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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27.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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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9, 2024 18:46에 작성됨.

27.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



  상단에 BGM 링크를 첨부하였으니 들으시면서 보시면 좋습니다.



  "츠무기 씨~. 언제 나올거야~."


  "..."


  "이러다가는 다~ 늦어~. 다 죽는단 말야~."


  "읏..."


  "츠무기한테 부담주려는 건 아닌데, 뭐랄까 조금 천천히 빠르게 준비해줬으면 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정말이지 옆에서 쫑알쫑알! 이게 다 당신이 늦게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늦게 될 리 없는 거지 않습니까?"


 이전에 있던 사태가 마무리되고 첫 출근 아침, 츠무기와 함께 출근 준비를 하는 중이었지만 아무래도 한 명이 사는 집 답게 둘이서 분주하게 준비하기에는 공간이 너무나도 좁았다.


  "그치만 난 준비하는데 15분 걸렸는데 츠무기는 씻는데만 30분 걸리지 않았어?"


  "다, 다, 당신이란 사람은...!! 제가 씻는 소리를 응큼하게 엿듣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이젠 기록까지 하다니...! 당신은 사람입니까!?"


  "저기, 츠무기 씨... 엿들은 적도 없고 기록한 적도 없는데요..."


  "이제야...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의 계략을...! 저를 이 집으로 데려온 건 당신이 제 모습을 보면서 즐기고 탐닉하기 위해서...!"


  "아니 내 평가가 이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거야!?"


 츠무기는 이 집에서 앞으로 쭉 살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안정화가 되고 월세 재계약도 되면 이렇게 아침에 투닥투닥대는 모습은 다신 볼 수 없을 것이다. 츠무기가 집을 다시 구해서 나가면 이제 불편함은 없을 것인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아... 당신 말대로 서둘러서 준비했습니다. 얼른 사무소로 갈 준비를... 음?"


 현관으로 준비를 마치고 걸어오던 츠무기는 이내 무언가 발견한 듯이 고개를 들어올리고 몇 초 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선 그녀는,


  "정말이지, 전부터 당신께 지적했던 것이지만, 사람의 정신 상태는 겉에 드러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양복 겉옷을 입지도 않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고 다니는 건 그렇다 치겠지만, 넥타이도 끝까지 올리지 않고 느슨하게 맨 모습은 뭐죠?"


 그렇게 넥타이를 고쳐매주기 위해 넥타이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앞까지 다가와서 넥타이를 바로 매주려는 츠무기의 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정말 웃긴 망상이지만, 영화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신혼부부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마치 츠무기와 결혼해서 같이 출근하는 것만 같은 그런 망상이.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자각하자, 쓴웃음이 절로 나오고는 스스로 되뇌었다.


  "웃긴 망상이네... 내가 그런 사치를 누릴 자격이 있을 리도 없는데... 나 같은 놈보다 더 좋은 사람이 어울리겠지, 츠무기에겐..."


  "네? 뭐라고 하셨나요?"


  "아, 아냐. 아무것도."


  "정말이지,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있던 거군요!"


  "아하하... 미안 미안. 근데 츠무기 있잖아. 왜 아까부터 계속 넥타이에 손만 올리고 있어?"


  "읏...!?"


 감상에 젖어있어 눈치채지 못한 거지만, 츠무기는 넥타이를 잡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기세등등하게 넥타이로 손을 뻗던 기백은 온데간데 없이, 넥타이에 손만 얹고는 당황한 듯이 예쁜 유리색 눈을 이리 저리 돌리는 츠무기였다.


  "그게... 읏! 당신은 손도 없습니까!? 당신이 직접 할 수 있는데 왜 저한테 넥타이 매는 걸 시키려고 하는 거죠!?"


  "아니 그러니까 너한테 시킨 적도 없잖아..."


  "됐어요! 당신이 매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영문을 모르겠지만 잔뜩 화난듯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츠무기는 들고 있는 넥타이 끝부분을 휙 내려놓음과 동시에 씩씩대며 먼저 현관을 박차고는 나가버렸다.


