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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a Reaso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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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1, 2022 21:58에 작성됨.




................ 그 일로 부터 수많은 시간이 지났다.

한 때 신계를 들썩이게 하였단 신살광선(神殺光線) 사건은 어느샌가 서서히 묻혀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들 사이에서 '이름을 부르면 안되는 자' 취급을 받으면서 없던 것 취급을 할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일에 휘말린 수많은 신들이 그 끔찍한 살해가 일어나는 장면을 지켜본 것도 있고 무엇보다...


[죽고 싶지 않아, 살려 주세요. 아버지... 아버지...!!]


고통스럽게 잿가루가 되어 산화되어버린 아지무아의 모습을 본 신들이 이 이상 그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서 입을 다물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잊어버린 것이 있으니... 닌후르쌍과 엔키의 사이에서 태어난 8명의 여신과 닌키가 그 검보라색 광선에 의해서 꿰뚫리고 사망하였지만 두트르만은 살아남았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현재 신계를 뒤져봐도 그녀의 모습이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신들은 그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으나 그녀는 현재... 


사락사락~

"저기 말야... 당신 지금 수십일 째 잠을 안 자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

"...저기요. 내 말 들리는 거 맞아?"

"...들리고 있어."

"그러면 대답을 하라고!"


반 정도 투명하게 보이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 닌키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예전보다 더 싸늘해진 엔키를 바라봤다. 부드러웠던 성격은 가시 돋히게 변해버렸으며 주번에는 수많은 기록들를 점토판에 기록하고 쌓아놓았다.

그 외, 주변에는 어떤 액체를 담아놓았던 원통형의 금속들이 널려있었는데 이것들은 요그 소토스의 능력을 이용해서 미래에서 그 상을 비추어서 가져온 것으로 에너지 드링크라고 하는 것이라는데... 아무리 그녀가 살펴봐도 이런 것을 마시는 이유는 모를 뿐이였다. 

요그 소토스는 그가 소환한 이 에너지 드링크들을 살펴보고는...


"와. 이거 인생 하직할려고 준비를 했나... 아, 맞다. 애 웬만하면 안 뒤지지? 까먹었네."


...라고 말하면서 넘긴 것을 보면 적당히 마시면 뭔가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많이 마시면 평범한 인간의 경우, 수명이 깎이는 것 같다. 무슨 독도 아니고... 닌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빛마저 뾰족하게 바뀌어버린 엔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말야, 신경이 안 좋은 것은 알겠지만 조금은 부드럽게 말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 그러기에는 두트르에게 너무 미안해. 내가 어떻게든 바로 보호 해줬어야 했는데..."

"지랄한다. 그렇게 할 거면 나하고 걔네들도 구해줬어야지, 나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으니깐 기분 좀 풀어."

"... 알겠어."


엔키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더니 몸에 쌓여있던 살기를 털어내었다. 살기가 빠져나가자 반쯤 감긴 눈이 순하게 변하였다. 거기에 가시처럼 쏟아오른 머리카락이며 옷가지 또한 평상시에 보던 것 처럼 부드럽게 변하였다.

그의 원래대로 돌아온 모습을 본 닌키는 그제서야 웃음을 지으면서 그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어딘가 흠이 난 곳이 없나 살펴보았다. 예전이긴 하지만 이 얼굴을 만들어줄려고 고생 꽤나 한 만큼 그 누구도 이 얼굴에 상처내는 꼴을 못 보기에 아주 흡족해하였다.


"그래, 이래야지 그 잘생긴 얼굴이 더 잘생겨보인다니깐."

"하아... 아무리 찾아봐도 방법이 없어..."

"그러니깐 일단 진정부터 해."


닌키는 엔키의 등 뒤로 가서 그를 뒤에서 허그를 하였다. 그 육신은 이미 죽었기에 제대로 된 감촉이 느껴질 리는 없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의 특성에 의하여...


몰캉~


"여기 참 신기하네, 영혼 상태에서는 육신에 간섭을 못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부드러운 육신의 감각을 전달해 줄 수 있다니..."

"그야, 명계니깐 말야. 두트르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 시킬려면 삶과 죽음이 혼재할 수 있는 이 곳 말고는 적당한 곳이 없거든"


그들이 있는 곳은 명계의 한 구석이였다. 이 곳은 본디 살아있는 자가 존재할 수는 없으나 닌키는 이미 죽어서 육신이 소멸하였고, 두트르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이기에, 마지막으로 엔키는... 신경쓰지 말자. 세상 최강의 지혜를 가진 자가 명계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를 것 같다면 정말로 멍청한 것이다.

물론 다른 명계의 신들이 이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지만 손가락 한 방 튕겨서 명계 밑의 심연을 강제로 끌어올리자 강제로 포기하였고 현재는 가끔씩 에레쉬키갈이 얼굴을 비출 때마다 미래의 제과들을 가끔씩 건네주었고 이것이 어느 평행세계의 에레쉬키갈이 점토 처묵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래서... 뭔가 실마리는 보여?"

