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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치하야 초코퐁듀 (千早 Choco Fondue)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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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5, 2024 01:50에 작성됨.
평온한 나날이었다.
너무 평온한 나머지 사무원인 오토나시 코토리가 19금 동인지를 회사에서 읽다가 리츠코 중사에게 걸렸으며, 정좌한 상태로 장장 한 시간에 걸친 설교를 받아야 했을 정도의 일상이었다.
그런 선배의 모습을, 후배 사무원인 아오바 미사키는 신기하다는 듯이 슬쩍 보았지만, 그녀의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재봉 업무 때문에 다시 미싱기…그러니까 재봉틀로 고개를 돌려야 하는,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런 포근한 일상 가운데에서, 아마미 하루카는 하기와라 유키호가 만들어 준 녹차를 한 모금 후룩, 마시고 있었다.
분명 겨울, 조금만 더 있으면 발렌타인 데이가 돌아올 시기였지만 이렇게 따스한 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미 하루카의 옆에서 같이 차를 마시고 있는 키사라기 치하야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평소의 그 차갑고 무뚝뚝한 키사라기 치하야의 모습과는 달리, 누가 보아도 분명하게 얼굴이 풀려 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데다, 조금 헤실거리기까지 하는 모습이 키사라기 치하야를 아는 사람이라면 눈을 한 번쯤 비비도록 만들 정도였다.
그래, 문을 열고 들어온 프로듀서와 같이.
“……어라, 프로듀서 씨? 다녀오셨어요♪”
765 프로덕션의 작은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들려오는 명랑한 소리에, 프로듀서는 가방을 자기 책상 옆에 내려놓고 외투를 대충 던지듯 걸어버리곤 담당 아이돌의 소리가 들려온 것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오토나시 코토리가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설교 상태의 아키즈키 리츠코를 건드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가벽 뒤의 작은 응접실 겸 탕비실 겸 아무튼 무슨 겸사겸사 어쩌고저쩌고해서 만들어 둔 작은 공간에 도달하자, 헤헤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이는 담당 아이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녀왔어, 하루카.”
“외근, 수고하셨어요. 밖이 꽤 추웠을 텐데, 차 한잔 어떠신가요?”
하루카의 권유에 잠시 시계를 본다. 다음 스케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하루카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리고 찻주전자를 들고 차를 한 잔 따르려는 순간, 주전자 안의 차가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물을 다시 끓여야겠는데.”
“앗, 제, 제, 제가 다시 끓여올게요…! 프로듀서 씨는 잠시 몸이라도 녹이고 계세요…!”
“그러면 부탁할게, 유키호.”
“네, 네……!”
하기와라 유키호가 찻주전자를 들고 물을 끓이러 간다. 하지만 다음 차가 나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리라 프로듀서도, 아마미 하루카도, 그리고 살짝 뚱한 얼굴의 키사라기 치하야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야, 하기와라 유키호는 다도의 전문가이며, 최고의 차 한잔을 위해 찻잎의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물의 온도까지 하나하나 체크하며 차를 우려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프로듀서의 마음에 걸리는 것 한 가지가 있다면,
“……치하야?”
살짝 뚱한 얼굴의 키사라기 치하야, 라는 점이다.
그가 하루카의 옆자리에 앉기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비쭉 내밀곤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뭔가요, 프로듀서.”
“…….”
말투 역시 퉁명스러운 것이, 뭔가 프로듀서에게 불만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녀의 불만이 무엇인지 모른다. 순식간에 생긴 불만 사항을, 그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의 옆자리에서 차를 홀짝이던 아마미 하루카는, 친우의 뾰로통함의 원인을 알아차렸다는 듯, 히죽히죽 웃으며 키사라기 치하야와 프로듀서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정말 모르겠나요, 프로듀서 씨? 라고 말하는 듯한 아마미 하루카의 눈빛에,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까 765 올스타즈는 물론이거니와 39 프로젝트의 유일무이한 남성 프로듀서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로듀서 씨, 프로듀서 씨.”
