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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30. 돌아온 탕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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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30, 2024 00:52에 작성됨.

30. 돌아온 탕아 이야기



  "나나쿠사 니치카! 1등입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


 츠무기가 니치카를 오디션에서 이길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그리고 이어서, 시라이시 츠무기! 2등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객석에선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아..."


 그렇게, 그렇게 2등이라는 결과로 츠무기의 「W.I.N.G.」 시즌 3은 막을 내렸다.



  1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결과를 발표하는 무대 위에서 두 손을 맞잡고 기품 있게 서있던 츠무기는 오디션의 성적을 마주하고는 이내 고개를 떨궜다. 거진 한 달 동안 피땀을 흘려가며 이 무대를 준비했음에도 결국 져버린 것이다. 2등이라는 성적으로 니치카에게 져버리고 만 것이다.


  "..."


 분명 사회자의 요란한 멘트라든가,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환호라든가, 이 오디션장이 엄청 시끄러워야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마치 조용한 무대 한가운데에 츠무기 혼자 고개를 떨군 채 서있는 것처럼. 그런 츠무기도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근처에 있는 이들의 희비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저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츠무기..."


 등수가 발표되고 난 뒤, 힘없이 서있는 그녀는 다른 아이돌들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그 인파에 밀려 따라 내려오게 되었다. 타 아이돌들은 백스테이지를 통해 대기실로 돌아갔지만, 아무 말도 없고 풀이 죽은 채 서있는 츠무기를 보자 가슴이 내려앉는 듯 했다.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아니, 애초에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자, 이내 고개를 들은 츠무기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


  "..."


 분명 아무 말을 하고 있지 않지만,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앞에서 슬픔이 서려있는 얼굴로 예의 바르게 서있는 츠무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그렇게 얼마 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츠무기는 이어 입을 열고는,


  "결국... 실망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무소의 모든 분들을... 제 팬들을... 그리고 당신을..."


  "..."


  "처음부터... 이기는 건 불가능했을까요... 그야... 댄스도 못하는... 귀여운 구석도 없는... 개성도 없는... 1인분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그런 못난 아이돌인..."


 괴로웠다. 츠무기가 니치카에게 패배해서 슬퍼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츠무기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여 스스로를 좀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하지만 그런 그녀는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니까.


  "저 같은 건... 저 같은 건 「W.I.N.G.」 에 나오지 않았어야... 아니... 어쩌면 전... 어쩌면 전 아이돌을..."


 아무 말을 해주지 못하고 묵묵히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다, 왠지 모르겠지만 전에 들은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리더가 흔들리면 팔로워는 그 이상으로 동요하게 되기 마련이다.'


 츠무기가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마 리더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줘서. 구심점을 잡아줘야 하는 사람이 제대로 츠무기를 붙들어주지 못해서. 그래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무엇이 정답인 행동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미 잔뜩 오답인 선택지들을 골랐음에도 이 시험을 볼 때마다 뭐가 정답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여~ 츠무기!! 잘 하고 왔어! 크~ 아깝네~. 1등 했으면 츠무기가 내 소원 들어주는데, 어쩔 수 없이 내가 츠무기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밖에~!"


  "..."


  "그러니까 돈 빼고 뭐든 다 말해보라고?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말이야."


  "하아... 당신은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조차... 이런 결과를 보고도 어떻게 긍정적일 수가..."


  "그래 그래! 아직 무슨 소원으로 할지 결정 못한거지? 일단 사무소로 돌아가자! 그리고... 사무소로 복귀하기 전에 조금만 돌아서 가보자."


  "...?"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하나 있거든. 지금의 너한테."


  "지금의... 저에게..."


  "응. 그러니 잠깐만 시간 좀 내주렴."


  "..."



 얼마 후...


  "그래서...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여기 쇼핑몰 안에 있는 것입니까?"


  "맞아. 원래라면 오늘도 하고 있을 텐데... 음, 저 멀리서 조금씩 소리 들리는 걸 보니까 이미 하고 있겠네."


