서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는 두 불량배들을 보자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 그러니까 빨리... 빨리 구급차를 여기로 보내주셔야 해요...! 지금도...! 지금도 칼에 찔린 곳에 피가... 피가...! 빨리 오시지 않으면..."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119에 전화를 해서 구급차를 부르고 난 뒤, 프로듀서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제... 다 끝난 건가..."


  "...프로듀서."


 쓰러진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어째선지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프로듀서... 그가 불량배들과 싸울 때의 모습을 저는 두려워하여, 프로듀서가 저에게 내민 손을 차마 잡지 못했습니다. 그건 전부 저를... 전부 저를 위해서 했던 것이었는데... 그 점을 깨닫자 몹시 애통하여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채로 그를 불렀지만, 


  "프로듀서...!"


  "..."


 프로듀서는 제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는 바보처럼 작게 웃을 뿐이었습니다. 쓰러진 프로듀서 옆에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내려보아도 그의 초점이 없는 눈과 전혀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바보... 바보 프로듀서...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악동같이 웃고는 이 모든 게 장난이었다고 말하란 말이에요. 그렇게 다 장난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지만...


  "일어나요...! 프로듀서...!!"


  "츠무기... 미, 안... 아하하... 그, 래도... 무사하니... 다, 행..."


  "일어나란 말이에요...!!"


 연신 일어나라고 두 손으로 그를 붙잡고 부질없이 흔들다가, 갑자기 오늘 사무실을 나오기 전에 그가 유코쿠 씨에게 했던 말이 문득 머리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CPR보다 지혈이 먼저야. 지혈이 별거냐고 하겠지만 전장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게 긴장성 기흉, 기도 폐쇄, 그리고 사지출혈일 정도로..."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가 이전에 자신은 항상 붕대를 가지고 다닌다고 유코쿠 씨에게 말했었죠... 비록 어떻게 쓰는지 배운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상처에 붕대를 대고 누르기만 해도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기에, 옆에 나뒹구는 그의 가방을 들고는 간신히 붕대 하나를 찾아서 꺼냈습니다.


  "이... 이걸로 지혈을 하면... 이렇게 대면 될까요...? ...차라리 제가 아니라 유코쿠 씨였다면... 유코쿠 씨라면 제대로 해냈을 건데... 왜 하필이면..."


  "츠, 무기... 지, 지금까지... 정말 미, 미안... 부디 요, 용서를..."


  "프로듀서!!!"


 왜 갑자기 그가 저에게 사과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마치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그렇게 저에게 사과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비통한 감정을 감출 수 없어 프로듀서의 가슴을 내리쳤지만, 당연히 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작게 웃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제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할 수는 없기에 계속 상처에 붕대를 대고 있는 와중이었습니다.


  "츠무기... 이... 있잖아... 나는... 난 사실 너를..."


  "...에?"


 갑작스러웠습니다. 갑작스러워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프로듀서는 사실 저를...? 돌연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봐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아마... 그건 아마 저를 원망하는 거겠죠. 처음부터 그를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프로듀서에게 날선 태도를 보여주고, 때때로 화내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고... 그럼에도 지속된 호의에 어쩌면 저는 안심하고 그런 모습을 그에게 더욱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그런 호의가 계속될 줄 알았지만... 바보같은 저를... 저같은 걸 위해 이렇게 칼에 찔리게 되니 그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왜... 도대체 왜 그런 원망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마치 자신이 죽을 것을 직감한 것마냥...


  "츠, 무기... 나는... 난 너를..."


  "아니요... 아니에요... 듣지 않을 거에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멀쩡하게 나은 뒤에 하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일어나란 말이에요!!!!"


  "시, 라이시... 츠무... 기... 저는... 당신을... 좋..."


  "프로듀서..."


 그는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는 초점을 잃은 눈을 감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저를 원망하려는 말을 다 하지도 못한 채, 저 멀리 작게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만이 이 고요를 흔들 뿐이었습니다.



  "으, 으음..."


 마치 이틀이나 사흘 간 밤을 샜을 때와 같은 피로였다. 5분만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누워버리면 그대로 두어 시간 동안 자버린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대로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느껴지는 격통과 불편한 이물감이 깨어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다.