"으음... 지구상의 지식으로는 별로..."

"하기사... 애초에 그 검보라색 광선이 어디에서 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니깐 말야..."

"...아니, 알아는 냈어."

"뭐라고?!"


그 일이 일어난 지 고작 한 달, 그 짧을수도 있는 시간만에 무엇이 어떻게 외었는지를 알아냈다는 그 말에 닌키는 놀랐지만 거기에 더해서 다른 의문점을 느꼈다. 자신이 아는 엔키의 성격이라면 분명히 일을 일으킨 장본인을 갈아버리는 것이 당연한데 어째서 이렇게 있는 건가?

그 해답은 바로 이어지는 그의 발언으로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공격은... 미래에서 날아왔어."

"미래...?"

"그것도... 원래 그 공격은 오로지 두트르만을 노리고 날아온 건데... 우연찮게 그 사선에 위치한 8명의 아이들과 너가 당한 것 뿐이야..."

"그,그렇구나..."


미래에서 날아온 공격, 그것도 오로지 두트르만을 노리고 날아왔던 공격이라... 거기에 자신은 오로지 그 공격에 휘말린 피해자이다. 이에 대해서 다른 자들이였다면 두트르에게 불만을 표했겠지만 닌키는 그러지 않았다. 그야...

그녀들이 맞은 공격은 본래라면 영혼까지 일격에 소멸시킬 정도의 악의를 담은 공격이였다. 그렇기에 정상적인 환생을 거춰야할 8명의 여신들은 지금 어떻게든 우리안에서의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신계는 지금 난리이겠네. 다른 여신들도 중요하지만 특히... 닌카시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동명이신에게 지금 그 권능을 넘겨야 하잖아."

"아, 그건 내가 빠르게 해결했어. 다른 권능들도 다 처리했고 말야."

"뭐야, 그걸 어느새 한 건데?!"

"별 거 있나, 밥 한끼 먹을 시간이면 충분히 하고 남지."

"정말이지..."


닌키는 자신의 남편의 유능함에 허를 내둘렀다. 유능하다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유능할 줄이야... 전혀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빠르게 처리할 줄은 진짜로 생각할 수도 없었다.


"와 씨, 이렇게나 대단한 너 조차도 이렇게 애를 먹게 한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아직 유예 시간은 많이 남아있으니깐 그 동안 두트르하고 얘기 좀 많이 나눠두는 게 좋을 거야."

"아, 맞다. 그래... 몸이 존재해서 내가 살아있는 줄 알았는데... 나도 즉사했지?"


닌키는 그제야 다시 떠올렸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온기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반투명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면서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명계의 여신, 에레쉬키갈은 그 누구보다 공명정대한 여신이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신이라고 하여도 명계에 발을 들인 이상 무조건 그녀의 뜻을 따라야만 하지만... 그 보다 아득히도 높은 직위를 가진 엔키가 힘으로 이를 무시할 수 있게 해줬기에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갑자기 허탈해지네."

"으음... 미안. 내가 조금 더 빠르게 구할 수 있었으면..."

"괜찮아. 다시 태어나면 되는 일이지. 본래라면 그냥 영혼이 표백이 될 때까지 있어야 하는 것을 너가 어떻게든 해줘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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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고작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두트르를 치료하고자 열일 하던 녀석이 갑자기 침울해진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나까지 찾아와서 갑자기 얘기를 하자고 한다. 

대체 무슨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 거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을 나누다 보면 본래의 마음이 어떻게는 입 밖으로 나오는 법, 나는 이 녀석의 입에서 본래의 마음이 나오게 말로 구슬리기 시작하였고 몇십분간의 결과, 드디어 녀석의 본래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저기 말야. 너는 이제까지 해오던 것들이 다 후회스럽지는 않아?'

"후회라... 그런 적은 없는데. 왜 그래?"

"아니... 알잖아.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은지 말야..."


그 모습을 본 나는 그를 꼭 껴안아 주었다. 비록 이미 육신을 벗어나버린 영혼이지만 그럼에도 이 곳이라면 살아있을 때와 다름 없이 그를 껴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서 한탄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우리들과 엮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었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적어도 나와 두트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한심스럽네. 그렇게 한탄할 시간에 어서 하루라도 빨리 뭔가 방안을 찾아내."

"하,하지만..."


나는 우물쭈물 대는 그 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있는 힘껏 눌렀다.

그래봤자 별 힘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이의 마음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기에는 적당하다.


"힘을 내라고, 세계 최고의 두뇌가 이러고 있으면 누가 이 일을 해결해주겠냐고. 응?"

"쯧... 알겠어. 진심으로 찾으면 되잖아."


