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시라이시 츠무기] 17.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댓글: 0 / 조회: 458 / 추천: 0



본문 - 08-06, 2023 23:40에 작성됨.

17.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상단에 BGM 링크를 첨부하였으니 들으시면서 보시면 좋습니다.



  "MARS 브랜드 앰배서더, 유코쿠 키리코입니다. 후훗..."


 키리코는 '화이트밀크 MARS' 라고 써있는 화이트 초콜릿 상자를 한 손에 들고 밝게 미소지어보였다.


  "연습이 끝나고 먹을 때는... 부드럽고..."


 여타 홍보 모델들과는 사뭇 다르게 조용하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키리코지만, 그런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촬영 현장에 있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는... 달콤한..."


 이어서 키리코가 볼을 조금 붉히며 활짝 웃자 스태프들은 자신들이 할 일도 잊은 채 키리코가 있는 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후훗... 상자 옆에 들어간 판다 씨도... 오늘을 응원해주고 있어요..."


 비록 촬영이지만, 일이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 없이 키리코의 상냥한 미소가 이 곳을 밝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얼마 전...


  "그런 고로, 잘 부탁~."


  "저...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제 담당 아이돌 영업도 아닌데 이런 것까지..."


 이 말을 하자 선배 프로듀서가 얼굴을 찡그리며,


  "야, 그럼 나도 츠무기가 내 담당 아니니까 나중에 무슨 일 있어도 도와주면 안되겠네? 심지어 얘네랑 너랑은 친한 줄 알았는데, 어?"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아니 내가 농땡이 부리려고 이러는 것도 아니고, 765하고 회의가 오늘 내일 있다니까? 그리고 말야, 키리코가 너네 「W.I.N.G.」 도와주고 있는데, 그거 하나 못해주냐?"


  "키리코는 그렇다 치는데 제 말은..."


  "아, 여보세요? 네, 네! 그래서 전에 말씀드린 건에 대해..."


 선배 프로듀서는 핸드폰 전화를 받으며 사무실 밖으로 급히 걸어나갔다. 전화가 온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이렇게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는 건...


  "안녕하세요... 어라... 프로듀서... 님?"


 선배 프로듀서가 미처 닫지 못해 열려있는 문으로 키리코가 들어오며 인사를 했다. 최근 키리코를 자주 볼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뭔가 더 반가웠다. 키리코는 요즘도 츠무기와 레슨을 같이 해주고 있긴 하다만 운이 좋지 않아서인지 마주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 뭐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니. 키리코 안녕!"


 이번 영업에도 키리코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마침 설명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물론 짬 맞아버려서 이렇게 직접 키리코를 데려갈 줄은 몰랐지만 오랜만에 키리코랑 같이 뭔가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츠무기의 일정이랑 겹치는 건 아니니까 이번 영업 한 번은 도와줘도 문제는 없겠지.


  "호랑이... 씨...?"


 키리코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키리코에게 다가가서 머리에 손을 얹었다.


  "키리코 있잖아. 이번 초콜릿 광고 촬영 있는 거 알지? 내가 같이 따라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다른 멤버들... 그러니까..."


  "일단 다섯 명 중 이치카와 양, 아사쿠라 양, 그리고 세리자와 양은 다음에 찍을 거야. 키리코는 이번에 찍는 거고."


  "네 프로듀서 님... 잘 부탁드려요... 후훗!"


  "그래 그래. 그리고 키리코랑 같이 가는 친구는... 이건 뭐 굳이 지금 설명해줄 필요는 없으려나."


  "??"


 키리코야 당연하게도 교류가 많은 편이라, 담당 아이돌은 아니어도 이런 영업을 하는 데는 큰 지장은 없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조금 껄끄러운데...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오케이, 컷트! 자, 10분 휴식하고 재개할 테니까 다들 할 거 하고 오라고!"


 감독이 컷트 사인을 내리자 촬영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분주히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더운 날에 심지어 야외에서 촬영을 하는 거라 모두 힘들겠지만 그래도 키리코 덕분인지 사람들은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맡은 임무들을 열심히 해내고 있었다.