  "???"


 오디션이 끝나고, 츠무기를 데리고 번화가 한가운데 있는 쇼핑몰에 들어갔다. 위치도 목 좋은 곳에 있고 이 부근에선 가장 큰 곳이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물론 인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츠무기는 조금 긴장하는 듯 했지만 쭈뼛거리며 잘 따라와주고 있었다.


  "휴일에 쇼핑을 위해 몇 번 들린 적이 있습니다만, 저녁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줄은 몰랐네요."


  "그치.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는 곳이니까 이런 걸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거든."


  "이런 걸?"


  "이제 저 쪽으로 가면 슬슬 보일거야."


 츠무기를 데리고 쇼핑몰의 중앙으로 이동하자 점점 몰려든 인파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인파라고 하기엔 몇십 명 되진 않지만, 그래도 그 열기는 나름 뜨거워 보였다.


  "모두 봐주러 와서 정말 고마워!!"


  "응응! 다음 무대도 있으니까 눈 크게 뜨고 봐줘!"


 쇼핑몰 중앙에 세워진 무대에는 이름 모를 아이돌 그룹이 자그마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스테이지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니 나름 프로듀서 같은 사람도 있고 직원 두어 명이 촬영 금지 패널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연신 주의를 주는 모습을 보면 이 아이돌들이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겠지만, 그래봤자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20명도 되지 않아 보였고 무엇보다 뒤에 설치되어 있는 무대 정보 모니터를 보면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무명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럼! 다음 곡은...!"


 이어서 이름 모를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이어졌지만, 역시 기대 이하였다. 처음 니치카를 봤을 때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정도로 아마추어의 티가 역력했다. 원래라면 그렇게 느낀 점을 스스로만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옆에서 그 공연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츠무기에게 저 아이돌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츠무기, 쟤네 봐. 정말 별로 아냐?"


  "네?"


  "딱 봐도 프로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잖아. 넌 그렇게 생각 안 하니?"


  "저... 그렇다 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열심히 노력? 그렇게 생각해? 정말 노력한 것으로 보여?"


  "..."


 그렇게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츠무기를 두고 저 아이돌들을 더욱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듣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심하게.


  "봐봐. 댄스 싱크가 안 맞잖아. 댄스도 정말 못할 뿐더러, 메이크업도 요즘 유행에 전혀 안 맞아. 무슨 가부키라도 보여주는 거야? 귀여운 구석도 하나 없는 애들이네."


  "당신... 갑자기 왜..."


  "그리고 개성도 없어. 애초에 쟤네 그룹 멤버들 보면 다 엇비슷하게 생겼잖아. 코디도 마찬가지고. 수천명이 넘는 아이돌들 가운데서 저런 몰개성으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읏... 그만하세요..."


  "저런 한 사람의 아이돌 노릇도 못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참..."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저런 애들은 이런 무대에도 올라오면 안되는데. 아니, 애초에 아이돌을 했으면..."


 그 말을 듣고 있던 츠무기는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는 듯이,


  "당신...!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 아이돌들이 대체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비난하는 것이죠? 대체 뭘 잘못했길래 그렇게 심한 말을 하는 건가요!?"


 츠무기는 이내 폭발하여 진심으로 분노하기 시작했다. 비록 실력은 떨어지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돌들의 고생을 폄하하고 심한 말로 깎아내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렇게 분노하여 양 어깨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츠무기에게,


  "맞아, 츠무기. 심한 말이지. 그런데 츠무기 말야. 대체 넌 뭘 잘못했길래 너 자신을 그렇게 비난하는 거니?"


  "...네?"


  "도대체 츠무기 너가 뭘 잘못했길래 스스로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는 거니?"


 그 말을 듣자 츠무기는 얼마 전 자신이 했던 말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부터... 이기는 건 불가능했을까요... 그야... 댄스도 못하는... 귀여운 구석도 없는... 개성도 없는... 1인분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그런 못난 아이돌인...'


