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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언젠가는 영원한 선물을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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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5, 2023 00:32에 작성됨.


 스쳐 지나가는 작은 약속이었을 뿐이었다.


 이부키 씨와 함께하는 여름의 브라이덜 촬영 중, 작은 소악마 몰래 프로듀서에게 가볍게 툭 던졌을 뿐이었다.


 촬영 끝나고 따로 남아서…사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실까요?


 당연히 거절하리라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키사라기 치하야를 향한 그의 인연, 그리고 자그마한 죄책감을 떠올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침착하게 억누르며, 프로듀서의 답변을 기다렸다.


 조금 고민하던 그 사람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가르쳐 주는 것으로 괜찮아?’라며 되묻는다.


 그럼요. 프로듀서만 있으면 되니까요.


 물론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바보 같은 키사라기 치하야의 이 입은 ‘프로듀서가 찍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보일 테니까요.’라는 어리숙한 말이나 뱉어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노을조차 가라앉은 이 달빛 아래에 단둘이, 자그마한 촬영회가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날개가 연상되는 앞섶이 부끄러워, 소품으로 사용했던 부케를 집어 들었다. 하얀 순백의 드레스가 달빛 아래에 비치니, 은은한 하늘의 색으로 빛난다.


 찰칵거리는 카메라의 셔터음과 자상하게 웃어주는 프로듀서의 시선. 그리고 언제나처럼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니…한 쌍의 연인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표정을 카메라에 찍히고 싶지 않아, 부케를 살짝 얼굴까지 들어 올렸다. 프로듀서는 ‘평소의 치하야답지 않은 행동이라 신선하네.’라며 남의 속도 모른다.


 그런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일부러 프로듀서에게 말을 건다

.

 “어땠나요, 프로듀서.”


 “어땠냐니…촬영은 완벽해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어.”


 프로듀서의 시선이 화보 촬영 내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부키 씨의 촬영이 있을 때는 그쪽에 신경을 썼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는 이쪽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음을, 아마 이부키 씨도 알고 있었으리라.


 미키처럼 자존감도 질투심도 강한 그녀라면, 반드시 프로듀서 씨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들이댈 것이다.


 하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는 그런 이부키 씨처럼 대담하게 프로듀서를 유혹하지 못한다. 그런 성격이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도, 이럴 때라면 조금쯤은…키사라기 치하야도 아주 조금은 힘을 내 볼 수 있지 않을까. 각오를 다지며 입을 열었다.


 “후후, 감사합니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 볼게요. 어떤가요, 프로듀서?”


 “어떠냐니, 치하야 너…그런 캐릭터였어?”


 그렇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프로듀서의 입은 쿡쿡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런 말, 이런 행동, 혹시나 하루카에게 배운 것이 아닐까 생각이라도 하고 있으리라.


 물론 영향이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이 시간의 키사라기 치하야가 하는 말과 행동은, 전부 키사라기 치하야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랍니다. 둔감한 프로듀서 씨는 모르시겠지만요.


 “그럴지도요. 그래서, 어떤가요…프로듀서?”


 살짝 압력을 준다. 이쪽이 여자이고, 한창때의 소녀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시는 모양이다.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담당 프로듀서에게 이성적인 의미로 사랑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다고, 스스로조차 알고 있지 않은가.


 프로듀서와 프로덕션의 동료들에게 구원받지 못했더라면, 이런 마음조차 알지 못했겠지. 그렇기에 프로듀서의 입에서 나올 말을, 믿는 것이다.


 이 사람은 분명, 결정적일 때만큼은 예리한 사람이니까. 키사라기 치하야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릴 테니까.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하듯, 그는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예뻐.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해.”


 “확실히, 아름다운 의상이에요.”


 조금 심술궂게 이야기했지만, 프로듀서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의상이 아니라, 치하야가 아름답다는 말이야.”


 “정말…놀리지 마세요, 후후.”


 그리 말은 했지만, 기분은 좋다. 거울을 보았다면 발그레 물든 양 뺨이 보였으리라. 다시 부케를 들어 올릴까 생각했지만, 프로듀서가 카메라를 내려놓는 것을 보곤, 부케를 옆으로 살며시 밀어둔다.


 이런 모습을 카메라에 찍히고 싶지 않을 뿐이었으니까. 그런 마음을 이 사람은 알고 있을까.


 “그래도 여긴, 정말로 멋있는 장소네요.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내리쬐는 은은한 달빛…이런 곳에서 노래하는 것을 제법 동경했으니까요, 저.”


 “확실히, 치하야와 달빛은 딱 맞는 이미지라고 생각해. 치하야의 이름에서부터 달이 들어가니까, 어찌 보면 필연이기도 하지 않을까.”


 “이전에도 한번 그렇게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저는…그 달빛이 고독이라는 의미인 줄 알았어요.”


 “…….”


 과거의 키사라기 치하야라면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을, 키사라기의 달빛은 분명 고독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노래를 통해서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키사라기 치하야니까.”


 “그렇네요, 765 프로덕션의 동료들도 있고, 밀리언 스타즈의 귀여운 후배들도 있고, 그리고…프로듀서도 계시니까요.”


 그러니 이젠, 더 이상 고독한 달빛이 아니에요. 그 말을 입 속으로 삼켰다. 분명 과거에 비하면 외롭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드레스의 끝이 향하는 곳은, 빈자리였다. 언젠가는 키사라기 치하야의 옆에 누군가가 서 있겠지만, 그게 당신이었으면, 이 작은 바람을 프로듀서는 알고 있을까.


 “그래도 가끔 생각해요. 노래가 아닌 방법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치하야라면,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야.”