정말이지, 그래. 이러지 않으면 내 남편이지 않지. 비록 두트르보다는 내가 좀 덜 귀엽다고 해도 알아온 시간은 10배 이상이니깐 말이다. 신 엔키는 뭔가 계락을 꾸미거나 생각하고 있을 때가 가장 멋진 법이다. 지난 1000년간 바라본 시점에서의 명확한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후우... 좋아. 그러면 하루라도 빨리 방안을 찾아볼까!"

"정말이지... 그래, 힘을 내. 두트르도 저렇게 최대한 고통을 참아가면서 힘을 내고 있잖아."

"알겠어, 그러면 처음으로... 이 방법부터 시작해볼까."


그 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순식간에 뭔가를 공중에서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결의와 각오, 그리고 두트르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부디...


움찔!

"읏...! 아직 쓰러지면 안되는데..."


부디... 내가 이 곳에 흡수되어서 사라지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하는데 말이다...

본래 내가 이 명계에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세계의 근간은 계속해서 나를 흡수하기 위하여 힘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얌전히 흡수되었다가는 다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안 되기에 안간힘을 써서 이를 거부하고 있지만... 그리 오랫동안 견딜 수는 없다.


'정말이지... 적어도 내가 편안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힘 좀 써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나를 흡수할려는 힘이 느슨해진 명계의 힘을 뿌리치고는 두트르에게로 향하였다. 오랜만에 여자들만의 이야기나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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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또 며칠 뒤, 수많은 실험 끝에 엔키는 드디어 유일한 단 한 가지의 방안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위험하고 그리고 터무니 없을 정도로 수많은 오차를 수정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미래이기에 그는... 자신의 목숨을 댓가로 그 오차들을 수정하고자 하였다.


"오! 오랜만~!"

"... 외신이 미래의 지식을 알게 되니깐 건방지게 되었네."

"뭐 어때서~ 그보다 뭐할려고 나를 부른 거야?"

"그냥 뭐 좀 도와줘라"

"오케이~"


요그 소토스의 허락을 받자마자 그는 바닥에 커다란 마술진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 형태는 별과 우로보로스를 기본으로 하여 방대한 생명과 무한한 순환을 이뤄내서 하나의 소 세계를, 정삼각형과 역삼각형을 겹친 육망성을 중앙에 겹쳐 그려넣어서 불(정삼각형),물(역삼각형),땅(역삼각형 가운데에 선),바람(정삼각형 가운데에 선)을 합친 제 5원소인 에테르를 형성하였다.


"오! 이건 재미있는데?"

"시끄럽고, 여기서 이거하고 이거 쓰면 수많은 평행세계의 경면을 만들 수 있냐?"

"어... 가능하네, 그런데 이거 제대로 쓴 거 보면 알고 하는 거 아니야?"

"뭔 개소리야. 다 감으로 한 거야."

"미친 놈일세... 알고 해도 실패확률이 9할이상인데 이걸 감으로 완벽하게 한다고...?"

"시끄러워."


마술진을 다 그린 엔키가 양 손바닥을 바닥에 가져다 대고 마력을 흘려넣자 마술진이 빛을 띄기 시작하면서 하얀 번개가 지직거렸다. 거기에 이어서 엔키가 입으로 뭔가를 읇조리기 시작하자 그 의 앞에 수많은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이에 엔키가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수많은 평행세계가 복사되어서 그의 앞에 점의 형태로 펼처졌다.

이에 엔키는 제 3법을 실행하여 자신의 영혼을 물질화 시킨 뒤에 이를 끈의 형태로 뽑아내어서 각기 다른 평행세계 안에 밀어넣었다.


"오, 대단한데? 이런 것까지 가능하다니. 그런데... 왜 나를 부른 거야? 이럴 거면 혼자 해도 괜찮잖아."

"내 몸이 영혼의 마모에 대한 반동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어서 말야. 너는 이에 대한 관찰자이자 내 구명줄이야."

"구명줄?"

"그냥... 계속해서 말이나 걸어줘."


엔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평행세계 안으로 들어간 영혼에 자신의 의식을 집중시켰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각기 다른 평행세계로 연결된 영혼의 끈이 하나둘 씩 바스라지기 시작하였고 그는 이 때, 제 5법을 발동하고 영혼의 마모가 일어나지 않은 시간대로 이를 되돌리는 조건으로 넘쳐흐르는 마력을 소비해가면서 수많은 차원을 엿보기 시작하였다.

본래라면 열화되지 않을 영혼이 마모될 정도의 고통속에서 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요그 소토스를 소환하여 자신에게 말을 걸어줘서 정신을 유지하게 하고 있지만... 괜히 소환한 듯한 느낌을 들 정도의 헛소리를 지껄여서 신경쓰이게 하였다.


"힘내라 힘! 힘내서 성공하면... 하룻밤 같이 자 줄게."

"개소리는 하지 마라..."


...어찌 되었든 그는 그렇게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까지 계속해서 단 하나의 가능성을 위한 실험을 해나갔고 영혼의 마모에 따른 상처는 조금씩 그의 몸을 먹어들기 시작하였다.


