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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19. 아, 그래.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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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03, 2023 22:53에 작성됨.

19. 아, 그래. 약속할게.



  상단에 BGM 링크를 첨부하였으니 들으시면서 보시면 좋습니다.



  "제길... 5살 꼬마도 아는 상식인데... 미아가 되면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어야지."


 츠무기를 찾아나서고 나서 몇 시간 정도 지났지만 츠무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사면 아래로 내려가서 확인해본 결과,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꺾여있고 어지럽혀진 곳이 있어 해당 지점이 츠무기가 떨어진 지점이란 것은 알아냈다. 다만 몸도 성치 않을 것인데 다친 몸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한 것 같았다. 츠무기가 이런 상황에서 갈 곳을 예측하자면, 아마 일행과 최대한 합류하려 이동했을 것이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찾기구만. 어디에 있을런지..."


 산짐승들이 쓰는 것으로 보이는 소로길에 사람 발자국이 있고 주변 나무가 조금 꺾여있는 걸 보며 대략적인 방향성은 가늠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른다. 어떠한 위험요소가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츠무기와 빨리 합류하는 것이 중요한데 생각처럼 되지 않으니 애가 타기 시작했다. 사실 산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긴 하다. 산에 숨은 누군가를 찾아낼 때에도 정찰 헬기를 동원한 수색조 수십 명이 동원되는데, 겨우 한 명이 나선다? 운이 좋은 게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차라리 아까 스태프들 중 이쪽으로 찬동하는 몇 명을 같이 끌고 왔어야 됐던 건가,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뭔가 눈에 들어왔다.


  "은색...?"


 녹색이 가득한 첩첩산중에 이상할 정도로 돋보이는 이질적인 은색 무언가가 저 멀리 수풀 사이로 보였다. 


  "이봐~! 츠무... 음?"


 풀숲 사이로 보이는 은색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니 등산복을 입은 은발의 소녀가 무언가를 쳐다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앞에는,


  "아 뭐야. 멧돼지냐? 난 또... 싸울 의지만 보여주지 않으면 알아서 갈 거니까."


 츠무기의 앞에는 멧돼지 한 마리가 가만히 서있었다. 크기를 보니 아직 성체는 아닌 것 같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쳐다봐서 그런지 관심을 보이는 듯 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저 수풀 사이로 들어가 사라졌다.


  "츠무기, 괜찮냐? 멧돼지는 저리 보여도 대부분은 먼저 공격 안하니까 크게 무서워할 필요가..."


 멧돼지가 떠나자 츠무기를 안심시키려고 돌아보니, 츠무기의 양 무릎과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으흑... 흑... 무서웠어요..."


  "그래, 츠무기.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떨고 있는 츠무기의 몸 상태를 찬찬히 확인했다. 머리를 부딪힌 건지 츠무기의 은발 일부는 붉게 물들었고, 장갑은 다 찢어지고 손바닥이 까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마 떨어질 때 경사면을 필사적으로 잡으려고 해서 이렇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다른 곳은 옷이 일부 찢어진 것 빼곤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꽤 심하게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중상은 아니고 경상 축에 속한다고 봐야겠지. 다만, 만신창이가 된 츠무기의 몸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보니까 아무 이상 없어. 멀쩡해. 이 상태면 하산하는데 큰 문제는 없겠어."


  "프로듀서..."


 츠무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어깨를 툭툭 쳐준 다음에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사실, 방금 한 말과 달리 츠무기의 상태는 썩 좋진 않았다. 성인도 이 정도의 부상이면 기동에 지장이 있을 건데 이런 상황을 겪을 리 없는 여고생에겐 꽤 큰 부상이다. 다만 이런 말이 떠올랐다. 리더가 흔들리면 팔로워는 그 이상으로 동요한다, 라는 말이다. 츠무기의 부상이 심하다고 이를 굳이 언급하면서 호들갑을 떨면 츠무기는 패닉에 빠져버릴 수 있으니, 일단 괜찮다고 말하고 이 산을 안전하게 벗어나야 한다.


