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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치하야 초코퐁듀 (千早 Choco Fondue)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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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5, 2024 01:51에 작성됨.

 라이브가 하루도 채 남지 않은 날이었다.


 발렌타인 데이라는 특별한 날에 진행하는 라이브인 만큼, 출연하는 아이돌들 전부 최고의 무대를 만들겠노라 하는 각오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레슨을 열심히 하였고, 리허설 또한 실제 무대처럼 진행했다.


 그 이부키 츠바사가 레슨에 성실하게 참여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으리라. 물론 거기에는 선배인 호시이 미키―어느 순간 이부키 츠바사가 미키쨩이라 부르는―의 인정을 받고 싶은 기색도 있었으리라.


 그래도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무대 위에서의 이부키 츠바사는 언제나 진심이었고, 그녀의 달콤하면서도 발랄한 캐릭터와 노래는 발렌타인 데이에 알맞기 때문이다.


 오히려 걱정인 쪽은…의외라면 의외로, 여전하다면 여전히 키사라기 치하야 쪽이었다.


 무대 위에서의 가희는 온데간데없고, 마이크를 잡은 채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는 긴장 가득한 아이돌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왜…라고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라이브가 고작 이틀 남았는데 리허설을 하지 못한다, 그게 말이 될 리가 없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키사라기 치하야가 이런다. 프로듀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키사라기 치하야가 한 곡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아마미 하루카, 그리고 미우라 아즈사와 함께 다섯 번째 무대를 함께 하는 것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해당 무대의 리허설도 이미 진행한 바 있다. 바로 다음 있을 아마미 하루카와의 듀엣 무대 또한 차질 없이 리허설을 마쳤다.


 그때는 문제없이 노래도 안무도 소화했는데, 문제는 치하야의 독무대, 바로 이 신곡의 리허설이었다. 왜 이 신곡을 부르려 하면 입술을 조금 오물거리다가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일까.


 “치하야, 뭔가 문제라도 있니?”


 “…….”


 하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는 묵묵부답이었다. 잠시 예전처럼 반항―그렇게 표현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가장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아이돌이, 노래를 부르는 무대 위에 섰는데, 노래를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예전처럼 무표정하게 무시하거나 싫은 티를 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키사라기 치하야의 얼굴은 예전과 비교하면 더없이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혹, 당황, 부끄러워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노래에는 거부감이 있을 리 없지만, 역시나 가사에 거부감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키사라기 치하야는 프로다. 아무리 부끄럽거나 해도 프로면 프로답게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조금 질책이라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어 털어낸다. 아이돌을 프로듀싱 하는 데 있어서 그녀들에게 쓴소리하는 것은, 그의 신념에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뭔가 문제가 있다면 말을 해주면 좋겠어. 나도 어떻게든 도와줄 테니까―”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인지 알 수 있을까?”


 조심스레, 하지만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현지인이었다면 조금 더 잘 돌려 말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돌려 말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다행히 키사라기 치하야를 포함한 다른 아이돌들도 이제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프로듀서, 저를 믿으시나요?”


 갑작스러운 키사라기 치하야의 질문에, 그는 속으로 갑자기? 라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 모두를 믿기도 하거니와, 그중에서도 키사라기 치하야는 노래에 있어서 만큼은 더 믿는 편이다.


 그러니, 그녀가 리허설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데에도 뭔가 명확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믿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키사라기 치하야는 만족한 듯이 생긋 웃었다. 저 미소가 라이브 때에 나온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더라도 모두가 만족할 정도의…그런 미소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프로듀서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러시다면, 프로듀서는 잠시 사무실에 가 주셨으면 합니다.”


 “……엥?”


 그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얼빠진 소리 같은 것이나 내버리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였다.


 리허설 도중에 왜 담당 프로듀서를 사무실로 보낸단 말인가. 키사라기 치하야에게 뭔가 잘못한 점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혹, 예전처럼―


 “치하야, 괜히 나를 보면 기분이 나빠지거나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노래 일 아니면 하기 싫어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


 “프로듀서…언제의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요.”


 “그러면 어째서 사무실로 가 달라고 한 건지 물어봐도 될까?”


 최대한 치하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심스레 말한다. 그리고 그런 말투와 행동을 그녀도 느꼈던 것일까,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한다.


 “조금,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잠시 사무실에 가 주실 수 있을까요, 프로듀서?”


 “……치하야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작은 고집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를 믿으니까. 괜히 이 공간에서 떠나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아니야, 괜찮아.”