  "..."


  '저 같은 건... 저 같은 건 「W.I.N.G.」 에 나오지 않았어야... 아니... 어쩌면 전... 어쩌면 전 아이돌을...'


  "그런..."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분명 넌 화가 날 건데, 왜 너는 그런 말을 스스로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니? 내가 담당하는 소중한 아이돌에게 누가 그런 심한 말을 하는 걸 나는 절대 두고 볼 수 없어. 설령 그게 츠무기 너라고 해도 말이야."


  "당신..."


  "츠무기. 그러니..."


 이어서 츠무기에게 말을 하려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누군데?"


  "뭣... 설마 아이돌!?"


  "어디선가 본 거 같은... 엇!? 설마 전에 TV에 나온...?"


 아이돌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건 좋은 점도 있지만, 반대로 나쁜 점도 있다. 물론 아직 츠무기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돌 분야, 특히 「W.I.N.G.」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알아차리지 못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누가 알아보게 된다면, 특히 다른 아이돌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면...


  "구설수에 휘말리겠지. 츠무기, 가자!"


  "엣, 다, 당신! 아직 무대가 끝나지 않았는데!"


  "안미츠 사줄 테니까 일단 가자!"


  "아니 당신은 바보입니까!? 제가 안미츠 사준다고 하면 뭐든 다 납득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까?!"


 츠무기의 손을 붙잡고는 냅다 무대의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자 츠무기는 당황한 듯 평소대로 태클을 걸었지만 그래도 기운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의외로 쉽게 따라와줬다. 오디션이 끝난 후 일부러 유별나게 바보 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츠무기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따라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역시 아직 부족한 듯 했다.


  '아직 마음 속에 뭔가 고민하고 있는 게 있는 것이려나...'


 하지만 그게 뭔지는 츠무기가 말해주기 전까진 알 도리가 없었다.



  "자, 여기 음료수."


  "하아... 하아... 읏... 이 정도로... 멀리 뛰어올... 필요는..."


 마침 쇼핑몰 바로 옆에 작은 공원이 붙어 있어서 그 방향으로 도망친 뒤에 사람이 적은 곳의 벤치에 앉아서 숨을 돌렸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뛴 츠무기는 꽤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한바탕 뛰고 나면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게 맞기는 한지, 아까보단 얼굴 표정이 더 풀어져 보였다.


  "아하하! 그래도 사람 많은 쇼핑몰 한복판보단 이런 공원이 이야기하는데 더 낫지 않나 싶어서."


  "확실히 아까의 쇼핑몰은 사람들이 너무 많긴 했습니다. 게다가 그 아이돌들의 공연을 지나가다 구경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에요. "


  "그렇지..."


  "..."


 그렇게 얼마간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아까 츠무기에게 말을 하다가 끊겼지만, 그걸 다시 매끄럽게 이어나갈 자신이 있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츠무기도 뭔가 말을 하고 싶어 보이긴 했지만 뭔가 더 고민하는 것이 있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서로 아무 말 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앞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당신은..."


  "음?"


  "당신은... 저에게 실망하지 않았나요?"


  "츠무기?"


 음료수 캔을 두 손에 쥔 채 만지작거리는 츠무기는 애써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회피하며 말을 건넸다. 얼마 전 무대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고사하고, 평소의 기품 있는 모습과 다른 츠무기는 어째서인지 힘들고 무력해보였다.


  "물론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제가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당신은 제게 실망하지 않겠죠. 왜냐면 프로듀서는 제 팬이니까요. 하지만..."


  "..."


