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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33. 149,600,0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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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0, 2024 17:44에 작성됨.
33. 149,600,000km
1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현장의 응급처치요원과 상급 의료 기관의 의사와는 큰 간극이 있는 거야. 가령... 그래. 이 예시면 좋겠네."
"??"
"예를 들어서, 지금 키리코 앞에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이 쓰러져 있어. 머리, 흉부, 사지... 온 신체 부위에서 출혈이 있는데 심지어 심정지 상태야. 외부에서 큰 충격을 받아서 네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신체에 피해를 입었다고 쳐보자고. 그럼 어떤 조치를 먼저 할 거야?"
"음... 먼저... CPR을..."
"땡. 틀렸어."
"그치만... 방금 골든 타임을 놓치면... 환자의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너무 늦어버린다고..."
"맞아. 4분 이내에 실시하지 않으면 너무 늦긴 하지. 하지만 CPR보다 지혈이 먼저야. 지혈이 별거냐고 하겠지만 전장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게 긴장성 기흉, 기도 폐쇄, 그리고 사지출혈일 정도로 중요도가 높아."
"그럼... 어느 부위의 지혈을... 먼저 해야 하나요...?"
"팔다리의 부상 부위에 지혈대를 적용하고 그 다음에 머리하고 흉부. 물론 키리코는 잘 모를 수밖에 없어. 애당초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기본적인 지혈은 완료하니까."
"후훗... 그러는 프로듀서 님은... 어떻게 잘 알고 있나요...?"
"그야 의무담당관이...가 아니고! 그냥 취미라고 할까... 물론 온갖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트리아지까지 하는 대형 병원의 응급실 의사들이 더 잘 알고 있지. 훌륭한 부모님을 둔 거야, 키리코."
"후훗... 프로듀서 님은... 아, 츠무기 쨩..."
늦게나마 제가 뒤에 서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유코쿠 씨...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제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프로듀서. 아까까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유코쿠 씨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던 그는 크게 당황한 듯 일순 표정을 굳히고는 저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츠, 츠무기... 안녕."
"읏..."
괴롭습니다. 아픕니다. 따뜻한 분위기에서 서로 웃고 있는 둘의 좋은 시간을 훼방 놓은 '불순물' 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서. 당연한 걸까요... 저렇게 천사같이 순수한 미소를 지어주는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 착한 사람과 보내는 좋은 시간에 끼어든, 이렇게 까칠하게 굴고 악의가 가득 찬 말을 내뱉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제가 프로듀서였더라도 당연히...
"흑..."
"츠무기..."
그러자 프로듀서는 옆에 앉아 있는 유코쿠 씨에게 귓속말로 뭐라 하더니, 이내 유코쿠 씨는 일어나서 종종걸음으로 저를 지나쳐 나갔습니다.
"미, 미안... 츠무기 쨩..."
이어서 사무소의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프로듀서는 자리에 일어나서 저에게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츠무기, 있잖아. 오늘 일정은..."
"흑... 으흑..."
어느새 눈앞이 뿌예지고는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렇게 사무소 거실 한복판에서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으려고 온 게 아닌데...
"알고... 흑... 있습...니... 으흑..."
"츠무기..."
"저는... 오늘 영업... 읏... 당신이... 흑... 하라는 대로..."
어느새 마음 속에 서러움이 밀려들어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유코쿠 씨에겐 저렇게나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면서 상냥하게 대해주는데, 저는 그저 영업... 그저 영업을 하라고 등을 떠밀고는, 이게 다 너를 위한 거다. 이게 다 너의 미래를 위해서 그런 거다. 프로듀서가 저를 위해 하는 것이란 건 알고는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어째서 이 감정은...
"츠무기... 부탁이니까..."
"읏... 으읏... 흑...! 으흑...! 으으...!"
"츠무기 제발...!"
감정이 점점 격양되어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어느새 그 사람이 제 머리를 꼭 끌어안고는 한 손을 제 머리 위에 얹었습니다.
"츠무기... 내 탓이야. 전부 다 내 탓이야. 그럼에도 간절히 바라자면... 아무 말 없이 이대로만..."
"으흑... 흑..."
