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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2. 그때의 그 스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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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1, 2023 01:37에 작성됨.

2. 그때의 그 스토커...!



  "근데 말이야. 굳이 도망칠 필요가 있었어? 거기 경찰 분한테 사실대로 말해도 되는 거잖아."


 선배 프로듀서가 모니터 너머를 흘긋 넘겨보며 말했다. 분명 그랬긴 했다. 그런데 그때는 왜 도망간다는 선택을 했었을까? 그거야 사람들이 의심하고 몰아붙이는 상황이어서 그랬었다. 그랬을 거다.


  "그야, 경찰 분들이 절 안 믿어주고 바로 저를 경찰서로 연행할 수 있어서 그런 거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다 저를 스토커로 몰아가는 형국에, 정황 조사한다고 잡아가서 다음 날 아침에 풀어줬을 겁니다."


 선배 프로듀서는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음, 진짜 그게 다야? 내가 보기엔 그거 말고 더 있는 거 같은데."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넌 그 친구를 믿지 못했던 거 아냐? 따지고 보면, 그 애가 네가 프로듀서라는 걸 정말 믿어주고 경찰관들에게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거기서 별 문제 없이 끝나는 거 아냐? 당사자가 '오해였어요.' 라고 말하는데 억지로 서까지 끌고 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 애는 네가 프로듀서인 걸 마지막까지 믿어주지 않았던 거야?"


  "..."


 맞는 말이었다. 거기서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시라이시 양이 경찰관 분들에게 스토킹은 아니었다고 잘 말해주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때는 그 생각을 못했을까. 돌이켜보면 정말 선배 프로듀서 말대로, 시라이시 양이 경찰관 분들에게 "이 사람 스토커에요!" 라고 말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였으려나. 선배 프로듀서는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헤에~ 그 뭐였지... 쿠로이시 양이었나, 하는 친구는 꽤나 믿음직스럽지 못 하나 봐?"


  "시라이시 양입니다. 그리고 그건 그런 게 아니고..."


  "그런 게 아니고 는 반말이고~"


 선배 프로듀서는 퇴근할 준비를 하기 위해 책상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9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든 아이돌들은 아마 지금쯤 집으로 돌아갔을 거고, 선배 프로듀서도 일이 다 끝나서 이제 퇴근할 준비를 할 것이었다.


  "선배님 퇴근하십니까?"


 선배 프로듀서는 피곤한 듯 팔을 쭉 뻗어서 스트레칭을 하고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니... 연습실 가서 담당 아이돌 집 데려다 주려고. 퇴근은 그 다음에."


  "선배님도 그렇고 그 친구도 그렇고 이런 늦은 시간까지..."


  "너도 할 거 없는데 나 퇴근 안 한다고 이런 늦은 시간까지 여기 있는 거잖아. 퇴근 안하고 있을 거면 여기 일 더 짬 때린다?"


  "아하하, 그건 좀..."


  "그건 좀 은 반말이고~"


 선배 프로듀서는 짐을 다 챙기고 나서면서 말했다.


  "프로듀서가 아이돌을 믿어주지 못하면, 누가 아이돌을 믿어주려나?"


 갑자기 뜬금없는 말이네, 라고 생각했다. 굳이 이 문맥에?


  "너가 쿠로이시 양인지 누군지를 제대로 믿었더라면 그렇게 안 했을 거야. 아마 그 순간까지도 넌 그 애가 너를 믿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려나."


  "그렇지만..."


  "그 애가 이거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이 결론에 다다를 거야. 저 사람은 나를 믿지 못해서 도망갔던 거구나, 라고. 그럴 게, 지금까지 한 달이 됐는데 연락도 없잖아. 안 그래?"


 맞는 말이었다. 카나자와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늦어도 일주일 내에는 연락이 오겠지, 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는 건, 아마 싫다는 뜻이겠지...


  "경찰관한테 연행되는 한이 있더라도 똑바로 마음을 전했어야 하는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릴 수 없으니까 후회하는 거 아니냐. 앞으로 기회가 있을 진 모르겠네. 그렇다고 거기로 연락하면 진짜 스토커 소리 듣는다?"