철벅~!


맨 처음으로 그의 한쪽 눈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윽...! 저기... 괜찮아?"

"문제 없어"


다음으로 그의 이빨이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이,이빨이... 아프지는 않은 거야?"

"흥해 허허(문제 없어)"


그의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히익! 머리카락이 다... 이거 다시 회복은 할 수 있는 거야?"

"흥해 허하허(문제 없다고)"


코가 썩어 문들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저,저기... 좀 그게..."

"......"


남아있던 다른 쪽 눈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자,잠깐! 이제 그만하는 게 좀..."


왼손가락이 모조리 말라 비틀어져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그만하라니깐 그러네... 응? 그만하자..."


내장이 뭉게져서 배가 부풀어 오르다가 터졌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이제 그만해도 괜찮잖아! 그러니깐...!"


등골에 바스라져서 가루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야! 내 말 듣고 있냐고!!"


양 발이 녹아 내렸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엔키!! 내 말 좀 들으라고!!"


어깨가...

무릎이...

혀....




...... 두개골이 바스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신경이 하나 둘씩 끝부터 썩어들어간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평행세계를....


"그만, 그만하라고!! 이제 충분하잖아!"

"........"

"제발... 이제 그만하면 안되는 거야...? 너는 지금... 뇌 말고는 남아있지도 않잖아... 이건... 이건 외신인 내가 봐도 잔혹하다고...!!"


요그 소토스는 영혼의 마모에 대한 반동으로 온 몸이 사라져서 오로지 뇌만이 남은 그를 바라보면서 오열하였다. 이제까지 수많은 외신들을 만들고 죽여왔던 그였지만 지금 엔키가 하는 짓거리는 같은 외신조차도 고통이 몸부림 치다가 미쳐 버릴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엔키는 멈추지 않았고 대뇌피질에 연결된 영혼의 끈으로 다른 평행세계를 엿보았다. 그리고...


".........!"


그는, 단 하나의 가능성. 너무나도 앏고 가느다랗지만 그럼에도 완벽히 할 수 만 있다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내었다. 이를 본 그는 즉시 이제까지 반동을 받고 있던 자신의 육체를 다시금 수복하였다.

그가 손가락을 튕긴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테이프를 역재생한 듯이 그의 몸이 다시 돌아왔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려고 하다가 바닥에 널부러졌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한 끝에 결국 0이 100개나 될 정도의 죽음을 경험해버린 탓에 몸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거 봐! 내가 진작에 그만하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무모한 짓을 한 건데!"

"... 내가 죽는 것 보다 두트르가 죽는 게 더 고통스러우니깐 말야."

"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두트르는 내가 죽어도 이 우주를 멸망시키지는 않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어.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죽는 게 더 나은 일이란 말이야..."


엔키는 부들거리는 육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 뒤에 두트르가 누워있는 곳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하려다가 다시 널부러지게 되었고 결국 기어서 가기로 하였다. 

요그 소토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튕기고는 바닥에서 나온 촉수들로 엔키를 들어올렸다.


"어,어이. 이건..."

"... 기어가는 건 꼴 사납잖아. 그러니깐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어. 내가 직접 데려다 줄 테니깐 말야."

"... 고마워."


엔키가 건넨 짧지만 많은 뜻이 담겨있는 감사의 말을 들은 요그 소토스는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춘 채, 촉수를 컨테이너 벨트처럼 움직여서 그를 이동시키면서 옆에서 떠다니는 채로 따라갔다.



......엔키는 두트르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있는 힘을 다 쏟아부워가면서 그녀에게로 향하였다. 두트르는 닌키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잠에 들어 있었다. 


"음냐..."

"하아... 깨어있을 땐는 고통스러워서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네."

"...그렇네."

"아, 왔구나."

"어... 방법을 찾았어."

"그것 참 다행...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보여?"

"그건..."


엔키가 자신에게 한 일에 대해서 얼버무리자 닌키를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요그 소토스는 한심하다는 듯 엔키를 바라보면서 그가 숨기고자 하는 것들을 다 말하였다.


"야, 이 녀석. 단 한가지의 성공이라도 찾아내기 위해서 자신의 온 몸을 다 갈아내면서 까지 셀 수도 없는 죽음을 경험해서...!"

"야! 그거 말하지 말라고!!"

"시끄러워! 어떤 미친 놈이 자기가 죽는 게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 보다 더 낫다고 하는 건데!!"

"아니, 그러니깐...!"


엔키와 요그 소토스가 서로 싸우는 동안, 닌키는 두 사람이 말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깐... 저거, 지금 얘 하나 살리겠다고... 수십번 그 이상 죽어보고 왔다는 거야? 오로지... 얘를 위해서?'