그러니 이럴 때는 이 아마미 하루카가, 눈치 백 단의 아마미 하루카가 조금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아마미 하루카는 아쉬워지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친구에게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프로듀서의 첫 선택은 이쪽이었으니까, 그런 얕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냐는 듯이 하루카를 보며 눈을 껌뻑이는 프로듀서에게, 책상 아래에서 살그머니 손가락으로 맞은 편을 가리키며 아주 작게 속삭인다.
“치하야쨩 옆자리, 비어 있다구요?”
“아…….”
그제야 키사라기 치하야의 불만 사항을 깨달았다는 듯,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곧바로 치하야의 옆자리로 가게 된다면, 그것이 아마미 하루카의 조력 때문임을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프로듀서는 자신의 사무용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서류 가방을 열어 잠시 내용물을 뒤적이다가, 종이 몇 장을 꺼낸다.
그리고 그제야 다시 다과회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키사라기 치하야의 옆자리에 착석한다.
“…….”
그리고는 힐끗, 키사라기 치하야의 눈치를 살핀다.
다행히 그것이 정답이었는지, 비쭉 나와 있던 그녀의 입이 도로 쏙 들어갔으며, 햄스터처럼 볼록 부풀어 있던 뺨 또한 평소의 키사라기 치하야처럼 말쑥하게 돌아왔다.
그런 키사라기 치하야의 반응에 그는 속으로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노래 일 안 가져다준다고, 노래 이외에는 관심 없다며 화를 냈지만, 지금은 이런 사소한 것에 토라지는 것이 꽤 둥글어진 것 같았다.
물론 물리적으로도 조금 둥글어졌다는 것을 안다. 요즈음엔 식사를 규칙적으로 잘하고 있는지, 예전에 비해 조금 살이 붙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키호가 차를 내오기 전에, 안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괜찮을까?”
그렇다. 서류 가방에서 종이 몇 장을 가져온 것은 단순히 치하야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요, 프로듀서 씨?”
아마미 하루카가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물어본다. 키사라기 치하야 또한 관심 없는 것처럼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그 눈길이 프로듀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아차렸다.
“조금 있으면 발렌타인이잖아.”
“그렇죠. 헤헤, 프로듀서 씨…초콜릿 기대하시는 건가요?”
올해도 프로듀서에게 초콜릿을 만들어 줄 생각 만만인 아마미 하루카가 슬그머니 그를 자극해 본다. 하지만 그는 프로 프로듀서답게 고개를 내젓는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 일 이야기야.”
“네에…그렇겠죠.”
이번에는 아마미 하루카가 조금 뾰로통해진 얼굴로 입술을 비쭉 내민다. 받아주지 않는 프로듀서에게 나 아마미 하루카는 실망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내 다시 씩씩하게 웃는 얼굴로 되돌아온다. 그보다 일, 프로듀서가 말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무튼, 발렌타인이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잖아? 올해는 발렌타인에 맞춰서 신곡을 발표할까 해. 시어터 극장에서 발렌타인 기념 라이브도 하기로 결정되어 있잖아. 그때 처음으로 선보이면 좋을 것 같아서.”
“발렌타인 신곡…! 그거 좋네요. 헤헤, 제가 부르나요?”
“……아니.”
“에엑―!!”
그 신곡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아마미 하루카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쾅, 하고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발렌타인 하면 초콜릿, 초콜릿 하면 저, 아마미 하루카 아닌가요?! 취미가 제과인, 초콜릿도 잘 만드는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요!”
“그렇긴 하지만…이번 신곡은 평소에 그런 이미지가 없는 아이돌이 이미지 전환으로 부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크윽, 갭모에…라는 건가요.”
“뭐, 그런 느낌?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게 말꼬리를 살짝 흐리며, 프로듀서는 옆자리에서 차를 후룩, 마시고 있는 키사라기 치하야를 슬쩍 보았다. 아직 이 대화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녀였지만, 이제 곧 큰 관심을 가지게 되리라.
“치하야, 어때?”
“……네?”
갑작스러운 공격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찻잔을 든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것일까, 귀를 의심해 보았지만, 이어지는 프로듀서의 말은 그녀가 절대로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발렌타인 신곡, 치하야가 불러보는 게 어때?”
“제, 제가요……?!”
