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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안 올린 시호 생축글(이던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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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4, 2023 11:52에 작성됨.

이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 참 아름답고 고귀한 단어가 아닌가? 누군가, 아니, 인간의 입에 오르내리기에는 너무나도 존귀한 단어다. 아무리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머금은들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전기신호와 호르몬의 왕복을 언행으로 표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단 것이 참 서글프다.


그리고, 그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내가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다. 호르몬의 흐름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하여 엉키고 뒤섞였단 것도 몇 년을 모르고 살았고, 약으로 바로잡는 지금도 그 흐름이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왕복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사내다,


사랑한다고 고백한 사람에게도 이 사실을 함구하는 그 사내는 오늘도 애인의 곁에 있다.


해질녘, 아직 오후 5시인데 해가 중천은커녕 지평선을 넘어가서 노을이 지고 있다. 오늘따라 더 붉은 것이 하늘과 땅 사이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다. 시호는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도 내 옆에 있고, 시호의 생일이 내일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아직 시호의 생일선물을 사지 않았다.


당신이 불타게 사랑해서 자기 자신마저 바꿔가며 먼저 고백까지 한 그 남자친구는, 사실 정신병자에, 월급도 박봉이고, 다른 사람보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사람 대하는 법조차도 잘 모르는 인간이다.


그런 사람이 사는 생일선물은 뭐가 좋을까.


“저. 시호.”


”네.“


“생일선물로 뭐가 가지고 싶어?”


”선물이요?“


시호는 나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이미 어른이니 생일 같은 건 신경 안 쓸지 몰라도, 기념일이란 것은 추억이 될 테니 소중히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 줬었다. 어른은 밥벌이해서 종이쪼가리 받은 뒤론 생일따위 잊어먹는 사람인가. 그때부터 시호는 나에게 지금과 같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내 마음도 모르는데. 사람 마음을 읽는 재주가 있으면 좋겠다.


”딱히 뭘 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진짜?“


”네.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프로듀서는 자기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대로 골몰해버리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그런가.“


“저도 딱히 선물로 사줄 게 없어서 저번엔 직접 쿠키를 구워서 줬잖아요.”


“그랬나?”


“역시 기억 안 나나 보네요.”


역시라. 작년에 해준 말이 아니었나 보다. 담당 아이돌의 말 몇 마디는 잘 기억하는데, 직접 정성들여서 준 무언가를 받은 건 기억이 안 난다...라. 사랑하는 사람이 직접 시간을 쪼개가면서 정성들여 무언가를 만들어줬는데 나는 잊어버렸군.


웃긴다. 참 숨넘어갈 만큼 웃기다. 이래서야 무슨 선물을 한단 말인가? 내가 시호를 대함에 있어서 가식적이나마 정성이란 것을 대접한 적이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나는 키타자와 시호라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프로듀서로서는 재능있고 유망한 아이돌이라고 생각하고, 애인으로서는 늘 곁에 있어주며 기대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는 나보다도 훨씬 기구한 환경에서 내 꼴이 안 나고 올곧은 시호를 동경한다. 그게 다다. 프로듀서로서, 비즈니스적으로선 무언가를 해줬지만, 인간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해 준 것이 있던가. 해 줄 기회가 왔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갑자기 울고 싶다. 구토가 하고 싶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역겹고 천지가 뒤집히고 있지만, 속에서 구역질만 날 뿐 구토를 할 수가 없다. 시호는 날 보면 웃어주는데, 난 시호를 보면서 웃어줬나? 대부분은 기대기만 하고 눈물만 흘리기 바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 조심해서 가.“


시호는 그렇게 릿군을 바래다주러 시어터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흐르는 하늘 말고 그 아래의 사람들을 보면 다들 나 없어도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좋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나 없어도 행복하게 지내면 참 좋을 텐데, 시호가 나의 손을 잡아준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렇지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나를 제거하고 싶다.


이래서야 즐거운 희망의 존재를 소름끼쳐하는 무언가가 아닌가. 손톱을 전부 물어뜯어버리고 싶은 기분에 젖어서 멍하니 옷을 챙겨입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눈을 뜨니 도착한 곳은 마트다.


난 시호가 좋아할만한 것을 찾아야 했다.