닌키는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두트르를 바라보면서 얼굴의 핏기가 가시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자신이라면 이 정도까지 매달릴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두트르를 바라보던 닌키는 어느샌가 곤히 자고 있던 그녀가 깨어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 저기....?"

"......닌키씨."

"응, 그게 말야......"

"제가... 잘못 들은 거겠죠?"


그녀의 그 한 마디를 들은 닌키는 순간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에 대한 것을 알면 안되는 그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가는... 분명히 울고불면서 하지 말라고 매달리고, 거기에 그냥 죽는 게 더 좋다는 말까지 꺼낼 것이 당연하기에...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요... 분명히 뭔가 말씀하셨..."

"아무것도 아니라고."

"닌키님..."

"절대로, 아무것도 아니야."


알아서는 안된다. 그녀가 절대로 이 사실에 대해서 알아서는 안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가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서는....


"...무슨 일이 있는 거에요. 대답해주세요."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그러니깐 일단 다시 누워서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닌키씨, 제가 아무리 밝게 보인다고 해서 머릿속까지 꽃밭인 건 아니네요. 그러니깐 알려주세요."


어떻게든 최대한 속여볼려고 했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웠던 두트르는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었고 이에 대한 요구를 하였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닌키는 자신이 들은 그대로 그녀에게 말해주기로 하였다.


"실은... 너를 구하기 위해서 그... 좀 많이 죽었다고 하더라..."

"...누가 죽었다는 거죠?"

"......엔키."


그 말을 듣자마자 두트르는 자신이 누워있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요그 소토스와 싸우고 있는 엔키에게로 달려갔다. 아직 몸에 남아있는 상처의 여파가 그녀의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을 갉어먹었으나 두트르는 지금 여기서 자신이 소멸된다고 하여도 들을 수 있는 것만큼을 들어야겠다는 단 하나의 정신력을 가지고 나아갔다.


"엔키님...!"

"아니, 그러니깐... 두트르? 너가 왜 여기에..."

"얘기... 다 들었어요. 왜 그러셨죠?"

"얘기라니...... 그래 그 눈빛을 보니깐 속여넘길 수는 없겠네."

"당연하...으윽, 쿨럭!"

"두트르! 너 설마..."

"하아... 하아... 얼마 못 살 것 같네요..."


두트르의 상태가 심각해졌음을 알게 된 엔키는 그녀를 뒤따라온 닌키에게 잠시 맡겨두기로 하고 빠르게 자신이 봤던 그 미래를 확정시키기 위한 방안을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요그 소토스, 아자토스와의 계약을 할 거다. 당장 연결 해줘!"

"뭐라고?! 너 지금... 뭘 할려고 하는 건데!!"

"간단해, 리스크는 나와 두트르, 그리고 닌키의 기억이지... 대신 장점은 있어. 제 아무리 미쳐있다고 해도 자신이 내건 내기의 조건대로가 아닌 방법으로 두트르가 죽음에 이를려고 하면 이를 막아줄 거니깐 말이지."

"미쳤네... 그래서, 진짜로 할 거야?"

"당연하지... 만약에 두트르가 죽는 것이 운명이라고 하면, 그 운명. 저항하면 될 뿐이야."


엔키의 대답을 들은 요그 소토스는 미쳤다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하였다. 그야 지금 그가 내뱉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기억을 댓가로 일종의 게임을 진행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게임의 대상이 자신과 두트르, 그리고 위대하면서도 우둔한 마왕, 아자토스라는 점이다.


"너 말야... 만약에 그 분의 광기를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할려고 그러냐?"

"견디지 못한다고? 그럴리가 없잖아."

씨익~

"견디면 그만이잖아. 안 그러냐?"


자신의 친우가 내뱉는 말을 들으면서 요그 소토스는 머리라고 부를 조직이 없기에 두통을 느낄리가 없지만... 지금 자신에게 주어지고 있는 이 감각이 분명히 두통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감각이 찾아오는 부위를 눌렀다.

한편 그 시각... 두트르는 닌키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내용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둘 다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건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니깐 말이야... 우리들이 마음 아파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니깐 말야."

"저는 그게 싫은 걸요..."


두트르의 발언에 닌키는 그저 그녀를 꼭 껴안아 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의 닌키는 조금이라도 힘을 잘못 줬다가는 즉시 명계에 빨려 들어가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 방법은 그저 두트르를 껴안아 주는 것만이 전부였다.

그렇게 잠시동안 닌키의 품에 안긴 두트르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생각해보면 옛날부터 이상한 짓거리란 짓거리는 다 저지른 엔키이기에 웬만한 기행에는 익숙해졌지만... 자신의 몸마저 제대로 돌보지 않는 이러한 행동은 거의 처음이기에 두트르와 닌키, 두 사람 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하였다.

잠시 숨을 고르내쉰 두트르는 문득 엔키가 한 말을 다시 떠올리면서 닌키에게 질문하였다.


"저기... 닌키씨. 그런데 말이죠..."