  "아, 그렇지... 칼에 맞고는 쓰러졌었는데... 어떻게든 살아난 것이려나..."


 피곤함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양아치들과 싸우는 와중에 칼에 맞았지만, 결국에는 츠무기를 구할 수 있었다. 결국에는 츠무기를... 츠무기...?


  "츠무... 츠무기... 츠무기는 어디에..."


 그렇게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손을 침대 시트 위에 얹자, 별안간 손에 부드러운 실 같은 것의 촉감이 느껴졌다. 하얀색이어서 그런지 아까부터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흰 침대 시트 위에 흐트러진 새하얀, 하얗다기보다는 은색의 빛을 내는 실들은 옆에서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누군가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머리카락... 츠무기의..."


 그대로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 뒤, 자신의 팔을 베고 침대에 엎드린 츠무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깊은 잠이 들었던 것은 아닌지, 츠무기는 자신의 머리에 무언가가 느껴지자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앞을 올려다보았다.


  "당신... 이제 일어났군요... 저는... 저는 당신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츠무기..."


  "살아 있어줘서... 다행이에요... 프로듀서 당신이..."


  "미안해..."


  "...에?"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츠무기는 갑작스런 사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슬픈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 무엇이 미안한 거죠...? 당신은 저를 구해줬을 뿐인데..."


  "..."


 미안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츠무기가 이런 고난을 겪게 만들었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평범하게 카나자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더라면 절대 겪을 일이 없던 그 고난을. 모진 말을 듣고는 마음에 상처를 받아 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삐어버린 발목을 붙잡고 극에 달할 때까지 스스로를 혹사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 자신 앞에서 칼에 찔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아이돌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만약 어디 사무소의 바보 프로듀서가 츠무기를 스카웃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까지의 고통을 겪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저 미안해..."


  "..."


 하지만 그 이유를 말할 수 없다. 츠무기에게 말해줄 수 없다. 기껏 미덥지 못한 프로듀서를 따라 자신의 모든 걸 두고 도쿄로 내려온 츠무기에게 그런 말을 할 리가 있을 리 없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마음을 저버리는 것이기에... 무엇이 정녕 츠무기를 위한 것인지, 그녀가 계속 아이돌 활동을 이어나가게 하는 것이 정녕 츠무기를 위한 것인지 쉽게 결론지을 수가 없었다. 2주 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2주 뒤,


  "당신... 정말 괜찮은 것 맞나요? 지금 당신의 상태를 보면..."


  "...괜찮아. 걱정 할 필요 없어."


  "그렇지만... 아직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선 최소 한 달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당신은 아직 아픈데 「W.I.N.G.」 스케줄에 악영향이 갈까봐 무리하게 일찍 퇴원한 건 아닌가요?"


  "그렇게 큰 칼도 아니어서 상처가 깊지도 않고, 지금은 움직이는데 큰 지장은 없잖아. 그리고, 지금 일정은 아무래도 츠무기 너 혼자 보내기엔 무리니까."


  "프로듀서..."


 츠무기의 말이 맞았다. 피를 흘리지 않고 멀쩡히 걸어다니는게 부상이 완치됐다는 반증은 아니다. 때때로 진통제를 먹어야 하고 무거운 걸 들지 못한다는 것은, 병상에서 일어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증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4의 8주라는 기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지금까지 츠무기가 노력해온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런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병원에 입원한 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츠무기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혀버리고 말 것이니까. 물론 선배 프로듀서나 하즈키 씨가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러니 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 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 저녁 일과는 별거 없잖아, 안 그래? 우린 들어가서 관계자들에게 적당히 인사하면서 있다가 나가면 돼. 문제 없지?"


  "알겠습니다... 다만 어디 아프거나 문제가 있거나 하면 바로 저에게 알려주세요."


  "..."


 순간 자괴감이 들어 츠무기가 건넨 걱정의 말에 답을 해주지 못했다. 챙겨주고 도와줘야 하는 대상에게서 걱정스런 눈길을 받는 것이 스스로가 나약해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기에. 원래라면 츠무기가 이렇게 신경을 써준다고 한들 그런 감정이 들지 않겠지만, 애써 숨기려고 하는 부상의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점점 정신적으로 몰리게 되어 그런지, 그녀가 보내주는 시선이 마음속을 어지럽게 헤집었다.


