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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Alt. Ending 1. 난 이 세상에서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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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5, 2023 10:58에 작성됨.

Alternative Ending 1. 난 이 세상에서 네가



 1번 링크의 BGM을 먼저 들으시면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시라이시 츠무기 10화를 먼저 보시고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으음... 무심코 잠들었나. 아니 잠깐, 대체 왜 여기서 자고 있던 거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불이 꺼진 사무소의 책상 위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 팔을 베개 삼아 깔고 자서 그런지 저린 양 팔을 스트레칭하고 현재 시간을 보기 위해 앞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이 몇 시지... 엣, 22시!? 빨리 정리하고 퇴근해야겠다..."


 츠무기의 「W.I.N.G.」 도전에 만반을 갖추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가 무심코 졸아버린 것 같았다. 요즘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개인 시간도 없고 주말도 없이 일하지만, 어째서인지 짜증나기는커녕 즐거웠다. 물론 쉬는 시간이 거의 없어 언제나 피곤하지만, 사장님, 하즈키 씨, 그리고 무엇보다 츠무기가 열심히 노력해주는 와중에 우는 소리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같은 목표를 위해 정진해나가는 동료들이 실망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내가 불을 껐었나? 나 아직 여기 있는데 누가 불을 끈 거지? 창문도 열어 놓은 적이 없는데 왜..."


 공기가 쌀쌀해서 뒤를 돌아보니 창문이 열려있는 채로 밖의 찬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사무소의 공기는 바깥처럼 청량했지만 그만큼 안의 공기가 꽤 추웠다. 그렇게 뒷 창문을 확인하고 앞을 돌아보며,


  "꽤 춥구만. 이제 난방 땔 때가 온 건... 으, 으왓!"


  "프로듀서... 님..."


 시선을 앞으로 돌리니 어두운 거실에 홀로 키리코가 서 있었다. 분명 아까까진 없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앞에서 무표정인 채로 이 쪽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불이 꺼져 있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키리코의 눈은 한없이 어두워 보였다.


  "일어... 나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엣, 그, 무, 뭐야. 키리코잖아. 근데 무슨 말이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후훗... 프로듀서 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사무소엔 하즈키 씨, 키리코, 츠무기가 있었을 거다. 다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하즈키 씨는 퇴근했을 것이다. 츠무기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갔겠지? 다만 마지막으로 남은 게 키리코이니 키리코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나을 것이다.


  "그, 키리코! 혹시 나머지 분들은 다 퇴근했니? 아까 하즈키 씨하고 츠무기도 있었잖아. 다 집에 돌아간거야?"


  "후후훗... 프로듀서 님... 츠무기 쨩은 한 시간 전부터 부엌에 있답니다..."


  "그, 그래? 하하, 22시인데 야식이나 먹는 거야? 츠, 츠무기 이 녀석, 한 소리 해야겠구만!"


  "후훗... 후후훗!"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빛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 보이는 키리코의 눈을 봐서인지, 아니면 평소와는 다르게 음산해 보이는 사무소의 광경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부엌으로 따라 들어가자 키리코는 뒤에서 지그시 쳐다보며 인자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이상하게 사무소의 모든 불이 다 꺼져 있었는데 부엌만 불이 켜져 있었다.


  "저기 그, 키리코? 여기 부엌에는 아무도 없지 않아? 아무래도 키리코가 착각한 건 아닐..."


 그러자 키리코는 무표정한 얼굴로 옆에 서서 대답했다.


  "프로듀서 님... 츠무기 쨩은... 한 시간 전부터... 부엌에 있답니다?"


  "아니, 여기엔 지금 키리코 너하고 나밖에..."


 갑자기 구석에 쳐박혀 있는 대형 쓰레기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안에는 온갖 음식, 식재료, 음료수 들이 들어 있었다. 잘 보니 냉장고 안에 넣어둔 것들인데, 갑자기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을 왜 버린 거지? 무언가 큰 물건을 냉장고 안에 넣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굳이 이렇게 안의 것들을 밖으로 뺄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


 순간 머릿속에 말도 안되는 상상이 들었다. 설마 츠무기가 부엌에 있다는 게... 말도 안되는 웃기는 상상이다. 이 사무소에서 그런 짓거리를 할 사람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것이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 머리는 이 상상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왠지 모르게 손은 냉장고 손잡이를 잡고 열어버렸다.


  "아하하, 서, 설마 냉장고 안에... 으, 으아아아아!"


 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다. 츠무기는 웅크린 채로 손과 발이 붕대로 묶여 불편하게 몸을 웅크린 채로 냉장고 안에 들어 있었다. 그렇게 아연실색한 채로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 있자,


  "읍... 으읍..."