 선배 프로듀서는 어깨를 툭 치고 문을 나서면서 덧붙였다.


  "근데 진짜로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도게자라도 해서 잡아. 만약 그때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니까. 그럼 수고!"


 문득 한 달 즈음 전에 카나자와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 때의 어리숙한 행동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그 때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라이시 양을 제대로 스카웃했다면 지금 쯤 그녀를 프로듀스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겠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하아..."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시라이시 양과 같은 사람을 다시 볼 수는 있을까? 아니, 시라이시 양을 다시는 볼 수가 있을까? 그런 작은 기적이 일어날 수만 있다면.


 

  "그런 고로, 잘 다녀오세요~."


  "이거 근데 선배님이 가시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둘 다 해도 되긴 하는데, 그럼 너 오전에 하는 거 없지 않아? 이렇게 된 김에 갔다 와. 점심 먹기 전에 끝날 걸? 거기서 할 거 별로 없고 여기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 나으니까."


 사실 할 게 크게 있는 건 아니다. 체크리스트를 보면 할 내용이 크게 있진 않았다. 음반이 잘 진열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관계자에게 자잘한 거 몇 개만 물어보면 되는 일 말고는 없다. 그래도 좀 짬 맞는 기분이 들지만.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음 수고~."


 음반 가게는 도보로 10분 정도 걸려서, 시간도 많고 한가한 김에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서 가고 음반 가게에서 느긋하게 둘러본다 하더라도 오전 10시가 넘진 않을 거다. 아직 많은 일이 맡겨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유롭게 가볼까.


  애써 태연한 척 하고는 있다만, 속에서 먹먹한 느낌이 드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걸어가면서도 자꾸 그 때의 생각이 났다.


  "확실히 독특한 아이긴 했지."


 외모로만 따져봐도 시라이시 양은 일반적이진 않았다. 흔하지 않은 은발에, 머리 끝 부분을 리본으로 묶었었다. 그거만 제외하면 전형적인 '야마토 나데시코' 이미지에 딱 들어맞았다. 단아한 모습, 몸에 밴 예의범절, 가만히 있어도 느낄 수 있는 기품. 길을 걸어다니며 주변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흔할 수가 없지.


  "그래. 딱 저런 아이였지. 딱 저런 모습의... 에?"


 그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심장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록 복장은 그때와 많이 다르지만, 분명 시라이시 양이 전철역 앞에 서있었다. 한 달 전 카나자와에서 본 그 시라이시 양이 여기 도쿄의 전철역 앞에 있는 것이었다!


  "시, 시라이시 양이다!"


 시라이시 양은 전철역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기다리는 건가? 하지만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시라이시 양에게 뛰어갔다.


  "저 혹시, 시라이시 양!"


  "꺅! 그, 그때의 그 스토커...!"


  "아, 아니 스토커 아니라니까!"


 시라이시 양은 화들짝 놀라고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그 시라이시 양이 앞에 서있었다. 시라이시 양을 다시 보고 싶다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했는데 정말로 그 소망대로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토커라는 말을 다시 들을 줄은 몰랐지만. 이 떨림을 진정시키고,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이것을 하는 것이 먼저였다.


  "자. 시라이시 양, 이렇게 프로듀서가 무릎을 꿇었..."


  "아... 아니,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뭐하는 겁니까! 이, 일어나세요!"


 양 무릎을 채 꿇기도 전에 시라이시 양이 팔을 잡고 끌어올렸다.


  "정말이지, 당신의 무릎은 이렇게 가벼운 건가요? 뭔가 부탁할 때마다 무릎을 꿇는 사람이었습니까?"


  "음... 그게, 부탁이라기 보단 사죄의 의미로..."


 시라이시 양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어보았다.


  "사죄? 당신이 잘못한 것이 어떤 건가요?"


  "음 그러니까, 제가 잘못한 건..."


