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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18. 전 츠무기가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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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9, 2023 12:19에 작성됨.

18. 전 츠무기가 우선입니다.



  상단에 BGM 링크를 첨부하였으니 들으시면서 보시면 좋습니다.



  "츠무기, 이제 옷 벗어줄래?"


  "..."


  "츠무기. 옷 벗으라니까?"


  "네... 에에!?


 츠무기는 무언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깜짝 놀란 고양이가 펄쩍 뛰어오르는 것 마냥 화들짝 놀라더니 양 팔을 들어 가슴 부근을 가리면서,


  "다, 당신...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요...! 어, 언제쯤 당신의 원래 모습을 드러내나 했는데...!"


  "츠무츠무 씨, 나도 인내심이라는 게 있어요? 츠무기가 안 벗는다면 내가 직접 벗기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자 츠무기의 양 눈에 눈물이 고이며 그녀는 엄청나게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안돼요...! 이런 건 조, 조...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이른...!"


  "대체 왜? 꼭 아니어도 상관 없잖아. 그리고 츠무기 말야, 슬슬 괴롭지? 이게 다 츠무기를 위한 거라니까?"


  "그, 그치만..."


 츠무기는 그 말을 듣자 흔들리는 듯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의 츠무기를 좀 더 구슬리면 넘어오겠거니 싶었다.


  "그래 츠무기. 그럼... 옷, 벗길게?"


  "..."



 얼마 전...



  "읏차... 고생했어, 츠무기. 저기 여관이 이번 영업 간 활용할 우리 거점이야. 그럼 이제 여관에다 짐을 풀고..."


  "..."


  "츠무기?"


 며칠 전부터 츠무기가 꽤나 이상했다. 여기 오는 동안에도 그렇고 말도 걸지 않을 뿐더러 가끔 눈을 마주치면 차갑게 몇 초간 쳐다보다 이어 시선을 회피했다.


  "어이~? 츠무기 씨?"


 그런 츠무기에게 말을 집요하게 걸자 츠무기는 차가운 눈으로 올려보면서,


  "당신은 제가 귀머거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제가 바보이기에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줘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윽..."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아까 전까진 이렇게 대답도 안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이번에 돌아온 답변마저 차가워서 마음이 좀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종의 발전이면 발전이랄까.


  "미, 미안... 그렇게까지 생각한 건 아니고..."


 그렇다고 츠무기의 성격 상, 그 이유를 물어본다 해서 알려줄 리 없기에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결국 츠무기의 기분이 알아서 풀리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영업을 와서까지도 냉랭한 분위기로 있단 것이지만 말이다.


  "이따 감독님하고 스태프들하고 다같이 모여서 회의 할 거니까 알고 있어?"


  "..."


 츠무기는 아무 대답도, 눈길도 주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츠무기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을 뿐이었다.



 얼마 후, 촬영 스태프들과 함께 모여서 이번 영업에 대해 회의를 짧게 진행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감독이 경로나 촬영 장소 등을 간략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산행이 처음은 아닌지 어느 정도 지식은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자자, 그럼 이렇게 진행하려고 하는데, 질문 없지 다들?"


  "저 질문 있습니다."


 촬영 스태프들과 회의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감독이 마무리 전 으레 물어보는 질문을 던졌는데, 진짜로 질문을 해서 그런 지 모두의 이목이 여기로 쏠렸다.


  "기상 정보 내용도 그렇고, 지금 기상 상태만 육안으로 관측해도 비가 쏟아져 내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예보엔 17시나 18시 즈음 폭우가 내린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니 우발 사태에 대한 대비를..."


 그러자 감독은 말을 끊고 혀를 차면서,


  "쯧쯔... 이봐, 신참 프로듀서. 뭘 잘 몰라서 하는 것 같은데 말야. 촬영은 그렇게 오래 안 걸린다고 했는데, 어? 우리가 전달해준 내용도 보지 않았나 본데, 비 오기 전에 후딱 끝내버리고 다들 퇴근 일찍 해버리자고. 어?"