  "프로듀서... 저를 구하러 이렇게..."


  "그래 츠무기. 구하러 왔어. 이제 걱정 안해도 돼."


  "당신이 올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역시 당신은... 당신은..."


 츠무기는 볼이 상기된 채 울먹이며 말했다. 그런 츠무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잠깐잠깐잠깐! 역시 당신은 바보입니까!? 당신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츠무기는 머리를 붕붕 흔들더니, 이내 손가락을 들어 삿대질을 하며 성을 내기 시작했다.


  "에에!? 저, 츠무기 씨?"


  "다, 당신이 바보 같은 말만 하지 않았으면 저는... 저는!"


  "아, 용서해줘 츠무기. 난 몰랐었는데 내가 츠무기를 밀었던 거구나... 츠무기 혼자 절벽에서 떨어질 리가 없잖아, 그치?"


  "이잇... 바보! 바보! 당신은 바보에요!"


 원래라면 츠무기는 고사리같은 손을 들어 때리려고 들었겠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제자리에서 팔을 붕붕 돌리며 화를 내고 있었다. 잊고 있었지만, 츠무기의 상태는 좋은 편이 아니고, 날이 저물기 전에 이 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열을 내는 츠무기를 제지하며,


  "미안, 츠무기. 누구 때문인가 무엇 때문인가는 나중에. 일단은 여기서 떠나야지."


  "당신은 정말...!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렇게 정론을 꼬집는 건 그야말로 당신이..."


  "난 츠무기가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누구 책임인가를 따지고 힐난하는게 너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이면 계속 그렇게 하렴. 나도 츠무기 따라서 여기서 가만히 있을 테니까."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일단 이동하도록 하죠."


 츠무기는 매섭게 더 뭐라 하려다가 이내 손을 내리고 수긍했다. 속으론 츠무기가 납득하지 못하고 마구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만, 사려 깊은 츠무기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했으리라.


  "그런데 어떡하죠? 당신도 산을 오래 헤매서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잘 모를 거고... 핸드폰도 잘 터지지도 않습니다..."


  "어! 이런... 난청지역? 올라오는 길에 통신 노드를 본 거 같은데 여기는 안되는 건가."


  "...?"


  "쯧... 지형 때문인가보네. 여기는 위에 나무가 많지 않아 위성은 문제 없을 거야."


  "프로듀서, 지금 손목시계로 무엇을 하는...?"


  "위치는 오 넷 시에라 유니폼 에코 하나 하나 삼... 음... 나침반은 왔다갔다 하네. 일단 그러면..."


 이런 저런 혼잣말을 하며 대략적인 위치와 앞으로 갈 방향을 확인하고 난 뒤 목표 지점인 고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원래면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에 가겠지만, 츠무기가 부상을 입어서 그 시간의 두 배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해가 지기 전엔 도착하겠지만 우천 예보와 시간이 미세하게 겹쳤다. 예상보다 비가 빨리 오게 되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지만 운이 좋길 비는 수밖에.



  "으읏...!"


  "츠무기, 괜찮아? 미안. 좀 더 천천히 갔어야 하는데."


 츠무기는 아픈 몸을 이끌고 걷다 보니 빨리 갈 수 없지만, 속도를 맞추느라 무리하는 것 같았다. 다리를 절진 않아 엄청 느리진 않지만, 온 몸에 타박상을 입어서 그런지 츠무기는 걸을 때마다 힘겨워하는 것 같았다.


  "하아... 하아... 읏... 당신... 너무 빨리 가는 것 아닙니까...?"


  "아, 미안해. 일단 조금 숨 좀 돌리자. 아픈 덴 어떻니?"


  "아픈 건 괜찮지만 조금 휴식을... 하고 가는 것이..."