"내가 잘못한 걸 용서해 달라고 하진 않을 테니 그저 이대로만..."
"흑... 훌쩍..."
"언제쯤이면 내가 네 마음을 잘 알아줄 수 있을까..."
"..."
"그리고... 언제쯤이면 네가 내 마음을 잘 알아줄 수 있을까..."
그렇게 얼마 동안인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는 말 없이 사무소 거실 한가운데 서있었습니다.
"츠무기... 지금은 좀 진정됐어?"
"훌쩍... 진정된 게 아니고 그냥... 기분이 가라앉았을 뿐이에요."
"그래..."
사무소에서 일련의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뒤, 츠무기를 데리고 시내로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츠무기는 기분이 나아진 건지, 평소의 차분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왜 갑자기 사무소에 들어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건지 물어보지는 않아서 그 연유는 알 수 없었다. 물어봐도 츠무기는 알려줄 리 없겠지만...
"그런데 츠무기 있잖아."
"네...?"
"이거 어떡할 거야? 내가 입고 있는 와이셔츠 츠무기의 눈물 콧물로 잔뜩인데."
"아앗!? 다, 당신! 그게 무, 무슨 말이에요!"
어느새 츠무기는 평소대로의 매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여자아이한테 할 말인가요!? 그랬다면 모른 척하고 나중에 빨래하면 되는 거지 않나요?"
"눈물이야 사실 별로 상관 없긴 한데, 콧물은 모른 척하기가 좀..."
"아아아앗!! 뭐, 뭐꼬!? 당신이란 사람은!"
"아아! 또 주먹 먼저 나온다!!"
"당신은 맞아도 싸요!"
그렇게 츠무기와 티격태격하며 거리를 걷던 와중, 츠무기는 이내 무언가 깨달은 것인지 고개를 휙 돌리고는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러고 보니 당신... 우리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거죠? 당신이 전에 저에게 보내준 영업 관련 정보에 있던 곳과 반대쪽인 곳이지 않나요? 보니까 여기 주변에 시바코엔 역이 있던 것 같은데..."
"잠깐... 너 내가 알고 있는 츠무기 맞니? 시골에서 올라온 츠무기는 주변에 무슨 역이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촌..."
"정말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당신은 제가 주변 지리에 어둡다고 생각해서... 잠깐... 당신 설마..."
"저, 츠무기 씨...?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불안한데..."
"당신은 설마... 제가 카나자와에서 상경한 만큼 도쿄의 지리를 잘 모르니, 영업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다음에 저를 엄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역시... 역시 당신은 교활한 사람이군요...! 당장 여기도 영업 장소와 반대되는 곳인데 이제서야 깨닫다니...!"
"아니 츠무기 씨, 사실은 그게..."
"사실은 어떻죠? 제 말이 틀렸나요!?"
"음... 아니. 츠무기 말이 맞아."
"하아... 당신은 그렇게 착각할 만하게 말을 해놓고선, 매번 제가 넘겨짚었네 뭐네 하는... 예?"
"츠무기 말대로 영업이 있다고 거짓말하고 여기로 데려온 게 맞아."
"에에에에!? 다, 당신...!"
츠무기는 어느새 양 팔로 가슴을 가리며 몸을 움츠리고는, 두 눈의 가장자리에 눈물이 맺힌 채 치욕스러운 듯 고래고래 외치기 시작했다.
"이... 이 변태! 그, 그렇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저랑... 저에게 파렴치한 짓을 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 잠깐만!! 주변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당신은 그게 중요한가요!? 이 변태, 변태, 변태!!"
"이따 안미츠 사줄 테니까, 응? 일단은 저기까지만 가면 되니까..."
"아니 제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안미츠 하나 사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발을 질질 끌며 버티는 츠무기를 간신히 데리고 공원 내부로 들어갔다. 아까까지 파렴치하다며 변태라며 성을 내며 매도하던 츠무기는 곁눈질로 주변의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한 곳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마 공원 어귀에 있는 작은 신사가 그녀의 이목을 끌은 모양이었다.
"여기 신사 예쁘지? 구석에 있고 작기도 해서 사람들이 그리 몰리지는 않지만, 도시 한복판의 공원에 있는 거 치곤 꽤 고즈넉하고 분위기도 좋거든."