"응 왜 그래?"

"엔키씨 말인데요... 뭔가 방법을 찾은 걸까요?"

"그렇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닐 것 같기는 해."

"그렇군요..."


두트르는 닌키의 말에 잠시 침울해졌다. 고작 자신 하나 때문에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였다니... 그럼에도 자신이 그를 사랑해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그저 눈 앞이 깜깜해질 뿐이였다.

닌키는 그런 두트르를 다시 껴안아 줬다. 좀 더 부드럽게, 마치 아기를 다루듯이 말이다.


"진정해, 두트르. 네 잘못이 아니야."

"하,하지만..."

"문제 없을 거야. 그러니깐... 진정해."

"그래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닌키의 조용하고 차분한 말과 자신을 아기처럼 어루만지는 손길에 두트르는 잠시 흥분하였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우... 알겠어요."

"그래, 그런데...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람?"

"그건 저도 잘..."

"아니야, 너하고 나야 모르는 게 당연하지. 흐음..."


닌키는 저 멀리서 요그 소토스와 뭔가를 하고 있는 엔키를 바라보면서 궁금함을 자아내었다. 과연... 그가 발견해냈다고 했던 단 한가지의 방법이란 무엇일까? 라고 생각하면서 두트르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


요그 소토스는 경악하였다. 그저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녀석이 있어서 강제로 계약을 맺고 한 번 놀아볼려고 한 것이였는데... 그는 자신의 상식을 초월하였다.

그야... 자신의 위에 존재하는 아자토스와의 계약을 맺는 존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보통은 그 힘의 일부를 얻거나 아니면 미쳐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으음,으음... 과연 이렇구나."

[이해,불가. 상식외.]

"신경쓰지 말고... 음, 이걸 이렇게 하면... 하지만 대신에 손실량이 많아지는데..."

[경악. 광기,제어. 흥미.]

"쯧...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제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저렇게 대화까지 나눌 수 있다니... 비록 무의식 속에서의 대화라고 하여도 누구든지 미쳐버릴 수 밖에 없는데 말이다...


"좋아... 이게 최선의 방법이네."

"뭐야, 벌써 뭔가 방법을 찾은 거야?"

"그래... 그런데 두트르가 싫어는 하겠는데 말이지..."

"정말이지..."


엔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저쪽에 있는 두트르와 닌키를 불러왔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기억을 댓가로 저를 전생시킨다고요?"

"전생이 아니라 신생아 상태로 역전시키는 거야. 대략 5년분의 기억이라면 충분한 에너지원이 되니깐 말이지."

"그렇다고 해도 그건... 그건 너무하잖아!"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고 그 방법이 내가 아무리 상처입는다고 해도 성공 가능하다면 난 할거야."

"그러면 뭐해요! 당신이 아프게 된다는 것은 똑같잖아요!!"


두트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이를 거부할려고 하였지만 자신의 어깨를 잡은 엔키와 허리에 붙들린 닌키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이게 무슨...!"

"미안하지만... 나도 이게 좋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하지만...!"

"그리고 말야... 나도 이제 좀 힘들거든..."


그렇게 말하는 닌키의 얼굴 색은 많이 창백해보였다. 마치 힘이 부치는 것 처럼 말이다. 두트르는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닌키가 어떻게든 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닌키씨, 설마..."

"미안... 명계에 흡수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참고 있었는데... 이제 한계야..."


닌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엔키는 닌키를 바라보다가 두트르를 바라보았다.


"두트르... 어떻게든 안될까?"

"하지만..."

"나는 괜찮아. 정말이야, 그러니깐... 생각을 해줘."


두트르는 그의 말을 듣고는 마음이 흔들렸다. 이대로 해야만 할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그가 많이 고통 받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은 한 번에 아자토스와의 계약 조건을 이행할 수 없을 것이고 그 말은 그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자신과의 기억을 잃는다는, 다시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고독해진다는 수많은 상황을 겪게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하였다. 그렇기에... 


"...알겠어요."

"두트르..."

"대신에... 두 가지 조건을 걸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조건?"

"엔키씨에게 말한 것이 아니에요, 저기..."

스윽~

"...아자토스라고 했나요? 제가 원하는 세가지 조건을 들어주세요. 그렇다면 엔키씨가 말씀하신 그 계약, 하겠어요."


두트르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그 존재를 향해 두려움을 벗어던지고는 꿋꿋하게 그를 바라보고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


"첫번째는 저와 닌키씨의 자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거에요."

"두트르..."

"이것을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저도 협상은 없어요."


두트르의 단호한 대답에 요그 소토스는 적지 않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혹시라도 잘못 되어서 아자토스가 그냥 그녀를 없애버리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문제 없음. 단, 댓가 증가]

"...그건 상관없어."

"다행이네요."


엔키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조건을 꺼내었다. 이 조건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기에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였다.