 빨리 가면 안되는 걸 알지만 애가 탔다. 비가 오기 전에 나는 특유의 냄새가 점점 진해져 오기 때문이었다. 기상 예보에 의하면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릴 예정인데 빨리 가지 않는다면 구조대나 헬기 등이 접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그렇다고 아픈 츠무기를 억지로 이끌고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어도 연약한 여고생이다. 어떻게 기합으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 일단 10분 간 휴식을... 음?"


 툭, 투둑... 투두둑...


  "!!"


  "어, 어라... 비가...?"


  "츠무기, 미안해! 휴식은 이따 하자. 일단 가야 해!"


  "당신, 어째서... 와앗!"


 나무에 힘 없이 기대 앉은 츠무기의 팔을 당겨서 일으킨 후 어깨에 들쳐메고 일어섰다.


  "아앗! 저 혼자 걸을 수 있습니다! 내려주세요!"


  "너 빨리 못 가지 않아? 일단 조금만 참아줘."


  "다, 당신은 저와 이렇게 밀착해서... 저의 그 쪽... 가스... 읏! 역시 당신은 변태입니까!?"


  "아니 바둥거리지 마! 떨어진다고!"


 쏴아아아아!!


  "이런...! 엄청 쏟아 붓는구만!"


 첩첩산중에 비를 피할 곳은 몇 군데 없지만, 츠무기를 찾는 와중에 작은 굴들을 봤었다. 아마 가는 길에도 하나 쯤은 있으리라. 일단 폭우를 피하기 위해 츠무기를 업은 채로 빨리 대피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후우, 죽는 줄 알았네. 쫄딱 젖었다."


  "프로듀서... 제가 당신 위에 업혀있는 덕에 비를 덜 맞았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어쩌면 당신은, 비를 조금이라도 안 맞으려고 저를 들쳐 메고 간 것은...?"


  "아니!? 그렇게 하든 말든 이렇게 싹 다 젖었는데 의미가 있어!?"


 운이 좋게 몇 분 가지 않아 절벽 아래에 만들어진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십여 미터 정도 깊이의 크지 않은 동굴이고 온도도 그리 춥진 않았다.


  "일단 여기다 좀 정리를 해두고, 비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면 되려나..."


 비가 얼른 그치는 것이 희망 사항이지만, 일기예보엔 새벽까지 비가 내린다고 되어있었다. 딜레마다. 다친 츠무기를 이끌고 비를 맞으며 산을 올라가든가, 아니면 다음 날 아침까지 이 동굴에서 버티든가. 하지만 비를 뚫고 가기엔 츠무기가 너무 지쳐보였다. 다음 날까지 여기서 있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먼저 해야 할 건 하나다. 멍하니 서있는 츠무기에게 다가가서,


  "츠무기, 잠깐 여기서 기다려 줄래? 한 15분에서 20분 정도 나갔다 올게."


  "네...? 당신, 이 날씨에 어디 가는..."


  "불 피우려면 장작을 구해야 돼서 잠깐이면 돼."


  "당신은 바보입니까? 지금 날씨면 나무들이 다 물에 젖어서 불을 지필 수 없을 겁니다만..."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잠깐 앉아서 쉬고 있어. 다녀올게."


 츠무기의 어깨를 톡톡 쳐주곤 굴 밖으로 향했다. 츠무기의 말대로 지금쯤이면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물에 젖어서 태우기 어려울 것이다. 기존에 필요한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거여서 잔가지와 장작들을 더 구해야 했다.


  "프로듀..."


 동굴을 등지고 나서면서 츠무기가 뒤에서 뭐라 작게 말하는 듯 했지만 시간을 더 지체할 순 없어 주변에 쓸 만한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츠무기~. 돌아왔어~. 음? 츠무기?"


 장작을 들고 돌아오자, 츠무기는 동굴 입구에 양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있었다. 부상을 입기도 했고, 물에 푹 젖어있어 그녀의 안쓰러운 모습이 배가 되는 듯 했다.


  "괜찮아?"