  "프로듀서라고 해도, 팬이라고 해도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습니다. 아이돌이라는 것이 면죄부가 아니기에 제 내키는 대로 뭐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아이돌이라 한들 선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다른 아이돌의 프로듀서나 팬들이 만약 당신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면 아마 화내거나 실망하여 떠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틀린 말이 아니다. 아이돌의 모든 걸 이해해주고 받아들여 주는 건 팬이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부적절하거나 실망스러운 행동을 해서 팬덤을 이탈하는 팬들의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팬들도 이 정도인데 프로듀서들은 어떠할까. 프로듀서라는 직업 때문에 담당하는 아이돌을 놓아버리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미 마음은 떠나버릴 것이리라.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아이돌이 평상시에 날 선 태도를 보이고 화를 내고, 하라는 대로 하지도 않고... 심지어 뺨까지 때리고 무단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서 엄청난 피해를 끼쳤음에도... 그런데도 어째서 당신은 저를 아무 일도 없던 것마냥 받아주는 거죠? 그렇게까지 해줄 정도로 전 당신께 준 것이 없는데 도대체 왜..."


  "돌아온 탕아 이야기."


  "돌아온 탕아...?"


 왜 이 이야기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 이야기, 돌아온 탕아 이야기를 츠무기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는 츠무기를 옆에 두고는 이 이야기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꽤나 제멋대로인 성격을 지녀서, 어느 날 아버지에게 '나중에 어차피 돌아가셔서 유산을 물려주실 건데, 지금 제 몫의 유산을 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무슨... 어쩜 그리 불효막심한..."


  "아버지는 그럼에도 화를 내지 않고 애써 모아온 재산을 나누어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도시로 나갔지만, 술을 퍼마시며 흥청망청 재산을 탕진하다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런..."


  "아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이 없기에 천한 일을 하며 연명하였습니다. 그제서야 아들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 수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아버지께 돌아가선,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아들이라 할 자격도 없으니 일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라고 사정해야지.' 라고 다짐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말을 했는데도 잘만 집으로 돌아오는군요. 양심이라는게 있는 것입니까?"


  "흐음..."


  "뭐, 뭔가요 당신!? 왜 그렇게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거죠?"


  "아냐 아냐, 그냥 기분 탓. 아무튼, 아들이 집으로 걸어가자 멀리서부터 이를 보고 있던 아버지는 한걸음에 달려가서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 전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혀주고 송아지를 잡거라! 죽었던 내 아들을, 잃었던 내 아들을 다시 찾았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짧은 일화를 츠무기에게 들려주자,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츠무기는 눈매를 찡그리고 얼마 간 이 일화에 대해 이리 저리 생각하는 듯 하다, 이내 그녀가 이 이야기를 듣고 느낀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신이 만들어낸 이야기 치고는 나쁘지 않군요. 저번에 들려줬던 이야기보단 나아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몇 개 궁금한 점이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그럼. 뭔데?"


  "어째서, 아들이 그렇게 무례하게 굴고 재산을 떼갔을 뿐만 아니라 이를 탕진하고도 염치 없이 집에 돌아왔음에도, 어째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화를 내거나 실망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준거죠?"


  "그야 사랑하니까. 모든 부모가 그럴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은 조건이 없고 무한하니까. 츠무기도 한번 상상해봐. 실망하게 했다고 자녀를 버리는 부모님을. 상상이 되니?"


  "그... 그건..."


 그 말을 해주자 츠무기는 머릿속이 복잡한 듯 고개를 이리 저리 기울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사람 개개인마다 성향은 다르다. 더러는 화를 내고 아쉬운 소리를 자녀에게 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녀를 포기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에.


  "으음...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또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이 '돌아온 탕아 이야기'. 제가 당신에게 한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당신은 아무 일 없는 듯 저를 다시 받아들여 주냐고 물어보자 당신이 해준 이야기. 왜 이 이야기를 저에게 해준 거죠? 결국 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어째서 당신은 항상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저를 받아들여 주나요?"


  "...어? 그, 그건..."


 그 이유를 말해주다가 말 끝을 흐리고는 옆에 앉은 츠무기를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유리색 눈을 똑바로 뜬 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츠무기의 뒤에는 이미 어두워진 공원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가로등의 빛이 옆으로 새 나오면서 그녀를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자, 아까부터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하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2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말해준 이유는..."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니까.'