  "하지만 츠무기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계획 수립을 할 때..."


  "자, 자!! 회의 끝! 다들 준비하라고! 10분 뒤에 출발한다!"


  "이런..."


  "..."


 평소보다 약간 떨어진 채로 옆에 앉아있는 츠무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없었고 분위기가 지금처럼 냉랭하지 않았다면 필히,


  "정말이지, 프로듀서. 아는 척 하다가 망신입니까? 당신이란 사람은..."


 이라고 했을 것이라. 마음이 아팠다. 원래라면 츠무기가 손가락질하며 매도하는 말은 그렇게 듣기 썩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듣고 싶어도 저 말을 듣지 못하니 말이다. 그래도 츠무기는 상냥하니 언젠가는 이 화를 풀어줄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 당장 막막한 속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속이 답답해서 그런지, 원래라면 이럴 때 먼저 츠무기에게 말을 걸진 않았겠지만 멋도 모르게 츠무기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미안해 츠무기. 이렇게 남들 앞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고 앉아서..."


  "..."


 츠무기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얼마 전이었으면 투명 인간 취급하는 것마냥 무시하거나 냉랭하게 한 번 슥 보고 다른 데를 갈 츠무기였지만 미묘하게 분위기가 풀어지는 것 같았다. 운이 좋으면 이번 영업을 통해서 츠무기와의 관계를 잘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쯧... 몇 년만에 등산이라 그런 지 힘이 드는구만... 츠무기는 괜찮으려나..."


 수도권에서 그리 먼 거리에 있진 않지만 꽤나 높은 산이었다. 등산로 정비도 잘 되어있고 그리 가파르지는 않아서인지 크게 힘들지는 않았으나, 아무래도 촬영팀이 같이 올라가는 것이기에 이목을 적게 끌고자 사람이 비교적 적게 오가는 등산로를 골라 올라가기로 했다.


  "츠무기의 복장은... 음, 문제 없고."


 이번 영업은 아웃도어 복장 촬영이어서 감독 말로는 특정 고지 부근에서 츠무기가 등산하는 모습을 촬영할 거라고 했다. 그때까지 복장이 지저분해지면 안되겠지만 그래도 경로가 험준하진 않아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비 예보가 있는 것이 걱정인데 감독 말대로 촬영을 제때 하면 하산하고 나서야 비가 내리기 시작할 것이리라.


  "좋아! 잠깐 쉬다 가자고! 아직 목적지까지 많이 남았으니까 체력 좀 아껴둬!"


 감독이 휴식 신호를 주자 스태프들은 중장비들을 내려놓고 기진맥진한 채로 여기저기 주저앉아 숨을 내쉬었다. 약간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생각 외로 츠무기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다만 아직 산 중턱이니 한두시간 정도 더 올라가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쉬는 것이 맞는 선택이긴 하려나. 일단 다시 출발할 때까지 시간적 여유는 있으니 저 구석의 큰 나무에 기대 앉아 숨을 돌리고 있는 츠무기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츠무기, 할 만해? 힘들진 않고?"


 츠무기의 옆에 앉기 전엔 사실 불안했다. 츠무기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일어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고개를 돌린 채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른 스태프들도 힘들어 하는데 츠무기는 뒤쳐지지도 않고 잘 따라오다니, 평범하게 대단한 거라고?"


  "..."


 츠무기는 고개를 이 쪽으로 돌리고 뭐라 하려다 흠칫 하고는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무시를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 시간이 꽤 지나기도 했고 지금은 체력적 및 정신적으로 고된 등산을 하니 츠무기의 심리 상태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츠무기는 아직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장난기가 들었다.


  "그래. 역시 츠무츠무는 시골에서 올라왔으니 이런 산 타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나도 전에 동료 중에 시골 출신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산 잘 타고 수영 잘 하고 하더라고. 체력 좋고 덩치 큰 녀석들이라고 등산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 말야. 역시 츠무..."