“응. 이미 악곡은 완성되었고, 치하야라면 노래 익히는 건 금방일 테니까. 게다가 치하야의 이미지라면, 평소의 이미지에서 탈피에 소녀 같은 이미지도 어필할 수 있을 거야.”
“제, 제가…소녀 같은…그, 그런…전, 자신이…….”
고개를 푹 숙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치하야의 모습은,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으리라는 것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치하야의 작은 반항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프로듀서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이게 그 악곡의 악보야. 치하야가 맡아 줬으면 좋겠어.”
키사라기 치하야가 고개를 들고 악보를 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아마미 하루카가 한발 먼저 악보를 낚아챈다. 그리고 멜로디와 가사를 확인하더니―
“프로듀서 씨……천재예요?!”
“역시 그렇지? 치하야밖에 없지?”
“이건 무조건 반드시 절대로 치하야쨩이 불러야 해요!”
흥분하여 책상을 쾅쾅 내리치며 프로듀서의 결정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이 곡은 아마미 하루카보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부르는 편이 훨씬, 훠얼씬 파괴력이 강하리라. 지금 당장이라도 듣고 싶을 정도다.
믿었던 친구의 진한 배신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고개를 숙인 채로 수줍은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무슨 노래이기에, 어떤 가사이기에 아마미 하루카마저 무조건 키사라기 치하야가 불러야 한다고 하는 것인가.
살그머니 고개를 들고 아마미 하루카를 본다. 그녀의 얼굴은 가증스러움―적어도 키사라기 치하야에게는 그렇게 보였다一으로 한껏 물들어 있었다.
“……악보, 볼게.”
가까스로 그렇게 말한 키사라기 치하야의 얼굴은, 분명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정말로 귀여운 친구라니까, 아마미 하루카는 아저씨처럼 으헤헤 웃으며 들고 있던 악보를 친구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든 키사라기 치하야는, 잠시 악보에 적힌 멜로디와 가사를 보았고, 이내―
“절대, 절대 못 불러요―!!”
―빼액, 소리를 질러버리고야 말았다.
“이, 이이, 이런…이런, 이런 부끄러운 가사를, 어떻게 불러요…!”
평소의 하얀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물든 상태로 손가락을 달달 떨며 작은 반항을 한다. 키사라기 치하야 딴에는 엄청난 반항이겠지만, 연예계라는 판에서 몇 년이고 성공적으로 굴러먹은 프로듀서에게는 정말로 사소한 반항일 뿐이었다.
“하지만 노래하는 일이잖아? 치하야가 노래하는 일을 거부하다니, 처음 있는 일인걸.”
“그, 그렇긴 해도…이건, 이건…마음을 담아서 부르기에는, 저는 이런 거 잘 모르니까요!”
“그리고 치하야는 프로잖아? 프로라면, 들어온 일은 해야지?”
“큿……!”
그렇다. 논리 면에서 그녀가 프로듀서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거기에 프로듀서는 확실한 한 방을 꽂아 넣는다.
“뭐, 치하야가 이걸 맡아 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이 악곡은 파기야.”
“…….”
치하야의 동공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프로듀서는 확실하게 보았다. 그야 그렇겠지. 노래를 사랑하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우리 가희께서는 악곡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시니까.
하지만 아직 망설임이 조금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되는데, 그 한 걸음 걷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프로듀서 아니겠는가. 그런 당연하지만 어려운 사실을 깨닫곤, 진지한 얼굴로 치하야에게 말한다.
“혹시 악곡과 라이브 관련해서 치하야가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다 들어줄 테니까.”
“……뭐든지요?”
“그래, 뭐든지. 뭐든 들어줄 테니까 어때, 이 노래 불러줄 수 있겠어?”
그의 말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잠시 으음, 하고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하아……정말이지. 프로듀서도 하루카도, 너무 짓궂잖아요.”
라고 두 명이 들으란 듯 투덜거렸지만, 키사라기 치하야가 투덜대는 것 또한 굉장히 드문 일이다. 프로듀서로서는 그녀가 예전보다 감정이 풍부해졌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아마미 하루카는 양손을 모으고 잘 먹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다.
“미안, 그래도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조금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한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하기와라 유키호가 새로운 차를 가지고 온다. 일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는 분위기였다.