 짧게 말하곤 극장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워낙 방음 설비가 잘 되어 있어서일까, 나가서 문을 닫는 순간, 안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하기에 슬쩍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혹은 음향 준비실이나 다른 무대가 보이는 곳에 가서 확인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담당 아이돌을 믿으니까. 갑작스레 이상한 요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담당 아이돌을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는,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사무실로 걸어갔다.


 *  *  *  *  *  *  *  *  *  *


 “……치하야 쨩, 괜찮아?”


 아마미 하루카는 신경이 쓰였을 뿐이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이상한 요구를, 그녀는 무대 뒤편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미 하루카만이 아니다. 스트로베리 팝 문의 세 명이나 키타자와 시호, 나나오 유리코, 그리고 모치즈키 안나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키사라기 치하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미우라 아즈사는 뭔가 알겠다는 듯이 손을 뺨에 가져다 대며 어머어머~ 하고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를 알아차린 것은 아마도 아마미 하루카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키사라기 치하야와 종종 레슨을 같이 했던 그녀로서,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무대 뒤에서 무대 위로 올라와 마이크를 잡은 친구의 손을 맞잡아 줄 수 있던 것이다.


 “하루카…….”


 그런 친구의 행동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린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프로듀서가 이 자리에 없는 지금이야말로, 확신할 수 있었다.


 맞잡은 친구의 온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미안, 하루카. 속으로 사과를 한다. 그리고 아마미 하루카의 손을 놓는다. 후후, 작게 웃으며 음향 담당자에게 사인을 보낸다.


 다시 한번, 노래를 틀어 달라고.


 전주가 흘러나오고, 키사라기 치하야의 눈동자를 본 하루카는 천천히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곤 후후, 작게 웃으며 무대 뒤편으로, 지금 아마미 하루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 지금의 리허설은 키사라기 치하야의 독무대니까.


 “치하야 씨는…괜찮으신가요?”


 다른 아이돌들을 대표해서 키타자와 시호가 차분하게 물어본다. 그 물음에 아마미 하루카는 몸을 돌려 무대 위의 키사라기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프로듀서가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긴장으로 인해 몸이 굳어 있던 키사라기 치하야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안한 자세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가희의 목소리다. 새콤달콤한, 그러면서도 귀여운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틀림없는 가희다.


 그 모습에 아마미 하루카는 다시 키타자와 시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대답 같은 것은 필요 없노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미 하루카는 구태여 대답한다. 이유라고 한다면…그래, 아마미 하루카 본인의 마음에 대답하는 것이리라. 비로소 치하야의 생각을 깨달았음을, 가장 걱정되지만, 동시에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치하야 쨩이잖아? 아-무 문제없어.”


 라이브가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을 때였다.


 *  *  *  *  *  *  *  *  *  *


 시곗바늘이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오직 옅은 달빛만이 창문을 통해 키사라기 치하야를 비추고 있었다.


 은색의 달빛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스스로 변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는 알고 있다. 달빛이나 별빛 때문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빛이 전부 어둠에 삼켜진다 해도, 지금의 키사라기 치하야는 잠들 수 없다.


 라이브에 대한 부담감이나 긴장 같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차라리 그런 것 때문이었다면 극장의 레슨룸이나 옥상에서 노래라도 불렀으리라.


 지금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키사라기 치하야의 의지와 무관한, 그런 일 때문이다.


 그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미칠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점점 정신이 또렷해지고, 눈이 크게 떠진다.


 자야 하는데. 내일 있을 라이브 때문에라도 컨디션을 망가뜨릴 수 없는데.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잠이 깬다.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구른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내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인생 처음으로 할 것이다. 초콜릿을 만들자고 생각했을 때부터 그렇게 마음먹었고, 그렇게 각오를 다졌다.


 지금 와서 물러난다는 것은 키사라기 치하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잘 될지 모르는 일이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 아니, 거절당할 것이다. 프로듀서라면, 키사라기 치하야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라면, 아이돌에게 이런 건 받을 수 없다며 상냥하게 거절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게 미어져 온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 상황을 상정해 보아도,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아도, 키사라기 치하야가 원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럴 거로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마음을 가득 담아, 진심을 한껏 담아 주겠노라, 그렇게 각오하지 않았던가.


 프로듀서의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그 콩닥거림을 기억하며, 그보다 조금 더 강한 두근거림을 느끼기 위해 행동하리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말하고 싶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다. ‘여자친구 있으신가요?’ 되고 싶다, 프로듀서의 소중한 사람이, 하나뿐인 사람이, 그 사람도 지금의 키사라기 치하야처럼 두근거렸으면, 그런 바람이다.