 그러자 애써 시선을 돌리고 있던 츠무기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이 쪽을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당신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제가 시골에서 올라왔다니...!"


  "그야 츠무기, 시골 출신이잖아? 저기 멀리 있는 카나자와에서 상경한거 아니었어? 촌에서 와서 그런지 평소에 말 할 때도 사투리 섞어서 쓰고..."


 평소의 츠무기가 듣는다면 길길이 날뛸 말들을 골라서 하니 예상대로 침묵을 깨고 얼굴을 붉힌 채 성을 내기 시작했다.


  "읏...! 당신이란 사람은...! 카나자와는 시골이 아닙니다! 당신은 카가 백만 석이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에도 시대에 카나자와는 에도, 오사카, 도쿄 다음 가는 네 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그 번창했던 모습이 아직까지 남아있..."


  "네~. '번창했던' 이죠? 지금은 시골 맞죠?"


 츠무기의 속을 계속 긁어대니 옆에 앉은 츠무기의 분노가 열기로 직접 느껴지는 듯 했다.


  "으읏...! 시, 시골이 아닙니다! 카나자와에는 유명한 미술관도 있고 시내에도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들도 있어 저도 예전에 휴일에는..."


  "아하하! 그래 그래! 시골 사는 분들께서 통상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사는 곳 읍내에는 이런 저런 것들도 다 있었다' 인데 역시 츠무기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으으...!"


 츠무기는 분한 것인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주먹을 꽉 쥐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사투리도 말야. 츠무기처럼 촌에서 온 분들이 사투리를 꽤 쓰더라고. 도심지에서 자란 사람이 사투리 쓰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그, 그렇지만...! 츠키오카 씨도 사투리를...!"


  "그래. 코가네는 어촌에서 왔잖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다, 당신이란 사람은...!"


 츠무기는 정말로 분한지 그녀의 양 눈가 끝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츠무기의 반응이 재밌기도 할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이렇게 말을 하는 거다보니 재미가 붙어서 츠무기를 더욱 놀렸다.


  "아니 뭐 딱히 뭐라고 하는 건 아냐. 츠무기도 촌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돼서 도시에 대해 이것 저것 배우는 중일텐데 완벽한 표준어까지 구사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지. 츠무기,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평소에 사투리 쓰고 싶으면 마구 써도 된다고?"


 그러자 츠무기의 양 어깨는 다른 누군가가 멀리서 봐도 흔들린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뭐꼬..."


  "뭐꼬? 봐봐, 역시 츠무기는 사투리..."


  "이잇...! 뭐꼬!? 당신 바보 아이가!? 사투리 쓸 수도 있는 긴데 와 그라는데!?"


  "아하하, 미안 츠무기. 이제 안 놀릴..."


  "됐다! 당신 혼자 알아서 해라! 내는 당신같은 사람 모린다!"


 너무 놀렸다 싶어서 이제 그만 하려던 찰나, 츠무기는 지방 억양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로 화를 내곤 씩씩대며 반대편으로 뛰쳐나갔다.


  "아, 츠무기! 어디 가는 거야! 음... 너무 놀렸나..."


 이전과 같이 냉랭한 분위기는 이제 아니었지만 장난이 좀 심했는지 츠무기는 꽤 성이 난 듯 했다.


  "일단 곧 쉬는 시간 끝날 것 같으니 츠무기 녀석 데리러 가볼까..."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츠무기!"


 반사적으로 츠무기의 비명소리가 들린 쪽으로 튀어나갔다. 무슨 일이지? 괴한? 야생 동물? 그 짧은 찰나에 온갖 생각이 머리속을 헤집었다. 비명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으나 풀숲이 우거져서 그런지 앞이 잘 보이지도 않고 헤쳐나가기도 어려웠다.


  "츠무... 으앗!"


 앞에 있는 길다란 풀을 헤치자마자 가파른 절벽이 나타났다. 두어 발 더 나아갔다면 필히 굴러떨어졌으리라. 다행히 직각 수준으로 가파르진 않았지만 다시 기어올라오기 어려울 정도로 경사가 높아보였다.


