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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1. 시라이시 양, 처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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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6, 2023 19:02에 작성됨.

1. 시라이시 양, 처음 뵙겠습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이란 무엇일까. 이전에 생겼던 의문이 다시 머리속에 떠올랐다. 아이돌. 분명 우상이란 뜻이었지.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선배 프로듀서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보았더니,


  "아이돌의 정의라... 글쎄. 애초에 정해진 답이란게 있는 걸까? 그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아이돌의 정의."


  "저 말씀이십니까? 으음... 말 그대로 우상이지 않겠습니까? 춤과 노래로 다른 이들을 매료시키는..."


  "너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맞는 거겠지. 굳이 뭐가 맞네 틀리네 할 이유는 없어."


 선배 프로듀서는 안주를 집어먹으면서 말했었다. 그 후 몇 초의 정적이 흐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건 너가 아직 담당하는 애가 없어서 막연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그럴 수 있어. 지금까진 프로듀서가 나 혼자여서 애들을 내가 다 담당했다마는, 시간이 지나면 몇몇 친구들은 너가 담당하게 될거야. 오케이?"


  "예... 제가 잘 할 수 있을런지는..."


  "그런 고로, 내일 모레 카나자와에 좀 다녀와라. 절대 짬 때리는건 아니고, 이번에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말이야.. 하핫!"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지방까지 가는 게 귀찮아서 넘겨버린거 같다만,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그때 선배 프로듀서의 답을 듣지 못했었다. 아이돌이란 무엇일까. 단지 우상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거 같은데...



  "저... 손님?"


  "와앗..! 죄송합니다. 그래서, 저희 아이돌들 치수는 여기있습니다."


 가게 직원분 앞에서 당황하며 치수가 적힌 서류를 건네주었다. 이번에 타나카 양과 다른 멤버들이 찍을 화보를 위한 카가유젠을 빌려야 했는데, 여기가 잘한다고 들어서 이 포목점에 오게 되었다. 가격은... 싼 편은 아니다만 한 눈에 봐도 옷들이 좋아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치수에 맞는 옷들로 사무소로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은발의 중년 남성이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분명, 시라이시 씨라고 했다. 여기 카나자와에서 품질 좋은 카가유젠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네, 맞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시라이시 씨가 서류에 이것저것 적는 동안, 다음 일정을 확인해보았다. 지금 시간은 대략 오후 5시 즈음이고, 심야버스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버렸다.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 그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어 일정이 붕 떠버렸다.


  "아직 17시네. 시간이 너무 남는데... 뭐하지..."


기존 예약을 취소하고 신칸센으로 다시 잡을까, 라고 생각하던 그 찰나였다. 시라이시 씨가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혹시 여기 주변은 둘러보셨습니까?"


  "아직입니다. 카나자와에 오자마자 바로 여기로 와서 그럴 시간은..."


 시라이시 씨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럼, 뭐 하나 추천해드려도 될까요? 분명 마음에 들어하실 겁니다!"



 그렇게, 신사를 둘러보게 되었다. 신기하게, 축제 기간은 분명 아니다만 주변에 사람들이 꽤 많고 붐볐다. 무슨 행사라도 하는 것인가? 사실, 여름에 축제같은 것도 별로 가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몰랐다. 사람들이 붐비는걸 썩 좋아하진 않아서였는데, 프로듀서가 되고 난 뒤엔 좀 후회가 되었다. 아무래도 축제라고 하면 아이돌 관련된 좋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타나카 양네 조가 하는 것도 축제 의상 화보이기도 하고...


 신사 주변 점포들을 다 둘러보고, 신사 쪽을 걸을 참이었다. 문득 어디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와서 그쪽으로 발을 향했다. 거기엔 간이 스테이지가 있고, 드럼, 베이스, 기타 등의 밴드 악기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신사에 밴드?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


 더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니 밴드가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앗..! 이 노래는...!"


 분명, 유명한 소년 만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배경 음악이었다. 밴드 음악이지만 일본풍 느낌을 크게 내기 위해 전통 악기를 넣은 신명나는 노래인데, 가까이 가니 인파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던 게 보였다. 옆쪽에 여자아이 하나가 카가유젠을 입고 의자에 앉아서 샤미센을 연주하고 있었다.


  "...!!"


 은발머리에 단아한 외모... 고고한 분위기... 저 아이에 눈을 떼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때 느낀 감정은 다른 것이라 하겠지만, 직업병 때문인지 그 때는 이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 분명 아이돌이 된다면...!"


 외모 뿐만이 아니었다. 사뭇 진지한, 누가 보면 무표정이라고도 보일 수 있는 표정이지만 거기엔 열정이 서려있었다. 빠른 곡조인 곡이기에 상당히 어렵겠지만, 필히 뼈를 깎는 연습을 통해 완벽히 연주하는 것이리라. 그 열정이 느껴졌다. 이 아이는 분명 될 아이다!


  "그런데 이제 어떡하지... 그냥 다짜고짜 가서 아이돌을 할 생각은 없냐고 해야되나?"