 “아아, 정말……!”


 그런 생각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자기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른다. 계속, 계속해서 그런 생각뿐이다. 프로듀서에게, 그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그리고 그에게 감싸여지는, 그런 행복한 생각.


 노래 가사처럼, 사랑의 큐피드가 이루어 주었으면 할 정도다. 신이 있다면 간절히 기도하고 싶을 정도다. 이런 키사라기 치하야의 마음을, 그 속내를, 프로듀서가 눈치채 주었으면 한다.


 그렇다고만 한다면, 노래마저, 자신의 모든 것인 노래마저 아무래도 좋다, 그런 마음조차 들었다. 아마 지금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면, 정말로 완벽하게 마음을 담아 부를 수 있겠지.


 시곗바늘이 열두 시를 지나 한 시를 가리키고, 키사라기 치하야의 잠 못 드는 밤은 점점 길어져 가고 있었다.


 *  *  *  *  *  *  *  *  *  *


 잠을 거의 못 자다시피 한 날이었다.


 오늘이 라이브 당일인데, 라이브가 삼십 분도 남지 않는 지금까지 피곤하고 진이 빠지면 어쩌자는 건지, 그는 투덜거렸다.


 왜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는가 하면…당연하게도 그의 소중한 담당 아이돌, 키사라기 치하야 때문이다.


 담당 프로듀서로서 걱정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마지막까지 담당 아이돌의 리허설을 보지 못했다.


 정확히는 키사라기 치하야의 리허설을 보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확인했건만, 치하야만이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요청으로 인하여 리허설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키사라기 치하야를 믿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당연하지, 라고 대답할 수 있다. 치하야와 하루 이틀 함께 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765 프로덕션에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키사라기 치하야의 담당 프로듀서였기 때문이다.


 아마미 하루카에게 이 생각을 들킨다면 분명, 입술을 비쭉 내밀며 ‘저는요?’라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하루카뿐만이 아니라 다른 올스타즈 아이돌들 또한 그러하겠지.


 하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는 뭔가 조금,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이지만 더 세심하게 대해왔기 때문일까, 아주 조금이지만 다른 감정이 있다.


 대견함이라거나 기특함 같은 것과는 결이 다른, 다른 아이돌들도 전부 소중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그런 감정.


 그러니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것이리라. 키사라기 치하야의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행동 때문에.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이브는 코앞이고, 프로듀서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더는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무대의 뒤편에서 무대에 올라가는 한 명 한 명에게 응원을 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스포트라이트 앞으로 에스코트하는 것뿐이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출연하는 라이브 때는 언제나 그랬다.


 무대 맞은 편에서 무대를 평가하는 프로듀서로서가 아닌, 무대 뒤에서 키사라기 치하야의 또 다른 동료로서, 그녀의 첫 번째 팬으로서.


 그래야만 했을 터였다.


 “프로듀서, 부탁 하나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키사라기 치하야가 직접 그에게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늘 라이브 때는 부디, 객석에 계셔주시겠어요?”


 그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무대를 팬들처럼 관람하는 것은.


 *  *  *  *  *  *  *  *  *  *


 첫 무대는 [Welcome!!]으로 시작했다.


 카스가 미라이, 모가미 시즈카, 그리고 이부키 츠바사의 삼인조가 부르는 노래는, 달콤하면서도 생기발랄하여 극장의 개막 무대를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원체 친한 친구들이기도 하거니와, 스트로베리 팝 문이라는 3인 유닛으로서도 합을 맞춰 온 사이이기 때문에, 노래도 안무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관중들 또한 한순간에 달아오른 열기에 하나둘씩 사이리움을 꺼내어 흔들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무대에 잠깐의 어둠이 찾아오고, 두 아이돌은 무대 뒤로 내려간다. 이부키 츠바사만이 홀로 남아 마이크를 잡은 채 다음 곡의 전주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리던 전주가 흘러나오고, 곧이어 강하게 외치는 첫 소절, [휙, 하고 뛰쳐나왔어~].


 노노하라 아카네도, 시노미야 카렌도 옆에 없다. 하지만 이부키 츠바사 혼자서도 소화할 수 있는 곡이다. 그러면서도 발렌타인의 달콤함에 어울리는 노래, [남자친구가 되어 줘].