"예... 전에도 카나자와에 와보셔서 알겠지만, 아버지의 가게가 있는 히가시차야 쪽에도 이런 작은 신사들이... 읏!?"
"아, 아니 갑자기 불안하게 왜 그래..."
"다, 당신이란 사람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걸면 사람이 속아 넘어갈 줄 아는 것입니까!?"
"아니 아무 일 없는 거 맞잖아..."
"흥!"
어느 정도 나아졌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직도 뭔가 마음 속에 남아있는지, 츠무기는 꿍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아하하... 일단 계속 가보자고."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옆에서 잔소리를 하는 츠무기를 데리고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다 대형 불교 사원에 맞닿아있는 큰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경사가 있는 편이라 츠무기가 걱정되어 그녀를 돌아보려는 찰나, 숨이 가쁜지 호흡이 약간 거칠어진 츠무기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당신... 어디 가는 건지 아직 말을 안 해주지 않았나요...?"
"여기만 올라가면 금방 나올 거야."
"네..."
아무 내색 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는 그녀를 얼마 동안 쳐다보니, 발이 불편한 듯 조금씩 절면서 계단을 느리게 올라오는 츠무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츠무기..."
"네?"
"아니... 아냐."
"??"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저번에 연습실에서 츠무기가 울면서 나갔을 때에는 보는 사람이 아플 정도로 그녀는 심각하게 발을 절고 있었다. 발을 삐었는데 그 고통을 무시하며 엄청난 연습을 했으니 낫는 데에는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해선 약간 불편해 보일 정도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발이 아픈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일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츠무기의 발이 아프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발을 저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건 아마 나 때문... 나 때문일까..."
"네?"
"이번에도 아무것도 아냐."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말을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이렇게 듣는 사람이 궁금하게 말을 하는 재주라니.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는군요."
"그, 그치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잘만 말하고 있는 걸..."
"하? 뭐라고 했죠, 당신?"
아까보다 기운이 나는 듯 매섭게 잔소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어느 정도는 놓였지만, 그래도 츠무기의 모습을 볼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가슴이 아파왔다. 입으로는 츠무기를 위해서... 츠무기를 위해서 하는 거다, 라고 말을 했지만... 과연 이렇게 츠무기를 위한다고 하며 그녀에게 아픔과 슬픔을 더하는 것이 정녕 그녀를 위한 것일까...
"여기는..."
"어때.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지? 저기 봐봐. 여기 언덕에서 정말 잘 보이지 않아?
"...역시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기대를 품은 제 잘못이군요. 앞에 있는 절 왼쪽 너머에 보이는 큰 호텔 말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저를 호텔로 데려가기 전에 멀찍이서 해당 건물을 구경시키다니... 당신의 취향은 정말이지 고약하기 짝이 없군요."
"엣... 뭐? 아니 호텔로 안 데려간다고!! 그리고 여기서 호텔보다 훨씬 잘 보이는 게 있는데 호텔 먼저 말하는 거면 역시 츠무기의 머릿속엔..."
"하아!?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당신의 평소 행실로 미루어 보면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아니 저기 호텔 왼쪽에 훨씬 잘 보이는 게 있는데 굳이 호텔만 찝어서 말하니까 그랬지..."
"정말이지, 당신이... 아..."
츠무기는 찌릿, 하고 째려보며 뭐라고 더 매도를 하려다, 이내 눈에 들어온 큰 랜드마크를 보고는 말을 멈추었다.
"정말 잘 보이지? 이 곳은 나도 우연히 알게 된 곳이긴 한데, 여기만큼 저기가 잘 보이는 데가 없어."
"도쿄 타워..."
"사실 정말 유명한 곳이라 츠무기도 한번은 가봤을 거잖아. 그래서 도쿄 타워를 가는 것보단 여기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주변이 큰 나무들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이 근방을 지나치면서 이런 장소가 있다는 걸 알기는 어렵지만, 이 불교 사원 옆의 큰 언덕엔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작은 풀밭이 있다. 그리고 여기 풀밭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 도쿄의 높이 솟아오른 마천루들과 함께 그 무엇보다 돋보이는 도쿄 타워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오늘은 저길 가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도쿄 타워...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은 없습니다."