  "읏, 그...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어째서인지 머릿속에 이상한 사념이 잔뜩 맴돌았다. 사랑한다니. 츠무기를 사랑한다니, 말도 안된다. 담당하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프로듀서 같은 게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런 눈으로 아이돌을 바라보는 사람은 프로듀서의 자격이 없다.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옆에 앉아있는 츠무기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럼 왜 이 돌아온 탕아 이야기를 츠무기에게 해줬을까? 아들이 그 어떤 잘못을 해도 아버지가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는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이란 것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인데, 츠무기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녀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준다는 건 바로 츠무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라고 말하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왜 굳이 이 이야기를 꺼냈었더라... 츠무기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떠오른 이야기라서 그랬던 것이었는데, 정말로 츠무기의 질문하고 이 이야기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다시 받아들여준 아버지처럼, 아무 조건 없이 츠무기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으... 아니 그게..."


 이 이야기를 왜 하게 되었느냐에 대해 츠무기에게 잘 말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자꾸 머리에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어느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렇게 바보처럼 당황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하자 츠무기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아까 물어본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듯 했다.


  "돌아온 탕아 이야기...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여준 조건 없는 사랑... 그리고 제가 무얼 하든 당신이 저에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얼마 간 그렇게 유심히 생각하던 츠무기는 이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동그랗게 토끼 눈을 뜨고는 엄청나게 당황하기 시작하며,


  "서, 설마... 아니, 당신... 설마... 당신은 저를..."


  "그... 츠무기 있잖아. 그게..."


 좋아해선 안된다. 사랑해선 안된다. 


  "당신은... 당신은 지금껏 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던..."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설령 츠무기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츠무기가 알게 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프로듀서. 전 이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싫습니다.


 츠무기는 자신의 프로듀서를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까.


  "그...! 있잖아!!"


 츠무기의 새하얀 얼굴은 산책로 옆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새빨간 꽃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츠무기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변명을 제 때에 하지 못해버렸지만 늦게라도 어떻게 수습을 하기 위해 쩔쩔매며 그녀에게 이런 저런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 변명이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번 오디션에서 니치카에게 지고 돌아왔어도 너에겐 다음 기회가 있다는 말인 거겠지!?"


  "당신은..."


  "그, 그래! 이제야 시즌 3 통과니까 말이야. 시즌 4도 같이 열심히 해보자고, 츠무기."


  "프로듀서... 역시, 그런 당신을... 네?"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 음료수 캔을 만지작거리던 츠무기는 갑자기 멈칫 하더니 고개를 휙 하고 돌려서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음?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시즌 4...? 저,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만...? 제가 시즌 4에...? 어째서...?"


  "에? 그게 왜 어때서?"


 그 말을 듣자 츠무기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 그야...! 오디션에서 패배하지 않았습니까...? 시즌 3 동안 제가 1등을 한 오디션이 없었는데, 어떻게...?"


 도저히 그 영문을 모르겠지만, 츠무기는 예쁜 유리색 눈을 가늘게 뜨고는 손가락질을 하며 매섭게 째려보기 시작했다.


  "당신이란 사람은... 당신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저런 말로 저를 혼란스럽게 만든 뒤에...!"


  "...예?"


  "이렇게 제가 이겼다고 거짓말을 해서 우울해져 있는 제 기분을 달랜 다음에..! 그렇게 만들고 나서 그 뒤에 무슨 짓을 할 작정으로...!"


  "저, 츠무기 씨...? 왜 그런 결과로 도출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처음부터 그런 것을 노리고 이런 으슥한 공원으로...? 「W.I.N.G.」 에서 패배해서 침울해져 있는 제가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 그런 짓을 하려고...!? 역시, 역시 당신은 변태입니까!? 아니, 당신은 사람입니까!?"


  "아니 잠깐... 망상이 왜 이렇게 디테일한 거죠? 츠무기 너 혹시..."