 츠무기는 정신이 든 것인지 눈을 천천히 열고는 힘 없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붕대로 입이 막혀있어 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츠무기는 평소에 입고 다니는 얇은 원피스 차림이라 냉장고 안에서 추운 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츠무기를 보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여 그녀를 꺼내려고 손을 뻗었다.


  "츠무기! 바로 꺼내줄 테니..."


 철컥, 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순간 오금이 저리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는 것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소리이다. 이 소리는...


  "프로듀서 님... 미안해요..."


  "아니... 그런데 어떻게..."


 옆을 돌아보니 키리코는 츠무기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순간 사고가 정지해버렸다. 도저히 납득이 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키리코가 든 권총을 보니 예전에 적성 장비 교육 때 봤던 것과 같았다. 공작원이나 야쿠자가 쓴다는 마카로프 권총. 그 권총을 키리코가 츠무기에게 겨누었다.


  "키, 키리코, 너 대체..."


  "미안해요 프로듀서 님... 더 이상 기다리고 지켜볼 수 없어서..."


  "...뭐?"


  "츠무기 쨩이... 전부터 프로듀서 님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어요..."


  "..."


 그럴 리 없다. 키리코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 차라리 다른 사무소의 멋진 남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으리라. 키리코는 분명 츠무기의 무언가를 보고 그렇게 결론을 지었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저번에 사무소 옥상에서... 프로듀서 님이 츠무기 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때 깨달아버렸어요... 프로듀서 님도... 츠무기 쨩을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키리코..."


  "그렇게 프로듀서 님을 츠무기 쨩에게 뺏겨버린다는 생각을 하니까... 결국 이렇게... 조급해져서..."


 그 말을 듣자 아연실색해버렸다. 불안정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망가져 있었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지어주는 잔잔한 미소 뒤에 이런 면이 숨겨져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무표정한 표정을 지은 채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키리코를 보자 점점 공포감이 커져갔다. 어쩌면, 츠무기가 떨고 있던 것도 그런 키리코가 두려워서인가...


  "미안해요... 프로듀서 님... 그래도 이건... 전부 프로듀서 님이... 나쁜 거니까요..."


 키리코는 권총을 다시 제대로 쥐고 츠무기에게 겨눴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지 않을 거에요... 프로듀서 님... 이제 확실하게 정하세요... 저에요... 아니면 츠무기 쨩이에요...?"


 아무것도 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목숨, 그것도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도저히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다면 키리코는 츠무기를 살해해버리고 말 것이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미안, 키리코. 네 마음엔 답해줄 수 없어. 나는 츠무기 말고는 없으니까."


  "어째서..."


 키리코는 고개를 떨구고 권총을 든 팔을 내렸다. 그렇게 힘이 없는 채로 키리코는 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미안. 키리코도 예쁘고 착하고 좋은 아이지만, 나는 츠무기가 없으면 안돼. 그 누가 와도 츠무기를 대신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약속했거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츠무기를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말야."


 그렇게 말하며 냉장고 안에 묶여있는 츠무기를 돌아보자 그녀의 눈이 별안간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어 츠무기의 아름다운 유리색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읍... 흡..."


 키리코에겐 미안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당장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는 있겠지. 츠무기를 저버리고 키리코를 선택하겠다고. 그러나 만약 그런다면 그 죄책감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로울 것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그런 죄책감 하나 때문에 츠무기를 이대로 죽게 둘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츠무기를 구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안해. 하지만 잘못한 건 나야. 염치없는 건 알지만 츠무기를 그대로 놔주렴. 그래도 화가 안 풀린다면 나를 쏴. 내가 잘못했으니까."


  "..."


 고개를 떨군 키리코는 얼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가, 이내 입을 열고는 말했다.


  "프로듀서... 님은... 츠무기 쨩이... 있어서... 제가 안된다는... 거군요..."


  "미안, 키리코. 하지만 키리코가 아닌 그 누가 와도 같은 답을 했을 거야. 그러니 간곡히 부탁하니..."


  "읏..."


 키리코는 내리고 있던 권총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런 키리코에게,


  "그래. 나를 쏴. 내가 잘못한 거니 나를 쏘렴, 키리..."


  탕!


  "코..."


 매캐한 화약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순간 사고가 정지하여 머리는 방금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머리를 뒤로 하고 키리코는 권총탄을 냉장고 안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츠... 무..."


 그제서야 머리는 방금 일어난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마음은 전혀 그럴 준비가 되지 못했다.