네 사람의 다과회가 시작되었고, 오토나시 코토리는 여전히 설교를, 아오바 미사키는 여전히 재봉틀을 달달거리는 일상이었다.
* * * * * * * * * *
그로부터 정확하게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라이브까지 7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듀서는 굉장히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야 극장의 무대, 음향,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자잘한 일들을 최종적으로 관리 감독해야 하고, 아이돌들의 컨디션도 챙겨야 하며, 레슨은 잘 되고 있는지, 출연자들이 노래와 안무는 확실하게 숙지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특히, 키사라기 치하야의 경우에는 새로운 곡을 선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무대 위의 키사라기 치하야는 말 그대로 가희, 완벽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냥, 의례적으로 그녀의 상태를 점검하고, 간단하게 1차 리허설 정도를 해 볼 뿐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으레 일어나는 법이다.
“치하야…? 무슨 말이야, 그게.”
“프로듀서…….”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 키사라기 치하야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냥 평범한 리허설이었을 뿐인데. 앞으로 두어 번 정도는 더 해 볼, 그런 리허설일 뿐인데.
치하야 전 순서인 미우라 아즈사만이 백스테이지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중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유일한 문제라고 한다면, 가희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답지 않게 살짝 가라앉은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무대 위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몸을 떨고 있을 정도의 이유는 아니다.
“다시, 다시 한번만 해 보자. 레슨 받을 때는 잘했다고 들었어.”
“그거야, 레슨 받을 때는 프로듀서가…….”
하지만 키사라기 치하야의 작은 중얼거림을 프로듀서는 듣지 못했다. 그저 라이브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중간부터 노래를 중단해버려서야 큰 문제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하다. 평소의 키사라기 치하야라면 리허설조차 가희라는 명성에 걸맞게 노래한다. 노래를 사랑하고 노래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랬어야만 했을 터인데, 지금의 키사라기 치하야는 명백히 이상하다. 프로듀서로서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원인을 몰라서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다시 한번 노래를 하도록 말하는 것 또한 딱히 뾰족한 방도가 없기 때문이리라.
“으으…….”
그런 프로듀서의 단호한 얼굴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치하야?”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는 와중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입술을 부르르 떨며 노래를 중단했다.
아니, 중단했다기보단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괜찮아? 어디 아픈 건 아니야?”
그러니 건강 상태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치하야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묘하게 시선을 피하고 있는 것이, 뭔가 치하야에게 잘못이라도 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프로듀서, 저…….”
그러더니 이내 그 작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작게 중얼거린다. 직감적으로 지금 이 문제의 답임을 깨달았을까, 그는 천천히 치하야가 있는 무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치하야의 앞으로 걸어가 눈을 마주친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얼굴은, 그녀 스스로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것이, 무대 위의 강렬한 조명 때문이리라.
“치하야. 뭔가 어려운 점이 있으면…말해 주지 않을래?”
차분하게 말한 뒤, 키사라기 치하야의 대답을 기다린다. 잠시 입을 우물거리며 뭔가 말을 할까 고민하던 치하야는,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
“이 노래…감정을 실을 수가 없어요. 어떤 기분으로 불러야 하는지…전혀 모르겠어요.”
“…….”
그래서 멈춰버린 것이었다.
그녀 스스로조차 이해할 수 없는 노래를,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도 프로듀서로서는 해결해 줄 수 없었다.
* * * * * * * * * *
키사라기 치하야는 헤매고 있었다.
무엇을 헤매고 있었느냐면, 방향성이다.
프로듀서가 가져온 노래는 분명, 사랑에 빠진 소녀가 부를 법한 귀여운 곡이었다.
문제는 그런 귀여움을, 키사라기 치하야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귀여움이란 감정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타카츠키 야요이를 볼 때마다 얼마나 귀엽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자기 자신이 귀엽게 행동하는 것, 귀여운 목소리로 귀여운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그야 당연하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인생에서 스스로가 귀여워져야 할 필요가 있던 때가 몇 번이나 있었겠는가. 아주아주 어린 시절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다.
노래 자체를 부르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그 안에 마음을 담을 수가 없었다. 모르니까.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니까. 발렌타인 데이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은 초콜릿을 줘 본 적이 없으니까. 받아줄까 두근거리는, 그런 애달픈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였을까, 리허설 때 노래하던 도중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으으…….”