  "아, 츠무기! 기다려! 너 지하철 역 가는 방향 알고는 있어!?"


 아침부터 떠들썩하긴 했지만 이런 건 며칠 동안 츠무기와 함께 지내면서 그렇게 보기 어려운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 츠무기와 함께 살 수는 없다. 머지않아 집 재계약이 성사되어 이 집을 나갈 것이니까. 아마 다시 같이 살게 될 기회는 영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전도유망한 신인 아이돌, 언젠가는 누구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할 그런 아이돌과, 영세한 어느 사무소의 변변찮은 프로듀서는 그 격이 맞지 않으니까. 이런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생활은 다시는 겪지 못할 시한부 생활이다. 그래서인지, 잔뜩 성을 내며 저만치 걸어가는 츠무기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괜히 선득 마음을 시리게 했다. 지금은 마치 당연한 것과 같이 서로 지내고 있지만, 이렇게 츠무기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삶은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니까.



 얼마 후,


  "다, 다녀왔습니다..."


  "크흠... 다녀왔습니다..."


 사무실 현관을 들어서면서 츠무기와 함께 어색하게 복귀 인사를 했다. 2주 만에 돌아옴에도 그대로라는 점이 283 사무소답다면 다운 것이지만, 쉬는 날 없이 매일 출근하다가 2주 정도 '휴가' 를 보내고 돌아오니 뭔가 느낌이 어색했다. 그렇게 츠무기와 함께 쭈뼛쭈뼛하며 사무소로 들어오자, 익숙한 얼굴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인사의 말을 건넸다.


  "어야, 츠무기 쨩하고 프로듀서! 다녀왔는가? 어서 오라니께?"


  "후훗... 어서 오세요... 프로듀서 님... 츠무기 쨩..."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던 코가네와 키리코는 놀란 얼굴은 잠시, 이내 활짝 웃으며 환영 인사를 해주었고,


  "아~! 둘 다 어서 오세요~. 후후훗, 프로듀서 님~. 정말로 2주 안에 츠무기 쨩을 데려온 거군요?"


  "2주...? 프로듀서, 2주라는게 무슨 말이죠?"


 츠무기의 질문을 들은 하즈키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긋 웃고는, 모니터를 돌려서 화면을 츠무기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 떠 있는 공지를 읽은 츠무기는,


  "'시라이시 츠무기는 2주 정도 컨디션 불량을 이유로 쉽니다.' ... 이게 뭐죠, 프로듀서? 저도 모르는 저의 컨디션 불량이 있었나요?"


  "음, 그게... 사실 거짓말은 아니지. 츠무기 네가 그동안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


  "뭔가요, 당신? 제가 그때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문제는 제가 아니고 당신에게 있던 것이지 않나요?"


  "아니 그렇다고 츠무기 네가 무대 직전에 무작정 안하겠다고 하고 나가버리고서는 그 뒤로 잠적했다고 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되도 안되는 변명을 들은 츠무기는 이내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듯이 큰 목소리로 잔뜩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당신이 그런 짓만 하지 않았더라도 저는...!"


  "아니 그건 그거고 공지는 공지라고!? 그럼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정정해!?"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정신 없이 츠무기와 말다툼하는 와중에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흔히 봐왔던 것'을 보는 것처럼 다들 작게 웃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면 2주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 누구도 생각할 리 없을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마치 어긋난 시계바늘이 다시 제자리도 돌아온 것처럼 283 사무소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어쩌면, 언젠가 츠무기와 다시 다투게 될 수 있다. 언젠가 다시 사무소가 좋지 않은 분위기에 휩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금 이렇게 "있어야 하는 곳"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댄스 유행 주에 오디션을 나갈 것입니다!"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탕! 하고 내리치고는 차후 츠무기의 오디션 일정에 대해 공지했다. 그 기세에 놀란 건지, 츠무기가 댄스 유행 주에 오디션에 나갈 것이란 것에 놀란 건지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듣기만 할 뿐이었다.