  "프로듀서 님... 방금 촬영... 어땠나요...?"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키리코가 종종걸음으로 이 쪽으로 걸어왔다. 무더운 야외 촬영에다가, 심지어 정장을 입고 있어서 매우 더울 것이지만 키리코는 전혀 내색하고 있지 않았다.


  "정말 좋았어! 감독님도 맘에 들어하는 거 같던데? 그나저나 키리코, 덥지? 얼른 여기 앉아!"


  "엣...? 저..."


 키리코를 얼른 옆에 자리에 앉히고 접부채를 꺼내서 키리코에게 열심히 부채질을 해주었다.


  "그리고... 여기! 아이스 박스에서 좀 전에 꺼내왔어. 이거 얼음물 마시고 해."


  "프로듀서... 님?"


  "아, 미안.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손풍기인가 그런 거 쓴다는 데 나는 좀 올드해서..."


  "후훗..."


  "키, 키리코?"


 옆에서 부채질을 하던 와중에 키리코는 뜬금없이 웃기 시작했다.


  "후훗... 후후훗!"


  "윽, 아니 영문을 모르겠다니까..."


 그런 모습을 본 키리코는 빙긋 웃으며,


  "상냥하고... 시원한... 프로듀서 님... 부채 씨... 후훗!"


 원래라면 이런 키리코를 보고 무서운 마음이 조금은 들었겠지만,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키리코를 보자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키리코, 그나저나 덥지 않아? 옷도 좀 더울 거 같은데."


 페트병에 담긴 얼음물을 조금씩 마시던 키리코는 자신의 팔을 들어 옷소매를 보여주었다. 복장 컨셉이 정장이긴 하지만 캐주얼한 느낌이 조금은 있어서 그런지 소매를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접어서 걷은 것 같았다.


  "이렇게... 소매를 조금 걷어서... 괜찮아요..."


  "흐음~ 그렇네. 팔 쪽은 바람이 좀 통해서 낫긴 하려나. 그러고 보니 오늘은 붕대 안하고 왔네? 하긴, 붕대까지 하고 오면 더 더울테니까 말야."


 그 말을 듣자 키리코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붕대... 제대로 하고 왔답니다...?"


  "엥? 어디? 이마나 팔, 무릎에도 딱히 보이는 건 없는데... 보여줄 수 있어?"


  "여기... 오른쪽..."


 키리코는 들고 있던 페트병을 옆에 내려놓고 자신의 치마를 천천히 걷어올렸다. 노란 치맛단이 키리코의 새하얀 허벅지 중간 쪽으로 올라오자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에 감긴 붕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자, 잠까아아안! 스톱 스톱 스토오옵!!"


 키리코같이 순수한 아이가 자신의 치마를 올려 허벅지를 보여주는 그런 배덕적이고 외설스러운 광경에 넋이 나가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키리코의 허벅지 중간 즈음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프로듀서 님...?"


 자신의 치맛단을 잡고 허벅지 위로 걷어올리고 있는 키리코의 손목을 덥석 잡아서 고정시켰다.


  "휴...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네... 다른 누가 본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야..."


  "?"


 스태프들은 저기 멀리 있어 다행이지, 누가 본다면 아이돌에게 이상한 걸 시키는 변태라고 매도했을 게 분명하다. 만약 츠무기가 있었다면 또 어떻게 알고 귀신처럼 이 광경을 가지고 뭐라 했으리라. 그 때였다.


  "에!! 지금 뭐하는 건가요 도대체!? 시라이시 씨 말대로 후배 프로듀서 님이 변태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읏!?"


  "니치카 쨩...?"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식은 땀이 났다. 처음부터 본 게 아니라면 오해할 수밖에 없는 구도이기에 바로 경찰서로 끌려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쩌면 서로 가는 것뿐만 아니라 이 업계에서 퇴출될수도...


  "그래서, 후배 프로듀서 님은 왜 유코쿠 씨의 치마를 벗기려고 드는 거에요? 사람의 이목이 적다고 해도 그런 짓을 야외에서 대놓고 하다니, 최악이야!"