 한 편, 조금 요란했던 모양인지 주변의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대박, 공공장소에서 커플들이 저렇게 싸우는 거 처음 보는 걸지도!"


  "우와... 저 여자친구 분이 남자친구 분한테 뭐 잘못했냐고 갈구는 거 보여? 분명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혼내버리겠지!"


  "그래도 저 정도 여자친구랑 사귈 수 있다면, 저렇게 혼나도 좋을 지도. 아하하!"


 시라이시 양도 저 말들이 신경 쓰였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역시, 여기 서서 이야기 하는 것보단, 적당한 곳으로 들어가서 말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음, 시라이시 양. 주변에 카페로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여기 크림 단팥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라이시 양, 여기 카페의 디저트가 꽤나 맛있습니다. 이 크림 단팥 아이스크림은 먹어본 적은 없지만 소속사 아이돌들 말로는 꽤 괜찮다고 합니다."


  "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얼마 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런, 시라이시 양을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이 정말 많았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앉혀 놓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데. 그 때 시라이시 양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방금 사죄라고 하셨는데, 혹시 저한테 어떤 잘못을..."


 음.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천천히 설명하면 분명 이해해줄...


  "핫, 역시 저를 스토킹 했던 것에 대한 사죄를...?"


  "아, 스토킹 진짜 아니라고!"


 이 아이, 착각을 좀 심하게 하고 있는 것 같네. 그래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다행이면 다행인 것일까.


  "그 때, 시라이시 양에게 명함을 줬을 때, 기억하십니까?"


  "네... 물론이죠."


  "경찰 분이 왔을 때, 그 때 저는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 시라이시 양이 제가 스토커가 아니란 것을 경찰관님께 말씀해주시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인데, 저는 아마 시라이시 양이 저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시라이시 양도 분명 이걸 알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90도 숙이자, 시라이시 양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그런...! 그런 의도로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누군가 쫓아오는데, 당연히 당황할 수 밖에 없죠. 물론 당신이 그렇게 도망가서 정말 스토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윽..."


  "진짜 스토커였으면 이렇게 저에게 와서 방금 하신 것과 같은 사과의 말을 하지 않았겠죠?"


  "그런가. 다행이다..."


 만약, 시라이시 양의 오해가 끝까지 풀리지 않았으면, 이렇게 대화를 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스카웃하기는 커녕, 그녀는 도쿄에 와서 까지도 스토킹을 당한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일로 도쿄까지 온거지?


  "그나저나 시라이시 양, 도쿄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카나자와에서 도쿄까지 꽤나 멀 텐데 오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그야, 당신이 아이돌이 되어 달라고 권유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 않습니까?"


 설마 했지만, 그 때 건네줬던 명함을 보고 온 것이구나!


  "정말로 놀랐습니다. 진짜 와주시다니!"


  "...?"


 시라이시 양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파이어 원석이니 하면서 그렇게 꼬드겨 놓고, 막상 여기로 오니 놀랐다고 하고... 당신은 저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바보인 것입니까?"


 윽, 좀 많이 신랄하네.


  "사실 진짜 바보일지도. 아하하."


  "하아, 정말..."


 시라이시 양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분명 못 미더워 보이려나?


  "그래도, 장난같은 것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만약에라도 당신이..."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시라이시 양. 저는 이런 거로 장난치지는 않습니다."


  "....."


 시라이시 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잠시 미소가 띠었다. 전에 카나자와에서 보았을 때와 같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미소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 시라이시 양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는데, 이름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시라이시 양의 이름도 모르고, 그냥 성씨만 안 채로 시라이시 양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 아이는 이름이 뭘까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를 못 드렸습니다. 그럼 인사드리겠습니다."


 시라이시 양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시라이시 츠무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츠무기... 예쁜 이름이네..."


 츠무기. 츠무기. 츠무기. 좋은 울림이었다. 시라이시 츠무기 양을 다시금 볼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그런 작은 소망이 이루어져서 감개가 무량했다. 무척 기쁘기만 한 어느 날의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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