  "설마... 여기 절벽 아래로..."


 자세히 보니 발자국이 쓸려 있고 먼지가 조금 날리고 있었다. 방금 전에 누가 여기서 미끄러졌다는 뜻이리라.


  "츠무기!! 츠무기!! 내 말 들려!? 제길!"


 수십 미터 아래 쪽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한편, 다른 스태프들도 이상 사태를 알아차리곤 이 쪽으로 달려왔다.


  "허억... 허억... 이봐 283 씨... 무슨 일이야?"


  "정확한 건 모르겠으나 아마 츠무기가 이 절벽 아래로..."


 스태프들은 이 상황을 인지하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촬영을 해야 할 아이돌이 사라졌으니 당장 영업에 지장이 생기는 건 당연할 터이니 말이다.


  "늦기 전에 여기서 수색구조팀을 꾸려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119에도 전화를..."


  "어이 어이 283 씨, 잠깐 기다려 보라고."


 감독은 난처하다는 듯이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다가왔다.


  "우리가 이런 첩첩산중에 사람을 구하러 간다고? 이봐, 너무 위험하지 않아? 여기 스태프들도 자네도 산 경험이 적을 텐데 사람 한 명 구하겠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거 아냐?"


  "그럼 감독님은 최소한 119에 신고를..."


  "으음, 그건 말이지..."


 감독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그 뭐냐, 아무래도 산이어서 전화도 잘 안터지기도 하고, 그리고 구조대까지 오게 되면 아무래도 업계에서 우리 평판이라든가 소문이라든가 그..."


  "뭐요?"


 그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올라 뭐라고 하려고 하자, 감독의 되도 안되는 말을 듣고 스태프 중 일부는 그 말에 반발한 듯 이런 저런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나머지는 감독의 의견에 편승하여 그 반대 의견을 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여자아이인데 우리가 구하러 가야지!"


  "야, 우리가 밀었냐? 우린 책임 없어! 그리고 여기 절벽을 내려가서 구하라고? 너무 위험해!"


  "저... 일단 119에 전화는..."


  "애초에 이게 누구 잘못인데!? 저 프로듀서가 여자애 관리 하나 못해서 그런거 아냐?"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이 몇 분간 흘렀다. 감독은 이 난장판을 정리하려는 듯 아수라장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타진했다.


  "일단 산 아래로 내려가고 나서 그 뒤에 전화를 하든 말든..."


  "그만!!"


 지금 이 순간에 츠무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들은 논쟁을 벌이고 있단 사실에 폭발하여 크게 소리를 치자 모두가 말하는 것을 멈추고 시선을 모았다.


  "누구 탓인지 왜인지는 나중입니다. 전 츠무기가 우선입니다. 전 츠무기를 구하러 혼자 출발할 겁니다."


  "이봐 283 씨. 자네 딱 봐도 등산 경험도 적어보이는데 구조대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아? 무모하게 하려다간 자네도..."


  "닥치십시오. 당신이 살면서 산을 쳐다본 횟수보다 내가 산을 탄 횟수가 더 많을 것입니다. 거기 옆에 당신, 물 있지 않습니까? 마실 것 좀 빌리겠습니다."


 일행 중 먹을 걸 많이 들고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스태프를 지목하여 물과 이온 음료 한 병씩을 받아낸 뒤에 츠무기가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절벽 아래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러자 몇몇 스태프들이 만류하기 위해 붙잡으려고 하자, 앞을 막아서려는 그 사람들을 지목하며,


  "당신들에게 경고하겠습니다. 내 앞을 막아서거나 방해하려 한다면 죽일 것입니다."


  "..."