시호는 날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라는 인간은 시호에게 줄 것이 있나? 하니 없다. 내가 가진 것은 내 몸뚱아리뿐이다. 마음이라면 시호에게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시호가 내 손을 잡아줄 때부터 마음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패스다. 다음으로, 시호는 릿군을 좋아했다. 릿군을 선물봉다리에 싸서 시호에게 주자고? 역시 패스다. 그리고, 다음으로 시호는 자기 자신의 인간적, 그리고 아이돌로서의 성장을 좋아했다. 내가 성장을 대신 해줄 순 없다. 패스다, 그리고 시호는... 시호는, 동화를 좋아했다.


동화, 동화. 고전 동화의 작법은 일반 책의 작법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고전 동화는 신화와 전설과 민담에서 그 기반을 두고 있기에, 주인공이 목적으로 하는 대상이 있으며, 그 대상을 향하는 길에 위기를 겪고, 그 위기를 해결할 조력자가 등장하며, 결국 사필귀정의 결말로 이어진다는 거였나. 아마 맞진 않겠지.


나는 바다에 뛰어내리듯 책 코너 쪽으로 가서 동화 코너 앞에 섰다. 여러 동화들이 있었다. 내가 못 들어본 동화책들이다. 시호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권이 맨 위에 놓여 있었다.


시호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니까 아마 시호라면 이미 읽었을 것이다. 릿군에게도 읽어줬겠지. 나도 그 작가의 책을 읽었다.


‘실수는 누구나 다 하는 거란다. 좋은 어린이가 되면 돼.’


작가님이 나에게 이렇게 한마디를 해 줬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은 사람인가? 나는 뭔가를 계속 하고는 있는데, 그게 전부 실수일지도 모른다. 실수란 걸 알면 고치면 되는데, 고치고 싶어도 실수인지 아닌지를 모른다.


하지만, 저질렀을 때의 메뉴얼이라도 제공해주는 것이 어디인가. AS도 안되는 인생인데 저 정도면 정말 좋은 메뉴얼이다.


동화 코너 맨 위에 있는 책은 그 이야기의 후속편이었다. 책 코너에서 나올 땐 이미 그 동화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시호에게 주면 그래도 좋아할까. 안 좋아하면 내가 읽어야지.


그리고 동화 코너에서 벗어나서는 정처없이 마트 곳곳을 떠돌았다. 뭔가가 내 눈을 밟았다. 직접 구둣발로 물리적인 충격을 줘서 내 유리체를 망막과 박리시킨 건 아니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흔적을 남겼다.


동화 같은 풍경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우리 사무소의 아이돌인 민트색 머리 공주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고는 했지. 황금빛의 말이 뛰놀고 왕자는 언제나 공주를 수호해주는 그런 장소에서, 자신은 왔다고. 그런 장소를 실제로 구현해둔 듯한 모형이 있었다. 좀 더 가까이 봤더니. 단순한 모형은 아니고 태엽을 돌리는 오르골이었다.


시호가 좋아해줄까.


나는 오르골을 손에 집었다. 동화책과 오르골이라. 좋은 선물이 될지 모르겠다. 시호는 선물 같은 건 개의치 않는다고 했었지만, 난 아닌걸.


그렇게 다음 날이 찾아왔다. 오늘은 시호의 생일. 그리고 사무소 차원에서 도입한 버스데이 라이브 날이다. 시호는 프로다. 받는 페이나 공연장에 선 줄이 프로는 아닐지언정, 라이브에 임하는 자세나 스스로와 아이돌에 대한 태도는 프로였다. 라이브가 실패할 리가 없었다.


극장에 와준 사람들은 모두 크게 박수를 치면서 시호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무대 뒤에 있는 나는 저 커다란 박수소리보다도 가치있는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까.


”시호. 수고했어. 라이브 정말로 잘했어. 정말로...“


나는 선물상자 안에 포장조차 하지 않은 동화책과 오르골을 건넸다.


”어, 이건?“


”응. 시호. 이 작가님 좋아한다고 했잖아. 신간이 나왔다고 하길래.“


”이미 읽긴 했지만...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건 회전목마 오르골이네요.“


”어때?“


”여전히 귀엽네요. 어릴 때 많이 좋아했었어요.“


”집에 있는 거야?“


”아뇨. 지금은 없어요.“


지금은 없다라, 여러 말과 생각이 몸 안에서 오고간다. 그냥 단순히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사라져버릴 만한 일이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굳이 캐내서 알고 싶지도 않다.


”그,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으, 응.“


시호가 고맙다고 해줬다.


나라도 해줄 수 있는게 있었던 걸까. 하지만,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뭔가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시호가 생일은 특별한 날이라고 해줬지만, 정작 난 아무것도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지 않은 느낌이 든다. 고맙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걸까.


