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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23. 저를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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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6, 2023 10:39에 작성됨.

23. 저를 찾아주세요



  "프로듀서..."


  "응, 츠무기."


 얼마 동안일까, 아무 말 없이 서로 머리를 기대고 앉은 채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와중 츠무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은... 저를 정말로 좋아하나요?"


  "그야 츠무기를 정말 좋아하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그, 그런..."


 츠무기는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곤 새삼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 츠무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팔을 뻗었지만, 그녀는 갑자기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그렇다면 당신에게 하나 부탁해도 될까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츠무기가 사뭇 진지한 시선을 보내자 순간 당황했지만, 그런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츠무기가 이어서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저를 찾아주세요."


  "잠깐... 뭐!?"


 츠무기가 하는 말에 아연실색해버렸다. 아무 맥락 없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도 깨달았다.


  "앞으로 2주 안에 저를 찾아주세요."


  "잠깐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넌 그때... 그때 울면서 떠나버렸잖아. 그런데 갑자기 찾아달라니... 무엇보다 난 너에게 상처를 줬는데..."


 그 때 츠무기는 떠나버렸다. 매우 슬픈 표정을 짓고는 울면서 오디션장에서 떠나버렸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츠무기는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옆자리에 앉아있는 츠무기는,


  "기다릴 거니까요. 왜냐하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프로듀서니까요."



  상단에 BGM 링크를 첨부하였으니 들으시면서 보시면 좋습니다.



  "잠깐... 츠무기!!"


  "저... 프로듀서 님~? 괜찮나요~?"


  "읏...!! 여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무소의 책상 의자에 앉은 채였다. 아마 옆에 있는 하즈키 씨가 깨운 덕에 잠에서 깬 거겠지. 요즘 들어 매일매일 두 가지 꿈을 번갈아 꾸고 있다. 첫 번째 꿈은 츠무기와 한적한 공원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 그녀에게 고백하는 내용이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 츠무기를 이성으로 바라보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프로듀서라니, 말도 안된다. 설령 츠무기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모진 말을 하여 상처를 입힌 주제에 그런 좋아한다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게 되면...


  '프로듀서. 전 이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싫습니다.'


 거절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싫다고 하며 거절할 것이 분명한데 굳이 그런 츠무기에게 좋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녀에게 민폐일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


  "그래도... 츠무기를 꿈에서나마 볼 수 있어서 좋은 건가."


 그나마 이 꿈은 괜찮다. 두 번째 꿈에 비하면 말이다. 왜냐면 두 번째 꿈은...


  "프로듀서 님~? 사장님께서 부르세요~."


  "앗, 네! 지금 가겠습니다."


 꿈에서 깬 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하즈키 씨가 불러준 덕에 다시 현실감을 되찾았다. 사장님이 부른다니... 올 것이 왔다. 아직 정식 보고는 드리지 않았지만 아마 대략적인 내용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부른다는 건 그 잘못에 대한 처분을 내리겠다는 것이리라. 당분간 프로듀서 일 대신 하즈키 씨처럼 전반적인 사무를 거들거나, 어쩌면 해고될 수도 있겠지.


  "그럼, 가볼까..."


 사장실로 들어가기 전에, SNS에 올릴 공지글을 마지막으로 검토했다. 오디션장에 있던 츠무기의 팬들을 비롯한 관객들과, 츠무기가 오디션 무대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에둘러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줄 수 없지만 말이다. 공지글을 업로드하고 나서 내용이 잘 나와있는 것을 확인하고 사장실로 가기 위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일어난 뒤 사장실로 가기 전,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공지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시라이시 츠무기는 2주 정도 컨디션 불량을 이유로 쉽니다.'


 공지를 다시 읽자 마음 한 켠이 더 무거워졌다. 이젠 츠무기의 팬들까지 속이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했던 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것이 지금까지 있던 일들의 경위입니다..."


  "..."


 사장님은 뒤돌아선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사장님은 보고를 받는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듣고 있었기에 이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옆으로 얼핏 보이던 거지만, 사장님은 보고를 듣는 내내 무언가를 들고 지긋이 보고 있었다. 이어서 사장님은 몸을 돌려 의자에 앉고는 보고를 들으며 생긴 의문점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SNS에 시라이시 군이 2주 간 쉰다는 공지를 올렸는데, 굳이 2주인 이유는 무엇이지?"


  "2주가 지나도록 츠무기가 돌아오지 않으면, 「W.I.N.G.」 진행이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갑작스레 쉬게 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게 되면 팬들이 오해할 수 있기에 최소한의 기간을 산정했습니다."