그래서, 레슨실 한 구석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모습조차 평소의 키사라기 치하야와는 아득히 떨어져 있기에, 아마미 하루카는 그런 친구가 귀엽다고 느꼈다.
그래, 키사라기 치하야는 귀엽다.
그 사실을 자기 자신만 모를 뿐이다. 아…그래, 모가미 시즈카도 아마 모를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키사라기 치하야는 존경하는 선배 그 자체니까.
아무튼, 아마미 하루카는 그런 귀여운 친구를 가만 내버려 둘만큼 착한 사람은 아니다. 헤헤 웃으며 키사라기 치하야에게 다가가, 살며시 그 뺨을 콕콕 찌른다.
“꺗……!? 하, 하루카?”
갑작스러운 기습에 깜짝 놀랐는지, 평소완 달리 하이 톤의 목소리로 귀여운 비명을 지른다. 다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것이 방금까지 어떤 고민을 했을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할 정도였다.
“치하야 쨩,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래서 아주 강하게, 직접적으로, 키사라기 치하야가 피할 수 있는 길조차 남기지 않도록 말한다.
“그, 그게…딱히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거짓말하면 안 돼, 치하야 쨩.”
“하루카…….”
키사라기 치하야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눈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이, 이 상황을 어떻게 피할까 하는 생각뿐이겠지. 하지만 아마미 하루카는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
이쪽에서 먼저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후후, 작게 웃으며 말한다.
“프로듀서 씨가 준 악곡 때문이지?”
“…….”
정곡이었으리라. 그 증거로 키사라기 치하야는 조용히 입을 닫고 아마미 하루카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고작 시선을 피한다고 해서 아마미 하루카가 아~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사람은 아니잖은가.
“치하야 쨩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니까, 고민하는 거지?”
“딱히…그런 건…….”
말은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면 고민하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대외적으로 차가워 보인다는 이미지가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키사라기 치하야를 잘 아는 사람―그러니까 아마미 하루카라거나 미우라 아즈사라거나, 그리고 프로듀서 씨―라면 그녀의 본성이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까, 그런 친구에게 아마미 하루카 또한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 고민 같은 게 있으면, 말해 줬으면 하는데, 치하야 쨩?”
“그러니까 딱히―”
키사라기 치하야의 마지막 사소한 반항에, 아마미 하루카는 속으로 웃으며 무적의 한 마디를 내뱉었다.
“치하야 쨩, 친구끼리 고민도 터놓고 하는 거잖아?”
“……하루카.”
자신을 걱정해주는 절친한 친구의 눈동자를 보니,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길 수 없는 친구다, 하루카는.
그렇다고 아마미 하루카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막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레슨실에는 그녀와 하루카 이외에도 시라이시 츠무기와 키타자와 시호, 마카베 미즈키 또한 레슨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그머니 EScape의 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자, 아마미 하루카는 눈치 빠르게도 키사라기 치하야의 저의를 깨닫는다. 후훗, 작게 웃음을 흘리더니 키사라기 치하야의 앞에서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쭉 펴며 말한다.
“으응―, 오늘따라 레슨도 힘든데…치하야 쨩,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오지 않을래?”
“……좋아.”
“그럼, 땀도 식힐 겸 옥상으로 가자!”
“앗, 하루카…?! 하루카?!”
그러더니 갑작스레 키사라기 치하야의 손을 잡고 일으킨 뒤, 빠르게 레슨실을 나선다. EScape의 세 사람 모두 그런 선배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함을 표했지만, 이내 자기들의 레슨에 다시 집중한다.
그리고 아마미 하루카와 그 손에 이끌려 나와버린 키사라기 치하야는, 레슨실을 나오자마자 눈앞에 사람이 서 있어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버렸다.
“프, 프로듀서 씨―?!”
“하루카? 그리고 치하야? 레슨 끝났구나.”
“아니에요. 잠깐 치하야쨩이랑 휴식하려고요. 헤헤…….”
“그래? 그런데 의외네. 치하야가 보컬 트레이닝 중에 휴식이라니.”
“아…….”