  "이해 못한 듯 하니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우린 유행이 댄스일 때 그때 오디션에 나갈 것입니다. 이해 못한 분은 거수해주시고 질문을..."


  "프로듀서. 저 질문 있습니다."


  "오, 츠무기. 적극적인 자세 아주 좋아. 뭔데?"


  "예전에 들었던 당신의 계획을 되돌아보면, 오디션에서 가장 이길 가능성이 높게, 이길 수밖에 없게 한다는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뭐 그런 느낌이긴 했지."


  "그런데 댄스 유행인 주에 나간다니... 혹시 이번에도..."


  "정정당당하게 승부할거야. 츠무기 너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걸 너가 원치 않는 대로 하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렴."


 하지만 그 자신만만한 선언을 들은 하즈키 씨는 심히 걱정하는 목소리로,


  "저, 프로듀서 님~. 이번 세 번째 시즌 말에 있는 오디션에 니치카도 나갈 거란 예정에 대해 들었나요~?"


 물론 알고 있었다. 니치카는 이번 시즌 초반에 이미 오디션 1등을 해놔서 목표 팬 수를 다 채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디션을 한번 더 나간다고 하는 건 시즌 4에서 오디션 소요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서 혹시 모를 불안 요소를 더욱 배제한다는 의도일 것이리라. 그리고 오디션에 들일 노력 대신에 준결승과 결승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거란 뜻이다. 원래 츠무기도 이와 비슷하게 하려고 하긴 했었다. 근래까지 있던 일련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네, 물론 니치카도 오디션에 나올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유행 1위가 댄스, 아무리 못해도 2위일때 오디션에 나오겠죠. 아마 시즌 3의 7번째나 8번째 주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당신 역시... 이번에도 나나쿠사 씨와 대결한다, 이런 말씀이지 않습니까?"


  "응, 맞아."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츠무기는 입술을 깨물고는 진심으로 화난듯,


  "하지만 프로듀서. 이렇게 댄스 유행의 오디션에 나가는 것 자체가 당신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전엔 제가 댄스로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면서, 왜 이제 와서...! 물론 나나쿠사 씨가 댄스를 저보다 잘하는 것도 알고, 따라잡기 위해선 아직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뭐죠? 아니면 당신은 절 일부러 지게 만들고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게 하려는, 그런 나쁜 심보로...!"


 그렇게 츠무기가 정말 화난 표정을 짓고 일갈하자, 얼마 전에 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츠무기는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그리고 슬피 울며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다. 그때의 생각이 나자 갑자기 머리가 새하얘졌다. 처음부터 츠무기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준비해왔는데, 그때의 기억이 마음을 잔뜩 어지럽혀 이후의 설명을 어렵게 만들었다. 츠무기를 실망시키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츠무기를 화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츠무기를... 단지 츠무기를 웃게 만들고 싶었는데...


  "저, 프로듀서...? 계속 부르지 않았습니까, 왜, 왜 아까부터 그런 표정을 짓고..."


  "아, 아앗! 미,미안해. 음... 이를테면 이런 거야. 우리가 어느 축구팀의 감독들이라고 쳐보자. 그런데 우리의 다음 상대는 중앙 수비가 정말 튼튼한 팀이야."


 "갑자기 무슨 말을... 저는 축구를 잘 모릅니다만..."


 그래도 츠무기에게 해야 할 말은 이어서 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가 이해하기 쉽게 예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을 해주기 시작했다. 비록 츠무기가 축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쉽게 바꿔서 설명해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학교나 TV에서 하는 거 보긴 했잖아. 그러니까, 우리 상대는 중앙의 방어가 아주 튼튼해. 그럼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저 팀은 중앙이 강하니까 측면을 파고들어야 한다! 측면을 노려야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 대략 이런 식으로."