  "이후로 시라이시 군과 연락은 닿고 있나?"


  "...전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이지?"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들은 사장님은 들고 있던 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한참 전에 사장님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것은 사장실에 꽤 오랫동안 있던 LP판인 것을 알아보았다. 아마 사장님에게 중요한 물건이겠지만, 그것이 사장님께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에 자네에게 말한 적이 있지. '아이돌은 옷 갈아입히기 인형이 아니다' 라고."


  "예, 그때 츠무기의 첫 오디션이 있던 날 말씀해주셨었던..."


 전에 츠무기의 첫 번째 공연이 있던 날, 사장님이 말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돌은 옷 갈아입히기 인형이 아니다' 라고 하며 명심하라고 했었다. 아직까지 그 말의 의미는 잘 알지 못하지만.


  "자네, 성과는 언제 낼 것인가?"


  "...에?"


 갑자기 사장님이 뜬금없이 성과에 대해 물어보자, 이는 예상치 못한 내용이기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장님은 이런 성과와 매출에 집착하여 아이돌이나 프로듀서에게 질타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과에 대해 물어보는 말의 의미를 이해 못하고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해 당황하자 사장님은 이어서 말했다.


  "애초에, 성과란 무엇이지?"


  "..."


 사장님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LP판을 다시 들고는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렇게 사장님이 보고 있는 LP판엔 뭔가 사연이 담긴 듯 했다. 표지의 겉면을 보면 어느 가수나 아이돌의 앨범인 듯 했다. 하지만 멀찍이서 유추할 수 있는 건 그 뿐, 그 이상의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자네에게 실망했네."


  "..."


  "자네에게 자율성을 준 것은 담당하는 아이돌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네가 추구하는 바를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었네. 이건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거고."


 어쩌면 지금까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대형 사무소와는 다르게 아마이 사장님은 프로듀서들과 아이돌에게 간섭을 최대한 하지 않는다. 믿고 맡기기 때문에 그렇게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간섭을 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너무 멋대로 해버린 건 아닐까...


  "아이돌을 프로듀서 자신이 이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 하나의 도구로 여기는 사람은 우리 사무소에 필요 없네."


 하나의 도구라... 츠무기를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츠무기를 단지 「W.I.N.G.」 에서 이기기 위해 쓰는 도구라고 여긴 적은 절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떨까. 자신이 담당하는 아이돌에게 폭언을 할 뿐더러 다른 아이돌, 그것도 같은 사무소에 있는 마음이 약한 아이돌을 훼방해 인생을 망쳐버릴 짓거리를 하는 프로듀서는 그런 악성 프로듀서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사장님도 그 사실을 깨닫고는 이제 해고를 할 것이다. 자신의 사무소에 있는 아주 귀중한 재능을 가진 아이돌에게 상처를 줘버려 그녀를 떠나게 만들어버리는 못난 프로듀서는, 그 어떤 사무소의 사장이 와도 내쫓아버릴 것이 분명하니까.


  '그래... 아직 사표를 다 못쓰긴 했었지. 잘리기 전에 먼저 사표를 내고 싶었는데... 조금 더 일찍 써둘걸 그랬나.'


 이렇게 될 줄 알고 며칠 전부터 사표를 미리 쓰고 있었다. 만약 츠무기가 돌아오면 그대로 세절해버릴 예정이었지만... 언젠가는 츠무기가 돌아오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이 순간까지 와버렸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장님은 그 다음 대사를 말했다.


  "자네에게 2주 주겠네. 시라이시 군을 다시 사무소에 데려오게."


  "예... 네!?"


 누가 봐도 해고할 것만 같은 흐름이었지만 사장님은 해고 대신에 2주 간의 유예를 주었다. 사장님의 말에 아연실색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자네 멋대로 시라이시 군의 팬들에게 약속하지 않았는가. 시라이시 군은 2주 동안 휴식한다고. 그 말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하, 하지만 츠무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설령 어디 있는지 알더라도 설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래도 자네가 어느 정도 수완이 좋다고 여긴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주게. 그리고 말이네. 자네가 시라이시 군에게 아이돌을 하게 설득하지 않았었나? 그럼 이번에도 아이돌을 다시 하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츠무기는 분명..."


 츠무기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울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녀를 다시 설득한다? 절대 불가능하다. 가장 믿고 따르는 이에게 당한 배신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모르는지,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본심을 시라이시 군에게 보여주면 아마 다시 자네를 믿고 따라올 것일세. 왜냐하면 시라이시 군은 자네를... 아니네. 이건 다른 이가 대신 해줄 말이 아니니까."