  "당신... 제가 기다리라고 했는데... 저를 두고... 분명 제가 짐짝이 돼서 저를 버리고 싶었던 건가요?"


  "츠무기, 너가 지금 나가는 건 무리야. 그건 지금 너 자신도 잘 느끼고 있지 않니?"


  "으읏..."


  "일단 장작은 넉넉히 가져왔으니 이거로... 음?"


 방금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쪼그려 앉아있는 츠무기는 덜덜 떨고 있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 지고 옷까지 비에 젖었으니 저체온증이 올 수밖에 없었다.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한여름에도 이런 산의 밤은 온도가 매우 낮아진다. 낮은 기온에 젖은 옷까지 입고 있다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당신... 꼭 불을 피워야... 읏... 그러기 위해서 저를 혼자 남겨두고..."


  "아..."


 저체온증을 막기 위해 불을 피울 장작을 마련하러 나간 거지만, 어둑어둑해지는 산 한가운데 있는 동굴에 츠무기를 혼자 있게 방치해버린 것이었다. 그동안 츠무기는 아프고 추운 와중에 무섭기도 했으리라. 분명 이는 츠무기를 위한 것이었지만, 슬퍼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미안, 츠무기. 그렇지만 너를 두고 어디로 가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설령 잠깐 다른 데로 간다 하더라도 언젠가 꼭 돌아올 거니까. 알겠지?"


  "약속... 인가요?"


  "아, 그래. 약속할게."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고 있는 츠무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심각할 정도로 떨고 있는 츠무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물에 젖은 나무로 불을 피우기 위해선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젖어있는 나무의 속을 파내서 부싯깃을 상당히 많이 만들고 그 위에 잔가지를 잔뜩 얹어야 불이 붙기 시작하는데, 그때까지 츠무기가 멀쩡히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한여름에도 동사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 산이다. 십여 년 전 홋카이도에서도 관광객들이 한여름에 비를 맞고 동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때도 관광객들이 강풍을 동반한 비에 온 몸이 다 젖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는데, 지금 츠무기도 옷이 물에 젖어있고 해는 지고 있어 온도도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츠무기, 지금 많이 추울 거야. 온도도 낮고 지금 옷도 젖어 있어서 이대로 있으면 위험해."


  "..."


 츠무기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을 피우긴 할 건데 그 전에 이 젖은 옷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거야. 벗고 있는 쪽이 춥긴 해도 젖은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 나을 거니까 말야."


  "..."

 

  "츠무기, 이제 옷 벗어줄래?"


  "..."


  "츠무기. 옷 벗으라니까?"


  "네... 에에!?


 츠무기는 무언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깜짝 놀란 고양이가 펄쩍 뛰어오르는 것 마냥 화들짝 놀라더니 양 팔을 들어 가슴 부근을 가리면서,


  "다, 당신...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요...! 어, 언제쯤 당신의 원래 모습을 드러내나 했는데...!"


  "츠무츠무 씨, 나도 인내심이라는 게 있어요? 츠무기가 안 벗는다면 내가 직접 벗기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자 츠무기의 양 눈에 눈물이 고이며 그녀는 엄청나게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안돼요...! 이런 건 조, 조...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이른...!"


  "대체 왜? 꼭 아니어도 상관 없잖아. 그리고 츠무기 말야, 슬슬 괴롭지? 이게 다 츠무기를 위한 거라니까?"


  "그, 그치만..."


 츠무기는 그 말을 듣자 흔들리는 듯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의 츠무기를 좀 더 구슬리면 넘어오겠거니 싶었다.


  "그래 츠무기. 그럼... 옷, 벗길게?"


  "...당신은..."


  "음?"


 츠무기는 몸을 더 웅크려 말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당신은 변태입니까!? 왜 제 옷을 벗기려 드는 겁니까!?"


  "아니 그야 츠무기가 옷을 안 벗으려 들길래..."