  "에에!? 아, 아니 이건 니치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고...!"


  "니치카 쨩... 이건 프로듀서 님이 보여달라고 하셔서... 내가 스스로 프로듀서 님께 보여드리려고..."


 이 말을 듣자 니치카는,


  "우와~, 최저 그 이하네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아이돌에게 치마 속을 보이라고 명령하다니,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며 경멸하는 시선을 잔뜩 보내주었다.


  "그래서, 실컷 구경하셨나요? 변태 프로듀서 님?" 


  "어, 안에 흰색...이 아니고!!"


  "네에!?"


  "아, 아니 안에 흰색 그거를 입었다는 게 아니라...!"


 잘못 나온 말을 변명하기 위해 횡설수설하고 있자니 옆에서 키리코가 한 마디 거들었다.


  "프로듀서 님... 안에 흰색 방금 보지 않았나요...? 프로듀서 님도 보시곤 제 손목을 답삭 잡으시고..."


  "으아앗!! 아니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아, 여보세요? 언니! 지금 뭐하고 있어? 글쎄 있잖아, 후배 프로듀서 님이 유코쿠 씨의 치마를..."


  "잠깐잠깐잠깐!! 니치카 님, 부디 하즈키 씨에게 신고하는 것만은!!"


  "아아!! 언니! 프로듀서 님이 내 핸드폰 뺏으려고 해!!"


  "..."


 니치카는 자신의 핸드폰을 뺏기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높게 들고 막 소리쳤다. 니치카가 이리 저리 바둥대며 소리를 지르고 이목을 끄는 것도 두려웠지만, 더 두려운 건 저 핸드폰 너머에 있는 하즈키 씨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하즈키 씨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하즈키 씨!! 이거 다 거짓말이에요! 아시죠!?"


 전화는 연결되고 있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경멸하는 하즈키 씨에게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 진땀을 흘리며 변명하는 건 좀 나중의 일이었다.



  "MARS 브랜드 앰배서더, 나나쿠사 니치카입니다!"


 니치카는 키리코와 같은 디자인의 정장을 입고 한 손엔 블랙 초콜릿 상자를 들고 밝게 웃었다.


  "그럼 '니치카의 소원 이뤄버리자 코너' 시작해볼게요!"


 전에 연습실이나 영업 장소에선 히스테리를 부리는 날 선 모습을 많이 봐서 좀 불안하긴 했지만, 본연의 순수하고 밝은 모습은 어디 가지 않는 것인지, 촬영을 시작하자 정말 그 나이 대의 쾌활한 여자아이라는 느낌이 물씬 났다.


  "MARS 조금 덜 단 밀크를 구입하고, 이 쪽을 긴급도 MAX로 추가했어요!"


  "컷트! 컷트!! 어이~ 니치카 쨩, 귀여운 모습이 좀 부족한데? 다시 한번 해보자고?"


  "앗, 네! 알겠습니다!"


 얼핏 보면 촬영이 별 문제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감독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재촬영을 지시했다. 이런 일이야 자주 있는 거지만 뭔가 심기에 거슬리는지 감독은 재촬영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밀크 초콜릿 하면 MARS, 하지만 카카오의 풍부함을 엄청 느낄 수 있는 것도 MARS 뿐이에요!"


  "컷트! 다시!"


  "읏...! 네, 네 알겠습니다!"


  "저기, 감독님? 혹시 10분 정도 쉬어도 되겠습니까? 스태프 분들이나 니치카도 좀 덥고 지쳐 보여서 지금 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쩝, 알겠어 283 씨. 자자, 그럼 모두 10분간 휴식!"


 니치카의 촬영을 시작한 지 많이 지나진 않았지만, 이 상태로 촬영을 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잠깐 쉬기로 했다.



  "니치카~. 뭐하고 있어 여기서?"


  "읏... 그깟 촬영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서 혼내러 온 건가요? 죄송하게 됐네요 프로듀서 님..."