  "자, 그럼..."


 가게 문을 열자 테이블 별로 삼삼오오 모여서 술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직장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 시간이기도 하고, 대형 회사들이 밀집된 곳에 점포가 위치해 있기에 가게 내부에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편이었다. 이런 곳은 통상 그리 시끄러운 편이 아니라서 조용히 저녁을 먹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장소이지만, 가게 안쪽에서는 그런 분위기와는 반대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겠군..."


 착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가게 내부로 들어가고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이 어이, 이게 누구야? 283 프로의 신참 프로듀서 아냐? 큭큭큭, 왜 이렇게 늦은 거야?"


  "..."


 그곳에는 이전에 츠무기가 산에 조난을 당했을 당시 아웃도어 복장 촬영을 담당했던 감독이 방 내부의 상석에 앉아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283 프로덕션의 아이돌, 시라이시 츠무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츠무기가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을 보니 속이 뒤집어지는 것만 같았다. 원래라면 이런 회식 자리에 츠무기를 데려오는 일은 없다. 특히 지금처럼 술을 마시는 자리라면 더더욱. 아직 17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이런 곳에 데려와서 좋을 것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니까. 그러기에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예외는 때때로 생기기 마련이다. 그 예외라는 것은...


  "크으~, 그래 그래! 갑자기 영업에 못나온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때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그래도 어떻게 조정이 잘 됐지 뭐야? 283 씨가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거기 사장님이 노력해줘서 이 정도로 된 거라고."


  "..."


 연습 중에 부상을 입은 츠무기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영업을 예정보다 2주 정도 미룰 예정이었는데, 2주 전에 있던 사건으로 인해 미루려던 영업에 크나큰 지장이 생겨버렸었다. 영업 때 필요한 프로듀서 역할이야 선배 프로듀서나 하즈키 씨에게 부탁하면 어찌어찌 되겠지만, 그런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인 충격을 크게 받게 되면 17살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에게는 외부 영업 자체가 퍽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입원해있는 동안에 사무소의 다른 분들이 예정된 영업을 조정해줬다고는 전달을 받았었다. 그럼 문제가 없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예정을 바꾼다고 통보하는 것이 평판에 좋을 리 없었다. 이 업계는 평판이 매우 중요한 만큼, 이번만큼은 상대의 의도대로 맞춰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상대도 이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크크크~, 연이 참 질기지. 그때 기억나? 츠무기 쨩이 산에서 조난됐다가 구조된 뒤에, 병원도 안 들리고 곧장 우리가 있던 곳으로 와서 아주 뒤집어 놨었지 그래."


  "..."


  "...에?"


 그 사실을 모르던 츠무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쪽을 돌아보았다. 당연히 츠무기에겐 그런 일을 말해줄 리 없었기 때문에, 앞에 앉아있는 감독이 언급을 하지 않았더라면 츠무기는 아마 그 일을 영영 몰랐을 것이다. 물론 그 쪽을 더 바랐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감독은 낄낄대며 그때의 일화를 이어서 풀어나갔다.


  "...그래서 자네가 뭐라고 했었지? 우리 책임이라고 했었나? 허허, 이 친구가... 119에 신고해준 거면 잘한 거지, 우리같은 사람들이 구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


  "..."


  "워낙 세게 나와줘서 츠무기 쨩의 병원비나 사후 처리는 우리가 도맡아서 해주긴 했다만...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고, 이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겠지 그땐?"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저 츠무기를 간단히 인사하게 하고는 말 몇 마디 하다가 나오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과거에 있던 일을 들먹일 줄은 별로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물론 이것도 업무의 일환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츠무기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였다. 아마... 아마 괜한 짓을 했다고. 이런 걸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나 있냐고. 이렇게 해주면 고맙다고 할 줄 알았냐고.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그녀는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뭐, 하지만 그 어떤 상대와도 웃으며 악수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회인 아니겠어? 크크크~, 안 그래 츠무기 쨩? 그러고 보니 츠무기 쨩한테서 고맙다는 말을 아직 못들은 것 같은데? 우리가 한두 번도 아니고, 엄청 많이 배려해줬는데 말이야."