 사장님은 그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곤 책장에 본인이 들고 있던 LP판을 다시 끼워넣었다. 책장 앞에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서있었을까, 사장님은 이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나가봐도 좋네. 그리고... 시라이시 군을 반드시 다시 데려오게."


  "예... 알겠습니다..."



 사장실 문을 나선 뒤,


  "후..."


 가슴이 꽉 막혀왔다. 아무 빛이 없는 터널을 손의 감각만을 의지하여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실마리라도 보였으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누구라도 괜찮으니까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을 알려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절망하여 사장실 앞에 고개를 떨구고 있자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프로듀서... 님..."


 그렇게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소파에 어느 여자아이가 기모노를 입고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츠무... 기...?"


 꽤 예전 일이 떠올랐다. 카나자와에서 츠무기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카가유젠, 그러니까 카나자와의 기모노를 입고 있었지. 시간이 지나도 그때 그녀의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런 츠무기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지만...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츠무기가 다시 이 사무소에 돌아올 일도 없을 것이고.


  "...일 리가 없지. 모리노 양, 안녕하십니까?"


  "안녕... 하시옵니까... 프로듀서... 님..."


 모리노 린제 양은 소파에서 일어난 뒤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모리노 양은 가끔 방송국 등지에서 마주칠 때마다 기모노를 입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진짜 야마토 나데시코가 맞구나, 싶었다. 츠무기도 한 전통 하지만 그래도 평상시에는 원피스를 주로 입지, 기모노 등의 전통 의상을 입진 않으니 말이다.


  "모리노 양을 사무소에서 뵙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 달 프로젝트 루미너스 활동은 우리 283 아이돌들 위주가 아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습니까?"


  "예... 그렇사옵니다... 프로듀서 님... 마침... 사무소에... 용무가 있어서..."


  "그렇군요..."


 모리노 양을 보니까 아쉬운 마음이 잔뜩 들었다. 츠무기와 모리노 양에는 공통 분모가 많아서 둘이 같이 영업을 하거나 어쩌면 같은 무대에 오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지만... 그렇게 아쉬운 마음에 쓴웃음을 짓자 이어 현관으로 다른 아이돌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라... 린제 쨩...?"


  "뭐여, 린제 아녀? 뭔 일이당가, 사무소까지 다 오고?"


 키리코와 코가네가 사무소로 들어오자 거실에 활기가 더욱 돌았다. 아무래도 모리노 양이 오랜만에 사무소로 와서 그런지 이 두 아이돌은 린제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후훗... 두 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그런 모리노 양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나름 반가운지, 모리노 양의 무표정한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세 아이돌들이 즐겁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듯 했다. 츠무기가 없어진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지는 아직 감도 잡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계속 우울한 채로 있어서는 안되지 않은가. 마침 기분을 전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세 아이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린제는 그간 우째 지냈나? 프로젝트 루미너스 활동은 잘 하고 있간디?"


  "예... 765 분들과... 다른 사무소의 분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기에..."


  "후훗... 린제 쨩... 다행이야..."


 모리노 양이 파견간 곳에서 잘 지낸다는 건 정말로 다행이지만, 한 켠에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런 대형 프로덕션에서의 활동이 익숙해지고 나서, 프로젝트 루미너스가 끝난 뒤에 다시 283에 복귀하게 되면 작디 작은 우리 사무소에 실망하게 되진 않을까... 그런 큰 사무소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리곤 다른 곳으로 이적해버릴 수도 있을 수 있단 염려가 들었다. 그렇기에, 작게 미소를 짓고 있는 모리노 양에게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저, 모리노 양. 우리 283같은 작은 사무소보다 그런 대형 사무소가 할 수 있는 것들도 더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차마 그 뒤는 말할 수 없어 말끝을 흐렸지만 모리노 양은 그 뜻을 대강 유추한 듯 했다. 모리노 양은 무표정한 얼굴로 얼마 동안 지그시 위를 올려다보다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린제에겐... 프로듀서 님이..."


  "린제 쨩..."


  "맞네, 린제는 선배 프로듀서를 좋아하니께 말여."


 그러고 보니, 모리노 양은 선배 프로듀서를 많이 좋아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무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모리노 양이 사무소에 없을 때가 더 많아 선배 프로듀서와 모리노 양이 같이 있는 경우를 잘 보지는 못했다. 허나, 직접 볼 기회는 없었어도 주변인들이 말해주는 것을 들어보면 모리노 양이 선배 프로듀서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모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든 의문이, 모리노 양은 283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전에 얼핏 들은 바로는 유서 깊은 가문에서 자랐다는데, 그렇게 야마토 나데시코로 자란 아이가 쉽게 아이돌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 선배 프로듀서가 모리노 양을 잘 스카웃해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모리노 양도 선배 프로듀서 님이 스카웃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때 스카웃 제의를 받으셨을 때 그걸 받아들인 계기라도 있습니까?"