"두 번째 조건은 저를 향해서 날아온 눈 먼 공격에 목숨을 잃으신 8분을 다시 인간을 전생시켜주시는 거에요."

[그 또한, 댓가 증가]

"...조금 버겁겠지만 뭐... 그래서 위에 두 개는 얼마나 소모되냐?"

[두트르,120년.나머지 40년]

"그냥 다 가져가겠다는 거구만."

[감정 부족, 후회 가능]

"누가 후회라는 건데?"

[나]

"너? 너가 왜 후회하는 건데?"

[현재, 이해력 부족. 미래, 이해력 충분. 후회 가능성, 있음]

"...됬어, 그냥 실행하자고. 그보다 두트르 마지막 조건은 뭐야?"


엔키의 말을 들은 두트르는 마지막 조건을 내뱉었는데 그것은 엔키도, 닌키도,요그 소토스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였다. 왜냐하면 그 마지막 조건이란...


"...나중에 제가 기억을 되찾게 되면 한참 후회할 수 있게 영상 같은 거라도 남기게 해주세요."

"...영상?"

"두트르... 대체 무슨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 그녀를 바라보는 엔키와 닌키를 향해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모두 다 잘 될거에요. 그러니깐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하,하지만..."

"엔키씨."

덥썩~

"저는 말이죠... 당신이 상처 입는 것이 정말로 싫어요. 그렇기에 더 이상 당신이 상처입는 것을 보고 싶지 않지만... 조금만 더 참을 수 있나요?"

"...당연하지, 이 몸이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100만배의 고통에 시달리게 될 지라도 말야..."

"그것은... 너를 잃게 된다는 고통에 비하면 덜 해. 지금도 충분히... 아프지만 말야..."

"...닌키씨를 비롯한 분들에 대한 것이군요."

"......"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엔키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심적으로 고통받았을 지를 말이다. 마치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는 심연속을 헤집고 다니는 그 감각,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견디는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만 짐작한 그녀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저기 말이에요, 혹시라도 말이에요... 제가 소멸되는 것이 아닌 그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이였나요?"

"만약... 이지?"

"네, 이건 듣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엔키는 미소를 지으면서 웃어보였다. 그 미소안에는 고통이 들어있었으나 부의 감정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였다.


"......만약에, 너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야."

"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까 싶어. 모든 인연을 말이야."

"그렇군요... 다시 처음부터는 조금 씁쓸하네요. 그건 다른 저를 본다는 거니깐요."

"그렇다면 차라리 0부터 우주를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을지도? 아자토스의 힘이라면 가능할 거니깐 말야."

[불가능, 아님]

"저렇다고 하는데. 어때? 조금 끌려?"

"저런, 매력적이지는 않네요. 그렇다면 지금의 선택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몇번이고 다시 갓난아기로 돌아가더라도 어떻게든 엔키씨를 기억할게요. 그러니깐... 엔키씨도 힘내주세요."

"알겠어, 설사 너가 어떤 시대에 어떤 곳에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어떠한 삶을 살게 될지라도 내가 무조건 너를 찾아내줄게. 그리고... 다시금 너를 사랑하고 함께 할 거야."

"그거면 충분해요. 너무나도 과분한 걸요..."


두트르의 눈에서 흐르는 행복의 눈물을 닦아내린 엔키는 옆에서 안간힘을 써가면서 견디고 있는 닌키를 향해 눈을 돌렸다.


"하아... 하아..."

"닌키... 괜찮아?"

"나? 문제 없어... 걱정해야 할 사람은 너잖아... 견딜 수 있겠어?"

"...견딜거야. 문제 없어."

"정말이지..."


엔키는 고통을 참아내가면서 웃어보이는 닌키의 머리위에 손을 올리고 그녀의 영혼을 윤회의 고리 위에 올렸다. 앞으로 그녀는 한 번의 전생을 거친 뒤에 다시금 자신과 두트르와의 재회를 할 것이다.

요그 소토스와 연결된 그 인연의 끈으로 본 찰나의 광경 내에서 본 예언은 적중한다. 아니 적중하게 만들 것이다. 어떻게든 말이다.


"조금만 자고 있어. 알겠지?"

"글쎄... 일단은 알겠어."


그렇게 닌키는 윤회의 고리로 돌아갔고, 이제 그들에게는 아자토스와의 계약만이 남았다. 두려움이 앞서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엔키는 솟아오르는 공포를 참아가면서 아자토스와의 계약을 맺기 시작하였고 두트르는 그 사이에 미래의 자신에게 보낼 영상을 찍기 시작하였다.


"...저기 말야, 너 무섭지는 않아?"

"무섭지, 당연히도 무섭단 말이지. 그럼에도..."

스륵~

"이걸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게 더 무서워."


계약 조건을 다 맞춘 엔키는 두트르가 찍고 있는 영상이 다 끝나는대로 계약을 체결할 준비를 다 끝내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요그 소토스는 궁금하였던 한 가지 의문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말야... 아까 쟤가 말하는 걸 들어봤는데 말이지..."