 선배 프로듀서 일을 도와준 적은 있어도 아이돌 프로듀싱을 해본 적은 없다. 누군가에게 그걸 권유하는 건 더. 그렇게 어찌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새에 공연이 끝나버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아이를 포함한 밴드 멤버들은 일어나서 감사 인사를 하고, 스테이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 아이는 스테이지 옆에 세워진 부스로 향했다.


  "뭔진 몰라도, 일단 가서 말을 걸어봐야겠다...!"



 긴장을 안은 채로 부스로 가니, 그 곳은 전통악기를 홍보하고 원하는 사람들에겐 기초를 알려주는 곳이었다. 그 아이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보시는 대로, 샤미센은 손으로 뜯는 것이 아니고, 여기 있는 '바치'라는 채를 이용하여 연주를 합니다."


  "목소리가 정말 예쁘구나...!"


 단지 외모만 단아한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에도 그녀가 지니고 있는 기품이 묻어나왔다. 사람들이 많진 않아도 약간은 긴장할 법하나, 목소리엔 떨림이 없었고 열정 또한 느껴졌다. 확신이 들었다. 이 아이가 아니면 안되겠다고. 그렇게 결심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은발의 아이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보니, 문득 생각났다. 은발에, 특유의 분위기... 카가유젠... 설마...?


  "저... 시라이시 양?"


 그러자 그 은발의 아이가 설명을 하다 말고 돌아보았다.


  "...네? 그 혹시... 죄송하지만 아는 분이신가요?"


 역시나... 그 포목점 사장님의 따님인 것이었다. 그러니 '시라이시' 라고 부르는 호칭에 대답한 것이겠지. 포목점 사장님께서 의도하신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렇게 대단한 아이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저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건가요? 관계자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은발의 아이는 다시금 물어보았다. 분명 수상할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이름을 알고 접근하다니. 먼저 자기소개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서툴렀다.


  "시라이시 양, 처음 뵙겠습니다. 그,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시라이시 양의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듣고 유추를..."


  "예비 범죄자...!"


  "에..에에..!? 갑자기!?"


 기품있는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시라이시 양은 얼굴에 경멸과 분노를 담고 쏘아붙였다.


  "제 아버지께 접근해서 제 이름을 캐묻다니... 어쩜...! 역시 당신은 스토커인가요!?"


  "어이구.. 저게 뭐고.. 스토커랜다!"


  "쯧쯧... 젊어보이는 친구가 할 짓이 없어서... 가가 참말로 이쁘긴 해도... 스토킹은 범죄 아이가?"


  "마, 경찰 불러라! 스토커란다!"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이쪽으로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다. 이러다가 스카웃이고 뭐고 경찰서로 먼저 가게 생겼다. 빨리 오해를 풀지 않으면, 경찰이 와서 잡아갈 거고, 결국 무죄를 입증받긴 하더라도 차후 일정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아..아냐! 스토커 아니야!"


  "스토커가 스스로 스토커가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있나요?"


 시라이시 양은 날을 세우며 몰아붙였다. 어떻게 하면 납득시킬까 하다, 결국 정공론이 답이란 것을 깨달았다. 몇 초간 숨을 고르고, 진정한 뒤에 침착하게 말했다.


  "시라이시 양, 저는 스토커가 아니고 아이돌 프로듀서 입니다! 시라이시 양, 혹시 아이돌 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시라이시 양은 화를 내려다 아연실색하고 갑자기 입을 다물고 몇 초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가..갑자기 아이돌 말입니까...? 혹시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아까 공연할 때 정말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시라이시 양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전 보았습니다. 시라이시 양이라면, 분명 훌륭한 아이돌이 될 수 있을겁니다. 아니, 될겁니다!"


 이제 여기서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당황해서 지갑을 몇 번 떨어뜨릴 뻔하다, 겨우 명함을 꺼내서 내밀었다.


  "시라이시 양,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부디, 아이돌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시라이시 양은 명함을 바로 받지 않았다. 얼굴에 망설임과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내..내는... 갑자기 아이돌이라니..."


 그때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 스앵님, 저깁니더!"


  "을른 와주이소! 즈그 저 스토커 놈 아직도 있다 아입니꺼!"


  "아오 정말..! 왜 이렇게 되는거야!!"


 치안이 좋은 현대 시대라고 한다만 벌써 출동할 줄은 몰랐다. 이러다 진짜 잡혀서 차후 일정이 다 날아가버리면...! 망설이는 시라이시 양의 손을 붙잡고 명함을 쥐어줬다.


  "히얏... 무.. 무슨...!"


  "시라이시 양, 첫 눈에 보고 알았습니다. 당신은 사파이어 원석입니다. 분명 당신이라면...!"


  "저기!! 저깁니더!"


  "벌써 여기까지...! 시라이시 양, 그럼 나중에!"


  "자..잠깐만요!"


 시라이시 양을 뒤로 하고, 경찰들이 오는 반대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뒤에서 시라이시 양이 뭐라 더 하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단 도망가는 수밖에. 시라이시 양이 그 명함을 보고 연락해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주고 후회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멈추세요! 잠깐 서까지 가서..."


  "너라면 멈추겠냐!!"


 즐거운 어느 축제 날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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