 그 말을 듣자 모리노 양은 아주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는 듯 두 눈을 감고 그 무표정한 얼굴에 미세한 미소를 띄우며 선배 프로듀서와 처음 만나던 일화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예전에... 길을 걷던 와중... 나막신의 끈이 끊어져 곤혹을 치르고 있을 때... 프로듀서 님께서... 손수 고쳐주시고는... 린제에게 아이돌을... 해보지 않겠냐고... 그때... 린제는... 다짐했습니다... 프로듀서 님을... 평생 따르겠다고..."


  "에엣... 아이돌이 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 한마디로 자신이 자라온 곳을 떠나고 프로듀서 한 명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입니까? 그거 정말로 대단하긴 하군요. 모리노 양을 제외하곤 제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 자, 잠깐... 왜 다들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겁니까!?"


 모리노 양이 해주는 이야기가 꽤 놀라워서 그 배경을 듣고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말하자 모리노 양을 제외한 두 아이돌과 옆에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는 하즈키 씨도 뭔가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 듯 지그시 쳐다보았다. 윽... 무슨 큰 말 실수라도 한 것인가? 요즘 들어 그런 발언들을 더욱 조심하고 있었는데... 여러 명의 시선이 부담스럽기에 애써 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며,


  "크흠... 모리노 양이 선배 프로듀서 님을 처음 본 날부터 이렇게 따르시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 정도의 정성이면 선배 프로듀서 님도 모리노 양을 잘 대해주고 이해해주지 않습니까?"


  "예... 프로듀서 님은... 린제를 잘 이해해주시며... 항상 린제에게 따뜻한 말씀을... 자주 해주십니다... 다만..."


  "다만?"


 다만, 이라는 말을 뒤로 모리노 양은 무표정한 얼굴을 지은 채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분명 무표정한 얼굴의 모리노 양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모리노 양의 애달픈 감정이 조금씩 전해졌다.


  "다만... 린제의 마음이... 때때로 전해지지 않는 듯 하여..."


  "에?"


  "전에 수족관에... 갔을 때도... 린제를 혼자 두고서는 떠나버리시고..."


  "잠깐... 예? 혼자 두고서는?"


  "사진 촬영을 하러 갔을 때에도... 그때 프로듀서 님께선... 사진도... 안돼... 선물도... 안돼..."


  "저, 모리노 양...?"


  "이것이 전부 린제가 제대로 하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이겠지요..."


  "아, 아무래도 모리노 양이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모리노 양은 그동안 선배 프로듀서에게 맺힌 것들이 조금 있었는지, 자신을 부르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선배 프로듀서가 했던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리노 양이 측은하기도 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선배 프로듀서가 조금 못마땅해졌다. 아이돌이 이 정도로 사모하는 마음을 지닌 채 일편단심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걸 알아봐주지 못하는 것 아닌가?


  "선배 프로듀서 님은 어떻게 이리도 둔감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담당하는 아이돌이 이렇게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표현하는데, 바보 아닙니까? 아니, 이 정도면 이 악물고 모르는 척하는 거지 않습니까? 정말이지, 선배 프로듀서 님은..."


 그렇게 모리노 양의 마음을 몰라봐주는 선배 프로듀서의 둔감함을 가지고 뭐라 하자, 모리노 양을 제외한 세 명이 다시 이 쪽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윽, 제가 무슨 말 실수 한 것입니까? 아니, 하즈키 씨는 왜 또 한숨을 쉬시는 것입니까!? 그 한심한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은 뭐죠!?"


 하즈키 씨처럼 대놓고 한숨을 쉬진 않았지만, 키리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고 코가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정말이지... 둔감한 건 프로듀서도 마찬가지 아니당가? 그런 프로듀서가 할 말인감?"


  "에에!? 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둔감하다는게."


 여기 있는 세 명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어서 의문을 표하자, 모리노 양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렵습니다, 프로듀서 님...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네?"


  "좀처럼... 쉽게 들리는 것은... 아닌 것이군요..."


  "..."


  "프로듀서 님은... 이전에... 누군가를 사모해보신 적이... 있으시옵니까...?"


  "에...? 저 말입니까? 갑자기?"