 니치카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짜증내며 말했지만, 그 기세는 전과 다르게 약해 보였다. 가뜩이나 낮은 자존감인데, 노래나 댄스도 아니고 본인이 잘한다고 여겨지는 영업에서 지적을 여러 번 받게 되니 그 자존감이 더 바닥을 치는 것이었다.


  "아니? 그냥 이거 마시라고 할 거였는데? 자."


 니치카의 목 쪽에 방금 자판기에서 뽑아온 이온 음료 캔을 갖다 대자 니치카가 화들짝 놀랐다.


  "앗 차가워! 정말이지, 뭐에요 이게!?"


  "어, 미안~."


 니치카의 긴장을 덜어주려고 장난을 좀 쳐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잘 되지는 않았다.


  "별 건 아니고, 그냥 니치카가 힘냈으면 하는 것 뿐. 그거 말곤 없어."


  "하, 재밌네요 정말... 전엔 저한테 소리치고 윽박지르더니 이젠 힘내라고 하고... 본인 스스로도 말이 안되는 거 알고 있기나 해요?"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니치카는 내 둘도 없는 소중한 동료라고. 물론 하즈키 씨의 가족이라 더 챙겨주게 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나한텐 니치카가 소중해."


 그 말을 들은 니치카는 방금 한 말을 가지고 놀리거나 '우와, 오그라드는 대사 극혐...' 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 대신 갑자기 고개를 반대편으로 휙 돌리더니,


  "읏... 시라이시 씨도 있으시면서 그런 말을 잘도 내뱉으시네요... 시라이시 씨는 프로듀서가 이렇게 다른 아이돌한테 하고 있는 걸 알기나 하나요?"


  "츠무기? 츠무기는 갑자기 왜?"


 고개를 반대로 돌려서 그런지 니치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보면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아닌 듯 했다.


  "막상 제가 어떠니 마니 하면서, 나중엔 시라이시 씨의 편을 들어줄 거 아닌가요? 결국 「W.I.N.G.」 에 이기는 게 프로듀서 님의 목적 아니었어요?"


  "니치카, 그렇지만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닌..."


 그 말을 들은 니치카는 다시 고개를 이 쪽으로 돌려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전과 같이 짜증이 나있는 표정이 아닌,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점수는 왜 기록하나요?"


  "그 말은..."


 예전에 선배 프로듀서가 했던 똑같은 말이 뇌리에 스쳤다.


  "승패 결과만큼 중요한 것들은 많아. 그걸 간과해선 안되지. 하지만 결국 니치카가 노력하는 건 「W.I.N.G.」 에서 이기기 위함이야."


  "하지만 이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점수는 왜 기록하는가?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당시엔 그 말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츠무기도 지금  「W.I.N.G.」 우승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쉬지도 않고 피땀을 흘려가며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츠무기에게 이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쉬엄쉬엄하라는 말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들인 노력을 헛수고로 만드는 건 둘째 치고, 그걸 츠무기가 받아들일 리도 없다. 그러니 츠무기를 데리고 우승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읏차, 프로듀서 님 덕분에 다시 깨달았네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니치카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순 없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프로듀서 님? 「W.I.N.G.」 에서 이겨야 하는데 말이에요!"


  "니치카..."


  "앗, 그리고 이온 음료! 잘 마실게요! 그럼 먼저 촬영하는 곳 쪽으로 가볼게요!"


 니치카는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스태프들이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이렇게 자신감 넘치고 웃음이 가득한 니치카를 보니 아까 들었던 걱정은 없어졌지만, 역시 츠무기의 「W.I.N.G.」 우승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라이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수완 좋은 팬 여러분! MARS에서 구입하고 각자 보고 부탁드려요! 이상!"


 니치카는 활기차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까와 큰 차이는 없는 듯 하였지만 어째서인지 기합이 더 들어가 있었다.


  "좋아 좋아 컷트!! 어이 니치카 쨩~ 좋은데? 역시 소문대로라고?"