  "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당신 말대로 상대의 중앙이 강하면 반대로 측면이 약하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상대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할 거야. '우리는 중앙이 강하니까 측면만 보강하면 된다. 측면 또한 강해지면 우리는 마침내 난공불락이니까!' 그렇게 경기 중에도 자꾸 측면을 보강하려고도 하고 신경이 그 쪽에 많이 쓰이겠지. 상대방이 자신의 약점을 알고 그걸 이용하려 하니까."


  "..."


  "바로 거기서 강력했던 중앙에 약점이 생기는 거야. 우린 이번 시즌에서 상대방의 중앙을 공략할 거야. 주변의 다른 아이돌들도, 상대조차도 강점이라고 여기는 그 분야를 직접 공략할 거야."


  "말은 어느 정도 이해는 했습니다. 다만... 제가 나나쿠사 씨와 댄스 유행의 오디션에서 이길 방책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평상시에 츠무기에게 이런 기획에 대해 말해주었을 때에는 항상 무슨 계책이나 대비책을 들고 왔어서 그런지, 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있지만 내심 뒤에 큰 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그런 츠무기의 기대와는 달리 그런 거창한 것이 있지는 않았다. 단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츠무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


  "내 방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에도 말한 적 있겠지만, 이렇게 답해줄게. 장소와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내가 가진 모든 역량으로 츠무기를 옆에서 도우며 더욱 훌륭한 아이돌로 거듭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필요한 「W.I.N.G.」 에서 츠무기를 이기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 방책이야."


  "..."


  "그것을 위해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 뿐이야. 츠무기. 우리 앞엔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어. 고통과 눈물로 가득한 시련들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그 길이 아무리 험준하고 가파르더라도, 그 곳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그 길 끝에 다다를 수 없을 거야. 난 우리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그걸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너에게 무언가 요구할 자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이렇게 호소할게. 우리의 공통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츠무기 너도 수고와 땀을 주렴. 이 고된 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너의 미래를 위해."


  "프로듀서..."


 츠무기는 예쁜 유리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실, 말을 거창하게 하긴 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뛰어난 계책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기기 위한 방책은 단지 츠무기가 열심히 노력해주는 것 뿐이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한다 하더라도 이건 결국 츠무기에게 달린 일이다. 그렇게 말 없이 쳐다보는 츠무기는 이어서 눈을 가늘게 뜨면서,


  "결국엔 당신은 마땅한 계획이란 게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 고생해야 한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정말이지, 비상한 비책이 있는 줄 알고 기대했는데, 역시 당신은 바보이군요."


  "으으..."


 츠무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내 한숨을 폭 쉬었다. 그렇게 한심하다는 듯 지그시 쳐다보는 그녀는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도 왜 댄스 유행인 주의 오디션에 나가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전에는 제가 나나쿠사 씨를 댄스로 이길 수 없다고 해놓고선... 시즌 3이 마무리되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댄스 실력이 나나쿠사 씨보다 떨어지는 제가 얼마나, 어떻게 노력을 해야 이길 수 있을 지 감이 잡히지도 않습니다."


  "..."


  "저번 오디션 때도 같았습니다. 그 때에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 설명들 외에 당신이 저에게 숨긴 것들로 인해 저는 오디션 직전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그건..."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오디션 때도 당신이 하려고 했던 것들은, 비록 옳지 못하더라도 저를 위해 한 것. 어쩌면 처음 봤을 때부터도 그랬죠. 의지만 앞서고 이런 저런 실수 투성이에 믿음직스럽지 못한 그런 변변찮은 모습. 하지만 그런 행동 뒤에는 제 「W.I.N.G.」 을 비롯한 아이돌 활동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당신의 마음..."


  "..."