알고 계셨구나, 키사라기 치하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765 올스타즈 13명을 담당하던 때에 비하여 39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지금, 한 명 한 명의 레슨 스케줄까지 전부 파악하는 것은 어려울 테지만, 그런데도 키사라기 치하야의 스케줄을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프로듀서는.
물론 그가 단순히 능력이 좋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는 내심 프로듀서가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할 수 있었다. 옛날부터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전부 파악하고 챙겨주려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의 키사라기 치하야가 작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키사라기 치하야만을 위한 것은 아님을 그녀 또한 자각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니, 눈앞의 상황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프로듀서가 알고 있는 키사라기 치하야라면, 보컬 트레이닝 중에 갑작스레 휴식한다고 레슨실 밖으로 나가진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지금 프로듀서에게 악곡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야, 프로듀서가 알고 있는 부분은 외적인 부분뿐이기 때문이고, 어쩐지 그 속내까지는 이 남자에게 말하면 안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의 사고를 파악이라도 했는지, 아마미 하루카는 쿡쿡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끌고 가는 거예요. 혼자 바람 쐬러 가기에는 너무 심심하잖아요?”
“그렇구나. 그래도 치하야를 너무 마음대로 잡아두지는 말고.”
“그럼요. 그래도 이렇게 따라와 주는 치하야 쨩, 귀엽지 않나요?”
“하, 하루카……!”
갑작스러운 공격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프로듀서 역시 씨익 웃으며 ‘귀엽지’라며 짧게 답변하자, 잠시 그를 노려본 뒤에 하루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긴다.
“하루카 말대로 잠시 바람이나 쐬다 오겠습니다. 가자, 하루카.”
“앗, 아얏…치하야 쨩, 손에 힘이…아파!”
“……잘 다녀오렴.”
그런 하루카와 치하야의 모습을 보며, 언제 봐도 사이좋네, 그는 중얼거렸다.
* * * * * * * * * *
“하루카.”
“앗, 치하야 쨩, 화났어?”
765 시어터의 옥상에서, 아마미 하루카는 친구의 조금은 살기 어린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프로듀서 씨 앞에서 놀린 것이, 조금 심했으려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키사라기 치하야가 홱,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귀엽다느니, 그런 건 나랑 어울리지 않으니까….”
“…….”
바로 그런 점이 귀여운 거라고, 치하야 쨩.
하지만 이 말을 키사라기 치하야의 앞에서 했다간, 정말로 토라져 버릴 것 같았기에, 가까스로 입 밖에 내지 않고 참았다.
물론, 그 표정마저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그녀의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생각만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키사라기 치하야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하루카가 있어서 다행이야.”
“헤헤, 그런가?”
“하루카 말대로 악곡에 대한 고민인데, 프로듀서에겐 말하기 조금 그래서….”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옥상 난간으로 걸어간다. 아마미 하루카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서 난간으로 다가갔고, 두 사람은 팔을 난간에 걸친 뒤 서로를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
“나, 치하야 쨩의 고민이 뭔지 알 것 같아.”
“그래…? 뭐일 것 같아?”
“그 노래,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은…어떤 기분으로 불러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런 거.”
“그것뿐만은 아니야.”
“…거기에 프로듀서 씨가 관련되어 있다는 거.”
아마미 하루카의 말에 키사라기 치하야는 쿡쿡 웃으며 답한다.
“역시 하루카야.”
“과연. 그런 거였구나.”
하지만 키사라기 치하야의 말에 아마미 하루카는 작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런 고민을 프로듀서에게 하지 못한다는 말은…프로듀서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니까. 키사라기 치하야는 부정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미 하루카로서는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렌타인 데이, 일 년에 한 번뿐인 가장 설레는 그날, 여자아이가 이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해 주며 두근거리는 노래. 그것을 어떤 기분으로 불러야 할지 프로듀서에게 상담할 수 없다니.
가장 친한 친구임과 동시에, 가장 두려운 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미 하루카의 가장 친한 친구, 키사라기 치하야다. 그리고 하루카는 그 사실을 배신할 생각이 없다. 먼 미래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다.
게다가 가장 친한 친구와 승부를 겨뤄야 한다면, 그 승부는 정정당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치하야 쨩.”