  "이 무뢰한...! 다, 당신은 절 알몸으로 만들어서 어떤 짓을 하려고...!"


  "에에!? 아니 츠무기, 내 말 안 듣고 있었지!? 저체온증 걸린다니까? 그리고 알몸이라고 한 적도 없..."


  "당신은 절 바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추운데 왜 옷을 벗기려는 겁니까! 여, 역시... 당신은 저에게 그런 짓거리를 하려고 이런 돼도 안되는 거짓말을...!"


  "아니 방금 설명해줬잖아!"


 까칠하게 구는 길고양이처럼 웅크리고 팔을 이리 저리 휘젓는 츠무기를 설득해서 젖은 겉옷을 벗게 설득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역시... 변태..."


  "엣!?"


  "지금도 저를 흘긋흘긋 쳐다보고... 당신은 이런 제 모습을 보며 즐기려고 이렇게..."


 츠무기는 모닥불 주변에 쪼그려 앉은 채 잔뜩 매도하는 눈길을 보내주고 있었다. 하의는 등산복 바지만 입고 있을 거여서 그걸 벗게 할 순 없으니 그대로 두고, 상의는 아무래도 체온에 영향을 많이 주기에 안에 입는 나시를 제외하곤 전부 벗게 해서 불 주변에 널어 말리고 있는 중이다.


  "에에!? 그럴 리 없잖아! 무슨 말이야 그게."


  "그, 그렇다면 저는... 저는 당신에게 여자로 보이지 않는..."


  "음? 뭐라고 했어?"


  "아, 아닙니다!"


 장작이 타는 소리 때문에 츠무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츠무기는 고개를 휙 돌리고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당신이야말로 괜찮나요? 프로듀서도 비에 젖은 건 마찬가지이고 저를 업고 오기까지 했는데..."


  "이런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 걱정 하지 말고 츠무기는 쉬고 있어. 내일 새벽까지 비 온다고 하니까 눈 좀 붙여놔."


  "네... 그, 프로듀서..."


  "츠무기, 왜?"


  "우리,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읏, 어떡하죠...?"


  "츠무기."

 

  "우린 이렇게 산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여기서 쭉... 이러다 주, 죽는... 으... 으으...!!"


  "츠무기, 무슨 일이야? 너 답지 않아. 차분하고 냉철한 평시의 넌 어디 있니?"


 츠무기가 냉철하다는 말엔 어폐가 있지만, 극도로 불안해하는 츠무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어깨를 붙들어 주고는 빙긋 웃어주며 말했다.


  "전에 약속해줬잖아. 훌륭한 아이돌로 만들어 주겠다고. 그 전에 이런 곳에서 끝날 수는 없는 거잖아?"


  그 말을 듣자 불안한 표정을 짓던 츠무기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며.


  "그 말은... 지금의 전 제대로 돼먹지 않은, 어설픈 아이돌이란 뜻...?"


  "지금도 훌륭하지. 하지만 츠무기는 더욱 훌륭한 아이돌이 되어줄 거니까."


 츠무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무릎에 박은 채 가만 있었다. 젖은 장작이 잔뜩 연기를 만들어 내며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와중, 츠무기가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당신도 지금 힘들지 않습니까...? 등산이나 이런 기술이나 잘 하는 것 같다만, 그래도 몸과 마음이 힘들 텐데..."


  "뭐 어쩔 수 있나.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되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프로듀서는 어떻게 이렇게 긍정적으로만 있을 수 있는 거죠? 이번 영업,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저나 당신에게 좋은 결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인데 어째서..."


  "내가 긍정적? 글쎄다... 물론 상황이나 남을 탓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다음엔? 사람이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돛을 조정할 순 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다른 말 하면 안되잖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할 수밖에."


  "..."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 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당신..."


  "어찌 됐든 간에 오늘 밤은, 누군가 우리를 찾아주지 않는 한, 여기 있어야 할 거니까 눈 좀 붙여 둬."


  "네... 그럼..."