  "프로듀서 님..."


  "츠무... 기..."


 삐- 하고 귀에서 울리는 이명 때문인지, 아니면 도저히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때문인지 몰라도 옆에서 말을 거는 키리코에게 신경을 써줄 수가 없었다.


  "츠무기... 내... 소중한..."


 냉장고 안은 빨간색 잉크 카트리지를 터뜨린 것마냥 내벽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냉장고의 내부를 붉게 물들인 것은 이내 흘러내리고는 부엌에 있는 이들의 발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가 발을 적시며 웅덩이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있자 그제서야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으, 츠무기...! 어째서...!"


  "프로듀서... 님..."


 키리코는 들고 있는 권총을 내리고는 다가오며 말했다. 총기를 잃은 어두운 눈으로 가만히 응시하던 키리코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이젠... 저밖에... 없답니다..."


  "안돼... 츠무기... 읏, 너가 없으면 나는..."


  "프로듀서... 님..."


  "츠무기... 난... 너를..."


 어느새 키리코는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 앞에 서서 가만히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츠무기... 쨩도 없으니까... 저만... 바라봐줄... 거죠?"



 2번 링크의 BGM을 들으시면서 보시면 좋습니다.


  "츠무기... 내... 소중한..."


  "...!! 당신... 바, 방금 뭐라고...!?"


  "츠무기... 읏, 너가 없으면... 나는..."


  "!?"


  "츠무기... 난... 너를..."


  "읏! 빠, 빨리, 얼른 일어나세요!!"


  "우와아앗!! 아니 뭐 하는 거야!!"


 어깨를 밀리는 감촉에 정신이 들기도 전에 의자가 옆으로 넘어지면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꿈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현실과 꿈이 혼동되어 정신이 없는 와중, 츠무기가 날카롭게 내지르는 말에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당신이 잠꼬대로 이...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런 말을 하니까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애초에 당신은 여기 앉아있는 것 말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 시간대부터 자고 있는 것입니까!"


  "아, 맞다... 그렇지..."


 눈에 들어오는 병실 풍경을 보니 현실로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최근에 한 영업 때 츠무기가 산에서 조난을 당하고, 그 때 입은 부상으로 츠무기는 병원에 입원을 했었지... 어제는 휠체어를 가지고 한 장난 때문에 간호사에게도 엄청 혼났었다.


  "정말이지, 멍하니 앉아있지만 말고 이제 갈 준비하세요!"


  "아, 응..."


 그러고 보니 오늘이 츠무기의 퇴원 날이었다. 옷은 하즈키 씨가 츠무기의 자취방에서 가져온 덕에 츠무기는 환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다. 사복 차림의 츠무기는 가끔 들고 다니는 캐리어를 옆에 세워두고 있었는데, 그럼 짐 정리는 다 했을 터였다.


  "그래, 돌아가자. 우리 사무소로."



 얼마 후, 병원 지하 주차장에서,


  "자, 트렁크에 짐 넣었으니까 이제 슬슬... 음..."


  "??"


 아까부터 온갖 생각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층도 잘못 누르고, 주차 위치도 기억 못해서 헤매고... 그런 모습을 본 츠무기는 뭔가 의아해하였다.


  "프로듀서, 괜찮나요? 역시 당신, 어제부터 뭔가..."


  "츠무기. 어제 산책했던 곳 다시 가지 않을래? 오늘 한 번 더 가보고 싶은데."


 갑자기 어제 산책했던 곳이 머리에 떠올랐다. 휠체어 소동 이후에 츠무기와 함께 병원 주변의 산책로를 걸었었는데, 그 곳을 다시 츠무기와 가고 싶었다.


  "하아... 당신, 그 산책로는 어제 이미 갔었는데 오늘 또 말입니까?"


  "츠무기, 부탁이야.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 말을 들은 츠무기의 양 볼이 새빨개지더니,


  "그...! 당신의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래! 가자!"


  "읏... 하고 싶은 말이라니... 대체..."


 뒤따라오는 츠무기는 뭔가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그녀가 뭐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여기 산책로는 분위기가 좋아.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오니 느긋하게 산책하기는 좋은 곳이야."


  "그, 그렇습니까..."


 산책로를 조금 거닐다가 몇 분 지나지 않아 옆에 설치된 벤치에 츠무기와 앉았다. 그렇게 앉고 나서 아무 말 없이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슬슬 해도 지고 있어 주변 풍경도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것을 보니 곧 있으면 저녁 시간일 듯 했다.


  "으음... 역시, 이 곳의 경치는 좋군요. 경치만 아니라 여기 앉아서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와 기분이 좋습니다."