  "앗, 네... 고, 고맙습니다..."


 다른 건 참을 수 있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츠무기를 건드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바보같이 착한 츠무기가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걸 알고 이렇게 그녀를 건드리는 것을 보니 부아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허나 지금 상황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츠무기의 연예계 활동에 큰 지장이 생겨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이 업계는 생각보다 좁은 편이니 다른 관계자와의 협업에도 문제가 생겨버리고 말 것이니까. 그러니 정말 화가 나더라도, 이 자리에 얼굴을 비추고 인사를 한다는 초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 츠무기를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츠무기에게 슬슬 일어나자는 신호를 보내려는 순간,


  "아, 츠무기 쨩! 어디 한번 따라봐!"


  "...네?"


  "여기 잔에 술 좀 따라보라고~! 크크크~."


  "그, 그게..."


  "아~! 지금 여기 잔 들고 있는 손 떨리는 거 안 보여? 빨리 따라봐!"


  "으, 으으..."


 그렇게 츠무기가 마지못해 일어서려고 하자, 그녀의 무릎에 손을 얹고는 일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프로듀서...?"


  "츠무기. 이런 거 전혀 할 필요 없어. 이제 우리 갈 거니까 나갈 준비 해."


 츠무기가 일어서는 것을 저지하고는 그녀만 들을 수 있게 귓속말로 작게 말했지만, 감독은 그 말을 듣지 못해도 대강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으리라. 그대로 츠무기가 일어서다 말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자 감독은 비열한 미소를 흘리고는,


  "흠... 283 씨. 업계에서 일하기 싫은 거야? 이러면 우리랑 같이 일 못하지, 안 그러냐? 우리는 츠무기 쨩이 아이돌 활동을 오래 하는 걸 보고 싶은데... 이럼 좀 힘들지, 어?"


  "..."


  "츠무기 쨩도 아이돌 계속 해야지, 안 그래? 283 씨가 이렇게 노력해주고 있는데, 이러면 283 씨가 해준 게 다 허사가 되어버린다고?"


  감독이 뱀같이 교묘한 말로 츠무기의 마음을 흔들어서인지, 그녀의 무릎에 얹은 손에 점점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츠무기, 신경 쓰지 말고..."


  "따라드리기만... 하면... 되는 거죠...?"


  "츠무기 너...!"


 츠무기는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떨리는 손을 술병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자,


 


 머리에서 어느 끈이 끊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크으~, 그래! 어디 한번 잘 따라..."


  쨍그랑!!


  "!?"


 술잔이 벽면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자 방에 있던 모두는 아연실색하고는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야 그럴게, 실수로 술잔을 벽에 던지는 사람은 아무래도 없을 거니까.


  "이, 이봐... 283 씨. 지금 뭐 하는..."


  "야, 시라이시 츠무기. 나갈 준비 하라고 했잖아. 내 말을 못 들은 거야, 아니면 일부러 안 듣는 거야?"


  "...네?"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있는 감독과, 술병에 손을 대기 직전의 츠무기도 마찬가지로 얼이 빠진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283 씨, 정신이 나간 거야? 업계에서 일하기 싫은 모양인데, 그렇다면..."


  "당신이야말로 이 업계에서 멀쩡히 일하고 싶다면 이딴 짓거리는 하지 않는 게 자기 보신에 이로울 겁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아뇨. 하지만, 다시 한번 츠무기를 건드리면 그 자리에서 죽일 겁니다. 지금은 협박하는 겁니다."


 그 말을 내뱉자 방 내부의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주변이 조용해지자,


  "나와, 시라이시 츠무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츠무기를 두고는 가게 밖으로 먼저 나와버렸다.



  2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장님.」


  「알겠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한테 연락해보겠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죄송합니다.」


  「그보다 시라이시 군을 잘 챙겨주게. 아니, 내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자네가 잘 해주겠지만 말이다.」


  "후우..."