 아까는 번번이 다시 찍자고 요구하던 감독이었지만, 작은 변화를 눈치챈 것인지 이번엔 단박에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분명 큰 차이는 없었는데, 방금은 기를 쓰고 컷트를 남발했지만 지금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바로 오케이를 받아서 맥이 빠졌다.


  "프로듀서 님, 어땠나요? 잘 한 것 같은데!"


  "오, 잘 됐다고? 감독이 계속 뭐라 할 땐 걱정되긴 했는데 잘 끝나서 다행이다."


  "우와~ 엄청엄청 걱정했단 티 내지 말아줄래요? 제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런 느낌이에요?"


 니치카는 그래도 아까 감독이 했던 말들이 마음에 남은 건지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래도 이런 웃음거리가 되는 일을 하는 건 제 특기니까... 웃음거리가 되는 건 특기니까..."


  "니치카..."


 전에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이렇게 니치카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며 불안정하게 되는 것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밝고 명랑하며 실력까지 갖춘 아이지만, 이런 저런 연유로 스스로를 비하하며 절망하는 것을 보면 그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자, 자! 일단 사무소로 돌아가자. 얼른 가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할 순 있겠다."


 어찌 됐든 오늘 키리코와 니치카의 촬영은 성공적이었으니, 사무소로 돌아간 뒤에 사후강평을 간단하게 실시하면 오늘의 일과는 끝날 것이다.



 복귀한 후,


  "키리코? 키리코 어딨니?"


 사무소에서 오늘 있었던 영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후에, 니치카는 연습을 하러 간다고 연습실로 가버렸다. 이외의 일정은 없었기에 키리코를 차로 태워다 주기 위해 그녀를 찾았지만 사무소 안엔 없는 듯 하였다. 말 안하고 먼저 떠난 건가? 하즈키 씨도 지금은 사무소에 없기에 간단하게 이 곳의 뒷정리를 하고 나갈 참이었다.


  "아, 창문이 열려있네. 퇴근하기 전에 일단 불을... 음?"


  "음~ 흐흠~"


 창문 너머로 아주 작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라고 하기보단 허밍이 맞으려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미루어 보건대 옥상에 아직 누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는,


  "아, 키리코! 여기 있었네. 뭐하고 있어?"


  "후훗... 프로듀서 님..."


 옥상으로 올라가니 키리코가 난간 쪽에 기대고 서있었다. 키리코의 너머로 보이는 저녁 노을은 옅게 미소짓고 있는 그녀의 신비스러움을 한 층 더해주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자 무심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예쁘네..."


  "프로듀서... 님...?"


  "아 그게 아니고! 뒤에 노을 말한 거야."


  "후훗..."


 키리코는 작게 웃고는 다시 뒤를 돌아 노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키리코의 옆에 나란히 서 난간에 기대곤 마찬가지로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바를 키리코에게 물어보았다.


  "있잖아 키리코... 오늘 니치카랑 영업 같이 했잖아. 키리코가 보기엔 니치카는 어떻니?"


 키리코는 앞에 풍경에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미소를 지으며,


  "후훗... 프로듀서 님... 니치카 쨩을 걱정해주는..."


  "뭐... 걱정이면 걱정이지. 그래도 같은 사무소 동료잖아."


 사려가 깊고 주변 이들을 걱정해주는 키리코라면 뭔가 지혜까진 아니어도 다른 이들이 놓치고 있는 점을 알려줄 수 있겠거니 했다. 키리코는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 시선은 앞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니치카 쨩... 많이 힘들어 하겠지만 결국 잘 해낼 수 있을 거에요... 다만 무리하지 않게 누가 옆에서 버팀목 역할을..."


  "뭐... 아무래도 그렇겠지... 선배 프로듀서 님이 잘 챙겨주는 것 같긴 하다만..."


 키리코가 니치카의 악담을 할 리는 없겠지만, 역시 제대로 니치카를 보고 있어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옆에서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긴 할 것이다만 니치카의 마음 깊이 있는 열등감이 그걸 쉽지 않게 하는 것이 문제이니 이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말이 나온 김에 키리코가 다른 아이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좀 궁금했다.