 옆을 돌아보니 츠무기는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서 그런지 흩날리는 머리칼을 정돈하고는 어깨 너머로 쓸어 넘겼다. 천천히 지고 있는 노을의 노란 빛의 그녀의 은발에 반사되며 츠무기의 신비로움을 한 층 더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 무심코 이런 말이 나와버렸다.


  "예쁘네..."


 그러자 츠무기는 양 볼을 살짝 빨갛게 물들인 채 손가락을 들고 삿대질을 하며,


  "핫...! 다, 당신, 방금 한 말은 뭔가요!? 말 앞에 저 노을이 예쁘다고 말을 붙여야지, 또 조심성 없이 제가 오해할 만하게 말을 하고서...! 그것 가지고 제가 뭐라고 하면 오해했느니 마니 할 것이지 않습니까!?"


  "아니. 오해할 말 한 게 아냐."


  "하...?"


 츠무기는 어안이 벙벙한 듯 그녀의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앉아 있으니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얼마 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 그녀에게 문득 떠오른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어느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대형 농장의 주인이었는데, 그 해 가을은 풍년이라 창고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수확을 얻게 되었습니다."


  "...? 당신,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뜬금없이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자 츠무기는 의아한 건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런 츠무기를 뒤로 하고 마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부자는 넘치는 수확을 어떻게 할 지 고민하다 이내 결심했습니다.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서 이 곡식을 다 담아둬야겠다! 몇 년 동안 쓸 물건을 쌓아뒀으니 일 안하고 쉬고 먹고 마시고 할 수 있겠지?' 라고 말하며 그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으음... 일하지 않고 놀려고 하는 점만 제외하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인데, 그렇게 미래를 대비하고자 농사의 소출을 모으려고 하는 건 사람들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하니 츠무기는 내심 흥미가 가는 듯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는 듯 뭐라 하긴 했지만 그런 그녀를 두고 이야기를 이었다.


  "부자는 그 날 저녁 이불을 덮고 누우면서도 싱글벙글하며 웃었습니다. 그는 잔뜩 모은 재물로 몇 년 동안 일하지 않고 잔뜩 잔치를 벌일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잠에 든 부자는... 다음 날 침대에서 잠든 채로 죽었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의 싱거운 결말을 듣게 된 츠무기는 납득이 되지 않는 듯이,


  "하? 도대체 이건 어떤 결말인거죠? 역시 당신이 만든 이야기라서 그런지 마무리가 엉성하군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세상 어디 있습니까? 또, 그래서 이 이야기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요? 사람은 언제 죽을 지 모르니 재산을 모으지 말고 흥청망청 낭비해라, 라는 뜻입니까?"


  "확실히 이렇게 끝나는 동화는 없지. 다만 현실은 어떠니? 반 년 뒤에 죽을 줄 알았던 췌장암 환자가 오늘 갑자기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아이돌의 정점에 달하는 전설적인 아이돌도 극성 팬에 의해 갑자기 죽을 수 있는 거지."


  "음... 당신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결국 뭔가요?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츠무기의 말대로 이 이야기는 부연 설명 없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누가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내용은 쉽게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글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그런 말을 츠무기에게 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츠무기 혹시 '버킷리스트' 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어?"


  "예... 죽기 전에 꼭 해볼 것들의 목록, 이란 것 아닙니까, 버킷리스트란?"


  "맞아. 그런데 원래는 사형수들이 죽기 전에 교도관들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에서 유래됐다 하더라고. 츠무기는 만약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먼저 하고 싶니?"


  "당신은 정말...! 당신은 제가 당장 내일에라도 죽었으면 좋겠나요!? 애당초, 방금부터 당신이 말한 이야기랑 제가 죽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츠무기."


  "당신은... 읏..."


 츠무기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삿대질을 하며 성을 내려다, 원래처럼 당황하는 모습이 아닌 진지한 표정으로 츠무기를 가만히 바라보니 그녀는 삿대질을 하던 손가락을 내리고는 다시 경청하기 시작했다.


  "한 번 생각해보렴. 우리의 시간은 유한해.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없지. 그러니 우리 모두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세상에서 주어진 시간이 끝난다 하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


  "버킷리스트... 그렇지.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말이지... 꼭 해야만 하는 말이 있어."


 방금 말했던 것과 같이 시간은 모두에게 무한히 주어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죽는 것이 사람의 정해진 결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변의 소중한 이가 영원히 옆에 있을 것만 같이 대한다. 고마운 일이 있어도 '나중에 고맙다 하지 뭐' 라고 하거나, 잘못을 해도 '언젠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겠지' 라고 여긴다. 그러다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그들은 전까지 자신이 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후회하게 된다.