  "그러니, 비록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따르겠습니다. 저를 믿어주는 당신을 이번에도 믿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는 확실하다. 츠무기는 이 결정을 납득하지 못했다. 이번 「W.I.N.G.」 도전 간 츠무기는 보컬 위주로 도전하기 위해 보컬 레슨 위주를 받고 그 반대로 댄스 레슨에는 소홀했다. 「お願い!シンデレラ (부탁할게! 신데렐라)」 는 비교적 안무가 다른 곡들에 비해 쉬운 편이라 엄청난 댄스 실력을 요구하지는 않았기에 아직까지는 큰 지장이 없었으리라. 그런데 갑자기 댄스 유행일 때의 오디션에 나가서 도전을 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시즌 종료까지는 약 3주에서 4주 남짓. 준비 기간을 포함해서 대략 한 번의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오디션에서 패배하게 되면 그대로 「W.I.N.G.」 실패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니 섣부른 모험은 좋지 않을 것이다. 츠무기도 그걸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걱정이 되겠지만, 그녀는 이 결정을 따라주겠다고 했다. 승산이 낮은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츠무기."


  "네, 프로듀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실망했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믿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한번 배신한 사람이 두 번 배신하지 말라는 법은 없기에. 그럼에도 그녀는 그런 변변찮은 프로듀서를 다시 믿어주기로 했다.


  "츠무기..."


  "네..."


  "크흠. 프로듀서 님~? 그럼 이제 츠무기 쨩의 연습 스케줄을 정해야 되겠죠~?"


  "앗, 하즈키 씨! 죄송합니다. 이걸 먼저 정했어야 하는데... 츠무기, 오늘부터 댄스 연습이야.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난이도를 높여서 할 건데, 할 수 있겠니?"


  "네. 각오하던 바입니다. 저를 믿어준 만큼, 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결의를 다지는 츠무기를 보니 안심이 되었지만, 한 켠으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 넉넉잡아 3주. 한 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실패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프로듀서들도 마음이 점점 불안해질 텐데, 그걸 직접 받아들이는 아이돌들은 그 부담이 얼마나 더 클까? 아무리 차분한 성격이라 하더라도 츠무기는 아직 어린 소녀이다. 분명 느끼고 있는 중압감을 숨기고 있겠지만, 츠무기의 성장을 위해선 그런 그녀의 등을 앞으로 떠밀어줄 필요가 있을 것이리라.



 몇 시간 후...


  "하즈키 씨. 무슨 일이죠?"


  "죄송합니다, 프로듀서 님... 그게, 츠무기 쨩이 발목을 접질려서..."


  "..."


  "부상이 있기 전에도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어요. 이대로 연습을 진행하는 것도 그렇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습니까..."


 하즈키 씨의 연락을 받고 연습실로 급히 달려왔는데, 연습을 무리하게 해서 그런지 츠무기가 다친 모양이었다. 물론 하즈키 씨의 말을 들어보면 하루 이틀 쉬면 나을 부상으로 보이긴 하다만, 이런 부상이 신체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츠무기, 들어갈게?"


  "..."


 하즈키 씨에겐 정리를 하고 돌아가도 된다고 말을 한 뒤에, 연습실로 들어가서 방 한 가운데 쪼그려 앉아있는 츠무기에게 다가갔다.


  "..."


  "츠무기."


  "저는... 더 할 수 있습니다..."


 발목을 접질려서 그런지 위태롭게 일어선 츠무기는 간신히 제대로 서고는, 입술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하즈키 씨에게서 필요한 기술들을 잘 전수 받았고 안무도 계속 연습해서 숙지하면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곡의 안무는 매우 어려워서 지속적인 숙달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츠무기. 너는 지금 다쳤어. 지금 상태로 연습하는 건 불가능해. 이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 이렇게 낭비하고 있을 틈은 없습니다. 하즈키 씨도 잠깐의 휴식이 필요할 테니 몇 분 뒤에 다시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아니. 하즈키 씨에게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씀드렸고 이제 사무소로 복귀하실 준비할 거야. 그리고 이렇게 노력하는 건 헛수고야."


  "읏...! 헛수고다...!?"


 그 말이 츠무기의 역린을 건드린 것인지, 아까부터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츠무기는 화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당신, 그 말은 가만히 넘겨 들을 수 없겠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노력이 소용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게 아니라... 음... 어, 맞아. 그렇게 말했어."


  "뭐라구요!?"