  "그럼 츠무기는 어떠니, 키리코? 같이 레슨도 하고 가끔 먹을 것도 먹으러 가고 하잖아."


 키리코는 방금과 마찬가지로 노을을 바라보는 채로 말했다.


  "프로듀서 님... 프로듀서 님이야말로 츠무기 쨩을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음... 그냥 아이돌이지? 우리 283 소속의 아이돌?"


  "프로듀서 님... 그게 전부...?"


 키리코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길래 그냥 적당하게 답변을 했더니,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츠무기는 우리 283 소속의 아이돌이니 그에 맞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키리코가 보기엔 아닌 것인가?


  "프로듀서 님은... 저, 니치카 쨩, 코가네 쨩, 그리고 다른 아이돌들과... 츠무기 쨩과 똑같이 생각해주고 그렇게 해주나요?"


  "그, 그야 담당 아이돌이기도 하고... 직접 스카웃하기도 했고 뭐랄까... 아무래도 다른 아이돌에 비해선... 그, 차별하는 건 아니다만!"


  "후훗... 부끄럼쟁이 씨..."


 그러자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키리코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프로듀서 님...?"


  "아무리 그래도 키리코도 내 소중한 동료라고. 츠무기가 담당이기 때문에 내가 키리코에게 소홀하게 대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만약 걱정했더라면 그럴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이내 키리코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프로듀서 님... 그게 아니... 에?"


 별안간 키리코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이 동그래졌다. 키리코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쾅!


 이어서 옥상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히고 누군가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츠무기... 쨩..."


 키리코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을 듣자 마자 몸이 제멋대로 반응하여 반사적으로 계단 쪽을 향해 달려갔다.


  "츠무기!! 츠무기!! 잠깐만! 왜 도망가는 건데!"


  "읏...! 도망가는 것일리가 없지 않습니까!?"


 평소 그녀답지 않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는 츠무기를 간신히 1층에서 잡아냈다. 시선을 회피하며 팔을 뿌리치려는 그녀에게,


  "츠무기, 무슨 일인데!? 아니 사무소에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 아냐? 근데 왜 그냥 가는 건데!?"


  "방해할... 읏...! 생각은... 없으니까요...!"


  "뭐어!?"


 정황을 보니 방금 키리코와 같이 있던 광경을 본 것 같았다. 키리코의 머리를 쓰다듬는 시점에서 온 건지, 그 전에 온 건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츠무기, 잘 모르겠지만 분명 오해야! 그러니까 일단 내 말을..."


  "뭐가 오해라는 거죠? 제가 본 것 중에 어떤 것이?"


  "..."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사실, 어찌 보면 츠무기는 과도하게 넘겨짚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키리코와 둘이 옥상에서 있는 모습도 츠무기가 보았고, 머리도 쓰다듬는 와중이었으니 그 사실 자체만 봐도 오해의 여지는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됐습니다.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잠깐. 무슨 일이 있으니까 사무소 온 거 아냐? 근데 오자마자 바로 간다고?"


 그러자 츠무기는 손을 뿌리치며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어째서 제가 여기 오고 가는 이유를 전부 당신에게 말해줘야 하는 건가요!? 프로듀서는 유코쿠 씨랑 함께 사무소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죠...!"


  "츠, 츠무기! 기다리라니까!!"


 츠무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소 건물을 나가 역 방면으로 뛰쳐나갔다.


  "츠무기!! 하, 정말..."


 키리코랑 둘이 있는 모습을 보고 오해하는 건 그렇다 치지만, 왜 갑자기 츠무기가 저렇게 성질을 부리면서 화를 내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이돌과 프로듀서 간에 무슨 짓인가요!?'

라는 식의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매도하는 반응도 아니었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츠무기가 보이는 반응의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키리코에게 물어봐도 딱히 알 것 같지도 않고.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프로듀서를 한 지, 츠무기를 알게 된 지 꽤 됐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 누구도 아닌 츠무기가 생각하는 바조차 제대로 알 수 없으니까.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