“응, 하루카.”
“나도 그 노래, 절대로 치하야 쨩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었잖아. 프로듀서 씨처럼.”
“……그랬지.”
“그건 아마 치하야쨩이 그 노래 가사에 나오는 소녀처럼, 사랑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어.”
마치 나처럼, 그 뒷말을 아마미 하루카는 조용히 삼켰다.
하지만 하루카의 말을 들은 치하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하루카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한번 들리고 나서야 키사라기 치하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잘 모르겠어, 하루카.”
“치하야 쨩은 알고 있다고 생각해.”
“…….”
키사라기 치하야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생소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인생에서 노래를 제외하면 무엇이 얼마나 그녀의 마음속에 커다랗게 남아 있겠는가.
떠나간 가족, 화해한 가족, 765 프로덕션의 동료들, 그리고…프로듀서. 모두 키사라기 치하야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며,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발렌타인 데이의 두근거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남성은 프로듀서뿐인데, 그런 소녀틱한 사랑과는 조금 다른 부류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듀서는.
오히려 가족에 더 가까운, 그런 느낌. 초콜릿을 주며 두근거리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초콜릿 정도는 챙겨줄 수 있는 가족.
그런 키사라기 치하야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을까, 아마미 하루카는 친구의 손을 꼭 잡으며 조심스레 한 마디를 건넨다.
“정말 모르겠으면, 확인해 보는 게 어때?”
“확인…?”
“치하야 쨩이 이성적인 두근거림을 느끼는지 확인하는 거지.”
“누구한테……아니, 아니야.”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부정한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마미 하루카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버리면 안 된다. 그래서 후후 웃으며 치하야에게 말한다.
“치하야쨩은 마음에 둔 사람이 있나 봐? 발렌타인 데이에 진심 초콜릿을 주고 싶은 사람.”
“아, 아니야 하루카. 프로듀서에게 진심…초콜릿, 아, 아니야…!”
“프로듀서 씨라고 말한 적 없는데?”
“……하, 하루카!”
놀림당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가희답지 않은 히잉거리는 얼굴로 토닥토닥 하루카에게 약한 잽을 날린다.
“아무튼, 아무튼 잘 모르겠어. 어떤 느낌으로 불러야 하는지.”
“…….”
키사라기 치하야의 약한 부정에, 아마미 하루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기에서 친구가 한 걸음 나아가도록 등을 떠밀어주는 것은, 아마미 하루카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조언 한마디, 행동 하나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상대가 프로듀서 씨이기 때문에, 친한 친구를 가장 두려운 연적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옳을까,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정당당한 승부는 중요하지만, 그만큼 아마미 하루카의 감정 또한 전쟁터 한복판에 놓여 있는 것임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사라기 치하야를 제외하고서라도 당장 대놓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해도 호시이 미키부터 시작해서 비슷하게는 이부키 츠바사, 혹은 다나카 코토하나 키타자와 시호처럼…손가락으로 세어 보기만 하더라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숫자다.
그런 상황일진대, 한 명을 더 늘린다는 것은 아마미 하루카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당연히 입을 닫고 있었으리라, 키사라기 치하야가 그녀의 소중한 친구이자, 소중한 동료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모른 척하기에는 아마미 하루카라는 사람은 그리 합리적이고 냉정하지 못하다. 자기 자신의 마음만큼이나 친구의, 키사라기 치하야의 마음 또한 소중하기에, 때로는 손해 보는 행동을 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만큼 키사라기 치하야의 연심은 어찌 보면 당연했고, 얼핏 감사나 의지와 같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키사라기 치하야 스스로가 그 연심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치하야 쨩. 좋은 방법이 있는데, 한번 들어 볼래?”
그래서, 아마미 하루카는 결심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그래, 어차피 일어날 일인걸, 조금 앞당길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좋은 방법?”
“응. 치하야 쨩이 달콤한 사랑 노래에 몰입할 수 있는…그런 방법이야.”
그렇게 말한 뒤, 치하야에게 바싹 다가가 귓가에 조심스레 속삭인다. 아무도 없는 옥상이지만, 어쩐지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소곤거림에 가희가 고개를 숙였고, 그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음은 자명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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