 이부키 츠바사 특유의 요염하면서도 귀여운 목소리로 부르니, 청중들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난다. 잠깐의 어둠이 극장을 가리고, 이부키 츠바사가 무대 뒤편으로 퇴장한다. 그러나 이내, 바톤 터치를 하듯, 미우라 아즈사가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온다. 처음으로 부르는 노래는, 평소 그녀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노래, [러♥블♥리♥]다.


 아무래도 발렌타인 데이 공연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랑이나 연애에 관련된 노래로 무대를 채우는 것이다.


 그런 기조에 맞게, 미우라 아즈사의 두 번째 노래는 [사랑하는 마음].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한 소절 한 소절마다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리라. 적어도 객석 뒤편, 출입구 근처에 기대어 있는 프로듀서에게는 그러했다.


 그리고 또다시, 노래가 끝난다. 무대에 어둠이 찾아오고, 아마미 하루카와 키사라기 치하야가 빠르게 무대 위로 올라온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친다. 힘차게 흘러나오는 전주, 그리고 이내 박자에 맞춰 세 사람이 목소리를 낸다. [Hey boys! 기대해 버려].


 그 노래의 제목, [Happy!]처럼 관객들에게 행복을 전하기 위해, 오늘의 무대를 행복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올스타즈의 세 아이돌이 노래한다, [분명 분명 happy smile, 찾아올 거야!].


 관객들의 함성, 빨강, 파랑, 그리고 보라색의 사이리움이 물결치고, 극장의 분위기가 점점 최고조로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잠깐의 어둠과 정적. 미우라 아즈사가 내려가고, 아마미 하루카와 키사라기 치하야만이 무대 위에 남는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본다.


 아마미 하루카의 걱정스러운 눈빛, 괜찮겠어? 라는 의미다. 하지만 괜찮다. 아마미 하루카와의 무대는 아무런 문제 없이 리허설까지 마쳤다. 물론 이 노래도 제법 부끄러운 사랑 노래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카와 같이 부르는 것이다.


 후타미 자매까지 같이 있었더라면 정말로, 긴장이라곤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으리라.


 전주가 흘러나온다. 아마미 하루카와 키사라기 치하야가 몸을 돌려 객석을 바라본다. 어느새 스포트라이트는 은은한 연심의 빛으로 바뀌었다. 노래는 [좋아해]. 두 아이돌이 첫 소절을 부른다.


 [당신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처음 사랑에 빠져버렸는걸…]


 작년의 발렌타인 데이 공연에서 불렀던 노래다. 연습을 안 했었어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노래다. 작년에도 충분히, 충분히 부끄러웠단 말이다, 키사라기 치하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올해는 더하다. 정말이지, 프로듀서는.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키사라기 치하야에게 부끄러운 것만 시킨다.


 작년에는 아마미 하루카, 그리고 후타미 자매와 함께 불렀던 이 노래를, 올해는 아마미 하루카와 듀엣으로 부르고 있다. 친구의 노래 실력도 많이 늘었다. 역시, 사람은 성장하는 법일까.


 하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는 성장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야, 처음에는 어떤 기분으로 다음 곡을 불러야 할지 몰랐고, 지금은 프로듀서 앞에서 새로운 곡을 노래하는 것이 부끄러웠으니까.


 하지만 어느새, 노래는 마지막을 달리고 있었다. [빨간 리본, 기념일까지], [부드러운 러브, 담고 싶어…]. 마지막 소절까지 사르르 녹아 내릴듯한 단맛을 녹여낸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그리고 함성이 극장을 뒤덮는다. 스포트라이트가 잠시 꺼진다. 아마미 하루카의 퇴장 시간이다.


 그리고 하루카는 치하야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아주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맞는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하루카의 메시지는 명확했고, 단순했다.


 각오한 거지? 그렇게 묻는 아마미 하루카의 눈빛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미소로 답했다. 이미 정한 일이고, 아마미 하루카의 말처럼 각오한 일이다. 더는 숨기지 않을, 키사라기 치하야의 소중한 감정이다.


 그러니까, 키사라기 치하야는 노래한다. 노래보다 더 좋아질 것만 같은, 그런 마음을 담아.