"잠깐... 뭐!? 아니 츠무기 너 휴일에 여기저기 놀러가는 거 아니었어? 도쿄에 온 지 몇 달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안 가봤다고?"
"그, 그야 휴일엔 카나자와로 돌아가거나, 도쿄에서 있을 때에는 정원이나 디저트 가게 순회를..."
도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몰라도,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은 처음에 도쿄를 둘러보면서 가는 곳 중 하나가 도쿄 타워이길래 츠무기도 한번은 가봤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간과해버린 것이다. 츠무기가 어떤 아이인지를.
"음... 그러냐. 그럼 이건 어때? 나중에 「W.I.N.G.」 끝나고 나...기 전에, 이번 시즌 4 끝나고 한번 가자. 오늘 가도 되긴 하는데 그렇게 되면 츠무기를 너무 늦게 보내줄 거 같아서."
"「W.I.N.G.」 이 끝나고... 네. 그때 한번 같이 가도록 해요."
츠무기는 약간 걸리는 것이 있는지, 그녀의 반응이 뭔가 애매했다. 그게 무엇일까 마음에 걸렸지만, 고민한다 한들 알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일단 여기 앉자. 돗자리 깔고 앉을 건데, 괜찮지? 불편하면 여기 말고 다른데 가도 괜찮아."
"앗, 괜찮습니다... 여기에 앉도록 해요."
그렇게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서는, 뉘엿뉘엿 저무는 해가 노랗게 물들여가는 도쿄 타워를 바라보았다. 그 풍경을 바라보자, 도쿄에 처음 와서 이 도쿄 타워를 바라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예쁜 풍경이지? 사실, 내가 도쿄에 처음 왔던 날에 온 곳 중 하나가 여기거든. 정처 없이 이 도시를 걸어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 여기야."
"도쿄에 처음 왔던 날...?"
"맞아. 나도 츠무기처럼 도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왔었으니까. 그렇게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채 걷던 와중 이르게 된 곳이 여기야. 저 멀리 보이는 도쿄 타워의 풍경이 너무 예뻐서 곧장 저기까지 걸어갔었지."
"그렇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온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만, 왜 영업이 있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굳이 이곳까지 저를 데려온 것이죠?"
"그냥 쉬라고 하면 츠무기 너는 안 쉴 거잖아. 그래서 일단 영업이 있다고 하면서 여기까지 데려온 뒤에 편하게 쉬려고 했지. 굳이 이 장소인 이유는... 뭔가 한가롭게 풍경을 바라보기 좋은 장소인 것 같아서."
"하아... 정말이지, 솔직하게 말했으면 되는 것 아니었나요? 뭐, 그래도 덕분에 이런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나쁘지는 않은 것일까요..."
앞에 보이는 푸른 하늘과 그 아래에 보이는 마천루들. 풍경 한가운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세우며 서있는 빨간 도쿄 타워. 그리고 그 광경을 왼쪽에서부터 노랗게 물들이는 태양. 저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옆에 앉아있는 츠무기를 돌아보았다. 앞에 보이는 푸른 하늘과 같은 파란 눈을 크게 뜬 채 풍경에 매료된 츠무기의 옆에는, 점점 져가는 노을의 빛이 새어 나오면서 그녀를 찬란히 비추고 있었다.
"역시... 나는 츠무기 너를..."
"네? 뭐라고 했습니까?"
"음... 아냐. 아니, 사실 뭐라고 하려고 했었냐면..."
"??"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는 츠무기를 보니 목이 메는 것만 같았다.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고른 것들은 죄다 오답. 카나자와에서 평온히 살아가는 츠무기에게 아이돌을 해보지 않겠냐 하여 여기까지 데리고 온 주제에 지금까지 안겨준 건 아픔과 슬픔이 전부. 일명 빛나는 무대라는 것을 향해 츠무기가 걸어가는, 장래도 불투명하고 고통이 가득한 가시밭길. 당연하면 당연한 것이리라. 아직도 길을 헤매고 있는 주제에 다른 이의 길을 이끌어 가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정녕 츠무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2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츠무기 있잖아. 「W.I.N.G.」 도전이 너무 힘들면 안 해도 돼."