”저, 시호.“


”네.“


”혹시 가고 싶은 데 있어?“


“있어요. 전에 업무차 가봤던 놀이공원이요.”


전에 시호랑 업무차 갔던 놀이공원이라. 업무차로 간 놀이공원은 여러 곳이 있지만, 저번에 갔던 곳은 극장 가까이에 있는 강변 옆 놀이공원이었다. 난 놀이공원과는 연이 없다만, 시호가 가고 싶다면야. 지금 시기는 비수기라서 놀이공원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진 않겠지.


나는 시호를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갔다.


놀이공원은 역시나 한산했다. 나는 시호와 함께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내가 놀이기구를 탈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프로듀서. 그냥, 아무거나 타러 가면 돼요?”


“응.”


그런 걸 굳이 나한테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네. 그럼 다녀올게요.”


시호는 그렇게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나는 근처에 있는 벤치에 가서 앉았다.


그냥 가서 계속 앉아 있었다. 어릴 적부터 놀이동산에 가면 내가 늘상 하는 일은 벤치에 앉아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뿐이었다. 딱히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는 속도의 롤러코스터에 앉아서 비명을 지르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마 내 어릴때의 장래희망은 찐따무직백수모쏠아싸병신새끼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들 신나게 웃고 떠드는데 혼자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만큼 기분이 째지는 일도 없고.


그렇게 계속 앉아있다 보니, 시호가 별 모양 머리띠를 하고 풍선을 하나 들고 돌아왔다.


“프로듀서. 지금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니. 시호. 재밌게 놀고 있어?”


”네.“


시호는 내게 풍선을 건네줬다.


”프로듀서.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던 거 다 보였어요. 사실 지금까지 계속 기다렸던 거, 맞죠?“


“아니야. 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아서 그래.”


“......”


“진짜야.”


“프로듀서. 저랑 같이 뭐라도 탈래요?”


난 당연히 거절하지 못했다.


“응.”


“그럼 저기 있는 관람차 타요. 둘이서 같이 탈 수 있잖아요. 모처럼이기도 하고.”


“모처럼이라니?”


“모처럼 둘이서 같이 있는 시간인걸요.”


그런가. 모처럼 둘이서 같이 있는 시간이라.


관람차는 다른 놀이기구들보다도 줄이 짧았다. 나는 시호가 준 풍선을 꼭 쥐고 관람차 안에 발을 딛었다. 하늘은 어느새 다시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빨간색으로, 그리고 검고 짙은 파란색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래를 보니, 참 휘황찬란한 별천지였다. 여러 놀이기구들이 쌩쌩 돌아가고 있고, 조명은 번쩍거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 행복한 듯이 웃고 떠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기서 즐기는 대신 늘 어딘가에 홀로 있는 쪽이었다.


지금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 내 곁에 있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 시호는 내 바로 옆에 앉았고, 내가 젖어도 될까 싶은 행복감과 고양감이 내 등을 떠밀고 있다. 관람차가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가듯이, 이렇게 행복한 순간도 곧 사라지겠지.


이 기분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기분이 사라지지 않게 할 방법이 단 하나밖에 생각이 안 난다. 그래. 이 상태에서 내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텐데. 떨어져 뒈지기 참 좋은 풍경이다. 음. 그렇다. 그렇고말고.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면 뒤질 가치가 있다.


“저, 프로듀서.”


”응.“


“왜 그렇게 창 밖만 계속 바라보고 있어요?”


“그냥, 여러 생각이 들어서.”


이 경치가 떨어져 죽기 좋은 경치라 생각했다고는 절대 말 못해,


“프로듀서. 미안해요.”


“왜?”


“프로듀서는 저랑 함께 있고 싶었을 텐데, 저 혼자 신나서 여기저기 계속 돌아다녔잖아요. 프로듀서가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뭐 어때. 오늘이 누구 생일인데. 그리고 딱히 기다린 거 아니야.“


”프로듀서.“


”응.“


“부담스러운 마음 가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죠?”


”아니야. 그, 음...“


생일날 구질구질한 이야기 하고 분위기 다 잡치기는 싫은데.


”난 그냥 어릴 때부터 이런 데 오면 계속 어디 한 군데서 앉아만 있었어.“


”진짜로요?“


”응.“


”......“


”왜 그런 불쌍한 눈빛으로 보고 그래?“


”...프로듀서는 외롭게 지냈겠네요.“


”지금은 아니니까 괜찮아.“


시호는 내게 다가와서 손을 잡았다.