 츠무기는 화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느새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채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몇 주 전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츠무기는 이렇게 진심으로 화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왜냐면 믿는 사람에게서부터 믿음을 배신당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절대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츠무기는 믿어준다고 했으니까.


  "이를테면 에너지의 방향성이란 거야. 올바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투사하지 않으면 원하는 기댓값을 얻을 수 없단 거지."


  "방향성...?"


  "음... 그래. 예전에 전쟁사를 배울 때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이거면 되겠다."


  "???"


 아까까지 어깨를 바들바들 떨면서 분노하던 츠무기는 이내 진정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이어지는 이야기를 경청했다.


  "여러 세기 전, 몽골 평원에 테무진이라는 청년이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부족에서 쫓겨난 그는 다시금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습니다."


  "..."


  "어느 날, 적대 부족이 그를 습격해서 그 청년의 아내를 납치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테무진은 불같이 분노하여 아내를 되찾기 위해 곧바로 적대 부족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해버렸습니다."


  "저런..."


  "왜냐하면 그는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말을 타고 적 부족에게 덤벼들었지만, 적대 부족은 미리 목책을 설치하고 그 곳에 궁수를 배치, 테무진을 가볍게 격퇴해버리고 맙니다."


 조용히 경청하고 있는 츠무기를 앞에 두고, 얼마 동안의 뜸을 들인 뒤에 이어서 그녀에게 뜻하고자 하는 바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츠무기의 뜨거운 열정과 뼈를 깎는 노력은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냐. 방금 말해준 이야기를 비롯한 역사와 츠무기가 살면서 겪은 일들을 떠올려 봤을 때,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


  "츠무기도 지금까지 다른 아이돌들을 봐 왔을 거야. 그중 대부분은 츠무기와 같은 열정도 있고 그만한 노력도 했었지. 그런데 왜 상당수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지도 못한 채 잊혀져 가는지 한번 생각해보렴."


  "그건..."


  "일단, 이번 주 스케줄은 휴식. 카나자와에 가서도 맘 편히 쉬지도 못했을 거니까 레슨 없이 집에 돌아가서 쉬어."


  "아니 당신은 어째서...!"


  "다친 상태에서도 댄스 레슨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렴. 하지만 만약 그러다가 츠무기가 더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니? 이대로 「W.I.N.G.」 에서 실패해도 괜찮아?"


  "읏..."


 츠무기는 휴식이라는 말에 발끈해서 화를 내려고 했지만, 그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발목을 접질린 상태에서 댄스 레슨을 하는 것은 몸에 큰 무리가 간다는 것을. 그렇게 츠무기가 반박을 하지 못하자, 그녀가 나름 납득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말을 이어나갔다.


  "츠무기. 대신에 숙제야. 아까 하즈키 씨한테 부탁했었는데, 츠무기가 방금 했던 연습 영상을 촬영해주셨을 거야. 집에서 돌려보면서 어디가 미흡한지 스스로 체크해봐. 너도 알겠지만 이번 곡의 안무는 꽤나 어려워. 그러니 보완할 곳을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수정하는 거야. 이를 테면 오답노트 같은 거야."


  "당신은 언제 그런 것까지 염두를..."


  "그리고 이건 기한이 없는 숙제인데, 아까 말했지만 단지 열정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했어. 그럼 지금처럼 어려운 장애물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될지 한번 생각해보렴. 이 정도 숙제는 괜찮지? 단지 쉬기만 하면 츠무기는 마음이 불편할 테니까 말이야."


  "네...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츠무기에겐 반드시 쉬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다른 프로듀서라면 부상에도 불구하고 연습을 더 시켰을 정도로 일정이 촉박하다. 왜냐하면 약 3주라는 시간 중에서 1주를 휴식으로 써버리는 것이니까. 남은 기간 동안 노래와 안무를 숙지하고 연습해야 하는데 만약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삐끗 했다가는 「W.I.N.G.」 의 실패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믿을 뿐이다. 부족한 여건 하에서도 츠무기가 오디션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줘야 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배신했던 사람을 다시 한번 믿어주겠다 다짐한 츠무기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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