"네...?"
"영업도 마찬가지야. 츠무기 네가 정 하기 싫다면 언제든 말해줘."
"..."
프로듀서로서 하면 안되는 잘못된 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프로듀서의 역할은 아이돌을 프로듀스해서 인지도를 높이고 라이브를 하며 영업을 나가게 해서, 궁극적으론 사무소에 수익이 돌아오게 하는 것. 프로듀서가 아이돌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해서 영업도 나가지 않고 무대도 원하는 무대만 나가게 하다 보면,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낮아지는 것은 명백하다. 만약 그런 프로듀서가 있다면 곧바로 해임될 것이다. 꽤 관대한 편인 사장님이라도 그런 식으로 나태하게 아이돌을 프로듀스하는 프로듀서를 곱게 바라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듀서라는 직업보다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째서..."
"..."
"어째서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죠? 프로듀서라면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왜냐면 나는 네가 그저..."
"당신은 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아이돌이 제멋대로 굴면서 영업도 안하고, 오디션이나 라이브도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서 한다면 팬들이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할 줄 알았습니까? 사무소의 다른 아이돌들도 이를 잘 알기에 군말 없이 고된 스케줄에 따라주고 있는 것이다만 이런 것도 고려하지 않다니... 도대체 당신에겐 무엇이 우선이죠?"
"내 우선은... 난 츠무기가 우선이야."
"제가 우선이라는 말... 평상시에 저에게는 짓궂은 장난만 치고... 유코쿠 씨나 나나쿠사 씨에게는 따뜻하게 웃어주면서..."
"츠무기... 그건..."
"제가 우선이라고 하는 말... 그걸 증명할 수 있나요?"
"..."
"말로는 제가 우선이라고 하는 건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증명할 수 있나요?"
"증명할 수 없어. 왜냐하면... 우린 타인이니까."
"..."
누군가의 마음을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타인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건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연 증명할 수 없기에 그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증명할 수 없다 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려 애쓰지 않으면 안되겠지. 서로의 마음이 닿을 수 없으니까, 그러기에 서로의 마음이 닿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겠지. 물론 그러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츠무기는 내 마음을 다 알아줄 수 없을 거야. 나도 츠무기의 마음을 다 알아줄 순 없겠지만..."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 말 없이 앉아서 눈 앞에 놓여진 도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슬슬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태양이지만, 아직도 마천루와 도쿄 타워를 샛노랗게 물들이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지는 듯 했다.
"츠무기. 그거 알아? 여기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대략 149,600,000km 래."
"예... 정확한 거리를 외우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멀리 있는 것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청 멀리 있긴 해도, 태양에서 여기까지 빛이 닿는 데는 8분 정도였나... 그쯤 걸린다고 하더라고."
"그렇군요..."
"149,600,000km이나 떨어진 태양에서도 결국엔 여기까지 빛이 닿는데, 나한테서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츠무기의 마음은 알 수 없어. 다만..."
"..."
"비록 그 빛이 직접 닿진 못해도 저 마천루 뒤에서 새어 나오는 노을처럼, 내 마음이 너에게 직접 닿지 못해도 그 마음의 편린은 네가 볼 수 있을 날이 오겠지. 내가 계속 노력하다 보면."
"프로듀서..."
"나에게 츠무기 네가 우선이란 걸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 바보같은 것이겠지. 그래도... 난 네가 가는 길을 응원하고 도와줄 테니까. 그걸 알아줘, 츠무기."
그렇게 말하고는 이제 점점 어두워지는 도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해가 아직 지지 않았지만 불이 켜진 도쿄 타워의 모습을 보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얼마 동안일까...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어두워지는 도심의 광경 안에서 점점 밝아지는 도쿄 타워를 바라보았다.
'증명할 기회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내겐 츠무기가 가장 중요하다는걸, 츠무기를 위해서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츠무기는 알아줄 날이 있을까...'
설령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 노력을 알아달라고 프로듀서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엇갈리더라도, 다시 이렇게 진솔하게 생각하는 바를 말하면 화해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츠무기와 서로 이해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증명할 수 없을 지라도...
그래...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증명할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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