  "프로듀서?"


 돌이켜보니 정말 바보 같았다. 츠무기는 옆에 영원히 있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 츠무기도 나이가 들어 아이돌을 그만두거나, 계약 완료로 다른 사무소에 가버리거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의견이 맞지 않고 다퉈서 츠무기가 283 사무소에서 안 좋게 떠나버리거나 하여 언젠가는 옆에서 사라질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결말은 항상 정해져 있다. '회자정리'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별은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이 당연하고도 자명한 사실을, 세상은 왜 이렇게 빨리 잊어버린단 말인가.


  "어제 츠무기 네가 물어봤었지. '당신이 저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고."


  "앗, 네... 분명 그렇게 물어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츠무기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지 못했다. 의무 타령을 하면서 어물쩍하게 넘기고 본심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답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안한 것일수도 있다. 키리코의 말대로 솔직하지 못했으니까.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남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래... 츠무기 너에게 잘해주는 이유라... 그 이유라 하면..."


 말을 하다가 말끝을 흐리고는 옆에 앉은 츠무기를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유리색 눈을 똑바로 뜬 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츠무기의 뒤에는, 점점 져가는 노란 노을 빛이 옆으로 새 나오면서 그녀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자, 아까부터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하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츠무기. 난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으니까."


  "하, 그렇군요. 당신이라면 그런 변변찮은 이유를 댈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저를 제일 좋아하..."


 츠무기는 그 말을 듣고는, 미리 어떤 답을 예상한 건지 바로 매도하는 말을 쏟아붓다가, 이어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말을 하는 도중에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렇게 몇 초 동안 그대로 멈춘 그녀는 이윽고 얼굴이 점점 빨개지기 시작하더니,


  "에, 에에에에에에에에!? 무, 무, 무슨 말을...! 아니, 그... 무슨... 이...!"


 츠무기는 정말로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쩔 줄 몰라하며 혼란스러워 했다. 그렇게 허둥대던 츠무기는 이내 정신을 되찾은 듯 삿대질을 하며 그녀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쏘아보았다.


  "당신이란 사람은...! 분명 저를 놀리는 거죠!? 조, 조, 좋아한다는...! 그런 말을 했을 때 제 반응을 보고 즐기려고...!"


 어째서인지 그녀는 더욱 신랄하게 매도하는 말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날 선 말과 대조적으로 그녀의 볼에는 홍조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당신은 정말...! 지금껏 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거군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프로듀서라니, 말도 안돼요!! 애초에 뭔가요!? 당신이 저를 좋아한다고 하면 제가 손쉽게 승낙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요? 당신은 저를 그렇게 쉬운 여자라고 생각했던 건가요!?"


  "아니."


  "하...?"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삿대질을 하던 츠무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하자 그녀의 기세가 한 풀 꺾인 듯 아까부터 열심히 쏟아붓는 매도의 말들을 멈췄다. 그렇게 츠무기가 말을 멈춰주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장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내가 너에 대해 생각하는 걸 말했을 뿐이야."


  "프로듀서..."


  "그리고 츠무기가 물어봐 줬잖아. 내가 너에게 잘해주는 이유가 뭔지. 물론 츠무기 너의 프로듀서이니 내 소임을 다 하는 것도 있지. 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아마 이 이유이지 않을까."


 그 말이 끝나자 주변에 정적이 감돌았다. 츠무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말고는 고요할 뿐이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서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을까, 츠무기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로 괜찮은가요...?"


  "음?"


  "당신에게 때때로 날 선 말을 하고, 개성도 없고 귀여운 구석도 없는... 그런 저로 괜찮은 건가요?"


 츠무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해가 지고 있어 그런지 얼굴에 음영이 져서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옆에서 조금이나마 보이는 츠무기의 볼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츠무기."


  "네...?"


 츠무기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천천히 쓰다듬자 그녀는 고개를 들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은 채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츠무기 너로 괜찮은게 아니라, 너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그, 그런..."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츠무기의 푸른 눈에 눈물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슬퍼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은 츠무기는 이내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프로듀서...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츠무기. 나야말로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고는 츠무기의 머리를 꼭 안았다. 그렇게 그녀의 머리를 꼭 끌어안자 이내 가슴팍이 그녀의 눈물로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츠무기는 아무 말 없이 울기 시작했지만, 그녀에게 전혀 슬픈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날은 해가 질 때까지 공원에서 츠무기를 안고 있었다.


Alternative Ending 1. 난 이 세상에서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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