 사장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메일로 대강 보고하고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방금 쳐버린 사고가 사무소 전체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가능한 빨리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지만, 생각 외로 사장님에게서 별 반응을 볼 수 없었다. 이 정도는 예측 가능한 범위였단 것인지, 아니면 이젠 기대할 구석도 없어 정말 실망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프로듀서."


  "..."


 그리고는 곧이어 뒤따라 나온 츠무기는 옆에서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 메일을 다 보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다가, 메일을 다 보낸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방금 당신이 무얼 했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잘 알고 있어."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어째서 그런..."


  "야, 시라이시 츠무기. 너 바보야? 하지 말라고 했잖아.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저딴 놈한테 술 같은 거 따라줄 필요 없다고. 넌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 아닌데, 왜 그런 거야?"


 바보같게도 츠무기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저 비열한 감독의 말을 순순히 듣고 술을 따라주려고 했다는 것에 정말 화가 나버렸다. 물론 이해했다. 너무나도 순수하고 착한 츠무기는 일반적으로 타인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왜 그녀가 그런 부당한 요구를 수용하려고 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당신...!"


 츠무기 또한 분노로 인해서 그런지 얼굴이 점점 새빨개지고는 그녀의 하늘처럼 푸른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제가... 제가 그런 걸 하고 싶어서 하려고 했다고 하는 건가요? 당신은 절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게 전부 당신을 위해서... 전부 당신을 위해서 하려고 한 건데, 그것도 알아주지 못하고...!"


  "...시라이시 츠무기. 내가 너한테 그런 걸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나 있어? 그렇게 해주면 내가 너한테 고맙다고 말할 줄 알았던 거야? 너야말로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거야?"


  "뭐...?"


 아... 그랬다. 그러고 보니 방금 츠무기에게 분노하며 했던 말을 이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언젠가 츠무기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같은 사무소의 동료를 사보타주하려고 했을 때, 그때 츠무기가 해줬던 말이었다.


  "프로듀서... 제가 이런 걸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나 있나요? 이렇게 해서 이기면 제가 당신께 고맙다고 말할 줄 알았던 건가요? 당신은 절 뭐라고 생각한 것인가요? 당신이란 사람은..."


 그때 그 말을 듣고 나서는 분노가 폭발해서 츠무기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다. 그런 행동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애써 상대를 위해 한 것을 보고는 '이렇게 해주면 고맙다고 말할 줄 알았어?' 라고 하면 화가 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입장을 반대로 해서, 자신의 프로듀서를 위해 애써 자존심을 굽히려고 했던 츠무기에게 그런 말을 하면 그녀는 당연히 화를 낼 것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화가 나서 그런지 이전에 츠무기가 해줬던 말을 그대로 그녀에게 돌려주고 말았다.


  "뭐라고...?"


 그러자 츠무기는 화를 주체할 수 없는 듯, 말에 존댓말도 생략하고는 격노로 인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짝!


 예상은 했었다. 왼쪽 뺨에 올라오는 통증도 예상되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뺨을 맞았다는 사실이나 그것에서 비롯되는 고통보다 더욱 마음을 헤집는 것은 따로 있었다.


  "당신이... 당신이 부탁하지는 않았습니다. 고맙다고... 고맙다는 말을 해주길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이해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아니, 이해해주지 못해도 그대로 있어줬으면 했습니다. 전부... 전부 당신을 위해서 하려고 한 건데..."


 눈 앞에 서있는 츠무기는 오른손을 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알 수 없었다. 하늘처럼 푸른 유리색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분노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슬픔으로 인한 것인지.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츠무기가 울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


 전부 당신을 위해서, 라고 그녀가 말했다. 전부 당신을 위해서... 이전부터 항상 스스로에게 되뇌던 말이었다. 츠무기를 위해서, 전부 츠무기를 위해서 한 것이다, 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저 말 뿐. 진정으로 츠무기를 위한다면서 막상 그녀가 겪는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해주지도 못하고는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심으로 츠무기를 위한다면 내려야 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며 그저 속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마 전부터 고심하던 마음에 드디어 결단이 섰다. 그것은,


  "시라이시 츠무기... 저 또한... 전부 당신을 위해서..."


  "..."


 츠무기를 위한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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