”그럼 제가 없었으면 계속 외롭게 지냈을 거라는 이야기에요?“


”아마도.“


”바보.“


”그래서, 너한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애인이 되고 싶어. 너는 나한텐 과분한 사람인걸.“


시호는 내 손을 좀 더 꼬옥 쥐며 한 마디를 했다.


”프로듀서는 지금 그대로라도 저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봤어요?“


“...응.”


“정말...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바보에요.”


“그치만...”


”프로듀서. 제 곁에 계속 있어주고, 절 늘 신경써주고, 제가 무언가를 할 때마다 늘 도와주는 사람이 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님?”


”그리고요?“


”...나?“


“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건 프로듀서로서 한 일인걸. 연인으로서, 아니, 사람 대 사람으로서 너에게 도움이 되고, 너에게 좋은 일을 해 준 적이 있냐 하면... 솔직히 난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아.”


”무슨 좋은 일을 하고 도움이 돼요. 그걸 굳이 따로 볼 필요가 있어요? 프로듀서는 이미 힘내고 있잖아요. 전 프로듀서가 좋고, 프로듀서도 절 좋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행복하다고요.“


어느샌가 나의 곁에 꼭 달라붙은 시호의 입술이 가녀리고도 따뜻한, 아니,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뜨거운 숨결을 토해낸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저에게 정말로 솔직하게 대해주는걸요. 저한테 이만큼이나 솔직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프로듀서뿐인걸요.”


솔직하다니. 내가? 난 숨기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시호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말하지 않는 것도 너무나도 많았다.


“프로듀서는, 저한테는 모든 걸 전부 말해주고, 보여주잖아요.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얼마나 기쁜지, 아니면 얼마나 저에 대한 감정이 깊은지까지도.”


“아니야.”


“아니었으면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을 거에요.”


”아니야...“


눈 앞이 팽팽 돌아간다. 시호는 내 옆에 있는데, 어느새 나에게로 와서 기대고 있는데, 나는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도저히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다. 몸의 혈류가 가파르게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마음이 시끄럽게 비명을 지른다.


”있잖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 줄래?“


”네.“


“내가 관람차에 오르고서 무슨 생각 했는지 듣고 싶어?”


“...네.”


“그냥.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했어. 날 정말 좋아해주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고, 나도 정말로 행복하고 이 기분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도저히 이 행복이 사라지지 않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어. 그래서, 그냥 뛰어내리면 이 행복이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어.”


“......”


“미안해.”


”프로듀서.“


난 시호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거봐요. 프로듀서는 솔직하잖아요.”


“어?”


“프로듀서, 프로듀서가 계속 힘들어하고 있었을 거란 예감은 들었어요.”


“알고 있었구나...”


“알고 있었다... 까진 아니지만요. 프로듀서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좀 피곤해 보이기도 했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위해서라면 좀 과하게 몰입해서 무리하기도 하고, 그리고... 프로듀서가 하는 혼잣말도 들었어요.”


내가 뭐라고 혼잣말을 했던가. 좋은 말은 아니었을 것 같다.


”프로듀서는 기댈 땐 저한테 제대로 기대주는걸요. 저였으면, 저였으면 그런 용기는 못 냈을 거예요. 힘들때 기대긴 해도, 속에 있는 걸 전부 말하진 못 했을 거에요.”


"시호..."


"프로듀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진 모르겠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솔직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있어서 기댈 수 있었고,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건 맞죠?"


"응."


"그럼 전 충분해요. 그것만으로도. 왜냐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프로듀서에게 기대고 있고, 저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으니까요."


"...난 내가 더 나아진 사람이 된 것 같다고는 생각 안 해."


"프로듀서가 처음 그대로였으면 제가 이번 라이브를 이렇게까지 성공시켰겠어요?"


"그야, 넌 늘 레슨도 열심히 하고, 아이돌에 대한 진심어린 태도도..."


"그럼 그 레슨 일정을 계속 잡아주고, 늘 곁에서 진심어린 태도를 심어준 사람이 누군데요?"


"......"


"프로듀서. 사랑해요."


"나도."


"그리고, 오늘만큼은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요. 한번만 더 미안하다고 하면 그냥 두고 갈 거에요."


"응..."


나는 꼭 기대오는 시호의 곁에 앉아서, 시호에게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소매로 눈물을 하염없이 닦았다. 어느정도 진정되었을 땐 이미 나와 시호는 놀이공원에서 나온 뒤였다.


"저, 시호."


"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딱히 생각 안 나요."


"그럼 차 타고 가면서 이야기하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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