 *  *  *  *  *  *  *  *  *  *


 스포트라이트가 켜진다. 전주가 흘러나온다. 달콤하고 귀여운, 소녀의 사랑 이야기 같은 노래. 고개를 들어 객석을 본다. 아니, 객석 그 너머, 눈동자를 굴려 프로듀서를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객석에서 가장 먼 곳, 출입구 쪽에 기대어 있는 프로듀서를 발견한다. 평소처럼 진지한 얼굴이었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무대가 걱정이라도 되는 것일까. 프로듀서 씨의 그런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키사라기 치하야는 알고 있다. 단순히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자그맣지만 확실한, 감추고 싶지만 감춰서는 안 되는, 그런 감정이다.


 프로듀서에게 백금 반지를 선물로 받았을 때부터, 아니, 그것보다 더 이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 적어도 지금만큼은 아니리라.


 수많은 객석의 관중들 사이에서, 오롯이 프로듀서만이 눈에 들어온다. 팬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노래,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애정.


 오직 한 사람을 위한…사랑.


 그리고 지금부터, 키사라기 치하야는 그 연심을 노래하려 한다.


 오늘, 그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전주가 끝나고, 키사라기 치하야는 미소를 지으며 첫 소절을 시작했다.



 [있지]

 [오늘은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발렌타인 데이야]

 그래, 오늘은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용기를 낼 수 있는 날.



 [맞아, 여자가 남자한테 주는]

 [특별한 날]

 소녀가 과감하게 용기를 낼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날.



 [저기, 이렇게 두근두근하는 만남은]

 [마치 초콜릿 같아]

 노래를 부르는 지금도 심장이 콩닥거려, 가슴 속에 품은 초콜릿이 녹을 정도로,



 [그래, 달콤달콤한]

 [녹을 것 같은 로맨스]

 달콤하고 끈적한, 그런 기분이란 것을, 프로듀서는 알고 있을까.



 [노래하는 것보다도]

 [좋아질 것 같아]

 오직 노래뿐인 세상에서, 노래보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



 [딱 한 개만, 단 한 명에게만]

 딱 한 개의 초콜릿, 오직 그에게만.



 [choco fondue]

 [choco fondue]

 [choco fondue]



 [「당신을 좋아합니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어]

 [그러니 present for you]

 오늘을 빌려서, 드리는 선물.



 [choco fondue]

 [choco fondue]

 [choco fondue]



 [마음을 담아서 지금]

 [너에게 주는]

 키사라기 치하야의, 담당 프로듀서에게 전하는,



 [사랑의 큐피드]

 [이루어 주세요]

 큐피드의 화살이 명중하기를,



 [부탁이야♡]

 부탁이야…….



 가희의, 전혀 예상치 못한 노래에 극장의 청중들이 환호한다. 파란색 사이리움이 파도처럼 흔들리지만, 무대 위는 분명 핑크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쓰라린 노래를 하던 입으로부터, 가장 달콤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옛날, 키사라기 치하야가 파랑새였을 시절부터의 팬들은 감회가 깊으리라.


 물론, 그것은 프로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맡긴 악곡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불러낼 줄은 몰랐다. 마치,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 둔, 발렌타인 데이의 소녀인 것처럼.


 그런 프로듀서의 생각이 무대 위에 전달되기라도 했을까, 간주가 나오는 사이 키사라기 치하야는 프로듀서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직도 그는 모르고 있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누구를 보면서, 누구를 생각하며 노래하는지.


 그러니, 알려주자. 모른다면 알 때까지, 그렇다면 분명, 이 노래가 끝날 때는 알아차리리라.


 간주가 끝나고, 빠른 한 박을 놓치지 않으며, 키사라기 치하야는 노래를 이어간다.



 […라고]

 [어젯밤부터 계속 생각해 봤는데]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고민했던,



 [아아…]

 [잘 될지 몰라서 가슴이 답답해]

 받을까, 받지 않을까…알 수 없지만, 그래도…



 [따뜻할 때]

 [식기 전에]

 오늘을 위해서 만들어 둔, 자그마한 마음.



 [진심이야…진짜라고…]

 진심을 담은, 발렌타인 초콜릿.



 [choco fondue]

 [choco fondue]

 [choco fondue]



 [「여자친구 있어요?」]

 혹시, 저는 안 될까요?



 [물어보고 싶지만 못 물어보겠어]

 물어보고 싶지만, 뭐라고 답할지 알 것만 같아



 [그렇지만 눈치채 줘 my heart]

 하지만 이미 알고 있잖아요, 제 마음.



 [choco fondue]

 [choco fondue]

 [choco fondue]



 [당신에게 감싸여서]

 [행복을 그리는]

 [사랑의 마블]

 그러니 행복하도록, 전해졌으면.