 강경하게 나서자 그 기세에 눌린 듯이 스태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그들을 내버려두고 절벽 아래쪽으로 가기 위해 계곡 옆으로 발달되어 있는 지맥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귀중한 시간을 너무 허비해버렸다. 츠무기는 크게 다쳤을 가능성이 있는데 영양가 없는 말다툼으로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하면 감독의 말이 일부 옳을 수도 있다. 산을 많이 타보지 않은 사람에게 산악 지대에서의 수색 임무를 주는 건 그 역량을 넘는 과업인 것이 당연하니까. 어쩌면 이 일의 전문인 구조대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리라. 제 3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만약 다른 아이돌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아마 비슷한 진단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츠무기이다. 왜냐면 츠무기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츠무기! 일어서라...!"


  "..."


  "츠무기!! 어서 일어서!!"


  "으으..."


 칠흑같이 어둡던 시야가 이제야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워서 가만 있는 것도 어렵지만 남은 힘을 다 짜내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어요.


  "으읏... 아파..."


 바닥을 짚을 때 손바닥이 미친듯이 따끔거려서, 힘이 들지 않는 팔을 간신히 들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확인해보니 장갑의 손바닥 부분은 다 찢어져 있고 찢어진 틈으로 보이는 피부는 피로 붉게 물들었어요.


  "여기는..."


 어지럽지만 애써 기억을 되새겨 봤습니다. 못난 프로듀서가 엄청 놀려대자, 저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뛰쳐나오다가 풀숲 너머를 제대로 보지 못해 절벽에서 미끄러 떨어졌어요. 이게 다 변변치 못한 프로듀서 때문이에요. 그 사람이 절 이렇게 놀리지만 않았어도...! 그 사람 때문에 다쳐서 이렇게 온 몸 이곳 저곳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아프지만 그래도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인걸까요...


  "프, 프로...듀서... 프로듀서..."


 아까 정신이 들기 전에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막상 눈을 뜨고 나니 그 사람이 있지 않아요.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분명 그의 목소리가 작게나마 들렸던 것 같은데... 제가 헛것을 들은 걸까요? 어쨌든 간에, 그 사람에게 제가 여기 있다고 말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 먼저이니 핸드폰을 꺼냈어요.


  "읏... 저, 전파가... 이, 이러면 프로듀서...에게..."


 전화가 걸리지 않아 휴대폰 상태를 보니, 전파가 제대로 닿지 않고 있었어요. 어떡하지... 제가 어디있는 지도 모르고,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르는데 연락도 되지 않는다면...


  "어,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읏...!"


 당황하자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어요. 바보 프로듀서의 말과는 달리 저는 산을 많이 올라본 적도 없고 더군다나 이렇게 조난을 당하는 건 처음인데... 심지어 온 몸에 난 상처들이 너무나 아파서 생각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이, 일단... 프로듀서한테... 가야..."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어요. 저는 절벽쪽에서 떨어졌으니 아마 높은 쪽으로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면 언젠가 프로듀서와 일행들이 나올 거에요. 비록 온 몸이 너무나 아파서 빨리 갈 수는 없겠지만, 계속 걷다 보면 프로듀서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 없이 위쪽으로 걸어가던 참이었습니다.


  "읏... 어? 앞에서 무슨 소리가...?"


 앞에 풀숲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지친 몸을 나무에 기대고 잠시 멈춰섰습니다. 이건... 설마?


  "프, 프로듀서? 당신인가요...?"


 하지만 풀숲에 있는 무언가는 프로듀서가 아닌 듯 했습니다. 왜냐면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렸으니까요. 그걸 알아차렸을 때 바로 도망쳤어야 하는데, 무릎이 덜덜 떨리고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럼... 누구...?"


 이번에도 정체 모를 무언가가 아무 답 없이 무언가 풀숲을 헤치는 소리만 들리자 제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읏... 이... 무슨..."


 분명 별 어려운 것 없는 아웃도어 복장 촬영일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이게 다 프로듀서 때문이에요.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되고... 정말 밉지만 지금처럼 필요할 땐 곁에 없고...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요...


  "히익!!"


 그 무언가 풀숲을 헤치자 저는 놀라 그 자리에 언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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