"응, 왜 그래?"

"아니... 업테이트라고 하길래 말이지... 그건 무슨 의미로 말한 거야?"

"아,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아자토스에게 두트르가 건 조건이야."

"...네 부인 미쳤어?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데?"

"모르지, 그보다... 나는 먼 미래의 두트르가 이것들을 보고 막 펑펑 울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

"으음... 하긴, 어떻게 자신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렇게 존재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건 좀 그렇기는 하겠네."

"그러니깐... 힘내게 해야지. 어떻게든 말야."

"어떻게든 좋아하시네."


그렇게 둘이서 서로 만담 같은 말을 주고받고 있자 어느샌가 영상을 다 기록한 두트르가 근처로 돌아왔다. 엔키가 자신의 마안을 이용해서 두트르의 상태를 엿보자 심장에서 시작한 균열이 어느샌가 몸 전신으로 퍼져서 자잘한 금을 남기고 있었다. 이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두트르가 없어질 것을 예감한 엔키는 계약의 마지막 단계를 실행하기로 하였다.


"...두트르, 이제 내가 손바닥을 치면 나에게서 기억이 빠져나가면서 길고 긴 게임이 시작될 거야."

"네, 알고 있어요. 그 게임이 절대로 쉽지만은 않고 어쩌면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 조차도 알고 있어요."

"괜찮아. 그럼에도 나는 너를 믿고 있어. 너라면 분명히 어떻게든 역전극을 일으킬 거야."

"역전극이라니..."

"이 계약의 마지막 조건은 너가 걸어버린 그 영상 때문에 바뀌었다고. 본래라면 그냥 즉사의 공격을 받고도 생존할 수 있으면 문제 없는데 거기에 이어서 너가 기억속에서 일어나는 것까지가 되었단 말이야..."

"아하하..."

"... 그러면, 해볼까? 많이 후회하고 많이 그리워 할거야."

"네, 비록 당신에게 남는 것이 저의 노랫소리밖에 없다고 하여도 그럼에도 할 것이지 않나요?"

"하, 희미한 노랫소리라도 남으면 0에서 부터 다시 우주를 시작한다고 해도 아주 큰 보상이지."


엔키는 그렇게 웃으면서 손바닥을 쳤고.... 그 즉시 계약이 이뤄짐과 동시에 엔키의 정수리에서부커 두트르와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솟아올라 시공을 넘어 날아가기 시작하였고 두트르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리더니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엔키가 쓰러짐과 동시에 세계의 '기억' 또한 다른 기억으로 덮혀졌다. 어긋난 두 신의 기억을 짜맞추기 위하여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그럴듯하며 위화감 따위는 느끼지 못할 완벽한 기억을 구축하기 위해서 수많은 시나리오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그 중에서 가장 알맞은 것을 덮음으로써...



그들의 멀고도 먼, 돌고 돌아가야하며. 어떨 때는 행복이, 어떨 때는 절망이 몰려오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지는 모르지만...

그 끝에는 분명히 그에 걸맞은 보상이 기다릴... 그래야만 할 이유(THERE IS A REASON)가 존재하기에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미래,엿보기?]

"그렇네요, 아자토스여..."

[이해, 완료.]


모든 것을 다 이해하였기에, 조금만 잘못 생각해도 그 생각이 흘러나와서 우주를 파멸로 몰아넣기에, 스스로를 꿈속에 가둠으로써 이를 제어하고자 한 존재.

 눈 멀고, 우둔하며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백치의 신이자 어떠한 선과 악의 개념조차 존재치 않는 악몽이신 위대하신 데몬 술탄, 아자토스

모든 외신들 중 가장 지혜롭다는 나 조차도 이분의 진의를 알아차릴 수 없는데... 엔키 녀석은 이분의 모든 지혜를 엿보았음에도 소멸하지 않았으며 역으로 이해까지 해버리다니... 

거기에 두트르 역시, 함부로 쳐다봤다가는 즉시 소멸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나 당당하게 굴 줄은 몰랐다. 역시 부부는 닮는다더니... 다른 지적생명체들이 사는 행성에서 들은 말이 이런 곳에서 통할 줄은 몰랐다...


"......이들이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맞이했으면 좋겠네요."

[가능, 문제 없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그런 것은..."

[계약, 편승]

"...누가 계약에 편승 한 거죠?"

[...남매]

"...하! 정말이지... 언제 다시 태어날 줄 알고."

[상관, 안함]

"그러든지요... 그것도 저 두 사람이 결합해야지 가능한건데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가능]

"......정말이신가요?"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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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옛날부터 구두로만 전해지던 1600년대, 시계탑에서 일어났던 일들. 한마디로... 사치코와 치요(전생)의 기억이 이상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밝힙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매일마다 한 편씩 쓰니깐 손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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