 청중들이 환호한다. 극장의 열기는 최고조, 가희가 아닌 한 명의 소녀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그런 신선함이, 그런 사랑스러움이 극장의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리라. 


 그리고 이는 프로듀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담당 아이돌이, 언제나 어리고 여린 소녀인 줄만 알았던 아이가, 단순한 유대감이라 생각했던 그 마음이, 조금은 외면하고 있었던 그 관계가, 한순간에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키사라기 치하야에게 눈앞의 관객들도, 백스테이지의 동료들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의 고백을 듣고 있는 한 사람뿐이었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수줍은 마음도, 그녀의 콩닥거리는 심장도,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과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려는 그 가녀린 목소리도 전부, 전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숨을 고르고, 프로듀서를 향해 전력으로, 그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건네고,


 그렇기에 그는, 어른답게, 키사라기 치하야와 그녀의 노래를 마주한다.



 [두근두근거리는 여자아이]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리네요.



 [울렁울렁거리는 남자아이]

 프로듀서도, 가슴이 뛰고 있나요?



 [소중한 오늘 하루를]

 그렇다면 오늘, 잊지 못할 하루로,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영원히 기억될 하루로,



 [단둘이서…]

 둘만의, 추억으로…!



 [choco fondue]

 [choco fondue]

 [choco fondue]



 [「당신을 좋아합니다」]

 분명히 고백이니까, 프로듀서에게 하는.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어]

 말로는 전하지 못하지만, 오늘이라면 분명.



 [그러니 present for you]

 그러기 위해 준비한, 초콜릿이니까.



 [choco fondue]

 [choco fondue]

 [choco fondue]



 [마음을 담아서 지금]

 [너에게 주는]

 그러니,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당신에게.



 [사랑의 큐피트]

 [이루어 주세요]

 부디, 전해졌으면.



 [부탁이야♡]

 부탁이야…….



 가희의 독무대가 끝나고, 청중들의 환성 소리와 파란색 사이리움의 물결이 극장을 뒤덮는다. 하지만 그 물결 가운데 프로듀서는 없었다.


 마지막 소절이 그녀의 입을 떠나는 순간, 프로듀서는 객석을 나와 비상구로, 그리고 백스테이지로 달려갔다.


 그 메시지는 분명, 그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는 키사라기 치하야가 이다음에 무엇을 할 것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백스테이지의 문을 연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키타자와 시호가 무대 위로 오르고 있었다. 그를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카스가 미라이가 데헤헤 웃고 있었다. 의외로 눈치 빠른 아이기에, 지금의 분위기를 눈치챈 것이리라.


 그런 미라이의 옆에서는 모가미 시즈카가 얼굴을 붉히며 그와 가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처음 보는, 머리끝까지 새빨갛게 되어 버린 가희의 모습이리라.


 이부키 츠바사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녀의 옆을 지나칠 때,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 것도 받아주셔야 해요~?’. 소악마가 따로 없다.


 나나오 유리코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지금부터 키사라기 치하야가 어떤 행동을 할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것이리라.


 그 옆의 모치즈키 안나는 나나오 유리코의 뒤에 숨는다. 스테이지에 올라가지 않아서 오프 모드인 것일까, 그런데도 반짝이는 눈으로 키사라기 치하야를, 그리고 프로듀서를 바라본다.


 미우라 아즈사가 웃는다. 언제나처럼 어머어머~하진 않는다. 그저 웃는다. 어른의 여유이리라. 맞은편의 아마미 하루카도 웃는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지금부터 무슨 행동을 할지를 알고 있다는 듯, 놀리는 듯이 실실 웃는다. 물론, 그 속은 조금 쓰리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오늘 하루만큼은 한 발짝 양보하리라. 소중한 친구니까. 그러니까 딱 한 번, 웃어줄 수 있는 것이다.


 프로듀서가, 가희의 앞에 선다. 하지만 무대 아래의 가희는, 그저 키사라기 치하야일 뿐이다. 등 뒤로 숨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입술을 질끈 씹는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다시금 움켜쥔다. 그리고 눈앞의 그 사람을 올려다본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프로듀서 앞에 섰다. 고이 간직하고 있던 초콜릿 상자를, 그에게 내민다. 이 순간에 뭔가 하고 싶은 말들이 잔뜩 있었지만, 머리가 하얘지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프로듀서.”


 그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본능에 맡긴 한마디만을 간신히, 용기를 쥐어 짜내 말할 뿐이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파랑새의 기나긴 여정은 끝이 나고, 새로운 날갯짓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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