  "후훗..."


 모리노 양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이어 뜬금없이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모리노 양의 말을 뒤로 다른 아이돌들과 하즈키 씨는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첫사랑 이야기를 풀어주는 학교 선생님을 보는 것처럼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윽... 갑자기 누군가를 좋아해본 이야기라니... 네 명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그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지금까지 딱히 누군가를 좋아했다,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누군가를... 사모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옵니까?"


 네 명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대부분의 경우 말이 안되니까. 다 큰 어른이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 그 누가 믿어줄까?


  "그야... 학생 때는 공부만 했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일하는 곳에서 여성 분이 거의 없다 보니 딱히 그런 감정을 품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딱히 밖에서 누군가를 만날 생각 해본 적도 없고..."


  "에에~ 프로듀서~. 그라믄 좋아하는 감정이 무언지 잘 모르는 거 아니당가? 누구 좋아해도 좋아하는 감정인지 모르겄네?"


  "뭐 그야 그럴 수도...? 근데 모리노 양처럼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순간 바로 알게 되는 거 아냐? '아, 나는 이 사람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 뭔가 이렇게 말야."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키리코는 그 말을 듣자 쓴웃음을 지으며,


  "프로듀서 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거에요..."


  "에? 그럼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데?"


  "다른 분들은... 아마 프로듀서 님처럼... 자신도 모르게... 후훗...!"


  "??"


 영문을 모르겠는 말을 하며 키리코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뭐가 웃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키리코를 두고 모리노 양은 이어서 질문했다.


  "만약... 사무소의 어느 아이돌이... 프로듀서 님을 사모한다 하면... 어떻게 하실 것이옵니까...?"


 사실, 모리노 양이 한 질문은 꽤나 민감한 질문이다. 사람들이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아이돌들은 대부분 연애 금지 조항이 적용된다. 열애설이 도는 것만으로 은퇴하는 아이돌도 있을 정도로 팬들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아이돌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같은 회사의 프로듀서나 다른 연예인들과 몰래 사귀는 아이돌들도 꽤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자주 접할 기회가 많고 하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만... 그래도 아이돌과 프로듀서가 사귀게 된다면 결국 좋지 않은 결말로 치닫을 것이다. 열애가 발각된 실제 케이스들을 봐도, 대부분 아이돌과 프로듀서 둘 다 파국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제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애초에 여기의 아이돌이 저를 좋아해줄 이유가 있습니까? 업계에 다른 멋진 남자 아이돌들도 많은데 굳이 저를? 그것도 그렇고, 프로듀서가 자신이 담당하는 아이돌을 여자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앗!"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말하던 도중, 이것이 말 실수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당장 선배 프로듀서를 좋아하는 모리노 양에게 이 말을 곧이곧대로 하는 것 자체가 모리노 양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는 것이기에. 단 한 명을 일편단심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그 사랑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설령 그 말에 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하면 안되는 말이다. 경솔한 발언을 사과하기 위해 무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는 모리노 양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그, 모리노 양.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나비가 꽃에 이끌림은... 자연의 섭리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쉽사리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네?"


  "그것은... 츠무기 씨도... 프로듀서 님도... 아마 같을 것... 이옵니다..."


 모리노 양은 다행히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 자격이... 있는 것이옵니까...?"


  "그야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니... 프로듀서 님도... 언젠가... 본인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


 왜 주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마치 츠무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는 조언인 것 마냥... 속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모진 말을 하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바보 멍청이가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 변변찮은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할 자격조차 없다. 왜냐하면... 그 아이를 상처 입히고 울게 만든 주제에, 뜬금없이 '사실 지금까지 난 너를 좋아했어' 라고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설령 그런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 아이는 그 바보 멍청이를 이미 싫어하게 되어 그에게 거절을 하거나, 어쩌면 뺨을 때릴 것이다. 당연한 결말이다.


  '뭐...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 자격이 있을 수도 있겠네...'


 그렇게 한숨을 쉬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던 와중, 밖에서 누가 문에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나가요~."


 하즈키 씨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천천히 현관으로 걸어갔다. 이 시간대에 누가 방문할 리는 없다. 츠무기일 리는 더더욱 없고. 그럼 아마 택배가 온 것일까.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하즈키 씨는 무언가를 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프로듀서 님~. 프로듀서 님 앞으로 택배가 왔어요~."


  "네? 사무소로 택배 오게 한 건 없는데요?"


  "어디보자~. 여기 발신인이~ '시라이시 츠무기' 라고 적혀있...네요...?"


 하즈키 씨의 말을 듣자, 마음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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