  "으으...! 도, 돌아갈 거에요! 얼른 사무소로 돌아가요!"


 이상한 망상을 잔뜩 하는 츠무기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벤치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츠무기가 일어나지 못하게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러자 당연하리만큼 당연하게 츠무기는 깜짝 놀라며 매섭게 매도하기 시작했다.


  "히얏! 어, 어딜 만지는 거에요!? 이제야 본성을 드러내는 건가요, 이 변태!?"


  "그게 아니고...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아까 뭐라고 했어? 오디션에서 졌다, 어째서 시즌 4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


  "그게 어떻다는 거죠, 변태 프로듀서?"


  "츠무기 너 설마... 네가 오디션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시즌 4에 진출 못하고 「W.I.N.G.」 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에...?"


  "하?"


 츠무기의 반응을 보자 아까부터 자라오던 의구심이 사실로 확정되었다. 역시, 역시 츠무기는...


  "야, 츠무기. 너 내가 전에 너한테 해준 설명 제대로 안 들었지."


  "읏!? 아, 아니...! 부, 분명히 잘못 이해한 건 없는데...!"


  "오디션에서 1등 하는 게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는 필수 조건이 아니라고. 팬 수를 얼마 만큼 모았느냐가 다음 시즌으로 가는 척도라고 전에 설명해주지 않았어?"


  "그... 그건 들었습니다..."


 츠무기는 자신이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점점 깨닫는 듯 했지만 그래도 뭔가 납득이 되지 않는 듯 그녀의 예쁜 두 눈을 잔뜩 찡그리고는 연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전에 한 말은... 이번 오디션에서 지게 되면 「W.I.N.G.」 에서 패배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렇지. 근데 츠무기는 이번에 2등을 했잖아? 1등이나 2등을 못하면 진짜로 지게 되는 게 맞긴 했는데, 2등을 하면 팬 수가 늘어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그래서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어? 아무리 못해도 2등을 하기만 하면 된다고."


  "안... 안 해줬습니다."


  "아니 안 해주긴 해도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유추하거나 다른 아이돌들 하는 거 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냐?"


 그 말을 듣는 츠무기의 얼굴이 점점 새빨개지더니,


  "다, 당신...! 당신이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도 않아서 제가 오해하게 만들어 버리고는...!"


  "에...?"


  "이대로... 이대로 끝나버리는 줄 알고 제가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아십니까!?"


 어느새 매섭게 치켜뜨고 있는 츠무기의 눈매에는 눈물이 글썽이며 맺혀있었다. 잔뜩 화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고 있는 츠무기는,


  "그리고 당신, 제가 무대에서 내려올 때 당신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나요? 시즌 4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해야지, 왜 저까지 슬퍼지게 그런 얼굴을 하고 있던 거죠?"


  "그, 그야 츠무기 너보고 1등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리고 츠무기 네가 마음 아픈 듯 슬퍼하고 있길래..."


  "아니 그것 때문에 제가 오해한 것이지 않습니까? 비록 2등이지만 시즌 4로 넘어갈 수 있다고 격려해줘야지 왜 그렇게 침울하게 있어서 제가 오해하게 만들어버리는 거죠!?"


  "아니 너가 먼저 침울하게 있었다고!? 이제 내 탓을 하는 거야?"


  "하? 당신이야말로 제 탓을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한적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츠무기와 티격태격하며 다투기 시작했다. 분명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다투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벤치 옆에 앉아 예쁜 눈을 매섭게 뜨고는 손가락질하며 매도하는 츠무기도 마찬가지일까.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츠무기는 무대가 끝난 직후의 슬픈 얼굴을 하는 그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츠무기를 프로듀스 하는 이유는 츠무기를 슬프게 하려 함이 아닌 웃게 하려 함이니까. 그렇게 오디션에서 2등을 해서 시즌 3을 통과한 날, 담당 아이돌 츠무기와 함께 서로 유치하게 말다툼하며 공원에서의 밤은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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