 “네, 저는 그럴 수 있을 거예요. 프로듀서의 말처럼,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예요.”


 프로덕션의 동료들이,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힘을 주었으니까, 당신이 옆에 있는 한…분명 그럴 수 있으리라 믿어요.


 “…….”


 그는 웃으며 키사라기 치하야의 말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쪽은 오히려 말하고 나니 조금 부끄러웠다. 예전이라면 이런 말, 절대로 하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 치하야가 조금 들떴나…살짝 의외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리는 아니죠. 과거의 키사라기 치하야라면 오로지 노래, 그 하나만 맹신하며 쫓았을 테니까요.”


 “그립네, 그 시절도.”


 “그때의 저는 이런 멋들어진 드레스를 입는 것도 싫어했지요, 분명.”


 그 말에 프로듀서는 쿡쿡 웃었다. 그 당시의 키사라기 치하야는 프로듀서의 말도 무시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기 일쑤였으니,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지금에서는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런 키사라기 치하야 또한 프로듀서는 받아주었고, 전력으로 프로듀스 해 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 기억나. 결혼 같은 거 할 생각 전혀 없다고도 했었지.”


 “아…기억나요. 솔직히 지금도 제게 결혼은 한참 이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치하야는 아직 학생이니까, 한참 이른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지.”


 정말 그럴까요, 프로듀서. 그렇게 되물으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렇게 말했다간, 아무리 둔한 프로듀서라도 키사라기 치하야의 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잘 되면 다행이지만, 잘못되면 지금의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한 걸음 나아갈 용기가 생길 때까진, 그래, 비겁하지만 이대로 있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렇지만, 은은한 달빛 아래 상냥하게 미소 짓는 프로듀서를 보니, 지금이라면 조금,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어 버린다.


 “하지만, 이렇게 드레스를 입고 여기에 서 있으니,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과 오 미터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수십 미터는 되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촬영 때문에 이 의상을 입었을 때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을, 다정한 눈으로 프로듀서를, 그리고 옆자리를 바라보며 작은 용기와 함께 풀어주었다.


 “신기하죠. 언젠가 여기, 제 곁에 서는 건…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먼 미래에도 당신이 곁에 있을까.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그런 생각만으로도 쿵쾅거리는 가슴의 고동은 분명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치하야.”


 하지만 이쪽의 기분과는 반대로, 프로듀서는 하하, 상냥하게 웃었다. 카메라를 의자에 놓아둔 채로, 이쪽으로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온다. 왜일까,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려 했지만…가느다랗게 버티고 있는 이성이 이를 막아 세웠다.


 프로듀서가 앞에 멈춰 섰다. 쇄골이 보인다. 상냥한 냄새와 함께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에 느껴졌다. 꿀꺽, 침을 삼켰다. 긴장이라도 한 것일까,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다. 그의 쇄골이 다시금 보인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네 곁에는 항상 프로덕션의 모두와…그리고 내가 있어.”


 “프로듀서…….”


 그 말에 더는 참을 수가 없어, 프로듀서의 가슴팍에 머리를 살며시 기댔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까, 깜짝 놀라는 듯 몸이 흠칫 떨렸다. 하지만 이내 머리에 느껴지던 손길이 등에 느껴졌다.


 “그러니까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자. 그렇지 않아도 치하야 너는 너무 많은 것을 짊어졌고, 짊어지고 있으니까.”


 “그런…가요.”


 상냥한 그의 말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하늘에서 깃털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프로덕션의 동료들도, 가족도, 다른 누구도 없는, 오롯이 키라사기 치하야와 프로듀서만의 장소다. 약속의 시간이며, 서약의 공간이다.


 그러니 여기라면, 조금쯤 이 마음을 드러내도 될 것이다. 조금이라면…정말 조금이라면 프로듀서가 알아차려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까.


 “프로듀서…저, 부탁 하나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 얼마든지.”


 “가만히, 그 자리에 가만히 계셔주세요.”


 그렇게 말하곤 그의 품에서 살며시 빠져나왔다. 포근한 느낌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언제까지고 의존해서는 안 된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다음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키사라기 치하야의 부탁대로, 앞쪽의 단상과 그곳에 놓여 있는 작은 십자가를 보며 가만히 있는 프로듀서의 옆에, 부케를 양손으로 꼬옥 쥔 채 나란히 섰다.


 프로듀서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치하야, 너―”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 그냥, 가만히 계셔주세요.”


 “……알겠어.”


 그리고 살그머니, 그의 팔에 팔을 두르고 몸을 밀착시켰다. 그리고 톡, 하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프로듀서가 카메라를 이쪽으로 가져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카메라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오직 키사라기 치하야와 프로듀서 두 사람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


 언젠가, 아이돌과 프로듀서로서가 아닌, 친구보다 연인보다 깊은 관계일 때를 위하여 남겨둘 것이다.


 “있잖아요, 프로듀서.”


 “응.”


 “언젠가, 나중에 진짜 드레스를 입을 날이 온다면, 그때도…소감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가장 가까이서, 라는 말은 삼켰다. 이 이상 말하게 되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는 웃었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다정한 눈빛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쪽을 설레게 만든다. 힘이 빠져 아래로 내려간 손을, 프로듀서의 손이 맞잡았다.


 “반드시, 약속할게.”


 “……!”


 그 말에, 세계가 달빛으로 반짝였다.


 그 선물을 가슴속에 담아두기엔 너무나도 커다래서,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 뭔가 답을 하고 싶었지만,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지금은 당신의 담당 아이돌이지만, 언젠가는 꼭, 반드시 주겠노라고.


 …영원한 선물을.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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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의 재구성.

 치하야 생일 축하해!

 치하야가 담당 아이돌이라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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