 강풍을 동반한 폭우면 구조대가 온다 하더라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아마 구조대도 폭우가 들이닥치자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리라. 그 전까지 이 동굴에서 버티고, 비가 그치면 그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츠무기는 지금 옷을 상당히 얇게 입고 있지만, 젖은 옷은 벗어 놨고 모닥불 옆에 있기에 내일까지 무리는 없을 것이다.



  "으, 으음..."


  "어, 츠무기. 일어났냐?"


  "프로듀서... 좋은 아침입니다.. 읏..."


 츠무기는 불 옆 바닥에서 몸을 웅크려서 자서 그런 지 몸 이곳 저곳이 쑤셔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덜 추우라고 옷을 츠무기의 자리에 깔아줬다만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서 썩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는... 잠을 안 잔 것인가요...?"


  "뭐 그렇지... 츠무기가 추워하기도 하고, 옷도 말려야 하니까 불을 계속 때우고 있었지."


  "그리고 이건... 당신의 겉옷... 아닌가요?"


  "츠무츠무가 자면서 추워하길래 덮어줬지. 아, 쓸데없는 짓이라고? 미안하게 됐어~."


  "프로듀서..."


  "해가 중천이라고? 일단 이거 먹고 나갈 준비 하고 있어. 난 불 끄고 있을 테니까."


 주섬주섬 일어나는 츠무기에게 초코바 하나와 이온음료 한 병을 던져주고 나갈 준비를 했다. 츠무기는 날아오는 먹을 것들을 간신히 받아내며,


  "와앗...! 그, 당신도 아침으로 먹을 것이..."


  "츠무기 씨, 얼른 아침이나 드시고 나갈 준비 하시죠? 이제... 음?"


  "프로듀서 당신 설마 저에게 이걸 주려고 당신은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잠깐...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


 의아해하는 츠무기를 뒤로 두고, 아직 불씨가 붙어 있는 장작을 들어 동굴 밖으로 나갔다.


  "'구조 헬기다! 빨리 연기를...!"


 옆에 비에 젖어있는 나뭇잎과 풀들을 잔뜩 뜯어 내려놓은 다음, 장작으로 불을 붙이자 이어 연기가 잔뜩 나기 시작했다.


  "이봐!! 여기라고!!"


 나무들이 가려서 헬기가 직접 보이진 않지만, 주변에서 선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츠무기, 일어나! 일어서!"


  "으, 으읏..."


 피로가 누적된 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츠무기를 부축하고 헬기 소리가 크게 나는 쪽으로 가자 구급대원이 헬기에서 빈 터에 레펠 강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봐요! 여깁니다!"


 구급대원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강하를 하고 나서 하네스를 해제하곤 이 쪽으로 달려와서 츠무기를 같이 부축했다.


  "아, 아니... 당신들, 저는 잘 걸을 수..."


  "정말 다행입니다! 두 분 다 무사하다니 기적입니다!"


  "일단 츠무기는 빨리 헬기로 후송해야겠습니다! 이래 보여도 꽤 다쳤거든요!"


  "네, 이제 이송하겠습니다!"


 츠무기를 데리고 헬기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한 뒤, 구급대원이 츠무기에게 견인 장비를 입히고 하네스를 채웠다.


  "좋아, 올려!"


  "츠무기, 이제 다 끝났어. 고생했어."


  "프로듀서... 당신..."


  "나도 곧 따라 갈 테니까, 이따 보자고."


  "당신... 저는..."


 츠무기는 뭐라 더 말을 하는 듯 했지만, 헬기 쪽으로 멀어져 가서 그런지 그 뒤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츠무기... 크게 다치고 조난까지 당했지만 결국 잘 버텨주었다. 그녀의 타고난 의지와 굳은 결심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것이겠지. 결국 영업이든 뭐든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뭔가 실패했다는 기분은 딱히 들지 않았다. 츠무기가 일단 위험에서 벗어났단 사실에 안도감만 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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